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국 제1의 철강기업, 바오스틸(上海寶鋼集團)
[月刊朝鮮ㆍPOSCO 공동기획] 21세기 鐵의 지배자는 누구인가?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기술혁신으로 포스코 맹추격

  • : 김용삼  dragon0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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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개방 시절 건설된 중국 최초의 臨海형 선진 제철소
● 자동차 강판 생산 위해 「아르셀로」, 「신일본제철」과 손잡아
● 제4高爐 정상 가동과 발맞춰 高기술·고급 제품으로 선회
바오스틸은 양쯔江과 황해를 낀 臨海지역에 건설된 중국 최초의 현대식 제철소다. 포스코를 철저히 따라 배웠던 그들은 이제 『2010년에 포스코를 따라잡겠다』고 벼르고 있다.
상하이(上海) 중심에서 26km 정도 떨어진 「바오스틸」(중국명 上海寶鋼集團)에서 맞은 첫 풍경은 도도하게 흐르는 양쯔江이었다.
 
  처음엔 그것을 바다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을 안내한 상하이 포스코 차이나 직원 朴慶哲(박경철)씨는 바다가 아니라 강이라고 했다. 폭이 18km나 되어 이쪽 江岸(강안)에서 건너편 江岸이 보이지 않는, 바다처럼 넓은 강이 있다는 사실을 중국에 와서야 실감했다.
 
  기자를 안내한 사람은 바오스틸 계열사인 보강집단상하이국제여행사 국제부장인 원밍(聞銘)씨였다. 그는 제일 먼저 양쯔강가의 원료 부두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부두에서 공장 안으로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가 연결되어 있었다. 해외 철광석 산지에서 생산된 철광석을 실은 배가 양쯔강 부두에 접안하면, 이 벨트를 타고 철광석과 석탄 등이 야적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원밍 부장은 『바오스틸의 원료 하역을 위한 부두는 수심이 12.5m로, 10만t급 선박 세 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류를 더욱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인접한 저장성(浙江省) 지역에 30만t 규모의 화물선이 접안할 수 있는 원료부두를 건설 중인데, 이 부두가 완공되면 물류비용을 더 절감할 수 있습니다』
 
  바오스틸은 덩샤오핑(鄧小平)이 본격적으로 국가 건설에 나선 1978년 착공됐다.
 
  원밍 부장은 『바오스틸은 기존의 중국 제철소들과는 달리 양쯔강과 황해를 이용해 철광석 원료를 해외에서 조달하고, 생산품을 국내 및 해외로 실어 내기 위해 바닷가에 건설한 중국 최초의 臨海(임해) 제철소』라고 했다.
 
  원료부두에서 공장 쪽으로 나오는 길에는 곳곳에 나무가 심겨 있었다. 바오스틸은 공장 곳곳을 녹화하여 이곳이 공원인지 전자회사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깨끗하고 쾌적한 분위기였다. 원밍 부장은 『우리 공장의 녹화 면적은 공장 전체 면적의 47%를 차지하여 일명 「그린(green) 제철소」라 불린다』고 했다.
 
 
  그린 제철소와 「녹색 고양이」論
 
양쯔江에 건설된 바오스틸의 원료부두에서 야적장까지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 바오스틸의 원료부두는 수심 12.5m로 10만t급 선박 세 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추진 과정에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白猫黑猫論)」는 實用論(실용론)이 대세였으나 최근 들어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실감하고는 「쥐를 잘 잡는 녹색 고양이가 필요하다」는 綠猫論(녹묘론)이 등장했다. 그들이 지속성장 가능한 발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원밍 부장은 취재진을 熱延(열연)공장으로 안내했다. 열연라인은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을 부어 만든 선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거푸집에 넣어 만든 두껍고 긴 쇠막대(이를 「슬래브」라고 한다. 보통 두께 50~300mm, 폭 350~ 2000mm, 길이 1~12m 정도)에다 800℃ 이상 열을 가한 다음 롤러로 압착해 얇은 철판을 제조하는 곳이다.
 
  안전모를 쓰고 공장에 들어가자 입구에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이 되자」는 구호가 적힌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의 철강 수요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로 도약하자는 바오스틸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의 「포스코(POSCO)」는 우리 경제의 성장세에 발맞춰 빠른 성장을 거듭해 왔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전자제품·조선·자동차·반도체·특수합금강 등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철강재는 포스코가 연구·개발과 생산을 담당했다. 포스코 직원들은 한쪽에선 생산량 증대, 다른 한쪽에선 품질 고급화에 매달려 글로벌 경쟁력 부문 세계 2위의 기업으로 도약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1970~1980년대 한국의 고속 성장보다 더 빠른 속도로 경제가 급성장하는 중에, 중국의 각종 산업이 요구하는 철강재를 공급하는 바오스틸, 鞍山(안산)강철, 江蘇沙鋼(장쑤사강), 馬鞍山(마안산)강철, 武漢(우한)강철 등이 덩달아 날개를 달았다.
 
  세계 철강기업을 粗鋼(조강) 생산량으로 순위를 매길 경우 세계 1위는 미탈-아르셀로, 2위는 신일본제철, 3위는 일본의 JFE, 4위가 포스코, 바오스틸은 2300만t으로 6위다.
 
  글로벌 경쟁력으로는 인도의 타타스틸이 1위, 포스코가 2위, 바오스틸이 3위에 올라 있다.
 
  金東河(김동하)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 철강산업의 대약진으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철강사 23개 중 5분의 1이 중국 철강사로 채워졌다』고 말했다.
 
 
  자동화 설비 도입, 인력 3분의 1로 줄여
 
바오스틸은「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회사가 되자」는 구호를 건물 입구마다 붙여 놓았다.
  열연공장은 非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는 포스코 포항공장의 라인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일직선으로 배치된 라인은 無人 자동화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원밍 부장은 『바오스틸은 처음엔 4만5000명의 직원이 근무했으나 자동화 설비를 대대적으로 도입해 인력을 감축한 결과 현재는 1만5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장에 들어서자 후끈한 바람이 불어왔다. 시뻘겋게 달궈진 슬래브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달리다 압연기에 걸리자 굉음이 터져 나왔다. 넓적하게 펴진 슬래브는 다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2차 압연에 들어가 더 얇게 펴졌다. 마지막으로 수요자가 원하는 두께로 3차 압연을 한 다음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이 뿜어져 나왔다.
 
  일련의 작업과정을 통과한 철판은 두루마리 휴지처럼 말려 출고 대기소로 옮겨졌다. 열연코일 한 개의 무개는 약 17t. 방금 제조가 끝난 열연코일에 다가가자 아직도 철판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원밍 부장은 『열연라인은 24시간 풀가동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연간 600만t의 열연코일을 생산하고 있는데, 원료비 상승으로 4월1일부터 t당 300위안 정도씩 가격을 올렸다』고 말했다.
 
  열연공장 앞에는 이 라인에서 첫 출고된 제1호 열연코일을 올려놓은 탑이 세워져 있었다. 이 코일이 생산될 무렵 중국 지도부는 이 철강공장이 몇 년 후 세계 3위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회사로 성장하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바오스틸의 열연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모습. 바오스틸은 자동화 설비를 대대적으로 도입해 근무 인원을 종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자동차용 강판에 도전
 
  중국 철강기업 중 기술과 품질 면에서 선두로 평가되는 바오스틸은 자동차용 강판은 포스코나 신일철과 비교하면 경쟁력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으로 평가됐다.
 
  그런데 바오스틸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아르셀로와 신일본제철을 합작 파트너로 끌어들여 「BNA(바오산 신일본제철 아르셀로) 자동차용 강판 회사」를 설립하고 高품질 자동차 강판 생산에 나섰다.
 
  원밍 부장은 『우리 회사는 중국 국내 자동차용 강판 수요의 52%를 공급하고 있어 중국 내에서 움직이는 차량 두 대 중 한 대는 바오스틸의 철판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중국 과학기술평가에서 우리 회사의 자동차용 강판이 1등상을 수상했으며, 이탈리아 피아트, 니산과 도요타, 포드와 GM에 자동차 강판을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오스틸은 철강재 중에서 가장 고난도 기술과 까다로운 품질,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와 경험이 요구되는 자동차 강판 분야의 선진기술과 노하우를 세계 최강의 철강회사들과 합작하는 방식으로 단숨에 확보해 버린 것이다.
 
  바오스틸이 위치한 상하이 지역은 중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떠오른 상하이GM, 상하이VW(폴크스바겐) 공장이 위치한 자동차산업 중심지다. 全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앞다퉈 중국에 자동차 공장을 건설해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고, 그에 소요되는 자동차용 강판 수요가 덩달아 폭증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자동차용 강판은 바오스틸을 제외하고는 생산하지 못해, 그 공백을 한국의 포스코를 비롯해 외국 제품의 수입에 의존함으로써 글로벌 철강사들이 톡톡이 재미를 보고 있었다.
 
  콧대 높은 아르셀로와 신일본제철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 때문에 선진 기술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처럼 중국은 「시장」과 「기술」을 맞바꾸는 전략을 통해 몇 계단씩을 단숨에 뛰어오르는 「기술 건너뜀 현상」으로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생산과 설비확장 병행해 덩치 키워
 
바오스틸의 열연라인에서 최초로 생산된 열연코일을 기념비 위에 전시해 놓은 모습. 바오스틸은 연간 600만t의 열연코일을 생산하고 있다.
  자동차용 강판 공장 취재를 요구했으나 원밍 부장은 『그곳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외부인들은 출입이 불가능하다』며 완곡히 거절했다.
 
  오늘날 바오스틸은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3위, 중국 내 매출 순위 6위, 중국 내 500대 기업 중 1위,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이 발표한 세계 500大 기업 중 296위(2006년)의 우량기업이 됐다.
 
  원밍 부장은 『바오스틸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것은 1998년 11월17일 상하이 야금국 산하의 상하이 제1강철, 상하이 제2강철, 상하이 푸둥강철, 상하이 제5강철과 메이산(梅山)강철을 합병해 上海寶綱集團公司(상하이보강집단공사)가 탄생하면서부터』라고 했다. 상하이보강집단은 국내외 상장을 위해 2000년 2월3일 바오스틸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조강생산 규모 세계 12위권이던 바오스틸은 1998년 합병 직후 1667만t의 조강 생산량으로 세계 7위로 도약했다. 원밍 부장의 설명이다.
 
  『바오스틸의 건설 과정은 3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기는 1978년부터 1985년까지로, 이 시기에 高爐(고로·용광로)와 소결, 코크스로 등 上공정(쇳물을 만드는 과정을 上공정, 철강제품을 가공하는 공정을 下공정이라 한다─편집자 注) 설비의 88%를 일본과 독일에서 들여왔습니다. 중국이 보유하고 있던 설비나 기술은 12%에 불과했죠.
 
  1985년 제1고로가 완공됐는데, 1기 건설에 소요된 투자액이 130억 위안이었습니다. 당시 바오스틸 말단 직원이었던 셰치화(謝企華·바오스틸 회장 역임) 회장의 월급이 68위안이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투자가 이루어진 셈이죠』
 
  2기 건설은 1986~1991년까지 진행됐는데, 이 기간 중 제2고로 신설과 함께 연주공장·냉연공장 등 下공정 분야가 건설되면서 명실상부한 일관 제철소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2호 고로는 위탁 제작한 설계도면에 따라 자체 기술로 건설했으며, 설비의 해외 의존도는 60%, 총 170억 위안이 투자됐다고 한다.
 
  이후 바오스틸은 2002년까지 623억4000만 위안을 투자해 생산과 설비 확장을 병행하면서 덩치를 키워 왔다. 3기 건설은 1~2단계의 건설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설비 국산화에 성공해 수입 설비 비중이 12%에 불과했다고 한다.
 
 
  4호 高爐의 비밀
 
1978년 건설공사가 시작된 바오스틸은 1998년 상하이 근처의 여러 철강社들을 통폐합하여 세계적인 제철소로 도약했다.
  원밍 부장은 『2003년 3월에 착공되어 2005년 3월21일부터 정상 가동된 4호 고로는 용량 4747m2의 특대형으로(우리나라 철강업계에서는 4350m2로 파악하고 있었음), 설계에서 건설에 이르는 全과정을 100% 자체 기술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4호 고로는 바오스틸이 보유한 고로 중 첨단기술과 최신예 설계, 설비가 접목되어 가장 높은 효율을 보이고 있어 해외 여러 제철소에서 관심을 갖고 있고, 용광로 관련 기술 수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밍 부장에게 제4호 고로 견학을 요구하자 『그곳은 1급 보안지역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출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 공장은 건설 과정에서 한국의 포스코를 많이 참조했다』면서, 『나무 한 그루 심을 때도 포스코를 벤치마킹해 포스코와 거의 비슷한 비율과 방식에 의해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중국에서 만난 철강 전문가들은 바오스틸이 성장 과정에서 포스코의 성공사례를 철저히 벤치마킹하여 자신들의 공장에 접목시킨 사실을 증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철강 전문가의 설명이다.
 
  『중국에서 「鐵(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셰치화 前 바오스틸 회장은 포스코를 자주 방문했어요. 포스코의 포항제철소·광양제철소를 방문할 때마다 통역·수행단 등 20여 명이 몰려와 함께 견학을 했는데, 사진을 못 찍게 통제해도 요리조리 숨어서 사진을 촬영해 갔습니다.
 
  나중에 보니 라인과 설비의 배치, 투입 인원, 공장 외곽과 바닥의 페인트 색깔, 포스코에 변호사가 몇 명이나 근무하고 있으며,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 세세한 것들까지 포스코를 연구해 따라 했더군요』
 
  金東河 박사(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는 『포스코는 오래 전부터 바오스틸과 원료·열연·냉연 등 각 분야에서 기술교류를 해오고 있다』면서 『바오스틸은 이런 교류를 통해 포스코를 벤치마킹해 어떤 분야를 중국화해 놓으면, 안산강철이나 우한강철 등 중국의 다른 철강회사들이 바오스틸을 벤치마킹하여 중국 철강산업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2010년에는 포스코 추월할 것』
 
바오스틸 취재를 안내한 원밍(聞銘)씨. 그는『바오스틸은 기술혁신과 성과급 제도로 2010년 포스코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 전문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2000년대 초반에 셰치화 당시 바오스틸 회장이 『철광석 한 조각 나지 않는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포스코가 탄생한 것은 기적』이라면서, 『바오스틸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포스코의 경험과 운영방법을 적극 배워라』 지시했다는 것. 이 지시 후 공장 곳곳에는 「포스코를 따라잡자」는 구호가 내걸렸다고 한다.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낸 바오스틸 자료에는 포스코와 관련해 이런 대목이 발견됐다.
 
  <바오스틸의 기술혁신 전략의 목표는 과학과 경제의 일체화로서 설계·생산·공예 중의 新기술 보유량을 늘려 세계시장을 이끌 황금기술을 확보하는 데 있다.
 
  구체적인 목표로는 두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현재 세계의 일류기술을 받아들이고 소화 개조해 기술보유량과 상품 질량을 한국 포스코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새로운 기술과 장비를 만들어 내어 한국의 포스코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발전해 국제 철강 사회에서 2~3개의 절대적 독점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바오스틸은 현재 모방과 개조의 단계인 첫 번째 단계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두 번째 단계로의 도약을 위해 노력 중이다>
 
  원밍 부장에게 바오스틸이 포스코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묻자 『우리는 아직 세계 최고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보다 앞서가는 회사들을 열심히 공부하는 차원에서 포스코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면서 『지금은 우리가 글로벌 경쟁력에서 포스코에 이어 세계 3위지만 2010년에는 포스코를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파격적인 성과급, 기술혁신
 
  그에게 포스코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자 기술혁신과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를 꼽았다. 상하이에서 기업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기업인들은 『바오스틸의 부장급들은 지난해 연말 회사 경영성과가 좋아 폴크스바겐 승용차 한 대를 살 정도의 성과급 보너스를 받았다』고 했다. 이러한 성과급 제도를 통해 고속성장을 이루었다는 지적이다.
 
  바오스틸 연수를 다녀온 한 포스코 직원(ID명 「파도여」)이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에 의하면 바오스틸은 유연한 인력정책, 차별화된 근무조건과 임금정책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즉, 프로젝트별로 보상 수준을 책정하고, 어떤 기술 프로젝트 개발을 언제까지 완료하면 그에 따른 파격적인 보상을 한다는 것이다. 관리직과 기술직의 교류가 빈번하고, 관리직 후보자가 육성되고 있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상하이에서 만난 무역협회 주재원, KOTRA 주재원, 한국 기업인들의 바오스틸에 대한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바오스틸은 기술인력에 대한 유연하고 차별화된 정책, 빠른 기술발전을 위한 적절한 보상, 업무 특성에 따른 임금지불 구조, 기술 엔지니어의 노하우를 사장하지 않는 기술축적 제도를 통해 포스코를 맹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기술우대 정책에 힘입어 바오스틸은 2005년의 경우 매일 평균 1.5개의 특허를 출원했고, 최근 3년간 특허출원 건수는 매년 20%씩 늘고 있다고 한다.
 
  원밍 부장은 『회사가 전력 투구하고 있는 분야가 기술혁신과 환경문제』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기술혁신을 위해 기술연구원을 설립했는데, 이곳의 연구원이 400명 정도입니다. 이들은 주로 新소재·新설계·新기술 공법은 물론, 원료 관련 기술까지 폭넓은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환경친화적인 철강산업이 되기 위해 환경보호에 쓰는 비용이 총투자액의 4.7%에 이르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중국의 다른 철강기업들이 벤치마킹해 중국 제철산업을 이끌고 있는 겁니다』
 
 
  바오스틸 경쟁력의 비밀
 
  원밍 부장은 『포스코에서 연간 150만t 규모의 파이넥스(FINEX) 상용화 설비를 건설 중인 것으로 아는데, 우리는 해외에서 관련 기술을 도입해 포스코의 파이넥스와 동일한 개념의 설비를 짓고 있다』고 했다.
 
  「파이넥스 공법」이란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일반 유연탄을 덩어리 형태로 가공하지 않고 분말 형태로 고로에 직접 투입해 쇳물을 제조하는 방식으로, 용광로 공법과 비교할 때 제조원가는 17% 정도 낮고 공해물질의 배출을 크게 줄인 친환경·低비용 공법이다.
 
  이 기술은 포스코가 2003년부터 연간 생산 60만t급의 시험용 설비를 지어 상용화 가능성을 테스트해 오다가 결과가 좋아 세계 최초로, 150만t 규모의 공장을 지어 상용화에 성공한 공법이다.
 
  그런데 바오스틸이 파이넥스와 비슷한 설비를 건설 중이다. 이 사실을 포스코에 확인한 결과 『바오스틸은 파이넥스가 아니라 「코렉스 공법」이 적용된 100만t 규모의 설비를 짓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용융환원제철 공법」이라 불리는 코렉스 공법은 철광석과 무연탄을 미세가루로 부숴 코렉스爐에서 태우는 방식이다. 그러나 세계 철광석 시장의 80%를 점하는 분광을 사용할 수 없어 원료 확보가 쉽지 않다고 한다.
 
  포스코와 바오스틸의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근거는 철강 전문조사 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가 2006년 2월 발표한 「주요 철강사의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자료다. WSD는 포스코가 재무구조·철강기술 혁신에서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고, 설비 확장성·내수 성장성 측면에서는 바오스틸이 앞서 있으며, 제조원가·수익성·원료조달 측면은 兩社(양사)가 비슷한 수준으로 분석했다.
 
바오스틸은 공장 전체 면적의 47%를 녹화했고, 환경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그린 제철소」라고 불린다.
 
  시행착오 거듭한 중국 철강산업
 
  중국의 철강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근대적인 철강 역사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5계획)이 시작된 1953년부터다. 이 무렵 중국 정부는 소련의 지원을 받아 안산강철, 번시(本溪)강철, 타이위안(太原)강철의 설비를 증설하고 우한강철과 포두강철을 새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57년 11월부터 이념차로 인해 소련의 원조를 거부하고 군중을 동원한 공업화 운동인 「대약진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외부와 연결된 문을 닫아걸고 「우리 식으로 살자」는 자력갱생 운동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한국철강신문이 발간한 「중국철강산업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저서에는 대약진 기간인 1958~1960년에 철강을 공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는, 이른바 「이강웨이강(以鋼爲鋼) 정책」을 펼쳐 철광석과 석탄 산지 곳곳에 60만기에 달하는 土爐(토로: 소규모 재래식 용광로)를 건설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뉴욕타임스」의 아시아지국장을 지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와 셰릴 우던이 지은 「중국이 미국된다」는 책은 대약진 운동 기간 중에 추진된 중국 철강산업의 우스꽝스런 현실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대약진 운동이라고 들어봤소, 중국이 영국보다 많은 양의 철을 생산해 내려고 했던 얘기를. 집집마다 작은 용광로를 설치해 놓고는 삽이나 솥 같은 것을 그 속에 집어넣어 철을 만들어야 했지. 그러더니 트럭으로 철을 수거해 갈 수 있게 길을 내야 한다는 거야. 비포장길에 트럭이 빠지지 않도록 돌을 깔아야 했는데, 별 수 있나? 이번에는 별갑묘(明나라 함대사령관 鄭和를 기리기 위해 만든 비석)를 박살내 그 위에 깔았더니 그럴듯해 보였어. 결국 트럭이 들어와 수거해 갈 만한 양의 철도 만들지 못하면서 별갑묘만 부순 셈이지』
 
  중국 철강산업을 결정적으로 골병들게 한 사건은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벌어졌다. 「자급자족형 공업체계와 기업 및 단위의 사회화」를 건설한다는 목표下에, 제국주의 침략에 결정적 타격을 입는 것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주요 중공업 및 군수공장을 내륙지역으로 분산 이전하는 三線(삼선)건설 정책이 추진된 것이다.
 
  그 결과 철광석이나 석탄 산지 곳곳에 중소 규모 철강공장이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하게 됐고, 그 파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합리성이나 경제성·생산성·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식으로 지어진 중국의 철강공장은 숱한 문제들을 노출시켰다. 무엇보다 내륙 곳곳의 철광석 산지에 들어선 제철소들은 自國産(자국산) 철광석의 품위가 50%에도 못 미쳐 다른 지역에서 원료를 실어 와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낙후된 제조기술, 노후된 설비 또한 골칫거리였다.
 
 
  全세계 철강생산의 3분의 1차지
 
  덩샤오핑이 시동을 건 개혁·개방으로 중국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해외 자본이 물밀듯 밀려들어 경쟁을 벌이면서 중국 경제는 2000년대 초반 연평균 20% 이상 고도성장을 했다. 이 와중에 철강소비 증가율이 연평균 20.5%로 급증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중국의 조강 생산량은 1996년 3200만t에 불과했으나 1996년에 1억t을 넘어 일본을 누르고 세계 최대 생산국에 올랐다. 2002년에는 1억8000만t, 2004년 2억7000만t, 2006년에는 마침내 4억t 고지를 넘어 4억1900만t을 기록했다.
 
  金主漢(김주한·산업연구원 주력기간산업실 팀장)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중국의 철강생산 증가율은 연평균 13.9%로, 세계 평균 증가율 4.1%를 3.5배나 초과했다고 한다. 全세계 철강생산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15.2%에서 2003년 23.3%, 2006년에는 35%로 全세계 수요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됐다. 지난 5년간 세계 조강 생산 증가량은 2억8166만t인데, 그중 2억2213만t이 중국에서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수요가 폭발하는 중에 중국 제철소들은 自國 수요에 필요한 철강재를 원활하게 공급해 주지 못해 2003년과 2004년엔 매년 2000만~3000만t의 철강재를 수입으로 대체해야 했다. 덕분에 중국과 가까운 한국의 철강사들은 중국 特需(특수)로 호황을 구가했다. 중국 경제의 빅뱅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은 한국의 철강회사들이었던 셈이다.
 

 
  경쟁적으로 설비 증설에 나서
 
  그러나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됐다. 「철강산업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중국의 각 省(성) 정부는 경쟁적으로 철강산업 육성에 나서 생산량을 늘려갔다. 金東震 포스코 차이나 사장은 『중국 통계당국은 올해 초 조강 생산량을 4억6000만t으로 발표했으나 두 달 후 4억9000만t이 될 것으로 수정 발표했다』고 말했다.
 
  金사장은 『중국 통계에 의하면 현재 정부의 허가를 받아 건설 중인 설비가 7000만t, 계획된 설비증설이 8000만t이나 된다』면서 『철강 전문가들은 이런 속도로 생산량이 늘면 2010~2011년에는 중국의 조강 생산량이 6억t을 넘어 全세계 생산량의 45~5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코의 연간 조강 생산량이 3000만t, 한국 전체는 5000만t이니 중국은 매년 포스코 정도의 철강회사 두세 개 규모 분량의 양적 팽창을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1995년에는 중국의 조강 생산 규모가 한국의 두 배 수준에 불과했으나, 2005년에는 7배로 그 격차가 커졌다.
 
  沈相亨(심상형) 포스코경영연구소 베이징 수석대표는 『철강산업은 엄청난 투자비와 장기간의 건설기간이 필요한 고도의 장치산업인데, 중국이 이처럼 단기간에 설비를 대규모로 증설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沈대표는 『철강 전문가들은 중국의 양적 팽창을 보면서 「세계 철강업계의 불가사리」라는 표현을 쓸 정도』라고 했다.
 
  이처럼 믿기 어려운 대규모 철강 투자 덕분에 중국은 세계 자원시장에서 원료인 철광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는 철강산업의 원료를 자급해 왔으나 自國産 품질이 낮고, 수요가 폭증해 대부분의 철광석은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 됐다.
 
  金主漢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은 2000년에 6997만t의 철광석을 수입했고, 2003년에는 1억4813만t을 수입하여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수입국에 올랐다. 2005년에는 2억7526만t, 작년엔 3억t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세계 철광석 수입량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3.8%에서 2003년 25.4%, 2006년에는 36.6%로 뛰어올랐다. 중국이 全세계 철광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을 싹쓸이하는 바람에 세계 철광석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한국, 철강 순수입국으로 전락
 
  세계 철광석 시장에서 중국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2005년까지는 일본 철강기업들이 호주·브라질의 철광석 메이저들과 협상해 가격을 결정하면 한국과 중국이 이를 따르는 형태였다. 그런데 2005년 일본이 철광 메이저들과의 협상에서 가격 통제에 실패해 철광석 가격이 전년보다 90%나 치솟았고, 2006년에는 19%나 뛰어오르자 2006년 말에는 중국이 철강 메이저들과 직접 협상에 나섰다.
 
  원밍 부장은 『바오스틸이 중국의 16개 철강업계를 대표하여 브라질의 CVRD, 호주의 BHP 빌리튼, 리오틴토 등 세계 3大 광산 메이저들과 담판을 벌인 결과 인상폭을 9.5%로 낮추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 국제 가격으로 통용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원밍 부장은 『바오스틸은 철광석 원료의 100%를 브라질과 호주, 南아프리카와 인도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앞으로 세계 철강산업에서 東北亞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바오스틸과 한국의 포스코, 일본의 신일본제철이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바오스틸은 1999년부터 원료 확보를 위해 호주와 브라질 광산에 투자하여 호주에서 1000만t, 브라질에서 600만t을 자체 생산해 도입하고 있어 철광석 가격 등락이 바오스틸의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무역협회 베이징대표처의 崔容敏(최용민) 부장(경제학 박사)은 『중국 지도부의 최대 관심사는 해외자원 확보』라면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최근 13차례 해외 순방을 했는데, 그중 한 나라만 제외하고 12개국은 자원 확보를 위한 頂上외교 목적이었다』고 했다.
 
  문제는 중국이 철강산업에 엄청난 투자를 한 결과 2004년부터 공급과잉이 심화되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공급이 넘쳐나니 철강사들은 수요를 해외에서 찾았고, 총력 수출에 나서면서 2006년에는 3000만t의 철강재를 순수출하는 「세계 최대의 철강 수출국」으로 순식간에 돌변했다.
 
  중국의 철강재 부족이라는 음덕을 가장 크게 본 나라가 한국이었듯이, 이번에는 중국의 공급과잉이 가깝고 만만한 한국 철강시장에 결정타를 날리고 있다. 沈相亨 대표는 『중국은 2006년 1~10월까지 전년 대비 55.5% 증가한 840만t의 철강재를 한국으로 수출한 반면 330만t을 수입해 한국에 550만t 이상 순수출을 기록했다』고 했다. 반면 일본으로는 56만t을 수출하고, 577만t을 수입해 500만t의 순수입 상태에 있다.
 
  이 수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 철강재는 품질에 대한 요구사항이 까다로운 일본 시장은 전혀 파고들지 못하는 반면, 만만한 한국 시장은 가격을 무기로 중국 제품이 휩쓸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철강산업의 「나비효과」
 
  金主漢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의 철강 수출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15%에서 2003년 23%, 2005년에는 25%로 계속 증가해 왔다. 중국산 低價(저가) 철강재가 한국시장에 물밀듯 밀려오면서 한국은 철강재 수출이 지난 5년간 연평균 3.1% 증가한 반면 수입은 11.6%로 크게 늘어 철강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역전되어 버렸다.
 
  중국의 철강재 수출 드라이브는 우리나라의 중소 철강업체와 단순 가공업체들에 결정타가 되고 있으며, 그 영향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중국의 대규모 철강 투자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한국 철강산업 구조조정이라는 예기치 못한 파장을 낳고 있는 것이다. 金東震 포스코 차이나 사장의 설명이다.
 
  『중국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돈과 기술이 필요했는데, 이것을 해외기업 유치로 해결했어요. 20여 년 개혁·개방 덕분에 이제 중국은 자본이 충분히 축적됐고, 어지간한 기술은 보유하고 있으니 이제는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기술, 知的(지적)재산권 등을 가진 기업에만 문호를 개방하고 있어요.
 
  그동안 외자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누렸던 각종 인센티브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들은 외국 기업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여 경쟁력이 생기면서 중국은 이제 경쟁이 없는 「블루 오션」에서, 피나는 경쟁을 벌여야 하는 「레드 오션」 시장이 되어 버린 겁니다』
 
  金主漢 박사는 「중국 철강산업의 구조 고도화와 우리의 대응전략」이라는 논문에서 한국은 중국 시장에서 냉간압연강판, 도금·도장강판, 합금강 강판, 스테인리스 강판 등이 비교 우위에 있고 봉, 철근, 핫코일, 스테인리스 봉 등은 비교 열위에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같은 논문에서 金박사는 2000년에는 우리가 중국과 비유우위 품목이 철강재 38개 품목 중 20개였으나 2005년에는 11개 품목으로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국내 조선소들도 중국산 철강 사용
 
  국내 조선기업들이 중국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바오스틸로부터 총 10만t의 조선용 후판을 공급받기로 했고, 장쑤사강집단과 전략적 합작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
 
  현대중공업은 중국의 진황도수진금속재료 유한공사와 지분투자 의향서를 맺어 장기 안정공급 시스템을 마련했으며, 바오스틸과 연간 18만t 규모의 조선용 후판 공급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7만t 규모였던 중국산 제품 사용량을 올해는 50만t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국내 조선 관계자들은 『중국의 조선용 후판은 값이 저렴하고, 국내산에 비해 품질에 큰 차이가 없어 중국산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품질에 큰 하자가 없는 한 중국산 사용량은 더 늘 것』이라고 했다.
 
  金主漢 박사는 『중국 철강산업의 양적 성장은 우리나라 철강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으며, 앞으로 質的(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경우 그나마 유지되어 온 韓·中 간의 보완적 분업구조 영역은 허물어지고 경쟁적인 관계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입되는 철강제품은 초기에는 低價의 봉·형강류가 중심이었으나 최근에는 열연강판, 중후판 등 중·고급제품으로 확대되고 있다』면서 『현재 우리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냉연 및 도금강판도 조만간 경쟁적인 관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 정부는 철강 공급과잉이 심각한 수준을 넘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국은 자체 조사 결과 2005년 말 현재 중국의 철강생산 능력이 수요를 약 1억t 이상 초과하는 과잉설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이를 적절한 선에서 통제하지 못하면 중국 경제가 거덜나는 것은 물론, 세계 전체에 어떤 회오리바람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중국 정부, 新철강정책 발표
 
  2005년 7월 중국의 국무원 상무회의는 철강산업의 11차 5개년계획(11·5 계획)인 「철강산업 발전정책」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발표된 정책의 요지는 중국의 철강생산은 세계 1위이나 생산구조와 기술수준은 선진국에 크게 뒤지고 있으니,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맹목적인 투자를 억제한다는 것으로 요약했다. 즉 과거의 양적성장 정책에서 이제는 품질·기술·환경을 고려한 질적성장 정책으로 전환을 선언한 셈이다.
 
  沈相亨 대표는 『중국 정부가 11·5 계획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첫째 2010년까지 고급강의 자급자족, 둘째 내륙에 위치한 제철소의 해안지역으로의 이동, 셋째 기술수준 레벨 업, 넷째 환경친화적인 철강산업 정착, 다섯째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확보』로 요약했다.
 
  沈대표는 중국 철강산업의 가장 큰 고민으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전국의 철광석·석탄 산지에 건설된 300여 개에 달하는 중소 규모의 낡은 제철소 문제를 꼽았다.
 
  중국 정부가 2005년 6월 말에 발표한 「철강 생산량 통제와 낙후한 철강사의 구조조정 강화에 관한 통지」에 의하면 생산설비의 상당수가 25년 이상 노후화된 것이 많으며, 판재류 압연라인의 50~70%가 노후설비라고 한다. 또 100t 이상의 전로 및 전기로 능력은 640만t에 불과하며, 조강 생산 능력 500만t 이상의 업체는 15개社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정부는 11·5 계획기간 중에 『용적 300m2 이하의 高爐, 20t 이하의 전기로 등을 폐쇄하고, 환경기준에 미달해 오염물질 배출이 심하고 에너지 소비가 큰 설비들을 폐쇄하여 과잉설비를 해소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한다』는 원칙을 공표했다.
 
  동시에 조건을 갖춘 대규모 기업집단 간의 M&A를 통해 2010년까지 총 1억t의 노후설비를 도태시키고 국제 경쟁력을 보유한 5000만t급 철강사 한 개와 3000만t급 철강사 2~3개가 출현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리하여 화둥(華東)지역은 바오스틸, 화베이(華北)지역은 안산강철, 서부 내륙지역은 우한강철, 수도권은 수도강철 등 대형 철강기업 4개社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런 방침이 밝혀진 후 중국 철강업계는 본격적인 M&A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는 소형 철강사들의 설비를 폐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를 沈相亨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철강업이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허베이성(河北省)의 경우 省 전체 공업생산 가운데 철강업 비중이 30%를 넘고, 稅收(세수) 부담률은 무려 80%나 되기 때문에 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중소 철강사를 폐쇄할 경우 省 정부 재정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폐쇄 기준인 300m2 이하의 高爐를 보유한 소형 철강사들은 500~600m2로 규모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정부 정책을 빠져나가고 있어요』
 
  기존 설비에 대한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신규 투자된 설비가 본격 생산을 개시할 경우 중국의 철강 과잉설비는 全세계에 재앙을 불러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 철강산업의 또 한 가지 약점은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t당 소요인력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金主漢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2004년 기준으로 중국의 시간당 임금은 한국의 11.2%에 불과한 반면, t당 소요인력은 4.3배나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 전반적인 인건비는 한국의 47% 수준으로 분석했다. 중국은 설비 효율 측면에서 한국에 크게 뒤져 인건비 우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M&A로 5000만t 철강사로 발돋움
 
  중국 철강산업 빅뱅의 선두에 서 있는 바오스틸은 2003년 6월 「중·장기 발전전략과 전략 목표」를 발표했다. 내용을 보면 공격적 경영을 강화해 2005년에 세계 500大 기업이 진입하고, 2010년에는 세계 3위 수준의 종합 경쟁력을 가진 철강회사로 도약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바오스틸의 전임 CEO인 셰치화 회장은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3억5000만t으로 全세계의 30%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 최대의 철강업체인 바오스틸은 아직 세계 6위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발전하려면 먼저 3000만t 생산체제를 갖추고, 이어 4000만t, 5000만t으로 계속 규모를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런 규모 확대의 방법론은 설비 증설과 전략적 M&A다. 원밍 부장은 바오스틸의 경우 마안산강철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兩社가 공동으로 제품개발과 마케팅, 구매를 하기로 했으며 충칭(重慶)강철 인수, 한단철강 인수, 신장(新疆)자치구의 바이(八一)강철 합병, 네이멍구(內蒙古)자치주의 바오터우(包頭)강철과도 합병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원밍 부장은 『우리 회사는 자체 설비 증설로 조강생산 3000만t을 달성하고, M&A를 통해 2000만t을 추가 확보하여 2010년까지 5000만t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계획들이 차질 없이 실행되면 조강생산에서 3000만t 규모인 한국의 포스코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밍 부장은 『우리의 브랜드 이미지는 기술』이라면서 『앞으로 기술집약적인 전략 품종으로 자동차용 강판, 가전용 강판, 조선용 후판, 스테인리스, 고급 건축용 강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의 맨해튼」으로 소문난 상하이 푸둥 지구에 들어선 고급 건물에는 대부분 바오스틸의 철강재가 사용됐고, 푸둥과 푸서를 잇는 대교도 우리 회사의 철강재로 건설된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집약적인 고급 제품으로 선회
 
올해 초 바오스틸 CEO에 취임한 쉬러장(徐樂江) 회장. 바오스틸의 기술 분야를 이끌어 온 쉬러장 회장은『기술혁신을 통해 수년 내 한국과 일본의 철강기술을 따라잡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의 철강산업은 아직도 국내 고급강 수요의 50% 정도밖에 국내 공급이 안 되어 한국·일본 등지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중저가 제품은 수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철강 전문가들은 바오스틸이 2005년 3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제4고로는 이 회사의 고급강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목적에서 건설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제4고로의 정상 가동과 비슷한 시기에 바오스틸은 중국 최초로 연산 140만t 규모의 5m 광폭후판(두께 5~150mm) 생산에 돌입했다. 이어 2005년 7월에는 바오스틸, 신일본제철, 아르셀로가 합자하여 170만t 생산규모의 1800mm 냉연강판 등 자동차용 강판 생산에 돌입했다. 바오스틸의 제4고로는 고급 제품 생산에 소요되는 특수 선철을 공급해 회사의 생산구조를 중저가품에서 최신 기술이 가미된 고급제품으로 전환하는 결정적인 무기인 셈이다.
 
  沈相亨 대표는 『지금까지는 우리가 중국에 高부가가치 제품을 수출하고, 저가품은 수입하는 방식의 국제 분업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만약 중국이 高부가가치 제품에서마저 기술과 품질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중국은 長技(장기)인 「낮은 생산비와 인건비」를 무기로 全세계 시장을 초토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월17일 바오스틸은 그동안 회사를 이끌었던 셰치화 회장을 퇴진시키고 1959년생의 쉬러장(徐樂江)을 신임 회장으로 임명했다.
 
  「테크노 CEO」라 불리는 쉬러장 회장은 장시(江西)야금학원에서 야금기계를 전공하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상하이 푸단(復旦) 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 1982년 바오스틸에 입사한 이래 23년간 기술 및 R&D 분야를 관장해 온 엔지니어로서 바오스틸 최초로 産學硏(산학연) 연구개발 시스템을 도입한 사람이다.
 
 
  테크노 CEO 등장
 
  쉬러장 회장의 경영철학은 「자주적 기술창조」로 요약된다. 중국 언론보도에 의하면 쉬러장 회장은 『기술혁신을 통해 수년 내 한국과 일본의 철강기술을 따라잡겠다』고 수차 말했다.
 
  그는 한 세미나에 참석하여 『바오스틸이 해외 선진업체의 기술을 베끼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세계 철강업계를 주도할 수 있는 기술을 창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언론보도에 의하면 그는 바오스틸의 과학기술위원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739개의 기술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104종의 신제품을 개발했다고 한다. 그가 쓴 「바오강의 생산 신기술」이란 저서는 중국 철강기술의 교본으로 쓰이고 있다.
 
  바오스틸의 경영 목표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다른 회사가 만들지 못하는 고급 강철재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바오스틸을 이끌어 온 셰치화가 규모 확대 중심의 경영을 추구했다면, 쉬러장은 기술혁신 중심으로 바꿀 것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다.
 
  세계 철강생산의 3분의 1과 소비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그 거대한 「불가사리」의 심장인 바오스틸이 지난 2월 하순, 미국 증시 상장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이 회사가 미국 증시에 정식 상장되면 「용이 날개를 단 형세」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신일본제철에 『해외 상장時 지분을 매입해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바오스틸뿐만이 아니다. 수도강철이 당산강철과 연합하여 톈진(天津)市 탕구신강(塘沽新港) 및 허베이성(河北省) 진황도 사이에 위치한 조비전(曹妃甸)이란 해안지역에 최신예 철강공장을 건설하는 「조비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70억 달러를 들여 총 1500만t의 최신 설비를 갖추는 것으로 계획되었는데 자동차용 강판, 파이프강, 냉연 강판, 아연도금 강판, 표면처리 강판 등 생산제품이 기술집약적인 高품질 제품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 포스코는 우리 경쟁상대가 아니다』
 
  한 시절 포스코로부터 열심히 따라 배웠던 바오스틸을 비롯한 중국 철강사들은 『이제 포스코는 우리의 경쟁상대가 아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강 생산량에서 조만간 포스코를 앞서게 될 것이고, 「시장」을 무기로 고급 기술을 축적해 高부가가치의 고급 철강제품 분야에서 포스코를 위협할 태세다.
 
  장자강(張家港) 포항불수강 유한공사의 鄭吉洙 사장은 『중국 철강업체가 추격해 오는 모습을 보면 등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라면서 『포스코도 국내 1위에 안주해 내수시장에 만족하다간 큰 낭패를 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포스코뿐만 아니라 全국민이 정신 바짝 차리면 중국이 기회의 땅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중국의 회오리에 휩쓸려 기업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 출장 마지막 날 상하이 앞바다에 건설된 양산항을 둘러보았다. 양산항이 건설된 양산군도는 육지에서 26km 떨어진 무인도다. 그 먼 곳까지 왕복 6차선의 다리를 놓아 육지와 연결한 다음 수심 15m의 항만을 건설하여 초대형 컨테이너선까지 수용하고 있었다. 수천 년 전에 만리장성을 쌓은 민족이니 뭐 하나 세워도 그 거대한 규모에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중국 철강산업의 질적·양적 팽창은 양산항 건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중국 철강산업의 대폭발은 세계 어느 나라도 5~6년 사이에 이처럼 생산 규모를 키운 사례가 없어 그 자체가 하나의 불가사의로 불릴 정도다.
 
  문제는 중국 철강산업 빅뱅이 이웃한 한국에 가장 극명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철강산업의 대약진은 우리에게 기회인 동시에 위기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중국의 대약진을 한국의 선진국 도약을 위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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