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 ‘오빠 대신 내가 배를 탔다면 살아 나올 수 있었다’는 말을 했어요”(강지은·세월호 희생 학생 어머니)
⊙ “트라우마는 ‘치료’나 ‘극복’이 아니라 ‘지속 관리’ 개념에 가까워”(안산마음건강센터 관계자)
⊙ “모든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딱 하나, 반복되지 않는 겁니다”(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
⊙ “골든타임 내에 정부가 명확한 진상 규명을 해야 재난을 정쟁 대상으로 끌고가는 것 막을 수 있어”(곽금주 서울대 명예교수)
⊙ 美 ‘제임스 자드로가法’, 9·11 생존자·소방관·경찰관·복구 요원·관련 시민들치료·보상 지원
⊙ “트라우마는 ‘치료’나 ‘극복’이 아니라 ‘지속 관리’ 개념에 가까워”(안산마음건강센터 관계자)
⊙ “모든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딱 하나, 반복되지 않는 겁니다”(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
⊙ “골든타임 내에 정부가 명확한 진상 규명을 해야 재난을 정쟁 대상으로 끌고가는 것 막을 수 있어”(곽금주 서울대 명예교수)
⊙ 美 ‘제임스 자드로가法’, 9·11 생존자·소방관·경찰관·복구 요원·관련 시민들치료·보상 지원

- 일러스트=조선 DB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극중 주인공 애순의 어머니인 광례가 죽기 전에 한 말이다. 그의 시어머니인 계옥 역시, 애순이 막내아들 동명을 바닷바람에 잃고 힘들어 하자 울먹이며 “살어라. 살아야지 어쩌겠니. 니 입만 처다보고 있는 산 자식이 또 둘이다. 살암시민 살아진다. 살민 살아져”라며 다독인다. 애순네가 막내아들을 잃은 후 극중에서는 누구도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대신 마을 주민들은 조용히 그들을 도우며 회복을 기원한다. 그렇게 애순네는 먼저 간 자녀를 마음에 품고 남은 두 자녀를 잘 키우며 이 세상을 살아 내고야 만다.
기자는 이번 취재를 하는 동안 취재원들로부터 “〈폭삭 속았수다〉를 봤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거꾸로 기자도 취재원들에게 그 드라마를 봤는지 묻기도 했다. 〈폭삭 속았수다〉를 통해 기자와 취재원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극중 자녀를 잃는 에피소드 때문일 것이다.
2010년 ‘3·26 천안함 피격사건’은 기자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어났고, 4년 뒤 고등학교 1학년 때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그 8년 뒤 2022년, 군 생활 도중에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이듬해 전역한 그다음 달에는 ‘해병대원 순직사건’, 작년에는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났다.
참사와 사건은 누군가의 귀한 가족의 일부를 한순간 데려간다. 또 참사·사건 현장에 구조·지원 등으로 투입된 이들은 트라우마와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고통 받는다. 사회적 참사와 사건을 겪은 모든 이들, 그리고 그런 극악의 환경에서 인명을 구하고자 노력한 이들의 삶은 그 후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언론이 사실상 2차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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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일 전 천안함장은 그날로 돌아간다면 “절대 배 밖으로 안 나왔다.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생존한 장병들의 명예라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 말했다. 사진=백재호 |
3·26호국보훈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최원일(崔元一·58·예비역 해군 대령) 당시 천안함장의 첫마디에 기자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천안함 피격 당일 끝까지 함장실에서 나오기를 거부하다 전우들에게 억지로 함장실에서 끌려 나왔다”고 했다. 최 전 함장은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절대 배 밖으로 안 나왔다.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생존한 장병들의 명예라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당시 사건을 두고 보수와 진보 언론 모두 모두 추측성 기사를 너무 많이 내보냈어요. ‘천안함이 자폭(自爆)했다’는 기사도 봤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왜 천안함이 피격당했고 왜 가라앉았는지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당시 우리 전우들이 울고 있는 모습, 환자복을 입고 있는 모습 등 자극적인 모습 위주로 언론이 노출시켰습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패잔병이 된 겁니다. 언론이 사실상 우리에게 2차 가해를 한 거죠.”
“군 사고 희생자는 보훈정책으로 위로해야”
천안함 생존자인 강대훈(37) 3·26호국보훈연구소 사무총장은 천안함 피격 이후에도 다시 바다로 나갈 만큼 강한 정신력을 가진 부사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선배 간부로부터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는 말을 듣는가 하면, 심지어 천안함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군 간부들을 보면서 군 생활에 회의감을 느껴 전역했다. 전역 후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이름까지 바꾸었다.
다른 생존 장병들의 소식을 조심스레 묻자 강 사무총장은 “대략 50명 중 절반가량은 아직도 그때에 멈춰 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단적인 예로 직장생활을 잘 이어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는 자신도 32살까지는 많이 방황했던 것 같다며 “사회를 원망도 했지만 상담도 받고 병원도 다니면서 많이 나아졌다. 전우들끼리 만나서 얘기하고 털어놓는 게 가장 좋은 위로”라고 했다.
“(천안함 피격 당시 함장님을 비롯해 승조원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피격사건 이후 명확하게 진상이 규명되었다면 이렇게 긴 세월을 표류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최원일 전 함장은 “군에서 큰 사고·사건을 겪은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보훈정책’”이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 자부심을 갖고 ‘타인이 부러워할 만큼의 복지’를 누리게 하는 게 진정한 보훈의 역할이자 우리 사회가 받은 충격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최 전 함장은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에도 군을 떠나지 않다가 지난 2021년에야 대령으로 전역했다. 처음에는 진급도 마다하며 군을 쉽게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떠나면 천안함을 탔던 남은 장병들을 지켜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천안함 이후 그의 군 생활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천안함 피격사건 후 1년간의 함장 기록〉 〈천안함 장병 체험수기 모음집〉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주요 인사 발언록 및 자료〉를 직접 기록하고 정리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제야 딸아이가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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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희생자 지상준 학생의 어머니인 강지은 씨는 “참사 후 어금니가 녹아내려 총 8개의 임플란트를 했다”고 했다. 사진=백재호 |
“나도 정말 평범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어요. 가족만 행복하고 안전하면 그게 다였죠. (세월호 참사 이후) 농성과 단식, 도보행진으로 3년을 보냈어요. 집도 가정도 없이 그렇게 살았죠. 정신을 차려 보니 그제야 딸아이가 보였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죽은) 상준이만 보였어요. 딸이 트라우마가 심하게 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뒤늦게 상담을 받고 관련 검사도 했는데 모든 수치가 최악으로 나왔어요.”
강 씨는 “딸이 ‘오빠 대신 내가 대신 갔어야 했다’ ‘차라리 내가 배를 탔다면 살아 나올 수 있었다’는 말을 했을 때, 뒤통수를 크게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면서 “그때부터 온 가족이 같이 상담도 받기 시작했고 약도 복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상 규명 활동을 해야 하는데, 약을 먹으면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겁니다. 결국 저는 약을 거부했었죠.”
강 씨는 세월호 참사 후 어금니가 녹아 내려 총 8개의 임플란트를 했다. 그는 “다른 유가족들도 (참사 후 건강이 안 좋아지는) 사례가 있다”고 했다. 그 역시 공황장애부터, 두통이 매우 심각해 진통제마저 듣지 않을 정도였다. MRI를 찍어도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우울증까지 겹쳐 신경쇠약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울화(鬱火)가 가슴에 있는 것 같다”며 코호트 연구(cohort study·특정 요인에 노출된 집단과 노출되지 않은 집단을 추적하고 연구 대상 질병의 발생률을 비교하여 요인과 질병 발생의 관계를 조사하는 연구 방법)에도 참여했다. 참사를 겪은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지속적인 트라우마(trauma) 치료’다. 하지만 강지은 씨는 “유가족들의 경우 완치될 때까지 치료를 받는 것을 국가로부터 보장받지 못했다”고 했다. 의료 지원 보장 시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2029년 4월 15일까지’(15년간) 치료를 보장하고 있다.
“트라우마 쉽게 치유되지 않아”
안산마음건강센터에 근무 중인 A씨는 “피해자들은 트라우마로 인한 공존질환(한 사람이 동시에 겪는 두 가지 이상의 질병이나 장애)을 대부분 갖고 있어 지속적인 치료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가 기한을 정해놓고 치료되거나 회복되는 게 아닌 평생 동안 가지고 살아가는 것으로 봅니다. 트라우마는 살아가는 동안 트리거(trigger·사건을 유발하는 계기)가 생기면 언제든지 심리·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정 기간을 두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언제 어떻게 증상이 발현될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지속적인 관리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A씨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피해자들은 개개인마다 애도 과정이나 회복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별 상황에 맞춰서 심리지원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후 11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힘들어하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다. 대부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수면장애, 우울감, 공황장애 등 심리적 증상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연령대에 비해 신체건강도 상당히 나빠져 있다. 심리가 불안하고 안정적일 수 없기에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심리치료의 중요성과 지속성을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는 총 304명이지만 직계가족까지 포함하면 1000여 명의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세월호 피해자 중) 고위험 대상자는 전체의 1~3% 정도입니다. 고위험 대상자는 항상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 언제든지 고위험 대상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고위험 대상자들 역시 언제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가장 걱정이 많이 되는 분들 중에는 희생자의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희생자의 어머니들은 아버지들보다 외부 활동이나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버지들은 가장이라는 이유로 힘든 것을 표현하지 않고 참는 경우가 많아 더 걱정이 됩니다.”
“아버지이고 가장이니까”
“이태원 참사 이후에 정말 울면서 일을 했어요. 난 여전히 아버지이고 또 가장이니까.”
유형우(55) 씨는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1남 3녀의 아버지인 그는 이태원 참사로 둘째 딸(유연주)을 잃었다. 그는 “항상 연주가 함께한다고 생각한다”며 “천주교인이어서 참사 후 스스로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며 버텼다”고 했다. 그를 포함한 온 가족이 심리상담을 받았다.
“심리상담을 받았지만 공허함, 뭔가 뻥 뚫려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상담자가 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다행히 큰딸은 심리상담을 받으며 스스로 극복하고자 많이 노력하는 것 같아 안도했지만, 막내아들이 친한 친구와 술을 마시다 (연주) 누나가 생각나 엉엉 울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어요.”
유 씨는 “6개월 정도는 연주 사진을 쳐다보지 못했다”고 했다.
“너무 트라우마가 컸어요. 아이 얼굴만 봐도 모든 게 무너지는 심정이었습니다. 성당을 다니며 어떻게든 괜찮아지기 위해 악을 썼습니다. 그러다 딸아이가 왜 이렇게 갔는지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0·29유가족협의회 부위원장으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참사와 관련된 책임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과 유가족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이들을 더 힘들게 했다. 작년 11월 24일 당시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에게 발송된 북한 지령문이 보도됐다. 해당 지령문에는 ‘이번 특대형 참사를 계기로 사회 내부에 2014년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투쟁과 같은 정세 국면을 조성하는 데 중심을 두고 각계각층의 분노를 최대로 분출시키기 위한 조직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으면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런 보도가 나오자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반(反)국가세력이기라도 한 양 비판하는 이들이 나왔다.
“나는 내 딸이 왜 그렇게 갔는지 알고 싶다는 것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보고 반국가세력이라고 합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그렇게 간첩도 되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존재가 된 겁니다. 우리 유가족들은 정말 평범한 가족들이 전부입니다. 하루아침에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저희는 정확한 진상 규명을 원합니다. 그것 딱 하나가 원하는 것 전부입니다.”
“진상 규명 없는 심리치료는 빈 껍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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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현 4·16재단 사무처장은 “진상 규명이라는 ‘사회적 치유’ 없이 단순 심리상담 등이 얼마나 유가족들의 상처를 봉합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진=백재호 |
“부모의 입장에서 참사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남은 자들이 희생자와 한 약속입니다. 하루아침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는데 그 이유와 배경을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죄책감에서 끝내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참사 발생 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사과하고,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과정이 진상 규명인데, 이러한 과정 없이 단순 치료를 권하면서도 결국 지속적인 지원은 어렵다는 식의 접근은 잘못된 것입니다. 진상 규명이라는 ‘사회적 치유’ 없는 단순 심리상담 등이 유가족들의 상처를 얼마나 봉합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하지만 국민들은 ‘참사 후 진상 규명이 충분했다’는 평가와 동시에 ‘피로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아직도 진상 규명을 외친다는 것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세월호 참사 같은 경우 아직도 마땅한 결론은 없습니다. 참사 원인에 대해 ‘열린 결말’로 끝이 났으니까요. 사실상 유가족들은 여전히 모든 게 의문인 겁니다. 참사 이후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내 아이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여전히 납득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태원 참사 역시 비슷한 상황이고요.”
박 처장은 “그들은 똑같은 참사·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서 “시간이 꽤 지난 만큼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다른 재난·참사를 겪은 분들에게 ‘참사 이후’의 삶에 대해 제언(提言)하고, 참사를 겪지 않은 시민들에게는 안전한 사회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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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아카시시 참사 피해자 유족 시모무라 세이지 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 2023년 3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재난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모든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항상 요구하지만, 대부분 언론에서는 ‘배상·보상금’에 초점을 맞췄어요. 유가족들의 요구가 왜곡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겁니다. ‘유가족의 언어’를 진정으로 이해해 줄 사람은 결국 유·피해가족 공동체와 본인인 거죠. 그런 이유로 유족들이 전면적인 제언 활동에 나서는 거고요. 30년 전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미안해 했어요. 본인들이 더 열심히 싸웠다면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역시 이태원 참사를 똑같은 심정으로 바라보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안전은 희생을 먹고 자란다”
원인이나 모습은 달랐지만, 기자가 만난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안전은 희생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었다.
최원일 전 함장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 있었기에 해군 작전과 임무에 변화를 줄 수 있었다. 더 ‘강해진 천안함’으로 돌아오지 않았느냐”고 했다. 새 천안함은 2023년 2월 23일 서해 2함대에 실전 배치됐다. 배수량 2800톤으로 구형(1000t)보다 함급이 격상됐다. 선체고정음탐기(HMS·수중 음파를 이용하여 잠수함이나 기뢰 등을 탐지하는 장비)는 물론 예인선배열음탐기(TASS·대잠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이동형 수중조기경보 체계)도 탑재해 원거리에서도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다.
강지은 씨도 “세월호 참사 후 과적(過積) 방지 강화, 선령(船齡) 기준 단축 등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유형우 씨 역시 “이태원 참사 이후 지방자치단체와 국민 모두 인구 밀집 지역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들은 “정말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 반복적인 참사를 막아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유해정(庾海貞·50)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세월호참사특별법)’은 국내에서 최초로 재난 피해자의 범주를 크게 확장한 초석(礎石)과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피해자의 권리가 법적으로 명시되지 많았지만, 세월호참사특별법 제정 후 10·29이태원참사특별법, 12·3무안공항제주항공참사특별법에서는 피해자들의 권리가 총 8개 조항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와 유가족들이 참사를 바라보는 ‘간극’을 줄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참사를 비롯한 각종 재난과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일어날 뻔한 또 다른 사회적 참사를 예방한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비록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더욱 안전한 사회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유가족들이 외치는 ‘진상 규명’ 역시 우리 사회와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수준 간에 격차는 분명 존재하지만 점차 좁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진상 규명은 세월호 참사 때 처음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해요. 그 긴 세월을 보내는 과정에서 국민들과 정부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참사를 대하는 자세를 ‘경험’한 겁니다.”
“약해 보일까 봐 상담 기피하기도”
유해정 센터장은 “사건·사회적 참사를 바라볼 때 단순 희생자와 피해자들뿐 아니라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경찰관과 언론인 등 ‘재난을 경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소방관, 경찰관, 언론인들의 고충은 그들이 속한 집단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관련 직군 차원에서 관계자들의 심리건강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지원할 수 있는 ‘재난경험자관리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재난 시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도 그런 필요성에 동감한다. 작년 12월 29일 무안공항 참사에 투입됐던 무안소방서 소방관 B씨의 증언이다.
“현장에서 유가족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이후 현장에 열흘 정도 있었는데 유가족들을 보니 저도 눈물이 절로 났습니다. 날씨도 유독 많이 추웠고요. 동료 소방관들 중에도 힘들어 하는 분이 꽤 있었습니다. 소방의 경우 심리상담 지원 제도가 잘돼 있는 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소통하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거나 운동으로 극복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무안소방서 소방관들은 무안공항 참사 현장 수습 후 소방서 인근에 위치한 사찰에서 진행하는 심리안정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B씨는 “(참사 당일 투입된) 동료 소방관들이 꽤 좋아했고,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많았다”면서도 “심리치료를 받는 게 소방관으로서 약해 보일까 기피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방관들은 연간 한 번씩 심리상담을 받는 것이 ‘의무’다. 하지만 B씨는 “의무적으로 받는 심리상담 외 추가 심리상담을 적극적으로 받는 경우는 비교적 적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심리상담은 상황에 따라, 개인별로 편차가 있습니다. 상담을 5분 만에 끝내는 사람이 있고, 2시간 넘게 상담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필요에 따라 받는 게 가장 바람직하겠죠. 필요한 사람에게는 정말 효과적인 제도입니다. 또 외부에서 전문 심리상담사가 고용되어 소방관들의 심리건강을 관리하는 만큼 개인정보 노출 위험도 없어요.”
경찰 마음동행센터
경찰의 경우는 어떨까? 경찰청 복지정책담당관실 C씨는 “경찰청에서는 외부 업체(㈜휴노·국내 최대 심리서비스 기업)의 전문 심리상담사를 채용해 경찰들의 심리건강을 돕고 있다”며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민원인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아 폭언과 욕설, 위협 등 다양한 상황에 놓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과정이 유튜브, 트위터 등 SNS로 촬영되고 공개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경우도 잦지만 업무 상 티를 잘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겁니다.”
송지연(宋智蓮·46) 경찰병원 마음동행센터 심리상담사는 “경찰·소방관들은 기본적으로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극악의 상황을 자주 접하는 직업들입니다. 심리적 안정과 관리가 가장 필요한 직업군이지만 심리상담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나약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심리상담을 받는다고 나약하다 할 순 없습니다. 오히려 본인이 처한 상황을 자각하고 치료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이죠. 중요한 건 접근성이라고 봅니다.”
현재 경찰 마음동행센터는 총 18곳. 서울에는 경찰병원과 보라매병원 총 2곳이 있고, 경기도는 남부(아주대병원)와 북부(한양대명지병원) 각 1곳, 나머지는 광역시·도별 1곳씩에 불과하다. 지역 경찰관 D씨는 “상담을 받고 싶어도 (마음동행)센터가 너무 멀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근무를 끝내고 가야 하는데, 무리가 있습니다. 비교적 규모가 큰 경찰서가 아닌 지구대·파출소의 경우 누군가 상담을 받기 위해 휴가를 내거나 자리를 비우면 당장 인력이 부족해집니다. 업무적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는 내 행동 자체가 주변 동료에게 부담을 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분명히 하게 될 겁니다. 차라리 각 구청에 경찰 심리상담 지원 인력을 배치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상담사 1명이 1년에 경찰관 525명·1061건 담당
송지연 상담사는 “마음동행센터 시스템 자체는 잘 운영되고 있다. ‘찾아가는 상담’ 등 자체적인 심리상담 활동도 상담가들이 펼치고 있다”면서도 “어떻게 하면 더 확장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 말했다.
경찰 마음동행센터 심리상담사는 작년 기준 총 36명이다. 작년 한 해 센터 이용(1만 8912명·3만 8199건) 기준으로 단순계산하면 상담사 1명이 1년에 평균 경찰관 525명·1061건을 담당하는 상황이다.
국가경찰위원회는 ‘제3차 경찰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증진 기본계획’을 통해 현재 전국 18개소에 운영되는 마음동행센터를 전국 시·도별 2개소까지 증설하고, 평균 2명인 1개소당 상담 인력을 3명 수준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지만, 예산 문제로 구체적인 시기를 확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경찰청은 장기적으로 경찰에 특화한 심리치료 체계 마련을 위해 ‘의료·연구 복합센터’ 민간투자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복합센터는 경찰병원 내에 트라우마치유센터와 심리검사실, 심리안정실 및 힐링공간, 교육 및 집단프로그램실, 상담실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천안함 폭침,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은 사건 발생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곽금주(郭錦珠·66)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큰 국가적 재난 혹은 참사 후 골든타임(golden time) 내에 정부가 명확한 진상 규명을 해야 재난이나 참사를 정쟁(政爭)의 대상으로 끌고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명확한 진상 규명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큰 사건 후 ‘검증되지 않은 정보’, 소위 ‘카더라’식 정보가 쉽게 유통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확증편향(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가설과 일치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으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과 유가족들을 향한 공격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책임자들의 ‘방어기제’가 너무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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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사회는 ‘내 탓이 아닌 네 탓’을 하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국민들은 이런 과정에서 심리적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참사가 일어난 후 다소 시간이 지나면 해당 사건을 더 이상 ‘슬픔과 애도’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곡되는 경우가 많아요. 대한민국 사회는 대부분의 사건을 ‘정쟁의 문제’로 끌고갑니다. 그러다 보면 국민들도 자연히 처음과 달리 사회적 참사를 정치의 영역으로 생각하게 되죠. 물론 이런 경우는 외국도 비슷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곽 교수는 ‘참사 관계자들의 책임 있는 사과’를 강조한다.
“‘책임지지 않는다’고 인식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대한민국 사회는 책임자들의 ‘방어기제’가 너무 강합니다. ‘내 탓이 아닌 네 탓’을 하는 경우가 너무 흔해요. 국민들은 이런 과정에서 또 심리적 피로감을 느끼는 거죠. 대한민국 사회는 다양한 참사를 겪어 왔어요. ‘참사 트라우마’가 이미 충분히 큽니다. 참사 후 언론과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목격했죠. 그러면서 국민들 다수가 참사나 국가적 재난이 일어나도 ‘결국 이번 사건도 이전 사건과 비슷하게 흘러가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사 후 국가의 교통정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美, 9·11 관련자 사실상 종신 지원
곽금주 교수는 국가적 재난·참사를 겪은 피해자와 경험자를 대우하는 모범 사례로 미국의 ‘제임스 자드로가법(James Zadroga 9/11 Health and Compensation Act)’을 꼽는다.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원래는 핵무기나 미사일이 떨어진 지점을 의미하며, 9·11 당시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 자리) 생존자, 활동한 소방관·경찰관·복구 요원, 관련 시민들의 건강 피해 치료와 보상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법의 이름은 뉴욕시 경찰관 제임스 자드로가에게서 따왔다. 그는 9·11 복구작업에 투입되었다가 호흡기 질환 등 건강 문제로 사망했다. 이 법은 미 연방정부가 그의 사망 원인을 9·11과 직접 연관된 것으로 공식 인정한 첫 사례였다. 법의 핵심은 9·11 관련 질병(암, 호흡기 질환, PTSD 등)과 연관성이 인정될 경우 치료를 지원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과 2019년 두 차례 개정을 통해 보상 청구 기한을 2090년 10월 1일까지 연장했다. 사실상 무기한에 가깝다. 그렇게 제임스 자드로가법은 ‘We will never forget(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9·11 슬로건을 상징한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맨해튼은 9·11 테러의 아픔이 있지만, 그 누구도 맨해튼을 ‘죽음의 도시’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큰 재난 후 사회를 바꾸는 건 결국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단순히 유가족들의 역할이 아니죠.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갈 사회를 만들고 공존하기 위해서 ‘안전’이라는 큰 공동 과제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유가족들 그 누구도 참사 현장으로 해당 지역이 어둡게 그려지는 것을 원하는 분은 없을 겁니다. 지금은 다소 어두울 수 있지만 어떻게든 빛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 그게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모습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