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 하게 하는 나라

  • 글 : 최병묵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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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가 미국 미주리주에서 1년간 기자 연수(硏修)를 할 때 일입니다. 제 아들은 6학년을 캐나다 토론토에서 공부하고 이어 7학년을 미국 미주리주에서 다니게 됐습니다. 미들 스쿨(middle school·2년 과정 중학교)에 편입한 것이죠.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은 수학 담당교사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았습니다. 방과 후 수학 클럽인 매스 카운트(Math Counts)에 가입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마도 수학적 자질(資質)이 보인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클럽에 가입한 아들은 곧바로 심한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매스 카운트에서는 한국이나 캐나다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통의 7학년 학생들은 배우지 않은 2차 방정식이나 2차 함수는 물론이고 인수분해, 순열, 조합, 복소수(複素數) 등을 알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답답했는지 저한테 이런 것들을 물어봤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5년이 지나니 2차 방정식조차 풀지 못하겠더라고요. 제가 “어떻게 중학교 1학년이 이런 것을 배우지. 한국에서는 고1이 돼야 배우는 건데…”라며 한번 친구들에게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매스 카운트 멤버들은 7학년 초부터 대수(Algebra)라는 ‘교내 과외’를 듣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다 배운 내용이라는 겁니다. 한국 기준으로 따지면 엄청난 선행(先行)학습인 셈입니다. 그것도 학교에서 거의 공식적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얘기죠. 아들은 수학 교사한테 대수 강의를 뒤늦게나마 들을 수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교사와의 면담 결과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대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자격 시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7학년이 되기 6개월 전쯤인 6학년 2학기 때 ‘개념 이해’, ‘기호 해석’, ‘상관관계’, ‘응용’ 등 4개 분야의 수학 시험을 쳤다고 합니다. 모두 다 응시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수학 교사의 추천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 학교에서 대략 25~30% 정도가 시험을 보더라고요. 미주리주의 경우 Iowa Algebra Test라는 것을 칩니다. 각 분야에서 80% 이상, 평균 90% 이상의 성적을 거둔 학생에게만 대수 강의를 들을 자격을 준다고 하네요.
 
 
  선행학습 시키는 미국 미주리주
 
  강의는 학교 수업 시작 전, 매일 1시간씩 인근 고등학교에서 이뤄졌다고 합니다. 7학년뿐만 아니라 8~9학년 과정도 다룹니다. 그러니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고1 공통수학에서 배우는 것을 미주리주 일부 학생들은 중1 때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그 학교에서는 25% 정도의 학생이 ‘자격 시험’에 응시, 절반쯤이 ‘통과’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6학년을 캐나다에서 다닌 아들은 당연히 이 강의를 들을 자격조차 없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에 있는 고3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봐 가며 25년 전 수학 실력을 되살리고 그것을 다시 아들에게 설명해 주는 형식으로 ‘위기’를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아들이 7학년을 마칠 무렵이 되자 이번에는 고교(미주리주에선 6·7학년이 미들 스쿨, 8·9학년이 주니어 하이스쿨입니다)에서 수학 교육 안내장이 날아왔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이러이러한 수학 교육이 있으니 미리 대비하라는 친절한 레터였습니다.
 
  그걸 보니 고교 수학 과목의 클래스를 아예 나눠놓았더라고요. Honor(일종의 우반) 클래스가 별도로 있고, 일반 학생들의 반이 있었습니다. 일반 학생반의 커리큘럼은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공통수학에서부터 미적분학의 기초까지만 배우도록 돼 있었습니다.
 
  반면 Honor 클래스는 일반 학생들이 12학년(고3) 때까지 들어야 하는 수학을 11학년까지 1년 앞서 마친 뒤, 12학년 때는 미적분학을 심화(深化) 과정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자녀로 둔 미국 학부모에게 물어보니 “미주리에서 수학 Honor 클래스를 듣는 애들이 대학에 간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귀띔을 해줬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예 중학교 때부터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적어도 수학 과목에 관한 한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경우 이런 것도 우열반이라며 금지하고 있죠.
 
 
  ‘줄세우기’식 교육도
 
  미주리주에서 또 하나 놀란 것은 수학 경시(競試)가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매스 카운트 클럽을 예로 들면 학교에서 시험을 치러 상을 주고 수상자는 시→지역(county)→주→전국 경시에 진출을 하더라고요. 이 외에도 이런저런 수학 경시가 3개나 더 있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수학을 잘하는 학생의 경우 2학기에는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여기저기 시험을 보러 다녀야 할 정도로 바쁩니다. 부모는 차 운전해 주느라 주말 일정을 반납해야 할 정도고요.
 
  저도 아들과 함께 미주리주 주도(州都) 제퍼슨시티에서 열린 주(州) 경시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색다른 광경을 봤습니다. 1차 필기시험을 치러 10명을 뽑은 뒤 이들을 상대로 퀴즈식 2차 시험을 보더라고요. 1등과 10등을 상대로 칠판에 낸 문제를 먼저 푼 사람이 살아남는 식입니다. 승자는 다시 2등이나 9등과 겨뤄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최종 승자를 결정해 상을 줍니다. 2차시험 때는 문제풀이를 하는데 학부모도 참관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학생이 답을 맞히면 박수도 칩니다. 시험이 아니고 축제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학교별 성적도 낱낱이 공개합니다. 5~10명씩 참가한 학교 학생의 평균을 내서 순위를 발표합니다. 한국의 일부 교육학자들이 배척해야 할 1순위로 꼽는 ‘줄세우기’식 딱 그대로죠.
 
  미국 미주리주는 중부의 전형적인 시골입니다. 그렇지만 미주리 대학이 있는 컬럼비아시티는 미국 전체에서 그리 빠지지 않는 교육도시라는 평가입니다. 한국의 상당수 교육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반(反)교육적’이라고 지목하고 있는 일들을 그들은 버젓이 행하고 있었으니 제가 어찌 충격을 받지 않겠습니까. 1993년부터 2년 넘게 교육 기사를 썼던 저로서는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때부터 몇몇 교육전문가들이 미국의 선진적인 교육이 어쩌고… 하는 것을 믿지 않게 됐습니다.
 
 
  선행학습을 惡으로 규정하다니…
 
  국회 교육위원인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 등 66명이 선행학습 금지를 명문화한 ‘공교육정상화 촉진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냈습니다. 5월 1일부로 교육위에 넘겼습니다. 선행학습 금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교육공약이기도 합니다. 이를 보면 대한민국 정부는 곧 법으로 선행학습을 하지 못하도록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법안은 공교육이 정상화되지 않는 이유를 선행학습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조항마다 “선행학습을 실시하지 않도록…”, “교육과정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등의 표현이 나옵니다.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학교장은 선행학습 예방 목적의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학교는 편성된 교육과정을 앞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서는 안 된다. 방과 후도 같다” 같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빵틀에서 구워내는 빵’처럼 학생들을 만들겠다는 발상으로 보입니다. 더 맛있는 빵, 더 고급스런 빵, 더 모양이 좋은 빵은 나오지 못하도록 국가에서 관리하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공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야말로 수백 가지일 것입니다. 선행학습을 주범인 양 몰아세워 ‘처벌’하려는 것이야말로 포퓰리즘입니다. 능력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앞서가는 공부를 시켜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런 학생은 천천히 자기 스케줄에 따라 공부하면 됩니다.
 
  게다가 선행이란 것의 기준도 모호합니다. 5를 세 번 더하나 5에다 3을 곱하나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서 더하기를 가르친다고, 곱하기를 하는 학생을 막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희극적입니까.
 
  교육처럼 논쟁적인 주제가 없습니다. 정답이 없으니까요. 그걸 ‘이게 정답이다’라면서 법으로 뭔가를 규제하겠다는 발상을 하는 것이 곧 교육 발목 잡기입니다. 선행학습 예방 교육을 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두뇌 발달 교육을 시키든지 아니면 수학 문제 하나 더 풀게 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공부를 미리 더 하겠다는데 못 하게 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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