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 神話 주인공 최초의 본격 인터뷰 - 姜信浩 동아제약 회장

『藥은 즐거움(樂)을 주는 풀(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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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광고 모델」의 박카스 神話 주인공 최초의 본격 인터뷰

作名과 광고의 鬼才. 박카스는 한국의 최다 판매상품(123억 병). 박카스 석고상 보고 이름 결정

[편집자 注: 이 기사의 필자는 박카스 광고모델을 한 이력이 있다. 대학생 신분으로 전투기를 직접 조종을 해 본 경험이 있는 필자를 동아제약이 박카스의 모델로 기용했던 것이다. 동아제약 姜信浩 회장은 그런 인연으로 인해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姜회장이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사실상 최초다]

姜 信 浩 동아제약 회장
1927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 양정高ㆍ서울大 의대 졸업. 독일 프라이부르크 알베르트루트비히大 대학원 내과학 박사. 전경련 이사, 동아제약 사장, 라미화장품 사장, UN협회 세계연맹총회 한국대표,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세계제약단체연합회(IFPMA) 이사 등 역임. 現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명예회장. 대통령표창(모범납세자), 국민훈장 모란장 등 수상. 저서「돌과 물의 대화」,「연구개발(R&D) 사이버 길잡이」등.

李 元 翼 자유기고가
도무지 찾아 낼 재간이 없었다. 인터넷부터 시작하여 자료 많다고 소문난 여러 대학 도서관을 탈탈 털어 보고 심지어는 국회 도서관까지 이 잡듯 샅샅이 뒤졌으나 허사였다. 오기가 발동하여 친분이 있는 기자에게 부탁해 신문사 DB(데이터 베이스)까지 동원해 「뒷조사」를 해 보았지만 역시나였다.
 
  동아제약 姜信浩(강신호·76) 회장. 수십 년간 제약업계 굴지의 기업 오너요 박카스 신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姜회장이지만 사실 그는 언론에 모습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더 유명했다. 그런 그에게 극적으로 허락을 받아 낸 인터뷰를 며칠 앞두고 바짝 애가 타기 시작했다.
 
  姜信浩 회장은 돌아오는 5월에 喜壽(희수)를 맞는다. 희수란 사람 나이 일흔 일곱 살을 말한다. 사실상 가장 나이가 많은 현역 경제계 원로로서 1976년생인 필자와는 약 50년, 무려 半세기나 되는 세월의 간격이 있는 셈이다. 할아버지와 손자뻘이다. 시간과 세대의 이 장대한 강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컸다. 약간이나마 위로가 될 만한 것이 하나 있다면 姜회장과 필자는 舊面(구면)이라는 사실이다.
 
  필자는 전투기 비행복 차림으로 「꿈을 타고 나는 젊음」 이라는 컨셉의 박카스 광고모델에 기용된 적이 있는데 그 인연으로 姜회장과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인터뷰 직전까지 긴장이 완화되지 않아 담력을 좀 키울 필요가 있겠다 싶어 동아제약 본사가 위치한 동대문구 용두동 부근 골목 허름한 약국에 들러 强肝劑(강간제)인 박카스를 두 병이나 벌컥벌컥 들이부었다. 박카스를 만든 사람을 만나는데 박카스로 긴장을 달래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회장실에 들어서니 姜信浩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90도 가까이 굽혀 정중하게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라며 악수를 청한다. 황송하다 못해 당황한 필자가 진땀으로 맞잡은 그의 손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朴文夏(박문하) 선생의 수필 「약손」에 나온 할머니 손 마냥 섬세하고 보드랍다. 하지만 握力(악력)은 상당했다.
 
  姜회장의 첫 인상은 기업 총수라기보다는 老교수나 교장 선생님에 가깝다. 교수님 연구실을 연상케 하는 간소하고 소박한 회장실에 칠판이라도 하나 내다 걸면 당장이라도 일어나 강의를 할 것만 같은 품이다.
 
  굳이 上席(상석)을 권하는 姜회장에게 필자가 손자뻘이니 분수에 맞는 대우를 해 주십사 하며 말도 편하게 놓으시라고 부탁했더니 『뭐, 그럽시다… 그러지… 편하게 손자처럼…』라고 한다.
 
  ―유명하신 분이 언론에 가끔 얼굴도 좀 비춰 주고 그러시지요. 너무 빼시는 거 아닙니까. 인터뷰 자료 준비하느라고 고생 무지 많이 했습니다.
 
  『내가 타고난 게 그러니 어째. 체질적으로 내가 얘기하는 걸 싫어해요. 인터뷰니 뭐니 해도 그게 종국엔 자기 자랑이지. 우리 한국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누가 자기 자랑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여기저기서 인터뷰하자고 졸라대면 본의 아니게 퇴짜를 놓았는데…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럼 저는 왜 만나 주시는 겁니까?
 
  姜회장은 회장실이 다 울리도록 웃음을 터뜨리며 바로 답했다.
 
  『자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싶더라고. 내가 제일 좋아하고 높이 사는 게 젊은이들의 모습이야. 우리 광고 컨셉도 주로 젊은이들의 열정과 순수한 삶의 모습이잖아. 게다가 자네가 우리 광고모델도 해 주었으니 고맙기도 하고 박카스 얘기나 좀 해달라기에 겸사겸사해서…』
 
  姜회장은 자신에 대한 칭찬에 계면쩍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필자가 아는 대로, 들은 대로 姜회장 칭찬을 하며 분위기를 살짝 띄우면서 멍석을 두 겹 세 겹 깔아 줘도 선뜻 올라서지 않았다. 마치 그런 일들은 별로 대수로운 것이 아닌 것처럼 적극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보다 진행하는 이쪽이 더 불안해졌다. 약간의 침묵을 깨고 姜회장은 약을 품에서 꺼내어 물과 함께 단숨에 삼키고는 필자의 정면을 향해 바로 앉았다.
 
  『근데 내가 무슨 이야깃거리라도 되는가?』
 
 
 
 의학도의 길을 접고 경영난 복구에 투신
 
   姜信浩 회장은 원래 의사다. 희수를 축하하며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에 필자가 알아듣지 못할 전문용어로 自家診斷(자가진단)했다.
 
  『다행히 아직 치매가 올 때는 안 된 것 같아(웃음). 사실 내가 두뇌로 공급되는 혈액량이 정상인의 60%정도밖에 안 돼요. 그래서 우리 회사 약 중에 니세틸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하루에 하나씩 먹어. 기억력 감퇴 지연제지. 써큐란이라고 혈액순환개선제도 먹고』
 
  동아제약은 1932년 지금 한국일보 자리인 서울 중학동에서 출발한 「강중희 상점」 이 母胎(모태)다. 경북 상주에서 상경한 姜信浩 회장의 부친인 故 姜重熙씨가 창업주인 10평 남짓한 이 소매 「약국」은 지금은 1967년 이후 줄곧 매출 및 R&D 분야에서 국내 제약업계 不動의 선두를 지켜 온 기업으로 성장했다. 동아제약에서 만들어 내는 품목은 그 종류나 수를 제대로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데 약품의 종류만 176종이 넘는다. 회사 나이가 일흔이 넘다 보니 1992년에는 회사 「회갑잔치」를 했고, 2002년에는 「동아제약 70년사」라는 백과사전 두께의 기념社史(사사)도 냈다.
 
  192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서울에 올라온 姜信浩 회장은 서울大 의과대학과 대학원 내과를 마치고 3년간 병원에 근무했다. 1956년에 독일 유학길에 올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내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59년에 귀국했다. 그리고 바로 회사경영에 뛰어들었다. 이때 주어진 직책은 상무였다.
 
  ―듣기로는 의사의 길을 걷고 싶어 하셨다고 하던데요. 미련은 없으십니까?
 
  『미련이 많지. 사실 나는 의학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근데 서울에 돌아와 보니까 회사 사정이 말도 못할 지경이야. 나는 잘만 돌아가는 줄 알았거든. 아, 글쎄 대학출신 약사가 단 두 명뿐인데 그나마도 일손이 모자라 한 명은 생산직에 있더라구. 수금하러 다닐 사원도 없어서 멀쩡하게 물건은 팔아 놓고 돈을 못 받는 상태였어. 말 그대로 「흑자도산」 상태였지. 아이쿠, 이거 내가 속 편히 앉아서 책이나 들여다보고 있을 팔자가 아니구나 하고 정신이 확 들더라구』
 
  姜信浩 회장의 제의에 따라 사원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姜회장은 특별한 스케줄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원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고 했다. 일본식 소면과 볶음밥, 밑반찬으로 이루어진 점심메뉴는 1600원. 姜회장은 아주 맛있게 식사를 했다. 식사량도 상당해서 돌아서면 배고플 나이인 필자를 무색케 했다. 바로 옆자리에서 사원들이 숟가락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가운데서 인터뷰는 계속됐다. 이번엔 姜회장이 먼저 질문을 던진다.
 
  『자네, 술 좀 하나?』
 
  ―박카스에도 취합니다.
 
  필자 또래의 남녀 사원들이 식사를 하다 말고 웃는다.
 
  『허허허, 보기엔 꽤나 할 것 같은데. 나는 젊었을 때 술 좀 했지. 당시만 해도 소주가 귀한 시절이라 정종밖에 마실 게 없었는데 1.8ℓ 두 병은 마셨어』
 
  姜회장은 키 165cm에 체중 58kg을 수십 년째 유지해 오고 있다. 건강 유지의 비결인 셈이다. 姜회장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는 행사가 있다. 동아제약이 매년 주최하는 공익성 이벤트 중 「대학생 국토대장정」이 그것이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21일 동안 647.1km에 달하는 코스를 행군하는 프로그램이다. 姜회장은 매년 국토대장정에서 하루 정도 학생들과 함께 행군의 선두에 선다.
 
  ―건강 비결이 따로 있습니까?
 
  『없어, 그런 거. 그냥 몸에 좋다는 건 안 먹어요. 뱀, 개고기, 지렁이 뭐 이런 거. 밸런스드 다이어트(balanced diet), 즉 여러 가지 조금씩 골고루 먹는 거지. 내가 평생 제약회사를 했지만 그것만큼 좋은 약이 없어』
 
  ―너무 식상한데요.
 
  『아, 맞다. 박카스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아. 허허허』
 
  박카스 얘기가 나오자 姜회장은 졸라대던 장난감을 쥐어 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후식으로 나온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박카스 얘기를 자세하게 해 주었다. 필자는 순간적이지만 姜회장의 그런 모습이 무척 천진난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카스 석고상 보고 作名
 
  대한민국 제약업계에는 「박카스 신화」 가 있다. 2001년에 발매 40주년을 맞은 이 드링크제는 발매 3년 만인 1964년에 정상에 올랐고 이에 탄력을 받은 동아제약은 1967년부터 매출액 1등을 단 한 번도 내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카스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드링크제 하면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처럼 떠오르는 代名詞가 되어버린 박카스.
 
  잠깐 숫자놀음을 해 보자. 1961년 처음 출시된 박카스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다판매상품이다. 2001년에는 123억 병을 넘어서 누계 매출액으로만 2조536억원에 이르렀다. 2000년 한 해만 7억 병이 넘게 팔렸다. 우리나라 全인구가 매월 한 병 이상을 마시고 하루에만 평균 193만 병이 팔린 셈이다. 2002년엔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려 5월 한 달 동안에만 7400만 병이 팔려 2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제약사의 드링크류 부문에서 단기간 최고 판매기록이다. 연간 판매량이 1000만 병을 넘어 선 것은 1966년이었고 1억 병을 돌파한 해가 1976년이었다.
 
  박카스 병의 길이는 약 12cm. 지금까지 팔린 병을 길이로 계산하자면 148만5230km가 된다. 지구 둘레가 약 4만km니까 지구를 37바퀴 돌고도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카스가 일반 소비재 상품이 아닌 약국에서만 팔도록 되어 있는 의약품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기록이다. 매년 다르지만 지금도 박카스는 동아제약 매출액의 40%를 차지한다.
 
  신인섭 한림大 객원교수는 「박카스 40년-그 神話와 광고 이야기」(나남출판刊)라는 책을 내놓았다. 회사의 社史도 아니고 특정 상품의 역사를 담은 책은 한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쳇말로 「엽기적인」 이 박카스 神話의 아버지가 바로 姜信浩 회장이다. 姜회장은 박카스라는 제품과 이름을 직접 착안했고 오늘날까지 키웠다.
 
  박카스(Bacch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Dionysos)이다. 우리나라 백과사전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디오니소스는 풍요와 성장을 관장하는 자연의 신이지만 널리 알려지기는 술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박카스라는 명칭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유언비어가 많다. 박카스라는 상호의 유래, 그것이 알고 싶어 박카스의 원조이자 그 作名者에게 그 진실 규명(?)을 요청해 보았다.
 
  『그거야 내 인생에 길이 남을 에피소드고 말고. 내 독일 유학 시절 함부르크에서 한 3개월 있었어. 하루는 시청 지하 홀 입구에 앉아 있는데 박카스 석고상이 눈에 띄더라고. 한 손에는 와인을 만드는 포도송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곡식을 들고 떡 하니 서 있었는데 나한테는 인상이 깊었던지 귀국한 뒤에 생각이 나더라구. 그게 나중에 지금 박카스의 명칭이 될 줄은 당시에는 꿈에도 몰랐지』
 
  드링크제 박카스는 이 박카스 神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어지는 姜회장의 말.
 
  『박카스 같은 형태의 의약품의 공식 분류 명칭은 크게 나누어서 滋養强壯劑(자양강장제)라고 해요. 主기능은 간기능 보조, 영양보충 등이에요. 자네는 좋은 시절에 태어나 잘 모르겠지만 1956년 大選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선거구호가 「못살겠다 갈아보자」였고 여당인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 수 없다」일 정도로 말 그대로 찢어지게 못 살았어.
 
  사람들은 주로 막걸리를 마셨고, 막걸리를 마셔도 잔보다는 사발이나 대접으로 마시기를 즐겼지. 그런 風流로 길거리에 酒太白(주태백)이 많았어요. 술꾼들 숙취해소와 영양보충을 위한 드링크제를 구상하다가 마침 독일에서 본 박카스 석고상 생각이 떠올라 붙여 본 거지. 술의 신은 바로 술을 사랑하는 사람 → 즉 술꾼을 보호하는 신이잖아. 술꾼을 보호하는 신 → 박카스, 이렇게 된 것이지. 이 이름 석 자를 경영학 강의에도 갖다 썼다지, 아마』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진짜 이유
 
  박카스가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 중의 하나는 가격정책에 있다고도 한다. 처음 박카스가 출시되었을 때 가격은 40원으로 당시 자장면 값과 같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동안 자장면 값은 100배 가까이 폭등했지만, 박카스 값은 10배 정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박카스에는 무슨 중독 성분이라도 들어 있길래 이렇게 40년간 국민 애호품이 됐을까. 박카스 1병에는 카페인이 30mg 정도 들어 있다. 보통 커피 한 잔에 카페인이 약 100∼120mg이 들어 있으니 그리 많은 양은 아니다. 하루 한 병만 복용한다면 중독 증세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소량의 카페인은 정신을 밝게 하고 졸음을 없애 주며, 사고 능력을 향상시키고 피로를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 밖에도 5종의 비타민과 카르니틴 등의 생체활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고 타우린이란 성분도 1000mg 들어 있다.
 
  姜信浩 회장의 말에 의하면 타우린은 식물에는 거의 들어 있지 않으나 동물에는 하등에서 고등동물까지 널리 들어 있는 필수 아미노산으로 체내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고 간 기능을 보조하는 활성물질이라고 한다. 사람에게는 심장, 뇌, 간 등에 많이 들어 있다.
 
  그런데 동물 중에 타우린을 스스로 생성하고 합성하지 못하는 동물이 고양이다. 그런 이유로 고양이는 타우린을 반드시 외부에서 섭취해야 한다. 미국에서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눈이 먼 사건이 있었다. 그 원인을 조사해 보았더니 개 사료를 (개는 타우린을 자체 생성한다) 고양이에게 계속 먹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사건 이후 타우린이 눈에도 얼마나 필수적인 아미노산인지 알려지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현재 시판되는 고양이 사료에는 반드시 타우린이 첨가되고 있다. 이 타우린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타우린 덩어리」가 바로 쥐다. 고양이가 본능적으로 쥐를 쫓는 이유는 바로 이 타우린이 아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묘한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박카스 신화는 「박카스 人和」
 
  姜信浩 회장은 박카스 신화는 박카스 「人和(인화)」라고 힘을 주어 말한다. 박카스의 승승장구는 절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일구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카스야말로 숱한 무명, 유명의 사람들의 땀과 노력의 결정체라고 했다.
 
  박카스 신화의 수훈 갑은 뭐니뭐니해도 뛰어난 광고전략이다. MBC 애드컴이 담당하고 있는 박카스 광고는 광고업계의 모범으로 간주되고 있다. 광고 없이는 박카스 신화는커녕 전쟁터 같은 시장에서 브랜드 자체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강의의 텍스트가 되기도 한 姜信浩 회장의 3M(Mass Production, Mass Communication, Mass Sale) 마케팅 중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 광고다.
 
  ―동아제약의 상품광고는 봤어도 회사광고는 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회사들의 광고를 보면 곰도 우렁차게 울고 종도 은은하게 울리고 그러던데요.
 
  『회사에 화장을 따로 시키고 싶지 않아. 왜, 화장 많이 하고 겉치장 많이 하는 여자가 있는 반면 꾸미지는 않아도 속은 꽉 차서 오래 같이 지내다 보면 내적인 아름다움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여자가 있잖아. 속이 꽉찬 여자가 알짜야. 잘 기억해 두라구. 기업광고에 지출할 돈을 연구와 기술 개발에 투자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고 소비자들이 만족해하면 그게 최고의 광고지』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 /궂은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1998년 정월 초하루에 5단 37cm 크기로 신문에 게재된 작자미상의 口傳가요. 이 공익성 박카스 광고는 IMF 한파를 호되게 맞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국민 모두가 패배감에 빠져 있던 당시 군대 졸병으로 외박을 나왔던 필자도 귀대 길 기차 안에서 이 광고를 보고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박카스 광고는 이단아처럼 등장했다. 광고 마지막에 「공익광고협의회」라는 자막이 뜰 것만 같은 조금은 구닥다리 같은 광고. 제품을 지나치게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공익적 내용들과 인간애, 도덕, 젊은이의 꿈과 열정을 담은 광고들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중장비공, 알아 주지 않아도 묵묵히 일하는 철로 보선원, 환경미화원 아버지와 아들 등 「새 한국인」 캠페인으로 훈훈한 감동과 가슴 찡한 여운을 남겼다.
 
  朝鮮日報 사회면 톱 기사에 올랐던 환경미화원 편은 실제 인물을 등장시켜 감동을 낳았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줄을 서고 노약자석을 비워두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은 「지킬 건 지킨다」 편은 서울시 도시철도공사 사장으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건전한 시민문화 조성과 도덕성 회복에 기여했다는 이유였다.
 
  경영학 용어 중에 ROI(Return on Investment)라는 말이 있다. 한 마디로 투자했으니 돌아오는 건 무엇인가 하는 말이다. 광고 덕에 동아제약의 매출은 꾸준히 급신장했다. 그리고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ROI를 낳았다. 광고를 통해 감동과 희망, 꿈과 열정을 얻었다는 사람들의 반응과 감사였다.
 
  『내가 기업하면서 가장 보람 있을 때가 우리 광고를 보고 사람들이 가슴이 따뜻해지고 힘을 얻었다고 말 할 때야. 그러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돈을 버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게 내 경영철학이야. 그걸 광고에 꼭 담고 싶었고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갈 생각이에요』
 
  姜信浩 회장의 말이다. 그의 얼굴이 조금씩 상기되기 시작한다.
 
 
 
 창조인, 봉사인
 
  姜信浩 회장이 걸어 온 길은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동아제약은 크게 세 번의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첫째는 일제시대 말기 일본 관동군에 납품한 대금을 광복 후 받지 못한 일이었고, 두 번째는 한국전쟁 이후 부산 피난에서 돌아와 회사 복구 때 겪은 자금난이었다. 세 번째는 1950년대 말 대형 공장을 짓다가 자금이 부족해 부도가 난 일이다.
 
  『내가 40년 기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IMF 때야. 그 때 여러 개 있던 계열사들이 많이 무너졌지. 제일 가슴 아픈 건 할 수 없이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오래 함께 했던 직원들을 마음만큼 못 챙겨 준 거야』
 
  ―박카스는 시련이 없었습니까?
 
  『왜 없었겠어. 박카스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나이 마흔 먹은 사람 잡고 똑같이 물어봐요. 철 들고 난 뒤만 세어 1년에 하나만 잡아도 얽힌 이야기가 30개는 나오지 않겠어?』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朴正熙 대통령 시절인 1976년부터 1993년까지 박카스 같은 자양강장 드링크류 의약품의 일반대중매체 광고가 금지되었어. 약의 오남용이 심해진다는 이유였지. 우리나라가 지금은 이렇게 좀 살지만 1976년만 해도 1인당 GNP가 1000 달러가 안 됐어.
 
  그때 칠성사이다 한 병 값에 10원을 더 줘야 박카스 한 병을 샀지. 박카스 한 병이면 연탄이 세 장에 어른 하루 세 끼 쌀 값인데 아직도 굶는 사람이 많은 와중에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박카스 같은 건 왜 마시냐는 거였지』
 
  「우리는 사회正義에 따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하여 인류의 건강과 복지향상에 이바지한다」
 
  창업주 시절부터 내려온 동아제약의 社是(사시)이다. 간결한 문구지만 여기에는 姜회장의 인생관과 기업관이 스며들어 있다. 창조와 봉사가 그것이다. 실제로 姜信浩 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그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창조인과 봉사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姜회장은 작년 4월 과학입국 건설과 신약개발의 공로로 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수훈했다. 창조장은 과학분야 훈장 중 최고 훈장으로 姜회장이 최초의 수훈자다.
 
 
 
 2500여 개 作名, 이름 빌려 주기도
 
  의약품 연구 및 개발을 위한 투자와 노력 외에도 姜회장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국내 산업기술계의 최고권위의 상인 장영실상과 기업의 기술개발을 촉진을 위한 신기술인정(KT마크) 제도를 운용해 왔다.
 
  이 중 장영실 상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다. 新기술 개발의 동기와 자존감 부여를 위해 만든 이 두 제도에서 세계 최고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姜회장의 창조성은 그의 특기와 취미에서도 엿보인다. 다름 아닌 作名. 박카스는 물론 동아제약에서 개발된 거의 모든 제품의 이름은 姜회장이 직접 지었다고 보면 된다. 특허청에만 등록된 것만도 무려 2500여 개. 워낙 많다 보니 이름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덕분에 동아제약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등록상표를 보유한 기업이 되었다. 주위의 부탁으로 아이 이름을 지어 주거나 타 기업 제품 이름까지 지어 주거나 빌려 주는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作名所 뺨치는 수준이다.
 
  스산한 바람소리 다음에 들려오던 애절한 목소리 『감기 조심하세요-판피린 에프!』 하는 CM을 기억할 것이다. 판피린은 약 성분인 「피린」에 汎(범)의 뜻인 판(Pan)을 붙인 것이라고. 노래 가사인 「한오백년 살고 싶다」에서 따 와 오백년을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로 붙인 토코페롤제 하노백은 약국에 가서 『천년만 삽시다』 하면 두 갑을 내어 준단다. 두통약 암씨롱은 중외제약 김종호 회장과 골프를 치다가 충청도 양반인 金회장이 『알면서∼』 라는 뜻으로 「암씨롱」 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동아제약에서 개발 중인 남성 발기촉진제는 아직 그 이름을 짓지 못했는데 재미있는 후보들이 많다.
 
  『한번은 高建(現 국무총리)씨랑 술을 같이 하는데 내가 발기촉진제 이름을 두고 고민하니까 하나 지어 주데. 일라그라. 구수하니 경상도 냄새도 나고 제품 기능하고도 「딱」 맞는데 이게 좀 뭐해요. 사실 그게 안 일어나다가 일어나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야. 그런 의미로 서프라이즈(surprise)라고 붙여 보려 하니까 이건 또 좀 약해. 그래서 일어나는(rise) 걸 도와준다(support)라는 뜻에서 support + rise = supporise, 즉 서포라이즈도 후보로 생각 중이야. 어때, 괜찮지?』
 
 
 
 130여 개 자리
 
  姜信浩 회장은 감투가 아주 많다. 전경련 부회장 및 사회공헌 위원장,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장, 방송광고심의협의회장 등 굵직한 것을 제외하고도 지금까지 썼거나 쓰고 있는 감투의 수만 무려 약 130여 개. 陳大濟(진대제) 現 정보통신부 장관도 가입한 「엔젤클럽」(서울大 학생들의 벤처창업 지원 모임), 초대 회장으로 선임된 1% 클럽(기업 이익의 1% 이상을 사회공헌 활동에 활용하자는 취지로 창설)도 이 중 하나다.
 
  그래서 姜회장은 가장 바쁘고 만나기 힘든 기업인으로 꼽힌다. 사실 이런 자리들은 아무런 이익도 안 나고 개인 시간과 비용을 희생해야 하는 봉사활동 직책. 姜회장은 다른 사람들은 마지못해 1~2년 정도만 하고 물러나고 싶어하는 이런 직책을 한번 맡으면 짧아야 10년 이상을 맡는다. 「봉사인」이라는 별칭도 여기서 나왔다.
 
  ―귀찮지 않으십니까.
 
  『남들이 하도 해달라고 조르니까 하는 거지. 내가 먼저 하겠다고 한 건 하나도 없어』
 
  ―못하겠다고 잡아떼시지요.
 
  『그러면 너무 야박하잖아. 근데 사실 잘 되면 재미있어. 내가 봉사한 일이 잘 이루어져 나가는 거 보는 건 큰 기쁨이야. 그게 인생 사는 맛 아닌가』
 
  姜회장의 봉사인 활동은 사회공헌에도 籍(적)을 두고 있다. 1987년부터 수석문화재단이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해 지금까지 1200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왔고 의학계 학술발전을 위한 「동아의료저작상」과 약학연구 촉진을 위한 「약사금탑상」을 후원해 왔다.
 
  姜信浩 회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기업윤리다. 1993년 부산 구포역에서 열차탈선 사고 때, 15년간의 광고 解禁(해금) 이후 갖은 정성과 많은 비용을 들여 제작한 첫 TV 광고 「철도보선원」 편을, 『우리에게 아무리 이번 광고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가족과 친지를 잃은 슬픔을 삭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고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기업이 취할 행동이 아니다』라며 방영 포기결정을 내린 일화도 있다.
 
 
 
 약이 필요없는 세상 앞당기는 것이 평생 소망
 
  姜信浩 회장을 인터뷰하면서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들은 말이 있다. 바로 「사회적 책임」 이라는 말이다. 10년 전 회사명을 「동아제약 그룹」에서 「동아 쏘시오(Socio) 그룹」 으로 바꾼 것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치 있는 기업을 만들어 인간에게 봉사한다』는 姜회장의 경영 철학이 투영된 것이다.
 
  「七十而從心所欲(칠십이종심소욕) 不踰矩(불유구)-사람 나이 일흔이 되면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도 어긋남이 없다」 라는 孔子의 말씀이 일리가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생각과 일에는 항상 어긋남이 없더라』라고 답하는 데에는 두 손을 들어 버렸다.
 
  姜信浩 회장의 동아제약 70년사를 듣고 보니까 몇 달 전에 관람했던 뮤지컬 「캣츠(Cats)」가 생각났다. 언뜻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나 이들 사이에 흐르는 맥이 짚힌다. 몇십 년간 代를 이어서 대중과 사회에 어필하고 사람들 가슴에 무언가를 남기려는 정신이라고나 할까. 무대와 배우는 달라져도 연극은 같듯이.
 
  姜信浩 회장에게 앞으로의 개인적인 소망을 물어 보니 대답 대신 약을 싸는 손바닥만 한 종이 한 장을 품 안에서 꺼내 놓는다. 약을 복용하고 난 후 그 종이를 메모지로 활용하는 게 습관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 위에 漢字(한자) 하나를 그럴듯하게 적어 놓았다. 藥(약). 다시 펜을 들어 방금 적은 한자 윗부분의 초두(艸)를 쓱쓱 그어 지워버렸다. 樂(락).
 
  『藥 자는 풀(艸) 밑에 즐거울 樂 자로 만들어져 있지. 즉 「즐거움을 주는 풀」이라는 뜻이야. 제약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 이런 소릴 하면 좀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내 평생의 소망은 앞으로 세계적인 치료제와 신약을 많이 개발해서 결국엔 약이 필요없는 즐거운 세상이 빨리 오도록 공헌하는 거요. 健康樂園(건강낙원)이라고나 할까』
 
  기분 좋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姜회장이 필자보다 젊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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