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6년 개성에 회사 설립, 3세 경영시대 맞아
⊙ 매출의 80% 비타민에서 발생… 비타민 ‘쏠라C’ 독보적 위치
⊙ 비타민C 원재료, 국내에서 유일하게 영국에서 납품 받아
曺永祖
⊙ 1974년 생. 한양대 교육공학과 졸업. 美 워싱턴주립대학교 MBA 졸업.
⊙ 현대그룹 티존코리아 근무. 고려은단 영업, 총무과 근무. 現 고려은단 대표이사.
⊙ 매출의 80% 비타민에서 발생… 비타민 ‘쏠라C’ 독보적 위치
⊙ 비타민C 원재료, 국내에서 유일하게 영국에서 납품 받아
曺永祖
⊙ 1974년 생. 한양대 교육공학과 졸업. 美 워싱턴주립대학교 MBA 졸업.
⊙ 현대그룹 티존코리아 근무. 고려은단 영업, 총무과 근무. 現 고려은단 대표이사.
지난 7월 8일,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고려은단 본사에서 손을 내민 조영조(曺永祖) 대표이사를 보고 놀랐다. 연배가 지긋한 어르신이 아니라 30대(代) 후반의 청년이 악수를 청했기 때문이다. 창립 65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고려은단은 어느새 3세경영 시대를 맞고 있었다. 창립자 조규철 회장의 손자 조영조씨다. 그는 2008년부터 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은단 맛을 봤다는 조 대표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은단’에서 시작됐다. 조 대표는 “안타깝다”고 했다.
“은단에 들어가는 한약재는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품의 약재들을 모은 겁니다. 감초, 계피, 건강, 정향가루 등이 골고루 들어 있죠. 은단이 가진 본(本) 가치만큼 인정받지 못해 많이 아쉽습니다.”
―왜 인정받지 못하나요.
“싸니까요. 제품의 가치를 감안하면 훨씬 비싸게 팔아야 합니다. 아버님(조창현 고려은단 회장)께 몇 번 가격 인상을 건의했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며 퇴짜 맞았습니다. 은단의 고객은 나이 드신 분들로 개중에는 파고다 공원에서 하루하루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분이지요. 회장님은 ‘원가만을 따져서 제품을 팔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 은단에 대해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턱을 만들지 마라’고 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한 어르신들을 배려하라는 말씀이지요. 팔수록 적자만 쌓이기 전까지 은단의 가격을 올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것이 은단에 대해 추억을 가진 고객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들이야 반가워하겠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좋지 않겠군요.
“다른 곳에서 벌어야죠(웃음).”
고루한 이미지 때문에 社名 바꾸려다 포기
고려은단은 참 오래된 기업이다. 창업주 조규철씨가 1946년 개성에 구향제 회사를 차린 것이 시초였다. 하지만 얼마 뒤 6·25가 터지자 부산으로 이전했고, 1954년 서울에 둥지를 틀며 오늘날의 기틀을 갖췄다. 1959년부터 태국, 홍콩에 고려인삼단을 수출했고, 1970년에는 대통령 공로상을 받았다.
사명(社名)으로만 보자면 ‘은단’ 회사이지만,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은 다양하다. 구취제거제 ‘후레시오’ 외에도 ‘고려은단 비타민씨정’, ‘쏠라C’, ‘메가도스3000’ 등 비타민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은단은 요즈음에도 한 달 평균 21만 케이스가 팔린다. 하지만 여기서 얻는 수익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80%는 비타민에서 나온다. ‘은단’ 회사라기보다 ‘비타민’ 회사다.
조영조 사장과 그의 부친 조창현 회장은 여러 번 ‘사명 변경’을 검토했었다. ‘은단’이라는 어감이 주는 고루함과 비타민 회사로의 변신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였다. 세련된 영어 이름을 붙여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조영조 대표의 얘기다.
“주위에서 ‘너희 회사는 한복 입고 출근하는 줄 알았어’라고 하더군요. 은단이 회사의 주(主) 수익원이 아닌데 이런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 같아 여러 번 바꾸려고 했다가 포기했습니다. 고려은단이라는 이름이 60년 넘게 지켜 온 보이지 않는 가치가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보수적인 이미지만큼 일관적인 느낌이 소비자들에게 남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고려은단이 가진 전통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비타민들로 젊게 소비자들에게 다가설 방법을 연구 중입니다.”
―쉽지 않을 텐데요.
“가능합니다. ‘쏠라C’는 비타민 시장에서 1위지만 우리가 생산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약국 관계자들조차 ‘쏠라C가 고려은단에서 나왔어? 생각보다 되게 젊은 회사네’라고들 합니다. 이런 브랜드가 몇 개 나오다 보면 고려은단의 전통적 이미지에 젊음이 추가될 겁니다. 현재 제2, 제3의 ‘쏠라C’ 브랜드들이 커 나가고 있습니다.”
‘쏠라C’ 13년 만에 매출 100배 늘어
조영조 대표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사실 그에게 ‘쏠라C’라는 정제형 비타민C는 의미가 남다르다. 그가 1998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부터 그와 동고동락(同苦同樂)했기 때문이다. 당시 연매출 1000만원에 불과했던 이 제품은 요즘 매달 10억원어치가 팔린다. 조 대표가 1998년 처음 입사(入社)해서 맡은 일은 약국 영업이었다. 고려은단의 주요 제품인 은단은 고객층이 한정돼 있고, 의약품(지금은 더이상 생산하지 않는다)은 의사, 약사들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하는 일이다 보니 영업이 녹록지 않았다. 소비자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제품이 ‘쏠라C’였다고 한다. 이 시장은 ‘레모나’(경남제약)와 ‘바이탈C’(유한양행)가 양분(兩分)하고 있었다. 약사들에게 제품을 배치해 달라고 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알지도 못하는 제품을 어떻게 돈을 받고 파느냐.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안 팔려도 좋으니 소비자들에게 맛이라도 좀 보여 달라’고 통사정했다.
제품을 팔려다 보니 여러 하자가 눈에 띄었다.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회사 직원들이 자랑스럽게 광고할 수 있는 제품이 필요했다.
조 대표는 ‘쏠라C’에 첨가된 인공색소를 천연색소로 바꾸고, 사탕을 예쁜 모양으로 바꾸었다. 무설탕, 무방부제, 무색소로 바꾸는 작업이 매년 계속됐다. 개발, 생산, 마케팅 부서가 합심(合心)했다. 그렇게 ‘쏠라C’는 업그레이드를 거듭했다.
2002년의 어느 날, 한 약국에서 “한 번 드신 분들이 다시 이 제품을 찾는다”며 ‘쏠라C’를 납품해 달라고 했다. 이 제품은 전체 약국의 절반 정도에서만 취급하고 있었다.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법한데, 조 대표는 ‘다음 단계’가 떠올랐다고 했다.
“기분이 좋았죠. 하지만 빨리 후속 제품을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업체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 것이고,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기 위해 신제품을 출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 대표는 의류 브랜드인 ‘베네통’의 컬러마케팅에 주목했다. 네 가지 맛으로 제품을 다양화하고, 포장을 바꾸고, 20정짜리 소용량에서 통에 든 제품까지 군(群)을 다양하게 바꿨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조영조 대표의 ‘쏠라C’는 요즘도 계속 ‘버전 업’을 하고 있다.
매출 266억원, 순익 50억원(2009년)
3세 경영인인 조영조 대표가 회사를 맡은 후에 회사의 매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07년 185억원이었던 회사의 매출은 237억원(2008년), 266억원(2009년)으로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많은 회사가 경영난을 겪었지만 이 회사만큼은 예외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매출 대비 순익이 20% 이상 나오는 ‘알짜배기 회사’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266억원에 영업이익 52억원, 순익 50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사가 탄탄한 실적을 갖출 수 있었던 데는 ‘비타민 회사로의 탈바꿈’이 한몫을 했다. 조 대표가 회사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회사 매출의 50~60%는 은단, 나머지는 의약품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차세대 먹을거리가 ‘비타민 사업’에 있다고 생각한 오너 층의 결단으로, 고려은단은 오늘날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국내 비타민 시장은 여러 업체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연간 5500억원으로 추산되는 비타민 시장은 2000년 이후 매년 5%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고려은단 외에도 일동제약, 유한양행, 경남제약, 종근당, 삼남제약, 국제약품공업 등 여러 회사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종합비타민제와 비타민C 시장으로 나뉘는데, 고려은단은 이 중에서 한 알에 100mg(1g) 이상의 비타민C를 함유한 ‘고농도 비타민C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비타민C 원료, 중국산 쓰는 타사와 달리 영국서 사 와
고려은단은 비타민C의 원료를 영국의 DSM사(社)에서 들여온다. 영국 수입품으로는 국내에서 독점적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비타민은 비타민 원료에 전분과 같은 서너 가지의 첨가물을 혼합해서 만들어진다. 알약과 같은 형태로 정제하는 것을 ‘타정(打錠)한다’고 한다.
현재 전(全)세계 비타민C 원료 시장의 80%는 중국 회사가 점유하고 있다.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제조시설을 운영하는 곳은 영국 DSM사가 유일하다. DSM의 비타민C 원료는 중국산보다 70~80%가 비싸다. 원가가 올라가면 당연히 제품의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고려은단은 다른 업체들이 모두 중국산을 사용하는데도, 영국에서 원재료를 공급받는다. 무슨 생각이기에 이럴까.
조 대표의 얘기다.
“비타민C 원산지 문제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처음이라 조심스럽습니다. 고려은단은 예전부터 좋은 원료를 사용해야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보답을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모토 중 하나가 ‘많은 소득이 불의(不義)를 겸하는 것보다 적은 소득이 의(義)를 겸하는 것이 낫다’는 성경의 구절이었습니다. 처음에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좋은 제품만이 결국에는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중국산이 전 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한다는데, 그럼 중국산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인가요.
“중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산 원료로도 국내 식약청에서 만들어 놓은 기준에는 모두 합격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저희는 식약청보다 높은 수준의 테스트를 하는데, 중국산 원료로는 저희 기대만큼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영국의 DSM사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비타민을 만들었고, 프리미엄 시장에서 가장 인정받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희가 높은 가격을 감안하고서도 이 원료를 사용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중국산과 영국산 원료는 ㎏에 얼마 정도 차이가 납니까.
“네 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타정 기술은 국내 최고
고려은단이 영국의 회사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게 된 데에는 운명적인 이유가 있었다. 조 대표의 얘기에 따르면, 그동안 고려은단은 일본의 ‘다케다’라는 회사에서 원재료를 구입해서 사용했다. 이 회사가 독일의 바스프사로 인수되면서, 자연스럽게 거래선은 독일로 바뀌었다.
그러던 즈음에 중국 정부가 2000년 들어 중화학공업을 육성시키는 과정에서 비타민 시장을 전략적으로 육성했고, 전 세계 시장에 공급을 하게 됐다. 다른 나라의 비타민C 원재료 공장들은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줄도산했다. 2008년 봄이 되면서, 이제 전 세계 시장은 중국 대(對) 영국의 DSM사가 됐다.
비타민C 원재료 시장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고려은단이 피해를 입었다.
“독일의 바스프사에서 원료를 1년치 받았지만 DSM과는 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DSM과 바스프가 완전히 앙숙이었거든요. 그런데 독일의 회사가 문을 닫아서 낙동강 오리알이 됐습니다. DSM은 경남제약과 거래를 했는데, 가격 문제 때문에 틀어졌습니다. 저희와 DSM이 마치 과부와 홀아비가 만난 양 이해관계가 떨어진 것이죠.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DSM의 제품이 비싸지만 너희 것을 전적으로 쓸 테니, 한국시장에서 독점 계약을 하자’고요.”
이렇게 해서 지난 2009년 7월, 양사 간에 독점 계약이 체결됐다.
고려은단은 비타민C 원료를 가져와 전분 같은 서너 가지의 소량 첨가물을 혼합해서 타정한다. 이 기술은 고려은단이 최고란다.
조 대표의 얘기다.
“얼마 전에 중국 박람회에 가서 저희 제품을 꺼내 놓고 ‘비타민C 1000mg 정제입니다’라고 했더니, 중국애들이 ‘그러면 여기에는 비타민C가 600mg 들었겠네요’ 하더라고요. 사실 저희 것은 용량이 1030mg 정도 되거든요.”
―왜 그들이 비타민이 절반밖에 안 들었다고 생각한 거죠.
“자기네 기술로는 비타민C를 1030mg 넣어 1000mg 정제를 만들 수 없단 겁니다. 그들 기술로 하자면 1000mg 크기 정제를 만들려면 비타민C가 600mg, 다른 구형제 400mg이 들어가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기술의 차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그것이 타정 기술이라는 겁니까.
“네. 저희는 올해 들어 타정 시설 규모를 30% 늘렸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어서요. 이제는 수출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 시장은 국내보다 유통 마진이 작아서 우리가 적절한 광고와 프로모션을 병행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비타민 3000~4000mg 복용
고려은단은 사실 1인기업이다. 조 사장의 부친 조창현 회장이 주식을 100%(2만7790주) 소유하고 있다. 상장(上場)회사가 아닌지라, 이 회사가 알짜배기 회사라고 해도 일반인들은 이 회사에 투자를 할 수 없다. 이 회사는 앞으로도 자본금을 늘리거나, 상장할 의향이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조영조 사장의 의지는 단호했다.
“상장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현재로는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회사 중에서 증시에 상장된 곳은 절반이 되지 않습니다. 상장을 해서 이익을 나누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건강 증진에 앞장서고, 또 필요에 따라서는 높은 마진을 남기지 않더라도 싼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회사의 이익을 다른 방법으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비타민 회사의 대표이사인 그는 하루에 어느 정도의 비타민C를 복용할까.
조 대표는 “하루에 1000mg의 정제를 서너 알 먹는다”고 했다. 감기 기운이 있다 싶으면 두 알 정도를 더 먹는단다. 그는 “회사 직원들이 감기 때문에 결근한다고 하면 용서가 안 된다. 비타민을 잘 챙겨 먹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냐”라며 웃었다.
조영조 대표이사의 첫 직장은 현대전자다. 공대를 나온 뒤 입사했는데, IMF가 터지는 바람에 얼마 못 다니고 그만뒀다. 부친은 그를 곧장 이 회사로 데리고 왔고, 평사원으로 입사해 영업을 뛰었다. 제약 영업은 정말 어려웠다. 완전하게 갑(甲)과 을(乙)이 구분되는 시장이어서, 도저히 못하겠다 싶더란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10시 퇴근하기까지 열심히 했는데,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아 넉 달 만에 사직서를 냈다.
‘제 갈 길을 가겠다’며 돌아서는데 부친에게 혼쭐이 났다. 한 달 방황하다가 다시 영업 일선에 나섰고, 6개월 만에 영업실적 1등을 기록했다. 이후 그는 총무팀, 인사팀으로 옮겨다니며 두루 회사의 사정을 익혔다.
그는 신입사원 때의 경험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한다. 그때 그를 ‘3세’가 아닌 ‘신입사원’으로만 기억했던 거래선 약사들은 아직도 그의 소중한 정보원들이다. 조 대표는 요즘에도 일 년에 반드시 두 번 이상은 큰 규모의 거래선을 직접 돌아다닌다.
그들은 여전히 조 대표에게 사심(私心) 없이 고려은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약국 돌아가는 얘기며, 경쟁 회사 얘기를 해 준다. 좋은 정보를 너무 거저 듣는 것 같아서 돌아나올 때, 약국에서 영양제를 하나씩 사서 나온단다.
그는 젊은 경영인답게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종합비타민제 시장에 진출할 터
회사를 젊게 바꾸는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고려은단의 직원 중에서 2000년도 이후에 입사한 사람들은 회사 돈으로 해외연수 또는 해외여행을 세 번 이상씩 했다고 한다. 밖으로 나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귀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서다. 회사가 100% 전자결재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아, 현재 ‘오라클’과 전산 프로그램을 개발 중에 있다. 스마트폰에서 결재가 가능한 시스템도 고려하고 있다. 조 대표는 “너무 앞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를 활력있게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비타민C 시장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데 머물지 않고, 비타민B, 종합비타민제 시장에 진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업체들끼리 옥신각신하기보다는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활약하고 싶습니다. 할아버지가 일궈 놓은 회사를 맡는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치라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 변화에 맞게 회사를 변화시키는 것이 3세인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3년차 대표이사로서 본인에게 평점을 준다면요.
“다행히 매년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 부담이 조금 줄었고요. ‘아,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맞는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큰 경쟁자들과 겨뤄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젊으니까 아버님께서 우려스러워하며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그리고 네가 생각했을 때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기회가 안될 수도 있다. 항상 잘될 것만 생각하지 말고 잘못될 경우도 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제부터가 새로운 시작입니다. 10년 후에 오늘의 인터뷰가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정리=李彩炫 月刊朝鮮 인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