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트랜스포머>의 마크 왈버그

  • 글 : 박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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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들의 말에 걱정할 필요 없어,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영화”

朴興津
⊙ 70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마크 왈버그가 주연을 맡은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의 포스터.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물론이요 한국과 중국을 비롯해 전세계서 빅히트를 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소음과 파괴의 난장판 블록버스터 액션영화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주인공 마크 왈버그(43)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서 있었다. <트랜스포머>는 하스브로 장난감을 모델로 만든 영화다.
 
  왈버그는 시리즈 3편에 모두 주연한 샤이아 르부프에 이어 주연으로 발탁됐는데 비록 얼굴에 잔수염이 나긴 했지만 나이에 비해 소년티가 났다. 왈버그는 서민적인 모습과 자세로 위트와 농담 그리고 때론 상소리를 서슴없이 섞어 가면서 질문에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사람이 매우 겸손해 질문자에게 “네”라고 깍듯이 존댓말을 썼는데 도무지 수퍼스타 티를 내지 않아 마치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이 편안했다. 왈버그의 아버지는 1950년 6·25전쟁에 미군 보병으로 참전한 용사다.
 
  —지금까지 보면 금발 미녀와 공연할 경우 그들은 다 당신의 애인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당신 딸로 나왔더군요. 소감이 어떻습니까.
 
  “난 너그럽게 아버지 역을 맡기로 했지요. 금발 미녀들이 다 내 애인이었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이제 그들의 아버지가 됐다는 것이 우습군요. 하기야 내 큰딸도 지금 11살로 곧 데이트할 때가 됐답니다. 그리고 난 실제로 아버지 노릇을 즐기지요. 나는 이 무게 있는 영화에서 무게 있는 역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의 인간적 요소를 정말로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집중했습니다. 그것이 이 시리즈를 새롭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차를 고칠 줄 압니까. 자동차를 몇 대나 가지고 있는지요.
 
  “카브레터가 있는 차는 다 고칠 줄 압니다. 식구들이 각기 차를 갖고 있어서 집에 차가 몇 대가 있는지 잘 모르겠군요. 내 첫 차는 1971년 산 폭스바겐 버그였습니다. 15세 때 50달러 주고 친구로부터 샀는데 면허도 없이 차를 몰고 동네를 다니다가 견인당했지요.”
 
  —당신은 트랜스포머 팬이었습니까.
 
  “그 영화들을 좋아했습니다. 내 아이들은 다 팬이고요.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마치 최첨단 컴퓨터 특수효과와 인간적 이야기를 잘 접목한 <주라기공원>을 볼 때 받았던 느낌 그대로였어요.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마이클은 이번에 영화를 새 방향으로 이끌고 가기 위해 나를 고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자유롭게 내 역을 개발하도록 허락했지요. 그래서 출연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새 영화에 혁신적인 것들 많아
 
  —이 영화가 전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요.
 
  “영화를 속편이 아닌 독립적인 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새 인물들과 악인들이 나오는 신제품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위험부담이 더 크지요. 내 역은 보통사람이 비상한 경우를 만나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이클은 늘 새로운 것을 고안하는 사람이어서 이 영화에서도 전편들과 다른 혁신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영화에서 당신은 딸을 과보호하다시피 하는데 당신의 두 딸에 대해서도 그렇습니까.
 
  “더할 걸요. 내가 옛날에 데이트할 때 아주 망나니여서 그런 남자 녀석들을 잘 알지요. 난 내 딸과 데이트하려는 녀석들을 모두 망나니로 봅니다. 그런 녀석들 안 만났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지요.”
 
  —영화 속의 아버지와 실제의 아버지는 얼마나 다릅니까.
 
  “엄격하지만 이해하는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될 수만 있으면 영화 속의 아버지가 실제의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경을 씁니다만 때론 마음대로 안 될 때가 있어요.”
 
  —당신의 드림카는 무엇이며 속도위반 딱지를 얼마나 받았습니까.
 
  “난 제너럴모터스의 옛날 차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멋은 있을지 모르나 실용적이지 못해 보다 실제적인 차를 선택합니다. 최근엔 별로 딱지를 안 받았어요.”
 
  —경찰이 당신에게 딱지를 떼려고 할 때 어떻게 반응하나요.
 
  “요즘엔 감출 것이 없으니 상관 안 해요. 그러나 전엔 늘 어깨 뒤를 돌아다 보곤 했지요. 그러나 이제 난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에게 봉사하는 경찰을 사랑합니다. 베벌리힐스나 어디서건 경찰을 보면 ‘헬로’ 하고 인사를 하지요. 오늘은 동네 소방서장이 우리 집에 와 화재와 지진대비법을 가르쳐 주고 갔습니다. 그래서 난 법집행을 위한 모든 일을 적극 지원합니다.”
 
  —배우로서 컴퓨터 특수효과가 요란한 영화와 대인관계에 치중한 영화 중 어느 것을 더 선호합니까.
 
  “처음엔 컴퓨터로 만든 인물과 연기한다는 것에 놀라 자빠질 것 같았어요. 그러나 하고 보니 재미 있더라고요. 물론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더 좋지만 가끔 이런 ‘쓰레기’ 같은 영화에 나오는 것도 괜찮아요. 나 혼자서 독불장군 식으로 설치는 것도 좋았어요.”
 
 
  아이에겐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어야
 
마크 왈버그는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에서 딸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아버지로 나온다.
  —아이들이 좋은 길을 걷도록 어떻게 모범을 보입니까.
 
  “충고와 조언을 해도 아이들이란 말을 잘 안 듣게 마련이어서 학교 가기를 싫어해요. 좌우간 말은 싸기 때문에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여덟살짜리 내 첫아들은 풋볼만 좋아하고 교회 가기를 싫어해요. 난 가톨릭신자여서 아들에게 왜 그가 내 신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지를 역설합니다. 지난 20년간 내 삶의 모든 긍정적인 일은 이 신앙 때문에 일어났음을 얘기해 주지요. 그런데도 어려서 잘 이해를 못해요. 따라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바른 길로 가고 바른 일을 하며 또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나이를 먹으면 깨달을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가난하게 자란 당신으로서 아이들의 꿈을 대신 이뤄 주려는 생각이라도 합니까.
 
  “내가 못 가졌던 것을 전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생각이 있지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근로의 윤리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무언가 창조하면서 가능한 대로 최선의 인간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 아이들은 다 착해요.”
 
  —과거에 애인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무슨 일을 했나요.
 
  “처음으로 본격적인 데이트를 할 때 애인의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감언이설을 사용했지만 영 먹혀들지가 않았어요. 내가 애인 오빠의 친구여서 더 마음이 상했습니다. 하여튼 애인의 아버지는 진짜 심술첨지였어요.”
 
  —역을 위해 운동은 얼마나 했으며 다이어트라도 했는지요.
 
  “새벽 2시반에 일어나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했습니다. 5개월 반 동안 하루에 15시간씩 촬영을 하면서 뛰고 달리고 치고 박기 위한 맹훈련을 했지요. 그러나 진짜로 짜증났던 것은 이 영화 다음에 찍은 영화였습니다. 체중을 엄청나게 뺀 뒤 한 달간 액체음식만 먹었어요. 그래서 신경이 곤두서 짜증을 내는 바람에 가족을 비롯해 아무도 내 곁에 오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배우로서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생각했습니까. 당신에게 도전적인 역은 어떤 것입니까.
 
  “가끔 꿈이야 꾸었지만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 그저 꾸준히 일을 했습니다. 늘 도전적이요, 날 키울 수 있는 역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나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역을 찾아다녔지요. 대단한 여정이었지만 난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더 생각합니다. 모든 역은 다 나름대로 도전이지요.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만드는 데 재미 있었고 또 내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록 아버지 역은 처음이지만. 현재 내게 가장 도전적인 일은 <아메리칸 데스페라도>라는 영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비교적 성공한 처지인데도 만들기가 쉽지 않군요.”
 
  —비평가들은 이런 특수효과 위주의 영화들은 내용이 부실하다고 비판하는데 그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이 영화는 아주 재미있어요. 난 언제나 인간적인 요소에 신경을 씁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사실적이요 또 감성적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어떤 영화건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가 문제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게 와서 영화 정말 신났다고 말한 줄 아십니까. 비평가들의 말에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 영화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영화입니다. 무언가 새롭고 다르고 또 멋있어요. 그리고 감정과 유머도 있고요.”
 
 
  과거보다 현재로 평가받고 싶어
 
필자와 마크 왈버그.
  —작고한 아버지는 한국전 참전용사인데 생전에 당신에게 어떤 무용담이라도 들려주었는지요.
 
  “허풍이 좀 심했던 것 같았어요. 사실은 별로 없어요. 보병이었던 아버지는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서 내가 얘기해 달라고 조르면 무용담을 들려주었는데 갈수록 뻥이 더 심해졌어요. 어머니도 내게 아버지가 하는 얘기는 다 뻥튀기한 것이라고 말했지요.”
 
  —당신은 이제 와서 과거 칼빈 클라인 속옷 광고 모델 한 사실이 잊히길 바랍니까.
 
  “그런 적 없어요. 그건 그거니까요. 난 사람들이 나의 과거가 아니라 내가 현재 하는 일에 따라 날 평가해 주길 바랍니다. 누구나 다 과거는 있게 마련 아닙니까. 난 그저 겸손히 좋은 작품을 찾아서 배우로서의 나를 입증하고 그것으로 존경을 받고자 합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기술적인 면에서 당신을 놀라게 한 것이라도 있는지요.
 
  “전부 다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 모두가 마이클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물론 나도 내 역을 위해 기여한 점은 조금 있지만 이 영화는 순전히 마이클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가 혼자서 영화를 만들다시피 하는 것을 보면서 그저 감탄했을 뿐입니다. 그와의 경험으로 나도 감독 하고 싶다는 야심이 생겼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도박사>에서도 주연을 했는데 언제 나옵니까.
 
  “크리스마스에 나옵니다. 시간과 장소는 현재의 LA로, 나는 도박과 또 다른 것에 중독된 문학교수로 나옵니다. 각본은 ‘디파티드’를 쓴 빌 모내핸이 썼는데 멋있는 영화라고 자신합니다.”
 
  —당신은 TV시리즈 제작자이기도 한데 새 작품이라도 있는지요.
 
  “여러 가지 다른 계획이 많습니다. 다음 것은 HBO의 것으로 드웨인 존슨이 나오는 ‘볼러스’입니다. 마이애미의 프로풋볼 선수들의 구장 밖에서 일어나는 온갖 야단스런 얘기로 시끌벅적할 것입니다. 새 시즌이 곧 시작될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아메리칸 데스페라도>는 어떤 영화인지요.
 
  “미국의 위대한 범죄 클래식이 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실화로 1980년대 마이애미를 무대로 코카인으로 치부한 존 로벗슨과 믹키 먼데이의 얘기입니다. 나도 모하비라는 이름의 단역을 맡을 것입니다. 각본은 역시 빌 모내핸이 썼습니다. 완전한 각본을 쓴 뒤에 제작비를 조달해 경제적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문제는 돈이에요. 그러나 만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영화의 일부를 홍콩에서 찍었는데 홍콩 방문 소감을 들려주세요.
 
  “처음 갔는데 좋았어요. 하루에 여덟 끼는 먹었을 것입니다. 음식 정말 맛있더군요. 어떻게나 먹어댔는지 마이클이 나보고 절제하라고 조언을 했어요. 너무 먹어 살이 찌는 바람에 점점 옷이 몸에 꼭 끼더라고요. 그러나 좋았습니다. 그리고 도박하러 마카오에 갔지요. ‘도박사’ 준비차라고나 할까요(웃음). 거긴 다시 갈 것입니다.”
 
  —가족을 데리고 갔는지요.
 
  “아닙니다. 온 가족이 가기엔 너무 시간이 짧았어요.”
 
  —할리우드는 배신과 음모의 협잡꾼들의 세계로 알려졌는데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합니까.
 
  “난 배우라는 직업을 진짜로 사랑합니다. 이 일을 사랑하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모두들 우정과 관계에 바탕을 두고 일을 해 주기를 바라요. 따라서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요. 난 그런데 아주 서툴러요. 난 여지껏 이렇게 내가 하고픈 일을 이룰 수가 있었다는 점에서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너무 부정적인 것에 신경을 쓰면 일하기가 힘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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