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한 장의 사진] 戰後 냉전의 불씨가 된 얄타회담

  • : 이오봉  ob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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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2월4일부터 11일까지 美·英·蘇 3대 연합국 수뇌가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회동, 비밀리에 終戰대책을 논의했다. 「얄타회담」으로 명명된 이 회동에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이 참석해 戰後처리 문제와 국제연합 창설 등에 관한 합의를 했다.
 
  스탈린 서기장의 초청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회담에서 3개국 대표는 독일에 대해서는 분할점령·非무장화·戰犯(전범)처리 문제 등을 합의했다. 소련의 對日 참전에 관한 비밀협정도 체결했다. 소련은 독일 항복 후 3개월 이내에 對日戰에 참가하는 대가로 사할린(樺太), 치시마(千島)열도를 획득하고 일본의 보유지 처리와 관련하여 大連港(다롄항)의 국제화, 소련의 旅順(뤼순) 租借權(조차권) 회복, 만주철도의 中蘇 공동운영 등의 권익을 보장받았다. 이 밖에 스탈린은 東유럽에 대해서도 많은 권한을 차지하는 등 큰 성과를 얻어냈다. 이러한 조치들은 戰後에 냉전시대를 불러일으키는 불씨가 됐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영국의 처칠 수상,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
 
  사진/美 정부 문서보관소·글/李五峰 月刊朝鮮 사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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