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V에 전염된 케냐 소년 조지, “커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 우간다 아사무크 난민촌 등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1800개 모기장 설치
⊙ 콩고 난민 엔젤, “콩고에서는 군인들이 법”
⊙ 내전과 학살의 상처에서 벗어난 르완다, 재건 과정에서 피그미족 소외시켜
文鐘星
⊙ 30세.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6년간 약 80여 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5월
미국 뉴욕에서부터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 북미와 중남미를 거쳐 현재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
⊙ 저서 : 《비전청년의 세계일주 - 자전거 타고 쿠바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일생에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 멕시코》.
⊙ 우간다 아사무크 난민촌 등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1800개 모기장 설치
⊙ 콩고 난민 엔젤, “콩고에서는 군인들이 법”
⊙ 내전과 학살의 상처에서 벗어난 르완다, 재건 과정에서 피그미족 소외시켜
文鐘星
⊙ 30세.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6년간 약 80여 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5월
미국 뉴욕에서부터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 북미와 중남미를 거쳐 현재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
⊙ 저서 : 《비전청년의 세계일주 - 자전거 타고 쿠바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일생에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 멕시코》.

- 피그미족이 사는 집. 내부는 좁고, 습하며, 먼지로 가득하다.
자전거로는 안 되겠다. 나는 동아프리카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로 이동해서 다시 탄자니아를 거쳐 케냐로 돌아오는 루트에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일전에 모 방송팀에서 우간다 가는 길에 방송 카메라를 뺏겼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까지 잘 왔다고 해도 한순간 방심이 모든 여정을 망칠 수 있다.
밤늦은 시각, 나이로비 버스터미널은 땀과 오물 냄새가 뒤범벅되어 훅 달아오른 열기로 가득하다. 도깨비 시장을 방불케 하는 삶에 지친 냄새가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저마다 고단한 사연이 가득한 퀭한 눈의 사람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다행히 몇몇 배낭여행자가 있어 슬며시 그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이로비 버스터미널의 밤
버스 티켓을 끊었다. 목적지가 바뀌어 표 교환을 요구하자 직원이 흔쾌히 응해준다. 그러나 거스름돈을 내주진 않는다. 수도 캄팔라가 아닌 쿠미로 행선지를 바꿔 차액이 8000원 정도 난다. 직원은 연방 도리질만 한다.“매표소에서 변상해 줄 의무가 없어요. 버스 회사에서 직접 환불받으세요.”
“아니, 방금 전에 티켓을 끊었는데 왜 환불이 안 된다는 겁니까?”
“우리는 그저 표를 대행해서 팔아주는 것뿐, 하자가 있으면 손님이 직접 회사에 요청해서 환불을 받아야 합니다.”
약간의 승강이가 오갔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퉈봐야 나에게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불합리한 것처럼 보여도 그들의 논리를 따라야 하는 게 여행자의 숙명이다. 나는 체념하고 어서 이 불안한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
예정 시각보다 한 시간 반 늦게 버스가 나타났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간단히 짐 검사를 마친 후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댄다. 나는 표삯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피곤 때문에 금방 곯아떨어졌다. 국경에서 50달러의 비자피(fee)를 내고 여권 검사를 하는 것 외에는 자는 것만이 능사였다. 창가로 스며드는 눈 부신 햇살에 눈을 떴을 땐 내가 디딘 땅이 우간다가 되어 있었다.
HIV에 전염된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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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V에 감염된 소년 조지는 선생님이 되는게 꿈이다. |
꿈 많은 열두 살 소년 조지는 불행하게도 부모의 무지로 HIV에 전염됐다.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고, 말도 더듬게 되었다. 게다가 HIV 바이러스가 뇌를 공격해 정신착란까지 일으켰다. 작년에는 자신이 사는 집에다 불을 질렀단다. 한 구호단체 도움으로 MRI 검사를 받았는데 왼쪽 뇌세포가 이미 괴사(壞死) 상태라는 참담한 결과를 얻었다.
엄마는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고, 새엄마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상태다. 친구도 없고 언제나 혼자다. 아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임에도 조지를 따돌렸다. 무섭게 아프니까…. 한때 그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닭이었다.
조지의 놀라운 점은 언제나 웃는다는 것이다. 낯선 구호단체 봉사자들을 만났을 때도 녀석은 마냥 웃었다고 한다. 그 후 에이즈 전문의에게 진단 및 처방을 받고 꾸준히 약과 음식을 복용했다. 세상을 맑게 보는 그의 웃음이 도움이 되었던 걸까?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상당히 호전된 상태다.
여전히 아이의 걸음걸이는 서투르다. 하지만 말을 차츰 많이 하고 연필을 잡게 되면서 학교생활을 잘해 나가고 있다. 불편한 몸 때문에 수업일 수의 반이나 빠졌는데도 41명 중 20등 했다고 자랑이다. 학교에서 합동 생일 때 조지는 앞에 나와 춤을 추었다. 마음의 상처가 많이 아물었다는 반가운 신호다.
조지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간다 동부 쿠미에서 비포장 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야 한다. 조지가 사는 작은 움막 주변에서 만난 HIV 감염 아이들 역시 약 한 봉지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의 파고를 파리한 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선생님이 될 거예요”
“조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니?”
“선생님이 될 거예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너무 재미없게 가르쳐요. 그래서 수업시간이 지루해요. 왜 그렇게 따분하게 수업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넌 어떻게 가르칠 건데?”
“나는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면서 가르칠 거예요.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풋! 아마 분명 다들 좋아할 거예요. 그래요, 나는 잘할 수 있다고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무력한 시간을 보내던 고빗사위의 순간, 아이는 기적적으로 희망을 만났다. 이제 조지는 약 잘 챙겨 먹고 위생 상태와 병원 진료에 대한 주의만 지킨다면 면역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고, 꿈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도 있다.
옥수수 가루로 만든 포쇼(우간다 서민들의 주식)로 배를 채우는 조지. 가슴은 푸른 하늘로 가득 채웠다. 여일하게 웃는 녀석을 보니 작은 것에 실망하고 절망하는 것이 삶에 대한 얼마나 큰 경솔인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젠 많은 사람이 그를 안아주고, 사랑해 주고, 격려해 준다. 나 또한 거친 대장간에서 희망을 담금질하는 그에게 무한한 축복을 보낸다. 또 그의 꿈을 믿는다.
조지 같은 아이에게는 시혜적 자선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다. 조지를 만나면서 약속했다. 나도 어느 이름 모를 외로운 아이의 가족이 되겠다고. 작지만 기꺼이 사랑을 나누는 삶이 되겠다고.
떠나는 길, 나는 조지를 꼬옥 안았다. 희망을 안았다. 생명을 안았다. 조지도 나를 뜨겁게 받아주었다. 그 순수한 껴안음이 고마웠다. 상황을 뛰어넘는 믿음과 소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담담히 걸어가는 녀석을 만나면서 내 마음의 키가 한 뼘은 더 자라 있는 듯 느껴졌다.
걸음을 떼고 묘원히 멀어질 즈음 슬쩍 돌아보니 조지가 머무는 자리에 마치 설중매가 피어 있는 듯했다. 한겨울의 희망처럼, 우간다의 희망처럼. 그리고 내 시선이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안녕, 내 친구, 조지.
우간다 아사무크 난민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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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무크 난민촌에 청년들과 모기장을 함께 설치하면서. |
더디긴 하지만 점차 발전 중에 있는 우간다에서도 변방은 여전히 내전(內戰)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소년병사의 아픔이 씻겨 가고 있다지만 소년병 출신의 어른들은 평생 그 상처받은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우간다에서 빈민을 돕고 있는 기아대책 정하희 대원을 따라 조지를 만난 다음 날 아사무크 난민촌을 찾았다.
아프리카 3대 호수 중 하나인 빅토리아 호수를 끼고 있는 까닭에 이곳은 모기들의 온상지다. 최근에는 빅토리아 호수 주변 경제가 발달하면서 수질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때문에 수중 생물에 기생하는 악성 박테리아가 창궐해 호수로부터 직접 물을 끌어다 쓰는 이들에게 심각한 질병을 초래해 문제가 된 바 있다.
고맙게도 아사무크 사람들이 환대해 준다. 로컬 카운슬러로 활동 중인 오키리아가 우리를 반겼다. 올해 마흔일곱의 그는 내전의 상처를 또렷이 기억한다. 더 이상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피신해 온 이래 지금은 부지런히 마을의 대소사를 맡아보고 있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는 “당신들이 난민촌을 도우러 온 첫 외지인”이라고 했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 이들의 삶의 냄새가 콧등 사이로 시리게 스며든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차에 한가득 싣고 온 모기장을 쳐야 했다. 일단 마을 회관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여 간단히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모기장을 직접 쳐주기 위해서다. 젊은 지원자들이 여기저기서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보수 없이 노동에 참여하겠단다.
“우리 마을에 도움을 주러 왔는데 당연히 우리도 함께해야지요.”
남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땀을 흘리는데 내가 빠지면 안 된다. 한명이 움직이면 일이지만 여럿이 움직이면 기적이 된다. 모두들 기뻐하는 얼굴에 신이 난다. 특별한 일이 많지 않은 곳에서 작은 사건 하나는 큰 파급력을 가진다. 그리고 하나 둘 웃음이 시작되면서 기쁨은 전염된다.
“다음에 오면 학교 하나 세워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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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무크 난민촌에 모기장 설치 후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
일이 끝나고 나는 답례 차원에서 남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차 두 대를 동원해 난민촌으로부터 30여 분 떨어진 작은 면 단위 마을로 갔다.
늦은 점심으로 고기가 들어간 식사와 음료를 주문하고 더 먹고 싶은 사람에게 부담 주지 않기 위해 마음껏 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게 왁자지껄 흥겨운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했다. 장정 11명이 먹었는데도 30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이다.
기분 좋게 계산하고 나오는데 한 남자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그가 내 표정을 먼저 살핀다. 그러고는 영문을 모르고 있는 내게 매우 걱정스러운 투로 조심스럽게 묻는다.
“오늘 우리에게 너무 큰돈을 쓴 거 아닌가요?”
아차,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접한 한 끼 식사가 실은 그들에겐 열흘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임을 깨달았다. 행복해 하는 그들의 표정 때문에 너무 들뜬 나머지 나는 그들의 현실을 너무 쉽게 생각해 버렸다. 남자에게 괜찮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나에 대한 걱정의 보따리를 메고 식당 문을 나섰으리라.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현지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땐 항상 보이지 않게 계산하게 됐다.
“다음에 오면 혹시 학교 하나 세워줄 수 있을까요?”
교실이 없어 밖에서 수업하는 선생님이 내게 묻는다. 나는 할 수 없겠지만 그들 안에 소망이 꺾이지 않는다면 분명 이루어질 것이다. 그 한마디가 내가 아프리카에 품는 마음의 열정을 사그라지지 않게 만든다. 다시 가슴이 뛴다.
콩고 난민 엔젤과의 만남
캄팔라 버스정류장에 밤이 내렸다. 위험하다는 현지인의 충고가 있었기에 근처 YWCA 숙소에서 하룻밤 묵은 후 밤늦게 터미널에 당도했다. 역시나 르완다에 밤 버스로 떠나야 해 티켓을 끊고, 밝은 곳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콜라 한 잔 마시러 간이 수퍼에 갔다.
계산대 앞에서 여자 종업원이 계산하랴, 서빙하랴 부지런을 떨고 있다.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건네기 미안할 정도다. 손님 몇을 상대하고 나서야 내 차례가 온다. 그녀는 바쁘면서도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다. 그러고는 어색한 영어로 말문을 연다.
“커피? 빵?”
“콜라 하나 주세요.”
나는 냉장고를 가리키며 손짓을 했고, 그녀는 콜라를 건네면서 발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난 콩고 사람이에요. 도망쳐 나왔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밤 9시에 일이 끝난다기에 30여 분 정도 기다리겠다고 했다. 어차피 버스는 11시 출발이다. 잠시 후 그녀가 일을 마치고 내 옆자리에 앉는다.
“제 이름은 엔젤이에요. 콩고에 있을 때 부모님이 죽었어요, 군인한테요. 그래서 딸 조이만 데리고 피란 왔어요. 정말 끔찍했어요.”
가발 속에 그녀는 짐짓 슬픈 표정이지만 이내 밝은 온기를 되찾는다. 나는 그녀에게 차파티를 대접했다. 일당 4달러50센트를 버는 그녀로서는 자신이 일하는 상점에서 무엇 하나 사 먹기가 쉽지 않다. 그녀는 차에 설탕 3스푼을 넣는다. 내가 건강에 좋지 않다며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그녀가 대꾸한다.
“그런 당신은 콜라를 마시잖아요? 호호호.”
그녀의 얘기는 계속된다.
“콩고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땅이에요. 어린 시절엔 마을 친구들과 강에서 놀기도 하고, 다툼 없이 참 평화로웠어요. 그러나 이젠 갈 수도 없을뿐더러 가고 싶지도 않아요. 언제부터인지 치안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한번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왔다 하면 아비규환이에요. 같은 종족이라도 갖은 트집을 잡아 괴롭히거든요. 먹을 것조차 없는데도 군인들이 쳐들어와 돈을 달라고 요구하고 그에 불응하면 바로 즉결조치를 가합니다. 죽이는 건 손쉬운 일이에요. 여자들은 버젓이 남편이 있는데도 성(性)노리개가 되곤 합니다.
우린 의지할 곳이 없었어요. 정부는 군인들과 겉으로만 타협해 우리를 보살피지 않았고, 공공기관은 총 앞에서 그저 장님이나 벙어리가 될 뿐이었어요. 콩고에서는 군인이 곧 법입니다. 콩고에 가고 싶다고 그랬죠? 아마 당신이 자전거를 타고 콩고에 들어간다면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요. 입국심사대를 지나자마자 현지인들은 당신의 나체쇼를 관람할 수 있을 겁니다.”
조이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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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고에서 우간다로 피란 온 엔젤. 그녀의 소망은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
“지금 생활로는 조이 학교 보내기도 힘들어요. 제 바람은 그저 딸과 행복하게 사는 것뿐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영국에 가고 싶어요. 아프리카인들에게 그곳은 최고의 꿈이지요. 그곳에만 간다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예요. 바꿔 말하면 할 줄 아는 게 없거든요. 왜냐하면 콩고에서 배운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곳 우간다는 잠시 살아가는 기착지일 뿐이에요. 르완다에는 일자리가 없고, 케냐로 가기엔 돈이 없어요. 지금은 비록 어렵지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절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우리 딸 조이를 생각해서라도요.”
그녀의 의지는 결연해 보였다. 그녀는 얘기 도중 우간다 남자에 대해 극도의 불신을 보였다. 짐작건대 아이의 아빠가 우간다 남자일 개연성이 농후했다. 엔젤은 심각한 대화 중일 때도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젠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찾은 듯 보인다. 특히 딸 얘기를 하면서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영어를 잘하는데 반에서 늘 상위권이란다. 자식 공부는 세상 어느 부모나 한결같은 삶의 주된 관심사다.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나는 그녀에게 조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다. 괜찮다던 그녀에게 몇 번 더 물어보자 마지못해 사과주스를 가리킨다. 하루 일당의 반값이나 되는 비싼 가격이니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사과주스를 사주며 안녕을 고했다.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캄팔라 버스터미널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녀를 편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없다면 자신의 바람대로 어디론가 떠나 있을 것이다.
르완다 행 버스에 몸을 싣고 출발을 기다리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휴대폰 단말기를 구입해 나라 이동할 때마다 칩을 바꿔 끼워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연락하는 사람들과 소식 나누기가 용이하다. 놀랍게도 엔젤이었다. 그녀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누군가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미스터 문이시죠? 주스 잘 받았어요, 고마워요.”
정말 뜻밖의 목소리다. 그저 인사치레로 건넨 전화번호에 그녀는 집에 잘 도착했다며 딸에게 연락을 권유한 것이다. 조이의 목소리는 너무 똘망똘망했고 영어 발음도 썩 훌륭했다. 아이는 내게 여행 잘하라며 격려해 주었고, 그렇게 짧았지만 엔젤과의 인연은 국경을 넘으면서 아쉽게 끝이 났다.
“그래, 열심히 공부해서 꼭 네가 원하는 꿈을 이루렴.”
흔해 빠진 이야기지만 조이와 통화하면서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엔젤의 희망인 조이, 어찌 보면 모녀가 투명한 수채화 같다. ‘천사’ 옆에 늘 함께하는 ‘기쁨’. 콩고의 혼란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콩고를 가보려던 내 생각은 엔젤을 만나면서 깨끗이 접어야만 했다.
안정을 되찾은 르완다
“스트라이크 아웃!”
흑인 친구 하나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다른 친구는 친구의 허무한 아웃이 우스웠는지 깔깔대며 웃는다. 둘이 서로 마주보며 웃음보를 터트리는데 하얀 치아가 눈부시게 도드라진다. 나까지 그만 그 웃음에 전염된다.
“후후, 이번엔 내 차례야. 어이, 친구들, 잘들 보시게.”
타석에 들어선 나는 잔뜩 폼을 잡고 마운드의 투수를 노려본다. 나의 진가를 이 친구들에게 보여줄 시간이다. 구름 아래 관중석의 평화로운 시선은 타자인 나를 향해 있다.
제노사이드(genocide·대량 학살)의 아픔이 서린 르완다. 1994년 4월 6일 수도 키갈리에서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이 탑승한 대통령기가 격추되어 그가 사망하자 잠시 멈췄던 부족 간의 내전이 다시 발발한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후투족으로 구성된 정부군 병사들은 투치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개시, 50만여 명을 학살한다.
내가 직접 만난 르완다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불과 16년 전에 내전이 있었던 아프리카의 나라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도심에는 고층 건물들이 연이어 건설 중이었고, 무선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사회 인프라가 급성장하면서 최근에는 동부 아프리카 최초로 24시간 마트까지 생겨났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질서를 가장 잘 지키는 동시에 특유의 발랄함과 유머러스함으로 외부인을 격의 없이 대한다. 텃세도 없다. 더구나 동아프리카 5국(르완다, 케냐, 탄자니아, 부룬디, 우간다) 중 범죄율이 가장 낮을 정도로 치안이 안정되어 있다.
무엇이 이토록 그들을 강력하게 변화시켰을까? 어떻게 르완다라는 작은 나라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상처로부터 회복을 넘어서 미래를 향한 힘찬 도약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르완다 소년들과의 야구시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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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완다 누헨게리에서 학생들과 야구 경기를 하다. |
이곳에서 봉사하는 중에 나를 초대해 준 코이카(KOICA) 최승백씨, 그리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간단히 캐치볼을 하려는데 생경스런 눈동자로 바라보는 현지인들이 맘에 걸려 어울려 하기로 했다. 지원자를 뽑자 올리베르와 모세가 가장 적극적으로 임한다.
녀석들은 발로 하는 축구는 곧잘 하면서도 글러브와 배트를 사용하는 야구는 낯설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운동과 노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에서 나오는 파워와 유연함으로 기술적 약점을 보완한다.
한 시간 정도 몸 풀기를 끝내고 야구 경기에 들어갔다. 두 팀으로 짜기 어려워 외야수 1, 2, 3 → 내야수 1, 2 → 포수 → 투수 → 타자 → 외야수로 로테이션하기로 했다.
모두들 진지한 표정으로 임하지만 사실 실력은 형편없다. 친목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기록의 결과보다는 과정의 성실함을 더 중요시한다. 때문에 못 때려도 격려가 나오고 잘 때리면 서로 환호를 질러준다. 이런 분위기에서인지 올리베르와 모세는 금세 야구에 몰입한다.
녀석들은 피칭이 엉성한데도 처음 쥐어보는 야구공으로 곧잘 삼진도 잡아낸다. 타고난 어깨 힘 덕분이다. 타격할 때 스탠스는 불안하지만 한 번 제대로 맞은 공은 외야 멀리까지 날아간다. 그러나 기술적 약점 때문에 변화구엔 거의 손을 못 댄다. 그리고 내 차례.
“스트라이크 아웃!”
배트가 허공을 가르는 동시에 이때다 싶은 관중의 격한 외침, 나 역시 그들과 동일하게 삼진을 먹었다. 모두들 즐거워했고, 비가 올 때까지 그렇게 우리는 흠뻑 땀을 흘렸다. 그리고 그라운드 위에서 사자의 심장을 가지고 서로의 체온을 뜨겁게 달구었다.
“야구 같이 해서 기뻤어요. 다음에 기회 되면 또 했으면 좋겠는데….”
처음 만난 동양인 친구들과 어려움 없이 낯선 스포츠를 함께 한 올리베르와 모세에게 어느새 정이 갔다. 잠깐의 만남은 늘 인스턴트 음식처럼 달콤하면서도 허전하다.
그들과 폭우 속 뜨거운 안녕을 고했다. 그러면서 오늘 야구 경기에서처럼 르완다의 새 시대를 여는 멋진 세대가 되기를 또한 진심으로 소망했다.
피그미족은 이제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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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그미족 마을 방문. 성인 여자들의 키가 140cm 정도다. 너무나 순박해 싸울 줄도 모르고 늘 피해자의 입장에 서 있다. |
르완다 정부는 최근 심혈을 기울여 경제개발 계획에 착수해 각종 제반 시설을 정비하고 있다. 이 나라의 롤모델이 다름 아닌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다.
현재 우리나라 KT가 들어와 르완다 인터넷망을 혁신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영토가 작은 르완다 전체적으로 각종 건축, 토목 건설을 활성화해 도시기반을 급속도로 마련하고 있다. 키갈리 시내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고, 르완다 내전 이후 국민 모두가 상처를 잊고 빨리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는 분위기다.
이 상황에서 가장 소외되는 종족이 바로 피그미족이다. 도시개발의 여파로 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다른 마을로 이전시켜 준다는 공언을 했지만 보상금 한 푼 받지 못하는 등 이미 몇 차례 약속을 깨뜨렸다고 한다.
이들은 가급적 다른 종족과 부딪히지 않으며 조용히 농사를 짓고 살아갈 정도로 성격이 지극히 온순해 싸울 줄도 모른다. 주거 문제로 부족이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그나마 용기를 낸 피그미족 대표가 항의를 했지만 돌아오는 건 죽음뿐이었다. 목소리 한 번 낸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이후 르완다에서는 누구도 정부 측에 강력하게 항의하지 못하고 있단다.
이들의 집은 어둡고, 좁았다. 잠자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만이 집을 이루는 요소였다. 도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이들의 마을 뒤편으론 옥수수밭이 일구어져 있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염소나 닭 따위의 가축을 분양하는 일이다. 그나마 이들의 생계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다.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피그미족의 눈물은 특별하다. 종족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피그미족은 어디로 가야 할까? 밀림에서 쫓겨나 점점 더 척박한 땅으로 내몰리는 그들, 더 이상 성장의 논리에 무참히 짓밟힌 그들의 아픔이 없었으면 한다.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아프리카의 내일은 정말 요원한 일인 걸까?
26시간 지옥행 버스를 맛보다
나는 이후 부룬디를 포함한 동(東)아프리카 전역을 돌며 약 1800여 개의 모기장을 더 설치했다. 탕가니카 호수를 두고 콩고와 탄자니아가 있는데 콩고 난민들을 만나는 데는 실패했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구호단체와 일부 서양 선교사들에게 주어진 방문허가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탄자니아 서부 키고마에서 20년 가까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크리스 선교사 가정과 교제를 갖고 지친 여정에 달콤한 쉼을 얻었다.
키고마에서 다르에스살람까지 가는 기차와 버스는 하루 한 대가 있다. 그나마 기차표는 항상 매진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버스표도 하루를 기다린 끝에 취소된 좌석 하나를 겨우 구해 예정일 다음 날 출발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장거리 버스는 늘 그렇듯 그들의 체취로 가득하다. 누가 보면 이삿짐을 나르는 버스로 착각할 정도다. 버스 안에서 닭이 꽥꽥 소리를 지르니 말 다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는다. 다들 같은 처지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버스는 그야말로 지옥행이다. 포장과 비포장도로를 지루하게 달리는 건 둘째 치고, 우선 의자가 딱딱해 허리에 오는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의자가 젖혀지지도 않아 밤새 불편한 자세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러나 압권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전날 오후 늦게 출발한 차는 다음 날 저녁에야 도착했다. 무려 26시간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하지만 버스엔 화장실이 없다. 차는 딱 세 번 정차했다. 말이 세 번이지 신진대사가 활발히 일어날 때면 그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다. 다들 무덤덤한 표정에 놀라고, 어떻게 버티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언제나 총알처럼 튀어나간 건 바로 나다.
후끈 달아오른 열기에 아기가 보채며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 닭이 홰를 치는 소리, 사람들의 체취와 각종 음식물의 냄새. 아프리카의 버스는 모든 것의 혼란 속에 거짓말처럼 평화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26시간의 시간은 정말이지 아득했고, 다르에스살람을 거쳐 다시 나이로비까지 갈 때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이제 아프리카 종단의 마지막 여정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