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枯死 직전의 소프트웨어 산업현장

“하드웨어 對 소프트웨어 265 對 1” (용산전자상가 상점수)

  • 글 :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 글 : 서은내 월간조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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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해온 소프트웨어 가게 접은 업주 “내달부터 튀김장사 할랍니다”
⊙ 소프트웨어 가격 내리면 산다는 비판에 “공짜보다 싼 것은 없다”
⊙ 억대의 고가 소프트웨어 시장과 공공기관에도 만연한 불법복제
⊙ ‘무한복제’는 디지털 제품의 기본 성질… 복제방지는 무용지물
서울 용산전자상가. 용산역과 연결된 ‘터미널상가’를 지나면 7개 정도의 상가가 모여있다.
지난 10월 5일,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 PC시대를 열었던 그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아이팟(iPod), 아이폰(iPhone), 아이패드(iPad) 등으로 IT시대의 새 장(章)을 열어 나갔다. 스티브 잡스와 그가 이끄는 애플의 강점은 소프트웨어에 있었다.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의 감성을 담아냈다.
 
  삼성전자의 경우 하드웨어 부문은 강하지만, 소프트웨어 부문은 애플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iPhone의 대항마인 구글은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이에 대해 지난 8월 18일자 《조선일보》가 ‘한국 IT, 구글 하청업체 전락 위험’이라는 기사를 내 보냈다. 언론들은 소프트웨어 부문이 취약한 한국 IT산업의 한계를 지적하는 기사를 다투어 내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고급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의 확보를 독려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한국에서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사면 ‘바보’ 취급받는 현실은 10여 년째 그대로다. 게임은 물론, 워드(Word)나 엑셀(Excel)과 같은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정품으로 찾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서울 용산전자상가는 한때 국내 IT 소비의 메카라 불렸다. 브랜드PC나 조립PC 등 수많은 컴퓨터 상점들이 지금도 모여 있다. 용산역과 연결된 ‘터미널상가’부터 시작해서 ‘선인’, ‘나진’ 등 7개 정도의 상가가 들어서 있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용산에서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수 있을까.”
 
 
  2120 對 8
 
  용산전자상가의 소프트웨어 업체 수에 대한 통계는 찾을 수 없었다. 규모가 큰 7개 상가의 상우회를 찾아가 종류별 판매점 수를 계산해 봤다. 상우회로부터 받은 자료를 모아 직접 통계를 내본 결과, 조립PC, 브랜드PC, 노트북 등을 판매하는 하드웨어 가게 수는 2120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도·소매로 하는 곳은 총 8개에 불과했다. 소프트웨어 판매점은 대략 상가 하나당 한 군데인 셈이다. 하드웨어 판매점의 0.4%도 채 되지 않는다. 물론 온라인 구매나 여타지역 소프트웨어 시장 등 변수가 있지만, 적어도 너무 적었다. 구체적인 이유를 알기 위해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
 
  전자상가단지 동부에 위치한 ‘선인상가’엔 좁은 통로 양 옆으로 가게들이 빽빽하다. 하드웨어를 조립하고 있는 한 상인에게 ‘한글’이나 ‘MS오피스’ 같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가게를 묻자 선인에는 ‘은성미디어’란 소형 판매점이 유일할 것이라고 했다. 수백 개나 되는 컴퓨터 가게들 속에서 소프트웨어 가게가 한 군데뿐이라니?
 
  선인상가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850여 가게 중 소프트웨어 도·소매 가게는 딱 두 곳뿐이다. 그나마 둘 중 한 곳은 제품을 진열해 두고, 파는 곳이 아닌 그냥 창고 형태였다. 관리사무소의 이승재 과장은 “상가 내 업자 대부분이 컴퓨터 하드웨어의 도·소매를 겸한 유통업자”라며 “소프트웨어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나진상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나진컴퓨터상우회 이억영 사무장은 “원래부터 용산에 소프트웨어 가게가 많지는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정품 소프트웨어를 찾는 분이 많았다면 당연히 판매상도 많았겠죠. 조립PC를 사러 온 손님들이 ‘다른 집은 다 공짜로 깔아주는데 왜 여기는 안 깔아줘요?’ 하니까 상인들도 어쩔 수 없이 불법 복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잦다 보니 6년 전쯤엔 불법 단속이 한창 심했습니다. 한 번 걸렸다 하면 벌금이 2000만원이나 됐어요. 그래서 손님에게 ‘불법으로 깔아 주는 대신 모든 책임은 소비자에게 있다’는 각서를 요구하는 일도 벌어졌었죠.”
 
  지금은 잘 모르는 손님이 불법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달라고 하면 거절하는 것이 원칙이다. 손님들도 예전만큼 불법을 요구하지 않는다. 정품을 산다는 뜻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불법 다운받는 것이 훨씬 간편하기 때문이다.
 
 
  한때 정품 소프트웨어 줄서서 사던 시절도
 
전자랜드에 마지막 남은 소프트웨어 가게. 정 사장이 혼자 남아 가게를 지키고 있다.
  용산 ‘전자랜드’에는 마지막 남은 소프트웨어 가게 하나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 곧 문을 닫는다. 오후 3시, 전자랜드는 한창 붐벼야 할 시간임에도 한산했다. 걸어가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조용했다. 수많은 조립PC 가게들 사이로 소프트웨어 매장 하나가 보였다. 75m²(23평)짜리 가게에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업주인 정철중(45)씨가 전자랜드에 처음 온 것은 24살 때였다. 그로부터 21년간 소프트웨어 시장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1990년대 초, ‘세운상가’의 컴퓨터 회사 직원이었던 그는 용산에 새로 낸 소프트웨어 전문점에 파견됐다. 기업 회계용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데 자신 있던 그는 손님들에게 회계관련 프로그램을 소개, 상담해주는 일을 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만 해도 소프트웨어를 산다는 개념 자체가 없을 때죠. ‘한글과컴퓨터’ 창업자인 이찬진씨가 종로 세운상가에 와서 처음으로 소프트웨어를 팔려고 했었답니다. 아무도 안 사려 했는데 ‘러브리컴퓨터’란 컴퓨터 업체 사장님이 독점판매 계약을 맺어 줬어요. 앞으로 소프트웨어 산업 전망이 좋을 것이라 내다봤던 거죠.”
 
  그 후 용산으로 옮겨온 ‘러브리컴퓨터’는 승승장구했다.
 
  “가게 앞으로 손님들이 줄을 서서 선착순으로 제품을 사 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용산에 서서히 소프트웨어 가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전자랜드 3층에만 5개가 넘는 소프트웨어 판매점이 있었어요. 우리 가게도 그중 하나였죠. 우리는 총판권 20개를 따낸 적도 있었고, 소프트웨어 개발팀도 따로 두고 있었죠.”
 
  소프트웨어는 제조업자로부터 총판매업자, 그리고 도·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에게 유통된다. 총판매상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부터 독점판매 권리를 받아 전국적 유통을 책임진다.
 
  “하지만 판매망이 발전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적재산권 개념이 없어서 소프트웨어를 암암리에 무료로 깔아 주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포토샵은 하나에 100만원이 넘는 제품인데도 공짜로 깔아 주다 보니 소프트웨어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거예요. 나중에는 사고 싶어도 어디서 파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됐죠.”
 
  정철중씨는 불법복제 때문에 겪은 그간의 고충을 털어놨다. 어떤 이는 제품을 사면서 “정품을 사는 것은 대단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값을 깎아 달라고 졸랐다. 때로는 100만원이 넘는 제품을 5만원에 복제해 달라고 찾아오기까지 했다고 한다.
 
  “한번은 고객이 제품을 교환해 달라는 택배를 보냈어요. 열어 봤더니 불법 복사 CD가 들어 있었죠. 제가 가게를 비운 사이 동업자가 몰래 복사본을 팔아 왔던 거예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3도 3시간 만에 잠금장치 풀어
 
  1990년대 중반 한글과컴퓨터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고육지책으로 여러 가지 복제방지(copy protect·저작물의 불법복제를 방지하거나 유통망을 관리하기 위한 여러 기술적 수단) 대책을 세웠다. 정씨의 설명이다.
 
  “불법복제를 하지 못하도록 하드웨어에 잠금장치를 꽂게 했습니다. 디스크를 삽입하고 마스터키를 넣어야만 프로그램이 실행되게 하기도 했어요.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정품인증제’였습니다.”
 
  ‘정품인증제’ 도입 후 소비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어떤 손님은 ‘집에 컴퓨터 3대가 있는데, 그럼 소프트웨어를 3개나 사야 한다는 말이냐’며 저를 나무라기도 했죠. 사실 좀 전에 오신 손님도 제가 한참 설명했는데 결국 안 사고 그냥 가시더군요.”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최형기 교수.
  개발자들이 여러 보안장치를 강구했지만 불법복제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최형기(崔亨起) 교수는 “아무리 제품에 복제방지 기술을 강하게 걸어 놓는다 해도 결국은 풀리게 돼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인기 있는 제품일수록 사람들이 보안장치를 풀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합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소니’가 개발한 가정용 게임기죠. ‘소니’는 게임 하드웨어는 싸게 판매하고 소프트웨어를 비싸게 해서 수익을 얻습니다. 만약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하게 되면 하드웨어는 싸기 때문에 무한정 반복 사용이 가능합니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1, 2’가 불법복제로 타격을 크게 입는 바람에 새로 ‘플레이스테이션 3’를 출시하면서 잠금장치를 강하게 걸었어요. 이 역시 종로 세운상가에서 3시간 만에 풀렸습니다. 그렇게 한 번 풀리면 순식간에 그 키 값이 돌게 됩니다.”
 
  때로는 소프트웨어 개발기업이 정책적으로 보안을 느슨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도 써 보지 않은 제품은 사람들이 구매하기를 꺼립니다. ‘백도어(backdoor)’라고 하는데 마케팅 정책의 일환으로서, 인증받기 쉽게 만들어 두는 것이죠. 보안을 뚫을 수 있는 정도를 약하게 해서 어느 정도 실력만 있으면 잠금장치를 풀고 사용하게끔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오피니언 리더일 가능성이 높아서 제품 판매를 촉진하는 효과를 볼 수 있겠지요.”
 
  최 교수의 말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퇴사하면서 제품 비밀을 노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더불어 인터넷 인프라가 좋은 탓에 파일공유가 쉽게 이뤄지는 것도 불법복제율을 높이는 이유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20년 해오던 장사 접고 떠나는 사연
 
  2000년대 들어 소프트웨어 가게 운영이 점차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상호를 고쳐서 하드웨어 판매로 사업을 전환하기도 했다. 한글과컴퓨터 총판점이던 러브리컴퓨터는 4개 점포를 정리하고 한 곳만 남겼다. 정 사장이 직원으로 있던 회사도 경영난에 허덕였다. 대표는 국제사기를 당했다. 소프트웨어 매장 직원 6명은 모두 일을 그만뒀다. 2008년, 혼자 남은 정 사장이 가게를 인수했다. 제품판매가 시원치 않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가게를 넘겨받은 것은 밀린 월급을 청산하기 위해서였다.
 
  “3년 전, 가게를 인수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월급을 대신했습니다. 17년 가까이 해 오던 일이라 다른 일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으니까요. 내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하리라 마음먹고 시작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힘들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그는 또 온라인에서 형성되는 비정상적인 가격 때문에 오프라인 가게들이 더 힘든 것이라고도 했다.
 
  “온라인에서는 박리다매로 팔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한 개당 마진이 극히 적습니다. 그런데 오프라인에서도 그 가격과 동일하게 경쟁하다 보니 더 어려워진 것이죠. 1990년대만 해도 판매량은 적었지만 한 개당 마진율은 30%를 넘었는데 지금은 두 자리 수도 되지 않아요.”
 
  정 사장은 다음 달부터 튀김장사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4시간 동안 가게에는 단 한 명이 찾아와 가격을 물어보곤 사라졌다.
 
 
  개인 불법복제 단속은 포기
 
  상가단지 북쪽 원효상가. 이곳에 들어서자 휴무일인지 의심될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아예 문을 닫은 가게도 많이 보였다. 이곳에도 소프트웨어 가게가 5~6군데 있었지만, 지금은 한 군데뿐이다. 원효상가번영회를 맡은 용산전자단지상점가협동조합 김영산(金英山) 이사장은 “한때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살리려고 상인들을 중심으로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인 적도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이다.
 
  “1998년쯤 한글과컴퓨터가 경영난을 못 이겨 미국 MS사에 저작권을 넘길 뻔한 적이 있어요. 정품사용을 권장하고 회사를 살리려는 자구책으로 ‘한글815’판이 나왔습니다. ‘한글’을 다른 나라에 뺏길 수 없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글815’구매 붐을 일으켰죠. 지금은 아마 한글과컴퓨터조차 더 이상 개인들의 불법복제 문제를 신경 쓰지 않고 있을 거예요.”
 
  지난 7월 4일, 한글과컴퓨터는 제품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가지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글을 불법 다운받는 사람들에게도 무료 보안패치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개인용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하는 것은 이제 단속 대상도 아니라는 의미이다.
 
  한글과컴퓨터 주경자(朱慶子) 과장은 “사용자들이 불법 다운받을 때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면서 무료 보안패치는 “불법 사용자들도 최소한의 보호를 받고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밝혔다.
 
  한국 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는 2000년에 설립, 국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방지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단체다. 불법복제 단속 사법기관을 지원하기도 한다.
 
  SPC 오성택(吳成澤) 팀장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사실상 개인판매를 포기한 상태”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개인 대상으로는 ‘제발 정품을 사용해 주세요’ 식의 계몽활동만 하는 실정입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불법복제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상태라는 말이죠.”
 
  개인 불법복제는 그 행위를 일일이 단속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단속할 경우 대부분의 국민이 처벌대상이 된다. 현재 저작권법상, ‘상업적 목적’을 위해 소프트웨어를 불법 카피하는 것만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즉, 기업의 소프트웨어 복제행위는 수익과 직접 연결되며, 상업적 목적이 있다고 본다. 개인의 경우 불법 다운하는 행위를 상업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헤비업로더(heavy uploader·영리 목적으로 저작물을 온라인상에 전송하는 사람)는 불특정 다수에게 저작물을 뿌리는 행위를 하므로 단속 대상에 포함된다.
 
 
  “1억원대 산업용 제품도 불법복제”
 
  용산전자단지상점가협동조합 김 이사장은 “요즘은 용산 조립PC 판매상을 감시하던 단속반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면서 “그만큼 이곳에는 불법복제가 많이 줄었다. 용산보다 테헤란로 쪽에서 불법복제 단속을 더 많이 한다”고 했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는 공학용이나 연구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IT업체들이 모여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테헤란로 소프트웨어 회사에 있는 지인이 ‘요즘 단속을 심하게 돌아 고생이 많다’고 했다”는 것. 또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에서조차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무용 오피스 소프트웨어 가격은 보통 100만원 이내지만 산업용 소프트웨어의 경우 최대 수억원에 이른다.
 
  오토캐드(Auto CAD)는 오토데스크사에서 개발한 건축·기계·공공시설 등의 설계에 사용되는 프로그램이다. 이 또한 불법복제에서 예외는 아니다. SPC는 온라인모니터링 결과 2010년 웹상에서 오토캐드의 저작권 침해 금액을 330억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MS사의 OS(운영체제) ‘윈도(Windows)’ 제품의 온라인상 불법복제 피해액의 4배가량 되는 액수다. 오토데스크코리아 장준식 차장은 “500만원대부터 1억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까지도 불법복제가 수시로 일어난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가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 이사장의 말이다.
 
  “인도는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면 매달 할부로 대금을 갚아 나간다고 합니다. 부족분은 정부 보조금으로 충당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그 방식을 적용받으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거부했다더군요. 한국은 인도처럼 저개발국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죠.”
 
  용산 나진상가에서 컴퓨터를 판매하는 이모씨는 “소프트웨어 가격이 비싼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은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고 사야 한다는 거잖아요. 판매자가 끝까지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그런데 컴퓨터를 사고 나서 다시 몇십만 원 들여서 소프트웨어를 따로 구매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기획조정실 백수하 상무는 이 같은 의견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 같다”며 “한국에서도 대기업에서 대량으로 소프트웨어를 구매할 때, 매달 사용료를 내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또 가격조정에 대해선 “아무리 싸도 공짜보다는 비싸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일차적으로 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것이지요. MS사의 OS 윈도는 전 세계 컴퓨터 OS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공짜로 제공되는 타사 OS 제품도 많은데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말이죠. 아이러니한 것이, 포크레인은 몇억을 주고도 구매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포크레인을 구동하는 데 선행되는 설계 소프트웨어는 몇억이라고 하면 다들 터무니없어 합니다. 최근에 보잉 787기를 새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원가 중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60%를 넘는다고 해요. 자동차에서도 점차 소프트웨어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요. 그런데도 일반사람들의 인식은 소프트웨어만 유독 제값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캐나다 교수 “불법 SW 사용하면 학교 떠나라”
 
  ―외국에선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이 처음부터 잘 갖춰져 있었습니까.
 
  “미국에서도 소프트웨어 개발 초창기에는 불법복제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Gates)가 베이식(Basic·프로그래밍 언어의 일종) 기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출시했는데 벌써 시장에 복제품들이 돌았다고 합니다. 그때 빌 게이츠가 IT업계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해요. 소프트웨어는 무료라는 인식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죠. 그 후로부터 점차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정품을 사는 문화가 거의 정착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 상무는 미국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캐나다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사회학 박사과정에 갓 입학한 학생이었어요. 첫 오리엔테이션 때 교수님이 두 가지를 당부했다고 하더군요. 논문 표절을 금지한다는 것과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어기면 학교를 떠나야 할 거라고요. 또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지식산업의 구성원이 된 것이므로 표절, 복제는 당신들이 설 땅을 잃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그 친구가 ‘얼마 전에 구매한 것’이라며 유틸리티 소프트웨어 상품 박스를 제게 보여주는데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이 이렇게 어렵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은 8000억~9000억 달러나 되는 커다란 시장입니다. 현재 삼성전자가 주력하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그것의 9분의 1밖에 되지 않죠. 그런데도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100위 안에 우리나라 기업은 하나도 없습니다. 1990년대 초 한글과컴퓨터가 처음 개발에 성공했을 때는 이찬진처럼 되겠다는 벤처의 꿈을 갖고 많은 젊은이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관련 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겼죠. 하지만 어느 제품이 좋다고 하는 식의 소문이 나는 순간 그 회사는 망하는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좋은 제품이라고 하면 바로 복제품이 나왔으니까요. 제품 사용자는 많은데 고객은 없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회사는 생긴 지 얼마 안돼 문을 닫아 버렸죠. 현재 산업의 성장정체 상태를 벗어나려면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실마리인 불법복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아무도 시장에 진입하려 하지 않죠.”
 
 
  정부도 소프트웨어 예산은 걸핏하면 삭감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IDC(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40%에 이른다. 이는 OECD 가입국 평균보다 10~20%가량 높은 수치다. 서강시장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로 인한 피해액은 약 6800억원, 다음 해인 2010년에는 약 8600억원으로 한 해 사이 1800억원가량 늘었다.
 
  SPC 오성택 팀장은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고는 해도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관한 인식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세계적으로 불법복제 감시대상국에서 제외된 지도 3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은 소프트웨어 불법사용 행태에 관한 보고서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우리나라 기업 의사결정권자들의 63%가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는 조사대상국 중 8번째로 높은 순위다. 오 팀장의 말이다.
 
  “2011년 3월에 롯데마트에서 ‘통큰’ 브랜드가 나왔어요. 그때 ‘통큰 넷북’도 20만~30만원대의 저가로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판매직원이 한글이나 MS오피스를 불법으로 깔아 준 것이 적발됐죠. 대기업 유통채널에서도 불법복제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공공부문에서의 불법복제도 큰 문제다. 오 팀장의 말이다.
 
  “전자정부 시스템 구축을 예로 들어봅시다. 이때 대기업이 보통 대표로 발주를 받고 군소(群小) 소프트웨어 업체들에 하청을 주게 되지요. 이들이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도 응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처음 발주를 내면서 비용을 10% 절감한다고 하면 군소 업체 입장에서 우선적으로 삭감하는 비용이 소프트웨어 예산입니다.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매해서는 결코 절감된 비용 예산을 맞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자님은 정품 씁니까?”
 
  한국은 일부 행정기관과 군 시설에서도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나라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공공기관의 불법사용 실태를 조사하기는 하지만 공문을 보내 보고하라는 식의 허술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컴퓨터뿐 아니라 스마트폰 운영체제의 소프트웨어도 불법복제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용 앱(App·응용프로그램) 시장도 새로운 복제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행히 소비자들 사이에서 아직 ‘스마트폰 앱은 유료’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SPC 오성택 팀장은 “확실한 방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앱 관련 업계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용산전자상가의 통계만으로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의 위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취재 중 만난 업주들은 소프트웨어 거래 상당부분이 온라인과 강남 등 타 지역에서 행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용산은 국내 IT시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265:1의 비율은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의 암담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20년 가게를 접는다는 용산상가의 정철중 사장에게 처음 취재요청을 했을 때 그가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기자님은 소프트웨어 정품을 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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