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6월13일 토고와의 1차전에서 후반 27분 극적인 역전골을 터뜨린 안정환(가운데)이 동점골을 넣은 이천수, 송종국과 함께 환희의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장면 1] 한국 대표팀 입성
월드컵 개막 後에도 독일은 정규 방송지난 6월6일 오후 1시쯤(독일 현지시각)이었다. 베를린의 한식당 「서울관」에서 다른 특파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막 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식당의 한쪽 벽에 설치된 TV의 화면에서 뭔가 소란스러운 장면(음향을 꺼 놓았지만)이 흘러나왔다.
대형 플래카드가 보이고 붉은 셔츠를 입은 군중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대형버스에서 선수들이 내리고, 방송기자가 마이크를 입에 대고 흥분한 표정으로 뭔가 외치는 것 같았다. 독일 현지 방송이 아니라, 가입비를 내고 위성을 통해 수신할 수 있는 KBS 채널이었다.
앞에 앉은 후배기자에게 『지금 무얼 하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지금 한국대표팀이 독일에 입성하고 있는데요』
『오늘이었나? 그랬구나』
우리 대표팀의 숙소 호텔은 독일의 남서부 쾰른市에 있었다. 베를린에서 승용차로 7시간, 비행기로 2시간쯤 떨어진 거리다. 베를린 주재 특파원들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커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특파원들은 거기에 없었다.
이미 국내 각 언론사의 월드컵 취재단들이 그쪽에 포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월드컵을 위해 엄청난 취재 및 중계인력이 경쟁적으로 투입됐다. 특히 국내 방송사들은 「대목」이었다. 기자·PD·아나운서·전문리포터·통역·기술요원 등 한 방송사마다 200여 명의 인력이 몰려왔다. 같은 방송사 안에서조차 제작 프로그램별로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서로 누가 왔다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국내 3社 공영방송들이 다른 일상 프로그램을 모두 죽여 가면서 「월드컵 D_○○일」식의 월드컵 이벤트를 만들고 특집에 매달리는 것은, 개최국인 독일 현지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월드컵의 막이 오른 뒤에도 독일 방송에는 정상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어쩌면 인색할 느낌이 들 정도로, 경기 중계는 한 채널에서만 이뤄졌다. 당연히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독일戰의 중계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방송이 월드컵에 총력전하는 이유방송사 후배의 말로는, 국내 공영방송사들이 『월드컵만 있느냐』는 여론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총력전을 펴는 까닭은 한마디로 돈벌이 때문이다. 통상 저녁 시간대 15초당 TV 광고의 단가는 약 1000만원이다. 월드컵 프로그램에서는 그 단가가 두 배로 뛰어 2000만원이 된다. 월드컵 프로그램에서 광고가 붙는 숫자에 2000만원을 곱하면 방송사의 수입을 대략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베를린 특파원들은 한국팀이 입성하는 그 장면을 보며 잠깐 閑談(한담)을 나누었을 뿐이다. 우리에게 그 혼잡한 현장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었고, 어쩌면 진부할 정도로 익숙해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바로 그 풍경이 독일 언론에서는 화제가 됐다.
이 글은 우리 팀의 경기가 아직 열리지 않은 시점에서 작성되고 있다. 경기 결과나 16강 진출 여부는 이 글이 인쇄되고 난 뒤에나 알게 될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말이 있듯이, 똑같은 행위라도 결과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점에 쓰는 글이 경기 결과에 따라 아주 터무니없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이 글이 잡지의 「마감 시간」에 의해 불가피하게 작성됐음을 고려해 주기 바란다.
독일 현지 언론들은 월드컵과 관련해 한국팀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국가의 위상은 경제력, 국방력, 영토의 크기, 인구 수, 문화유산, 지도자, 특정 기업 등 여러 가지 요소로 평가된다. 그러나 월드컵에서는 축구 실력의 잣대로 인정받을 뿐이다.
우리가 내세울 것은 세계 10~11위의 경제대국이라는 것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바깥 국제무대에서 우리를 아는 것은 삼성·LG·현대車 등에 의한 것이지만, 월드컵에서는 그런 잣대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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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6일 한국대표팀 숙소인 독일 베르기쉬 글라드바흐시 벤스베르크 호텔에 도착한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
붉은악마들, 너무 조용해서 놀라국내에서는 월드컵 대표팀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뉴스가 되었겠지만, 여기서는 우리 대표팀의 독일 입성조차 관심권 밖이었다. 그러니 대표팀이 도착한 쾰른 현장에는 아마 독일 기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몇몇 독일 현지 언론이 『전날부터 몰려든 팬들과 현지 교민, 취재원들이 북적거렸다. 한국 퓨전 록밴드가 동원되고 독일 아코디언 음악이 지역 주민들을 흥분시켰다. 안전요원들은 비상경계선 앞에서 밀려드는 팬들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라는 「로이터」 외신보도를 인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외신보도 내용은 우리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개최국 독일에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월드컵 경기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난리」가 벌어지다니…. 한국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던 독일 언론들이 이날 풍경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였다.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이날 풍경만을 소재로 칼럼성 기사를 게재했을 정도다.
기사는 『독일에 온 월드컵 팬들이 우리의 도심 거리가 너무 차분한 것에 대해 당황해하고 있다』로 시작된다. 말은 맞다. 독일은 정말 차분했다. 수도 베를린에 주재하고 있는 기자 역시 그때까지 거리에서 월드컵 구호나 함성을 들어 보거나, 플래카드나 깃발을 본 적이 없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 베를린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들이나 특파원들은 『이번 2006년 월드컵 개최지가 독일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는 농을 주고받곤 했다.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대사관 앞으로 독일 현지 공연이나 문화행사 개최를 위한 지원 요청이 봇물을 이뤘다. 그런데 공연 지원 요청서 중에는 「독일 월드컵 성공 기원을 위한」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우리나라 공연팀이 독일 월드컵의 성공을 빌다니, 마치 우리가 월드컵을 개최하는 기분이 들었다.
국내에서는 월드컵으로 거의 숨이 넘어가고 있는 데도, 정작 독일은 아무런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독일 전역을 자동차로 여행했다. 하지만 월드컵 경기가 「킥 오프(kick-off)」되기 전까지, 어느 도시에서도 우리가 예상해 온 「월드컵」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다. 물론 월드컵 시설물을 짓거나 도로보수 작업은 진행되고 있었고, 월드컵 로고가 찍힌 상품들이 기념품 가게에 진열됐다. 하지만 그것은 입이 없는 것들이었다.
요령부득의 독일 분위기![]() |
| 지난 6월6일 한국대표팀 숙소인 독일 베르기쉬 글라드바흐시 벤스베르크 호텔 광장. 2000여 명의 현지교민과 시민들이 한국대표팀을 기다리는 가운데 현지 밴드가 축하공연을 하고있다. |
앞의 슈피겔 기사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한국대표팀이 도착하기 하루 전부터 쾰른에 몰려든 한국팬들은 몹시 실망했다. 월드컵 축제 열기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몹시 기운이 빠진 채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열차를 타고 온 한 한국여성은 「기차 안에서 우리가 응원가를 부르는데 주위에서 계속 조용히 하라는 말을 들었다. 축제인데도 왜 함께 즐기지 않는가」라고 의아해했다』
월드컵의 주인은 어쨌든 손님들을 잘 맞아야 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슈피겔은 이런 식으로 달래고 있었다. 『아직 개막되지 않았다. 튜턴族(독일인)의 정확함에 따라 예정된 날짜가 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장면 2] 팬 축제
폴란드의 교황행사에 100만 운집다음날인 6월7일(월드컵 개막 이틀전), 처음으로 「팬(Fan)축제」라는 이름의 월드컵 행사가 베를린의 상징물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열렸다. 문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뚫린 1.8km의 大路(대로)를 통제하고 행사장을 만들었다. 입구에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의 검문이 이뤄졌다. 맥주병 반입은 금지됐다.
음주를 막는 것이 아니라 흉기로 변할지도 모를 유리병을 금지한 것이다. 행사장에 꽉 들어찬 간이음식점마다 플라스틱 일회용 컵에 담은 생맥주를 팔았다.
유럽인들에게 「디오니소스(酒神)」가 빠진 축제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예외적 경우를 한 번 본 적은 있다. 독일 출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5월 말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다. 교황이 폴란드 남부의 古都(고도)인 크라쿠프에서 야외 미사를 집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의 가톨릭 신도 100여만 명이 몰려왔다.
전날부터 배낭을 멘 채 속속 도착한 이들은 雨天(우천) 속에서 무리를 지어 밤샘 노숙을 하는 데도 전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시내 음식점에서는 그날만은 「에피타이저」로도 술을 내놓지 않았다.
술 가게는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TV방송은 교황이 방문하는 동안 술과 콘돔·속옷 광고 등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교황이 통과하게 되는 고속도로의 「세속적인」 광고탑은 천막으로 가려 놓기도 했으니 그 어떤 정치 권력보다 종교적 권위가 더 힘센 것인지 모른다.
단조로운 월드컵 행사![]() |
| 베켄바워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 |
그런데 베를린 월드컵 축제는 어떠했을까. 무대 진행은 싱겁고 단조로웠다. 출연 가수들이 차례대로 몇 곡씩 부르는 식이었다. 가수들의 연령도 결코 만만찮았다. 우리 같으면 「흘러간 가요 무대」라고 불러도 될 듯했다. 독일 사람들은 그동안 얼마나 심심하게 살아왔던지, 이런 행사에도 재미있어 했다. 가족·연인·친구끼리 나와 맥주 한잔 마시며 제 흥에 겨워 몸을 흔들어 댔다.
우리나라 광화문의 통일된 붉은색처럼, 여기서는 독일의 삼색 깃발 물결이었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군중 속에는 미국·영국·스위스·브라질 등 다양한 국기들이 펄럭거렸다. 무대에는 브라질 공연팀이 삼바 리듬에 맞춰 북을 두들기고, 포르투갈 여가수가 팝송을 부르고, 카우보이 모자를 쓴 그룹들은 웨스턴 컨트리송을 열창했다. 어떤 목표를 둔 「단합대회」가 아닌 것만 분명해졌다. 그냥 마음 편하게 한번 들러 남들과 함께 놀고 즐기는 행사였다.
물론 주최 측은 그런 단합을 염두에 뒀을지 모른다. 사회자나 출연진 중에서 『베를린! 베를린!』이라는 구호를 유도했다. 그러나 『베를린』이라는 구호에 군중들은 열광적으로 미치지는 않았다.
더욱이 『대~한민국』에 대비될 『도이칠란트』라는 구호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독일은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처럼 『대~한민국』이라는 열광적 구호 아래 全국민이 뭉치는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았다. 왜 애국심을 드러내는 데 부끄러워할까.
나치의 악몽나치 시절의 악몽이 독일인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치가 선동의 수단으로 삼았던 「집단·민족·국가주의」에는 독일인들이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독일인들에게는 반성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60년의 세월이 흘렀고, 더욱이 지금의 젊은이들은 당시에 살지 않았는 데도 그 악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우리에게서 「민족」·「국가」란, 거역할 수 없는 공적 개념이다. 우리의 사고는 그런 테두리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국가」란 한편으로 배타적이고 투쟁적인 근대 이데올로기다. 또한 弱者(약자)의 이데올로기다. 역사적으로 민족주의를 내세운 쪽은 상대적으로 弱者(강자)였다. 强者는 모든 경계를 허물려고 하지만, 弱者는 경계를 지키고 민족끼리 뭉치기를 원한다. 히틀러의 나치주의 역시 민족주의의 변종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패배한 뒤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주변 유럽 국가들에 의해 짓눌렸던 독일은 弱者였다. 그때 국민들을 한쪽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었던 것은 민족주의의 선동으로만 가능했다.
국제 사회에 포위된 북한이 「민족」을 앞세우는 것도 弱者 이데올로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민족주의가 아직까지 도전을 받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대단하다고 떠들어 대도 심리적으로는 그런 「弱者」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점에서는 우리보다 앞선 일본도 별로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터부시되고 집단과 공동체의 개념이 없다면, 국가의 유지는 어떻게 가능한가. 독일 정부와 保守언론들은 바로 이런 점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너는 독일이다(Du bist Deutschland)」라는 캠페인을 벌여 왔다. 독일 국민에게 소속 국가의 정체성을 심어 주려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간혹 너무 과잉된 한국과 대비되는 풍경이다.
물론 독일에서 이 캠페인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은 것은 아니다. 左派(좌파) 쪽에서는 「세상 흐름에서 뒤떨어진 것」이라고 조롱한다. 이 캠페인은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일단 중지됐다. 바깥 세계로부터 과거 독일의 나치 기억(인종차별주의)을 떠올릴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장면 3]『왜 노려봐』
「스마일 운동」독일 월드컵의 모토는 지구촌 사람들을 모두 친구로 맞이한다는 것이다. 수도 베를린의 중심 포츠담 광장으로 들어가는 대형아파트 건물의 벽면에는 온통 출전국의 국기들로 장식됐다. 포츠담 광장의 驛名(역명)은 월드컵 기간에 브라질 축구영웅 「펠레(Pele)」역으로 바뀌었다. 「얼굴들(Faces)」라는 제목으로 각국의 사람들의 표정을 담은 대형 작품 사진들이 거리에 전시됐다.
독일은 이번 월드컵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는 기회로 삼으려고 했다. 월드컵 개최 전, 독일의 어떤 민간 단체가 외국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웃는」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기사를 읽고, 한때 우리도 했던 「스마일 운동」이 생각나 실소한 적이 있었다.
어떤 이미지를 바꾸려는 것일까. 독일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는 뭘까.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나치 시절의 이미지일는지 모른다. 딱딱하고 음습하고 기계적이고 非사교적인…. 국내에 있는 나의 한 친구는 「독일하면 게슈타포가 생각난다」는 메일을 보내온 적이 있다. 그러나 이미지는 대부분 실상과 거리가 있고, 실상을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슈피겔」 인터넷판은 「독일에서 살아남는 법: A부터 Z까지」라는 제목으로 지난 3월부터 계속 연재했다. 월드컵 개최지인 독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혹 잘못 알고 있거나, 독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알려주는 특집이었다. 내 경험과 취재 내용을 덧붙여 일부만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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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독일 월드컵.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모인 유학생과 교민 붉은 악마들. |
「맥주의 나라」 독일우선 독일은 「맥주의 나라」다. 독일에만 5000종류의 맥주가 있다. 맥주를 빚는 양조장 수만 1274개다. 이 수는 유럽연합(EU) 국가 전체 양조장의 4분의 3에 해당한다. 2004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인 한 명당 115리터의 맥주를 마신 것으로 나와 있다. 1인당 맥주 소비에 관한 한 세계 1등이다.
그렇다면 독일인들은 커다란 머그잔을 들고 주정뱅이처럼 비틀거리고 우스꽝스러운 짓을 할 것 같은가, 천만에. 독일인들은 단지 갈증을 풀기 위해 음료수로서 맥주를 즐길 뿐이다. 진짜 술꾼들이라면 38。쯤 되는 「콘(Konn)」이라는 독일식 보드카를 마실 것이다.
관광코스인 뮌헨의 대형 맥주홀에 가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복장을 한 독일 아줌마 웨이트레스들이 신기해 사진을 많이 찍는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폴란드와 헝가리 출신이다.
독일 맥주는 「순수법(Purity Law)」 (1516년)에 따라 물·홉·몰트·효모, 이 네 가지 원료로만 제조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화학 첨가물이나 방부제를 넣지 않아 숙취가 없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과음한 다음 날 아침 숙취가 없는 술이 과연 있을까.
만약 독일 친구와 건배를 할 기회가 있다면, 술잔으로 탁자를 한 방 두들기고 이어 상대방의 잔과 마주 쳐라. 이때 꼭 서로 눈을 응시해야 한다. 이런 룰을 지키지 않으면 7년 동안 여자친구와의 섹스에 문제가 생긴다는 속설이 있다.
맥주를 마실 때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면 재정적 손실이 심할 수 있다. 간혹 술집 안에서 화장실 사용료를 받는 경우가 있다. 소위 「화장실 아줌마」가 플라스틱 접시를 놓고 기다리고 있다. 한 번에 30~50센트(360~600원). 만약 주머니에 2유로짜리 동전만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접시에서 거스름돈을 챙겨라. 동전을 안 낸다고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경우 「아줌마」와의 관계가 분명 악화될 것이다.
특히 관광객들이 붐비는 레스토랑, 카페, 휴게소, 기차역의 화장실은 예외 없이 동전을 요구할 것이다. 심한 곳은 한번에 1유로(1200원)까지 받는다. 독일의 주간지 「디 자이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주일간 화장실만 지켜도 2000유로(240만원)를 벌 수 있다. 참고로 유럽의 도시 대부분이 화장실 사용료를 받고 있다. 그런 전통은 19세기부터 시작됐다.
독일人의 또 다른 얼굴독일에서 살면 모든 업무가 기다림의 연속이다. 한국에서 한 시간이면 해결될 일이 독일에서는 적어도 일주일 이상 걸린다. 이들이 참고 기다리는 걸 보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자동차 운전대를 잡는 순간 이 독일인들이 180。로 바뀐다. 무한 속도로 질주하는 독일의 아우토반(고속도로)은 물론이고, 시내에서 운전할 때도 결코 참지 못한다.
주행신호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길을 찾기 위해 서행할 경우, 끝없이 뒤차로부터의 요란한 클랙슨 소음을 들어야 한다. 그런 통계는 없지만 클랙슨을 가장 많이 누르는 사람들이 독일인일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사회 제도 속에서 억눌린 본능의 유일한 탈출구」라고 해석한다.
운전하다가 신호등 앞에서 나란히 멈춰 있는 동안, 간혹 옆 차로부터의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 독일인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듯 보는 것이 아니라 「물끄러미」 노려본다. 처음에는 「내가 이상하게 보이는가, 무슨 문제가 있나」라고 생각했다. 아마 공격적이었다면 『당신 왜 기분 나쁘게 째려봐』라고 시비 붙을지 모른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낯선 사람에 대해 「노려본다」는 느낌이 들도록 쳐다보는 것은 이들의 습관일 뿐이다. 세월 속에 형성된 습관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을 감시하고 신고하는 독일 할머니들의 얘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아직 겪어 본 바가 없다.
독일이 통일(1990년)된 뒤로, 동·서독 간의 경제적 격차는 많이 알려진 편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문화적 이질감과 반목은 오히려 독일內 남·북부 간에 더 심하다. 남부는 가톨릭, 북부는 개신교이다. 남부는 농업, 북부는 상공업 중심이다. 남부는 역사적으로 바이에른 공화국, 북부는 프로이센 왕국이다.
북부는 남부사람을 「촌놈」이라 부르고, 남부는 북부사람을 「돼지」라고 부른다. 언어·음식·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연합군이 동서독 분단을 하지 않고 남북을 분단했다면, 아직 독일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농담도 있다.
[장면 4] 편지 한 통과 월드컵 티셔츠
FIFA 부회장 명의의 답장駐獨(주독) 한국대사관에 윤종석(40) 공보관이라는 친구가 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공무원 스타일과는 약간 다르다. 이 친구가 월드컵 기념품 코너에서 본선 진출 32개국 팀의 국기가 도안된 「월드컵 공인 티셔츠」의 태극기 문양이 잘못된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뭐,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갈 법한데, 에너지 넘치는 이 친구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 티셔츠를 제작한 업체인 「칼 슈타트」에 판매 중단과 함께 정정을 요구하는 내용의 독일어 편지를 쓴 것이다. 독일에서는 모든 공적인 의사 교환은 편지로 주고 받는다. 독일에 와서 가장 괴로운 것이 이런 편지 쓰기다. 전화나 이메일로 하면 편리할 텐데, 꼭 편지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자녀들 학교 지원을 할 경우에도 우편으로 해야 하고, 집 계약을 해지할 때도 반드시 3개월 전에 편지를 부쳐야 한다.
유럽 전역에 200여 개의 백화점을 거느린 독일 유통업 체인인 「칼 슈타트」 측도 편지로 답했다.
「우리가 당초 한 도안 작업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하청업체에서 인쇄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했다. 미안하다. 그러나 판매 중단은 곤란하다. 우리가 손해 볼 수는 없으니 적어도 원가 보전이 될 때까지는 팔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달라」
이 정도면 멈출 법도 한데, 윤종석 공보관은 이번에는 FIFA 측에 그 「귀찮은」 편지를 썼다.
「참가국의 국기를 잘못 찍어 낸 월드컵 공인 티셔츠가 판매되는 것은 당신들의 책임도 있지 않는가」라고. 편지는 보냈지만 사실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편지로 남는 기록이 무서웠던지, FIFA 부회장의 명의로 회신이 왔다.
「월드컵 동안 세계 사람들이 서로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야 하는데, 당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 미안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른 참가국의 국기에 대해서도 확인해 보겠다」
그 직후 칼 슈타트의 담당자로부터 『즉시 매장에서 철수하겠다』는 전화가 걸려 왔고, 참가국 국기가 그려진 월드컵 공인 티셔츠는 그 뒤로 정말 사라졌다.
그러자 윤공보관은 칼 슈타트 담당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품 리콜을 하게 된 칼 슈타트의 손실을 감안해 『그렇다면 우리 응원용 티셔츠 6000장을 그쪽에서 제작하겠다』고 제안했다. 물론 이 친구는 그 과정에서도 제작 단가를 한 장당 4유로에서 2.5유로로 확실히 깎았다. 주문한 티셔츠는 태극기 도안에 FIFA와 독일 월드컵 로고를 함께 넣은 것으로 현지 교민, 방문객, 주요 해외공관에 배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반전이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칼 슈타트의 회장이 『한국인은 우리 매장의 고객들인데 그 마음을 불편하게 했으니 티셔츠 6000장은 돈 안 받고 그냥 만들어 주겠다』고 통보해 온 것이다.
그 뒤로 서로 『한국 정부는 공짜로 그런 걸 받을 수 없다』, 『우리는 그냥 해주겠다』는 걸로 줄다리기했다는 것이다. 결국 티셔츠 6000장의 제작경비 1만5000유로(약 1800만원)를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유니세프(UNICEF) 기금으로 내놓기로 칼 슈타트 측과 합의했다.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정말 예상 밖의 많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편지를 잘 쓰지 않는다.
[장면 5]「도이칠란트!」
축구게임 한 판의 힘6월9일 독일과 코스타리카 간의 개막전을 브란덴부르크 문 광장에서 봤다. 이틀 전 월드컵 팬 축제가 열렸던 곳이다. 군중은 거의 50만 명에 육박했다. 날씨는 화창했다. 영상 25℃, 초여름이었다. 그전까지 독일 월드컵의 진짜 숨은 고민은 날씨였다. 무슬림 극단주의자의 테러, 훌리건의 난동, 시위…. 이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6월인데도 춥고 음습하고 축축한 비를 뿌려 대는 독일의 날씨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행인들은 여전히 겨울 외투를 입고 다녔다. 그래서 「神(신)이 축구팬이라면 날씨가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월드컵 개막 이틀 전부터 신기하게도 날씨가 계속 좋았다. 개막전에서 독일은 코스타리카를 4대 2로 이겼다. 이때부터 독일은 2002년 광화문의 상황과 똑같았다.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 슈피겔의 기사는 정확했던 셈이다. 「아직 개막되지 않았다. 튜턴族(독일인)의 정확함에 따라 예정된 날짜가 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독일 군중들은 독일 국기를 흔들고 몸에 두르고 난리가 났다. 호각을 불고 춤을 추고 서로 끌어 앉고 함성을 질러 댔다. 광장에는 빈 플라스틱 맥주컵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거리로 나오니 차들은 경적을 울렸고, 차창 밖으로 상반신을 내민 채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환호하는 풍경이 벌어졌다. 어느 날 보니, 거리를 질주하는 차들이 거의 모두 독일 국기를 꽂고 있었다. 거리는 모두 미쳐 가는 중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은 「애국심」에 그렇게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독일의 보수 언론들은 『이제 우리도 애국심을 말해도 될 때가 됐지 않는가. 우리는 애국심 앞에서 왜 주눅 드는가. 우리에게는 왜 「바이에른」, 「바바리언」(독일의 남부 州)만 있고 나라 「도이칠란트」는 없는가』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이 나치 시절 이후 과거 반성을 하다가 실종된 독일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는 언론매체가 걱정하지 않아도, 발벗고 나서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월드컵 경기가 벌어지면서 군중들은 국가의 깃발 아래로 뭉칠 수밖에 없었다. 「너는 독일이다(Du bist Deutschland)」라는 캠페인을 수백 번 한 것보다 월드컵 경기 한 게임이 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월드컵의 본질은 정치적이다. 그런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운 정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