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기자가 지켜본 국회 난동 전말기

대한민국 ‘폭력國會’의 현장을 역사에 記錄한다

  • : 정우상  imag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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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10년 여당에서 야당으로 빠르게 변신
한나라당은 ‘웰빙 야당’에서 ‘웰빙 여당’으로 문패만 바뀌어
강기갑 민노당 대표가 국회 박계동 사무총장실에서 원탁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원탁 위에 올라가 발을 쾅쾅 굴렀다.
2008년 12월 24일 밤. 민주당 李鍾杰(이종걸) 의원과 李春錫(이춘석) 의원이 허술한 경계를 틈타 국회 본회의장 잠입에 성공했다. 한나라당 洪準杓(홍준표) 원내대표 스스로 ‘입법전쟁’이라고 명명한 연말 국회의 승패는 민주당의 선발대가 본회의장 잠입에 성공한 순간 이미 기울었다.
 
  민주당은 이날의 잠입 성공을 ‘산타클로스의 선물’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불법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순찰 도중 文喜相(문희상) 국회 부의장실 쪽 출입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날 잠입 성공의 미스터리는 몇 년 뒤에나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민주당은 12월 26일 오전 8시10분, 의원총회를 소집한 자리에서 “본회의장 내부에 일부 의원들이 있다. 지금 모두 본회의장으로 들어간다”며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했다. 민주당은 점거에 성공한 직후 “25일 밤 辛鶴用(신학용) 金載均(김재균) 의원이 미리 들어가서 안에서 문을 열어줬다”고 설명하면서, 24일 밤에 이미 잠입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미리 들어간 이들은 PET병에 생리현상을 해결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보안을 유지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앞에서 민주당 당직자와 보좌관들이 국회 경위의 목과 턱을 잡고 끌어냈다.
  경계에 실패한 한나라당과 金炯旿(김형오) 국회의장은 국회 본회의장을 중심으로 배수의 진을 친 민주당에 계속 끌려다녔고, 결국 최대 쟁점이었던 미디어법안은 야당에 상정 약속조차 받지 못한 채 협상을 끝냈다. 민주당에선 “우리가 이겼다”는 환호가, 한나라당에선 “본전도 못 챙기고 폭력에 굴복했다”는 탄식이 나왔다.
 
  2008년 12월 18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 상정에서 시작돼 대형 해머와 대형 못을 뽑는 배척(일명 빠루), 전기톱과 물대포, 소화전, 국회 경위와 야당 당직자들의 몸싸움, 姜基甲(강기갑) 민노당 대표의 ‘空中浮揚(공중부양)’까지 등장한 ‘격투기 국회’는 대한민국 의회가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폭력성과 담대함으로 국민은 물론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172석의 공룡여당 한나라당은 지도부 사퇴 요구 등 自中之亂(자중지란)에 빠졌고, 82석의 제1야당 민주당은 數(수)에서 밀려도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확인했다. 20일간 연출된 ‘격투기 국회’는 밥그릇 지키기 파업으로 측면 지원을 한 MBC에 의해 “MB악법 저지를 위한 야당의 정당한 투쟁”으로 미화됐다. 여당의 전략도 없는 일방통행과 야당의 무책임한 물리력 사용이 빚어낸 격투기 국회 전말을 살펴본다.
 
 
  [12월 18일 해머와 물대포 등장]
 
민주당과 민노당 일부 당직자들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회의장 문을 해머 등을 이용해 뜯어내고, 국회 경위들이 책상 등을 이용해 만든 바리케이드를 해머로 부수며 진입을 시도했다.
  한나라당은 12월 18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 단독 상정했다. 전날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朴振(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장과 한나라당 黃震夏(황진하) 의원은 이날 새벽 2시쯤 회의장에 먼저 들어갔고, 오전 6시30분 한나라당 외통위원 9명이 회의장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은 생리현상 해결을 위한 PET병과 김밥·라면도 준비했다. 민주당은 이를 “단독 상정을 위한 군사작전”이라고 비난했다.
 
  오전 8시쯤 민주당 文學振(문학진)·崔奎植(최규식) 의원 등이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최 의원만 들어간 상황에서 회의장 문이 굳게 잠겼다. 외통위 민주당 간사인 문 의원은 “이리 오너라. 국회의원의 출입을 막는 놈들이 누구냐”며 항의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국회 경위들이 회의장 주변을 에워싸고 민주당과 민노당 보좌관과 당직자들이 하나 둘 상임위 회의장 주변에 몰려들었다.
 
  회의장에 들어가려고 해도 문은 잠겨 있고, 문을 열려고 하자 국회 경위들이 제지했다. 이 광경을 본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지난 10년 여당 생활이 끝나고 야당이 됐다는 것을 자각한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민주당 국회의원 30여 명과 당직자 150여 명은 회의장 출입문에 서있던 경위 50여 명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며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수에서 밀린 국회 경위들은 하나 둘 끌려 나왔고, 경위에게 멱살을 잡힌 민주당 姜琪正(강기정) 의원은 “어디 국회의원 몸에 손을 대느냐”며 욕설과 함께 경위의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오전 10시부터 민주당과 민노당 일부 당직자들이 대형 해머와 정을 이용해 출입문을 뜯어내기 시작했고, 사진 촬영을 막기 위해 비닐 돗자리로 ‘작업 현장’을 가렸다. 국회에 첫 등장한 대형 해머와 배척은 야당에서 40만원을 주고 구입해 국회에 반입한 것이다. 회의장 문이 잠길 경우 도구를 이용해 회의장 문을 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한나라당이 불법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항의해 문을 뜯는 당직자들은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너희들이 이런 짓을 해서 정권을 뺏긴 거야. 정신 차려”라고 하자 민주당에선 “군사독재의 후예들은 입 닥쳐”라고 맞섰다. 양측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교환하기도 했다.
 
민주당 당원들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앞에서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며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자 국회 경위들은 소화기 분말을 뿌리며 맞섰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해머작업 끝에 출입문 2개가 뜯겨 나가자 민주당 측에서 환호성이 터졌고 바리케이드용 책상 틈새로 회의장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문짝 철거작업’이 마무리되려는 순간에 나타난 민노당 강기갑 대표는 뜯어진 문 아래로 몸을 넣어 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강 대표 언제 나타난 거야? 참 빠르시네”라고 했다.
 
  그러나 환호도 잠시. 회의장 안에 있던 국회 경위들은 책상 등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치며 저항했고, 틈새로 의자를 밀어 민주당 측에 던지거나 해머를 낚아채기도 했다. 회의장에 있던 한나라당 鄭玉任(정옥임) 의원은 공포에 질려 울기도 했다고 한나라당 관계자가 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민주당 당직자와 경위들이 서로 던진 가구 파편 등에 맞아 손에 피를 흘렸다. 경위들은 캠코더를 이용해 문을 파괴한 사람들을 촬영했다. 민주당에선 “촛불시위 때 전경과 같은 짓을 한다”며 반발했다.
 
  급기야 전기톱까지 동원되자 국회는 한때 전원을 차단했다. 민주당은 복도 벽에 있던 소화전을 부수고 소방호스를 꺼내 물을 뿌리며 다시 진입을 시도했고, 회의장 내부의 경위들은 소화기 분말을 뿌리며 맞섰다. 양측에서 “물대포가 등장했다” “최루탄 아니냐”는 고성이 오갔고, 회의장 밖 대형 유리창이 깨져 한나라당 보좌관이 손을 다쳐 병원에 실려 갔다.
 
  FTA 강행 상정 이후, 대책도 없던 한나라당은 오후 2시3분 한나라당 의원 10명만 참석한 가운데 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했지만, 이날의 단독 처리는 야당이 이후 벌인 상임위 점거·국회의장실 점거·국회 본회의장 점거·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 농성의 빌미를 제공했다. 한나라당은 “법대로 할 뿐”이라고 했지만, 민주당 입장에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됐다. 실익도 없는 FTA 비준안 상임위 상정을 강행한 것은 한나라당엔 뼈아픈 실책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나라당이 치밀한 전략하에 이런 강수를 뒀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12월 12일 예산안을 처리한 뒤 한나라당은 바로 ‘입법전쟁’을 선언했지만, 미디어법과 사이버모욕죄, 집단소송제, 통신비밀보호법 등 민감한 법안을 포함한 85개 쟁점법안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이날부터 강력해진 민주당의 투쟁은 끝을 모른 채 이어졌고, 여기에 민노당이 가세하면서 강경투쟁은 그 속도를 더하기 시작했다.
 
  민주당과 민노당은 그날 밤부터 국회 행정안전위, 정무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등 쟁점법안을 처리하는 상임위를 점거하기 시작했고, 국회의장실마저 민주당 대표실로 접수했다. 남은 곳은 법안이 최종 처리되는 국회 본회의장뿐이었다.
 
  국회의장이 야당의 점거로 상임위 심사를 못한 법안들을 직권 상정해 처리하기 위해선 본회의장 의장석에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매년 쟁점법안 처리 때 여당과 야당은 본회의장을 사수하기 위해 치열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점은 여야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본회의장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머리 싸움이 시작됐다.
 
 
  [12월 26일, 국회 본회의장 점거]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한 민주당 당직자들이 국회 복도를 의자 등으로 가로막았다.
  여야는 12월 18일 난장판 국회 이후 일주일 동안 한 차례 마주앉지도 않고 허송세월했다. 한나라당은 타협이 안 되면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만 해주면 85개 법안을 모두 통과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안이한 틈을 노렸다. 민주당이 본회의장 선제 진입을 노리며 밤낮으로 본회의장 주변을 순찰하고 있을 때, 한나라당은 국회 본회의장 주변에 경계 인원 한 명 보내지 않았고, 민주당은 26일 아침에 전격적으로 본회의장 점거 작전을 시작했다.
 
  열흘 전 해머와 빠루를 사용했던 민주당은 본회의장 점거를 위해 젤과 자전거 체인 같은 ‘신종 연장’을 국회에 들여왔고,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복도에는 의자와 책상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국회사무처의 수사 의뢰에 따라 경찰이 의사당에 출동하여 지문감식을 벌이는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개입을 자제할 정도로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는 입법부가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당국을 의사당으로 불러들이는 나쁜 선례를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26일 오전까지 행동계획을 철통 보안에 부쳤다. 이날 아침 의원총회를 위해 모인 민주당 의원들도 회의 전까지 이를 몰랐다. 元惠榮(원혜영) 원내대표는 아침 8시30분쯤 “지금 점거에 들어간다”며 행동개시를 선언했고, 15분쯤 뒤 54명의 국회의원들이 李允盛(이윤성) 부의장실 쪽 쪽문을 통해 본회의장에 우르르 들어갔다. 丁世均(정세균) 대표는 “국회의장이 오판하지 않도록 선제행동을 취한 것”이라고 했고, 원혜영 원내대표는 “최후의 결전”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나라당 국회 과반이 붕괴될 때까지 점거한다”며 “국회의장실, 상임위에 이어 본회의장 점거로 국회를 완전히 접수했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국회 로텐더 홀을 점거하고 침낭에서 잠을 자며 농성을 벌였다.
  민주당은 본회의장에 들어가자마자 방청석을 포함해 본회의장의 모든 출입문을 자전거 체인 등으로 봉쇄했다. 문 손잡이 열쇠구멍은 젤 형태의 물질로 막아 국회 직원들이 열쇠로도 문을 열지 못하게 했다. 민주당은 유일하게 본청 2층 속기사들의 본회의장 출입문만 열어 놓았다. 이 문으로 의원들이 출입하고, 본회의장 농성조에게 음식물도 배달됐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측이 이 문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인근 복도를 책상과 의자로 만든 바리케이드로 막았고, 국회 사무처는 민주당의 무단 점거가 불법이라며 즉각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과학수사팀이 출동해 민주당이 들어간 본회의장 출입문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사무처 측은 “민주당이 사다리와 자물통 등 본회의장에 반입이 금지된 물건들을 불법적으로 갖고 들어갔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본회의장에 들어가니 사다리와 출입문 봉쇄장치 등이 이미 마련돼 있었다.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위해 준비해 놓은 듯하다”고 했다.
 
  민주당에 허를 찔린 한나라당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탄핵 당시의 自害(자해)정치를 또 해보겠다는 것”이라며 “새벽에 도둑처럼, 전문털이범처럼 열쇠를 따고 몰래 잠입했다. (한나라당으로선 강행처리 외에) 더 이상 선택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국회 전체가 농성장으로 변해]
 
  야당의 농성이 계속되자 국회 의사당은 街鬪(가투) 현장처럼 변했다. 민주당은 본회의장뿐 아니라 정무위, 행정안전위, 문화방송위 등 상임위 주변 유리창과 벽 곳곳에 ‘MB악법 날치기 처리 반대’ ‘휴대폰도 도청할래’ 등의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와 소형 벽보를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 한쪽 구석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밤샘 농성을 하면서 쓰는 담요들이 흩어져 있었다. 아침이면 근처 복도 한 구석에 농성하며 먹다 남은 도시락과 과자 등의 쓰레기들이 쌓였다.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모든 통로는 의자와 책상 등으로 만든 바리케이드로 막았다.
 
  농성장마다 ‘밤샘’을 위해 두툼한 점퍼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휴대용 은색 돗자리를 깔고 앉아 컵라면을 먹는 의원들의 모습은 거리의 시위대 모습 그대로였다. 일부 의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셔츠나 점퍼 차림으로 본회의장을 드나들었다.
 
 
  [등산용 자일로 인간사슬 훈련]
 
젊은 의원 30여 명이 등산용 자일로 서로 몸을 묶는 ‘인간사슬’로 저항하고 있다.
  민주당은 가장 중요한 국회의장석을 사수하기 위해 젊은 의원 30여 명을 배치하고, 등산용 자일로 서로 몸을 묶는 ‘인간사슬’로 저항하는 방안을 준비했다. 강기정 의원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떼어내는 데 시간이 걸리고 카메라에 비치는 시각적 효과도 좋다는 판단 때문이다.
 
  민주당은 등산용 자일을 준비해 놓고 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서로 고리를 채울 수 있게 대비했다. 매일 한두 번씩 도상연습까지 했다. 잠을 잘 때도 등산용 자일을 몸에 묶고 잠을 청했다. ‘사슬의 도구’로 한때 광목천과 쇠사슬이 검토됐으나 인터넷 서핑을 한 끝에 등산용 자일로 낙점됐다는 말도 나왔다.
 
  건조한 공기 때문에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의원들도 나왔지만, 고립된 투쟁은 투쟁심을 더욱 고조시켰다. 평소 온건파로 분류됐던 의원들이 강경 발언을 쏟아내 강경파들이 발언을 만류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여야 원내대표들은 30일 밤에도 한미 FTA 비준동의안과 미디어법에 대한 최종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렬됐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민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점거농성 해체를 요구하며 질서유지권을 발동했다. 그러나 이날 발동된 질서유지권은 이후 무기력한 공권력의 모습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지루한 여야의 대화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1월 3~4일 국회 경위들과 보좌관들의 육탄전]
 
  해를 넘긴 1월 3일과 4일 국회에선 질서유지권 실행에 나선 국회 경위 및 방호원들과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에서 농성 중인 야당 당직자 및 보좌관들의 육탄전으로 또 한번 폭력의 수위를 높였다. 국회의장은 “쟁점법안은 직권상정하지 않을 테니 본회의장을 비워 달라”고 했지만, 야당은 본회의장 점거를 풀지 않았다.
 
  한나라당에선 “국회의장이 질서회복을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 수위가 높아졌고, 김형오 국회의장은 이틀에 걸쳐 150여 명의 국회 경위와 방호원들로 하여금 400여 명으로 불어난 야당 당직자와 보좌관들을 국회 밖으로 밀어내라는 ‘미션 임파서블’을 지시했다. 국회의장이 질서회복보다는 여당과 청와대에 “나도 할 만큼 했는데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려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첫 해산 작전은 3일 낮 12시50분에 이뤄졌고, 이후 오후 5시, 오후 5시50분, 밤 9시에도 실시됐다. 국회 경위들은 4인 1조 형태로 농성자를 1명씩 본회의장 밖으로 들어내려 했지만, 야당 측의 저항으로 국회 경위들이 바닥에 뒹굴기도 했다. 제복이 찢어진 경위들은 다시 작전에 투입됐다.
 
  야당 당직자 30여 명은 국회 밖으로 밀려난 뒤 다시 국회 창문 등을 통해 농성장으로 들어왔다. 사무처 관계자는 “수적 열세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임무”라며 “그러나 법 질서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당에선 밤 9시에 해산작전이 시작되자 “9시 TV 뉴스에 격투장면을 보여주려는 티가 너무 난다”는 말도 나왔다. 이 과정에서 국회 경위와 방호원 150여 명 중 53명의 부상자(국회 사무처 집계)가 발생했고, 민주당에선 朴炳錫(박병석) 정책위 의장을 포함해 6명의 국회의원과 40여 명의 당직자(민주당 집계)가 다쳤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가 사수작전을 진두에서 지휘했고, 원 원내대표의 안경이 부서졌다.
 
  한나라당에선 朱豪英(주호영)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국회에 나와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근 채 상황을 파악했고, 다른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은 국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국회 경위와 방호원의 3분의 1이 부상한 4일에는 국회 경위 50여 명이 오전 7시와 오후 2시 2차례에 걸쳐 로텐더 홀 농성자들에게 해산 경고만 하고 충돌 없이 돌아갔다.
 
  한편 3일부터 국회 의사당 외곽에는 국회 경비대 소속 경찰 250여 명과 함께 900여 명의 경찰병력이 추가 배치됐다. 그러나 경찰들은 의사당 내부로는 들어오지 않고, 외곽 경비를 서거나 끌려 나온 야당 당직자를 버스에 싣고 국회 밖에 내려 놓는 역할만 했다.
 
  국회 사무처는 “불법행위에 대해 고소·고발 등 의법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지만, 민주당은 “농성해산 시도가 불법 폭력행사”라며 김형오 의장 등에 대한 형사고발 방침을 밝혔다. ‘미션 임파서블’ 이후 여야 원내대표들은 다시 협상을 했고, 김형오 국회의장이 쟁점법안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며 야당의 손을 들어준 상황에서 1월 6일 합의문이 작성됐다.
 
 
  [강기갑 의원의 공중부양 묘기]
 
  여야가 최종 협상을 벌일 때 결사투쟁을 선언하며 투쟁 선명성 경쟁을 벌였던 민노당 강기갑 대표는 5일 새벽 민주당 농성자들이 물러난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에서 민노당 농성자들이 국회 경위들에 의해 해산되고 경찰서로 실려가자 국회의장 집무실로 달려가 출입문을 열라고 요구하며 발로 찼다. “의장, 나와” “의장, 나와”라며 고함도 질렀다.
 
  강 의원은 쇠로 된 긴 원통형 경계라인 棒(봉)을 들고 의장실로 밀고 들어가려다 국회 경위들에게 제지도 당했다. 앞서 강 의원은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박계동 총장 앞의 대형 원형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이를 뒤엎으려 했다. 탁자 위에 올라가 발로 몇 차례 쾅쾅 구르기도 했다.
 
 
  [국회의원들 빠진 채 보좌관과 당직자들의 대리전]
 
  이번 국회의 폭력사태가 극단으로 치달은 이유 중 하나는 국회의원들은 뒤로 빠지고 보좌관과 당직자들이 나서서 ‘대리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그나마 체면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거친 행동을 자제할 수 있지만, ‘농성장 사수’ 명령을 받은 보좌관과 당직자들은 격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원들은 다음 선거를 위해 국민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지만, 보좌관과 당직자들은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의 명령만 따르면 된다. 국회의원들이 안방을 내준 자리에선 야당 보좌관과 당직자들이 공권력의 또 다른 이름인 국회 경위들과 격투기를 벌였다.
 
  보좌관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들은 젊은 당직자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책임은 우리가 진다”며 방조하거나 격려했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원들은 절대 끼어들지 않겠다”며 국회 질서회복을 경위들에게 미루고 팔짱을 꼈다.
 
  농성장에선 1980년대 전투경찰도 진압에 나서길 꺼렸던 ‘오월대’ ‘녹두대’ 같은 운동권 전투조 이름까지 나돌았다. ‘누군 오월대 출신, 누군 장군님(가투를 지휘하는 대학생)이었다’는 말도 들렸다. 이들이 대형 해머와 배척을 미리 구입해 국회에 들여놓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국회 경위들이 본회의장 앞 유리를 깨고 들어올 것에 대비해 투명 테이프를 유리에 덧붙이거나, 회의장 문을 뜯어내면서 사진 촬영을 막기 위해 돗자리로 범죄현장을 가리는 행위는 ‘선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의 눈에 해산에 나선 국회 경위들은 격퇴해야 할 ‘전투경찰’이었고, 본회의장은 바리케이드로 사수해야 할 해방구였다.
 
 
  [1월 6일, 갈등의 불씨 남긴 여야 합의]
 
2009년 1월 6일 오전 본회의장 농성 해제 후 활짝 웃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
  여야는 6일에야 그동안 논란이 됐던 쟁점법안들의 처리 시기와 방법에 관해 합의했다. 이에 따라 12월 18일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몸싸움 이후 파행했던 국회는 20일 만에 정상화됐고, 민주당은 12월 26일 이후 계속해 온 국회 본회의장 농성을 풀었다.
 
  그러나 이날 합의는 쟁점법안 처리 시기와 방법에 대해선 ‘합의처리를 위해 노력한다’는 애매한 문구로 봉합한 것이어서 갈등의 불씨를 남기게 됐다. 2월 임시국회에서 또 한 번의 충돌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여야 원내대표들은 ‘방송법, 신문법, IPTV법, 정보통신망법, 디지털전환법, 저작권법 등 미디어 관련 6개법은 빠른 시일 내에 합의처리하도록 노력한다’는 등 10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밖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빠른 시일 내에 협의처리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법은 2월 국회에서 협의처리 ▲금산분리완화법은 이번 국회에 상정한 뒤 합의처리 노력 ▲여야 간 쟁점이 없는 58개 법안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협의처리 ▲각 당이 제안한 중점추진법안은 2월 임시국회에서 합의처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등에 합의했다.
 
  민주당은 최대 쟁점이었던 미디어법의 처리 시기를 사실상 저지했다는 전과를 올렸지만,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중점 처리법안은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폭력에 굴복해 항복문서를 써줬다”는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민주당에선 승리의 나팔소리가 울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점거를 푼 뒤 본회의장 앞에서 웃는 얼굴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의회주의가 살아나니까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언제 국회에 충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며 “이렇게 여야가 의회주의에 충실할 때 국민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서 정 대표의 입지는 확고해졌다. 이번 입법전쟁 과정에서 정 대표의 학점은 “10점 만점에 10점”이라는 칭찬도 쏟아졌다. 그러나 쇠망치를 휘두르고 국회 본회의장을 물리력으로 점거해 정상적인 의사 일정을 방해했던 민주당이 의회주의를 말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한나라당은 지도부 인책론이 불거지면서 어수선한 분위기다. 차명진 대변인은 7일 “지도부가 불법을 향해 타협의 손을 내밀고, 폭력 소수의 결재가 있어야만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항복문서에 서명했다”며 사임했다. 당내 親李(친이)계 연구 모임인 ‘함께 내일로’는 성명을 내고 “불법 폭력에 동조한 지도부의 자성과 대국민 사과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심재철 의원은 “원내 지도부가 사퇴하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안 추진 과정에서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이 주류와 친박(親朴) 의원들의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당정협의에선 한나라당에서 정부를 향해 “우리가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고 법안을 추진했는데 정부는 홍보도 제대로 못하면서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연말 연초 20일간 국회에서 벌어진 ‘격투기’와 ‘잠정 휴전’은 여러 가지 숙제를 남겼다. 민주당은 “거대 여당이 수를 앞세워 밀어붙이려는 것은 의회주의를 말살하려는 시도였고, 이에 대한 저항은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물리력을 동원해 정치적 성과를 거둔 민주당으로선 다음에 비슷한 갈등이 발생할 경우 또 물리력에 기대려는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토론과 대화, 타협과 표결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은 국회에서 당분간 통용될 수 없게 됐다. 국회에서 해머와 같은 ‘연장’ 사용이라는 나쁜 선례도 큰 부담이다.
 
  한나라당은 총체적인 무능과 무기력을 보여줌으로써 집권 여당으로서의 소수 야당을 끌어안고 설득하는 자질이 없음을 증명했다. 위기 국면에서 청와대와 한나라당, 행정부는 따로 굴러갔고 국정 전반에 대한 추진 그림과 계획표도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도부 문책론과, 친이 친박 진영의 해묵은 갈등이 불거지면서 여권의 핵분열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親盧(친노)와 反盧(반노), 강경파와 온건파의 집안싸움으로 정권의 기반이 서서히 붕괴됐던 열린우리당의 재판이 한나라당에서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또 하나 문제는, 민주당의 ‘폭력 국회’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핵심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보여준 근성이 한나라당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10년 여당에서 야당으로 빠르게 변했지만, 한나라당은 ‘웰빙 야당’에서 ‘웰빙 여당’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자신들에게 왜 국민들이 정권을 주었는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당장 ‘내일’과 ‘다음달’의 웰빙에 정신이 팔린 한나라당 의원들의 체질이 바뀌지 않는 한 국회가 폭력 앞에 고개를 숙이는 굴욕을 면키 힘들 것으로 보인다.⊙
 

  ▣ 의사당 폭력에 대한 대처법
 
  민주주의 역사가 깊은 선진국은 의회정치도 성숙돼 있다. 영국에서는 동료의원에 대한 막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미국에선 논란이 많은 법안이라도 상임위에 상정조차 안 되는 일은 없다. 일본은 국회 직원의 ‘몸싸움 수당’이 유명무실해져 2005년 폐지했다. 여기엔 內戰(내전)·革命(혁명)의 경험, 중산층의 확립 등 역사적 배경도 있지만 의회의 강력한 자구노력도 크게 작용했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은 17~18세기 시민혁명을 통해 획득한 의회정치에서의 폭력·욕설은 곧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이정희 한국외대 교수). 영국의 경우 저질용어를 구사한 의원은 의장 직권으로 국회의사당 시계탑인 빅벤 지하실에 수감했는데, 15분마다 울리는 종소리 굉음에 시달리는 형벌을 받은 의원은 1880년 이후 없다고 한다.
 
  미국 연방의회에서도 1850년 남북 노예제를 둘러싼 격투 이후 폭력자에 대해 登院(등원) 금지, 의원직 박탈 등 강력한 조치가 나온 후 격투는 없어졌다. 1903년 지역별 예비선거가 실시되면서 의원들의 공천 여부가 당 충성도가 아닌 시민사회의 평판으로 결정되기 시작한 것도 큰 계기다(김형준 명지대 교수). 비윤리적인 의원들에 대한 시민의 낙천·낙선운동, 후원금 모금 제한 등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일본도 1950~1960년대 미·일 안보조약 개정 파동 등 保革(보혁) 갈등으로 의회 내 여야 간 ‘活劇(활극)’이 일어나곤 했지만 이후엔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길승흠 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일본은 1960년대 중반 경제위기와 70년대 석유파동 등 위기를 거치며 나라 전체가 똘똘 뭉치면서 정치권에서도 갈등 요소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한국도 국회 폭력에 대한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위원장 沈之淵 경남대 교수)는 ‘품위 유지’, ‘성실한 감독’ 등 모호한 현행 규정을 ‘폭행·폭언’ 등으로 구체화했다.
 
  자문위가 지난 1월 11일 발표한 ‘국회운영제도 개선안’은 현행 국회법상 20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징계요구 조건을 10명으로 완화했다. 또 징계의 종류에 ‘주의촉구’를 추가해 이를 2회 이상 받을 경우 가중 징계한다. 국회 안에서 폭력을 행사한 의원은 윤리특별위원회로 회부돼 징계를 받게 된다.
 
  자문위는 ‘제 식구 감싸기’ 관행으로 윤리심사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해 외부인으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를 국회법에 명시해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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