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泰完이 만난 사람] 四季로 찾아온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무대에서 연주를 즐겨야 해요.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음악가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즐기려 합니다』

  • : 김태완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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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장(장영주)
1980년 美 필라델피아 출생. 美 줄리아드音大 예비학교, 스펜 음악원 졸업. 도로시 딜레이와 강효 교수에게 사사.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홀에서 데이비드번드 오케스트라와 첫 공식협연(1985), 뉴욕 필과 협연, 美 「뉴스위크」誌 금세기 10大 천재로 선정, 베를린 필과 협연, 미국 카네기홀 데뷔 리사이틀, 미국 LA의 명소 야외음악당 「할리우드 볼」 명예의 전당에 등재, 「뉴스위크」誌 차세대 여성리더 20인 선정.
─덥죠.
 
  『한동안 유럽에서 보냈는데 추워서 부츠를 신고 다녔어요. 한국에 오니 좋아요. 진작 올걸』
 
  ─얼마나 머무르실 건가요.
 
  『연주 마치고 다음 날(5월17일) 바로 가요』
 
  ─봄놀이도 가고 느긋하게 좀 지내시죠.
 
  『(웃음) 그럴 시간 없어요』
 
  ─月刊朝鮮을 아세요.
 
  『알죠. 아주 두꺼운 책 말이죠? 예전에 읽은 적이 있어요. 그땐 세로쓰기로 돼있었죠』
 
  (月刊朝鮮 5월호를 가방에서 꺼내 그녀에게 보여 줬다.)
 
  『그래요, 바로 이 책이에요』
 
  한국의 큰 자랑,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미국 이름은 사라 장·27)와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비발디의 「四季(사계)」를 연주하기 위해 오르페우수 체임버를 이끌고 1년 만에 내한했다.
 
  지난 5월7일 서울 여의도와 압구정동을 오가며 四季 공연을 앞둔 그녀와 만나 바이올린과 음악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라 장, 아마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가장 어린 나이에 「검증된」 연주자라고 해야겠다. 비슷한 또래로 길 샤함(1971~), 고토 미도리(1971~), 막심 벤게로프(1974~) 등이 있다. 그러나 1980년生인 그녀보다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스물일곱이 되면서 늘 그녀를 따라다녔던 「신동」, 「어린 거장」이란 수식어는 자취를 감췄다.
 
  『그런 수식어가 사라지니 좋아요. 너무 어릴 때 시작해서 「천재소녀」라는 이야길 많이 들었는데 틴에이저가 지났고, 요즘엔 거의 안 쓰죠. 그런 수식어가 싫었어요. 나이가 아니라 좋은 음악가로서 윤기 나는 연주를 들려 주고 싶을 뿐입니다』
 
月刊朝鮮 1994년 4월호 표지모델로 등장한 사라 장.
  ─연주를 할 때 「결단」이 필요한 때가 있나요.
 
  「결단」이란 표현이 다소 거슬렸는지 「무슨 뜻이냐」고 물은 뒤 이렇게 답했다.
 
  『자기 개성이 있어야죠. 물론 작곡가의 의도가 가장 중요해요. 거기에 개성을 집어넣습니다. 베토벤과 브람스는 정말 곧이곧대로 원칙에서 벗어나선 안 되지만 비발디는 테크닉이나 개성을 발휘할 행간이 많은 곡입니다. 이번에 연주할 비발디는 그런 점에서 풍성하죠』
 
  ─연주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편한가요.
 
  『음~ 편한 것과는 다르지만 재미있고 반응이 큰 편이죠. 하지만 개성도 (곡의) 스타일에 따라야지 너무 넣으면 맛을 잃게 돼요』
 
  ─하지만 관객은 연주자의 개성을 더 좋아하죠.
 
  『(웃음)』
 
  사라 장은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서 「앞서가는 여성」 8인 중 한 명, 「차세대 여성 지도자」 2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그녀와 함께 선정된 차세대 리더 20인에는 카레이서 대니카 패트릭, 랩 가수인 퀸 라티파, 딕 체니 부통령의 딸로서 선거운동 전문가인 메리 체니 등이 포함됐다. 음악가가 아니라 음악계의 리더로 인정받은 것이다.
 
  『무척 기뻤어요. 제 동생이 「누나가 왜 뉴스위크에 들어가 있어?」 했어요(웃음). 여성 솔리스트가 많지 않아 제가 포함됐나 봐요. 게다가 무겁고 권위 있는 잡지에서 선정되니…』
 
  ─月刊朝鮮이 뉴스위크 같은 잡지입니다.
 
  『네, 고마워요』
 
  인터뷰 도중 어머니 李明峻(이명준·52)씨는 1994년 月刊朝鮮 4월호에 실린 딸의 기사를 복사해 기자에게 건네줬다.
 
 
  「이전의 四季는 모두 잊어라」
 
사라 장은 네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 열네 살 이전에 베를린 필, 빈 필하모닉, 뉴욕 필 등 세계 3大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번 내한공연 포스터를 보니 「이전의 四季는 모두 잊어라」는 표현이 나왔다. 사라 장만의 독특한 개성을 담겠다는 얘기다. 비발디의 「四季」는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곡이다. 비교적 많이 알려진 앨범이 괴짜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 실내악단 이 무지치, 파비오 비욘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 정경화의 「四季」도 있다. 지구상 어디든지 매일 4분 만에 한 번씩 연주되는 곡이라는 통계가 있다. 사라 장의 「四季」는 그녀가 지닌 「괴르넬리 델 제수」처럼 파워풀하고 어딘가 어둡고 깊이 있는 음색을 들려 준다.
 
  ─이전의 「四季」는 다 잊어야 하나요.
 
  『왜 잊어요?』
 
  ─잊으라고 하던데요. 공연 포스터에.
 
  『누가 그런 표현 넣었지?(웃음) 비발디의 캐릭터와 저의 개성 사이에 균형을 잡는 거죠』
 
  「四季」의 연주를 위해 함께 내한한 오르페우스 체임버는 33년의 역사를 지닌 실내악단이다. 지금까지 아이작 스턴(바이올린), 미샤 마이스키(첼로), 마르타 아르헤리치(피아노) 같은 연주자와 호흡을 맞춰 왔다. 이 실내악단은 지휘자가 없다.
 
  『지휘자가 없어 리허설 과정이 흥미로워요. 모든 멤버가 참여해 균형을 맞추고 앙상블을 느끼게 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리허설을 할 때마다 곡에 대한 감도가 달라져 연습보다 대화를 많이 하지요. 언젠가 세 시간 연습하면서 거의 전부를 토론으로 보낸 일이 있을 정도입니다. 「말 많은 리허설」이지만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책임감을 느껴요』
 
 
  14세 이전 세계 3大 오케스트라와 협연
 
  ─오케스트라와 많은 협연을 가졌는데, 지휘자와 마찰은 없나요.
 
  사라 장은 만 14세 이전에 베를린 필, 빈 필하모닉, 뉴욕 필 등 세계 3大 오케스트라와 모두 협연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다. 지난해 베를린 필과 6차례 협연했다.
 
  『마찰이야 있지요. 싸우지는 않는데…실은 거의 싸울 때가 많죠(웃음). 매주 다른 도시에서 또 다른 지휘자와 연주를 하니까요』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마다 음악을 해석하는 점이 다를 것 같아요.
 
  『그래요. 하지만 주빈 메타나 사이먼 래틀 같은, 제가 좋아하고 그동안 호흡을 맞춰 왔던 분들은 캐릭터가 맞고 관계가 형성돼 있다고 봐야겠지요. 물론 새로운 지휘자와 만나기도 하지만 이때는 새로운 관계가 필요하죠』
 
 
  무대 취향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괴르넬리 델 제수」를 들고 있는 사라 장.
  ─자신의 개성과 지휘자의 요구를 절충하나요, 관철시키나요.
 
  『얽매이지 않지만 지휘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나이도 많으시고, 저보다 더 오래 연주한 분들이시잖아요』
 
  연주마다 들려 주는 사라 장만의 특별한 테크닉과 개성은 놀랄 만하다. 이는 연주자의 개성을 방해하지 않고 뒤를 탄탄히 받쳐 주는 오케스트라가 있어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스승인 줄리아드音大의 도로시 딜레이는 어린 시절 그녀에게 『연주할 때는 내가 가르친 것은 다 잊어 버리고 네 맘대로 연주하라』고 일러 줬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덧 한발 물러설 줄 아는 나이가 됐다.
 
  ─오르페우스 체임버는 지휘자가 없어 편하시겠네요.
 
  『…(웃음)』
 
  사라 장은 오디션을 딱 두 번밖에 보지 않았다. 거장 주빈 메타와 리카르도 무티에게 만 여덟 살 때 테스트를 받은 것이다. 남들처럼 콩쿠르에 도전한 일이 없다. 일찌감치 명성을 얻었으니 자신을 경쟁에 내몰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1990년 초 주빈 메타는 딜레이 여사에게 천재소녀의 연주를 들을 수 있도록 부탁하며 두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했다. 연주를 들은 뒤 입이 쩍 벌어진 주빈 메타는 연주 스케줄을 바꿔 이틀 후 열릴 뉴욕 필의 정기연주회에 그녀를 특별 협연자로 초청했다.
 
  『정말이지 그땐 그(오디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어요. 너무 어렸잖아요. 목요일엔가 주빈 메타에게 오디션을 받았어요. 파가니니, 차이코프스키, 바르톡의 곡을 연주했는데 조금씩 다 들으셨어요.
 
  그 다음 날, 그러니까 금요일에 전화를 주셨는데, 「토요일에 데뷔하라」는 거였어요. 그땐 오케스트라 리허설은 끝난 상태여서 피아노 리허설만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거예요. 리허설 없이 연주하기란 불가능한데…. 그땐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이었으니까』
 
  ─떨리지 않았나요.
 
  『저는 멀쩡한데 엄마는 너무 떨리셨나 봐요. 제 모습을 못 보시고 뒤에서 모니터로 봤대요』
 
  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姜東錫(강동석)과 인터뷰를 한 일이 있다. 그는 자신이 만나 본 연주자 중에 뛰어난 기량을 지녔어도 무대공포 때문에 연주를 못 하는 이가 많다고 했다. 물론 그녀에게는 예외적인 이야기다.
 
  『저는 무대를 좋아해요』
 
  ─무대 취향인가요.
 
  『하도 다녀 봐서요. 집을 떠나면 제일 편한 게 무대 공간입니다. 무대 위치는 어느 도시든 똑같아요. 어릴 적부터 많이 봐서 익숙해진 것 같아요』
 
  ─유명 운동선수는 마인드컨트롤을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카운슬러와 상담을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 적 없나요.
 
  『음악은 굉장히 감성적인 여행이고, 무대 위에서 연주자와 관객, 지휘자가 하나가 되는 정서적 장르입니다. 음악은 느껴야 해요. 인위적으로 컨트롤해선 안 될 것 같아요』
 
 
  『오 마이 갓』
 
  ─얼마 전 한국의 신예 피아니스트 임동민이 쇼팽의 「4개의 스케르초」를 연주하다가 2악장을 건너뛰어서 화제가 됐어요. 연주자에게 흔히 있는 일 아닌가요.
 
  『어떻게 그런 일이…』
 
  ─건너뛴 적이 없나요.
 
  『오 마이 갓』
 
  ─긴 곡을 몇 시간 동안 연주하려면 단순히 머리로 해선 안 될 것 같아요. 연습만 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미친 듯 몰입해야 할 것 같아요.
 
  『연습은 연주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아주 낮아요. 연습보다는 무대에서 연주를 즐겨야 합니다. 음악가라는 프라이드, 저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음악가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즐기려고 해요. 몇 시간 계속 연습한다고 연주가 잘될까요? 어림없어요』
 
  ─하지만 음악에 앞서 우리에게 소소한 일상이 있잖아요. 전날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거나 누구와 말 다툼한 일 같은 누구나 겪는 일상이 연주를 방해하진 않나요.
 
  『외할아버지(서울大 명예교수 李光魯)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연주여행을 다니며 호텔 레스토랑이나 콘서트홀에만 얽매여선 안 된다. 그 도시의 건축도 보고 거리도 거닐어야 좋은 연주가가 된다」고요. 온몸으로 느끼고 즐겨야 합니다. 「연습만 하고 무대에 나서지 말라」는 말씀이셨지요. 관객이 그저 기계적으로 연주만 하는 음악가를 좋아하겠어요? 삶을 음악 속에서 확장시킨 연주라야 합니다』
 
  사라 장의 연주는 불가사의하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의명씨의 말처럼, 어린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 여인의 포근함과 평온함」이 느껴진다. 완벽한 테크닉에다 원숙한 맛이 나는 연주는 어떻게 가능할까. 산전수전 겪지 않은 그녀가 삶의 희로애락을 선율에 모은다는 것은 아무래도 난해한 일이다. 모를 일이다. 주빈 메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부에 선천적으로 타고 났을까? 주빈 메타의 말이다.
 
  <완벽한 테크닉, 뛰어난 곡 해석 능력은 그녀를 천재의 반열에 들게 했다. 그러나 나는 천재라는 말만으로 그녀를 표현하는 데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녀는 남다른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바로 열정이다. 이것은 학습이나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이 열정을 자기 내부에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 그녀 자신이 아직 나이가 어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해도 그녀에게서 터져 나오는 그 열정은 나를 감동시키는 요인이다>
 
 
  내부에 숨은 천재성
 
   ─연주의 깊이는 기교와 다를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연주의 깊이를 얻을 수 있나요. 서울大 작곡가 林憲政(임헌정) 교수(부천 필 지휘자)는 「역사 의식과 사회적 인식의 깊이가 연주의 폭을 넓게 한다」고 하시더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기교란 음악의 시작이 될 수 없어요. 기교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음악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작곡가에 관한 책도 많이 읽고, 많이 들어야 합니다』
 
  ─한국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신 적이 있나요.
 
  『물론이죠. 책을 많이 찾아 읽었고, 외할아버지께서 우리 역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죠』
 
  사라 장의 외할아버지 李光魯씨는 서울大 건축공학과 출신의 건축가이자 교수로 현재 한림원과 예술원 회원이다. 외할머니 최안분씨(작고)는 서울大 화학공학과 여자 1호 졸업생이라고 한다. 외가는 부모 못지않게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외할아버지는 아주 멋진 분이셔요. 건축을 하셨고 클래식을 좋아하셨어요. 외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여자 서울 공대 1호 졸업생이셨죠. 미국에서 태어난 제가 한국말을 읽고 쓸 수 있었던 것은 외할머니께서 손수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에요』
 
 
  잊을 수 없는 평양 공연
 
  사라 장은 2002년 9월 추석 때 북한 평양에서 남북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무장 군인이 곳곳에 있었고 공연장에는 정부 관료들만 가득했지만, 같은 피를 나눈 민족 앞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경험이고 충격이었다.
 
  『놀라웠어요. 북한에 가려고 고집을 피웠어요. 뉴욕 필과의 연주일정에 차질을 빚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무척 가보고 싶었어요. 외할머니 고향이 평안북도 신의주여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평양에 가겠다고 하니 미국 정부(그녀는 미국 국적이다)에서 「왜 가냐. 꼭 가야 하느냐. 어떻게 돼도 대사관이 없으니 도울 수 없다」고 말렸지만, 가서 보니 신기했어요.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을 뺏기고…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요?』
 
  잠시 주저하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얘기해 줬다.
 
  『평양 어느 호텔에 묵었어요. 리허설이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데 제 차례는 11시30분쯤이어서 다른 멤버(KBS 교향악단)는 오전 8시쯤 먼저 떠났습니다. 한 5분쯤 지났나요? 갑자기 전기가 나가고 물이 끊겨 버렸어요. 프런트에 전화하려고 수화기를 드는데, 전화선이 없어요. 그냥 장난감이었어요. 옆방에 계셨던 아빠를 간신히 불렀죠. 아빠가 프런트에 내려가 물 좀 틀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샤워는 일단 마쳐야 했으니까요. 그것도 좋은 추억이죠. 그런데 참 신기했어요』
 
  ─같은 민족이니까….
 
  『그럼요. 떨리고 흥분됐지만 피를 나눈 사람이란 정감이 느껴졌어요. 함께 연주하며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북한 언니들이 굉장히 아름답고 우아하다고 느꼈어요』
 
 
  두 번 리코딩한 「카르멘 환상곡」
 
「fire & ice」앨범 재킷.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협연했다.
  그녀는 이 공연에서 파블로 데 사라사태의 작품인 「카르멘 환상곡」을 연주했다. 「카르멘 환상곡」은 북한 관객들을 꽁꽁 얼게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녀는 환한 미소로 답례했다.
 
  이날 연주한 「카르멘 환상곡」은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곡이다. 「카르멘 환상곡」은 사라 장이 아홉 살부터 열한 살까지 연주하고, 「데뷔」 앨범(1992년 3월 출시)에 담아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곡이다. 세계 최연소 리코딩 기록까지 세웠다.
 
  2001년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협연, 「Fire & Ice(불과 얼음)」이라는 앨범에 카르멘을 담았다.
 
  아홉 살 무렵의 「카르멘 환상곡」은 어린이용 바이올린을 써서인지 어딘가 여리고 섬세하며 달착지근한 느낌이 들지만, 열아홉 살의 「카르멘」은 깊이가 있고 유려하며 번뜩이는 재치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맛의 차이란 워낙 촘촘한 것이어서 일반인은 알기 어렵다.
 
  ─「카르멘 환상곡」을 두 번 리코딩했는데, 차이가 있나요.
 
  『세월의 차이겠죠. 데뷔 앨범은 아홉 살 때 4분의 1 크기의 바이올린으로 피아노와 협연한 겁니다. 첫 앨범이니 무척 사랑스러워요. 두 번째는 오페라의 大家(대가)이신 도밍고와 함께 녹음했는데, 배운 것도 많았지만 행복했어요. 저도 원했고 도밍고도 「카르멘 환상곡」을 좋아해 앨범에 넣은 겁니다』
 
  ─도밍고와 함께하며 재미난 기억은 없나요.
 
  『많지요. 그는 지휘하면서 오케스트라와 잘 맞지 않고 세 번, 네 번 해도 계속 틀리는 경우에는 아예 노래를 불러요. 노래를 흥얼거리며 리듬을 맞추면 모두들 동의합니다』
 
  ─두 앨범 중 어느 것을 좋아하나요.
 
  『더 행복하게 연주했던 것은 「불과 얼음」 같아요. 물론 아무리 앨범을 많이 냈어도 첫 앨범만큼 특별한 것은 없지요』
 
  사라 장은 한 번도 연주경연대회에 도전한 일이 없다. 바이올린의 왕국, 한국에서 어린 神童(신동)들이 콩쿠르에 목을 매는 것과 비교하면 신기한 일에 가깝다. 아마 그녀가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고, 일찌감치 거장들에게 인정받아 굳이 「테스트」를 거칠 필요가 없었다. 콩쿠르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음악가에게 「무슨 콩쿠르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지는 않는다. 그저 음악은 음악으로 말할 뿐이다.
 
  『잘 모르겠어요. 한 번도 도전해 본 적이 없어요. 줄리아드音大에 다니면서 콩쿠르에 도전한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그때 저는 (도전을) 안 해도 돼서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神童, 콩쿠르, 경쟁
 
  ─제가 만났던 피아니스트 김선욱씨는 콩쿠르에 도전하는 이유를 「副賞(부상)으로 주어지는 연주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고 말하더군요.
 
  『물론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매니지먼트나 리코딩, 연주 스케줄이 마련되겠지요. 하지만 요즘은 콩쿠르에 우승한다고 해서 그런 기회가 돌아가진 않아요. 콩쿠르가 음악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콩쿠르라는 기회가 나쁘다고 볼 순 없는 것 아닌가요? 청소년기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유혹은 없었나요.
 
  『전혀요. 경쟁에 별로 동의 안 해요. 음악은 테니스나 축구처럼 점수가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영감으로 나누는 대화입니다. 어떤 연주가 너무 좋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고, 싫어하는 분도 있어요. 그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점수로 매길 수 있나요. 실력 있는 친구들이 경쟁에 나서는 것은 솔직히 이해가 안 되고 실망스러워요』
 
 
  미도리와 사라 장
 
데뷔 앨범인「debut」재킷. 사라사테, 파가니니, 엘가, 프로코피에프의 곡을 실었다. 4분의 1 크기의 바이올린으로 녹음했으며,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클래식 부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어린 시절, 사라 장과 일본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미도리는 경쟁자였다. 두 사람 모두 신동이란 꼬리표를 달았고, 공식 데뷔는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욕 필이었으며, 연주 곡목은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스승 역시 줄리아드音大의 도로시 딜레이 교수였다.
 
  그러나 미도리는 주위의 기대와 관심 때문인지 사춘기 시절, 심각한 슬럼프를 겪으면서 연주를 중단해야 했다.
 
  『옛날엔 비교를 많이 당했지만 지금은 없어졌어요. 둘 다 데뷔를 비슷하게 했고 스승도 같았으니까요. 두 달 전 미도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LA로 이사 갔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힘들었는데,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했어요』
 
  ─한국의 바이올린 신동들을 만나 본적이 있나요.
 
  『어쩌죠… 아직 없어요』
 
  ─기회가 닿는다면 그런 신동들을 가르쳐 볼 생각은.
 
  『못 가르칠 것 같아요』
 
  ─왜요.
 
  『아주 어렸을 때 딜레이 할머니가 저를 귀엽게 잘 봐주셨어요. 친구 같았고 좋은 충고를 주셨습니다. 저는 그 스승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다르게 가르치면 되잖아요.
 
  『글쎄, 가르침이란 게 특별할 것 같아요』
 
  ─지휘봉을 잡을 생각은 없나요.
 
  『(웃음) 요즘 다 지휘하죠. 저는 못 할 것 같아요. 주빈 메타나 쿠르트 마주어 같은 大家(대가)가 계신데… 시작도 안 할래요. (연주를 하다가 지휘자로 나선 이들 중) 좋은 지휘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지휘자가 더 많거든요』
 
 
  작곡가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사라 장은 하버드大와 예일大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진학하지 않았다. 예일大 콘서트홀에는 자신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질 정도다. 첼리스트 장한나의 경우 연주의 깊이를 위해 하버드大 철학과에 진학해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았다.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연주입니다. 스케줄이 3년 뒤까지 잡혀 있고, 2010년 완공예정인 독일 함부르크 엘베 필하모닉 콘서트홀의 오프닝 레퍼토리까지 짜여 있습니다. 줄리아드 시절에 졸업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연주여행을 다닐 때는 돌아와 교수님과 일대일로 마주 앉아 공부를 해야 했으니까요』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쇼팽 全曲(전곡) 연주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르샤바를 찾아 쇼팽이 생전에 살던 집을 직접 보는 것이었다. 쇼팽 초기 악보를 구하기 위해 폴란드 도서관 非공개 서가에서 너덜너덜해진 「파리판」 악보를 복사할 정도였다. 나중에 백건우는 이렇게 회상했다.
 
  『쇼팽이 살고 사랑하고 작곡한 바로 그곳에서 내가 쇼팽의 곡을 연주한다는 것(백건우는 쇼팽의 아파트 옆에 있는 바르샤바 필 하모닉홀에서 쇼팽의 곡을 녹음했다─ 편집자 注), 바로 옆집에서 그의 곡을 연주한다는, 묘한 흥분에 사로잡혔습니다. 「쇼팽이 이 거리를 걸었겠구나」, 「이 공기를 마셨겠구나」, 「여기서 사랑을 고백했겠구나」 그런 것을 느꼈어요』
 
  사라 장은 어떻게 연주를 할까. 소녀에서 숙녀로 거듭난 이 천재는 곡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까. 특별한 노력 없이 악보를 보는 순간 작품 해석이 저절로 될까. 누구에게 조언을 듣긴 하는 걸까.
 
  『그럼요. 작곡가의 원본 악보를 항상 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굉장히 어려워요. 언젠가 어느 작곡가의 악보가 이탈리아밖에 없다고 해서 그곳까지 가서 구한 일이 있어요. 제가 가진 보물 중 하나가 브람스 악보인데, 아주 두꺼운 하드카드본이에요. 지금은 출판을 안 해요. 악보에 브람스가 쓴 글씨는 초록색인데, 요아힘은 빨간색으로 썼어요. 참 신기해요』
 
  브람스는 바덴바덴에서 당대의 名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의 연주를 듣고 바리올린 협주곡을 썼고, 독주 바이올린 파트 악보를 요아힘에게 보내 의견을 구했다.
 
 
  브람스와 요아힘의 차이
 
  ─브람스의 것과 요아힘이 수정한 내용이 많이 다른가요.
 
  『음도 많이 바꾸었지만, 많이 달라요』
 
  ─연주할 때 브람스 것을 택하나요, 아니면 요아힘의 수정본을 택하나요. 아니면 때에 따라 왔다갔다하나요.
 
  『왔다갔다하죠. 요아힘은 당대 바이올리니스트이니까 악기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한 편이죠』
 
  ─연주를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악보를 척 보면 압니까.
 
  『멘델스존의 집과 박물관에 가봤고 그의 피아노를 직접 만져 봤어요. 시벨리우스 生家를 보기 위해 핀란드까지 찾아갔습니다. 시벨리우스 집에는 수도꼭지가 없어요. 너무 예민해서 물 흐르는 소리조차 용납하지 않았대요. 그래서 딸에게 매일 아침마다 우물을 긷게 했대요. 그렇게 작곡한 시벨리우스의 완벽성은 제가 핀란드에 가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었겠죠』
 
  사라 장은 1998년 「시벨리우스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묶어 앨범으로 발매했다. 시벨리우스는 그녀가 여덟 살 때 처음 연주한 뒤, 만 열네 살의 나이가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녹음했다. 베를린 필의 정기연주회 때 실황으로 녹음했으며, 이는 한국인 최초의 베를린 필 협연이었다.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베를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녹음했다.
 
  ─어떻게 연주의 길을 찾나요.
 
  『베토벤의 경우에는 모든 소절에 일일이 노트를 남겨 아무것도 안 건드려도 돼요. 아주 성실하게, 꾸미지 않고, 디테일하게 악보를 남겼어요. 너무 정확하게 원하는 것을 표현해 놔서 그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하지만 그 이전 바로크 시대의 악보에는 악상 기호나 지시가 거의 없어요. 연주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길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사라 장이 가장 애착을 갖는 앨범은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담은 앨범이다. 스승인 딜레이 여사가 타개한 뒤 혼자 연습해서 무대에 올린 곡이기 때문에 더욱 각별하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협연한 이 앨범은 발매된 지 2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미국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쇼스타코비치 작품은 스승이 돌아가신 뒤 독학으로 배운 곡입니다. 다른 곡보다 좋아했어요. 언젠가 쇼스타코비치의 콘서트 실황을 보고 神이 연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기가 막혀 그날은 바이올린을 케이스에서 꺼내지 않았습니다. 차이코프스키나 멘델스존, 시벨리우스는 제가 7~8세 무렵 연습한 곡들입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의 곡은 어릴 때 할 수 있는 곡이 아니었어요』
 
 
  쇼스타코비치
 
   러시아 출신의 쇼스타코비치(1906~ 1975)가 남긴 15곡의 교향곡과 15곡의 현악 4중주는 고뇌에 찼던 그의 내면세계를 그렸다고 할 만큼 절묘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사회주의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멸시받았고, 反체제적인 詩나 죽음을 주제로 한 詩만 골라 곡을 만들어 소련 당국의 탄압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 앨범에 가장 마음을 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가장 원했던 곡으로 채웠어요.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과 협연한 것은 음악적으로 굉장히 행복했어요』
 
  ─바이올린을 풀 사이즈로 쓴 것은 언제부턴가요.
 
  『열네 살 때요』
 
  1994년 볼프강 자발리쉬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 처음으로 풀 사이즈 성인용 바이올린을 썼다. 자발리쉬와 사라 장은 그해 파가니니와 생상스의 작품을 앨범으로 발표했다.
 
  『데뷔할 때는 쿼터 바이올린(4분의 1 크기)을 썼습니다. 저는 손이 작아서 늦게 바꿨어요. 흔히 연주자들은 소리를 크게 하기 위해 풀 사이즈 바이올린을 써요. 하지만 「무리할 것 없다. 되도록 작게 써라」는 주위의 충고를 따랐습니다』
 
  ─그때부터 「괴르넬리 델 제수」를 쓰셨군요. 괴르넬리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다른가요.
 
  『제겐 괴르넬리가 맞았어요. 파워풀하고 어둡고 깊이가 있어요. 반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예쁘고 섬세하죠. 제가 좋아하는 쇼스타코비치,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등은 무거운 풍의 곡입니다. 거기에 잘 어울리는 악기입니다』
 
  ─악기 성격하고 자신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까.
 
  『그래요. 파워풀하고 개성이 강한 성격과 비슷해요. 악기도 잘 대해야지 좋은 소리가 나옵니다. 따스한 지방에서 스위스같이 추운 곳에 가면 악기가 싫어해요. 연주를 하다 보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정말 잘 대해 줘야 해요』
 
  ─요즘도 매일 연습하나요.
 
  『(당연하다는 듯) 그럼요. 비행기를 타느라 너무 피곤해서 못 할 지경이어도 20분가량은 합니다』
 
 
  『까다롭지 않아요』
 
  ─四季 중에 좋아하는 계절은.
 
  『봄과 여름이지만 비발디 음악에는 겨울이 참 아름다워요. 겨울은 四季의 보석이에요』
 
  ─결혼은 하셔야죠.
 
  『언젠가는 해야죠… 아직 어린데』
 
  ─이상형은 물론 있겠네요.
 
  『(땅바닥을 쳐다보며) 다 좋아요』
 
  ─성격이 시원시원할 것 같아요.
 
  『까다롭지 않아요』
 
  ─꼭 연주해 보고 싶은 곡이 있나요.
 
  『저를 위해 쓰는 곡이 있어요. 그리스 출신 작곡가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가 제게 헌정한 음악을 피츠버그 심포니와 미국을 돌며 연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바흐를 리코딩하고 싶어요』
 
  ─바흐의 어떤 곡.
 
  『전부요. 얼마 전 작고하신 로스트로포비치(1927 ~2007)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였는데, EMI에서 바흐를 리코딩하자는 제안이 들어온 상태였어요. 영국에서 그분을 뵈었는데, 제가 「바흐를 할까요」 물었더니, 「나는 바흐의 첼로 리코딩을 70세 때했다」며 「기다려라」 하셨어요. 음악가로서 아주 편하고, 마음이 「평화로울」 때 도전해 볼 겁니다』
 
  ─언제쯤 평화로울까요.
 
  『모르겠어요(웃음)』 ●
 
  사진 : EMI 제공
 
  <진행·李相姬 月刊朝鮮 조사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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