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좋아서 집권당 대표 담당기자지, 옛날 권문세가의 食客(식객) 비슷한 생활이었습니다. 새벽같이 상도동으로 출근해 거실 한쪽에서 조간신문을 쭉 훑어보고, 그 집 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시래깃국에 김치, 갈치 한 토막 정도 나오는 식단이었습니다.
일과가 끝나면 저녁에 다시 상도동으로 갔습니다. 나중에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李源宗(이원종)씨가 제 업무 파트너였습니다.
金泳三 정권에서 하늘을 찌르는 기세였지만, 金泳三씨의 潛邸(잠저) 시절 그의 직책은 민자당 副대변인이었습니다. 李源宗씨는 상도동 쪽에 불리한 기사가 나오면 곧바로 핏대를 올려, 기자들 사이에 「血竹(혈죽)」이라는 별명으로 통했습니다.
『어이, 구멍가게 가서 맥주 좀 사와라』
李源宗씨가 소리를 치면, 훗날 언론을 장식한 張學魯(장학로), 朴鍾雄(박종웅) 같은 이들이 부리나케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大選(대선)이 있었던 1992년 상도동의 아침은 민주계 정치인, 家臣(가신)들, 정치 지망생, 정치부 기자들로 더욱 북적댔습니다. 金泳三씨는 밤 늦게 퇴근하다가 간혹 거실에 앉아 있던 저와 마주치면, 제 손을 잡고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미스터 金, 이번에는 朝鮮日報가 꼭 나를 「학실하게」 도와줘야 한대이』
盧泰愚-金泳三-金鍾泌 세 사람이 3당 합당 때 작성한 「내각제 합의각서」가 공개되자, 金泳三씨는 「공작정치」라며 당무를 거부하고 고향 마산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세 사람이 비밀리에 약속을 했지만, 내각제 개헌으로 가려면 언젠가는 공개해야 할 문서였습니다.
그 문서가 공개됐다고, 「공작정치」라며 펄펄 뛴 것은 金泳三 특유의 억지였습니다. 그런데도 朝鮮日報를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들이 金泳三 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그의 反독재 항거에 함께하지 못한 부채의식이 컸기 때문입니다.
維新, 5共 시절 反독재 민주화투쟁의 선두에 섰던 金泳三씨는 언론들이 자신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얼마 전 상도동에서 말고기 肉膾(육회)로 점심을 함께 할 때도 金泳三 前 대통령은 『내가 朴正熙·全斗煥이 하고 싸울 때 신문이 어디 한 줄이나 제대로 썼나』라며 언론의 비겁함을 꼬집었습니다.
大選 선거운동 기간 金泳三 후보가 대덕의 연구단지에서 연구원들과 일문일답을 벌였습니다. 제가 「풀 기자」로 혼자 그 행사를 취재했습니다. 金泳三씨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훗날 문민정부의 첫 총리가 된 黃寅性(황인성) 정책委 의장이 옆에서 메모를 적어 건네주며 도와주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연구원들의 어려운 질문에 쩔쩔매던 金泳三씨는 혹시 기자들이 있는지 둘러봤습니다. 낯익은 얼굴의 제가 혼자서 취재하는 걸 알고는 안도의 표정을 짓더군요. 민자당의 주류인 민정계 국회의원들은 사석에서 만나면 노골적으로 金泳三씨의 「언어능력」, 「知的(지적)능력」에 대해 회의를 표시했습니다.
「虛舟(허주)」라는 호로 더 잘 알려진 金潤煥(김윤환) 의원은 그때 이런 얘기를 전파하고 다녔습니다.
『「박통」·「전통」·「노통」 군인들이 많이 했는데, 이제 민간인이 해야 하는 거 아이가. 이번에는 「와이에스」가 한번 하는 기 순리다. 민주화 투쟁한 와이에스한테 한번 기회를 줘야지. 철언이(박철언 의원)가 천지사방 모르고 날뛰는데 그래서 되나. 이번에는 와이에스다. 어디 내 말이 틀렸노』
대부분의 언론과 국민들은 金泳三의 자질보다는 그가 민주화에 기여한 功(공)을 높이 샀습니다. 그래서 민정계 정치인들이 제기했던 「자질론」에 힘이 실리지 못했습니다.
「朝鮮日報가 작심하고 金泳三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서…」 하고 비난하지만, 시대의 분위기가 「민주화 투사 金泳三」을 대통령으로 선택했고, 朝鮮日報 역시 그런 시대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뿐이었다고, 현장에 있었던 저는 생각합니다.
金大中 前 대통령은 언론에 恨(한)이 깊었던 정치인입니다. 1993년 8월 趙甲濟(조갑제) 당시 月刊朝鮮 편집장과 함께 동교동에서 金大中씨를 6시간 동안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용공 음해와 국민들의 오해를 털어버리지 못한 채 정치를 떠나야만 했던 恨」을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목숨을 걸고 4000만 국민을 사랑했는데… 그런 국민들이 「金大中이는 과격하다. 용공이다. 金大中이는 안 된다」고 오해할 때는 피눈물이 났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나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고, 선거가 끝나면 「잘못했다」고 비는 이런 부도덕한 행위를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집권 후 金大中씨는 세무조사를 통해 朝鮮日報와 東亞日報의 社主(사주)를 구속했습니다. 「恨풀이」를 한바탕 하긴 했지만, 그는 「효율적인 국정을 위해 언론과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했습니다.
金大中 前 대통령은 예나 지금이나 기자들을 「동지」라고 부릅니다.
지난 1월13일에는 자신의 임기 중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 43명과 신년 오찬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 쉬는 토요일이었는데, 초청받은 기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보름 전쯤 점심을 함께 한 朴智元(박지원) 前 대통령 비서실장은 金大中의 언론관을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金대통령은 늘 「정권을 지탱하는 두 축은 정책과 홍보」라고 강조해요.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되고 나서나 참모들에게 「보석같이 좋은 정책을 아무리 내놓아도, 홍보라는 실로 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언론접촉을 독려했습니다. 참모들이 「기자들 만나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젯밤 기자들과 술 한잔 했습니다」 하는 보고를 제일 반가워했어요. 청와대 시절 장·차관들이 출입기자 간담회, 기자 접촉을 얼마나 했는지 통계를 내서 국무회의 때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기자들을 만나라고 독려를 해도 장·차관들은 언론 만나기를 싫어하데요』
金大中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대통령직인수委에서 「기자들이 청와대 비서실을 출입하면 업무에 방해된다. 기자들의 비서실 출입을 막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합니다. 「기자들이 불편해 한다」는 보고를 받은 金大中씨는 즉각 「비서실 출입제한」 논의를 중단시켰다고 합니다.
金大中 청와대도 金泳三 청와대 수준으로 시간을 정해서 대통령 비서실을 출입기자들에게 개방했습니다.
朴 前 비서실장은 언론을 손보고 싶은 유혹을 종종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코끝이 빨개지는 때가 있어요, 기사 때문에. 기자들은 잘 써준 기사만 기억하고, 정치하는 사람은 나쁜 기사만 기억나게 마련입니다. 이불을 확 뒤집어쓰고, 「야, 이 ×자식아」 하고 고함을 질러요. 밖에서 집사람이 놀라서 뛰어들어와 「무슨 일이 있어요?」라고 묻죠. 그러면 허허, 웃으면서 「어, 아무 일 아냐」 하고 자곤 했습니다』
사회부에서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경찰팀의 팀장을 「캡」이라고 부릅니다. 「캡틴」의 준말입니다. 경찰팀 기자들에게 「불구덩이에 뛰어들라」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캡입니다.
저는 1999년 2월부터 1년간 「캡」을 했습니다. 1년 임기를 마치고 후배들로부터 받은 감사패에는 20명의 후배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모두 저와 함께 일을 했던 친구들입니다.
연평도 서해교전, 씨랜드 화재, 린다金 로비 사건, 옷 로비의혹 사건, 탈옥수 신창원의 도주행각과 검거, 쏟아지는 카드 신용불량자…. 1년 내내 이어진 사건·사고를 취재하느라 후배 기자들은 진이 빠졌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特種(특종)과 落種(낙종)이 엇갈리는 「전쟁터」에서 전투를 치렀습니다. 적어도 저와 제 후배들은 「기자들이 기자실에서 노닥거리며, 기사를 담합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도 하지 못합니다.
한번은 후배에게 『전직 공군 장성이 미국 여성 로비스트 린다金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정보가 있다. 찾아내서 인터뷰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후 저는 그런 지시를 내린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2시쯤 편집국에서 야근을 하고 있는데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예비역 공군 장성이 집에 들어오질 않아서, 집 앞에서 사흘 밤을 기다렸습니다. 아까 밤 12시 넘어서 그가 몰래 집으로 들어가는 걸 발견하고, 다른 신문사 기자들이 눈치 챌까 봐 골목에 세워 둔 제 차로 데려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 기사를 거의 다 썼으니까 곧 보내겠습니다』
요즈음 『다음 정권이 어쩌지 못하도록 기자실에 대못을 박아 버리겠다』는 험악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곤혹스럽습니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런 낯뜨거운 소리를 듣는 것인지, 후배들 볼 낯이 없습니다.
영국 총리 스탠리 볼드윈(1867~1947)은 언론을 원색적으로 힐난했습니다.
『신문들이 목적하는 바는 「책임지지 않는 권력」의 추구다. 신문은 영원한 창녀들이다』
권력을 차지한 이들은 예외 없이 「나는 선출된 권력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력을 국민에게서 위임받았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더 겁나는 것은 이들이 자신들을 「정의의 세력」으로 자부한다는 사실입니다.
언론을 「영원한 창녀」라며 침을 뱉는 권력의 오만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