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후 지방 하층민·노동 계급 남성들이 자원병·군수 산업 노동자로 일하며 신흥 중산층으로 급부상
⊙ 시진핑·트럼프, 푸틴처럼 글로벌 엘리트 대신 내륙 지방의 신흥 중산층 포섭
⊙ 러시아인 3분의 2가 미래 낙관… ‘현재 삶에 만족한다’는 54%
⊙ 러시아-소련의 중산층,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K를 생각한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 시진핑·트럼프, 푸틴처럼 글로벌 엘리트 대신 내륙 지방의 신흥 중산층 포섭
⊙ 러시아인 3분의 2가 미래 낙관… ‘현재 삶에 만족한다’는 54%
⊙ 러시아-소련의 중산층,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K를 생각한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월 15일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앨먼도프-리처드슨 합동군사기지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문제 등을 논의했다. 사진=AP/뉴시스
물론 양국 정상이 만났다고 해서 미로와도 같이 꼬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법이 도출되지는 않았다. 실제 많은 매체와 분석가들이 알래스카 회담을 두고 결국에는 구체적 합의를 하나도 이루지 못한 ‘노딜(no deal) 회담’으로 평했다.
러시아, 초기 실수 딛고 전세 역전
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서 알래스카 회담은 커다란 성과였다. 2022년 2월 소위 ‘특수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러시아는 서방과의 실질적 외교 채널이 거의 단절된 상태였다. 서방의 외교적 고립을 돌파하기 위해 러시아는 중국, 인도, 이란, 튀르키예 등 비(非)서방 국가와의 정치·경제 관계를 전(全)방위적으로 강화했고, 이를 통해 융단폭격과 같은 경제 제재를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초(超)강대국인 미국마저도 푸틴과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를 알래스카에 초청했으니,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승리’가 마침내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간주해도 무리는 아닐 수 있다.
이는 실제 전장(戰場)의 엄연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개전(開戰) 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비해서 절대적인 인구·군사력·생산력의 약세(弱勢)에도 불구하고 애국심을 바탕으로 놀라운 선전(善戰)을 했다. 미국과 유럽연합 각국이 지원한 엄청난 규모의 자금과 무기 지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러시아군은 동부 돈바스 지역에 촘촘하게 깔린 요새와 시가지에 발이 묶여 날이 갈수록 진격이 지지부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신속하게 전장에서 주도권을 다시금 회복했다. 러시아 군산(軍産) 복합체는 탈(脫)산업화된 서방을 압도하는 생산량을 보여주었다. 전술 면에서도 드론과 미사일, 전자전(電子戰)을 능수능란하게 조합하며 현대전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초기의 실수를 바로잡고 강군(强軍)으로 부활한 러시아군을 몰아내기에 우크라이나군은 병력, 무기, 자원 모든 면에서 역부족이었다.
푸틴이 회담에 나선 이유
이 결과 2024년부터 러시아는 꾸준히 공세를 이어가며 전쟁의 핵심 목표였던 돈바스 지역에서 점령지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런 움직일 수 없는 전장의 현실은 미국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꾸준한 회의론을 낳았고, 끝내는 푸틴과 마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의문은 남는다. 전장에서 러시아가 압도적 우위를 확보했다면, 굳이 푸틴이 구체적 합의를 이루기 난망함을 알면서도 알래스카로 향할 이유가 있었을까? 이전까지 해왔던 대로 병력을 투입해 우크라이나를 밀어붙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내부의 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는 절대 권력을 쥔 강력한 독재자로 비치지만, 실제의 푸틴은 국내 정치의 미묘한 균열과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며 늘 신중한 수를 두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분명 알래스카 회담은 러시아의 우위를 트럼프 행정부에게 인정받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러시아가 전쟁을 무한정 끌고 갈 수 없음을 인식하고, 나름의 출구(出口) 전략을 탐색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한 셈이다. 그리고 변화하는 러시아 내부 사정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중산층(中産層)’이라는 핵심 키워드에 주목해야만 한다.
제정 무너뜨린 중산층
러시아 역사는 일반적으로 ‘중산층’과는 큰 인연이 없어 보인다. 중산층 개념에는 소득과 자산 등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서 독립된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적 집단이라는 함의(含意)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국가가 내내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사회를 지배해 온 러시아는 중산층 정치보다는 독재자와 민중이라는 구도가 직관적으로 더 와닿는다.
그러나 중산층은 러시아 역사에서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 수효는 매우 적었지만, 도시에 거주하며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집단은 러시아 제국 시기에도 존재했다. 이들은 대체로 로마노프 왕조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그러면서도 입헌민주당(카데트)과 같은 정당을 지지하며 두마(의회)의 설립과 권한 확대를 꾸준히 요구하며 러시아 제국의 자유주의적 근대화를 꿈꾸었다.
20세기가 되었을 때 수도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중산층 집단의 선택은 러시아 제국의 운명을 바꾸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러시아가 독일과의 전쟁에 뛰어들었을 때, 이들 대부분은 애국주의에 열광하며 전쟁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러시아의 국가·행정 시스템이 마비 상태에 들어서자 러시아 중산층들은 로마노프 왕조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1917년 2월 페트로그라드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중산층들은 더 나은 형태의 공화정 정부를 희망하며 차르 니콜라이 2세의 폐위(廢位)에 동조했다.
이후의 전개는 러시아 중산층들의 희망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입헌민주당과 온건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된 임시정부는 전쟁 중 러시아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전제정(專制政)이 무너지자 노동자·농민 등 노동 계급과 소수(少數)민족이 정치적 주도권을 거세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중산층’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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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혁명은 당초 중산층을 비롯한 대중의 이반으로 시작됐으나, 레닌의 권력 장악으로 이어졌다. |
그래도 소련 시기에는 새로운 중산층 문화가 다시 탄생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농업집단화, 5개년 계획, 대숙청은 소련인들에게 엄청난 고난을 안겨주었지만, 급속히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이전 러시아 제국을 뛰어넘는 규모의 중산층이 탄생했다. 스탈린 시기 공산당은 노동자와 농민의 자녀들에게 교육·취업 혜택을 주어 고등교육을 받은 엔지니어와 관료로 양성해 냈다. 이들은 자본주의 세계의 중산층과 달리 자산을 소유할 수는 없었지만, 도시에 살며 자녀에게 좋은 교육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물려주고자 노력했다. 스탈린 사후(死後)에는 소련 체제가 더 자유화되면서, 아파트, 자가용, 가전제품, 교외 별장을 소유하는 것이 ‘소비에트 중산층’의 미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얄궂게도 공산당이 육성한 이 중산층 계급이 훗날 소련 사회주의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양대 도시인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비롯하여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층은 서구의 68 세대와 마찬가지로 더 개인주의적이고 자유화된 삶을 꿈꾸었다. 발전한 소련의 경제 덕택에 접근하게 된 각종 소비문화는 이들에게 정적인 사회주의적 삶보다는 역동적인 서구(西歐) 자본주의 문화를 더 동경하게 만들었다. 특히 영화, 라디오, TV, 혹은 제한적인 해외여행을 통해서 미국과 서유럽의 풍요를 접할 수 있게 되자, 소련 중산층, 그중에서도 청년층은 체제에 대한 신뢰를 빠르게 잃어갔다. 소련의 해체가 서구적 중산층의 삶을 러시아에서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해방이자 기회로 여겨진 것이다.
‘중산층 복원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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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8월 19일 공산 보수파의 쿠데타 당시 러시아 국회의사당 앞 탱크 위에서 연설하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소비에트 중산층’이 그를 뒷받침했다. 사진=AP/뉴시스 |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설계된 급진적 시장화 개혁인 ‘충격 요법’은 기존에 존재하던 소련의 유산마저 앗아가면서 러시아에는 대혼란이 찾아왔다. 정부가 고용을 제공하던 대규모 기업체와 공공기관이 민영화(民營化)되자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했다. 이전 소련의 수많은 중산층이 순식간에 실직자가 되어 날품팔이에 뛰어들었고, 빈곤율이 치솟았다. 경제적 혼란 속에 제대로 된 급여를 제공받지 못하는 공무원과 군인은 부패에 찌들었고, 조직 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치안도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러시아 사회는 민영화 과정에서 재빠르게 이득을 취한 소수의 올리가르히(과두 재벌)와 매일 생존 투쟁을 벌여야 하는 대다수 국민으로 양극화(兩極化)되었다.
2000년에 옐친의 뒤를 이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블라디미르 푸틴은 체제 전환기의 혼란상을 신속하게 정상화해 내며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당시 푸틴의 정치를 간명하게 정의하자면 ‘중산층 복원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가 되자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에 힘입어 러시아에 다시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푸틴은 군(軍), 검찰, 정보기구로 이루어진 권력 집단을 통해 관료 기구, 지방 정부, 결정적으로 올리가르히에 대한 장악력을 확보했다. 이는 원자재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국가 재건에 재투자하기 위한 주도권 확보 작업이었다.
정부가 안정되고 돈이 돌자 중산층이 다시 형성되기 시작했다. 푸틴이 만들어낸 중산층은 1990년대의 혼란기는 물론이고 이전 소련 시기 중산층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아파트, 자동차, 가전(家電)제품은 소련 시기에는 배급 순번이 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리거나 ‘인맥(人脈)’을 통해 해결해야 했지만, 이제는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삶의 필수품이 되었다. 게다가 고장이 잦고 성능이 나쁜 소련제가 아니었다. 신축 아파트, 한국산 현대 자동차, 노키아 휴대전화가 러시아인의 삶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옐친에서 푸틴으로 이어지는 변화의 순간을 기억하는 러시아 중산층들은 이런 이유로 오늘날까지도 푸틴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푸틴 체제의 구조
2000년대가 끝나가며 러시아 중산층은 정부에 더욱 많은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던 러시아 경제가 큰 타격을 입으며, 러시아가 산업·금융 등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다각화된 경제’로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재산권의 보호, 법치주의, 시민사회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필수적 요소들을 갖추는 정치 개혁이 필요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푸틴 체제와 러시아 중산층 사이의 짧은 밀월(蜜月) 관계가 끝났다.
푸틴 정부는 중산층 사회의 요구보다 더 많은 사안을 고려해야 했다. 독자적 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지위를 지키고 싶었고, 탈소비에트 국가들에서의 영향력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체첸·타타르스탄 등 소수민족 지역의 요구도 통제·관리해야만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여전히 러시아 인구의 다수(多數)를 차지하는 하층 계급 및 노동 계급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만 했다.
2000년대에 푸틴이 완성한 정치·경제 체제는 이를 위한 최적의 균형을 이미 이룬 상태였다. 정보부·군인·검찰을 주축으로 한 ‘실로비키(‘제복 입은 사람들’이라는 의미)’와 정부의 수위권(首位權)을 인정하는 ‘올리가르히(‘소수의 지배자’를 의미)’가 체제의 최상층부에 있었다. 이들은 자원 수출로 유입되는 러시아 자본 대다수를 통제하며 막대한 부(富)를 축적했고, 그 대가로 푸틴의 각종 정치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했다.
그 아래에는 에너지 기업과 방위 산업, 혹은 직업군인 등 러시아 정부가 전략적으로 관장하는 핵심 영역에 종사하는 사무직 및 기술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정부 및 최상층부로부터 역시 상당한 수준의 급여와 혜택을 받으며 푸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중산층 집단을 형성했다.
끝으로는 러시아 정부가 소련 시기에 물려받은 복지 제도의 수혜를 입는 대다수 러시아 국민이 있었다. 이들은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거나 혹은 연금과 보조금을 수령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높아진 물가와 낮은 경제성장률로 인하여 자산 축적과 중산층 진입은 사실상 막혔으나, 러시아 국가가 운영하는 복지 제도로 최소한의 생계에는 걱정이 없는 계층이다.
자유주의 중산층의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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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3월 1일, 모스크바 시민들은 그해 2월 27일 피살된 푸틴의 정적 보리스 넴초프를 애도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푸틴 정권은 끄덕 없다. 사진=AP/뉴시스 |
마침내 2011년 러시아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통해 자유주의 성향의 청년 중산층들의 불만이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푸틴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크렘린은 정치적 개방이 이루어지면 러시아가 다시금 서방의 위협에 노출되어 해체될 것이라는 강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자유주의자들의 요구는 실현되기 어려웠다. 만약 러시아 경제가 더 자유화되고 개방된다면, 정부의 복지 시스템에 의존하는 노동 계급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푸틴이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크름) 반도를 합병하고, 서방과 대결 구도를 형성하자 자유주의 중산층들의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푸틴 정부는 올리가르히와 실로비키, 안정 지향적인 중년 세대, 그리고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하층 노동 계급을 정치적 기반으로 선택했다. 특히 마지막 집단은 서방과의 대결 구도를 지지하는 핵심적인 지지자층으로 부상했다. 물론 이 결과 러시아 경제는 서방의 경제 제재로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자유주의 중산층들은 정부를 백안시하며 서방으로의 이민과 탈출을 꿈꾸었다. 러시아는 이렇게 조용히 가라앉는 ‘겨울왕국’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전쟁으로 등장한 신흥 중산층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서방 세계와 연결된 자유주의 중산층이 러시아를 대거 탈출했다. ‘두뇌 유출’의 공포가 다시 러시아를 맴돌았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방이 경제 제재를 통해 러시아 자본을 봉쇄하자, 푸틴은 올리가르히에 대해 칼을 빼 들 수 있었다. 국외(國外)로 자본을 유출할 수 없게 되자 올리가르히 자본을 동원해 전쟁에 투입하는 강력한 정책 집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기존에 모스크바의 상층부에만 고여 있던 러시아의 자본이 병력 동원 및 군수(軍需) 보급으로 대표되는 전쟁 수행 기구에 집중적으로 투여되며 러시아 사회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발생했다.
중산층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크렘린은 과거처럼 징집병(徵集兵)을 일방적으로 전선에 투입하는 대신 막대한 경제적 보상을 미끼로 자원병(自願兵)을 모집했다. 별다른 인적자본도, 자산도 없는 러시아 각 지역의 남성들은 ‘한몫 잡아 팔자를 고쳐보고자’ 모병소(募兵所)로 향했다. 수십만의 남성이 러시아 평균 임금의 3배가 넘는 월(月) 300만원의 급여, 입대 시 주어지는 수천만원 상당의 계약금을 받았다.
군수 공장과 운송업 등 전쟁 수행과 관련된 업종에서도 임금이 치솟았다. 과거처럼 대도시에 거주하며 높은 교육 수준을 바탕으로 서구 자유주의를 추구했던 중산층이 아니라, 푸틴 체제에서 소외되고 있던 지방의 하층민·노동 계급 남성들이 전쟁에 힘입어 엄청난 수의 신흥 중산층으로 급부상을 한 것이다.
전장에서 목돈을 챙겨 온 병사들은 고향에서 활발한 소비 활동에 나섰다. 자가(自家) 주택을 구입하고, 튀르키예나 태국으로 가족 해외여행을 가고, 자영업을 차리며 전에 없던 경기 호황이 시작되었다. 과거 경제 성장이 올리가르히와 대도시 중산층에 집중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방 도시가 겪는 호황은 전쟁을 통해 형성된 신흥 중산층 입장에서는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푸틴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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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월 4일 ‘러시아 영웅’ 미하일 구드코프를 기리는 애국주의 전시회를 방문, 군사스포츠훈련·애국교육센터 생도들을 격려했다. 사진=AP/뉴시스 |
역설적으로 전쟁을 통해 푸틴은 2019년 반정부 시위 등을 통해 마주했던 자유주의 중산층의 도전을 물리쳐 줄 우군(友軍)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실제 러시아 정부는 정치·경제 등 사회 주요 영역의 엘리트를 참전용사 위주로 충원해 체제의 충성층(忠誠層)을 더욱 끌어올리는 ‘영웅의 시간’ 프로그램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이런 ‘호시절’에 왜 푸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만 했을까?
첫째 요인은 매우 간단하게도 ‘돈’이다. 러시아의 전쟁 수행과 신흥 중산층 형성은 러시아가 적립한 국부(國富) 펀드에서 차출된 대규모 예산 집행을 통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쟁 전 1100억 달러가 넘었던 국부 펀드의 유동자산은 2025년 6월 기준 364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경제 제재를 버텨내고는 있지만 줄어든 수입과 폭증한 지출은 전시(戰時) 호황이 영속(永續)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둘째 요인은 지방의 호황 효과가 점차 둔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전쟁은 10년 이상 침체되어 있던 지방에 강력한 소비와 투자 자극을 주었지만, 잠재된 지방 경제의 수요(需要)는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계속되니 러시아 지방 경기도 더는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셋째로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병력 모집의 어려움이다. 푸틴은 중산층의 반발을 신경 써야 하기에 징집병을 바탕으로 한 ‘인해전술(人海戰術)’이 아니라 자원병으로 구성된 병력을 매우 신중히 사용하며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자원입대를 할 사람 대부분이 입대를 했다는 데 있다. 이들은 전장에서 계속 싸우는 것보다는 빨리 복무 계약 기간이 끝나 고향에서 중산층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 각 지역 모병소는 계약금과 월급을 계속 인상하고 있지만 신규 병력을 충원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영토보다 연착륙이 중요
크렘린은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여 러시아로서도 2026년과 이 너머까지 전쟁을 지속하기란 매우 부담스럽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우크라이나 영토를 한 뼘 더 차지하는 것보다는, 전시에 만들어진 경기 호황이 충격적인 경기 둔화와 경색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성공적인 연착륙을 이루어내는 것이 푸틴 체제의 생존을 위해서는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중립국이 되고 러시아가 병합한 영토를 인정받는 ‘최소선’을 얻어내고, 병합한 영토의 인프라 재건 사업에 지출을 집중하기 위해 예산을 관리하고, 서방과의 무역을 회복해 자원 수출액을 회복하고, 전쟁 이후 찾아올 경기 둔화에 신흥 중산층들의 민심이 이반(離反)하지 않도록 위무(慰撫)하는 매우 복잡한 과제를 동시에 해내야만 한다. 이 모든 목표는 체제의 존망을 가르는 힘을 보이지 않게 가지고 있는 러시아 국내 중산층을 관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달성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반면 우크라이나를 향해 ‘끝까지 간다’고 불통을 고수하면, 이제부터는 정말로 중산층의 전쟁 피로도가 갑작스럽게 급증해 정치 위기로 번질 수 있기에 몹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니 알래스카 회담 이후에도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인정받으면서 전쟁에서 적절한 시기에 빠져나올 수 있는 합의점을 찾고자 미국과 계속 소통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각국의 중산층 정치
러시아의 사례는 현대 대중 사회에서 체제의 존속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바로 ‘중산층의 포섭과 관리’임을 잘 보여준다. 독재든 민주주의든 모든 체제는 자신이 기댈 중산층을 규정하고, 그들의 불안과 욕망을 어떻게든 달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시대의 중국이 상하이(上海)로 대표되는 글로벌 엘리트 대신 내륙 지역의 신흥 중산층을 기반으로 삼은 것, 트럼프의 ‘MAGA’가 위기에 처한 내륙의 백인 중산층을 결집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러시아·중국·미국의 사례는 ‘중산층의 종류’ 역시 다양하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냉전 이후에는 세계화된 금융·무역에 의지하는 고학력 화이트칼라 집단이 중산층을 대표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신흥 중산층은 국가 주도의 실물(實物) 경제에 의존하고 있고, 자연스레 군사력과 국가 위상에 훨씬 더 민감한 경향이 있다. 이들은 지정학적(地政學的) 갈등, 심지어 전쟁을 통해 이득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중산층 정치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판교의 IT기업 직원 대신에 거제도의 조선소 엔지니어가 우대를 받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