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편지

‘숙청의 계절’이 오나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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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튀르키예(터키)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튀르키예에 머무는 닷새 동안 귀에 못이 박이게 들은 단어가 있습니다. ‘FETO’, 즉 ‘펫훌라흐 귈렌 테러 조직’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펫훌라흐 귈렌(1941~2024년)은 튀르키예의 이슬람 사상가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에르도안 정부는 그를 2016년 불발 쿠데타의 배후 조종자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반면에 그를 ‘개방적이고 발전된 현대 이슬람 국가의 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었던 인물’이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습니다. 아마도 진실은 그 중간 어디쯤이 아닐까 싶습니다.
 
  튀르키예 외무부나 공보처, 국회, 방송국은 물론이고, 정치와는 무관할 것 같은 경제부, 재난관리처, 심지어 해외 원조 기관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FETO’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기(起)-승(承)-전(轉)-FETO였습니다. 앙카라나 이스탄불 시내 곳곳에서는 쿠데타 당시 희생자들을 기리는 ‘7·15 신화(神話)’라는 붉은색 조형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많은 한국인들은 2016년에 튀르키예에서 불발 쿠데타가 일어났었다고 하면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반응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하루 만에 진압된 해프닝 같은 사건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하루 사이에 쿠데타군과 시민들을 합쳐 270여 명이 죽었습니다. 제가 갔던 앙카라의 국회의사당에는 당시 쿠데타군이 공격 헬기로 로켓탄을 퍼부은 흔적이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불발 쿠데타 이후의 튀르키예
 
  쿠데타 후 에르도안 정권은 쿠데타의 배후 세력으로 에르도안의 정적(政敵)으로 당시 미국에 망명 중이던 귈렌을 지목하고, 그의 지지자들에게 ‘FETO’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귈렌은 자신은 쿠데타와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튀르키예에는 무시무시한 숙청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앙카라의 튀르키예 국회를 방문했을 때, 국회 사무총장에게 “불발 쿠데타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체포됐느냐” “많은 장교, 교사, 교수, 언론인, 공무원들이 해직됐다고 들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체포된 사람은 2만 9000여 명, 해직된 사람은 10만 명에 달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함께 갔던 연합뉴스 기자는 “쿠데타 이후 터키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국회 사무총장은 “정부와 의회가 제 기능을 하고 있고, 이렇게 기자 여러분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 아니겠느냐”고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통역은 제게 작은 목소리로 “그 질문을 통역하면서 진땀이 났다”고 하더군요. 그의 말에서 당시 튀르키예 사회의 공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군인, 판사, 교사, 공무원 등 16만 명 이상이 해고되거나 정직(停職)되었고, 7만 명 이상이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쿠데타 직후에는 감옥이 모자라서 잡범(雜犯)들을 많이 풀어 주는 바람에 치안이 나빠졌다는 얘기까지 돌았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숙청 작업과 함께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개헌을 단행, 이후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군부와 함께 에르도안의 이슬람주의에 비판적이었던 사법부는 ‘사법개혁’을 당했습니다. 비판 언론들은 폐간되거나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기업들의 수중으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야권은 에르도안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하면서 저항하고 있습니다. 2023년 대선 때에는 어렵게 야권 단일 후보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쇠한 야권은 ‘반(反) 에르도안’이라는 구호 말고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뒤집을 만한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튀르키예 검찰이 야당인 공화인민당의 유력 대권 후보인 에크렘 이마모을루 전 이스탄불 시장에게 징역 2352년을 구형했다”는 보도가 들어왔습니다. 이마모을루에게 적용된 죄명은 다양합니다. 99명으로 이뤄진 범죄 조직 구성, 뇌물, 범죄 수익 세탁, 학위 조작, 간첩 등 무려 142건의 혐의가 적용됐다고 하네요.
 
  지난 3월 이스탄불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 참석했던 젊은 남성은 “(에르도안에 맞설) 강한 적수가 등장할 때마다 그들은 투옥됐다”면서 “튀르키예는 현재 독재 정권이 있을 뿐 다른 무언가가 없다. 정치는 이름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2003년부터 총리-대통령으로 장기 집권하면서 ‘현대판 술탄’이라고 불려 온 에르도안은 2028년 임기가 끝나지만, 개헌 등을 통해 계속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지정학자 조지 프리드먼은 13년 전 《넥스트 디케이드(The Next Decade)》에서 튀르키예를 21세기에 가장 주목해야 할 국가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불발 쿠데타 이후 튀르키예의 사정을 보면, 그런 기회는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란 세력 척결’
 
  하긴 남의 나라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작년 12·3 계엄 이후 계속 ‘내란 세력 척결(剔抉)’을 외쳐 온 민주당 정권이 드디어 칼을 빼들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해 12·3 계엄 당시 병력 동원에 관련된 군 지휘부, 계엄령 선포를 위해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국무위원, 국정원 및 경찰 관계자 등은 진작에 내란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섰습니다만, 그걸로는 부족한가 봅니다.
 
  이재명 정부는 11월 11일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공직자들의 불법행위 가담 여부를 조사할 자체 태스크포스(TF)를 내년 2월까지 가동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라는 이 조직은 김민석 총리가 제안했는데, 이재명 대통령도 “당연히 해야 할 일” “특검에 의존할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찬성했다고 합니다. 인사철을 앞둔 관가(官街)에서는 투서와 밀고가 성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합참에 근무하던 장성들이 전원 물갈이되었고, 11월 13일에는 중장급 31명 가운데 20명이 교체됐습니다.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엄중한 시기에, 야당과의 갈등을 정치적으로 풀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계엄령으로 해결하려 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그에 영합했던 일부 인사들을 비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 때문에 국격(國格)이 땅에 떨어지고, 나라의 운명이 뒤틀렸습니다. 그들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몇몇 측근들이 계획하고, 선포에서 해제까지 6시간 남짓 걸린 계엄령 사태에 가담한 군인이나 공무원들이 그렇게 많을까요? 전방의 연대장, 사단장이나 보건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무원 가운데 계엄령 사태에 가담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혹시라도 그들이 평소 ‘보수 성향’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면, 그건 ‘숙청’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위공무원이나 군인들 가운데는 수십 년간 대한민국 시스템이 길러 낸 국가의 자원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대개의 경우 누가 정권을 잡든 국가의 공복(公僕)으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내란 세력’으로 몰아서 ‘척결’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내란 수괴’를 중용했던 일본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 정부는 유신 정권에 반대해서 홋카이도 하코다테로 달아나 ‘에조공화국’을 세우고 반년 넘게 저항했던 ‘내란 수괴’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를 주 러시아 공사, 외무·체신·문부·농상무대신 등으로 중용했습니다. 반면에 조선은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을 상하이까지 쫓아가 기어코 암살하고, 그 목을 효수하고, 시신을 절단해서 전국에 돌렸습니다. 일본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인재를 아꼈고, 조선은 몇 안 되는 인재조차 용납할 줄 몰랐습니다. 일본과 조선의 운명은 거기서 갈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구한말보다 훨씬 큰 격랑이 몰려오고 있는 오늘날, 그때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먹먹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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