CIA의 면허받은 킬러들

전투도, 철수 작전도 맡고 있는 전쟁 대행사

  • 글 : 주성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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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인들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무슨 일이 생겨도 계속 달려야 한다. 교통체증으로 길이 밀리면 즉시 역주행에 들어간다. 마주 오는 차들이 빨리 비키지 않으면 기관총으로 위협사격도 불사하며 속도를 올린다. 이처럼 공격적으로 일을 해내지 않으면 적의 공격에 당하게 된다. 이런 사실은 가까운 동료들의 죽음을 통해 체득하고 있다.”

주성민
⊙ 1958년생.
⊙ 군사전문자유기고가.
⊙ 저서 : <지중해의 문어구이> <소총수와 디지털 솔저>.
파괴된 미군 전차 위에 올라가 환호하고 있는 이라크인들.
경호 차량인 3대의 맘바가 트럭과 함께 시속 90km로 바그다드의 도로를 질주했다. 강철로 장갑된 거대한 방탄차량 맘바는 지뢰 폭발에도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
 
  “앞에 차가 나온다.”
 
  선도 차량의 운전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만치 앞에서 낡은 도요타 승용차 2대가 비포장 길에서 막 도로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길을 막으려는 거야. 속도 더 올려!”
 
  선도 차량 조수석의 팀 리더가 소리쳤다. 그 즉시 맘바는 속력을 높이며 운전수는 경적을 울려댔다. 그러자 뒤따르던 호송차량들도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호송대의 한가운데서 달리는 트럭은 미군들에게 가져갈 의료품을 싣고 있었다.
 
  “제기랄, 앞에 뭔가?” 뒤따르던 차량의 호송대원이 M-4 군용소총의 안전장치를 풀며 외쳤다. 맘바는 속도를 더 높이며 계속 경적을 울려댔다. 그러나 차는 멈추려 들지 않았다. “빌어먹을.”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선두사격수인 팀 리더가 PKM 기관총으로 차를 겨누었다. 도로에 올라와 길을 막아선 차 때문에 속도를 줄이는 순간 ‘꽝’하고 땅을 뒤흔드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급조폭발물(IED)이 터졌다.
 
  IED의 폭발력은 아주 강력했다. 무수한 파편이 맘바의 두꺼운 강철 장갑을 모조리 뚫고 들어왔다. 날카로운 파편들은 맘바 한쪽을 벌집으로 만들었고 후방사격수의 대퇴부 동맥을 잘라버렸다.
 
  LA 경찰 출신인 팀 리더는 총을 찾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한쪽 손 절반이 파편에 맞아 날아간 것을 깨닫는다. 그는 흐르는 피를 지혈할 틈도 없이 소총을 껴안은 채 뒷자리의 후방사격수를 살폈다. 안타깝게도 동료는 이미 숨이 끊어져 가고 있었다.
 
  두 대의 도요타가 진로를 막아 속도를 늦추게 한 사이, 휴대폰으로 폭발물을 터뜨린 것이다. 현장에서 사망한 후방사격수는 민간보안회사 블랙워터 소속의 청부인이다.
 
  이날 오후에는 블랙워터의 러시아제 Mi-17 수송용 헬리콥터가 이라크인들이 쏜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헬리콥터는 지상으로 추락했고 5명이 숨졌으나 조종사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잠시 후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현장에 다가온 공격자들은 부상당한 조종사를 일으켜 세운 후 AK 소총으로 사살했다. 2005년 4월 21일, 이라크 반군의 공격으로 보안회사 블랙워터는 하루 사이에 7명을 잃었다.
 
 
  가장 위험한 무기 급조폭발물
 
미군 구난전차가 IED(급조폭발물) 공격으로 파괴된 에이브럼스 전차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바그다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며, 보안회사의 민간청부인들 역시 이곳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예전에 미군들이 해오던 일이다. 미 국방부는 전투지역에서 직접적인 교전만 빼고는 대부분의 일을 보안회사에 넘겨준 지 오래다. 따라서 경호와 호송, 수송 등 방어적인 임무는 보안회사가 책임지고 있다.
 
  하루 전 4월 20일에도 반군의 총격으로 사망자가 있었다. 3대의 보안회사 차량이 새로 오는 동료를 태우러 바그다드 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도중에 그들은 IED에 당한 차량 때문에 잠시 멈춰야 했다.
 
  순간 매복해 있던 반군들이 공격해 왔다. 이날 하필이면 방탄차량이 1대뿐이라 나머지 2대는 순식간에 총알구멍이 났다. 이들은 방탄차량으로 옮겨 타고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갔으나 불과 2분 동안의 교전으로 3명의 청부인이 사망했다. 이틀 동안 최소한 10명 이상의 청부인이 숨진 것이다.
 
  이라크 저항세력인 반군은 미군과 보안회사 청부인들을 공격하려고 틈틈이 기회만 노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이동 중에는 속도를 늦출 수 없다. 달리던 중 속도가 떨어지거나 멈추게 되면 적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저격수의 총알이 날아오거나, 매복공격이 시작되거나, 가장 위협적인 IED에 당하기 쉽다.
 
  청부인들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무슨 일이 생겨도 계속 달려야 한다. 교통체증으로 길이 밀리면 즉시 역주행에 들어간다. 마주 오는 차들이 빨리 비키지 않으면 기관총으로 위협사격도 불사하며 속도를 올린다. 이처럼 공격적으로 일을 해내지 않으면 적의 공격에 당하게 된다. 이런 사실은 가까운 동료의 죽음을 통해 체득하고 있다.
 
  특히 가장 위험한 IED를 반군들이 수없이 설치하고 있다. 강력한 85mm 포탄이나 105mm 포탄에 기폭장치를 달아 설치하거나, 굴러다니는 깡통이나 드럼통, 무엇이든 이용해 감쪽같이 숨겨놓는다.
 
  교묘하게 설치한 IED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폭파시킨다. 휴대전화를 걸어 기폭장치를 작동시키거나, 멀리서 무선 리모컨을 눌러 폭파하거나, 부비트랩처럼 가느다란 인계철선을 연결해 건드리면 폭발하도록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나토(NATO)군 소속 에릭 트램블레이 준장은 2010년 3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전사자의 절반 이상이 IED에 당했다”고 말했다.
 
  순찰대가 군용지프 험비를 타고 가다 강력한 IED에 당하면 차량은 산산조각 나 뼈대만 남을 정도다. 그 정도면 타고 있던 병사들의 피해는 짐작 가고도 남는다. 경장갑인 험비의 피해가 커지자 미군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특수장갑차량 MRAP를 공급했다. 이 차량은 IED에 당할 경우에도 내부의 사람은 안전하다. 그러나 장갑이 약한 엔진 쪽과 바퀴 부분은 다 망가져 주행은 불가능해진다.
 
  중장갑으로 설계된 M1A1 에이브럼스 전차도 IED에 당한다. 155mm 포탄을 이용한 IED에 에이브럼스가 걸려들자 만신창이가 되어 포탑도 내려앉고 말았다.
 
 
  살인면허로 통하는 면책특권
 
2003년 5월 바그다드공항에 도착한 폴 브리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이 블랙워터 소속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공항을 떠나고 있다.
  이라크에는 국무부와 국방부 등 미 정부기관과 계약한 70여 개의 보안회사와 군수회사가 있다. 이들 민간회사에 계약되어 일하는 사람은 19만명이다.
 
  이들은 보급과 급식 등 병참업무에서부터 물자, 의약품, 건설자재의 수송과 호송을 맡아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재건업무의 핵심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다. 거기다 요인경호와 지역경비 등 총기와 방탄장비로 무장해야 하는 일까지 도맡고 있다. 만일 보안회사가 정부와 계약을 취소한다면 미국은 당장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다.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은 이라크를 점령했으나, 이들 18만명의 병력만으로는 치안도 유지할 수 없었다. 이라크뿐 아니라 아프간에서도 민간회사에 대한 의존도는 지나칠 정도로 높다. 이게 이라크와 아프간의 현재 상황이다.
 
  미 대통령 오바마는 8월 말까지 이라크의 전투병력 10만명을 철수시키고 비전투병력 5만명만 남겨두겠다고 8월 2일 발표했다. 10만명의 병력과 전투장비, 물자가 한두 달 만에 철수하려면 민간회사의 도움 없이는 이제 불가능하다. 한편 미군이 비는 만큼 보안회사 청부인들은 더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민간보안 분야의 전문가로 통하는 워싱턴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책임연구원 피터 싱어는 이라크전쟁을 이렇게 평가했다. “전 대통령 부시가 세계 여러 국가에 ‘자발적인 연합’을 요구했는데, 결과는 ‘청구서의 연합’이 되어 버렸다.”
 
  이라크인들에게 주권이 넘어가기 전까지 이라크를 지배한 것은 연합군 임시행정처(CPA)였고, 책임자는 최고행정관 폴 브리머였다. 그의 지나치게 고압적인 자세는 문제가 많았다. 브리머는 2003년 5월 포고령 1호와 2호를 발령해 50만명의 이라크인을 실직자로 만들었다.
 
  부시 행정부의 중앙정보국(CIA) 국장이던 조지 테닛은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했다.
 
  “CPA 포고 1호와 2호로 이라크 육군은 해체되었다. 이 명령은, 이라크 인구의 20%이며 육군에서 사실상 거의 모든 직위에 있던 수니파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이로 인해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났고 적대적인 반군의 숫자만 늘었다. 이어 브리머는 포고령 17호를 발령해 보안회사 청부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면책특권을 주었다. 그는 청부인에게 면책권을 준다는 문서에 서명을 했다.
 
  ‘청부인은 어떤 계약과 하도급 계약의 조건에 따라 행한 행위와 관련해 이라크의 법적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이 내용은 거의 ‘살인면허’라고 불릴 만한 면책특권이었다.
 
 
  죽음의 도로를 달리는 청부인들
 
  바그다드 공항을 오가는 6.5km의 도로를 미군들은 ‘급조폭발물의 도로’라 부른다. 때로는 이 도로에서 하루에도 10번이나 IED가 폭발하기 때문이다. 청부인들에게는 이 길이 ‘루트 아이리시’로 통한다. 아일랜드의 도로는 가로등이 적어 어두운 편이라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으로 붙였다.
 
  청부인들은 IED 공격을 피하려고 ‘루트 아이리시’를 전속력으로 달린다. 도로에서는 저격수들이 매복하고 있거나 수류탄을 던지기도 한다. 이런 공격에 대비해 청부인들은 방탄 케블러 헬멧과 방탄복을 착용하고, 군용소총 M-4와 9mm 권총으로 무장한다. 소총용 30발짜리 탄창은 두 개를 반대로 겹쳐 테이프로 감아서 쓴다. 탄창 하나를 다 긁어버린 후 뒤집어 재장전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안전지대인 그린 존(green zone)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모든 길은 죽음의 도로나 다름없다. 청부인들은 그린 존의 게이트를 나설 때마다 공격당할 것을 예상해야 한다.
 
  대다수 청부인은 차량을 공격적으로 거칠게 운전한다. 차량 꽁무니에는 다가오지 말라는 뜻으로 ‘stay back’이라 써 붙여 놓았다. 도로를 난폭하게 질주하다 다른 차가 가까이 오면 경고사격을 한다. 그래도 접근하면 바퀴를 쏘거나 엔진을 쏘아 날려버린다. 만일 더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기관총으로 운전석을 벌집으로 만든다. 이것은 그들의 교전수칙이다.
 
  가끔 차들이 영문도 모르고 접근하다 총격을 받는 경우가 있다. 청부인들은 총격을 당한 차의 운전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관심도 없고 차를 멈추는 법은 절대로 없다. 호송대의 거대한 벤츠 트럭이 마주 오던 소형차를 깔아뭉개고도 그냥 가버린 일도 있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다쳤는지는 집계도 없다.
 
  그동안 이라크에서는 청부인들의 총기사고를 포함해 수백 건의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상당수 민간인이 사망했으나 그들을 고소할 권한이 없었다. 연합군 임시행정처가 가지고 있던 주권이 이라크로 넘어가 포고령 17호가 무효가 될 때까지 청부인들은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강제 추방된 민간청부인들
 
  면책특권이 무효가 된 이후에도 이라크에서는 총기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바그다드에서 요인과 정부기관원의 경호는 블랙워터가 맡아왔다.
 
  2007년 9월, 블랙워터 팀은 바그다드에서 미 국무부 직원들의 탑승차량을 경호하다 시내 광장에서 반군의 공격을 받았다. 청부인들은 총기로 필요 이상의 대응을 했고, 그 결과 17명의 죄 없는 민간인을 숨지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면책특권이 종료된 이후에도 과잉폭력이 여전히 행사될 수 있음을 보여준 전형적인 경우였다.
 
  ‘바그다드 사건’으로 블랙워터의 청부인 5명은 기소되었다. 블랙워터는 재판결과가 이라크의 비즈니스에 미칠 영향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회사는 현재 200여 건의 총격사건에 연루되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사건은 이라크에서도 뜨거운 관심사였다. 그들이 어떻게 처벌될 것인가, 하는 내용은 그들에게도 심각한 문제였고, 재판결과는 양쪽 모두에게 아주 민감한 사안이었다.
 
  2009년 12월 재판결과가 나왔다. 미 연방법원은 증거부족을 내세워 청부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소식에 이라크인들의 반미감정은 극도로 높아졌다. 결국 이라크 정부는 블랙워터 청부인들에 대해 강제추방을 결정했다. 사건 당시 일하던 것으로 확인된 250명의 경호요원 모두에게 일주일 안에 이라크를 떠나라고 2010년 2월 명령했다.
 
  보안회사 청부인은 비전투원이다. 이들의 임무는 총을 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지정된 목표와 인물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보안회사는 국무부에서 면허를 받아 정부기관과 계약한다. 국무부와 보안회사가 합의한 ‘교전수칙’에는, 청부인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만 총을 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대규모 반군의 조직적인 공격을 받은 10명 내외 청부인들의 단위조직이 몇 시간이나 하루 이틀 동안 지속적인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은 고려되지 못했다. 이 정도면 군인들이 개입해야 할 일이지만 군대는 지켜만 본 경우도 허다하다.
 
 
  목숨을 건 8명의 전직 특수부대원들
 
  “탄약이 떨어져 간다.”
 
  지붕에서 총을 쏘던 보안회사 청부인이 아래를 향해 소릴 질렀다. AK 소총을 든 적은 수백 명으로 늘어나 총알은 계속해 핑핑 날아왔다. 미 해병대원 한 명이 50kg이나 나가는 무거운 탄약상자를 메고 1층에서 4층까지 뛰었다.
 
  이른 아침 이곳에선 ‘연합군 주둔반대’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점차 가열되어 오전 11시가 지나자 시위용 팻말은 AK-47 소총으로 대체되었다. 공격이 시작되면서 이라크 나자프의 CPA 지역본부는 무장시위대의 총격에 휩싸였다.
 
  나자프 CPA는 보안회사 블랙워터가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곳이다. 팔루자에서 블랙워터의 호송 팀 4명이 매복자들에게 살해되어 불태워진 지 4일 만인 2004년 4월 4일 이들은 또 공격을 당했다. “이 자식들, 한판 붙어보자고 그래.”
 
  팀 리더가 탄창을 케블러 헬멧에다 두들기며 말했다. 해군특수부대 네이비실(navySEAL) 출신인 그의 목소리는 복수심에 불탄 듯 거칠었다.
 
  “탄약은 얼마나 남았지?”
 
  M-4 소총의 탄창을 채우던 레인저부대 출신의 벤 토머스가 물었다. 지붕으로 올라온 해병대원이 탄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이게 마지막이야.”
 
  미 해병대 로니 영 상병은 탄약상자를 뜯었다. CPA의 통신장비를 업그레이드하려고 이곳을 방문했던 그는 꼼짝없이 발목을 잡혔다. 상병이 상자에서 탄약박스를 꺼내고 있을 때 팀 리더가 비명을 질렀다. “빌어먹을, 한 방 맞았어.”
 
  얼른 다가간 상병이 그의 방탄 재킷을 벗기자 팔과 가슴의 총상이 드러났다.
 
  “이걸로 치료해.”
 
  또 다른 청부인이 구급상자를 던져준다. 상병은 소독수가 든 병을 꺼내 상처에 쏟아 부은 후 압박붕대로 감았다. 청부인들이 방어하는 지붕으로 적의 공격이 집중되며 로켓추진 유탄발사기인 RPG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로켓탄이 지붕의 콘크리트 블록을 산산조각내며 폭발했다.
 
  팀 리더를 부축한 상병은 서둘러 계단으로 향했다. 그는 계단으로 내려서기 직전 총알에 옆구리를 맞았다. 상병은 무릎이 꺾이며 쓰러졌고 하필이면 유산탄이 곁에서 터져 파편이 눈까지 때렸다. 얼굴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8명의 청부인은 2시간이 넘도록 적과 교전 중이라 탄약은 거의 바닥이었다. 다행히도 얼마 후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공중에 나타난 2대의 공격용 무장헬기 아파치는 그들의 머리 위를 선회하다 그냥 날아가 버렸다.
 
  “저 자식들이 왜 그냥 가는 거야.”
 
  CPA 지역본부는 적의 공격을 받고 있었으나 아파치 헬기들은 미군 지휘부로부터 적을 향해 사격하지도, 청부인들을 도와주지도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블랙워터의 청부인들은 벤을 빼고는 모두 네이비실에서 복무한 사람들이다. CPA를 지키던 블랙워터 팀이 무장한 적과 교전하는 내내 미군은 지켜보기만 했다.
 
  아파치가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검은색의 소형 헬리콥터들이 날아왔다. 블랙워터의 수호천사 ‘리틀 버드’가 나타난 것이다. 보잉항공의 MD-530 리틀 버드는 가장 기동력이 뛰어난 헬리콥터다.
 
  이들 리틀 버드는 이라크 최고행정관 폴 브리머 경호팀 소속이었다. 경호팀의 공중지원을 전담하는 헬기들이 애초의 계약을 무시하고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왔다. 3대의 수호천사는 빗발치는 총탄 속을 뚫고 날아들어 탄약상자를 내려놓은 후 총상을 당한 팀 리더와 해병대원을 태우고 다시 날아갔다.
 
  두 사람은 수호천사들의 도움으로 부상당한 지 40분 만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전투는 4시간이 지나서야 끝났고, 불과 8명의 전직 특수부대원들이 수백 명의 무장세력을 상대해 CPA를 방어했다. 청부인들이 싸우던 현장 주위는 탄피와 파편과 쏟아진 피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다.
 
  “총을 쏘면서도 지독한 공포감에 덜덜 떨었다.”
 
  벤 토머스는 TV방송사의 카메라 앞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산 채로 잡혀 처형당할까 봐 두려웠다. 팔루자에서처럼 처참한 모습으로 방송되어 가족이 보게 될까 봐 정말 두려웠다.”
 
  리틀 버드를 몰고 날아갔던 블랙워터의 조종사 스티브는 계약위반을 따지고 드는 국무부 관계자와 대판 싸워야 했다.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동료들을 도우러 또 날아갈 겁니다.”
 
  CPA 최고행정관 폴 브리머는 과장된 상황이라며 지원을 거절했고, 미군들도 지원요청에 팔짱만 끼고 있었다. ‘나자프 CPA 사건’은 전투원인 군인과 민간청부인의 불분명한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낸 사건이었다.
 
 
  블랙워터의 수호천사 리틀 버드
 
바그다드 상공을 비행 중인 블랙워터 소속 리틀버드 헬기.
  리틀 버드는 블랙워터 항공팀이 보유한 헬리콥터다. 자체의 항공회사인 블랙워터 에비에이션(Blackwater Aviation)은 보잉 MD-530 헬리콥터와 CASA 212 수송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보급물자와 병력을 수송하며 병참지원을 했다.
 
  항공팀 리틀 버드의 조종사들은 대부분 비밀부대인 특수작전항공단 출신이다. 이들은 이라크에서 헬기를 공격적으로 조종해 가장 빠르게 날고 가장 저공비행을 하는 조종사들로 악명이 높다.
 
  급격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곡예비행 수준으로 거칠게 조종을 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다. 비행 중 적의 총격과 RPG 공격을 받는 경우는 자주 있다. 적의 모든 공격을 예상하고, 긴급 상황 때 즉각 도피비행을 해야 하는 탓에 거친 조종은 체질화되었다.
 
  이라크의 도로를 질주하던 청부인들의 호송대가 길이 밀려 속도가 떨어지는 순간은 가장 위험한 때다. 청부인들은 극도로 긴장한 채 소총의 안전장치가 풀린 것을 확인하고 저격수와 폭탄 공격에 대비한다.
 
  그러다 마침내 차가 멈추게 되면 공포심은 최대에 이른다. 이럴 때 그들은 거의 패닉상태에 가까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갑자기 수호천사들이 나타났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줄지어 나타난 리틀 버드들이 차에 닿을 듯 저공비행을 하며 엄호를 한다. 지원요청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지켜주러 온 것이다.
 
  리틀 버드의 양쪽 문으로 몸을 드러낸 사격수(door gunner)들은 기관총인 분대자동화기 M-249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다. 만일 지상의 동료들이 공격을 당하면 기관총 사수들은 5.56mm 총탄을 분당 700발씩 적에게 쏟아 부으며 화력지원을 한다. 사격을 개시하면 놋쇠 탄피들이 도로 위로 주르륵 쏟아져 내린다. M-249는 구형인 M-60을 대체한 것으로 국산 K-3과 같은 급의 화기다.
 
  한바탕 무력시위를 통해 동료들의 안전이 확보되면 검은색 헬기들은 금세 하늘로 급격히 치솟아 오른다. 미친 듯 질주라도 하듯이 올 때처럼 순식간에 줄지어 하늘로 사라진다.
 
 
  “블랙워터, 아프간 미군의 비밀 작전 개입”
 
블랙워터 창립자 에릭 프린스.
  CIA는 여러 보안회사와 계약하고 있다. 계약된 주요 보안회사는 마르케스 반체 마르케스, 다인코프, 베텍, 블랙워터 등이다. 블랙워터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2004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CIA와 공동으로 작전을 수행 중이다. 비밀로 분류되는 이 작전은 알카에다를 사냥하는 일이다.
 
  CIA 국장 리언 파네타는 2009년 6월 미 의회 정보위원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의회에 보고되지 않은 모든 비밀 암살 프로그램을 중단시켰다.”
 
  2개월 후 뉴욕타임스는, 블랙워터와 계약한 CIA가 청부인들을 동원해 알카에다 지도부를 암살하려 했으나 작전은 성과 없이 끝났다고 2009년 8월 보도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2010년 1월, CIA의 무인공격기 폭격작전에 블랙워터가 개입한 것이 드러나 말썽이 일었다. 그러자 CIA는 2010년 3월 블랙워터와 계약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블랙워터의 에릭 프린스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으며, 회견 때는 저널리스트들의 녹음과 촬영을 금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린스는 2010년 5월 5일, 미시간 홀랜드의 호프 칼리지에서 보도되지 않는 조건을 내세워 연설을 했다.
 
  “아프간에 있는 4개의 미군 전방작전기지에서 벌이는 비밀작전에 블랙워터가 개입하고 있으며, 파키스탄에서도 청부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사실은 5월 10일, 저널리스트 제르미 스캐힐이 뉴욕타임스를 통해 폭로했다. 계약을 끝냈다는 CIA의 발표는 거짓인 게 드러났고, 파키스탄에서 블랙워터는 활동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입장을 정면으로 뒤집어 버렸다.
 
  탐사보도 저널리스트 상을 수상한 스캐힐은 오래전부터 블랙워터의 행적을 추적해 왔다. 그가 쓴 책 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용병에게 술과 여자까지 접대한 CIA
 
  CIA와 계약한 청부인들은 준군사조직에 배속되어 해외의 비밀작전에 동원되어 왔다. CIA는 ‘테러와의 전쟁’에 용병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그들은 1960년대부터 이런 조직을 운용해 왔다.
 
  베트남에서 비정규전을 전담한 군사지원사령부 특수관측단(MACV-SOG)은 CIA가 자금을 지원하는 비밀부대였다. CIA는 비밀예산이 넉넉해 돈이 많았다. 특수관측단에서 CIA로 전속된 부대원들과 고용된 일부 청부인들은 1960년대부터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비밀작전을 수행했다.
 
  베트남전쟁 때 CIA는 소수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했다. 베트남에서는 중국계인 눙족, 라오스에서는 메오족이 하루 1달러 이하의 돈을 받으며 적과 싸웠다. 중국인 소수민족 눙족은 북베트남군의 주요 보급로인 호찌민 루트에 매복해 병력과 물자, 전차와 야포의 이동을 정찰해 보고했다. 눙족 전사들은 싸움에 물러서지 않는 근성이 있어 적의 수송차량을 공격하고 무기창고를 기습해 폭파시키며 꽤 전과를 올렸다.
 
  CIA에서 14년간 근무하며 국장 참모요원 등 고위간부로 일하다 조직과 활동에 실망하고 사임한 빅터 마체티가 증언한 내용이 있다.
 
  그는 당시 CIA 보급관이 눙족에게 맥주와 동남아시아의 매춘부들을 정기적으로 공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맥주와 여자를 공급받아야 싸웠고, 제때 공급이 안되면 전투를 거부했다고 그는 밝히고 있다.
 
  ‘Air America’는 CIA가 위장 운영하던 항공사다. CIA는 에어 아메리카 항공기로 맥주와 여자들을 공수해 가며 용병들의 접대에 신경을 썼다. 보급관이 여자들을 데리고 올 때는 눙족과 말이 통하지 않는 필리핀 등지의 가능한 한 먼 곳에서 데려왔다. 보안유지를 위해서였다.
 
  보급관은 그들에게 맥주 대신 위스키를 마시라고 추천했다. 값이야 더 비싸지만 무게가 덜 나가 수송비용이 적게 먹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맥주가 더 맛있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냉전 시대에는 CIA가 현지인들에게 총과 총알을 주고 총 쏘는 법을 가르쳐 용병으로 써먹었다. 지금은 보안회사의 잘 훈련된 청부인들에게 아웃소싱한다. 정부기관이 직접 책임을 지지 않는 방법이며, 아웃소싱으로 떠넘긴 일은 정부가 비난받을 일이 거의 없다. 나중 일이 잘못되어도 보안회사가 바람막이 역할을 해 정치적 부담을 덜거나 면할 수 있다.
 
 
  CIA와 비밀부대에 부여된 살인면허
 
오사마 빈 라덴.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지 26일 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다. 얼마 후 CIA 대테러센터(CTC) 책임자 카퍼 블랙이 캠프 데이비드로 불려갔다. 대통령 부시는 그에게 빈 라덴을 원했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돌아온 블랙은 CIA 특수공작국 작전장교 게리 슈런에게 라덴의 목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2001년 11월, CIA의 첫 작전 팀이 아프간으로 날아갔다. 육군특수부대 델타에서 전속시킨 40여 명과 퇴역군인 명단에서 구한 델타 출신 20여 명, 나머지는 특수공작국 요원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이들 100여 명은 게리 슈런이 지휘하는 아프간전쟁 초기의 작전 팀이었다.
 
  당시에는 훈련된 특수부대 출신들을 공급하는 보안회사가 없었고, 전직 델타들은 테러와의 전쟁에 처음 투입된 민간청부인이었다.
 
  CIA는 가져간 달러를 풀기 시작했다. 아프간 군벌 지도자들과 영향력 있는 민간지도자들을 달러로 매수해 라덴의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 누구든 라덴의 정보를 가져오면 CIA는 달러를 가방에 채워줬다. 군벌과 민간의 지도자들은 앞다투어 정보를 가져왔고 그만큼 열심히 달러를 가져갔다.
 
  아프간은 제국들의 오랜 전쟁과 반란, 내전으로 속임수가 판을 치는 곳이다. 그들은 이쪽저쪽에 다리를 걸치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해대며 손만 벌렸다. 물론 다 돈 때문이다.
 
  CIA는 아프간전쟁 초기에만 7000만 달러를 풀었으나 빈 라덴은 구경도 못했다. 카퍼 블랙은 부시에게 라덴의 목을 장담했으나, 라덴은커녕 그의 심복들도 체포하지 못했다. 나중 CIA에서 사임한 블랙은 블랙워터의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럴드 포드는 1976년, ‘미국에 고용된 사람과, 미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암살이나 암살음모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라는 대통령령 11905번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암살을 금지한 법령은 풀렸다.
 
  빌 클린턴은 1998년, 빈 라덴을 포함한 테러리스트들에게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명령서에 서명했고, 체포를 위한 작전 중 죽이더라도 용납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9·11 사건 이후, 미국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적은 누구든 죽이기로 결정했다.
 
  CIA는 빈 라덴을 제거할 권한을 확대해 달라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요구했다.
 
  조지 부시는 2001년, 빈 라덴과 그의 부하들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CIA에 주는 ‘비밀명령’에 서명했다.
 
  CIA와 그들의 파트너에게 죽이기 위한 작전을 실시하도록 명확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이런 권한은 유례가 없으며, 부시는 CIA와 군의 비밀부대, 청부인들에게 살인면허를 준 것이다.
 
 
  하루 1000달러 버는 CIA 청부인들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국경에는 어떤 표지판도 없다. 이 지역에선 국경의 실체가 없다. 어디서부터가 어느 쪽의 국경인지 알 수도 없는 이곳에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9년째 치르고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국경 산악지대에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핵심 수뇌부가 은신해 있다고 2009년 12월 발표했다. 그 후 오바마는 CIA의 ‘파키스탄 전략’을 비밀리에 승인했다. 대략 드러난 비밀전략의 핵심은 이렇다. CIA 특수작전 요원을 더 늘리고, 무인폭격기 공격을 확대해 알카에다 수뇌부를 궤멸시킨다는 것이다.
 
  이곳 국경지대에는 CIA의 비밀작전에 개입해 알카에다를 추적하는 보안회사 청부인들이 있다. 이들은 작전에 동원된 미군 특수부대와 함께 일한다. 이들은 미국 정부가 드러내고 싶지도 책임지지도 않으려는 일을 하고 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국경 주변 지방 가르데즈와 호스트 등지에는 미군 전방작전기지들이 있다. 모래주머니와 진흙을 아무렇게나 쌓고 철조망을 두른 급조된 기지들이 ‘언론에 공개된 최전선’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미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으나 실은 CIA 기지다. 이곳의 모든 작전은 CIA가 주도하고 있으며, 기지 대장은 CIA 고급요원인 작전관(Case Officer)이다. CIA는 이곳 전방기지보다 더 깊은 지역에도 기지를 두고 있다. 그곳은 파키스탄으로 더 들어간 오지이며 아직도 많은 기지가 운용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기지 기동부대(Task Force)는 대부분 델타포스이며 일부는 네이비실, 그리고 상당수 청부인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곳 청부인들은 육군과 해군의 특수부대 출신들이다. 이들의 신분은 군인도 아니고 CIA 소속도 아니다.
 
  미국 정부와 정부기관은 청부인의 활동을 부인하고 있어서 공식적으로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이들은 쓰다가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작전 중 적지에 고립되거나 사망해도 정부는 타격받을 일이 없다.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로버트 펠턴은 다큐멘터리 제작자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1975년부터 용병들의 활동을 추적한 그가 아프간에서 청부인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 있다.
 
  “우린 파키스탄으로 들어가 일합니다. 일하기는 아주 쉬워요. 계약하고 훈련받고 날아오면 되니까.”
 
  CIA와 일하는 청부인들은 하루 1000달러 내외를 받으며, 90일 일하고 30일 쉬며 다시 날아와 90일 일하는 것이 계약조건이다. 그러나 하는 일은 잘못되면 끝장일 정도로 위험부담이 크다. 3개월간 알카에다를 추적하다가 살아 있으면 1억원 이상을 가지고 30일짜리 휴가를 떠날 수 있다.
 
 
  소련에 이어 아프간의 늪에 빠진 미국
 
  소련이 ‘침략자의 무덤’으로 통하는 아프간을 침공한 것은 1979년이었다. 아프간 전사들 무자헤딘은 이길 수 있는 전투만 벌였다. 그들은 유리한 지형에 매복해 소련군을 기습했고 치명타를 입힌 후 썰물처럼 빠져나가 은신처로 사라졌다.
 
  미국은 50억 달러 이상의 무기와 물자를 무자헤딘에 제공하며 소련군이 더 많은 피를 흘리도록 부추겼다. 무자헤딘은 미국이 제공한 휴대용 열 추적 미사일로 소련의 전투용 헬리콥터를 800여 대나 격추시켰다. 종군기자들은 아프간을 ‘헬리콥터의 무덤’이라 불렀다.
 
  10년이나 긴 전쟁의 늪에 빠져 끝없이 병력과 장비만 소모되자 붉은 군대가 빠져나갈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소비에트연방의 야심은 아프간의 모래밭에서 무산되었다.
 
  12년 후, 그들은 소련군을 상대했던 같은 방법으로 미군을 피 흘리게 만들고 있다. 빈 라덴과 급진적 이슬람 선동가들이 소련군과 싸울 이슬람세계의 전사들을 모집해 훈련시킨 국제적인 조직은 알카에다로 변신했다. 그들 나름의 ‘성전(聖戰)’을 치를 상대만 바뀐 것이다.
 
  미군은 알카에다가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미군의 위치를 알고 있다. 알카에다는 언제나 밤에 공격해 온다. 그들은 기지를 점령했다가도 항공지원이 시작될 무렵이나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쯤이면 사라지고 없다. 그들은 항상 치고 빠지는 전술을 쓴다.
 
  미군은 기지 밖에서는 매복에 당하고 있다. 미군 수색대가 원격 폭파된 IED에 당하면 긴급구조요청을 하게 된다. 알카에다에 유리한 지형으로 날아든 구조용 헬기는 공격목표가 되어 RPG와 미사일에 당한다. 이런 경우 미군 지휘관은 또 다른 구조용 헬기를 보낼 것인가로 고심하게 된다. 이곳 아프간에서 미군 전사자는 1000명을 넘어섰다.
 
  알카에다는 무자헤딘의 1980년대 전술을 쓰고 있다. 소련군이 과거에 그랬듯 지금은 미군이 그들에게 지독하게 당하고 있다. 더구나 파키스탄은 알카에다의 활동을 지원하는 이중성마저 보이고 있다. 현지 기동부대원들은 자신들의 적이 누구이며, 대체 누구와 싸우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알카에다를 사냥하는 민간청부인들
 
  CIA 특수공작국은 9년째 빈 라덴과 그의 심복들을 추적하고 있다. 게리 슈런의 첫 작전 팀이 아프간으로 날아간 이후, CIA는 아직까지도 라덴과 조우하지 못했다. CIA는 라덴이 아프간 국경지대 호스트와 파키스탄 북부 산악지대 중간의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CIA의 비밀기동부대는 알카에다를 추적해 죽이는 것이 임무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에서 작전을 벌이고 있다. 알카에다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면 헬리콥터로 기습하거나 정밀유도무기인 헬파이어 미사일과 스마트 폭탄으로 공격한다.
 
  알카에다 조직원들은 위성전화로 교신한다. 기동부대는 이곳 중동지역 수라야(Thuraya) 위성전화를 ‘달빛(moonbeam)’이란 암호명으로 부른다. CIA 특수공작국은 국가안보국 NSA의 세계적인 도청망을 통해 위성전화를 도청한다.
 
  그들은 알카에다의 하부 ‘말단조직원’을 찾아내고 있다. 파악된 하부 조직원이 바로 윗선과 접선하려고 전화하면 모든 목소리는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CIA는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알카에다 조직원들의 음성과 신원을 파악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CIA는 이런 식으로 빈 라덴과 연결된 사람을 추적하고 있다.
 
  밤이 되면 하부 조직원이 수라야 전화기를 들고 신호가 잘 잡히는 들판으로 걸어 나간다. 그 시간 고공에 뜬 국가도청업체의 스파이위성은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한다. 수라야 통신위성의 교신이 도청되고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조직원이 누구와 전화하는지 알아낸다.
 
  신원과 좌표가 확인되면 기동부대가 특수작전항공단의 고속기동헬기를 타고 날아가 기습해 사냥한다. 기동부대의 청부인은 작전 중 붙잡혀도 정부기관은 모른다고 부인하게 된다.
 
  아프간을 넘어간 파키스탄 산악지대는 미국의 직접적인 힘이 미치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서는 존재도 없는 그림자 군인들이 미국의 은밀한 그림자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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