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말특집] 르포 | 港都 부산의 현재와 미래

문화도시 향한 부산의 천지개벽 시작됐다

  • : 김태완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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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항만·물류·관광·컨벤션·지식서비스 등 그린 코드를 중심으로 한 산업 재편의 뜨거운 바람이 일고 있다. 20년 후 이 재편이 완성될 경우 부산은 돈과 사람과 기술이 몰려들고, 문화의 힘이 살아 꿈틀대며 사람들이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는 품격 높은 해양도시가 되어 있을 것이다.

⊙ 랭킹 2위 도시 위협받는 부산, 제조업 탈피하여 국제항만·영상영화 도시로 탈바꿈 시도 중
⊙ 거친 해양성 기질… 독불장군, 근현대사의 고비마다 저항성 일궈내
⊙ 센트럴 베이와 부산신항으로 동북아의 물류 허브 꿈꾼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부산항. (사진제공=부산시)
4박 5일 동안 부산을 걸었다. 걷고 생각하며 이곳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을 만날수록 부산은 다채로웠다. 이 항구도시는 흥미롭게도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고루 간직하고 있었다. 산 중턱까지 들어선 낡은 가옥이 작은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고, 한쪽에는 거대한 마천루가 들어서 있었다. 여전히 자갈치 아지매는 싱싱한 광어의 배를 갈라 횟감을 뜨고 부산의 술인 ‘시원 소주’를 팔았다.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을 둘러보았다. 콘크리트 대신 보도블록이 새로 깔리고, 말끔하게 단장된 횟집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한쪽에는 낡은 점포가, 또 다른 쪽에는 새로 지은 건물이 부산의 어제와 오늘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재래시장을 걷자니 아무에게나 ‘오이소’라는 말을 연발한다. 그러고 보니,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는 부산의 살아 있는 구호다. 억척스런 자갈치 아지매들은 서울내기처럼 나긋나긋하게 ‘사세요’라고 하기보다 질박한 사투리로 ‘사이소’라 해야 마땅하다.
 
  부산의 북항(부산시 중구 중앙동 4가)은 부산항 중의 부산항이다. 이곳은 과거 현해탄을 건너는 유일한 항구였다. 제주 고현 옥포 장승포를 오가는 연안 여객선 선착장도 북항에 있다. 일제 강점기, 배고픈 부두 노동자가 하루 품삯을 벌던 곳도 이곳이다.
 
  지난해 말부터 재개발이 시작된 부산항 중앙부두는 을씨년스러웠다. 텅 빈 부두에 바다만이 짙푸르렀다. 연약지반 처리를 위한 바지선 두 척이 멀리 보이고, 덤프트럭이 바다의 입 속에 자갈을 쏟아붓고 있었다.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그 위로 갈매기 몇몇이 날고 있었다.
 
  원래 부산항 자리는 오징어와 갈치, 볼락, 노래미가 많이 잡히는 부산 토박이 어민들의 어장이었다. 부산 중구와 동구의 앞바다 매립은 1902년에 시작돼 1909년에 마무리됐다. 매립에 쓰인 흙은 인근 영선산에서 퍼다 날랐는데, 매립이 끝날 무렵 산봉우리 하나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일제는 1910년부터 1918년까지 해안에 돌을 쌓아 지금의 북항 제1부두 지역 304만1336m²(92만 평)에 항만시설을 갖추었다.
 
  그런 부산항이 다시 한 번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오는 2015년 마무리될 예정인 북항 재개발 사업은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추진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20세기 초 일제가 부산항을 열어 세계와 소통하는 길을 열었다면, 북항 재개발은 부산이 세계적 항만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役事(역사)다.
 
 
  北港의 천지개벽 시작됐다
 
부산시 이영활 경제산업실장.
  李寧活(이영활·51) 부산시 경제산업실장은 “개항 이래 우리나라 국제교역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부산항이 재개발되면, 국제 비즈니스·해양관광 기능을 가진 유라시아 관문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업을 통해 부산역 주변의 낙후된 原道心(원도심)을 새롭게 개선, 부산의 미래를 새로 그리게 될 것”이란 말도 보탰다.
 
  원도심은 피란민이 정착해 세운 광복동 남포동 동광동 중앙동 일대를 일컫는다. 그러고 보니, 멀리 조가비 같은 가옥이 산허리까지 빽빽이 들어서 바다를 굽어 보는 듯하다.
 
  도시에 매료당하고 구경하러 가게 하는 힘은 거대한 빌딩이나 화려한 컨벤션센터, 확 트인 8차선 도로에 있지 않다. 낡은 세월이 묻은 사연과 그 사연이 만들어 낸 공간의 향기다. 북항 재개발과 원도심 재개발은 서로 톱니바퀴처럼 물려 있지만, 이 도시의 성쇠와 가난, 저항, 흥취까지 불도저로 밀어선 곤란하다.
 
  북항 재개발 사업은 사업비만 8조5190억원의 어마어마한 규모다. 연안부두~제4부두 일대 152만7247㎡(46만 평)를 매립한 뒤 항만시설, 복합항만, 상업·업무, IT·영상·전시, 해양문화, 복합도심이 들어선다. 바다 매립 등 부지조성은 정부가, 기반시설 등 건물은 民資(민자)로 짓는다. 이 실장은 “원래 사업기간이 2020년까지였지만 지난해 12월 22일 ‘한국형 뉴딜 10대 프로젝트’로 선정되면서 사업기간이 5년이나 단축됐다”고 귀띔했다.
 
  재개발 현장을 둘러보았다. 육지 쪽에서 중앙부두로 흘러내리는 하천과 빗물을 서쪽 부두로 빼내기 위한 배수로 건설을 동광건설이 맡고 있었다. 林憲炅(임헌경·43) 동광건설 현장소장은 “재개발이 끝나면 130년 역사를 지닌 부산항의 면모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며 “침체된 지역경제도 회복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부산 중앙동에 위치한 부산항만공사 재개발사업단 12층 사무실은 북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다. 재개발사업단 宋貞和(송정화) 차장이 조감도를 펴놓고 미래의 북항을 조목조목 그려 보여줬다. 그녀는 “낡은 항만 공간을 개발해 미래형 복합 해양도시 조성이 목표”라며 “항만이 지닌 수변공간을 효율적으로 재이용해 휴양, 위락, 문화공간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동행한 부산시 홍보담당관실 李榮鎭(이영진·42)씨가 “앞으로 부산이 무얼 먹고살지 해답이 보이질 않느냐”고 말했다.
 
 
  상전벽해의 현장 부산신항
 
  북항에서 차를 달려 부산신항에 도착했다. 신항은 부산 강서구 가덕도 북안과 경남 진해 용원·안골동, 웅동만, 제덕만 일대에 펼쳐져 있다. 현장에 가 보니 거대한 규모에 입이 딱 벌어졌다. 신항개발의 총 사업비는 무려 9조1542억원(정부 4조1739억원, 민자 4조9803억원)이다.
 
  필자의 눈을 압도하는 것은 北(북) 컨테이너 부두의 거대한 집게 팔이었다. 힘이 한층 더 세진 ‘골리앗(탠덤 크레인)’은 기존 크레인보다 시간당 처리 능력이 30% 가량 향상됐다고 한다. 쉴 새 없이 마치 종이상자 다루듯 컨테이너를 들었다 내렸다 재주를 부렸다.
 
  그 옆으로 24시간 운영되는 무인 자동화 크레인이 양손잡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혼잣말을 하듯 윙윙 울리는 크레인의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부산신항만㈜의 안전보안팀 제민규씨는 “크레인 높이가 40m로 아파트 13층 정도 높이”라며 “먼저 개장한 9개 선석 가운데 3개 선석이 무인 자동화 시설을 갖췄다”고 했다. 부산신항만㈜은 삼성물산과 두바이 항만운영업체인 DPW가 최대주주로 참여한 다국적 회사다.
 
  신항은 먼저 ‘북 컨테이너’ 부두를 완공, 지난 6월 13선석이 모두 개장됐다. 향후 ‘南(남) 컨테이너’와 ‘西(서) 컨테이너’ 부두공사가 완료되면 모두 30개 선석을 갖추게 된다.
 
  부산항만공사 尹正健(윤정건) 신항홍보관장은 “30개 선석은 지금까지 부산항에 들어오는 컨테이너 전체를 소화하고도 남을 규모”라며 “동북아 경제권의 관문 항으로 국제 換積港(환적항) 기능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미에서 동북아로 오는 컨테이너 대부분이 부산항을 먼저 찾는다. 북미에서 일본으로 가는 품목도 곧바로 일본에 가지 않고 부산항에 정박, 컨테이너 박스를 내려놓는다. 부산항이 일본 항만보다 가격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신항 한쪽에선 경부선 삼랑진까지 연결하는 배후철도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길이 38.8㎞로 현재 공정률이 80%를 넘었다고 한다. 제민규씨는 “부산신항 건설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2011년 965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2015년 1062만TEU 등 신항으로 들어오는 컨테이너 물량 중 약 20% 정도가 철도를 통해 운송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신항 배후에는 ‘동북아 허브항’에 걸맞은 규모의 국제산업물류단지와 첨단도시가 들어선다. 최근 그린벨트가 해제된 신항 뒤편 낙동강 하구 강서지역 일원 33㎢(1000만 평)가 천지개벽할 날도 머지않았다.
 
  이영활 실장은 “물류단지와 첨단도시 건설을 위해 총 11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했다. 면적은 여의도(8.48㎢)의 4배에 달한다.
 
  광역산업단지(20㎢), 복합물류단지(9㎢)와 함께 국제업무, R&D, 교육, 관광, 주거용 단지가 들어설 지식창조도시(4㎢)도 배후지에 들어선다. 연간 소득 5만 달러, 상주인구 30만명의 국제도시를 만든다는 매머드 구상이다.
 
  윤정건 관장은 “국제 컨테이너 主(주) 항로상의 중심항(Hub-Port)의 배후에 비즈니스 도시와 국제복합물류단지,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서면 부산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 거점이 될 게 틀림없다”고 했다.
 
상전벽해를 꿈꾸는 부산 신항. 현재 13선석이 완공돼 가동 중이고, 2015년까지 총 30선석이 건설된다.
 
  부산과 경남의 갈등
 
부산상의 이경훈 상근부회장.

  이영활 경제산업실장도 “그동안 부산의 고질적인 용지난으로 공장이 역외로 떠나갔지만, 부산신항과 배후 도시·시설이 건립되면 떠났던 공장과 사람이 부산 품에 다시 안길 것”이라면서 “이게 바로 미래의 부산이 먹고살 생존의 길이요 성장동력”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3년 부산·진해가 경제자유구역(FEZ)으로 묶이고 ‘부산·진해 경제자유무역청’이 새워졌지만, 신항 부두 경계를 두고 부산과 진해가 신항 관할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청구까지 낼 정도로 대립각을 세웠다.
 
  최근에는 남강댐 물 공급,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사이에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수년간 광양과 인천·평택·당진항 등에서 컨테이너 전용부두를 다퉈 개발해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 집중도는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부산에서 만난 해양전문가 중에는 정부의 항만정책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부산발전연구원 金瀅均(김형균·50) 정책협력처장은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여러 지자체에다 ‘멀티 포트’를 만들어 相生(상생)시키겠다고 하는데 ‘구호’로서는 적합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부산은 철강의 포항, 자동차·조선의 울산, 항만물류·조선기자재의 부산, 기계의 창원, 조선의 거제를 아우르는 동남권 산업 벨트의 중심으로, 세계적인 산업 클러스터 형성이 가장 용이한 지역이다.
 
  부산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한 李京勳(이경훈·59) 부산상의 상근부회장은 “부산은 동북아 통합 교통망 중심 도시인데도 관문 공항이 없고, 시&에어(sea&air) 복합운송체제가 취약하다. 조선·기계·자동차산업 등 다양한 산업 클러스터를 보유하고 있으나 용지 부족으로 신성장 동력산업을 육성하는 데 애로가 많다”고 지적했다.
 
 
  화려했던 한 시절
 
자갈치 시장 모습. 콘크리트 대신 보도블록이 새로 깔리고, 말끔하게 단장된 횟집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한쪽에는 낡은 점포가, 또 다른 쪽에는 새로 지은 건물이 부산의 어제와 오늘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부산 강서구와 경남 진해시 일대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주변을 차로 둘러보았다. 경제자유구역은 크기가 104.8㎢에 이른다. 그러나 곳곳이 파헤쳐져 황량하고 낯설어 보였다. 신항 배후지역은 아직 허허벌판이요, 교통도 불편해 보였다. 외국인 거주지역과 병원, 국제학교가 들어선다는데 까마득한 미래 얘기처럼 들린다. 부산과 진해사람조차 이곳을 변두리 중의 변두리로 꼽을 정도였다. 경제자유구역이 설치된 뒤 5년이 지났지만 피부로 느끼는 변화의 모습이 실감 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렸다.
 
  부산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도대체 부산사람은 무얼 먹고살까. 밥벌이하러 다들 부산을 떠난다는데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은 괜찮은 걸까.
 
  한때 부산의 모습은 화려했다. 수출품목의 대부분이 부산항을 통해 빠져나갔다. 부산의 신발과 합판, 가발, 섬유, 금속, 기계부품산업이 급성장하면서 八道(팔도) 사람을 불러 모았다. 부산은 일자리가 풍부한 기회의 땅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산업의 구조조정 실패로 경제난을 겪게 된다. 여기다 군사정부 시절 ‘성장억제 도시’로 묶이면서 도시의 양적 팽창과 질적 성장이 멈추었다. 상대적으로 울산과 마산, 창원, 김해, 양산 등 부산의 배후도시들이 급성장하면서 일자리를 찾아 많은 사람이 부산을 떠났고 공장도 이전했다.
 
  부산대 경제학과 文秉根(문병근·59) 교수는 “1970년대만 해도 부산 경제가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가 넘었고 수출물동량의 90%는 부산항에서 선적, 해외로 나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 일변도의 국가 경제정책 때문에 부산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산업재편과 구조조정에 실패한 측면도 있지만 모든 人的(인적) 物的(물적) 자원을 블랙홀처럼 서울로 빨아들이는 국가정책의 오판이 가장 원인이지요. 그러니 향토기업이 부산을 등지게 됐고 인재들도 수도권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산대 상대만 하더라도 1970년대엔 연세대·고려대 못지않은 명문이었지만 인재들이 모두 서울로 떠나는 상황이 됐어요.”
 
  하지만 필자가 만난 부산사람들은 “경기가 나빠져 못살겠다”면서도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사직야구장은 항상 만원이고 술집과 식당은 왜 그리 많은가. 세계 최대 규모라는 센텀시티 신세계백화점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이곳에서 스포츠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張世煥(35·부산 화명동)씨의 말이다.
 
  “경제가 나빠진 것 빼고는 부산만큼 살기 좋은 데가 어디 있습니꺼. 돈 만원만 있으면 시장 가서 생선을 사고 남을 만큼 물가도 쌉니더. 성질이 괄괄하고 남의 일에 간섭도 많이 하지만 ‘우리가 남이가’ 하는 정신이 안 있습니꺼. 인정도 많고 낙천적인 것도 빼놓을 수 없지예. 부산을 한 번이라도 와 본 사람은 부산을 못 잊습니다. 그게 부산의 경쟁력입니다.”
 
 
  생산성은 낮지만 소비는 왕성
 
  지난해 부산의 재정자립도는 59.2%로 서울(85.7%), 인천(71.2%), 대전(61.2%), 울산(63.3%)에 뒤진다. 대구(56.7%)와 광주(47.8%)를 겨우 앞서는 정도다.
 
  부산의 1인당 지역 총생산(GRDP)은 2007년 기준으로 1만6082달러로 울산(4만7898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또 부산의 경제비중은 5.4%로 서울시(24.1%)의 약 4분의 1, 경기도(19.7%)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생산성은 낮지만 소비는 왕성하다. ‘경남에서 돈을 벌어 부산에서 돈을 쓴다’는 얘기가 된다. 지역별 1인당 민간소비지출(2007년 기준)을 보면 부산은 1만1168달러로 서울(1만5406달러)을 제외한 6대 광역시 가운데 대전(1만1625달러) 다음으로 높다.
 
  부산 경제의 침체와 더불어 부산 인구도 줄고 있다. 1980년 당시 315만명으로 300만명 시대를 처음 연 뒤 1990년 379만명, 1995년 388만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기업들의 域外(역외) 이전과 출산율 감소가 이어지면서 2000년 379만명으로 줄더니 2005년 363만명, 2008년 356만명으로 계속 인구가 줄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부산의 지난해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추정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98명으로 1명을 밑돈다. 그것도 지난 12년 동안 연속 꼴찌다.
 
박성조 동아대 석좌교수.
  베를린자유대 종신 정교수인 朴聖祚(박성조·73) 동아대 석좌교수는 부산 기장 출신으로, 남들 다 떠나는 고향을 찾아 몇 년 전 귀향했다. 그는 “바르셀로나, 마르세유, 밀라노, 잘츠부르크는 부산처럼 그 나라 ‘제2의 도시’지만 그 나라 수도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지명도를 확보한 이유는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지식경제로 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1970년대 유럽의 넘버 투(No. 2) 도시들은 斜陽(사양)도시였어요. 중화학공업 중심의 2차 산업혁명 혜택을 못 받은 도시들이죠. 그런데 석유파동이 왔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분발을 했어요. 이 도시들은 중화학 공업 중심의 산업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고 지식경제, 지식사회로 갔습니다. 그게 2위 도시들을 再生(재생)시켰어요.”
 
  박 교수는 “지식경제를 하려면 굴뚝이 없어야 하고, 중소기업이 살아나야 하며, 자생적이어야 한다. 또 사람들이 여러 방면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부산은 아직도 컨테이너만을 위한 항구가 전부인 줄 안다”고 비판했다.
 
  “부산의 자갈치시장을 보세요. 고기 잡는 사람이 이제 없어요. 자갈치 횟감이 대개 수입된다고들 합니다. 저는 지식경제 시대가 되면 물동량이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봐요. 게다가 중국이 컨테이너 항구를 3~4개씩 만들었거든요. 광양·평택·인천·포항·울산에도 컨테이너 항구가 생겨 부산항의 중요성이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문화의 도시로 상품화해야
 
  그럼 부산이 지식산업으로 가려면 당장 무얼 해야 할까. 그는 “과거 부산의 전통 제조업이었던 신발산업에다 파격적인 디자인을 접목시키는 것이 부산 지식산업의 출발”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지식경제로 이행하는 데는 대학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부산 출신의 세계적인 해양학자인 박길호 교수(보스턴대)나 취리히 공과대학 하태규 박사 같은 분을 모셔와 가르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구태의연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부산의 문화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부산의 상징인 광안대교의 영문 이름을 ‘다이아몬드 브리지(Diamond Bridge)’로 바꾼 것도 박 교수의 제안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인구 360만명, 세계 제5위의 컨테이너항,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를 가진 ‘문화의 도시’를 상품화해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부산이 먹고살 양식이 무엇인지 발전전략을 세우고 청사진을 마련하는 곳이 부산발전연구원(이하 부발연)이다. 부발연 李啓植(이계식·61) 원장은 전남 목포 사람이다. 호남인이 원장을 맡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산의 개방성을 드러낸다.
 
  그는 “앞으로 韓中日(한·중·일) 경제블록이 아시아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중·일이 언젠가는 EU처럼 하나의 경제권이 된다고 가정할 수 있어요. 단일 경제블록의 장점을 서로 알고 있으니까요. 부산·울산·경남을 합치면 인구가 800만명이고, 후쿠오카를 포함한 규슈의 인구가 1300만명이나 됩니다. 부산·동남권과 규슈가 2000만 경제권으로 발전할 경우 세계 10위권의 초광역 경제권이 형성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산은 영상·영화의 도시다. 부산국제영화제(PIFF)는 <타임스>지 선정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꼽혔다. 부산에서 찍은 영화 ‘해운대’는 이미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부산시는 PIFF를 세계 4대 영화제로 끌어올린다는 목표 아래 총 사업비 1624억원을 들여 영화제 전용관 ‘두레라움’을 부산 센텀시티 내(3만2140㎡)에 건립하고 있다. 이 건물은 2011년 제16회 PIFF 개막식까지 공사가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원장의 설명.
 
  “세계 문화콘텐츠 시장 규모가 자동차산업 규모와 같다고 말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지금 해외에 나가면 ‘부산’이란 도시는 몰라도 ‘부산국제영화제’ 하면 다 알 정도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앞으로 부산은 영화, 영상관련산업으로 먹고살아야 합니다.”
 
 
  “지금 부산은 절박합니다”
 
부산상의 신정택 회장.
  부산상공회의소 申正澤(신정택·61) 회장은 가덕도 남단 해안에 건립을 구상 중인 ‘국제허브공항’ 얘기부터 꺼냈다. 부산시가 ‘부산 경제중흥 10대 비전 사업’으로 선정할 만큼 공을 들이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공교롭게도 국제허브공항은 경남 밀양과 치열한 입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신 회장은 “부산시가 추진 중인 관광·컨벤션·영화·영상산업이 모두 허브 공항과 연결돼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허브공항이 있어야 그 도시가 국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입니다. 가덕도 허브공항은 소음 걱정 없이 24시간 운영이 가능하며 해안 매립으로 생겨나는 만큼 언제든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지요. 정치논리를 따랐다가 처참하게 실패한 무안·울진·양양·청주공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제허브공항은 경제논리에 따라 선정해야 합니다.”
 
  신 회장은 “국제허브공항이 가덕도에 입지하면 부산경제는 엄청난 날개를 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산의 산업구조는 서비스업 비중이 71.5%에 이르지만 제조업은 17.4%에 불과하다(2007년 현재). 제조업체 수는 8683개로, 그중 종업원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 99.7%로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제조업 비중이 2003년 15.5%에서 2004년 16.2%, 2007년 17.4%로 바닥을 치고 올라오고 있다는 점. 신 회장은 “국내 랭킹 2위 도시가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다”는 말에 펄쩍 뛰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산 내에 공장 지을 땅이 없으니 기업들이 김해, 양산으로 빠져나가고, 일자리 때문에 젊은 사람이 떠나고 있습니다. 반면 부산의 위성도시인 김해·양산은 행정구역은 경남이지만 생활권은 부산입니다. 기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부·울·경(부산·울산·경남) 경제권이 광역화됐으면 좋겠어요.”
 
  부산사람들은 흔히 박력 있고 거칠며 뒤끝이 깨끗하다고 말한다. 뒤가 없다는 말은 뒤에서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된다. 부산사람들이 유대성이 떨어지고 독불장군이란 설정도 가능하다. 신 회장의 말이다.
 
  “근대화 과정의 고비마다 부산인이 하나로 뭉친 것처럼 부산이 살기 위해 다시 협력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모래알을 하나로 운집할 수 있는 계기가 부산발전입니다. 해양을 기점으로 하는 新(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 부산의 미래가 없습니다. 지금 부산은 절박합니다.”
 
 
  ‘거친’ 부산
 
  부산은 모든 사람과 문물이 모이는 항구다. 항구라는 ‘개방성’과 ‘역동성’이 부산의 화장기 없는 ‘민얼굴’이다.
 
  옛 부산은 東萊(동래)에서 출발한다. 신라 35대 경덕왕 16년(서기 757년) 지명이 동래로 바뀌기 전에는 부족국가인 居漆山國(거칠산국)으로 불렸다. 거칠산의 ‘거칠’은 ‘거칠다’라는 우리말에서 나온 吏讀(이두)식 표기다(최해군 著, <부산사 탐구> 참고).
 
  이 거칠산은 오늘날 서면 동쪽, 대연동 북쪽에 있는 荒領山(황령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황령산의 荒(황)은 ‘거칠 황’이다. 거칠산을 뒷날 한자어로 이름을 바꾸면서 그 뜻에 따라 황령산이라 했을 것이다.
 
  향토사학자이자 부산시민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인 崔海君(최해군·82) 선생의 말이다.
 
  “거친 파도와 싸워야 하고 일제의 침탈을 겪어야 했던 만큼 저항성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전쟁 이후 삼팔선이 그어져 못 돌아가는 수백만 명의 피란민들, 여기다 고향이 있어도 돌아가 정착할 밭뙈기 하나 없던 경북과 호남, 제주 사람들이 부산에 똬리를 틀고 설움을 삼키고 이겨냈어야 했어요. 그분들은 불평,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가슴 한쪽에 쌓인 저항적 동질성이 불의를 못 참고 터져나왔다고 봅니다.”
 
  언제부턴가 부산은 救都(구도) 또는 野都(야도)로 통하는 도시가 됐다. 왜 부산사람은 야구에 미쳐 날뛸까. 필자는 SK와 3연전이 열린 부산 사직구장을 찾았다.
 
  롯데의 마지막 공격인 9회말. 점수는 8-8. 분위기는 패닉 상태였다. 롯데의 용병 가르시아가 타석에 등장했다. 응원가에 보답이라도 하듯 가르시아가 2루타를 쳤다. 이때 1루에 있던 대주자 양종민이 홈으로 뛰어들다 아웃돼 끝내기 찬스를 못 살렸다. 결국 SK는 연장 10회초 1사 만루에서 대타 박재홍의 안타로 롯데에 11 대 8 승리를 거뒀다.
 
  다 이긴 경기를 패하자 롯데 팬들은 狂的(광적)인 상태로 돌변했다. 필자의 옆자리에 앉은 양왕용(부산 서면)씨는 “긴 말하기 싫다. 롯데 정신은 위기 때 기량을 발휘하는 응집력 아니냐. 오늘은 너무 실망스럽다”고 신음했다.
 
  야구 칼럼니스트이자 <야구의 추억>의 저자 金銀植(김은식)씨는 “부산에서 벌어지는 야구경기는 언제나 전쟁터고, 축제이자 성스러운 의식이다. 야구를 단지 흥밋거리로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롯데의 응원석이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백화점이 있고 컨벤션센터인 벡스코도 자리 잡고 있는 센텀시티는 부산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다. 마치 홍콩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동북아 허브포트의 승자는?
 
지난 2005년 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해운대 누리마루.
  동북아 항만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한국과 일본 중국 홍콩 타이완의 海戰(해전)이 치열하다. 승리를 낙관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지략을 갖춘 다섯 나라가 컨테이너 선석 규모를 늘리며 돈을 물 쓰듯 한다.
 
  5개국이 동북아 해전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동북아 물류중심지다. 자국의 항만을 동북아의 중심항만(hub port)으로 만들고 다른 나라의 항만은 보조항으로 전락시킨다는 목표다.
 
  일본은 고베, 요코하마, 오사카 등을 거점항만으로 삼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쏟아부은 자금만 1996년 이래 5년치만 따져도 자그마치 7조5000억 엔을 헤아린다. 고베는 330만5800m²(100만 평) 규모의 인공섬을 조성하고 이곳에다 컨테이너 부두 4선석을 구축했다. 요코하마도 2005년까지 27개 선석을 확보했다.
 
  타이완은 세계 3위의 컨테이너 항인 카오슝(高雄)의 집중개발을 포함하는 ‘아시아 태평양 오퍼레이션 구상’을 1955년부터 추진해 오고 있다. 홍콩 역시 2011년까지 란타우 섬에 연간 150만TEU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17개 컨테이너 선석을 건설한다는 청사진을 마련해 놓았다.
 
  그렇다면, 부산이 세계 항만도시와 비교해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구로 따지면 오사카 881만명, 상하이 1858만명, 싱가포르 440만명, 홍콩 700만명, 마카오 52만명으로 부산(360만명)이 절대 열세는 아니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을 합치면 800만명. 항구를 낀 해양도시라는 점도 비슷하다. 홍콩·싱가포르와 같이 부산이 항로상의 요충지에 위치한다는 것도 닮았다.
 
  그러나 부산은 세계 각국 선진도시가 갖춘 항만과 공항·도로·철도기지를 모두 보유한 몇 안되는 도시다. 또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대륙을 연결하는 연계 고리 내지 ‘結節地(결절지)’라는 게 강점이다.
 
  다만 경제적 자유분야에서 격차가 생긴다. 홍콩은 ‘가장 자유로운 국가’로, 싱가포르·마카오·두바이는 ‘투자 천국’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제적 자유가 이들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변화를 끌어낸다.
 
  하지만 부산은 ‘권한 없는’ 지방정부일 뿐이다. 非(비) 수도권으로 뭉뚱그릴 수 있는 여느 지방도시와 다르지 않다. 각종 규제에 얽매여 외국인들이 투자하기도 꺼린다. 세금이 높고 고용 사정이 불안한 것도 약점이다. 경제자유구역에 오히려 자유가 없다는 아우성도 들린다. 부산발전연구원 김형균 정책협력처장의 말이다.
 
  “물류자유지대니 관세자유구역, 자유무역지대니 하면서 ‘자유’라는 말은 많지만 실질적인 자유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투자하려면 정주 여건, 세금, 공간에 대한 자유로운 활용,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야 합니다.
 
  모든 공간의 활동을 자유화시켜 놓고 최소한의 규제만 허용하는 ‘네거티브 式(식) 규제’가 필요합니다. 로테르담의 예를 보듯, 모든 기업 활동을 제로베이스에다 놓고 최소 규제만 하는 방식으로 바꿨어요. 부산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그 길로 가야 합니다.”
 
 
  부산의 비전은 인재의 머리에서 나온다
 
부산 인적자원개발원 정해룡 원장.
  부산이 국제도시가 되기 위해선 몸집을 키워야 한다. 각종 규제를 풀어 ‘월드스타급’에 걸맞게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비전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다. 고급인재가 ‘떠나는’ 도시에서 ‘찾아오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정주 의식이 희박해지면 정이 붙질 않는다. 언젠가는 짐 싸 들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산 인적자원개발연구원 鄭海龍(정해룡·56) 원장은 지역의 지식인들을 네트워크로 묶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를 ‘부산 지식 네트워크 구축사업’이라 부른다. 부산의 산업을 지식산업화하기 위해 인재들을 ‘실로 꿰는’ 작업이다. 정 원장은 “지역 대학에 석학을 모셔오는 것이 인재를 끌어오는 한 방법일 순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지역인재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여건을 만들어야 해요. 맞춤형 지역정보와 눈높이를 지역의 여건에 맞추는 인식전환이 필요합니다. 타지에서 경험을 쌓은 ‘고향’ 인재를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도 필요합니다.
 
  지역 대학들도 해양산업이다, 생명공학이다, 에너지 자원연구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식산업과 밀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현실이다. 정해룡 원장의 말이다.
 
  “지역에서 특성화하려는 미래 산업은 복잡한 산업들의 연계체제라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항만물류는 IT, 해양산업은 디자인 산업과 관광산업·조선업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각 분야의 강점을 가진 대학 간 또는 학제 간 연계·통합 운영이 지식산업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 및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부산 인적자원개발원은 ‘지식 네트워크 구축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의 핵심은 부산지역에 소재하거나 연관이 많은 박사급 이상 또는 지역 기업의 전문가를 네트워크화해 지역특성에 맞는 지식을 창출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정 원장의 설명.
 
  “부산 지식네트워크사업은 부산을 이끌어갈 성장동력을 지식산업화시키기 위한 인프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부산을 탈바꿈시키는 일은 바로 지역 지식인의 몫입니다. 그리고 부산의 지역사회가 지식창출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인터뷰] 李啓植 부산발전연구원장
 
  “요트산업이 부산의 미래다”
 
부산발전연구원 이계식 원장.
  부산시는 지난 3월 10일 ‘2020 올림픽 유치 범시민지원협의회’를 발족했다. 이계식 부산발전연구원장은 2020년 하계 올림픽 유치를 부산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꼽았다.
 
  ―부산이 2020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산이 향후 10년 안에 가장 중요한 현안이 2020 하계 올림픽 부산 유치라고 봅니다. 현재 2016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두고 시카고와 도쿄가 경쟁하고 있는데, 시카고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2020년에는 아시아권으로 개최지가 넘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에서 최근 ‘도쿄와 부산이 함께 2020년 올림픽을 개최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중·일이 경제블록을 형성하는 초석이 2020 하계 올림픽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부산의 개방성과 해양기질을 설명하신다면.
 
  “부산은 저항성이 강하고 화가 나면 물불 안 가리는 성향이 있습니다. 부산은 호남인 비율이 20~30%대라고 합니다. 팔도 사람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오늘의 부산을 만들었고 내일의 부산을 만들 성장동력이 될 겁니다. 14년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온 金東虎(김동호)씨는 부산사람이 아니라 강원도 홍천사람으로 부산과 아무 연고가 없습니다. 이런 모습이 부산의 개방성을 상징하는 겁니다. 저는 부산을 문화적 용광로(melting pot), 우리나라에서 가장 열린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부산의 성장동력은 무엇입니까.
 
  “한때는 우리나라 수출품의 30~40%가 부산을 통해 해외로 나갔습니다. 알부자도 많아 문화재를 기증할 때 몇 천 점씩 기증하는 분이 있을 정도예요. 과거 부산 사람들이 잘나가던 시절, 미래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세계 경제 흐름을 잘못 읽어 안방 대감 노릇하다 침체된 것이죠.”
 
  ―한진중공업으로 상징되는 조선업이 현재 부산의 간판산업인데, 이를 대체할 만한 新(신)산업은 무엇입니까.
 
  “고부가가치 요트산업입니다. 세계 요트시장의 규모가 조선시장과 비슷합니다. 요트산업은 조선과 자동차 산업의 중간 정도입니다. 비싸게 디자인하고 첨단 제품으로 인테리어를 꾸며 팔아야 합니다. 요트산업이란 차원에서 부산은 정말 하늘의 은총을 받은 도시입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으면 골프 인구가 줄고 요트산업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이계식 원장은 “고부가가치 산업인 요트산업을 조선업 뒤를 잇는 첨단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부산항 앞바다에서 요트를 타는 모습.


  ▣ 부산의 정치문화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
 
  부산 정치권은 金泳三(김영삼), 盧武鉉(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할 정도로 ‘인재 풀’이 많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중진은 중진대로, 초선은 초선대로 뒤엉켜 갈등을 빚어왔다. 과거 당 대표 경선이나 대선후보 선출, 부산시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PK 정치권이 단합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서로 부딪치며 ‘모래알’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부산지역 한 국회의원의 얘기다.
 
  “지난 총선에서 親李(친이)냐, 親朴(친박)이냐를 두고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는데 대구도 그랬지만, 부산도 치열했어요. 또 김무성 의원이나 김형오 국회의장, 박희태 한나라당 前(전)대표 등 多選(다선) 의원이 존재하지만 ‘PK 리더’로 인정하는 분위기도,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도 없어요. 이게 부산의 정치 지형도가 아닌가 싶어요. 대구 정치권은 얼마나 공조를 잘하는지 ‘예산 잘 따는 귀신들’이란 말이 나오잖습니까. 그런데 부산은 ‘주면 주고 말면 말라’는 식으로 싹싹하지도 않고. 그러니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는 넋두리가 나올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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