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 “각본의 처음 4쪽 읽으면 영화가 좋을지 나쁠지 감지”
朴興津
⊙ 70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 “각본의 처음 4쪽 읽으면 영화가 좋을지 나쁠지 감지”
朴興津
⊙ 70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 덴절 워싱턴의 신작 <이퀄라이저>.
검은 바지에 짧은 검은 셔츠를 입은 신체 건강한 워싱턴은 원기왕성 했는데 마치 연기를 하듯이 제스처와 얼굴 표정 그리고 인상을 요란하게 써가면서 질문에 대답했다. 인종 문제에 매우 민감한 그는 언제나 도도한 인상을 주는데 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태도는 다소 불손했지만 굵은 음성으로 깔깔대고 웃고 노래까지 불러가면서 인터뷰를 즐겼다.
유머를 섞으면서도 질문에는 신중하게 대답했는데 인터뷰 후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나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워싱턴은 크게 미소를 지으면서 “나 한국에 가야지”라고 말했다.
—곧 열릴 산 세바스찬 영화제에서 흑인 배우로선 처음으로 표창을 받을 예정인데 소감이 어떤가요.
“그런데 왜 상을 흑인에게 주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지요. 큰 명예로 생각합니다. 그곳엔 처음 가는데 기분이 아주 좋아요. 내가 마지막으로 상을 받는 흑인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생선 요리가 맛있다는 것만으로도 갈 이유가 충분하네요.”
—과거를 돌아볼 때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1983년 잠시 TV출연을 중단하고 〈크라이 프리덤〉을 찍기 위해 런던에서 얼마 전 작고한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을 만났던 일입니다. 그는 내게 ‘난 정말로 이 역을 위해 아프리카인을 찾았어’라고 말했지요. 그는 그것을 의무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프리카로 갔는데 비행기 문을 열자 아프리카의 냄새가 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 나는 마침내 아프리카에 왔구나’하고 감격했습니다. 공기가 뜨겁고 강렬하며 무겁더라고요. 젊은 아프리카 청년들이 날 보더니 ‘나의 고조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팔려갔다면 나도 지금 캐딜락을 타고 다닐 텐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난 단지 영화를 만들 뿐으로 언제나 나의 가장 좋은 영화는 다음 영화라고 말하지요.”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입니까.
“4명의 자식입니다. 그리고 리처드 아텐보로, 조나단 데미, 토니 스캇, 에드 즈윅 및 안톤 후쿠아와 함께 일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종차별이라 핑계 대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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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절 워싱턴에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안겨준 <말콤 X>(1992년). 이 영화에서 덴절 워싱턴은 급진파 흑인민권운동가 말콤 X 역을 맡았다. |
“이 영화는 개인적인 복수영화는 아닙니다. 나는 러시아 창녀를 마피아로부터 구해주려고 현찰을 들고 마피아를 찾아갔다가 그들이 말을 안 듣기에 내가 가진 기술을 사용했을 뿐이지요.”
—요즘 젊은 흑인 배우들의 활약이 큰데 할리우드가 과거보다 흑백 구분을 덜한다고 봅니까.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난 그 사람들의 경력을 주목해 보지 않습니다. 옛날보단 나아졌어요. 그러나 난 그들의 모범이 아닙니다. 내 전에 시드니(포이티어)가 있었고 시드니 전에는 1939년 오스카상(<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을 탄 해티 맥대니얼이 있었습니다. 난 그저 그들의 연장선의 일부일 뿐입니다.”
—당신은 열심히 일합니까 아니면 역을 쉽게 얻습니까.
“피부 색깔이 무엇이든지 매우 열심히 일해야 해요. 내가 〈말콤 X〉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을 때 알 파치노가 상을 타자 사람들이 인종차별이라고 말들 하더라고요. 그래서 난 ‘알 파치노는 오스카상 후보에 8번이나 오르고도 상을 못 탔는데 난 두 번만에 벌써 탔다(조연상)’라고 말해주었지요. 모든 것을 인종차별이라고 핑계 대긴 쉽지요. 물론 그것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나 여긴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장소입니다. 얼굴 색깔이 무엇이건 간에 일을 잘하지 못하면 기회도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소위 쇼 비즈니스라는 것입니다. 아니 비즈니스 쇼라고 불러야겠네요.”
—안톤 후쿠아와 다시 일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각본을 읽고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후쿠아와 만든 〈트레이닝 데이〉가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그에게 연출을 부탁했습니다. 아주 좋은 각본입니다. 나는 늘 각본의 처음 4페이지 정도를 읽으면 영화가 좋을지 나쁠지 감지합니다.”
—영화가 속편을 예고하며 끝나는데 속편을 만들 것인지요.
“우린 모두 사람들이 보고 즐길 영화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속편은 관객의 반응에 달렸지요. 흥행이 어떤지 두고 봐야겠지요.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영화에서 대형 건축자재상에 근무하면서 거기서 파는 온갖 도구를 이용해 러시아 마피아를 살해하는데 당신이 실제로 마지막으로 건축자재상에 가서 산 물건은 무엇입니까.
“수퍼 글루를 샀지요. 그것으로는 사람의 눈을 붙여 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배터리도 샀습니다. 나는 안톤과 해군 특공대 출신의 스턴트맨과 함께 자재상의 물건 중 무엇이 무기로 쓰일 수 있는가를 연구했습니다. 핀, 유리, 모래, 전화와 시계 등이 모두 무기로 쓰일 수가 있습니다.”
“아내 없을 때는 내가 수퍼에서 장 봐”
—당신이 다음 제임스 본드라는 설이 있는데요.
“인터넷의 힘이 크네요. 내가 인터넷으로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라는 인터뷰를 했을 때 누군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이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입니다. 내가 본드 역을 위해 로비를 한다고요.”
—당신에 대한 가장 엉뚱한 가십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스키 타다 죽었대요. 난 스키는 물론이요 스노보드도 탈 줄 몰라요. 그 후 사람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덴절, 진짜 당신 맞아’라고 묻더라고요. 온갖 풍문이 나도는데 별로 창의성들이 없어요.”
—이 영화는 1985~1989년에 에드워드 우드워드가 나온 TV시리즈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그 시리즈를 봤는지요.
“제작자가 보라고 DVD를 보내줬으나 안 봤습니다. 주인공이 불의를 목격한 뒤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한다는 기본적인 골격만 채용했습니다.”
—영화에서 당신은 러시아 마피아들이 있는 방에 들어서면서 그들의 위치와 무기로 쓸 수 있는 물건을 비롯해 방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컴퓨터처럼 머릿속에 기억하는데 실제로도 그렇습니까.
“그것은 영화에서의 내 역일 뿐이지요. 난 그렇지 못해요.”
—당신은 건축자재상에 가 구경하기를 즐겨 하는 편인가요.
“아닙니다. 난 벽에 못질도 잘 못합니다. 그래서 늘 사람을 불러요. 인내심도 없고 또 기술도 없어요. 집에 연장통도 없답니다.”
—그럼 어디 가길 좋아합니까.
“수퍼마켓이요. 사람들이 날 보고 ‘당신 여기서 뭐 하세요’라고 물어요. 목록대로 토마토나 물건을 사는 것을 즐기지요.”
—부인 폴레타의 근황은 어떤가요.
“아내는 원래 가수였으나 아이들 키우느라 노래를 포기했지요. 그러나 이젠 아이들이 다 커서 다시 가수로 돌아갈 것입니다. 곧 토론토에서 노래 부를 거예요. 그리고 시카고와 노스캐롤라이나, 애틀랜타를 거쳐 유럽에서도 공연할 예정입니다.”
—이 세상이 영화 속의 당신과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봅니까.
“매 개인이 다른 한 사람을 돌봐준다면 나 같은 사람이 필요 없겠지요. 세상은 로버트 같은 사람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로버트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로버트는 수퍼맨이 아니라 고독한 사람으로 단지 터득한 기술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로버트가 불의를 처단하는 것을 보면서 그와 관계를 맺고 그를 응원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영화를 위해 훈련을 했는지요.
“몇 년간 신체훈련을 위해 권투를 배웠습니다. 내가 인생에서 배운 것은 사람들 각자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건드리지 말고 가만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인생 서두를 것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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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와 덴절 워싱턴. |
“사실 난 지금 60세를 살고 있는 것이지요. 태어나면 0살이고 12달이 지나야 한 살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인생 80까지 살면 큰 축복이고 다음은 덤입니다. 난 지금 내 인생의 제4막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로렌스 피시번과 나이를 얘기하는데 그가 아시아인들은 나이가 먹으면 모든 것의 주인이 된다고 하더군요. 모든 것을 마스터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비활동적인 것 같지만 더 효능적이래요. 그래서 나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삶을 단순화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영화 출연을 잠시 쉬려고 하는지요.
“올해는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을 탄 <펜시스>라는 연극의 공연으로 영화를 안 찍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이젠 연극에 자주 나올 수가 있어요. 2005년 후 <줄리어스 시저>와 <펜시스> <태양 속의 건포도> 등 3편에 나왔지요. 난 연극과 영화에 나오고 또 감독도 하느라 바쁩니다. 난 인생을 즐기고 있습니다. 서두를 것 없어요. 올해 영화를 안 찍었다고 염려할 필요도 없고요.”
—로버트는 매우 깔끔하고 단정한데 당신도 그런가요. 그리고 당신에게 있어 자제라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난 단정하지도 않고 자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조직된 혼란입니다. 내 팬티가 마룻바닥에 있어도 내 아내처럼 신경 안 써요. 운동용 팬츠도 아무 데나 벗어 던지지요. 어디다 버렸나만 알면 자고 일어나 쉽게 찾을 수가 있으니까요.”
—어제 영화시사회 극장 앞에 모인 사람들이 “덴절, 덴절”하며 당신 이름을 부르짖는 것을 봤는데 사람들의 당신에 대한 관심에 압박감을 느낍니까.
“1980년대 초 연극 〈말콤 X〉에 나왔을 때 일입니다. 내 연기가 호평을 받으면서 1000명의 관객이 표를 사려고 줄을 섰어요. 난 그때 극장 건너편의 공원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야 내 인생에 무엇이 변하고 있구나’하고 느꼈지요. 성공하면 주위 세상이 포위하고 들어와 쇼핑하러도 잘 못 가요. 때론 그런 경우가 싫지만 그러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내가 일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까요. 난 내가 수퍼스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내가 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라고 생각하지요. 사람들은 다 신이 준 재능이 있지요. 어쩌다 내게 명성이 따랐을 뿐이지 카메라 앞에서 일하는 나나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날 보고 환호하는 것이 토마토를 집어던지는 것보다 훨씬 낫지요.”
—요즘 빅히트하고 있는 마블 만화 영화에 나올 생각은 없나요.
“내 일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먼저 각본, 다음이 내용, 그리고 마지막이 역입니다. 유행이나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입니까. 비결이라도 있나요.
“좋은 유전인자 덕이지요. 내 어머니는 89세인데 아직 정정하시고 내 딸은 26세인데 13세 같고 난 30세 때도 술 구입 시 신분증을 요구했답니다. 그러나 나이가 먹을수록 안으로 곪는 것 같아요. 고통이 과거보다 훨씬 오래 남아요.”
—영화를 찍기 전에 러시아 마피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는지요.
“로버트가 그들에 관해 연구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나도 안 했습니다. 다만 러시아의 교도소에 관한 기록영화를 보고 어떤 문신이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는 알았지요. 영화에서처럼 러시아인만이 부패한 것은 아니지요. 우리 나라도 상당히 부패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