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 최고 여자배우로 선정된 金芝美

『아직도 내 연기를 보면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은데…』

  • : 저자없음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여전히 아름다운 배우 金芝美(김지미·59)씨를 만났다.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는 金芝美씨에게 20세기 한국 최고의 여배우로 선정됐다는 말을 전하자 뜻밖이라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金芝美씨의 어떤 점 때문에 최고의 배우로 선정됐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1957년 金綺泳(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라는 작품으로 영화계에 데뷔했습니다. 그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배우로서 오직 영화에만 묻혀서 살아오고 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요?
 
  『제가 세계 最多(최다) 출연작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저도 기억을 못합니다만 8백 편이 넘는 걸로 알고 있어요』
 
  ―金芝美씨가 1960년대에는 연기자라기보다는 스타였다는 이야기를 영화인들이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1960년대는 지금과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그저 빨리빨리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서 각 배급사에 영화를 대주기 바빴습니다.
 
  제가 동시에 37편까지 겹치기 출연을 해봤습니다. 그러니까 작품을 분석하거나 역할에 대해 시간을 두고 연구할 여유가 없었어요. 이 촬영장에서 「철수씨」하고 부르던 남자배우를 다른 촬영장에 가서는 「상감마마」라고 부르며 연기를 하니 감정몰입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그저 얼굴을 내민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TV가 등장하고 영화 외의 오락거리들이 생기면서 차츰 여유 있게 작품을 찍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연기자로서의 욕심이 생기게 된 거지요. 배역에 대해 연구도 하고 연기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배우로서의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한다면.
 
  『단점은 물론 목소리입니다. 그 당시엔 더빙을 많이 하긴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거나 방송에 나갈 때면 탁한 목소리 때문에 주눅이 들곤 했지요. 그래도 1970년대 이후엔 개성 있다, 섹시하다면서 제 목소리를 칭찬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어요(웃음). 제 장점이라면 뭐든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는 겁니다. 감독들이 저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金芝美는 촬영장에 데리고 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오면 끝까지 남아 있는 배우라고.
 
  지금까지 저는 시대극을 찍으면서 한 번도 가짜 액세서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 개런티를 다 쏟아부어서라도 비녀며 노리개, 가락지 같은 걸 진짜 비싼 것으로 삽니다. 화면은 못 속이기 때문이지요. 내가 왕비인데, 정경부인인데 가짜를 하고 나오면 분위기가 살아나질 않아요.
 
  촬영장에서도 저는 웬만해서는 「못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숙생」이라는 작품을 찍을 때는 얼음 위에 몇 시간을 엎드리고 있느라고 동상에 걸려서 몇 년을 고생했습니다. 독립군 역할을 맡았을 때는 생전 처음으로 말을 탔다가 굴러떨어져 2주 이상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어요. 그때 맞은 霰彈(산탄) 때문에 지금도 등에 가뭇가뭇한 흉터가 있습니다』
 
 
  『요즘 영화는 너무 관객에 아부』
 
 
  ―여러 감독들과 작품을 해왔는데 어떤 감독하고 일할 때 제일 마음이 편합니까.
 
  『글쎄요…. 제일 부담없이 지내는 감독은 林權澤 감독입니다. 나이도 큰 차이가 안 나니까 흉허물이 없지요. 林감독님은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혼자서 중얼거리거나 괜히 여기저기를 긁적긁적댑니다. 아니면 대놓고 「에이, 거 시시한 배우도 다봤네. 그것도 연기라고 해요」 그러세요.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해보면 「그래, 바로 그거요」 하시곤 하지요. 감독이 배우를 알고, 또 배우가 감독을 알 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남자배우로는 돌아가신 金勝鎬씨가 선정됐는데 같이 출연한 적이 있습니까.
 
  『많이 했지요. 金勝鎬 선생님은 연기에 욕심이 많아서 화면에 크게 나오려고 막 저를 밀치셨어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옆으로 좀 가세요」 그러면 「어, 내가 그랬나」 그러면서 좀 옆으로 갔다가 또 금방 화면 가운데로 들어오곤 하셨어요. 그러면 저도 같이 막 밀치면서 연기를 하곤 했습니다. 金勝鎬 선생님이 그러는 제 모습을 보고 「거 참, 대단한 여자네」 하면서 혀를 내두른 적도 있었지요』
 
  ―본인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 연기에 만족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왜 저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에 도망가고 싶을 뿐이었지요』
 
  ―스크린에서 못 본 지 오래 된 것 같습니다.
 
  『1992년에 찍은 「명자, 아끼꼬, 쏘냐」가 마지막입니다』
 
  ―왜 이렇게 뜸합니까.
 
  『써주는 감독이 없으니까요』
 
  ―大배우 金芝美씨가 써주는 감독이 없어서 출연을 못하고 있다는 건 믿어지지 않습니다.
 
  『요즘 한국 영화의 흐름이 그렇습니다. 출연하고 싶어도 장년층 연기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어요. 요즘엔 너무 젊은 관객만을 의식하고 영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가 관객의 취향을 외면해서도 안되겠지만 너무 아부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