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드 케인지언 계열 학자들의 잘못된 처방(1992~2000년)… 경기 대책으로 136조 엔에 달하는 재정 투입
⊙ 고이즈미 정부 시절(2001~2006년) 구조개혁파 경제학자 등장… 구조개혁 외면하고 비정규직만 양산
⊙ 아베노믹스의 이론적 근거 마련한 리플레파(Reflationist) 시대(2012~2020년)… 비주류 학자 의존한 정책 실험
⊙ 문재인 정부 시절, 소득주도성장 정책 밀어붙인 일부 학자… 확장적 재정 정책만 고집하면 위험
⊙ 일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실증분석에 기반해 정책 설계해야
權赫旭
일본 히토쓰바시대 경제학 박사 / 서울대 경제연구소 방문교수, 일본 경제산업성 ‘경제산업연구소’ 자문교수, 일본 문부과학성 ‘과학기술·학술정책국책연구소’ 방문연구원 역임. 現 니혼대 경제학부 교수
⊙ 고이즈미 정부 시절(2001~2006년) 구조개혁파 경제학자 등장… 구조개혁 외면하고 비정규직만 양산
⊙ 아베노믹스의 이론적 근거 마련한 리플레파(Reflationist) 시대(2012~2020년)… 비주류 학자 의존한 정책 실험
⊙ 문재인 정부 시절, 소득주도성장 정책 밀어붙인 일부 학자… 확장적 재정 정책만 고집하면 위험
⊙ 일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실증분석에 기반해 정책 설계해야
權赫旭
일본 히토쓰바시대 경제학 박사 / 서울대 경제연구소 방문교수, 일본 경제산업성 ‘경제산업연구소’ 자문교수, 일본 문부과학성 ‘과학기술·학술정책국책연구소’ 방문연구원 역임. 現 니혼대 경제학부 교수

- 연평균 4%의 고도성장을 이어온 일본은 ‘잃어버린30년’이라 불릴 만큼 장기간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당시 도쿄 시민들이 주식 시세판을 보고 있다. 사진=조선DB·블룸버그 뉴스
이런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있던 일본에 전례 없는 충격이 덮쳤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릴 만큼 장기간 저성장의 늪에 빠졌고, 그사이 한국과 대만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며 마침내 일본을 추월해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올드 케인지언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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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부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총 136조 엔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을 경기 대책에 투입했다. 1996년 10월 19일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유세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조선DB |
버블경제의 붕괴로 경기 침체와 불황이 우려되자, 일본의 관료들과 거시경제학계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던 올드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은 조건반사적으로 확장적 재정 정책과 감세 정책을 통해 유효수요를 진작하려 하였다. 유효수요란 실제 시장에서 지출할 의사와 구매력을 지닌 수요를 말한다. 그들은 경기 침체를 일시적 현상으로 인식,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면 유효수요 부족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시 말해 정부가 돈을 써서 일자리를 만들거나 도로를 건설하면 사람들이 돈을 벌어 다시 소비가 늘 것으로 생각했다.
1992년 8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10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는 ‘종합경제대책’ ‘긴급경제정책’ 등 다양한 명목으로 총 136조 엔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을 경기 대책에 투입하였다. 그 재정의 대부분은 공공투자, 사회자본 정비, 중소기업 지원에 쓰였다. 동시에 정부는 ‘특별감세’ 등의 이름으로 7차례에 걸친 대규모 감세 정책을 시행했다. 민간소비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목표로 20.5조 엔에 달하는 소득세 중심의 감세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늘어난 지출과 줄어든 세수의 차이는 결국 국채 발행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국채 발행액은 1992년 9.5조 엔 수준에서 1999년 37.5조 엔으로 급증했으며, 중앙정부의 국채 잔고는 1990년 말 166.3조 엔에서 확장적 재정 및 감세 정책이 이어진 2002년 말 421.1조 엔으로 예상보다 크게 불어났다.
따라서 일본의 정부 부채는 고령화 요인보다는 오히려 1990년대 내내 이어진 경기 대책 과정에서의 무리한 재정 지출과 반복된 감세 정책으로 인해 빠르게 팽창하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005년에야 부실채권 늪에서 벗어나
금융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본 금융기관들은 버블경제 붕괴로 인한 담보 가치 하락에 따른 부실채권 문제로 이미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아시아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이로 인해 은행, 신용금고, 신용조합의 연쇄 도산이 이어졌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총 158개의 금융기관이 파산했는데, 특히 1997년 북해도의 다쿠쇼쿠은행, 1998년 일본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은행 등, 도산이 불가능해 보였던 대형 은행들마저 무너진 사건은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불가피하게 총 53개 금융기관에 104조 엔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였다. 또한 일본은행은 1999년 2월, 처음으로 제로 금리 정책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제로 금리 정책 시행에도 2002년 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채권 규모는 여전히 51.5조 엔에 달했다. 이후 2005년에 이르러서야 그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들며 가까스로 부실채권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도쿄대 요시카와 히로시 교수와 일본은행 부총재를 지낸 이와타 가즈마사 등, 올드 케인지언 계열의 관료·학자들의 처방을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10여 년간 대규모 재정지출, 감세, 금리 인하, 공적자금 투입을 시행했으나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95년부터 본격화된 ICT 혁명으로 일본 경제 시스템의 경쟁우위가 상실되는 구조적 결함이 발생했음에도, 정부는 노동 시장·생산기술·자원배분 등 공급 측 구조개혁보다는 수요 창출에 치중한 정책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어떠한 긍정적 성과도 가져오지 못했다. 충분한 경제 분석 없이 경직된 이론에 의존해 잘못된 처방을 내리고, 이에 따라 정책을 시행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구조개혁파 경제학자의 등장
올드 케인지언식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도쿄대 하야시 후미오 교수와 히토쓰바시대 후카오 교지 교수는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원인이 유효수요 부족이 아니라 생산성 하락이라는 공급 측면의 구조적 문제에 있음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우수한 인적자본, ICT 자본과 무형자산의 축적, 경쟁 촉진, 유연한 요소 시장 등 경제 전반의 효율성 제고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일본은 IMD가 발표하는 국제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비즈니스 효율성 부문에서 가장 큰 폭의 하락이 나타난다.
이 부문은 노동 시장(관리직의 국제 경험, 유능한 인재 풀, 해외 고숙련 인재 유치력), 경영 관행(의사 결정의 신속성, 기업가 정신, 시장 변화 인식, 이사회 기능), 태도·가치관(변화에 대한 유연성과 적응성, 디지털 전환) 등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영역에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더라도 생산성을 높여 경제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인식이 점차 학계 내 형성되었다. 결국 “개혁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일본 경제의 구조개혁을 내세운 고이즈미 정권이 2001년에 등장하게 되었다.
고이즈미 정권(2001~2006년)은 노동 시장, 지방, 농업 개혁과 함께 우정성 민영화를 추진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노동 시장 개혁에서는 일자리를 더 쉽게 만들고 없앨 수 있도록 노동법에 해고 조항을 명시하고, 노동자 파견법을 개정하여 거의 모든 직종에서 파견근로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실업급여를 모두 소진하기 전에 재취업한 근로자에게 기본실업급여의 30%를 지급하는 취업촉진수당을 신설했다.
아울러 장기 교육훈련휴가 제도, 출퇴근 시간 조정에 따른 교육훈련 시간 확보, 교육훈련 보조 제도 등을 도입했다. 지방 개혁의 경우, 중앙정부 의존적 구조 탈피를 위해 연간 4조 엔 규모의 보조금을 삭감하는 재정 개혁을 단행했으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구조개혁특구 제도를 도입했다. 농업 개혁에서는 농지 중간관리기구(농지뱅크)를 신설하여 농지를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을 연결시켜 분산된 농지를 모아 대규모 경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우정성 민영화는 막대한 우편저축 자금을 민간 부문이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정규직·비정규직 간 불평등만 심화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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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전 손을 맞잡은 아소 다로(당시 외무대신·왼쪽부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아베 신조 관방장관, 다니가키 사다카즈 재무상. |
고이즈미 정권이 제대로 된 구조개혁에 나서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엔저로 인한 경기 호조였다. “개혁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슬로건과 달리, 엔저로 경제가 양호하게 유지되자 개혁의 시급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재계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 결과 정부는 일본 경제를 근본적으로 쇄신하기보다 경기를 악화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한의 개혁만 실시하는 데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대량 실직이 발생하고 경기가 급격히 악화되자, 애매하게 실시된 개혁 조치들이 오히려 문제를 키운 것처럼 보이는 결과가 빚어졌다.
하야시 교수가 세 권으로 엮은 책 《경제 정체의 원인과 제도》와 올드 케인지언과 구조개혁파의 논쟁을 담은 《잃어버린 10년의 진인은 무엇인가?》는 구조개혁파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잘 담아냈지만, 그 생각들이 정책으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일본의 구조개혁 정책의 와해는 올바른 경제 정책을 실행하려면 정확한 분석과 문제 규명, 해결책 제시만으로는 부족하고, 정책을 추진할 정치적 동력이 있어야 하고, 그 동력을 확보·유지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리플레파(Reflationist)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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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총선에서 승리한 자민당의 아베 신조 차기 총리가 2012년 12월 17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당시 아베 총리는 디플레이션과 엔고 탈출을 위해 무제한 양적 완화와 200조 엔에 달하는 공적자금 투입 등을 약속했다. 사진=뉴시스 |
학계에 구조개혁에 대한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던 시기에, 예일대 하마다 교수가 내각부 산하 경제사회종합연구소장으로 부임하여 비주류로 분류되던 포스트 케인지언과 현대 화폐이론(MMT) 계열의 학자들로 구성된 연구진과 함께 1930~31년의 쇼와 공황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발족했다. 그 성과는 《쇼와공황연구》라는 책으로 출간되었고, 이 책은 쇼와 공황기의 정책 대응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구조개혁보다 금융 완화를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하여 이후 아베노믹스(2012~2020년)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었다. 이 책 집필에 참여한 이들은 ‘리플레파’로 불렸으며, 학계에서는 뚜렷한 연구 실적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하마다 교수의 학문적 영향력에 기대어 자신의 주장을 담은 연구서를 꾸준히 출간했다.
이들은 돈을 더 많이 찍어내고, 정부가 보유한 장기 국채의 양을 두 배로 늘리며, 국채를 더 오래 보유하는 금융 정책을 실시하면 2년 안에 물가가 2%대로 올라,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2년에 아베 2차 정권이 출범하면서 리플레파는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으로 경제 정책의 전면에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그대로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해 일본은행 정책위원회의 주요 멤버로 참여해 일본은행을 장악하여 이차원의 금융 정책을 10여 년에 걸쳐 실시했다. 《쇼와공황연구》 필진 중 2명이 일본은행 부총재를 역임했고, 3명이 정책위원회 멤버로 참여했다. 이처럼 연구자 집단이 자신의 구상을 직접 정책으로 구현한 사례는 일본에서는 전례가 없었으며, 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1930~31년의 쇼와 공황을 오늘날의 정책 과제로 오인
리플레파의 주장대로 일본은행은 화폐 발행을 2년간 두 배로 늘리고, 연간 국채 매입을 50조 엔 수준으로 확대하는 한편 상장투자신탁(ETF)과 J-REIT(Japan–Real Estate Investment Trust) 등 위험자산의 매입도 대폭 늘리는 이차원의 금융 정책을 단행했다. 이 결과 일본은행의 총자산은 2013년 3월 말 165조 엔에서 2020년 3월 말 605조 엔으로 3.7배나 불어났다. 자산 증가의 대부분은 국채 매입에 기인하며,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액은 2013년 125조 엔에서 2020년 486조 엔으로 급증했다. 이는 전통적 의미의 금융 완화라기보다 재정파이낸스에 가깝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일본은행이 보유한 ETF 장부가액은 2020년 3월 말 기준 약 30조 엔으로,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RIF)보다 일본 상장기업 주식을 더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이처럼 10년에 걸쳐 막대한 유동성을 투입하는 이차원의 금융 정책을 펼쳤음에도 일본은 디플레이션에서 일부 벗어났을 뿐, 목표로 한 소비자물가 상승률 2%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리플레파는 비록 소비자물가 상승률 2%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기업 수익과 고용 여건이 개선되어 청년실업 완화와 자살률 감소 등 경제·사회적 안정이 일부 실현되었으므로 아베노믹스는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완화 정책을 10년 넘게 지속한 결과로 보기에는 그 성과가 지나치게 미흡하다.
쇼와 공황기의 상황과 현대 일본의 경제는 ‘일본’이라는 국명 외에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럼에도 쇼와 공황의 대응 문제를 오늘날의 정책 과제로 오인(誤認)하고, 실증적 근거가 부족한 일부 비주류 학자의 주장에 의존해 정책 실험을 강행한 것이 아베노믹스라 할 수 있다. 구조개혁 노선과 달리 충분한 실증적 뒷받침 없이 정치적 동력에만 의존해 과도하게 밀어붙인 것에 비해 성과는 미미했으며 결국 상당한 부작용만 초래했다는 평가가 타당하다.
경제를 죽이는 경제학자들
일본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학 교과서가 권하는 대로 확장적 재정·금융 정책과 감세를 단행했다. 반면 학계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른바 이차원의 금융 정책도 과감하게 도입했다. 또한 나라 경제 전체에 영향을 주는 정책에 그치지 않고 경제 구조를 바꾸려는 구조개혁도 병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경제 정책은 단순히 이론과 실증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와 정치적인 동력이 꼭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구조개혁은 통상 큰 고통을 수반한다. 이러니 대중적 지지를 얻기 어렵고, 아무리 학술적 근거가 탄탄해도 정치적 추진력을 확보하기 힘들다. 반면 이차원적 금융 정책은 당장의 고통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론적·실증적 취약성에도 비교적 쉽게 정치적 동력을 얻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느 한 정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베노믹스가 제1·제2의 화살뿐 아니라 제3의 화살인 성장 전략까지 동시에 충실히 추진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 정책과 정치의 불균형을 악용해 일부 경제학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결국 경제 전체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지난 30년간의 일본 경제 정책을 검토한 필자의 결론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연간 성장률이 1%대에 머물며 장기 침체 위험에 직면해 있다. 국내 경제학자들도 저마다의 해법을 제시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파 성향의 학자들은 시장 기능의 효율을 제고하는 구조개혁을 주로 주장하는 반면, 좌파 성향의 학자들은 확장적 재정·금융 정책을 중심으로 한 대응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정확한 분석에 기초해 적절한 시점과 수단을 선택해 시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처방은 없다. 또한 자신의 이론만 옳다고 근거 없이 밀어붙이면 오히려 경제에 심각한 손해를 초래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 주장한 일부 학자
문재인 정부 시절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밀어붙였던 일부 학자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현 정부에서 확장적 재정 정책만을 고집할 경우 유사한 오류를 범할 위험이 크다.
경제 정책은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구조개혁과 재정·금융 정책이 철저한 실증분석에 기반해 상호 보완적으로 적절히 시행돼야 한다.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실증적 분석에 기반한 정책 설계다. 정책은 이론적 타당성뿐 아니라 체계적 실증분석에 근거해야 한다. 정책 도입 전후의 인과관계, 분배효과, 기대효과와 부작용을 정량적으로 추정하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무작정 이론을 적용하거나 이념적 입장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위험하다.
둘째, 정책의 통합적 설계와 순차적 실행이다. 수요진작(재정·통화)과 공급 구조 개혁은 상호 보완적이다. 단기적 수요 진작은 경기 침체를 완화할 수 있지만, 장기 성장으로의 이행은 생산성 제고와 제도적 개혁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단기·중기·장기 과제를 분명히 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되, 병행 가능한 개혁은 병행해야 한다.
셋째, 정치적 동력의 확보와 공공설득이다. 구조개혁은 고통 분담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와 보상 메커니즘(재교육·전직 지원·안전망 강화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경제 정책에 영향을 주고받는 당국자와 학자, 경제 주체들이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어 중장기적 비전과 실행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분배효과의 관리다. 소득·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성장 정책은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반발을 일으켜 정책의 지속성을 해친다. 재정 정책과 구조개혁은 분배적 안전장치를 포함해 설계해야 한다.
다섯째, 중앙은행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도구도 유용하지만 한계를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통화 정책을 통해 금융을 안정시켜 소비와 투자를 조절할 수 있지만, 구조적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중앙은행의 자산 매입이 시장 기능을 왜곡하거나 정치적 독립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잃어버린 일본 경제가 주는 교훈
일본의 경험은 경제 정책과 정치 현실이 어떻게 충돌하고 결합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올드 케인지언적 수요 정책, 구조개혁적 공급 정책, 그리고 리플레이션을 내건 이차원의 금융 완화는 나름의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단독적·편향적으로 추진되었을 때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부작용을 낳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가’보다 ‘어떻게, 언제, 누구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책을 실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실증분석에 기반해 정책을 설계하고, 국민에게 공평하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정치적 합의와 분배적 보완 장치를 개혁에 담아야 한다. 재정·금융·구조개혁은 상호 보완적이다. 어느 개혁 하나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연구자와 정책 결정의 연결은 생산적일 수 있으나, 특정 이론이나 집단의 이해관계가 정책을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 정책은 국민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행위다.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투명성·책임성·합리적 근거 제시가 필수적이며, 이를 통해 대중의 신뢰를 얻을 때 비로소 장기적 성장과 안정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잃어버린 일본 경제 30년이 주는 냉철한 교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