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受 辰 SBS 기자
1969년 서울 출생. 보성女高·연세大 신문방송학과 졸업. SBS 보도본부 사회·문화·과학·경제·국제·편집부 기자. 1994~2002년 SBS 8시 뉴스 앵커, 2002~2003년 미국 U.C.샌디에이고 연수.
1969년 서울 출생. 보성女高·연세大 신문방송학과 졸업. SBS 보도본부 사회·문화·과학·경제·국제·편집부 기자. 1994~2002년 SBS 8시 뉴스 앵커, 2002~2003년 미국 U.C.샌디에이고 연수.
한국 영화 「同感(동감)」과 미국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본 독자라면, 이 작품에서 「데자뷰(旣視感·기시감)」를 느낄지 모른다. 낡은 無線(무선) 교신기를 통해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가 대화한다는 점은 「同感」과 비슷하다(실제로 두 영화는 같은 해인 2000년 개봉됐으며, 두 영화가 우연히 닮았는지 아니면 한쪽이 다른 한쪽을 베꼈는지를 놓고 인터넷에서 꽤 시끌벅적한 논란을 일으켰다). 과거가 바뀌면 그에 따라 현재가 물결치고, 그래서 가족 寫眞(사진)의 인물이 바뀌거나 신문 스크랩이 변한다는 식의 착안은 「백 투 더 퓨처」를 계승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현재는 「同感」보다 더 적극적으로 과거에 간섭하며, 이 영화의 과거는 「백 투 더 퓨처」보다 더 감성적으로 현재에 진출한다. 이 영화는 특히 촘촘하게 맞물리는 논리적 톱니바퀴가 아름답다. 과거와 현재가 긴박하게, 혹은 기발하게 얽혀드는 모습에 관객은 손을 불끈 쥐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빙긋 웃는다.
물론 이 영화가 이용한 科學 때문에 科學은 상처받고, 이 영화를 지켜보는 科學者도 어이 없음에 상처받을지 모른다. 또 할리우드 본연의 「따뜻한 가족애와 더 없이 행복한 결말」에 끼워 맞춘 듯한 이 영화의 막판 反轉(반전)은 다소 허탈할 수 있다. 그래도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보면 그 科學과 反轉은 그럴듯하고 유머러스하다. 좀더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본다면 이 영화는 손에 땀 나고, 눈에 눈물 난다. 무엇보다 영화는 충분히 유쾌하고 흥미롭다.
이 영화에서는 1969년의 아버지와 1999년의 아들이 대화한다. 1969년에도, 또 1999년에도 뉴욕 하늘을 물들이는 오로라가 이 설정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배경이다. 1999년의 텔레비전은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며 여러 차원이 존재한다」는 학설을 왕왕거리며 소개해 관객에게 「이 영화는 그럴듯해」라는 최면을 건다.
아버지 프랭크(데니스 퀘이드 扮)는 열혈 소방관이고, 아들 존(제임스 카비젤 扮)은 강력계 형사이다. 아들은 30년 동안 뉴욕의 같은 집을 떠나지 않고 지켜 왔고, 덕분에 두 사람은 같은 방 같은 책상에서 交信한다. 그래서 1969년의 아버지가 책상에 「난 아직 여기 있다」고 새기면, 1999년의 아들이 보는 낡은 책상에도 그 흔적이 생겨나는 식의 흥미로운 구도가 가능하다. 이 구도는 영화가 범죄 스릴러로 분위기를 바꾼 후, 父子가 30년 간격을 사이에 두고 증거물을 주고 받으며 범인 검거에 협력하는 모습도 그럴듯하게 만드는 기특한 장치로 쓰인다.
따뜻하고 의로우며 용감한 아버지는 원래 1969년 불을 끄다 사망했다. 그래서 아들의 30년은 아버지 없는 외로움에 젖어 왔다. 그런데 신기한 交信이 이뤄지고, 아직 죽지 않은 아버지와 쓸쓸한 아들은 無線 속의 목소리로 邂逅(해후)한다.
물론 애당초, 아들과 아버지는 이 「신비로운 대화」를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뻔히 다가올 아버지의 사망을 그냥 지켜보는 아들은 없는 법이다. 「밑져야 본전」이므로 아들은 긴가민가한 과거의 아버지에게 『다음날 발생하는 화재 현장에서 죽게 돼 있으니 대피 방법을 바꾸라』고 조언하고, 덕분에 아버지는 정말 목숨을 구한다. 이제 父子는 30년의 벽이 音波 속에서나마 무너졌음을 믿는다.
아버지가 화재 현장에서 살아난 것이야 당연히 좋은 일. 하지만 한번 개입되고 뒤틀리기 시작한 과거는, 현재라는 피륙의 올을 톡톡 끊어 놓는다. 아버지가 살아나자, 간호사인 어머니(프랭크의 부인이고, 아들 존의 어머니인 줄리아)가 한 남자의 목숨을 구한다. 원래대로 아버지 프랭크가 죽었더라면 줄리아는 장례식에 갔을 테고, 그래서 살아나지 못했을 남자다. 이 남자는 불행히도, 연쇄 살인마이다.
간호사만 골라서 죽이는 이 살인마가 죽어야 할 때 죽지 않고 살아나자 더 많은 살인이 벌어진다. 살인마는 심지어, 마침내 줄리아까지 살해한다. 그래서 父子에게 범인의 검거, 추가 살인의 예방은 절체절명의 지상 과제로 떠오르고, 영화는 후끈 달아오른다. 1969년의 아버지와 1999년의 아들이 같은 범인과 死鬪(사투)를 벌이는 영화 막판 장면도 화려하다.
1969년에도 1999년에도 뉴욕 시민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역시 야구경기고 메츠(야구팀)다. 메츠의 월드시리즈는 등장인물로 하여금 時間 超越을 납득하도록 만드는 열쇠로 몇 차례 이용된다. 감독 그레고리 호블릿은 「프라이멀 피어」, 「다크 앤젤」, 「하트의 전쟁」 등을 연출하며 솜씨를 보여 준 바 있다.
이 영화의 餘韻(여운)을 좀더 즐기고 싶다면 몇 권의 책을 읽어도 좋다. 우선 卜鉅一(복거일) 선생의 명작 「碑銘(비명)을 찾아서」를 꼽을 수 있다. 代替(대체) 소설의 형식을 갖춘 이 작품은 安重根(안중근) 의사가 쏜 총알이,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이토 히로부미를 사망에 이르게 하지 못했다는 假定(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작은 차이가 낳는 변화는, 이토 히로부미가 액자 속 가족 사진에 등장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1980년대 한반도의 지도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온건 합리론자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남는 바람에,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 가담하고, 결국 戰後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설정이다. 이 소설에서의 뒤틀린 과거는, 그야말로 굉음을 내면서 현재의 피륙을 찢는다. 영화 「프리퀀시」보다 훨씬 더 섬세한 논리적 그물망, 長篇小說이지만 大河小說 같은 깊이와 폭은 정말 압권이다.
「엘리건트 유니버스」도 영화의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읽어 볼 만하다. 칼 세이건 이후 가장 대중적 과학자로 꼽히는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은, 「프리퀀시」 제작팀에게 영화의 주요 모티브인 시간 초월에 대해 조언을 한 因緣(인연)이 있다고 한다. 이 책과 이 영화에는 같은 과학자의 손길이 묻어 있는 셈이다. 이 책은 현대 입자물리학의 최전선이라고 불리는 「초끈 이론」을, 단 하나의 수학 공식이나 방정식 없이 놀랍도록 쉽게 풀어 썼다는 評을 듣는다. 뉴욕 타임스는 『호킹이 우리에게 블랙홀 세상을 열어 준 것처럼, 그린은 우리 앞에 끈 이론으로 설명되는 우주의 장관을 펼쳐 보인다』고 격찬했다.
애연가들이 특히 이 영화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 담배에 찌들고 병든 五臟六腑(오장육부)를 텔레비전이 하도 소개해서 이제는 봐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면, 더더욱 놓치면 안 될 교훈이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禁煙(금연)이 한 가족의 운명과 역사를 어떻게 바꾸는지 목격하시라. 귀하가 애연가라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운명적이고 역사적인 선택은 禁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