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興津
⊙ 70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 70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 <잠 자는 숲 속의 미녀>를 마녀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말레피센트>.
<잠 자는 숲 속의 미녀>는 차이코프스키가 발레곡으로도 작곡했고 1959년에 디즈니가 만화영화로도 만든 어린아이들을 위한 유명한 얘기로 말레피센트(나쁘다는 뜻)는 작품 속의 공주 오로라를 영원한 잠에 빠지도록 저주한 마녀다.
이번 영화는 원작을 새로 해석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을 지닌 말레피센트가 주인공으로 이 마녀는 오로라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해 잠에 빠진 공주를 깨어나게 만들고 자신도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다.
갈색 긴 머리에 가슴 윗부분이 들여다보이는 검은 망사 발렌티노 드레스를 입은 졸리는 마른 체형이었지만 두툼한 입술과 큰 눈 그리고 윤곽이 뚜렷한 마스크 때문에 카리스마가 있어 보였다.
단정히 앉아 가끔 유머도 섞어가며 진지하면서도 명확하게 질문에 대답을 했는데 심사숙고형이었다. 졸리는 자신의 세 딸이 영화에서 어린 오로라로 나온 얘기를 할 때는 즐겁다는 듯이 깔깔대고 웃다가도 자신이 유엔을 위해 하고 있는 인류복지사업에 관해 말할 때는 시간을 오래 할애해 가며 또렷하게 설명했다.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 드레스 아래로 나온 다리를 보니 너무 피골이 상접해 “당신 밥 좀 많이 먹어야겠다”고 말해 주려다 그만뒀다.
“惡에 대항하는 길은 정의와 교육”
—우리는 살면서 말레피센트처럼 겉보기엔 악한 사람 같아도 자세히 알고 보면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영화의 재미있는 점도 바로 그 점입니다. 말레피센트가 오로라에게 한 짓은 가공스럽고 악한 짓이지요. 영화의 요점은 그런 그를 용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 말레피센트가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내가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닌데’라고 느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까닭 없이 구박과 괄시와 오해를 받게 되면 자기 주위에 높은 벽을 쌓게 되고 마음이 차고 어두워지게 마련이지요. 이런 점은 어린아이들이 잘 이해할 것입니다. 말레피센트의 경우 그것이 극단적으로 간 것이지요.
우리는 누구나 어둡고 악해질 수 있는 경우를 만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저항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아이들이 영화에서 그런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요. 악이 자신을 점령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위에서 악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전 유엔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자기 집이 불에 타고, 가스 공격을 받고, 손톱이 뽑힌 어머니들이 다친 아이들을 데리고 피란 다니는 것을 많이 봅니다.
분명히 이 세상엔 악이 있어요. 우리는 그것의 근원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진실로 대항할 길이 있는가를 찾아봐야 합니다. 그 방법이란 정의와 교육입니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의 힘을 모아 악에 대항해 싸워야 합니다.”
—당신은 배우이자 감독이며 또 인본주의 운동가인데 셋 중 어느 하나만을 고르라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인본주의적, 정치적인 일이 먼저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세 가지 일에 모두 애착을 느낍니다. 감독은 내가 스스로 역과 소재를 고를 수가 있어 좋아요. 나는 늘 역사적으로 교훈이 될 수 있는 소재를 좋아합니다. 메시지 영화지요. 그런데 배우로서는 자기가 하고픈 역을 마음대로 고를 순 없지요. 나는 말레피센트 역을 즐기긴 했지만 역사적 메시지가 있는 영화처럼 몰입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은 아이가 여섯인데 그중에 배우가 되고파 하는 아이가 있는지요?
“연기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진 않아요. 만약에 관심이 있다면 난 적극 후원할 거예요. 우리의 뜻은 아이들에게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면서 또한 영화 외에 다른 것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양한 사람이 되도록 하고파요. 아이들 중 어떤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우습고 또 어떤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심각하고 전부들 독특한 개성을 지녔어요. 매우 개성이 뚜렷한 아이들로 키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아이들의 길잡이일 뿐이지 그들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각자에게 맡길 것입니다.”
—당신 아이들의 영화에 대한 반응은 어땠습니까.
“나는 매일 밤 아이들에게 얘기를 지어내 매번 다른 목소리로 들려주지요. 내게 있어 반드시 나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은 없지요. 내가 처음에 이 영화의 각본을 읽을 때 아이들에게 내 역을 알려주고 여러 가지 음성으로 테스트를 했는데 영화에 쓴 음성은 아이들이 내가 읽는 것을 듣고 웃은 것을 골랐습니다. 영화에 내 아이들이 나올 때 나는 아이들이 웃으라고 장난치듯이 연기를 했지요. 아이들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내가 영화에서 다칠 땐 어떤 아이들은 울었지요. 난 이 영화가 아이들에게 세상은 그렇게 흑과 백으로 구분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주기를 바랍니다. 어두운 곳에 가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면 사랑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유방 절제는 아주 잘했다고 생각”
—당신은 운동가로서 세계 각지를 다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갑니까.
“아이들에게 세상을 알려주려고 가능하면 그들을 데리고 다니려고 하지요. 얼마 전 요르단에 갔을 때도 아들을 데리고 갔어요.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위험한 곳에는 혼자 갑니다. 그럴 땐 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 지도로 내가 간 곳을 찾아 왜 엄마가 사람들을 돕는지 그리고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합니다. 어떤 땐 아이들이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난한 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주라고 돈과 물건을 주기도 해요. 아이들에게 세상의 어려운 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깨닫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여름에 프랑스에서 브래드와 결혼식을 올린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입니까. 그리고 당신이 프랑스에서 포도주를 양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결혼 계획 전연 없어요. 프랑스제 포도주를 만들고 있으며 포도주에 대해 배우는 일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진짜로 배울 것이 많더군요. 브래드와 나는 포도주 마시기를 좋아해요.”
—당신에게 있어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이들을 가지기 전까지는 그 뜻을 잘 몰랐어요. 그런데 고아원에서 매독스(2002년 캄보디아 고아원에서 7개월 됐을 때 입양)의 눈을 보는 순간 내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진정한 사랑의 첫 경험입니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내가 더 이상 내 세상의 중심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타인에게 자신을 주고 그들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 내게 일어나게 해줄 것을 바라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봅니다.”
—유방 절제수술을 받은 후의 건강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주 좋아요. 난 그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의 건강 문제를 공개한 것은 다른 여자들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었습니다. 내 어머니가 젊었을 때 나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아마 지금도 살아 내 곁에 계실 것입니다. 나의 건강 문제를 공개한 뒤로 많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이 되었어요. 그들이 내가 보여준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해합니다.”
영화 <언브로큰>
—당신과 브래드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지요.
“그렇습니다. 4년 전에 제가 쓴 것이 있어요. 그것을 바탕으로 불원간 독립적이요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까 합니다. 우리 둘에게 모두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배우들인 우리에겐 도전적인 일로 내가 감독을 할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 감독 작품인 〈언브로큰〉에 관해 얘기해 주세요.
“1936년 올림픽에 미 육상선수로 참가한 루 잠페리니의 실화입니다. 그는 2차대전에 공군으로 참전, 비행기가 태평양에 추락한 뒤 물과 음식 없이 47일간을 견디다가 일본군이 주둔한 섬에 표류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2년간 포로생활을 하면서 고문을 받고도 살아남은 불굴의 인간정신의 산증인입니다.
나는 이 얘기처럼 예술과 정치·사회 문제가 결합된 소재를 좋아합니다. 내가 감독이 된 것은 내가 꼭 하고픈 얘기를 내 뜻대로 하고팠기 때문입니다. 감독의 좋은 점은 주위에 있는 훌륭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협동입니다. 책임은 무겁지만 반면에 아주 즐겁지요. 난 감독을 함으로써 변화했고 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개봉할 예정인데 특히 젊은 팬들에게 삶이 아무리 힘들고 커다란 장애에 부닥친다 해도 의지와 믿음이 있다면 괜찮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으면 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루의 것과 같은 영감을 고취시키는 얘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해하는 사람은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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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젤리나 졸리와 함께한 필자. |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첫 여자는 나의 어머니입니다. 내가 만난 진정한 첫 여자친구는 내가 20대 때 유엔을 위해 캄보디아에서 일할 때 만난 여자들입니다. 할리우드에서 성장한 나로선 그들이 자기 대신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하나의 영감이었습니다. 그들과 나는 지금도 친구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귄 몇 안 되는 가까운 친구들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 만난 친구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서로를 밀어줍니다. 내게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준 여자들은 그 누구보다 내 딸들입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아름다운 희망과 힘과 확신과 독립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봅니다. 난 딸들이 강하고 서로 늘 연결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브래드와 아이들의 관계는 어떠며 그와 당신의 사랑은 여전합니까.
“브래드는 딸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줘요. 아들들과도 남자만의 시간을 즐깁니다. 그와 나는 아이들 앞에서 서로를 돌보고 아끼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지요. 브래드는 아들들에게 여자와 어머니를 존경하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브래드와 나의 삶은 가족이 중심입니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서로 사랑에 빠져 흥분했지만 지금은 그와 다른 가족적인 사랑이라고 불러야 좋을 것 같네요. 단순히 파트너요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닌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입니다.”
—당신에 대한 오해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난 나에 대해 쓴 글들을 읽지 않아 그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물론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그런 것에 신경을 안 쓴다는 것이지요. 이 동네에서 어떻게 오해가 없을 수 있겠어요.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들이 나를 보다 이해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저 꾸준히 자기 길을 간다면 결국은 이해받게 마련이지요. 오해하는 사람은 무시하면 돼요.”
—당신의 패션은 어떤 것입니까.
“중요한 것은 최신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실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고른 것인 만큼 밖에 나갈 때면 난 언제나 나 자신을 느끼곤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난소암 수술 예정
—난소암 수술도 받는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인지요.
“네, 사실입니다. 그러나 수술 문제는 내 사적인 일로 수술이 끝난 후 그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할 예정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한 사람이 어머니와 아내와 감독과 배우와 제작자와 각본가 그리고 인본주의 운동가의 일들을 해낼 수가 있단 말입니까.
“나는 스케줄에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내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브래드 같은 파트너를 둔 것이 큰 행운입니다. 나는 일할 때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도 있고 또 삶의 여러 가지 일을 하기 위해 비교적 자유롭게 내 시간을 낼 수가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지 못하고 남에게 유용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난 내게 주어진 삶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그것이 내가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이며 또 내 기쁨입니다.”
—난민 구호활동에 관해 말해 주세요.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가 할 일에 대해 알기 위해 브리핑을 받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나는 현장에 가면 곧바로 난민들을 직접 만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들의 고충을 듣곤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애로사항과 메시지를 전파하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난민들을 찾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일상의 일을 떠나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염려하고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