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준이 88서울올림픽 때 헌정한 〈多多益善〉 폐쇄… TV 모니터 속 달 12개 전시
⊙ 쇼팽의 짝사랑 감성 담긴 피아노협주곡 1번… 白石의 시가 연상되는 까닭은?
⊙ 쇼팽의 짝사랑 감성 담긴 피아노협주곡 1번… 白石의 시가 연상되는 까닭은?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
그러나 세월이 흘러 TV 브라운관이 노안처럼 껌뻑껌뻑하더니 하나둘 꺼져갔다. 수리도 교체도 할 수 없게 되자 거탑 〈다다익선〉은 고철이 되었다.
과천관에 백남준 작품이 다시 전시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소장품 특별전 타이틀은 ‘균열Ⅱ: 세상을 향한 눈, 영원을 향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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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준이 TV 모니터 12대로 만든 작품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1965). |
그런데 화면 속 달의 갖가지 형태는 달을 촬영한 진짜 달이 아니다. 조작된 전자영상이다. 이상하게도 가짜 달에 속아도 불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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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모니터 속 달은 실제 달이 아니라 조작된 영상이다. |
‘유희하는 천재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천재는 백남준을 가리킨다. 1965년 작품이니 고작 서른세 살 때다.
始原의 서사시… 304개의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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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현의 작품 〈정지된 과정(Suspended Process)〉(2015). |
체리나무로 만든 테이블(105×130×104.7cm)의 서랍이 활짝 열려 있다. 한쪽 서랍은 두 개, 반대쪽 서랍은 하나다. 테이블의 앞쪽이 어딘지 모호하다.
서랍은 달그락거리는 추억의 공간이다. 한 시절 가장 소중했거나 아팠던, 그러나 지금은 쓸모없는 것들의 공간이다. 이적의 노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를 떠올려본다.
전시된 체리테이블 서랍엔 무엇이 있을까. 헝가리에서 온 낡은 편지와 엽서가 여러 장 있다. 어딘가에서 떠나왔을, 떠나왔던 곳에서 온 편지와 엽서들. 낡고 오래된 시간이 농밀하게 압축되어 있다.
서랍 속 지도가 눈에 띈다. 섬 지도인데… 어느 섬인지 한참 지도를 눈으로 뒤지다 보니 쿠바다. ‘멕시코는 테킬라, 쿠바는 시가?’ 쿠바의 야자수 그늘에 앉아 시가를 물고 싶다는 상상을 해본다.
나현의 작품 〈정지된 과정〉은 기자의 시선보다 거시적이다. 작품 설명을 들어보니, “지난 2008년부터 역사적 사건과 기록에 관한 자료를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란다. 서랍 속에는 “한민족의 시원(始原)으로 알려진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를 포함해 근대 한국사의 한민족 이동 경로들을 추적하여 쿠바, 경기도 안산 원곡동, 전남 신안 등지에서 수집한 자료들과 오브제 100여 점”을 차곡차곡 모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현에게 서랍은 시간의 퇴적물이 가득 쌓인 민족의 서사시인 셈이다.
그렇다면 헝가리에서 온 편지들은 혹시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의 한국인을 기억하기 위함일까. 또 1905년 쿠바의 사탕수수농장으로 떠난 조선인을 추억하기 위해 쿠바 지도를 서랍 속에 넣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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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명의 〈사소한 기념비〉(2015~2017). |
이렇게 포장된 물건들로 작은 기념비를 만들었다. 304개의 기념비.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의미한다. 보잘것없는 물건이 수십 겹 포장을 거치며 슬픔과 아픔, 애도와 기억을 응축시킨 작품으로 변신했다.
쇼팽과 白石, 白石과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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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과 백석. |
둘 사이에 1세기의 간극이 있지만 슬라브족의 낭만, 북방(평북 정주) 언어의 정겨움을 떠올리게 한다. 쇼팽을 틀어놓고 ‘거적장사 하나 산(山) 뒷옆 비탈을 오른다’(백석의 시 ‘쓸쓸한 길’ 중에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여우난골族’ 중에서) 같은 시 구절을 읽는다.
문득 드는 생각이 폴란드의 바르샤바 쇼팽국제공항에는 피아노 곡 ‘녹턴(Nocturne)’이 흐르고 있다는데 지금도 그럴까. ‘녹턴’만 되돌이표 해 틀지는 않겠지…. 쇼팽의 피아노협주곡도 틀어줄까.
쇼팽의 피아노협주곡은 1번과 2번뿐이다. 2번을 먼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1번 협주곡에 애착이 커서 순서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첫째 대신 둘째를 호적에 먼저 올린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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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쇼팽콩쿠르에서 조성진이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모습이다. |
20세 슬라브족 시골 청년이 어떻게 이처럼 독특한, 당시로선 독창적인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는지 놀랍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불균형만 해도 그렇다. 긴 오케스트라의 서주부 뒤에 피아노가 낚아채듯 등장한다. 현악 파트는 피아노의 보조 역할에 불과하다.
또한 로맨틱한 악상(제시부-발전부-재현부-코다(종결)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자유로운 서정성)과 따사로운 서정, 화려한 기교가 내뿜는 곡의 매력 덕에 모든 연주자가 탐을 내는지 모른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개니빠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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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키신과 조성진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앨범. |
알레그로는 ‘빠르게, 경쾌하게’라는 뜻. 마에스토소는 ‘장중하게’다. 쇼팽은 이 두 세계를 다 껴안고 싶었나 보다. 콘스탄치아와의 사랑은 실패했지만, 그녀를 생각하며 만든 협주곡 1번은 멋지게 완성했다.
2악장 로망스 라르게토(Romance Larghetto)는 로맨틱하다. 쇼팽 스스로 2악장을 “아름다운 봄의 달빛이 어려 있는 밤과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녹턴’과 같은 시정(詩情)이 느껴진다. 백석의 시 ‘정주성’의 한 구절(‘헝겊심지에 아주까리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이 떠오른다.
3악장 론도 비바체(Rondo Vivace)는 기교의 화려함으로 가득하다. 4분의 2 박자의 비트 있는 무곡(舞曲)이 미(美)의 절정으로 안내한다. 이 속도에 맞춰 백석의 시 ‘모닥불’ 1연을 읽어본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 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평안도 방언으로 ‘갓신창’은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는 개의 이빨, ‘닭의 ’은 닭의 깃털, ‘너울쪽’은 ‘널빤지 쪽’을 의미한다.
누가 연주하는 1번을 들어볼까. 2015년 쇼팽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 1985년 우승자인 스타니슬라프 부닌의 연주를 추천하는 이가 많다. ‘뽀글머리의 천재’ 예프게니 키신이 12세 때인 1985년 모스크바 필과 협연한 실황음반도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다. 또 키신이 2011년 12월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연주도 회자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