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이문열이 평역(評譯)한 《삼국지》를 읽었지만, 별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조성기·김홍신·장정일 같은 국내 작가들의 《삼국지》가 나올 때마다 대형서점에 나가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읽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작가의 체취가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조미료를 너무 많이 친 음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삼국연의(三國演義)》는 ‘날것’ 그대로의 고전(古典) 《삼국지》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기왕에 나온 《삼국지》들이 대부분 일본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가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개작(改作)한 《삼국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삼국연의》는 청(淸)나라의 작가 모종강(毛宗崗)의 《삼국지연의》(일명 ‘모종강본(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난삽한 형태로 전해져 오던 - 원(元)나라 말기 나관중(羅貫中)이 쓴 걸로 알려진- 《삼국지(연의)》를 오늘날과 같은 체계로 다듬은 사람이 바로 모종강이다.
원래 ‘모종강본’은 본문, 서문(序), 일종의 후기(後記)인 〈삼국지 읽는 법(讀三國志法)〉, 매회 앞 부분에 오는 서시씨평(序始氏評), 본문 중에 실린 간략한 협평(狹評)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에 ‘모종강본’이라고 하는 《삼국지》는 없지 않았으나, 서문, 〈삼국지 읽는 법〉, 서시씨평, 협평까지 모두 번역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라고 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서시씨평과 협평이다. 조조(曹操)가 한 유명한 말,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들을 배반할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반하지는 못하게 할 것”이라는 말에 대해 모종강은 서시씨평에서 이렇게 말한다.
序始氏評과 狹評
〈시험 삼아 천하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 그리고 감히 입을 열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도덕과 학문(道學)’을 강의하는 사람들은 일단 이 말을 뒤집어서 “차라리 남이 나를 배반하게 할지언정, 내가 남을 배반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듣기에 나쁘지 않겠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대로 하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조조의 이 두 마디 말을 몰래 배우고 있다. 그러므로 조조는 말과 마음이 일치한 소인(小人)이지만, 이런 무리는 입은 옳아도 마음이 글러서, 그 말과 행동이 직설적이고 통쾌한 조조보다 도리어 못하다.〉
동탁(董卓)이 자신을 치려는 제후(諸侯)들을 피해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遷都)하면서 부호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대목을 보자.
〈동탁은 즉시 철기병 5천명을 내보내서 두루 다니면서 낙양의 부자들을 잡아들이도록 했는데 그 수가 모두 수천 호나 되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다 크게 ‘반신역당(反臣逆黨)’이라고 쓴 깃발을 꽂고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목을 자르고 그들의 가산을 몰수했다. (*왜 그들의 죄명을 ‘부호’라고 하지 않고 ‘역당’이라는 명칭을 빌려야만 했을까? 필부는 죄가 없어도 재산이 많은 것은 죄가 된다).〉
( )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바로 협평이다. 서시씨평과 협평은 이야기의 전개를 설명하거나, 사건에 대해 평가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람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심심찮게 담고 있어,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원로 출판인인 역자(譯者)는 “원문의 내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았고, 원문의 뜻을 정직하고 충실하게 전달하는 데 가장 큰 역점을 두었다”고 자부한다. 문체(文體)는 조금 투박한 느낌을 주지만, 읽다 보면 동란(動亂)의 시대를 질주(疾走)했던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가 느껴지는 듯하다.
이 《삼국연의》의 또 다른 특색은 ‘공부하는 《삼국지》’라는 데 있다. 기억할 만한 격언이나 고사성어(故事成語)들에는 한문을 병기(倂記)했고, 《논어》 《맹자》 《손자병법》 등 고전을 인용하는 경우에는 그 출전을 밝혔다. 제9~12권은 한문원문본(漢文原文本)으로, 여러 판본의 ‘모종강본’을 비교해 오자(誤字)를 바로잡았고, 간단한 주석(註釋)을 덧붙여서 《삼국지》를 통해 한문이나 중국어(中國語)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