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永福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
그러나 예전에는 이 냉면이 여름에 먹던 음식이 아니라 겨울철 음식이었다.
뜨거운 것은 열로 다스리고 차가운 것은 냉으로 다스리는 우리의 「以熱治熱(이열치열)」, 「以冷治冷(이냉치냉)」 문화로 엄동설한 추운 날씨에 온몸을 덜덜 떨어 가며 먹던 음식이 바로 냉면이다.
냉면이 문헌상 최초로 기록된 「東國歲時記(동국세시기)」(1849)에 「겨울철 時食(시식)으로서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이 있다」고 돼 있다.
「高麗圖經(고려도경)」(1123)에 의하면 「고려가 중국으로부터 국수 만드는 법을 배웠다. 중국으로부터 배운 국수의 재료는 밀가루였으나, 귀한 밀가루보다 메밀가루를 이용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메밀국수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평안도나 경상도 산간지방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 메밀국수였다. 이 메밀국수를 차게 해서 겨울에 먹던 음식이 바로 冷麵(냉면)이다. 우리는 냉면 하면 「평양냉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필자는 1998년에 입수한 북한서적 「조선의 민속전통:식생활풍습 편」(1994년 1월25일 북한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발행)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냉면 중에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다」라는 대목이었다.
우리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잘 아는 데 비해 정작 남한에 살면서 진주냉면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1998년 5월경 진주시내를 뒤져 「진주냉면」 하는 곳을 찾았다.
진주냉면은 이미 진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지고 없었다. 비슷하게나마 진주냉면을 하고 있는 집이 바로 진주 서부시장 안에 위치한 「진주냉면집」(대표 황덕이·전화 055- 741-0525) 이다.
이 집은 1945년 광복이 되던 해부터 약 60년간 냉면집을 운영해 왔다. 황덕이(78) 할머니의 손맛이 딸 하연옥(41)씨에게 이어지고 있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진주 시내에 진주냉면집이 서너 군데 있었다고 한다.
당시 진주에는 「北 평양기생, 南 진주기생」이라고 불릴 만큼 기생문화가 발달해 있었다고 한다. 美色(미색)과 才色(재색)을 겸비한 관아의 진주기생과 숙수(요리사)들이 조선이 망하면서 권번과 料亭(요정)으로 나와 영업을 계속했다. 기방을 찾은 돈 많은 일본 사람들이나 한국인 지주 등이 기생들과 함께 야참으로 진주냉면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평안도 산간지방에서 즐겨먹던 메밀국수가 평양냉면이 되고, 경남 합천·의령 등지에서 즐겨 먹던 메밀국수가 진주냉면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된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요정뿐만 아니라 진주의 부유한 가정에서 냉면을 배달해 먹어, 진주냉면집에는 배달을 주로 하는 남자 하인들이 서너 명씩 있었다고 한다.
진주냉면의 특징은 첫째, 순 메밀에 고구마 전분을 물에 개어 반죽해서 면발을 뽑는다. 둘째, 쇠고기의 사태살 또는 정강이 살을 푹 고아 기름을 건져 육수를 맑게 만든 후 죽방멸치와 개발(바지락), 마른 홍합, 마른 명태, 표고버섯으로 장국을 만들어 서로 배합한다. 해물장국을 쓰는 것이다. 멸치의 잡냄새를 없애기 위해 무쇠를 벌겋게 불에 달궜다가 장국에 넣어 잡냄새를 없앤다.
셋째, 배추김치를 채 썰어 진주지방에서 제사음식으로 만들어 먹던 쇠고기 육전과 함께 올린다. 넷째, 고명으로 배와 오이를 채 썰어 얹고, 길게 썬 쇠고기, 표고버섯, 석이버섯, 달걀 노른자 지단, 실백과 깨소금을 얹어 내놓는다.
이 네 가지 특징이 진주냉면의 원형을 이룬다. 네 가지의 원형이 훼손된 냉면은 진주냉면이라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양大 교수를 지낸 故이성우 선생은 『평양냉면은 찡한 맛이 있지만, 진주냉면은 남국적인 맛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남한의 각계 인사들이 북한에 가면 으레평양 「옥류관」에 찾아가 평양냉면 맛을 보고 온다.
우리도 남한을 찾는 북한 사람들에게 진주냉면의 남국적인 맛을 보여줄 수 있도록 그 전통을 이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