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쓰는 時論] 그게 아닙니다

  • : 이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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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기자들 癌발생 기쁜 소식’이라
 
  한햇동안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열 번이나 뽑힌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 쓴 ‘金大中칼럼’에서 묘한 문장(문장이 덜 된 부분도 있는)을 보았다. ‘평양에서 남북정상이 만나던 2000년 6월13일,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실렸다는 ‘글’이었다.
 
 
  ‘조선 기자들의 암 발생 기쁜 소식. 하늘이 그런 나쁜 놈들을 그냥 넘어갈 리는 없다. 말기(末期)를 거쳐 신속하게 사망에 이르기를 바란다. 관(棺)도 쓰지 말고 파묻어라. 아니면 들개에게 주든가’
 
  ‘암세포야 힘내라. 앞으로 너희들(암세포)에게 온갖 고통이 따를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버티거라’(이상 朝鮮日報 2000년 7월14일자 ‘金大中칼럼’--‘朝鮮기자들 癌발생 기쁜 소식’에서 인용).
 
 
  바로 얼마 전에 읽은 ‘암 발생으로 신속하게 사망에 이른’ 조선일보 모태준 기자의 ‘기쁜’ 아닌 ‘아까운’ ‘슬픈’ ‘불쌍한’ 신문기사를 생각했다.
 
 
  그리고 ‘김대중칼럼’을 읽은 그날 밤, 3천년쯤 전에 살다가 기쁘겐지 슬프겐지 불쌍하겐지, 감긴지 몸살인지 암인지 심장마비론지 죽었을 한 인도의 시인을 만났다. 아마도 ‘아타르바 베다(呪文·讚歌集)’ 제4권 제20의 찬가讚歌 ‘악마惡魔·주술자呪術者를 알아내는 주문呪文’이라는 詩를 읊은 시인이 아니었는지 하는, 그런 노인이었다. 그가 말했다.
 
 
  모두들 인터넷, 인터넷 하는 말들을 하는데 말일세. 인터넷 사이트는 말의 보고寶庫도 되지만 말의 쓰레기터도 된다네. 말은 말에 대한 대접과 인식과 말의 용법에 따라 보석도 되고 쓰레기도 되는 것이야. 다 말은 그것을 대접하고 헤아리고 쓰는 사람에 따라 그 사람 또한 인간국보도 되고 인간쓰레기도 되는 법이라네.
 
  주문呪文도 말이고 저주詛呪도 말이네. 말로 암세포를 들먹일 수도 부추길 수도 응원·격려할 수도, 말로 조선 기자 나쁜 놈을 저주할 수도 물론 있기야 있지.
 
  그러나 저주에는 저주의 섭리攝理라고 할 저주의 논리가 있는 법이야. 조선 기자 나쁜 놈이 정말은 나쁜 놈이 아닌데 ‘나쁜 놈, 암발생 기쁜 소식’이라고 저주하는 것 같은 ‘무고誣告의 저주’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네. 효력이 없을 뿐 아니라, 고의적인 ‘무고’의 저주를 한 자는 도리어 적확한 효력 100%의 ‘역저주逆詛呪’를 당하는 수도 있어. 반동적인 암세포의 맹렬한 역습을 받을 수도 있단 말일세. 그런 것이 ‘저주의 논리’라네. 섭리라네.
 
  ‘암 발생으로 신속하게 사망에 이른’ 조선일보 모 기자와 인터넷 사이트의 저주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야. 내가 3천년 전에 이미 죽었고, 모태준 기자가 얼마 전에 죽었고, 자네나, 인터넷 사이트에 ‘저주’의 글(?)을 실은 어느 아이(어른이야 아니겠지)가 역시 또한 언젠가는 죽는 것처럼, 다 그런 거야. 저주든 찬가든 말을 하고 보면 다 그런 거야. 사람이란 다 그런 거야. 슬픈 거야. 불쌍한 거야. 기쁜 거야. 허허 허허허.
 
 
  내가 그를 만나, 그의 말을 들은 것이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는 누구든지 마음대로 생각하시면 된다. (00.7.15)
 
 
 
 
 
 
  나사 빠진 文明, 나사 빠진 骸骨
 
  -‘지금 인터넷은 욕지거리의 바다’라
 
  어느 문명선진국의 담배재판을 보면서
 
  (보상액이 천문학적, 사상최고라는)
 
  나삿니가 넘은 문명을 생각했다.
 
  “내 탓이오” 하는 좋은 말씀을
 
  어느 신부님인가가 하셨는데
 
  내가 내 손으로 사서 수십년을
 
  내 입으로 맛있게 피운 담배에도
 
  네 탓은 있고 내 탓은 없었다.
 
  내 탓은 없고 네 탓만 있었다.
 
  문명도 사고思考도 재판까지도
 
  나사를 자꾸 조이다 조이다 보면
 
  나삿니가 넘어 빠져버린다는.
 
 
  나사 빠진 문명 나사 빠진 사회에
 
  나사 빠진 인간들이 우글거린다는.
 
  ‘인터넷은 지금 욕지거리의 바다’
 
  조선일보 2000년 7월19일 수요일자
 
  26~27면에 제목이 걸친 기사를 보고
 
  나사 빠진 사람들을 다시 생각했다.
 
  나삿니가 망가져 빠져버린 네티켓
 
  PC, IT, 인터넷, 네티즌, 골통.
 
  나사 빠진 나사 빠진 욕설 아노미
 
  개새끼 개개새끼 개개개새끼
 
  (‘개’자에 지금 웹사이트에 우글거리는
 
  인간의 말 중의 제일 쌍스럽고 천박한
 
  온갖 육두문자肉頭文字를 대입하라
 
  한 자(×)든지 두 자(××)든지
 
  석 자(×××)든지, 실컷 대입하라!)
 
  개개개개새끼 개개개개개쌔끼 개개개개
 
  ‘개’자에 ‘개’자가 겹치다가
 
  ‘개’자가 ‘개’자를 덮쳐버린다.
 
  (‘개’에 인간의 말 중의 제일 쌍스럽고
 
  제일 천박하고 제일 악독한 온갖
 
  肉頭文字를 대입하라
 
  대입하라 대입하라 한 자든지 두 자든지 석 자든지, 실컷 얼마든지 대입하라!)
 
 
  ‘개’를 덮쳐버린 ‘개’의 바다에
 
  (‘개’에 온갖 육두문자를 대입하라!)
 
  나사 빠진 ‘개’의 골통이 흘러간다.
 
  나사 빠진 ‘개’의 해골이 득실거린다.
 
  (‘개’에 온갖 육두문자를 대입하라!)
 
  ‘개’가 ‘개’들이 ‘개개개’개개 개갠다.
 
  (00.7.19)
 
 
 
 
 
 
  전라도가 왜 나빠
 
  -지역감정 과민증에 대한
 
  전라도가 왜 나빠.
 
  나쁜 놈이 나쁘지.
 
  전라도 좋은 사람.
 
 
  경상도가 왜 나빠.
 
  나쁜 놈이 나쁘지.
 
  경상도 좋은 사람.
 
 
  충청도가 왜 나빠.
 
  나쁜 놈이 나쁘지.
 
  충청도 좋은 사람.
 
 
  강원도가 왜 나빠.
 
  나쁜 놈이 나쁘지.
 
  강원도 좋은 사람.
 
 
  경기도가 왜 나빠.
 
  나쁜 놈이 나쁘지.
 
  경기도 좋은 사람.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왜 나빠 왜 나빠 왜 나빠.
 
  나쁜 놈이 나쁘지.
 
  나쁜 놈이 나쁘지.
 
  좋은 사람. 좋은 사람.
 
 
  어느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때 지난 고무줄넘기를 하는 것이었다. 은퇴한 정치인, 아니면 언론인으로도 보이는 어떤 노인이 지나가면서, “아이들의 노래에서도 두고두고 배울 것이 있단 말이야”하고 중얼거리며 입맛을 쩍쩍 다시는 것이었다. (00.7.17)
 
 
 
 
 
 
 
  모난 돌을 다스리는 豪民의 정 끝
 
  -조용히 있다가 결정적인 때 일어난다는 許筠의 ‘豪民’을 생각하며
 
  2000년 7월10일의 대한민국
 
  (어떻든 일단 타결은 되었다지만)
 
  금융노조 총파업을 앞두고 한때
 
  파업동참 은행에서 빼낸 돈들이
 
  파업불참 은행으로 몰렸었다.
 
  몇백억씩, 몇천억씩, 몇조원씩.
 
  그것이 예금주들의 정의감이었다면
 
  나라의 앞길에는 희망이 있다.
 
  ‘호민豪民의 싹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예금주들의 욕심만이었다면
 
  나라의 앞길은 막막하다.
 
  경제야 흥하든, 은행야 망하든 간에,
 
  하여간에 내 돈만은, 내 재산만은 하는
 
  ‘우민愚民의 욕심’이 두려워지는…….
 
 
  욕심은 사람의 활력도 되지만,
 
  욕심에 욕심이 더하다 보면,
 
  나라야 어떻든, 은행이야 어쨌든
 
  내 돈, 내 노조, 내 감투라는
 
  돈 욕심, 노조 욕심, 감투 욕심
 
  욕심에 욕심이 튀어나온다. 불쑥 불쑥
 
  모난 돌처럼 튀어나온다. 불쑥 불쑥
 
  입법 행정 사법도 못 말린다. 불쑥 불쑥.
 
 
  파업불참 은행으로 몰렸다는
 
  몇백억, 몇천억, 몇조원을 생각하며
 
  호민豪民의 싹수를 생각해본다.
 
  못되어먹은 모난 돌을 때려 바수는
 
  못된 욕심의 모난 돌을 때려 바수는
 
  호민豪民의 정 끝을 생각해본다.
 
 
  너무 모난, 내 돈 불쑥, 톡. 톡 톡.
 
  너무 모난, 내 노조 불쑥, 톡. 톡 톡.
 
  너무 모난, 내 감투 불쑥. 톡. 톡 톡.
 
 
  난민화한 항민恒民, 원민怨民이 아니라,
 
  호민豪民다운 호민豪民의 위력으로써
 
  달래듯 어루만지듯 다스리듯 톡 톡 톡.
 
 
  내 돈! 불쑥! 톡
 
  내 노조勞組! 불쑥! 톡
 
  내 감투! 불쑥! 톡. 몇백 몇천 몇조의
 
  현묘한 석수石手, 호민豪民의 정 끝.
 
 
  톡톡톡. 톡 톡 톡. (00.7.1)
 
 
 
 
  藥에 쓰려도 없는 知慧
 
  한 사람과 어떤 놈이 바로 앞에 있는
 
  까만 점을 보고 설전舌戰을 벌였다.
 
  “검은 벌레야”
 
  “검정콩야”
 
  “벌레야”
 
  “콩야”
 
  “벌레다!”
 
  “콩이다!”
 
  싸우는 동안에 까만 점이 꿈틀꿈틀
 
  기어가기 시작했다. “봐라! 기어간다”
 
  “기어가도 검정콩이다!”
 
  어느 나라 옛얘기에 나오는 어떤 놈처럼
 
  벌레를 콩이라고 우기는
 
  기어가도 검정콩이라고 우기는
 
  어떤 놈들의 말이 서기 2000년 대낮에
 
  여기서도 나오고 저기서도 쏟아져
 
  폭우처럼 장마처럼 범람하는데,
 
  희한한 것은
 
  장마에 휩쓸렸는지, 폭염에 들떴는지
 
  벌레를 콩이라고 우기는 어떤 놈의 말을
 
  “맞다, 맞아!” “박수박수!”하며
 
  신바람이 나 찬양 찬송하는 어떤 놈들이
 
  또 많다는 것이다.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이다.
 
  조금 더 희한한 것은
 
  “벌레를 콩이라는 말에도 일리야 있지”
 
  “박수박수에도 일리야 있지”하고
 
  사색에 잠겨 자못 사려思慮 깊고
 
  깊은 듯 말하는 학적지적교수적 인사가
 
  세상에는 숱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욱 희한한 일은
 
  얼도 쓸개도 빠진 듯한
 
  어떤 놈들의 우행폭언愚行暴言을 보고도
 
  박수박수를 보고도, 또 자못 깊은 듯한
 
  저 학적지적교수적인 사려들을 보고도
 
  조금도 이상히 여기는 사람이
 
  약에 쓰려도 없다는 것이다.
 
  벌레를 콩이라고 우기는 온갖 정보
 
  온갖 지식은 홍수처럼 범람하는데
 
  벌레를 벌레로 보는 하나의 지혜는 점점
 
  약에 쓰려도 없다는 것이다.
 
  (00.7.11)
 
 
 
 
 
 
  천치 바보 低能兒攷
 
  -‘藥에 쓰려도 없는 知慧’의 패러디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배앝는 사람들.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우겨대는 사람들.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배앝는 사람들,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우겨대는 사람들에게 앞을 다투어 아첨하는 사람들. 생쥐 같은 사람들.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배앝는 사람들,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우겨대는 사람들,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배앝는 사람들,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우겨대는 사람들에게 앞을 다투어 아첨하는 사람들, 생쥐 같은 사람들. 그런 형편없는 온갖 사람들을 보고도 아무 말도 안하는 말께나 한다는 사람들. 형편없는 사람들.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배앝는 사람들,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우겨대는 사람들,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배앝는 사람들, 말도 아닌 말을 말이라고 우겨대는 사람들에게 앞을 다투어 아첨하는 사람들, 생쥐 같은 사람들, 그런 형편없는 온갖 사람들을 보고도 아무 말도 안하는 말께나 한다는 사람들, 형편없는 사람들. 그 모든 형편없는 사람들을 보고도 형편없다는 생각이나 말을 하나도 하지 않는 형편없는 사람들. 바보 같은 사람들. 천치 같은 사람들. 저능아 같은 사람들. 신문, 방송, 홈페이지, 인터넷, 전화통. 사람. 놈. 천치 바보 저능아고低能兒攷. (00.7.12)
 
 
 
 
 
  키에르케고르의 ‘結合’과 ‘統一’
 
  ‘통일’은 환상이나 노래나(“꿈에도 소원은 통일”), 구호로(툭하면 “반통일”) 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고도 확고한 논리적 실천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장 선량한 한국·조선인 한 사람 한 사람(7000만 민족)이 진정 바라는 통일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영광까지)을 비롯해 환상적인 통일론자나 논리적인 ‘반통일’ 논자를 포함, 아직 살아 있는 국군포로에서 미전향 장기수에 이르기까지, 단 한 사람의 희생이나 교도소행이나 강제노동수용소행도 없는 통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끄떡도 않는 윤리적인 태도를 자기 자신 안에 획득했을 때, 그때에 비로소 진정한 결합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는 약한 인간이 아무리 결합을 해보았댔자, 어린애끼리 결혼하는 것처럼 보기 흉하고, 또한 해로운(有害) 일이 될 것이다’(세렌 오뷔 키에르케고르 ‘現代의 批判’).
 
 
  한 사람 한 사람의 한국·조선인이, 전세계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끄떡도 않는 윤리적인 태도를 자기 자신 안에 획득했을 때, 그때에 비로소 진정한 통일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는 들뜬 환상이나 구호에 젖고 묻혀 찌든 약한 인간이 아무리 통일을 쳐들며 외친다 해도, 어린애들의 소꿉놀이처럼 실답이 없고, 또한(십상), 해로운 일이 될 것이다(키에르케고르를 다시 씹는……). (00.7.30)
 
 
 
 
 
 
  그게 아닙니다
 
  -1000만 남북이산가족의 절절한 마음으로 2000년 8월15일 남과 북에서
 
  남북 이산가족 100명씩이
 
  서로 만납니다. 만났습니다.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남북 정상, 남북 적십자, 남북 당국자들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만나게 해 주시느라고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구요.
 
  우리는 그게 아닙니다.
 
 
  남북 이산가족 1000만 중에
 
  100명씩 200명이 만나는 분들은
 
  다행한 일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다행한 건 다행한 거구요.
 
  반가운 건 반가운 거구요.
 
  그러나 우리는 그게 아닙니다.
 
 
  100명씩이 잠깐이라도 만나는
 
  행복은 행복이지만
 
  반가움은 반가움이지만
 
  50년간 서로 감감무소식으로
 
  편지 한 장 아예 못 주고 못 받는
 
  1000만은 그게 아닙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구요.
 
  1000만은 그게 아닙니다.
 
 
  멀쩡히 산 채 빠개진 생나무(生木)처럼
 
  갈라진 1000만 가족은 그게 아닙니다.
 
 
  50년을 못 만나게 한 힘은 무엇인지요.
 
  100명을 만나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요.
 
  50년을 아예 편지 한 장 못 주고
 
  못 받게 하는 힘은 대체 무엇인지요.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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