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가 발전이 늦었습니다. 다른 지방에서는 많은 內衣 업체가 모두 다른 업종으로 전환해버렸습니다. 이익이 박하고 규모도 적고 그래서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자연히 우리가 하게 됐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리 혼자만 했습니다.
우리가 내수를 할 때 쌍방울이 우리에게서 물건을 사다 팔았는데, 수출하느라고 내수를 중시하지 않다 보니까 직접 뛰어들었죠. 쌍방울이 해서 잘 되니까 쌍방울에서 전무로 있던 분이 나가서 태창을 한 것입니다』
―회사 설립은 1955년으로 돼 있는데, 성장의 시발점은 언제부터이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6·25 직후 공비 때문에 정읍에서 사업을 할 수가 없어서 전주로 이전해서 보니까 전주에서 태어나서 전주에서 내의와 양말공장을 하던 동업자들은 대개 현실에 안주하더군요. 적당히 세월을 보내며 만족하고 살더라구요. 나는 어려서부터 집에서 뛰어나와 서울로 어디로 다녀봤고, 원료(면사)를 구하러 전국 큰 도시를 돌아다녔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까 큰 도시로 옮겨야 발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주로, 서울로 옮겨왔고, 열심히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습니다. 남들도 열심히 하면 다 할 수 있는 일이고, 특별한 비결도 없습니다. 주식회사라는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전주에서 도청 공무원으로 있던 사촌형이 기업을 키우려면 주식회사 형태가 좋다고 권유해서 만든 겁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성장사를 보면, 돈이 될 만한 사업이면 마구잡이로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확장해서 성공하는 것이 보통인데, 어째서 한 가지 사업에만 매달리셨는지, 어떤 사업철학이 있으셔서 그랬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다른 일에는 관심을 둘 수가 없었습니다.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고, 종업원들과 공장에서 한 식구처럼 뒹굴며 열심히 하다 보니까. 다른 곳으로는 눈을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돈벌겠다는 생각을 할 새가 없었습니다.
돈 벌려고 했으면 이것 저것 해봤을 텐데, 본래 제가 가진 능력에 열중하다 보니 그 방향으로는 좀 발전을 했지만 다른 업종은 할 새도 없었고, 잘 몰랐고, 또 하려고도 안 했습니다』
―일찍부터 수출에 눈을 뜨시고 세계적 브랜드인 BYC를 만드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정부에서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 권유했습니다. 외화획득을 해야 한다는 정부의 권유로 수출에 나섰던 것입니다. 나라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기업가가 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에 수출했습니다. 그러다가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많은 나라에서 수출을 하게 됐습니다.
요즘 와서 생각하면 왜 수출만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부가 권유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여기고 열심히 했죠. 많을 때는 78개국에까지 했지만 이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특히 우리 업종은 달러 벌기가 힘듭니다. 이윤이 박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는 못하죠. 인건비가 너무 올라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지금도 후진국으로 많이 넘어가고 있어요』
―수출하면 특혜가 있었습니까.
『특혜라면 수출금융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수출하면 마음이 편해요. 국내에서는 도매업자들이 세무자료를 안 받아갑니다. 매출을 잡을 수 없다 보니 자료를 조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무조사 나오면 금방 들통나죠. 왜 자료를 조작했느냐고 추궁합니다.
골치 아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세무서 사람들은 와 가지고 맨날 손 벌리는 것이 일입니다. 그 사람들을 배 부르게 만들어줘야 돼요. 그런데 수출하니까 그런 일이 없어집디다. 거래가 100% 노출되니까요. 우리가 내수를 안 하니까. 쌍방울이 끼어든 것이고』
―수출하면서 어려웠던 일이 있었다면.
『하나만 얘기하겠습니다. 우리가 일본에다 수출을 한다고 하니까. 여기저기서 달려들었어요. 한 번은 大農(대농)이 일본 수출창구를 대행하겠다면서 많은 하청업자들에게 설비를 갖추게 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잘 할 수 있습니까? 여기저기 맡겨서 하니까 품질도 천차만별이고요.
일본에서 소문이 났어요. 전에 BYC를 쓸 때는 한국제품이 좋았는데 왜 갑자기 나빠졌냐고 안 사는 거예요. 결국 소문이 나쁘게 나서 우리까지 피해를 입은 일이 있었죠. 한국제품이 괜찮다는 인식이 소비자에게 서서히 돼가고 있는 중에 그런 일이 생겨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좀 까다롭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진데 이게 좋다고 하면 이리 몰리고, 저게 좋다고 하면 저리 몰리는 그런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BYC는 빚을 안 쓰는 회사로 이름 나 있습니다. 오히려 예금이자가 매출액의 5~6%대라고 들었습니다. 기업을 키우려면 적당히 은행 빚도 써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렇게 빚을 안 쓰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우리 업종으로는 기업을 키울 수가 없어요. 중국 가서 한다면 모를까. 이 업종은 전형적인 중소기업형이거든요. 다른 걸로 키워야 되는데, 지금 와서 다른 걸로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우리는 돈 버는 일에는 성격이 안 맞습니다. 투자할 데가 마땅치 않으니까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받는 것뿐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사업을 할 줄 모른다고도 봐야죠. 허허허』
―BYC는 어느 회사보다 노사화합이 잘 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비결이 있으신지요.
『우리는 이익이 박해서 다른 업종보다 대우를 잘 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애로를 느낍니다만, 내가 직접 나서서 하게 되고 종업원과 한 식구처럼 어울려서 일하니까, 차별이 별로 없을 것 아닙니까. 종업원들이 대우 못 받는 현실을 이해하고, 그래서 이제까지 큰 일 없이 무사히 지내왔습니다』(BYC는 1992년부터 社內 복지기금을 마련해 현재 운용규모가 52억원에 이르고 있다. 회사의 자본금보다 많은 액수다)
―호남 출신 기업인으로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특히 대통령 선거 직후인 1970년대 초반에 많은 호남 기업인들이 세무사찰 등을 받은 것으로 아는데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세무사찰을 여러 번 받아봤는데,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고, 우리 세법은 기업을 얼마든지 못 살게 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우리가 큰 기업만큼 고생은 안 했지만, 세무사찰하는 것을 보면 엉터리 없이 합니다. 그때 사찰을 받다 보니까, 조사나온 사람들이 정치인에게 부탁해서 정치자금이나 좀 내고, 세금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눈치가 보였어요. 말은 안 하지만 그렇게 느끼게 해요.
우리 회사는 이제까지 부정한 짓을 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트집 잡으려고 하면 한없이 트집 잡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사찰받은 것이 7~8년 됐나, 5~6년 됐나….
그런데 그때 조사반장이 요새 우리 회사 고문으로 있어요. 내가 그 사람에게 조사받았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고문으로 쓰냐는 말도 있었지만. 우리 내용을 뻔히 알거든. 거래내역이 모두 노출되니까.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 자기 힘으로 못하니까 국세청장을 한 번 만나보라고. 연락을 취해 줄 테니 만나서 직접 한 번 말해보라고. 자기가 보기에는 아무 트집 잡을 것이 없는데 위에서 자꾸 조사하라고 못 살게 구니까 국세청장을 만나라고 하더라고. 그 사람에게 조사는 받았지만 고마워서 그 사람이 국세청 그만둔 뒤 고문으로 모셨어요』
―요즘 우리 경제가 무척 어렵다고들 합니다. 오랫동안 기업을 운영해 오신 분으로서 지금 같은 난국을 헤쳐나갈 방도를 처방해 주십시오.
『정치나 행정을 맡은 분들은 기업하는 사람보다 더 애국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좀 모자란 것 같아요. 우리같이 착실히 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사회가 되면 안 되죠. 공무원들이 공무를 집행할 적에 너무 돈에만 치중하지 말고 자기 할 일을 똑바로 해야 되지 않느냐, 정부에서 녹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더 올바로 해 줘야 하지 않느냐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정치가 잘 돼야 경제도 잘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 정국을 어떻게 보고 계시며, 정치인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릅니다만, 정치나 해서 돈을 벌겠다는 사람은 일찍 정치판을 떠나야 할 것 같아요. 운동하려면 운동장으로 가고 돈을 벌려면 기업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언론자유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잘못하는 일을 잘못한다고 해야 합니다. 언론이라고 똑같이 다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언론이라도 좀 (비판)하기 때문에 그나마 질서가 좀 잡혀간다고 봅니다』
―시간이 나시면 무슨 일로 소일하십니까.
『젊었을 때는 여가 시간에 골프를 많이 쳤습니다. 새벽에 가서 운동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좋았어요. 그러나 나이를 먹으니까 골프도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가까운 산에 오르거나, 공장이 여기저기 있으니까 공장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