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배우 金勝鎬 - 연기를 위해 태어난, 욕심덩어리의 狂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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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申相玉(신상옥) 감독이 운영하던 「신필름」의 연구생으로 있을 당시 申相玉 감독이 金勝鎬(김승호)씨와 작품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나는 가까이서 그를 지켜볼 수 있었다. 나에게 金勝鎬씨는 말도 붙이기 어려울 만큼 까마득한 선배이자 우상이었지만 까불까불대고 다니는 내가 귀여웠는지 따로 불러 연기에 대해 가르쳐주기도 할 만큼 나를 아껴주었다. 추운 겨울 한강을 건너가던 나룻배가 뒤집히는 장면에서는 내가 金勝鎬씨의 代役(대역)을 하기도 했다.
 
  金勝鎬씨는 알다시피 연극배우 출신이다. 단역으로 꽤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주인공이 갑자기 아파서 출연을 못하게 된 날, 미심쩍어하는 감독에게 자신 있으니 한 번 시켜달라고 졸라 주인공 역으로 출연해 소위 끝내주는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 연극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여덟이었다.
 
  金勝鎬씨를 이야기할 때면 연기에 대한 그 욕심을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카메라가 자신을 작게 잡거나 다른 배우의 모습을 잡으면 金勝鎬씨는 일부러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한 번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쓰러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감독이 자신의 표정을 놓친 것 같으니까 자기 얼굴을 클로즈업하라는 뜻으로 『업! 업!』 하며 쓰러져 주위 스태프들을 웃게 만든 적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金勝鎬씨는 자신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수 있는 이동차를 좋아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동차가 움직이면 『자르르』 하는 소리가 났는데 金勝鎬씨는 이 『자르르』 하는 소리가 안 나면 연기가 안된다고 할 정도로 이동차를 좋아했다. 이동차가 자신을 향해 클로즈업해 들어오면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거지?』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다 보니 좋은 작품이 있으면 캐스팅이 안됐더라도 『내가 할 거 뭐 없어?』라고 물으며 촬영장을 돌아다니다가 『이거라도 해야겠다』하며 단역으로라도 출연해야 직성이 풀렸다.
 
  金勝鎬씨는 일단 역을 받으면 그 역할에 푹 젖어들었다. 자신의 배역에 몸을 적신다고나 할까….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촬영장에 오면 다른 사람과 말도 잘 안하고 철저히 자신이 맡은 배역의 인물과 일치하려고 애썼다.
 
  그 당시엔 우는 연기가 필요할 때면 다링슈퍼라는 안약을 눈에 넣거나 호랑이 기름을 눈 밑에 발랐다. 그러나 金勝鎬씨는 한 번도 그 약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우는 연기에 들어갈 때면 『감독, 나 20초만 줘. 내가 손가락 들면 레디 고 해』라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정확히 20초 후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손가락을 하나 올렸는데 그러면 진짜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철철 흘러내렸다.
 
  내가 너무 신기해 한 번은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금방 눈물을 흘리십니까?』하고 물어봤더니 『우는 연기를 할 때 이 영화에서 슬퍼서 우는 걸로 생각하지 마라. 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괴롭고 슬펐던 일을 생각해라』 하고 말씀해 주셨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때까지 내게 이런 걸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슬픈 연기가 필요할 때마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그 당시엔 동시녹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사를 다 외울 필요가 없이 옆에서 스태프가 읽어주는 대로 따라 하면 됐었다. 그러나 金勝鎬씨는 모든 대사를 외워서 했다.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야지만 감정이 끊기지 않고 살아난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또 그 당시엔 촬영이 끝난 뒤에 성우들이 따로 더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金勝鎬씨는 절대로 성우를 쓰지 않았다. 「워낙 바쁜 배우니까 혹시나…」 하는 우려 때문에 감독이 성우를 대기시켰다가 金勝鎬씨의 불호령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배역에, 자신의 연기에 미친 듯이 몰입했다.
 
  그렇다. 金勝鎬씨는 연기에 미친 배우였다. 狂氣(광기)가 있는 배우였다. 영화 「馬夫」를 찍을 때 그가 일주일 동안 서울역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살다시피했다는 건 영화계의 유명한 일화이다.
 
  워낙 연기에 몰입하다 보니 金勝鎬씨는 NG(연기 실수)도 많이 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연습할 때는 이렇게저렇게 하기로 해놓고서 일단 狂氣가 오르면 자기 역에 너무도 침몰된 나머지 화면 밖으로 벗어나기도 하고 상대역과의 호흡이 흐트러지기도 했다.
 
  金勝鎬씨는 일단 배역을 받으면 그 인물은 물론 그 인물의 가족이나 친구에 대해서까지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작품에 등장하지도 않는 아버지나 친구에 관한 질문을 해대서 시나리오 작가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金勝鎬씨는 영화 「馬夫」로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이것은 작품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배우에게 수여하는 상이다)을 타기도 했는데 나는 이것이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에도 우리 영화가, 또 우리 연기자가 해외영화제에 나가서 수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인정받고 있는 때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국력이 약할 때였다.
 
  金勝鎬씨는 이렇게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한국 최고의 연기자인데 사람들에게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것 같아서 좀 서글픈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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