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에하라, 간 나오토 총리 사임시 최유력 총리 후보 중 하나
⊙ 右派성향이지만 현실주의 외교노선 신봉
⊙ 아베·후쿠다 총리 시절 “납북자 문제에 지나치게 구애되면 6자회담에서 발언권 잃는다”고 주장
洪熒
⊙ 63세. 육군사관학교 졸업(26기).
⊙ 주일(駐日)한국대사관 참사관·공사 역임. 와세다대 현대한국연구소 객원연구원.
⊙ 右派성향이지만 현실주의 외교노선 신봉
⊙ 아베·후쿠다 총리 시절 “납북자 문제에 지나치게 구애되면 6자회담에서 발언권 잃는다”고 주장
洪熒
⊙ 63세. 육군사관학교 졸업(26기).
⊙ 주일(駐日)한국대사관 참사관·공사 역임. 와세다대 현대한국연구소 객원연구원.
일본에서는 지난 2009년, 54년간 장기집권해 온 자민당(자유민주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이 역사적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내정(內政)이나 외교에서 변화나 발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화려하게 출범했던 민주당 정권은, 정부예산안 편성에 겨우 성공(?)하면 그걸 스스로 대견히 여길 정도로 그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자민당과 관료가 방만하게 써온 세금(정부예산) 낭비만 줄여도 복지를 늘릴 수 있다”는 주장으로 집권한 민주당은, 집권 1년 반만에 “복지를 위해 세금을 올려야겠다”며 야당에 협력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4월부터 시작되는 2011회계연도 예산안과 관련 법안의 통과부터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중의원(衆議院·하원)에서는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多數)를 차지하고 있지만, 참의원(參議院·상원)은 여소야대(與小野大)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민주당 정권은 야당과의 연립(聯立)에 필사적이다. 하지만 리더십과 정책노선이 지리멸렬하고, 다수 유권자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여당의 연립제안에 관심을 보이는 야당은 없다.
자민당은 민주당 정권의 실정(失政)으로 반사이익(反射利益)을 얻고 있으나, 일본사회는 아직 자민당의 정권탈환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유권자들은 기성(旣成)정계를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년 7월 지방선거 때 유권자들이 기성정당을 중심으로 투표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지방의 반란’은, 지난 2월 6일 실시된 나고야(名古屋) 시장(市長) 선거와 아이치현(愛知縣) 지사(知事) 선거에서 ‘감세일본(減稅日本)’ 등 지방정당이 여당(민주당)과 제1야당(자민당) 후보를 누름으로써 가시화됐다.
4월 전국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참패가 예상되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바람’에 의지해서 선거를 해온 민주당 내에서는 “간 나오토 총리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비명이 커지고 있다. 금권(金權)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당내 주류파(主流派)에 의해 배제되고 있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당대표는 중의원 조기(早期)해산을 선동하고 있다.
민주당 정권은 특히 외교·안보정책에서 국민의 불신과 경멸을 샀다. 집권하자마자 인도양에 나가 있던 대(對)테러전쟁 지원 급유(給油)부대를 철수시킨 민주당 정권은, 주일(駐日)미군기지문제 등에서 반미-친중(反美-親中)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민주당 정권은 작년 한 해 동안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사태, 작년 9월 센카쿠 사태 등을 겪고 나서야 다소나마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쓰시타정경숙 출신의 ‘일본판 486’
이처럼 국정(國政) 전반,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 헤매온 민주당 정권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무대신이 북한과의 접촉 의욕을 표명하고 나섰다. 그는 작년 12월 28일 기자회견에서, “북핵(北核)과 납치, 미사일 문제는 6자협의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일·북(日北) 간에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월 4일 연두(年頭)기자회견에서도, 올해의 큰 테마로 일·북 간 대화를 거론했다.
마에하라 외무대신의 발언에 대해,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1월 10일 논평을 통해 “우리나라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국가들과는 언제든지 마주앉아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환영했다.
마에하라 대신은 다음 날(1월 11일) 기자회견에서, “일·북 간 평양선언을 상호 확인하면서 직접대화를 확실히 추진하겠다”, “6자협의 개최에 구애되지 않고 일북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화답했다.
마에하라 대신의 돌출 언동은 게이츠 미(美)국방장관과의 회담(1월 13일) 및 서울방문(1월 15일) 후 일단 진정됐다. 일본 정계와 언론에서는 마에하라 대신의 돌출 언행을 ‘3월위기설’에 시달리고 있는 간 나오토 총리의 후계를 노린 정치적 쇼로 보는 견해가 다수인 것 같다.
하지만 마에하라 대신의 발언을 단순한 정치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마에하라 대신은 간 나오토 총리가 물러날 경우 차기 총리로 가장 유력한 인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총리가 되려면 다수당의 당수(黨首)급 인사여야 하는데, 현재 민주당 의원 가운데 당수를 지낸 사람은 마에하라 대신과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 두 사람뿐이다. 만일 마에하라 대신이 차기 일본 총리가 되고, 그의 주장이 일본의 외교정책으로 실천에 옮겨진다면, 일본(의 좌파정권)이 또다시 대한민국의 대북(對北)정책, 나아가 한반도의 미래를 교란할 수도 있다.
돌출언동을 한 마에하라 세이지는 올해 49세인 ‘일본판 486세대’이다. 교토(京都)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그는 은사(恩師)인 고사카 마사타카(高坂正堯)의 권유로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에 들어갔다. 1987~1991년 마쓰시타정경숙에서 수학한 그는 정경숙 8기생이다. 마에하라 대신은 29세 때 교토부(府) 의원에 당선됐고, 2년 후 총선거에서 중의원(衆議員)에 당선돼 중앙정계에 들어섰다. 1998년에는 민주당 창당에 참가했다. 43세 때인 2005년 9월 현 총리인 간 나오토(菅直人)를 두 표 차로 누르고 민주당 대표가 되어 ‘일본의 블레어’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자민당 정권을 추궁하기 위해 국회에서 폭로했던 자료가 가짜인 것으로 드러나, 6개월 만인 2006년 3월 당대표직을 내놓았다. 그의 후임 당대표가 오자와 이치로다.
마에하라 외무대신은, 안보면에서 일·미(日美) 동맹 강화와 중국경계론을 강조하여 흔히 매파(派)로 알려져 있다. ‘한 지붕 네 가족 혹은 다섯 가족’이라는 소리를 듣는 민주당 내에서 가장 우파(右派)로 분류된다.
그런 그가 하필 작년 12월 7일 한ㆍ미ㆍ일(韓美日) 외무장관이 연평도 사태 이후의 대북공조(共助)체제를 다짐한 후에 느닷없이 대북 독자접촉 의욕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금년 들어 그가 대북접촉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1월 6일 미·일 외무장관회담 직후였다. 마에하라 대신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런 소리를 한 것일까?
유명 견직물회사의 대북투자 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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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에하라 일본 외무대신은 지난 1월 15일 방한(訪韓)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
아베의 후임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 시절에도 그는 국회질의를 통해 “납치문제가 진전되지 않으면 (대북)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외교적 재량(裁量)을 (스스로) 좁히는 것이 아닌가? ‘평양선언’(2002년)으로 돌아가 (납치, 북핵, 미사일) 토털 패키지 해결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에하라 대신의 이번 발언과 관련해 《주간신조》(週刊新潮)는 마에하라 대신이 과거 두 차례 방북(訪北)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주간문춘》(週刊文春)도 마에하라 대신이 교토부 의원 시절에 일조우호교토의원연맹(日朝友好京都議員連盟) 회원이었다고 지적했다. 교토는 공산당 등 좌경(左傾)색채가 매우 강한 지역이다.
이에 대해 마에하라 대신은 2월 10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당시 일·조(日朝), 일·한(日韓), 일·중(日中), 일·화(日華ㆍ일대만)우호의원연맹 모두에 가입했었다”고 밝혔다.
마에하라 대신이 처음 북한을 방문한 것은 정계입문 직후인 1992년이었다. 일조우호교토의원연맹 대표단으로 방북한 그는 판문점까지 둘러봤다.
두 번째 평양 방문은 중의원 3선의원이던 1999년 5월 말이었다. 이때는 선거구인 교토의 견직물회사인 가와무라오리모노(河村織物)주식회사 사장과 함께 갔다. 이 회사는 일본황실에 최고급비단을 납품하는 유명한 회사다. 전통적인 수작업을 고수해 온 이 회사는 1997년에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북한에 자수공장을 건설했다가 일본정부가 전면적 대북제재에 들어간 2006년 철수했다.
이 회사의 대북투자를 조총련 측을 통해 주선(요청)했던 사람이 바로 마에하라 대신이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이 회사의 상담역(相談役)이었다. 당시 마에하라 의원의 부탁을 받아 가와무라오리모노와 북한을 연결시켜 준 사람은, 북한에 친족이 있고 대북무역을 하면서 통일전선부 등 공작기관과 관계를 맺고 있는 조총련계 K씨였다. K씨는 전직 총리대신 등 일본의 유력자들과 폭넓은 인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주의자(현장주의자 혹은 실용주의자)인 정치인 마에하라로서는 평양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가보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간사이(關西)지방에서 친북(親北)인사로 널리 알려진 K씨 같은 인물과 가깝게 지내는 것은 아무리 ‘실용적 차원’이라고 하더라도 신중한 처신은 아닌 것 같다.
북한의 韓日 이간책동
마에하라 외무대신의 이번 언동을 음미해 보기 위해서는, 북측의 대외사업, 즉 대일공작의 메커니즘도 살펴봐야 한다. 한미, 한일 관계를 이간시키는 것은 북한의 대외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물론 이러한 일을 하는 데는 많은 투자와 공개·비공개(비합법)의 다양한 조직이 필요하다. 일본에는 광복 이후 조총련을 비롯, 광범위한 합법·비합법 공작 인프라가 존재해 왔다.
평양 측은 마에하라 대신처럼 ‘우연히’ 북측과 관계가 맺어진 외국 요인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외국 정치인의 방북은 당연히 김정일(金正日)의 사전 비준(批准)을 받아야 하는 중요사안이다. 김정일은 1975년 이래 북한의 모든 공작기관을 직접 장악, 지휘해 왔다.
마에하라 의원의 두 번째 방북 때에는 조선사회과학자협회를 방문한 것 외에는 북한에서의 일정이 알려진 것이 없다. 이 두 번째 방북 시 가와무라오리모노가 북측에 선물로 증정한 최고급자수가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북한은 한일 관계를 이간시키기 위해 대일공작을 특히 중요시해 왔다. 과거 북한이 ‘대한민국은 야만적 독재국가’라는 이미지를 만든 무대가 일본이었다. 북한의 공작이 얼마나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예(例)를 들어보자.
노태우 정권 시절의 일이다. 일본정부의 고위인사가 업무상 파트너인 한국관리에게, 한국정부(청와대)의 처사를 점잖게, 그러나 정색을 하고 따졌다. “한국정부가 일본의 대북접촉을 견제, 차단하면서, 스스로는 평양에 밀사(密使)를 파견하여 북측과 이면(裏面) 접촉을 하고 있다”며, “한국은 우방국 간의 최소한의 신의도 배신하고 있다”고 항의한 것이다.
그가 한국정부의 대북 밀사라고 거론한 인물은 어떤 종교인이었다. 북한은 평양을 왕래한 이 종교인이 청와대의 밀사라고 그럴듯한 채널을 통해 일본 측에 흘렸던 것이다. 서울에서 평양으로 밀사를 보내오는 상황이니, 일본정부도 한국 측을 무시하고 일·북 간 접촉에 나서라는 모략이었다.
이러한 간단한 모략도, 확고한 신뢰관계가 없는 상황에서는, 서로 상대를 의심케 하고 양국(兩國)의 연대(連帶)를 약화, 교란시키는 효과가 있다.
북한은 대남·대외 선전공세를 펼 때,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한다. 동원된 친북세력들은, 오케스트라가 각자 자기 파트를 연주하듯이 놀라울 만큼 조화롭게, 혹은 일사불란하게 선전선동을 수행한다. 김정일체제에서는 외교부도 당연히 공작기관 중의 하나다. 그들을 단순한 외교관으로 생각하고 접촉하는 것은 잘못이다.
북한은 연평도 사태 이후 출구전략을 모색하면서 작년 12월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주 지사를 초청했다. 차기 미국 국무장관으로도 거론되는 리처드슨 주지사는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매우 쓸모 있는 인물이다.
원칙파 외무성 국장은 인도대사로 나가
북한이 마에하라 일본 외무대신을 보는 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차기 총리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는 마에하라 대신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는 욕심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만난 일본 측 인사들은 대개 이번 마에하라 발언을 그런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 이런 양자의 필요성이 하나가 될 때, 그 파장은 의외로 커질 수도 있다.
마에하라 외무대신이 북한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했지만, 이 과정에 외무성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북 원칙파로서 일·북 관계를 주관해 온 사이키 아키다카(齊木昭隆)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1월 중순 주 인도대사로 발령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