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못 저지른 기업에 대한 비판 여론 업은 엄격한 규제는 멀쩡한 기업의 피해로 이어져
⊙ 책임은 잘못에 비례해야 하고, 예측 가능해야
⊙ 분노로 달궈진 여론의 칼날이 지극히 날카로울 때, 이를 제어하는 게 법치
李承玟
1977년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법과대학원 법학 박사(행정법), 미국 하버드 로스쿨 법학석사(LLM) / 변호사, 現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책임은 잘못에 비례해야 하고, 예측 가능해야
⊙ 분노로 달궈진 여론의 칼날이 지극히 날카로울 때, 이를 제어하는 게 법치
李承玟
1977년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법과대학원 법학 박사(행정법), 미국 하버드 로스쿨 법학석사(LLM) / 변호사, 現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2020년 11월 24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는 99인의 산재 사망 노동자의 영정을 앞세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집회가 열렸다. 사진=조선DB
잘못을 저지른 기업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의 사회적 영향이 클수록 그 잘못에 대한 비난의 정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업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국내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고, 디지털 플랫폼, 인공지능 등 다양한 혁신 기술과 서비스로 이용자의 편익이 크게 증대되었다는 점까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을 향한 비판은 기업이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과의 균형 속에서 이루어질 때 그 정당성이 더 강화될 수 있다.
과잉입법의 부담은 멀쩡한 기업이 지게 돼
이 대목에서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여론의 불같은 성화야 어쩔 수 없다지만,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권이 여론의 파고(波高) 앞에 경쟁하듯 응징에 나서고 여러 행정기관과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도 여기에 앞다투어 동조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조그마한 구실이라도 놓치지 않고 일제히 나서 중첩적으로 수사하고 조사하며, 여론과 권력은 서로 상승작용을 하여 마치 해당 기업들의 해체를 바라는 것처럼 난도질을 한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위법과 책임을 따지기보다, 얼마나 더 강하게 다그치고 혼냈는지가 정치적 성과로 평가되는 분위기마저 발견된다.
게다가 이러한 폭풍이 지나간 뒷자리는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의 신설로 채워지기 쉽다. 규제에 수반하는 비용, 특히 규제 도입으로 인한 사회 전체의 기회비용과 규제로 달성되는 편익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 규제는 과잉이다. 그리고 규제 비용과 편익을 면밀하게 저울질하지 않고 급박하게 이루어진 규제에 따른 부담은 정작 잘못한 기업이 아닌 그보다 다수의 멀쩡한 기업들이 지게 된다.
이런 식의 과잉입법은 역사적으로도 드문 일이 아니었던지, 일찍이 근현대 프랑스 공법학의 선구자인 모리스 오리우(Maurice Hauriou)도 “충동이나 기세에 취약한 의회가 ‘선거적 열정(des passions e´lectorales)’에 의해 입법을 남발하는 것이 합리적 법치(法治)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서에 치중한 입법은 일시적인 분노 해소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을 확대시켜 투자와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 이는 결국 일자리와 국가 경쟁력의 문제로 환원된다.
법치는 응징과 보복의 극대화 아니다
2024년 2월 14일 열린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결의대회’. 중소기업인 40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조선DB책임이 잘못에 비례해야 한다는 것은 근대 법치국가의 기본 원리이다. 법치는 응징과 보복의 극대화가 아니며, 여론재판은 사법(司法)이 아니다.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평가하는 것은 역사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치에서도 중요하다. 잘못을 했더라도 억울한 누명은 경계해야 하고 절차는 정당해야 한다. 이를 통해 특정 집단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되어 총의(總意)를 왜곡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우리 헌법에서 도출되는 행정법의 불문(不文) 원리인 비례 원칙과 평등 원칙이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될 필요가 있다.
비례 원칙은 국가의 행정작용이 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고, 그 정도가 필요한 범위를 넘어 과도해서는 안 되며, 달성하려는 공익(公益)과 침해되는 사익(私益)이 균형을 이룰 것을 요한다. 그러므로 잘못에 대해 제재(制裁)하더라도 그 정도와 범위는 잘못에 상응해야 한다.
평등 원칙은 동일·유사한 대상에 대해 합리적 이유 없는 자의적(恣意的) 차별을 금지한다. 그러므로 어떤 기업이 여론의 주목을 받거나 이미지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기업들에 비해 더 강한 제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해진 법적 기준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때로는 휘발적(揮發的)이기도 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책임의 무게가 달라진다면, 법은 예측 가능성을 상실하고 누구도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가늠할 수 없게 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 형전육조(刑典六條)에 이런 말이 나온다.
“감옥에 처단하는 것의 요체는 명백하고 신중함에 있을 따름이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목민관의 한 번 생각함에 달려 있으니 어찌 명백하게 하지 않을 것이며,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목민관의 한 번 살핌에 달려 있으니 어찌 신중하게 하지 않을 것인가.”
근대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의 한 내용인 적정성(適正性)의 원리와 헌법상의 비례 원칙은 이처럼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지혜이기도 하였다.
징벌의 정밀함 필요
여론은 민주 사회의 근간이며 공권력의 남용에 대한 핵심적인 감시 장치이지만, 법치 그 자체는 아니다. 법은 사회질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한 핵심 제도인데, 그러한 법이 여론의 속도와 온도를 추종하기만 한다면 사회 질서가 유지되기 어렵다. 분노로 달궈진 여론의 칼날이 지극히 날카로울 때, 법치는 이를 제어하고 그 선을 분명히 함으로써 여론의 칼날을 다시 벼려 궁극적으로는 여론의 사회 형성적 기능을 유지해 준다. 그러나 스치기만 해도 베일 듯 날카로운 여론 앞에 법치의 정도(正道)를 지키는 인내와 절제는 늘 어렵다. 감정 섞인 분노로 단죄(斷罪)하지 않고 오판(誤判)을 경계하면서 징벌의 정밀함을 기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