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영화제 7개 부문 후보로 선정
공자, 예수, 부처에게서 지도자의 자질, 경영 철학을 배우라는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역사상의 인물을 지금, 여기로 다시 불러오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교훈이거나 反面(반면)교사의 현대성이 內在(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逆(역)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시대에는 참된 지도자나 경영인像(상)이 드물다는 뜻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국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엘리자베스 1세의 국가 통치 철학을 배울 수 있는 책도 빠질 수 없는데,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위즈덤하우스)가 출간되어 있다. 엘렌 엑슬로드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쓴 이 책은, 어려운 시기에 즉위하여 영국을 유럽에서 가장 부강하고 부유한 나라로 만든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경영과 인생에 관한 교훈을 136개 항목으로 정리해 놓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거쳐야 할 영화가 한 편 있는데, 세카르 카푸르 감독의 1999년 작 「엘리자베스(Elizabeth)」(18세 이상 관람가 등급, 폭스 출시)가 그것이다. 아카데미 영화제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이 화려하고 장엄한 시대극은 엘리자베스 1세가 불운한 個人史(개인사)를 극적으로 통과하며 여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행복을 포기하고 버진 퀸(The Virgin Queen)을 선언하며 왕으로 당당하게 서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앤 볼린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들을 몹시 바라던 헨리 8세는 스페인 공주였던 첫 부인 캐서린과의 사이에서 딸 메리밖에 얻지 못하자, 교황청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톨릭에서 新敎(신교)로 國敎(국교)를 바꾸면서까지 이혼을 하고, 앤 볼린과의 결혼을 감행했다. 하지만 앤 볼린마저 딸을 낳자 크게 실망하여, 엘리자베스가 세 살 되던 해에 앤 볼린을 간통과 반역죄로 처형하고, 앤 볼린과의 결혼은 무효이며 따라서 엘리자베스는 사생아라고 공표한다. 앤 볼린의 짧은 인생은 찰스 자롯 감독의 1969년 작 「千日의 앤(Anne of the Thousands Days)」(국내 미출시)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어느 남자의 여자도 아닌 버진 퀸』 선언
영화 「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케이트 블랑쉬 扮)가 新敎徒(신교도)들과 모의하여 국가 전복을 꾀했다는 혐의를 받고 런던 탑에 수감되는 과정부터 시작된다. 엘리자베스의 이복 언니 메리 女王(캐시 버크 扮)은 열렬한 가톨릭 신봉자로 「블러드 메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新敎徒를 박해했다. 신교도인 엘리자베스를 평생 미워했던 것도 메리 여왕으로서는 당연했다. 후손을 얻지 못하고 암으로 죽어가던 메리 여왕에게 가톨릭교도인 當代(당대)의 권세가 노포크 경(크리스토퍼 애클레스톤 扮)은 엘리자베스를 교수형에 처할 수 있도록 서명하라고 조르지만, 메리 여왕은 망설이다 숨을 거둔다.
처형 직전에 목숨을 건진 엘리자베스는 스물다섯 나이에 여왕으로 등극한다. 즉위하자마자 엘리자베스는 『국고가 텅 비어 포탄 한 발, 견고한 城 한 채 없는 상황에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주변 국가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처지』라는 보고를 받는다. 엘리자베스를 옹위했던 新敎徒 윌리엄 세실 卿(리처드 아텐보로 扮)은 『빨리 결혼하여 2세를 얻는 것만이 왕위를 보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조언한다. 메리 여왕의 남편이었던 스페인 왕과 프랑스 여왕 메리(화니 아르당 扮)의 조카 앙주 공작(뱅상 카셀 扮)이 유력한 결혼 후보자.
여성이 공직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했던 시절, 여성 혼자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불안 그 자체였다. 거기다 신구교의 대립으로 인한 모반 음모, 피폐할 대로 피폐한 경제, 암살과 주변 국가의 침략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먼저 『나 자신이 아닌 국민을 위해』 新舊敎徒(신구교도)를 통합하는 「종교 통일령」을 내놓는다. 이어 프란시스 월싱검 卿(제프리 러쉬 扮)의 정보 수집과 집행력에 의지하여 政敵을 차례로 제거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마지막으로 『어느 남자의 여자도 아닌 버진 퀸(The Virgin Queen)』을 선언한다.
이 선언의 개인적인 배경으로는 오랜 戀人(연인)이던 로버트 더들리(조셉 파인즈 扮) 卿이 有婦男(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프랑스와 스페인 어느 쪽도 선택하기 어려운 國益的 관점을 고려한 결단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얼굴과 손에 흰 분을 짙게 바른 후, 목까지 완전히 감싼 하얀 드레스 차림으로 『잉글랜드와 결혼한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마지막 장면은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절한가 하면, 寒氣(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매서우며, 연약한 여성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거듭나는 감격을 맛보게 한다.
公職者의 자세, 인재 등용, 종교의 역할 그리고 政敵의 태도
역사물인 영화 「엘리자베스」를 보면 오늘 우리에게 생각할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오늘날 公職者(공직자)의 자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엘리자베스는 어린 시절부터 유일한 연인이자 위안처였던 더들리 卿을 사랑했지만, 그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게 되자 단호하게 사랑을 버린다. 『내 감정을 접고 국민을 위해』 프랑스의 앙주 공작과 결혼할 결심도 하지만, 그가 女裝(여장)을 즐기는 난잡한 위인임을 알게 될 뿐이다. 여왕의 사랑을 잃은 더들리 卿은 스페인 大使(대사), 노포크 卿, 교황청 등과 내통한다. 엘리자베스는 政敵(정적)을 모두 처형하지만 더들리 卿만은 살려둔다. 『내가 얼마나 큰 위험에 빠졌었나 본보기로 삼기 위해』라는 말과 함께. 살려두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여성으로서의 행복과 국가 경영의 두 길을 병행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자 개인의 행복을 먼저, 기꺼이 포기할 줄 알았던 여왕. 이는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너무나 당연한 자세일 것이다. 여성의 지위가 보잘것없었던 16세기 후반에 이미 이를 완벽하게 실천한 여성이 있었음에도, 21세기의 우리는 公을 우선하는 지도자를 찾아보기 어렵다니.
영화를 좀더 세밀하게 본 사람들은 여왕이 인재를 발탁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는 데 큰 功을 세운 윌리엄 卿을 가까이 두지만, 그가 강대국의 눈치만을 살피자 『귀족으로 남은 生을 편히 살라』며 내친다. 엘리자베스가 평생 믿었던 가신은 월싱검 卿인데, 그는 당시 최고의 정보 수집가로 政敵과 주변 국가의 움직임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다가 直言(직언)하기를 서슴지 않았으며, 『모든 이가 우러러볼 분이 되라』고 끊임없이 여왕을 격려한다. 엘리자베스는 『돌멩이가 되어야 하는가』라고 회의하면서도 忠臣(충신)의 말을 따르기 위해 노력한다.
필자에게는 이것 말고도 종교의 역할과 종교인의 자세를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엘리자베스는 언니 메리 女王으로부터 『마리아 품에서 안식을 찾겠다고 약속하라』고 강요당하지만, 『내 양심의 소리를 따르겠다』고 답한다. 말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처지였음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는 종교에 대한 맹신으로 죽고 죽이는 현실을 직시하고, 『新舊敎가 뭐가 중요하냐. 우린 같은 神을 믿는다』고 넓게 포용하여 성공회를 제안한다. 반면 교황은 『여왕을 암살하는 자는 천국에서도 환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