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대구 지킨 ‘코로나 의병장’ 민복기

“확진자가 쏟아졌다, 대구엔 의사들이 있었다”

  •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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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지 관련 31번 확진자 나오자 “1000명, 2000명으로 번질 수 있다” 호소
⊙ 병상 확보 위해 계명대 총장 설득해 대구동산병원을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 “코로나는 희망적 예측으로 다룰 수 없는 영역… 정치 아니라 현장 데이터, 전문가 판단 맡겨야”
⊙ 코로나19 초기 증상 ‘후각 상실’, 동료 의사들과 세계 최초로 발견
⊙ “의협, 상설 협의체로 주요 정책과 대정부 협상은 합의로 결정해야”

閔復基
1968년생.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동 대학원 의학박사(면역학) / 경북대병원 피부과 전문의, 대한의사협회 대선본부장·총선단장, 대한피부과의사회 법제위원장 역임. 現 대구시의사회장 겸 AI바이오메디시티 대구협의회 회장, 올포스킨피부과의원 대표원장 / 저서 《Hair & Wrinkles Update》 《보톡스 시술법과 모발이식술》(공저) 《미용피부외과학》(공저) 《예방의학》(공저) 등 16권
그해 대구 의사 중에 야전(野戰)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차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2020년 2월 17일 밤, ‘신천지 31번’ 확진자가 확인됐다. 민복기 대구의사회 코로나19대책본부장(現 대구시의사회장)은 그날부터 대구시청 상황실에서 잠을 잤다. 전국의 시선이 대구로 쏠렸다. 옷을 갈아입을 틈조차 없었다. 바이러스는 옷도 사람도 가리지 않았다. 확진자는 쏟아지는데, 의사도 있고 병원도 있지만 병상(病床)이 없었다. 환자들은 집에서 죽어 갔다. 대구가 불타고 있었다. 비유가 아니다.
 
  사실상 코로나19는 종식됐지만, 6년 전 그해 겨울과 봄에 쏟아진 수많은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구는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텼을까?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3월 5일 대구 북구 대현동의 대구의사회관에서 민복기 회장을 만났다.
 
 
  그해 겨울과 봄에 쏟아진 수많은 질문들
 
2020년 2월 민복기(오른쪽에서 두 번째)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대책본부장이 권영진 당시 대구시장의 코로나 대책 발표에 배석해 있다.

  민복기는 그해 1월 말부터 코로나19의 낌새를 채고 있었다.
 
  중국 의사들과 주고받는 ‘위챗’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처음에는 짧은 정보들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환자들… 갑자기 늘어나는 중증 환자… 병실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며칠 지나자 숫자가 따라왔다. 확진자 수, 중환자 수, 사망자 수가 들리기 시작했다. 민복기는 그 숫자들을 들여다봤다.
 
  그래프를 그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숫자의 움직임에 ‘방향’이 있었다. 그 움직임을 설명하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수함수였다. 지수함수는 처음엔 완만하게 증가하다 어느 순간부터 폭발적으로 치솟는다. 감염병 팬데믹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2020년 1월 말 당시 대구 지역 확진자는 0명, 전국적으로도 11명에 불과했다. 중앙에서는 ‘감기 수준’으로 치부하던 때였다. 그는 즉시 대구시에 보고했다. 이름도 생소했던 ‘팬데믹’이라는 단어를 썼다. 민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2020년 1월 말 이미 팬데믹 가능성을 보고했습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데이터를 보고 대구시에 ‘팬데믹 상황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구시는 이를 계기로 발 빠르게 대비 태세를 강화할 수 있었다. 바깥 세상은 아직 조용했다. 중앙에서는 2월 들어서도 감기 수준이라는 메시지만 계속 나오고 있었다.
 
  “지역 언론에 ‘팬데믹 심각 단계’라는 글을 썼지만, 중앙 언론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죠. 저와 동료들은 알고 있었어요. 숫자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죠.”
 
  그 숫자가 어디로 가는지도 그는 알고 있었다. 혼자 아는 것은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 2월 17일. 대구 신천지교회에서 31번 확진자가 확인됐다. 대구 지역에선 처음이었다. 2월 18일 공식 발표에서 전국 누적 확진자 31명, 이날까지도 대구는 그 1명뿐이었다. 그때까지는 ‘몇 명 선’이었다. 그러나 민복기는 그날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2월 19일 14명 추가, 20일 23명 추가(누적 38명)로 ‘폭발’이 시작됐다. 숫자가 방향을 바꿨다. 자고 나면 확진자가 늘어났다.
 
  — 31번 환자가 발생했을 때 상황은 어땠습니까?
 
  “2020년 2월 17일 밤이었습니다. 신천지 관련 31번 확진자가 확인됐죠. 저는 그때부터 한 명이 나오면 순식간에 1000명, 2000명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어요. 감염 전파력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권영진 대구시장 요청으로 시청 상황실로 뛰어갔다. 그날 이후 몇 달간 그는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옷도 갈아입지 못했다.
 
  — 당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병상이었습니다. 코로나 환자는 음압(陰壓)병실에 들어가야 했는데 병상이 거의 없었습니다.”
 
  2월 29일 하루 만에 대구에서만 신규 확진자 741명이 쏟아졌다. 3월 초엔 누적 확진자가 6000명을 넘어 병원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선 대학병원이 필요했지만 다른 질환의 환자가 많았다. 병원을 비우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권영진 시장에게 말했다.
 
  “병원을 하나 통째로 비워야 합니다.”
 
 
  대구는 버틸 시간을 얻었다
 
  — 대구동산병원을 전담병원으로 만들자는 생각은 어떻게 나온 겁니까?
 
  “그때 가장 큰 문제는 병상이었습니다. 코로나 환자는 음압병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병상이 거의 없었어요. 환자가 폭증하면 중증(重症) 환자를 받을 병원이 없다는 뜻이었죠. 그래서 병원을 통째로 비워 전담병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 대학병원을 전담병원으로 만드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대학병원은 기존 환자가 많아요. 병원을 비우면 다른 환자들이 갈 곳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대부분 병원에서는 그런 결정을 내리기 어렵죠. 그때 생각한 게, 이전한 지 얼마 안 된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이었습니다.”
 

  권영진 시장이 움직였다. 사실 시장의 결단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병원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계명대였다. 총장 신일희, 동산의료원장 김권배. 두 사람의 짧은 시간 결단이 필요했다. 밤새 논의했다. 시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병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했다.
 
  “나중에야 사람들이 대승적 결단이라고 했지만, 그때는 그냥 시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마침내 병원이 비워졌다. 대구동산병원은 2020년 2월 21일 국내 최초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최대 465병상을 운영했다. 뒤이어 국군대구병원이 움직였다. 열흘 만에 기존 98병상을 303개로 확충하고 전체 병실을 음압화했다. 그 결단이 대구를 살렸다.
 
  “그때 병상을 확보하지 못했더라면 중증 환자들이 병원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사망률이 훨씬 높아졌을 겁니다. 결국 병상이 생명을 살립니다.”
 
  의사는 사람을 살린다. 그러나 때로는 병상 하나가 사람을 살린다. 민복기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병상이 확보되니 또 하나 문제가 남았다. 확진자의 규모였다. 신천지 교인 전수검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숫자가 많았다. 유증상자 87.5%, 무증상자 중 양성 74.4%로 평균 80% 이상이었다. 이 숫자를 공개해야 한다고 그는 판단했다.
 
  ― 그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당시 이경수 영남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로부터 그 수치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유증상자뿐 아니라 무증상자도 상당수가 양성이었죠. 전파력이 매우 높다는 뜻이었어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수치를 발표했다. 전국이 흔들렸다. 중앙정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천지 31번 확진자 발표 다음 날…


2020년 2월 18일, 방역 당국은 대구 남구 다대오지파 신천지대구교회에서 ‘슈퍼전파’가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즉시 예배 참석자 전수(全數)조사에 착수했다. 31번 환자가 참석한 2월 9일과 16일 예배를 시작으로 잠복기 등을 고려해 발병 전후 4회 예배 참석자부터 CCTV를 통해 추적했다. 승강기와 예배당 내 동선까지 세밀하게 파악한 결과 한 예배당에만 460명이 동석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교회 전체 신도 약 9000명을 대상으로 3차례에 걸쳐 명단을 확보했지만 자료가 불완전해 중앙·지자체 직원 1000여 명을 동원해 직접 조사했다.
 
  정부도 2월 20일 ‘신천지 예배·장례식 참석자 철저 조사’를 지시하며 전국적 대응 수위를 높였지만 조사 과정에서 신도 30~40%가 연락이 두절되고 허위 진술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신천지대구교회 관련 누적 확진자는 521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국 확진자의 약 70%로 대구·경북 대유행의 단초가 됐다.

 
  숫자는 정치보다 빠르고 감정보다 정확해
 
2020년 2월 25일 대구시청에서 열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구지역 특별대책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권영진 대구시장, 문재인 대통령, 유은혜 사회부총리,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원 안이 민복기 회장. 사진=연합뉴스

  2월 25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해 코로나19 조기 안정화와 정부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현장 의료진은 이미 폭발 직전의 위기를 몸으로 알고 있었다.
 
  “(대통령의 인식이) 현장에서 보고 있는 상황과 너무 달랐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잘못된 보고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감염내과, 예방의학 전문가들의 판단이 윗선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직접 이견(異見)을 밝혔다.
 
  “코로나19가 몇 년간 지속될 수 있는 문제라, 곧 종식된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통령은 그 이야기를 밖에서 하지 말라고 했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회의석상에서도, 자리를 뜨면서도 같은 말을 했다.
 
  “그날 밤 상황실 분위기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우리는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체감하고 있었고 이미 대규모 감염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위에서는 전혀 다른 메시지가 나오고 있었으니까요.”
 
  숫자는 정치보다 빠르고 감정보다 정확했다. 드러난 숫자가 현실에서 외면당했다.
 
  — 당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치가 아니라 전문가의 판단을 우선 들었어야 한다는 겁니다. 감염병은 희망적 예측으로 다룰 수 없어요. 좋아질 거라고 말한다고 좋아지는 게 아닙니다. 현장의 데이터와 전문가 판단을 먼저 듣고 거기에 맞춰 움직여야 합니다.”
 
  그는 낙관적 편향을 경계했다.
 
  대구시의사회는 자원봉사 의사 260여 명을 모집해 병원에 입원하지 못한 환자 53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전화선 너머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고열로 고통받는 사람들, 홀로 버티는 노인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의사들은 공통된 이상(異常) 증상을 발견했다. 냄새를 맡지 못하고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해외 의료진과 연락해 확인했다. 외국에서도 같은 사례가 보고되고 있었다. 코로나19의 주요 초기 증상 가운데 하나인 ‘후각 상실’이라는 임상적 특징을 동료 의사들과 함께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천체물리학자 꿈이 의사로
 
민복기 회장이 2025년 7월 14일 대구 북구 대구시의사회관에서 열린 의과대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동성명서 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칠곡경북대병원 손진호 병원장, 권기태 교수 등 의료진이 제안한 드라이브스루 검사 방식을 그는 적극 수용해 시청 야간 브리핑에 소개했다. 생소하다는 미온적 반응 속에서도 밀어붙였다. 이것은 나중 K-방역의 상징이 됐다.
 
  확진자가 응급실에 들어오면 응급실을 닫아야 했다. 심근경색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숨지는 일이 생겼다. 민복기는 병원장들과 논의 끝에 응급실을 다시 열었다.
 
  “규정보다 사람이 먼저였습니다.”
 
  대구시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시행했다. 과도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후 이 조치는 전국 정책으로 확대됐다.
 
  “먼저 하는 자는 항상 비판받고, 나중에 따라 하는 자는 박수를 받습니다. 세상이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현장에서 하나의 원칙을 지켰다.
 
  “혼자 봉사를 많이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오래 버티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야전사령관의 말이었다. 혼자 싸우는 게 장수가 아니고, 함께 싸우게 만드는 사람이 장수다.
 
  대구는 살아남았다. 그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확진자 곡선이 꺾였다. 세상은 대구를 재난의 도시가 아닌, 스스로 버텨 낸 도시로 기억했다.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서 뛴 그에게 정부는 국민포장(2020년)을 수여했고 동료 의사들(대한의사협회)은 보령의료봉사상 대상(2023년)과, 독립운동가 최재형(崔在亨·1860~1920년)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최재형상(2025년)도 받았다.
 
  민복기는 지금도 대구에 있다. 올포스킨피부과의원 대표원장으로, 대구광역시의사회장, AI바이오메가시티 대구협의회 회장, 대한의사협회 범대위 대외협력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직함은 바뀌었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야전에 있다.
 
  그가 처음부터 의사가 되려 한 건 아니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목표로 공부했다. 천체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인생은 목표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당시 물리학과 커트라인이 의대보다 높아 방향을 틀어 경북대 의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군의관이 됐고, 최전방에 배치됐다. 지친 병사들 속에서 별보다 밝은 눈빛을 마주했다.
 
 
  軍시절 실전 체험한 ‘대량 전사상자 훈련’
 
군의관 시절의 민복기. 전쟁을 가정한 ‘대량 전사상자 훈련’을 경험한 덕에 코로나19 방역을 지휘할 수 있었다.

  군대에서 그는 전쟁을 가정한 ‘대량 전사상자 훈련’을 경험했다. 전투 상황에서 수십 명, 때로는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 훈련이었다. 연병장에 환자들이 줄지어 누워 있고 헬기가 환자를 후송하는 상황 등이 실전처럼 재현됐다. 의사는 현장에서 가장 먼저 판단해야 했다. 누가 즉시 수술이 필요한지, 누가 후송 가능한지, 누가 기다릴 수 있는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먼저 살리는 게 전쟁의학의 원칙이었다.
 
  — 군의관 시절 ‘대량 전사상자 훈련’을 여러 번 하셨다고요.
 
  “전투 상황에서 대규모 환자가 발생했을 때 분류하는 훈련입니다. 경증부터 중증까지 모두 분류해 응급 환자를 먼저 처리하죠. 쉽게 말해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먼저 살려 전투에 복귀시키는 개념입니다.”
 
  단순 연습이 아니었다. 시험이었다.
 
  — 시험이라는 뜻은?
 
  “군의관들은 실제 시험을 봅니다. 심사관들이 상황을 제시합니다. 전투 중 환자가 갑자기 수십 명 발생했다고 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분류하고 지휘까지 해야 하죠.”
 
  훈련은 책상에서 끝나지 않았다. 연병장에서 실제 지휘를 해야 했다. 환자 분류, 후송 순서 결정, 헬기와 구급차 배치까지.
 
  — 훈련 외에 실제 사고 상황도 있었습니까?
 
  “훈련 중 군용 트럭 두 대가 전복됐습니다. 밤중에 수십 명이 한꺼번에 후송됐고, 연병장에 환자가 깔렸어요. 그때도 바로 분류하고 처리했습니다.”
 
 
  ‘분류하고, 결정하고, 움직인다’
 
  민복기는 다른 군의관들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쌓았다.
 
  — 군 복무 기간 동안 이런 훈련을 많이 하셨습니까?
 
  “39개월 복무하는 동안 다른 군의관들보다 10배 이상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군의관 생활은 전투의학 훈련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최전방 부대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이 병사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반복되고 있었다. 군의관 민복기는 환자들을 직접 조사했다. 병사들의 생활 환경과 보급품을 하나씩 확인했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군에서 지급한 감색 속옷이었다. 그 속옷에 사용된 독일산 염료가 일부 장병들에게 알레르기성 접촉 피부염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원인을 정리해 군 의료 체계에 보고했고, 국군의무사령부를 설득했다. 결국 군은 보급 체계를 바꿔 한국산 염료로 전면 교체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군진(軍陣)의학 학회지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군 복무 기간 동안 그는 행군 중 발생하는 물집 예방, 옴과 성병 등 감염병 치료, 봉소염(피부 세균 감염) 조기 치료법 등에 관한 연구도 이어 갔다. 이런 연구들은 국방부 군진의학회에서 최우수논문상과 공로상으로 이어졌다. 이 군의관 경험들이 훗날 팬데믹 현장에서 빛을 발했다.
 
  — 코로나 대응에 군 경험이 어떻게 도움이 됐습니까?
 
  “대량 환자 분류 훈련 덕에 중증도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경증 환자는 생활치료센터로 보내고 중증 환자는 병원으로 보내는 체계를 만들 수 있었죠.”
 
  군의 전쟁 대비 훈련과 대구의 팬데믹은 상황은 달랐지만 원칙은 같았다. 분류하고, 결정하고, 움직이는 야전 방식, 그의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랑의 지우개’
 
민복기 회장(오른쪽)이 2025년 APEC CEO 서밋 ‘K-뷰티 메디컬센터’에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에게 한국 화장품의 기술력과 의료미용 융합 서비스를 설명하고 있다.

  군 복무가 끝난 뒤에도 군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부사관 복무를 희망하는 병사들이 문신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문신 제거는 한 번 치료에 수십만원, 여러 번 해야 했다. 병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었다. 그는 2001년부터 2작전사령부의 요청으로 무료 치료를 시작했다. 처음엔 인근 부대 병사 몇 명이었다. 소문이 퍼지며 전국 부대로 확대됐다.
 
  이 활동은 대한피부과학회 ‘사랑의 지우개’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군인뿐 아니라 경찰, 교정시설 수용자, 미혼모 등으로 확대됐다. 그의 봉사는 의료에 그치지 않았다.
 
  “2006년 병원 이전 때 환자들의 쌀, 선물을 모아 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2026년 2월 말 현재 누적 쌀 기부량은 44톤(20kg 2200포)에 달한다.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저소득층, 독거노인, 복지 사각지대에 전달됐다.
 
  “1년에 2톤씩 꾸준히 모아 전달했습니다. 한번 시작한 이상 중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15년부터는 매년 베트남, 러시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을 찾고 있다. 의료가 닿지 않는 땅이다. 중증 건선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거기 있었다. 그는 거기서도 의사였다.
 
  — 봉사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혼자 봉사해 봤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요.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APEC 무대서 증명한 대구 의료


민복기의 시선은 대구 바깥을 향해 있었다.
 
  올포스킨피부과는 2013년 베트남 하노이를 시작으로 중국, 카자흐스탄에 메디컬센터를 열었다. JCI 국제의료기관 인증을 잇달아 받았다. 한국 의료가 그 땅에 뿌리를 내리는 발판이 되었다.
 
  2025년 10월, 경주에서 APEC CEO 서밋이 열렸다. 민복기는 경상북도·구미대학교 등과 산·학·의 연계 사업추진단을 꾸려 해외 정상과 경제대표단을 상대로 K-뷰티·K-메디컬 융합 서비스존을 직접 총괄했다. 레이저 피부 진단, 리프팅, 항(抗)노화 시술, 모발 AI 진단까지. 데이터에 기반한 서비스였다. 각국 VIP들의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의료가 감(感)이 아니라 정밀과학이구나!”
 
  그는 그 말을 듣기 위해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은 그가 오랫동안 믿어 온 것을 확인해 주었다. 의료는 ‘감’이 아니다. 숫자이고, 데이터이고, 판단이다. 코로나 야전에서도 그랬고, 경주의 국제무대에서도 그랬다.

 
  “환자와 의사 사이 신뢰가 무너져”
 
  코로나19 당시 의사와 환자 사이에 형성됐던 신뢰는 안타깝게도 이후 흔들렸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醫政) 갈등이 이어지면서였다. 의대 정원이 갑자기 늘었고, 상당수 의대생은 휴학하거나 군에 입대했다.
 
  — 의대 정원 확대와 휴학 의대생들의 복귀가 동시에 이뤄지면 교육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지금 상황을 보면 교육이 쉽지 않아요. 예를 들어 한 학년에 3000명 정도를 교육하던 구조인데 갑자기 24, 25학번 3000명이 더 늘어나면 6000명 가까이 되는 셈이죠. 그걸 감당할 교육 인프라가 없습니다.”
 
  — 휴학했던 학생들이 복귀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휴학 중인 학생들이 돌아오면 교육이 더 어려워져요. 강의실만 더 짓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교수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 그럴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결국 옛날 ‘졸업정원제’ 때와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어요. 교수 수나 실습 시설은 그대로인데 학생 수만 갑자기 늘어나는 겁니다. 그러면 실습 교육이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선배 학번이 아래 학번까지 밀려 내려가고 졸업 시기도 늦어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결국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최근 의정 갈등이 의료계 신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십니까?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가 무너진 것이 사실입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국민들이 의료진을 영웅처럼 존경했습니다. 그때 쌓였던 신뢰가 의정 갈등 이후 내부가 갈라지면서 많이 흔들렸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에서도 불협화음이 들렸다.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안(案)이 부결되고 현 집행부 체제가 유지됐다. 겉으로는 지도부에 대한 재신임처럼 보였지만, 회무(會務) 운영 방식과 책임 구조를 둘러싼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그는 그 논쟁의 핵심을 이렇게 짚었다.
 
  “회장 한 사람에게 책임이 집중되는 구조입니다. 중요한 정책을 지도부가 결정하고, 부담은 회장이 떠안습니다. 어떤 결론이든 후유증이 남습니다.”
 
  그의 말은 조용했지만 분명했다. 협상이 기대에 못 미치면 ‘독단’, 길어지면 ‘리더십 부재’라는 비난이 따른다. 구조가 그렇게 돼 있다. 민복기는 이 구조가 의정 갈등을 키웠다고 본다.
 
  — 전공의와 의대생 반발도 같은 맥락일까요?
 
  “과거 협상에서 설명과 동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인식이 쌓였습니다. 젊은 세대는 자기들이 결정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그는 이를 세대 갈등이 아닌 대표성 문제로 봤다. 누가 결정하고 책임지는가의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다른 구조를 제안한다.
 
 
  “의협, 상설 협의체 필요해”
 
2023년 3월 대한의사협회와 보령홀딩스, 보령(구 보령제약)이 주관하는 제39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에 민복기 회장이 선정됐다.

  — 어떤 변화가 필요합니까?
 
  “회장 혼자 결정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회장·대의원회·시도의사회·전공의·의대생·교수 대표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가 필요합니다. 주요 정책과 대정부 협상은 합의로 결정해야 합니다.”
 
  집단지도 체제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고 토론이 길어질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신뢰가 쌓인다고 했다.
 
  “의사결정이 느려질 수 있지만, 구성원 신뢰가 조직 협상력을 높입니다.”
 
  민복기는 해외 사례를 들었다. 미국의사협회(AMA)에서는 전공의·의대생이 별도 섹션으로 안건을 상정하고 대의원회 표결에 참여한다. 젊은 세대는 동원 대상이 아닌 결정 주체다.
 
  “젊은 의사들이 참여해야 조직이 지속됩니다. 안정성은 거기서 나옵니다.”
 
  대구 의료계가 중앙 구조를 공개 비판한 일은 드물다. 그러나 민복기는 이를 공격이 아닌 변화 요구로 봤다.
 
  “지금 필요한 건 구호가 아닙니다. 제도입니다.”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권한을 나누고 책임을 함께 지는 구조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의료계가 한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의 말은 조직을 향했지만, 결국 개인에게 돌아왔다. 한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하는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 함께 결정하는 조직만이 지속된다. 민복기는 코로나 야전에서 이를 배웠다. 혼자 싸우는 장수는 버티지 못한다. 함께 싸우는 군대가 이기고,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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