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佑光의 일본 再발견] 일본 중소기업이 강한 이유

  • 글 : 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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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성장기에 우수 부품 확보 위해 대기업-중소기업 간 신뢰관계 구축되면서 중소기업 문제 해결
⊙ 1940년대 후반부터 중소기업청 설치, 관련 법규 제정 등 중소기업 진흥정책 추진
⊙ 기계·전자 부품, 섬유 등 중요 산업 위주로 지원정책 추진

李佑光
⊙ 1952년생. 중앙대 통계학과 졸업. 日도쿄대 경제학부 박사과정 수료.
⊙ 삼성경제연구소 일본연구팀장, 해외연구실장 역임.
도요타자동차의 인재육성 기관인 ‘글로벌 생산센터(GPC)’. 대기업의 기술과 인력을 자유롭게 중소기업에 이전할 수 있는 시스템은 중소기업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
근래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쩍 강조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 설정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이다’, ‘디플레이션 경제다’라고 떠들면서도 중소기업 문제는 별로 불거지지 않는다. 대기업만 불황(不況)이고 중소기업이 호황(好況)을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최근 경기가 회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불만은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문제로 파악하기보다는 ‘호황으로 가계(家計)소득이 늘어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는 관점이 대세다. 가계소득이 1997년경부터 감소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서민들은 이 정도의 경기회복은 불쏘시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따라서 실업(失業)이 늘어나거나 임금(賃金)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중소기업 문제 때문에 윗목이 춥다고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일본은 중소기업의 기본적인 문제를 1960년대까지 거의 해결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중소기업이 일본제품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말도 곧잘 한다. 또 최근에 한국이나 중국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자, 일본의 소재·부품·장치 업체들의 수출이 늘어나는 ‘한·중·일(韓中日) 트라이앵글 경기’가 일본 경기를 견인(牽引)한다고 오히려 중소기업을 예찬한다.
 
  우리 기업들은 몇몇 제품에서는 일본제품을 따라잡았거나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또 지금까지 많은 제도를 일본으로부터 벤치마킹하여 그런대로 잘 작동시키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일본 벤치마킹이 잘 안되는 부분이 바로 중소기업 문제이다.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경제·산업 정책이 주로 대기업·수출 산업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라는 대답만으로는 납득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중소기업 문제를 들고 나오지 않은 정권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중소기업 관련 정책이나 제도가 한국에도 거의 다 있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최근 대두되고 있는 중소기업 문제를 보면 중소기업과 관련된 문제점들이 거의 모두 나열되고 있다. 납품단가(納品單價) 인하, 불공정거래, 중소기업 고유업종 침범, 영세상인 문제, 인력확보의 어려움, 중소기업-대기업 간 협력 미흡,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격차, 경제의 이중구조 등등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까지 중소기업 문제를 하나도 제대로 해결한 것이 없다는 말인가? 일본이 중소기업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를 보면 이러한 의문은 어느 정도 풀린다.
 
 
  일본의 중소기업 정책
 
  일본의 중소기업 문제는 1930년대에 제일 먼저 하청(下請) 문제로 불거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거래 사이에 브로커가 존재하여 하청기업들은 저가(低價) 수주를 강요당하며 설비투자, 숙련공 육성, 기술향상이 저해되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전쟁물자 생산이 다급했던 일본 정부는 1940년 발주공장과 하청공장 사이의 협력구축 정책인 ‘기계철강제품공업정비요강(機械鐵鋼製品工業整備要綱)’을 만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자가 전속적(專屬的)인 관계를 맺도록 강요한다. 하청기업과 발주기업 모두 정해진 기업과 거래를 하게 함으로써 기술지도, 자금원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져 하청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꾀한다는 목적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정부가 모든 기업과 거래관계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발주기업이 정해진 기업 이외의 하청기업과 거래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했다. 또 하청업체도 배분된 원(原)재료를 다른 용도로 쓰는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후 일본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을 유도하는 정책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의 중소기업 정책이 체계화하기 시작한 것은 전후 혼란기인 1948년에 중소기업청을 설치한 이후부터이다. GHQ(연합군총사령부)가 기업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재벌해체, 독점금지법을 제정하는 와중에서 일본정부가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본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의 초점은 약자(弱者)인 중소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에 맞추어졌다. 그래서 중점 정책은 자금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금융정책, 약자의 힘을 모으기 위한 조직화정책, 선진 경영기법을 전수하기 위한 진단·지도 정책이 골격이었다.
 
  금융정책으로 자금난 해소를 위해 국민금융공고(公庫·1949년)를 설립했고, 또 장기자금 공급을 위해 중소기업금융공고(1953년)를, 담보부족 해소를 위해서는 신용보증협회법(1953년)을 정비했다.
 
  약자인 중소기업의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화정책으로 중소기업협동조합법(1949년)을 제정했다. 중소기업 사업 분야의 과당경쟁 방지를 위해 ‘특정중소기업안정에 관한 임시조치법(1953년)’을 제정하여 독점금지법 적용에서 제외시켰으며, 중소기업의 생산카르텔을 인정하는 중소기업안정법(1953년)은 항구법(恒久法)으로 했다. 상공회의소법(1953년)도 이때 제정했다. 중소기업 경영의 근대화, 합리화를 위한 진단·지도 정책으로 기업진단제도(1948년), 중소기업상담소 설치(1948년), 순회(巡回)지도제도(1952년) 등을 들 수 있다.
 
 
  중요산업 중심으로 업종별 집중 지원
 
  이쯤 되면 중소기업 정책은 거의 골격을 갖춘 셈이다. 전후(戰後)의 어려움 속에서도 일본 정책담당자들은 이 정도까지 제도를 정비했다. 1960년 상공부에 중소기업과를 설치했고 1996년에야 중소기업청을 설치한 한국과는 중소기업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달랐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경제가 한국전쟁 특수 등으로 고도성장을 시작하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문제, 즉 ‘이중구조론’이 불거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생산성, 임금, 기술, 자금조달 격차가 심각하여 일본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경제의 이중구조 문제는 경기가 나쁠 때보다 좋을 때 불거지기는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제해결 방법에서 일본은 좀 달랐다.
 
  당시 일본은 업종별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으로 나왔다. 모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중소기업이 많이 포진해 있고 또 중요 산업인 기계·전자 부품산업과 섬유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을 편 것이다. 기계공업진흥임시조치법(1956년), 섬유공업설비임시조치법(1956년), 전자공업진흥임시조치법(1957년)을 제정해 중소기업들의 설비근대화, 기술향상, 경영합리화를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했다. 오늘날 일본이 기계·전자 부품 강국이 되는 기반은 이때 만들어졌다.
 
  일본정부는 업종별 육성을 위해 중소기업진흥자금조성법(1956년), 중소기업근대화자금조성법(1963년) 등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대기업의 대금지불 지연과 부당한 대금인하를 방지하기 위한 하청대금지불지연방지법(1956년)을 독점금지법의 특별법으로 제정하기도 했다. 당시에 불거진 또 하나의 문제는 영세상인 보호 문제였다. 먼저 지역 영세 소매상인과 대기업과의 분야조정을 위해 백화점법(1956년)을 제정했고, 영세상인의 사업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구매업자·소매시장 등을 규제하는 소매상업조정특별조치법(1956년)을 제정했다. 또 영세상인의 조직화를 위해 상점가진흥조합법(1962년)을 제정했다. 이후에는 대형 소매점 진출을 규제하는 소위 ‘대점법(大店法·1973년)’을 제정해 대기업 진출에 대해 규제를 가했다.
 
  이런 각종 제도에도 불구하고 이중구조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새롭게 등장한 문제는 일본경제의 대외(對外)개방이었다. 1963년에 GATT 11조국(條國), 1964년에 IMF 8조국 이행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그 이전에 중소기업 정책을 다시 한번 정비하여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중소기업 정책 전체를 재(再)정립하는 중소기업기본법(1963년)을 제정했다. 중소기업 정책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시정’을 위한 것이라는 기본이념을 명확히 하고 중소기업의 설비근대화, 기업규모 확대를 위한 근대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특기할 것은 광공업은 종업원 수 300명 이하, 소매업은 50명 이하, 20인 이하를 소규모 기업으로 하는 중소기업의 범위를 정의하고 각종 시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근대화자금조성법(1963년)을 통해 자금도 지원했다. 1995년에 중소기업기본법을 제정한 한국과는 30년 이상의 격차다.
 
 
  발주-하청기업 간 신뢰관계 구축
 
  그런데 일본의 중소기업 문제 해소에 각종 제도 이상으로 기여한 것은 사실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돈독한 협력관계 구축이었다. 정책이 약자를 보호하고 지도하는 수단이었다면, 협력관계는 시장(市場)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단련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고도성장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하는 것이 양자 모두에 이익이 되는 경제적 인센티브(誘引)가 강하게 작용했다. 대기업인 최종제품 생산메이커(발주기업)가 고(高)품질과 저가격으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부품을 제공하는 중소기업(하청기업) 확보가 시급한 경영과제였다.
 
  당시에는 해외에서 부품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때문에 국내에서 우수 하청업체를 확보하는 것이 대기업으로서는 상당히 중요했다. 또 하청기업도 고도성장기에는 대기업 하청을 통해 생산물량을 대량으로 확보하여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청이 유리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협력을 위한 경제적인 인센티브는 충분했다.
 
  그 결과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협력업체로 편성되었다. 또 협력업체는 1차에서 2차, 3차로 뻗어 나가 계열(系列)을 형성했다. 부품 수가 2만개가 넘는다는 자동차산업에서의 협력관계는 대표적이다. 일본 자동차산업이 지금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것은 그 원천에 발주기업과 하청기업의 장기적·안정적 신뢰관계 구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고도성장 경제였기 때문에 양자의 돈독한 협력관계가 구축된 것은 아니다. 발주기업들은 하청기업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발주기업은 ‘채찍과 당근’으로 하청업체를 관리했다. 품질개선과 비용절감을 위해 같은 종류의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들을 치열하게 경쟁시켜 2~3개 기업을 선별, 장기적·안정적 거래를 했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가장 신뢰하는 기술력 있는 하청업체는 상품기획에까지 참여시켰고, 부품설계도 하청업체가 스스로 하게 했다. 이러한 업체에 대해서는 기술전수, 최신설비 제공, 인력파견 등을 아끼지 않았다.
 
  하청기업도 다른 하청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기술발전, 품질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이를 통해 기술, 설비, 인재 확보는 물론 통계적 품질관리 기법인 TQC(Total Quality Control)와 같은 최신 경영기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기손익보다 장기거래를 더 중시
 
  고도성장기에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본기업의 주요 특징인 계열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장기적·안정적 ‘신뢰’ 거래관행이 만들어졌다.
 
  일본기업들이 생각하는 신뢰란 한국이나 구미(歐美)기업들이 생각하는 신뢰와는 좀 다르다. 구미기업들은 실력에다가 약속을 지킨다든지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등의 ‘공정의도(公正意圖)’가 있으면 거래선 기업을 ‘신뢰한다’고 한다. 일본기업들은 서로 같이 발전한다는 ‘공존공영의도(共存共榮意圖)’가 있어야 거래선 기업을 ‘신뢰한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기업들은 단기(短期)거래로 손익(損益)관계를 따지기보다는 장기(長期)거래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중시한다. 원자재가격이 급상승했을 때 단기에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장기거래를 통해 이를 반영하는 거래관행이 일반적이다. ‘이번엔 당신이 좀 울어 줘’라고 하면 ‘다음에 어떻게든 보상해 줄게’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장기적 협력관계가 일본경제 전반에 걸쳐 구축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그리고 1970년에 일본정부가 펴낸 <중소기업백서>는 ‘이중구조는 거의 해소되었다’라고 했다. 이는 일본의 문화적 산물이라기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력에다 경제적 인센티브가 작동한 결과이다.
 
  여기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다 설비와 인력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도 있었다. 일본 대기업들은 수백 개의 자(子)회사·손자(孫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투자에 대한 제약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출향(出向)’을 통해 대기업 인력이 자회사로 파견되기도 한다. 출자(出資)와 인력에 대한 독점금지법 적용이 한국보다 훨씬 느슨했다.
 
  중소기업의 기본적인 문제를 거의 해결한 이후의 일본 중소기업 정책은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 정책에 초점을 맞춘다.
 
  1973년 석유위기 이후 일본의 중소기업 정책은 산업구조 정책의 일환으로서 ‘지식집약화(知識集約化)’ 정책을 추진한다. 즉 중소기업이 기술, 인재, 정보 등 소프트한 경영자원을 원활하게 확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중소기업정보센터(1973년)를 전국 각지에 설립하여 정보 면에서 중소기업을 지원했다. 인재 면에서는 중소기업대학(1980년)을 설치하여 경영관리, 기술 등의 연수제도를 정비했다. 중소기업지도법(1986년)을 개정하여 중소기업지역정보센터를 활성화시켰다. 또 지역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특정불황지역 중소기업대책 임시조치법’(1978년) 등을 제정했다. 1980년에는 중소기업사업단을 만들어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했다.
 
  이후 엔고(円高) 불황하(下)에서는 중소기업이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업구조 전환, 산업집적화를 위한 정책에 초점을 모았다. 버블붕괴 이후에는 중소기업의 창업, 신규사업을 지원했다. 1999년에는 중소기업기본법을 개정하여 저성장 경제하에서 연구개발, 경영혁신, 창업 등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중소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으로 변하게 된다.
 
  최근에는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중소기업의 사업기반인 내수(內需) 침체가 심각해지자 ‘중소기업헌장’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중소기업 정책을 ‘불리시정(不利是正)’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일본경제 활성화의 주역으로서 인식하자는 것이다.
 
 
  정부 직접개입보다는 육성이 바람직
 
  일본 중소기업 정책의 발전과정과 대기업·중소기업 협력관계 형성과정을 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공업화가 일본보다 뒤처졌고 따라서 중소기업 정책도 일본보다 뒤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중소기업 정책에 관해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최근 일본은 한국의 대기업은 물론 FTA 정책, 해외사업 수주를 위한 민관(民官)협력 시스템, 증권거래소 등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또 일본 백화점 업계가 공식적으로 한국의 백화점 경영을 배우러 오고 있기도 하다. 이제 부분적으로나마 일본이 한국을 벤치마킹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정책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중소기업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나 대기업의 인식이 일본보다 미흡하다. 이는 중소기업청이나 중소기업기본법의 제정 시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균형 잡힌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으로부터 소재·부품·장치 수입이 대일(對日) 무역역조(逆調)의 주된 원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한 중소기업의 육성에는 게을리해 온 것이 사실이다.
 
  둘째, 중소기업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또 환경이 변하면 새로운 문제가 계속 불거진다. 따라서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단계적으로 철저하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 중소기업의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중소기업 정책이 미흡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셋째, 불공정한 거래에 대해서는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해야 하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은 개입보다는 적극적인 지도나 육성정책이 바람직하다. 버블붕괴 이후에 일본정부는 중소기업에 무이자 무담보로 5000만 엔까지 긴급융자를 했고, 전국 각지에 고가(高價)의 기계장치가 있는 시험연구소를 만들어 중소기업에 이를 활용하게 했다. 일본정부의 전 중소기업정책 담당자는 “이러한 정책을 펴는 나라는 세계에서 일본뿐”이라고 자랑했다.
 
 
  제도보다는 경제적 인센티브로 문제 풀어야
 
  넷째,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에 돈독한 협력관계가 구축되면 중소기업의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협력관계는 제도보다는 경제적 인센티브로 풀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은 그러한 정책을 펼 수 있는 적기(適期)인 고도성장기가 지났고 또 글로벌 아웃소싱이 일반화된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 해도 대기업들은 혁신적인 중소기업이 있어야 혁신적인 최종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대기업의 중소기업 육성에 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좀 느슨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 배경이야 어떻든 한국은 지금까지 공정거래법을 중시한 결과 대기업의 자본과 기술과 인력이 중소기업으로 흘러들어 갈 수 있는 채널이 많이 막혀 있다. 제도 간에는 ‘보완성(補完性)’이 있기 때문에 한쪽 정책목표를 중시하다 보면 다른 쪽에서 문제점이 나타나기 쉽다. 중소기업 육성이 우선과제라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제적 인센티브로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매듭을 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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