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일제가 이 두 저수지를 합치면서 복룡지(伏龍池)라는 이름을 붙였다. ‘용이 엎드려 있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주변 논에 물을 대는 역할을 하던 복룡지가 오늘날의 백련지로 거듭난 것은 1955년의 일이다. 근처 덕애마을에 살던 정수동이라는 사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백련 열두 뿌리를 심은 것이다.
정수동씨는 왜 이곳에 백련을 심었는지를 밝힌 적이 있다. “꿈에 학(鶴) 열두 마리가 내려와 앉아 있는 모습을 본 후 좋은 징조라 여겨 백련을 심었다”는 것이다. 연꽃은 날로 불어나 백련지를 한반도를 대표하는 연꽃 축제장으로 만들었다. 무안군은 1997년부터 여기서 연꽃축제를 열고 있다.

고(故) 법정스님은 생전 회산 백련지를 다녀간 뒤 이런 말을 남겼다. “한여름 더위 속에 회산 백련지를 찾아 왕복 이천 리를 다녀왔다. 아! 그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았다. 어째서 이런 세계 제일의 연지가 알려지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마치 정든 사람을 만나고 온 듯한 두근거림과 감회를 느꼈다.”
이 글은 그의 수필집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 실려 있다. 무안 회산 백련지의 제 모습을 보고 싶으면 반드시 해뜨기 전인 새벽 5시쯤 가 볼 것을 권한다. 어두컴컴한 사위, 저수지 한복판에 흰 백련들이 얼굴을 들고 있다. 시간이 흘러 태양이 떠오를 때면 백련지는 한폭의 거대한 산수화처럼 변한다.
삼천 배를 올리고 난 후 바라본 불상이 미소 짓듯, 밤을 지샌 연꽃들이 햇빛을 보고 방긋 미소 짓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왜 연꽃이 불교에서 그렇게 성스러운 꽃으로 추앙받는지, 진흙탕 속에서 정갈한 잎과 꽃을 피워 내는, 역경을 이겨 낸 연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