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는 ‘인간의 뇌를 대신해 생각하고 판단해 주는 기계’를 소유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것
⊙ 미국 1조5000억 달러, 중국 1조 위안(1370억 달러), 이재명 100조원 AI에 투자
⊙ 인류 문명사는 ‘외부화의 역사’
⊙ 증기기관은 물리적 힘을 대량 생산, 인터넷은 정보를 대량 유통, 생성기계는 지식·지혜·판단을 대량 생산
⊙ 생성기계의 특성은 예측 불가능과 파트너성
유영진
1966년생. 서울대 경영학 학사 및 석사, 미국 메릴랜드대 경영정보학 박사 /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교수, 템플대 교수, 클리블랜드 유니버시티 호스피털(University Hospitals) 최고혁신설계책임자(Chief Innovation Architect) 역임. 現 런던정경대(LSE) 경영학과 교수, LSE 평생교육 디지털 프로그램 학술책임자, 굿이어타이어(Goodyear Tire)·펜스키(Penske)·셔윈윌리엄스(Sherwin Williams)·프로그레시브 보험(Progressive Insurance)·키뱅크(Key Bank) 등 미국 기업 디지털 전략 자문, 삼성전자 디자인센터·삼성경제연구소 자문
⊙ 미국 1조5000억 달러, 중국 1조 위안(1370억 달러), 이재명 100조원 AI에 투자
⊙ 인류 문명사는 ‘외부화의 역사’
⊙ 증기기관은 물리적 힘을 대량 생산, 인터넷은 정보를 대량 유통, 생성기계는 지식·지혜·판단을 대량 생산
⊙ 생성기계의 특성은 예측 불가능과 파트너성
유영진
1966년생. 서울대 경영학 학사 및 석사, 미국 메릴랜드대 경영정보학 박사 /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교수, 템플대 교수, 클리블랜드 유니버시티 호스피털(University Hospitals) 최고혁신설계책임자(Chief Innovation Architect) 역임. 現 런던정경대(LSE) 경영학과 교수, LSE 평생교육 디지털 프로그램 학술책임자, 굿이어타이어(Goodyear Tire)·펜스키(Penske)·셔윈윌리엄스(Sherwin Williams)·프로그레시브 보험(Progressive Insurance)·키뱅크(Key Bank) 등 미국 기업 디지털 전략 자문, 삼성전자 디자인센터·삼성경제연구소 자문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1월 21일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배석한 가운데 ‘역사상 최대의 AI 인프라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스타게이트’ 설립을 발표했다. 사진=AFP/뉴스1
7월 펜실베이니아에서 트럼프는 다시 무대에 섰다. 이번엔 920억 달러 추가 투자 발표였다. 블랙스톤(Blackstone), 구글(Google), 퍼스트에너지(FirstEnergy),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가 동참했다. “미국을 AI의 명백한 세계 리더로 만들 것”이라고 트럼프는 강조했다.
이미 엔비디아(Nvidia)의 CEO 젠슨 황이 미국 내 AI 칩 제조에 투자하겠다고 공언한 5000억 달러에, IBM이 약속한 1500억 달러 투자를 모두 합하면 무려 1조5000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액수다. 이 중 IBM의 300억 달러 이상은 양자(量子) 컴퓨팅과 메인프레임 R&D에 투입된다.
‘제2의 스푸트니크 충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5년 2월 17일 량원펑(왼쪽에서 둘째) 딥시크 창업자 등을 접견했다. 사진=CCTV태평양 건너편은 어떤가. 2025년 1월 20일, 중국의 무명(無名)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R1 모델을 공개하며 세상을 뒤흔들었다. 일주일 만인 1월 27일 미국 앱스토어 1위에 올랐고, 월스트리트는 패닉에 빠졌다. 항저우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High-Flyer)의 자회사다. 창업한 지 겨우 2년. 직원은 200명. 그들이 개발한 AI 모델 R1이 오픈AI의 o1과 대등한 성능을 보였다. 충격을 준 것은 단순히 성능뿐만이 아니었다. 공식 총 개발비가 고작 6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오픈AI는 수억 달러를 썼다. 딥시크는 미국 칩 수출 규제로 최신 GPU를 쓸 수 없었다. 구형 엔비디아 H800칩 2000개로 만들었다. 오픈AI는 H100칩 1만6000개 이상을 썼다.
테슬라(Tesla) 출신 AI 과학자 안드레 카파시(Andrej Karpathy)는 딥시크의 예산을 “농담 수준(a joke of a budget)”이라고 평가했다. 경멸이 아니라 경탄으로. 벤처 투자자 마크 앤드레센(Marc Andreessen)은 “내가 본 가장 놀랍고 인상적인 돌파구 중 하나”라고 했다.
이를 본 월스트리트는 패닉에 빠졌다. 1월 27일 하루, 엔비디아의 주가는 17%나 폭락했다. 1조 달러가 증발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도 급락했다. 왜? AI에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언론은 ‘제2의 스푸트니크 충격’이라는 표현을 썼다.
중국 정부는 즉각 움직였다. 2월, 국영 기업 CEO들과의 회동을 가졌고 시진핑 주석이 직접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을 최전방 자리에 앉혔다. 이례적인 대우가 아닐 수 없다. 정책 또한 바로 뒤따랐다. 중국은행은 ‘AI 산업 발전 행동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5년간 1조 위안(1370억 달러)을 쏟아붓는다고 한다.
AI 3대 강국의 목표를 천명한 이재명 정부도 이에 질세라 100조원 규모 AI 펀드 조성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엔비디아로부터 최신 블랙웰(Blackwell) GPU 25만 장을 공급받기로 약속을 받았다.
미국, 중국, 한국만 합해도 전 세계적으로 2조 달러가 넘는 돈이 AI에 몰리고 있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외부화’의 역사
왜 이들은 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 일어나고 있는 AI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신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라는 관점에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단순한 기술 업그레이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 문명사 변혁의 중심에 서 있고, 그 중심에는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기계가 자리를 잡고 있다.
1. 첫 번째 혁명:근육을 외부화하다(물리기계)
제임스 와트가 만든 증기기관.이 거대한 흐름을 이해하려면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인류 문명사는 한마디로 ‘인간 기능의 외부화(externalization)’ 과정이었다. 인간은 나약하다. 사자보다 느리고, 곰보다 약하며, 기억력은 유한하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신체 기능을 도구로, 기계로 끊임없이 끄집어내어 확장해 왔다.
우리는 지금까지 두 번의 거대한 ‘외부화 혁명’을 겪었고, 지금 세 번째 혁명의 한복판에 서 있다.
18세기 말, 영국 랭커셔의 면직물 공장에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인류가 쓸 수 있는 에너지원은 제한적이었다. 인간의 근육, 말의 다리, 물레방아의 회전, 풍차의 날개. 모두 자연의 리듬에 종속되어 있었다. 증기기관은 이 한계를 결정적으로 깼다. 인간과 동물의 운동에너지(kinetic energy)를 화석 연료로 대체했다.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고 돌아갔다. 힘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나는 이를 ‘물리기계’라고 부른다. 자연에 있는 에너지를 물리적인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물리적 기계의 핵심적인 역할이다.
이것은 ‘근육의 외부화’였다. 화석 연료라는 강력한 에너지를 먹은 기계는 24시간, 365일 지치지 않고 물건을 찍어냈다. 이 물리기계는 공장을 만들었고, 철도를 깔았으며, 거대 기업을 탄생시켰다. 이때 가장 강력한 물리적 동력을 확보한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대 경영학의 탄생
물리기계 등장의 결과는 단순히 생산량이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완전히 새로운 사회 구조가 탄생했다. 공장이 생겼고 도시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철도가 대륙을 연결했고 전신이 메시지를 순식간에 전달했다. 이와 같은 기술의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 나타났다.
미국의 역사학자 알프레드 챈들러가 그의 명저 《보이는 손(The Visible Hand)》에서 기록했듯, 이런 물리적 기계를 바탕으로 19세기 후반 거대 기업이 탄생했다.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카네기 스틸(Carnegie Steel),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이들은 수직 통합을 감행했다. 원자재 채굴부터 제품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의 조직 안에 넣었다.
이것은 물리적 기계의 효율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철도와 전신이 보완 기술로 등장하면서 가능했다. 본사에서 전국의 공장과 창고를 실시간으로 조종할 수 있었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기업의 ‘보이는 손’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일하는 방식도 완전히 바뀌었다. 농장에서 공장으로, 장인(匠人)의 작업장에서 조립 라인으로 바뀌었고,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던 리듬에서 공장 기계의 리듬을 따라서 24시간 3개 조로 나눠서 계속 돌아가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조직은 점차 거대해졌고, 이런 거대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서 프레데릭 테일러(Frederick Taylor)의 과학적 관리가 등장했고 헨리 포드(Henry Ford)의 조립 라인이 등장했다. 노동자는 더 이상 장인이 아니라, 표준화된 작업을 반복하는 부품이 되었다. 하지만 생산성은 폭발했다. 현대 경영학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것이 ‘물리기계의 시대’였다. 핵심은 에너지의 전환이었다. 동물과 인간의 운동에너지에서 화석 연료의 열역학에너지로. 이 전환이 모든 것을 바꿨다. ‘물리기계의 시대’에는 가장 강력한 열역학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전 세계를 지배했다. 물리기계의 축이 초기의 증기기관에서 화석 연료로 그리고 다시 인류가 발명한 가장 강력한 열역학에너지인 핵으로 옮겨가자, 전 세계의 힘의 중심은 그 핵을 가지고 있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런 새로운 열역학에너지의 등장을 알리는 시발점이었다.
2. 두 번째 혁명:신경망을 외부화하다(스마트기계)
최초의 범용 전자 컴퓨터 애니악. 사진=퍼블릭 도메인1945년,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대학. 세계 최초의 범용(汎用) 전자 컴퓨터 애니악(ENIAC)이 가동되었다. 1만8000개의 진공관(眞空管)이 빛났다.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애드박(EDVAC) 보고서에서 제시한 구조가 표준이 되었다.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메모리에 저장하고, 중앙처리장치가 순차적으로 처리한다. 이 구조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클로드 섀넌이렇게 디지털 혁명이 시작되었다. 물리적 기계가 자연의 에너지를 생산을 위한 운동에너지로 바꾸었다면, 스마트기계는 비트의 이동으로 엔트로피의 감소, 즉 불확실성의 제거를 목적으로 한다. 정보가 바로 에너지였다.
이것은 ‘신경망의 외부화’였다. 인터넷은 지구 전체를 감싸는 신경망이 되었다. 정보는 빛의 속도로 흘렀고, 지구 반대편의 공장을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스마트기계 혁명을 주도한 미국이 20세기의 패권(覇權)을 거머쥐었다. 정보가 곧 힘이었기 때문이다.
자동화와 정보화
하버드 경영대 쇼샤나 쥬보프(Shoshana Zuboff)가 1988년 《스마트 머신 시대(In the Age of the Smart Machine)》에서 통찰했듯,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
첫 번째는 자동화(automate)다. 인간이 하던 반복적 정보 처리 작업을 대신 빠르게 할 수 있었다. 공장에서는 컴퓨터가 조종하는 기계가 조립을 하고, 은행에서는 현금자동출납기가 출납원을 대신했다.
두 번째, 더 중요한 것은 정보화(informa te)였다. 모든 작업이 데이터로 기록되었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했는지. 이 데이터를 분석하면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데이터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전 세계 어느 곳과도 연결이 가능해졌다.
이와 같은 스마트기계의 등장으로 새로운 형태의 작업과 조직이 등장했다. 지식 노동자가 핵심이 되었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명명했듯, 이들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공급망이 글로벌화되었다. 나이키(Nike)는 디자인만 하고 제조는 아시아에 맡겼다. 델(Dell)은 부품을 전 세계에서 조달해 주문 즉시 조립했다. 시스코(Cisco)는 물리적 자산을 거의 갖지 않고 네트워크만으로 거대 기업이 되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전 세계를 연결하는 정보망인 인터넷이 가능하게 했다. 정보는 빛의 속도로 흘렀고, 조정 비용이 극적으로 낮아졌다. 거대 기업 속에서 정보 전달과 조정을 담당하던 중간관리자의 자리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역할은 ERP와 이메일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노조의 힘은 약해졌고, 공장이 전 세계로 흩어졌다. 선진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줄고, 서비스업과 지식 산업이 커졌다.
스마트기계의 시대. 이때의 핵심 역시 에너지의 전환이었다. 열역학에너지에서 비트의 이동으로 표현되는 정보의 에너지로의 전환은 전 세계의 경제를 재구성했다. 스마트기계의 등장은 물리적 기계의 퇴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스마트기계는 물리적 기계 위에서 움직인다. 이런 스마트기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계가 21세기 들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3. 세 번째 혁명:대뇌피질을 외부화하다(생성기계)
2022년 11월, 챗지피티(ChatGPT)의 등장은 이 마지막 성역(聖域)이 무너졌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생성기계(generative machine)는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다. 이것은 ‘대뇌피질의 외부화’다.
생성기계는 수천 차원의 벡터 공간(vector space)을 만들어 ‘의미’를 수학적 좌표로 변환한다. ‘사과’라는 단어를 들으면 기계는 ‘빨강’ ‘달콤함’ ‘뉴턴’ ‘아이폰’ 등 수만 가지 연관 개념과의 거리를 계산한다. 그리고 문맥에 따라 가장 적절한 의미를 찾아낸다. 과거 인간의 뇌 속 시냅스에서만 일어나던 고도의 인지(認知) 작용이, 이제 데이터센터의 실리콘 칩 위에서 일어난다.
섀넌이 1948년 정보 이론을 만들면서 의도적으로 제거한 것이 ‘의미(semantics)’였다. 그는 “메시지가 흔히 의미를 가지지만, 이러한 의미론적 측면은 공학 문제와 무관하다”고 선언했다. 컴퓨터는 그래서 구문기계로 출발했다. 0과 1의 나열. 의미 없는 비트의 이동. 하지만 생성기계는 이 금기를 깼다. 벡터를 통해 의미를 다시 가져왔다. 구문기계가 은근슬쩍 의미기계(semantic machine)로 변신한 것이다.
이것을 나는 ‘의미의 공업화(industrialization of meaning)’라고 부른다. 증기기관이 물리적 힘을 대량 생산했고, 인터넷이 정보를 대량 유통했다면, 생성기계는 ‘지식과 지혜, 그리고 판단’을 대량 생산한다. 이제 누구나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plication Program Interface·API) 호출 한 번으로 셰익스피어 수준의 문장을, 최고참 엔지니어 수준의 코드를, 노련한 변호사 수준의 논리를 소유할 수 있다. ‘비체화(非體化)된 지식(disembodied knowledge)’이 전기에너지처럼 흐르는 세상이 된 것이다.
블랙박스와 파트너: 새로운 기계의 두 얼굴
이렇게 뇌 밖으로 튀어나온 인공지능은 기존의 기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예측 불가능성
첫째, 예측 불가능성(unknowability)이다.
기존 컴퓨터는 입력(入力)이 같으면 출력(出力)도 같았다. 엑셀에 같은 숫자를 넣으면 항상 같은 합계가 나온다. 하지만 생성기계는 유기체(有機體·organic life)처럼 작동한다.
내가 동료들과 함께 연구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사례를 보자. 이 회사는 2010년대 중반부터 자율 설계 자동화(autonomous design automation) 도구를 칩 설계에 도입했다. 초기에는 제한적으로만 썼다. 그런데 이 도구가 만든 회로(回路) 배치는 엔지니어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디자인이었다. 전통적인 설계 원칙을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효율적이었다. 전력(電力) 소비도 적고, 열 발생도 적었다.
한 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나는 이해했습니다. 각 블록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았고, 직접 손으로 수정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큰 그림만 알 뿐입니다. 각 모듈이 실제로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똑같은 명령을 주어도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어떤 때는 두 개의 셀을 엄청나게 멀리 떨어뜨려 놓는데, 사실 그것들은 가까이 있어야 하거든요.”
우리는 우리가 만든 도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 왜 그런 결과를 내놨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작동한다는 것만 알 뿐이다. ‘블랙박스’의 시대.
이것은 버그가 아니다. 생성기계의 본질적 특징(feature)이다. 수백만 가지 조합을 탐색하고, 인간이 생각하지 못하는 해법(解法)을 찾아내는 과정은 원리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 더구나 기계는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같은 명령도 매번 다른 컴퓨팅 자원을, 다른 데이터를, 다른 맥락을 만난다. 그래서 같은 입력에도 다른 출력이 나온다.
아마존의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아마존 홈페이지를 똑같이 두 번 볼 수 없다. 당신이 어떤 물건을 보고 나갔다가 이틀 후 다시 들어가면, 그사이 알고리듬은 배웠다. “아, 지난번 페이지에는 이 사용자가 원하는 게 없었구나.” 그러고 비슷한 다른 사용자들의 구매 패턴을 보고, 새로운 페이지를 즉석에서 만들어낸다. 틱톡(TikTok), 페이스북(Facebook)도 마찬가지다. 무한 스크롤은 끊임없이 다른 내용으로 당신을 묶어둔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구분을 빌려보자. 무기물(無機物·inorganic matter)은 반복과 예측 가능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돌은 항상 돌이다. 하지만 유기체는 다르다. 예측 불가능한 창발(emergence)이다. 유기체의 핵심은 “물질이 자기 자신 너머로, 현재 형태 너머로 확장하려는” 것이다. 생성기계는 무기물처럼 생겼지만, 유기체처럼 작동한다.
자율적 행위
둘째, 자율적 행위성(autonomous agency)이다.
기존 도구는 수동적이었다. 망치는 내가 휘둘러야만 한다. 하지만 생성기계는 내 의도를 먼저 읽고 제안한다.
얼마 전 아내와 밀라노 여행을 계획하며 챗GPT에 조언을 구했다. 이틀간의 짧은 일정, 그리고 우리가 친딸처럼 여기는 두 살짜리 몰티즈 반려견 순이도 동반한다고 했다. 챗GPT는 단순히 ‘개 출입 가능 식당’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아, 그럼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일정을 잡아줘야겠군요.”
야외 공원과 테라스 식당 중심으로 이틀 일정을 잡아줬다. 완벽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틀 중에 하루는 순이와 함께 보내고, 나머지 하루는 순이를 현지의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두 분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 밀라노가 제공하는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오페라의 성지라고 불리는 라스칼라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고급 이탈리아 식당의 실내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일정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타지에서 순이를 잠시 봐줄 사람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요즘은 앱을 통해서 쉽게 반려동물 돌봄이를 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 방법을 고려하시겠다면, 저는 로버(Rover)라는 앱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스타트업으로 반려동물 돌봄이에 대해 철저한 신분 인증을 하는 앱으로 걱정 없이 하루 정도 순이를 맡기고 두 분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다. 이것은 검색 결과가 아니었다. 나의 숨겨진 욕망(오페라 관람)과 현실적 제약(반려견)을 통합하여 내가 생각지 못한 최적의 솔루션을 제안하는 능동적 파트너였다. 도구가 인간에게 “이게 더 낫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는 시대. 이것은 도구라기보다 파트너에 가깝다.
생성 경제: 새로운 경제 질서의 등장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9월 18일 국가인공지능(AI)전략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사진=뉴시스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왜 트럼프와 시진핑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수천조원을 쏟아붓는가?
‘의미’가 석유처럼, 전기처럼 대량 생산되는 자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자원을 선점(先占)하는 나라가 21세기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직감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류가 소비할 많은 부분의 지식과 판단은 이 기계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의사의 진단 참고, 판사의 양형 자료, 기업의 전략 보고서, 심지어 우리 아이들이 읽을 동화책까지, 생성기계가 만들어낸 ‘합성된 의미’가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물론 인간들이 직접 만든 지식도 꾸준히 그 가치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백화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량 생산한 제품이 많을수록 소수의 장인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만든 제품이 더 가치를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마치 산업화 시대의 물리적 기계가 대량 생산, 대량 공급, 대량 소비라고 하는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들었고, 디지털 시대의 스마트기계가 플랫폼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승자독식 구조를 만들었듯이, 생성기계 또한 또 다른 경제 질서를 만들 것이다.
나는 이것을 ‘생성 경제(generative economy)’라고 부른다.
에이전트 경제의 등장
물리기계 시대에는 포드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검은색 모델(Model) T를 팔았다. 표준화가 힘이었다. 스마트기계 시대에는 아마존이 당신의 구매 이력을 보고 “이 제품은 어때요?”라고 추천했다. 데이터가 힘이었다. 하지만 생성기계 시대에는 챗GPT가 당신과 대화하며 그 순간 당신만을 위한 답을 만들어낸다. 의미의 실시간 조립이 힘이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네트워크 효과’를 넘어선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많을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하지만 생성기계는 다르다. 사용자가 많을수록, 그리고 기계가 창의적일수록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것을 나는 ‘생성적 외부성(generative externalities)’이라고 부른다. 전 세계 개발자 커뮤니티인 깃허브(GitHub)의 AI 코딩 도구 코파일럿(Copilot)을 보라. 코드가 쌓일수록, 다양한 개발자가 쓸수록, AI는 더욱 예상 밖의 창의적인 코드를 제안한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가치 창출의 시점과 방식이다. 산업 시대에는 공장에서 미리 제품을 만들어놓고 팔았다. 디지털 시대에는 사용자가 클릭하는 순간 맞춤형 광고를 보여줬다. 하지만 생성기계 시대에는 매 순간 대화 속에서 의미가 조립된다. 미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일시적이고, 취소 가능하고, 끊임없이 재조합된다.
그리고 이 경제에서는 인간만이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다. AI 에이전트가 독립적으로 작업을 수행한다. 당신의 비서 AI가 당신의 여행사 AI와 대화하고, 항공사 AI와 협상하고, 호텔 AI와 조율한다. 에이전트 경제(agent economy)의 등장이다. 의미 생산이 인간 독점에서 인간-기계 협업으로 넘어간다.
지능의 유전을 선점하라
만약 이 ‘의미 생산 시설’을 특정 국가가 독점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이 학습시킨 데이터, 그들이 튜닝한 가치관, 그들이 설계한 판단 기준이 전 세계의 표준이 된다. 19세기 영국이 증기기관으로, 20세기 미국이 컴퓨터로 세계를 지배했듯, 21세기는 ‘인간의 뇌를 대신해 생각하고 판단해 주는 기계’를 소유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딥시크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효율성이 규모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더 깊은 진실은 이것이다. 생성기계 시대의 승리는 돈과 칩의 양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깊이 ‘의미의 본질’을 이해하느냐로 결정된다.
1조5000억 달러라는 숫자는 단순한 투자 금액이 아니다. 이것은 미래 인류의 사고(思考) 자체를 지배할 권리금이다. 한자(漢字)가 동아시아의 사고방식을 규정했듯이, 알파벳이 서구(西歐)의 논리를 만들었듯이, 생성기계의 구조가 21세기 인간의 의식을 만들 것이다. 그 구조를 설계하는 나라가 미래의 제국이다.
우리는 준비되었는가? 한국은 반도체라는 ‘그릇’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길 ‘지능’과 ‘의미’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남이 가공해 준 의미를 소비만 하는 ‘정신적 하청(下請)기지’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만의 ‘의미 공장’을 가질 것인가?
25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는 돌을 쪼개 망치를 만들었다. 근육의 한계를 넘어섰다.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언어를 발명했다.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5000년 전, 문자가 발명되었다. 기억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리고 지금, 생성기계. 이것은 의미 자체를, 사고 자체를 외부화하는 혁명이다.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이 마주한 가장 서늘한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