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이 축제 분위기”… 호스피스서 결혼식도
⊙ “입원 환자 나이대 다양… 미성년자도 종종 입원”
⊙ “평균 입원 기간 20일… 대기하다 사망하기도”
⊙ 집에서 ‘마지막’ 준비하는 가정형 호스피스도
⊙ ‘韓 최초 프리마 돈나’ 김청자 교수, 말기 유방암 투병 중… “죽음은 삶의 끝인 동시에 삶의 일부”
⊙ “입원 환자 나이대 다양… 미성년자도 종종 입원”
⊙ “평균 입원 기간 20일… 대기하다 사망하기도”
⊙ 집에서 ‘마지막’ 준비하는 가정형 호스피스도
⊙ ‘韓 최초 프리마 돈나’ 김청자 교수, 말기 유방암 투병 중… “죽음은 삶의 끝인 동시에 삶의 일부”

- 동백 성루카병원에서는 주기적으로 음악치료 시간을 가진다. 환우들도 이날만큼은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한다. 사진=동백 성루카병원
동백 성루카병원 정극규(鄭克奎· 73) 진료원장의 말이다.
‘죽음’을 입에 올리기는 꺼려진다. 사회에서 죽음은 감춰지고 외면되는 주제다. 삶의 속도는 빨라지고, 병원은 병을 고치는 곳으로만 여겨지며, 죽음을 준비하는 공간은 그늘진 곳에 위치해 왔다. 호스피스는 여전히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을 앞둔 이들의 마지막 행선지쯤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호스피스 관계자들은 “호스피스는 죽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공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육체의 고통을 덜고 감정을 돌보며 인간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것, 그 여정을 함께하는 것이 호스피스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흔히 잘못 알고 있거나, 아직 관심을 두지 않아 알지 못하는 호스피스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동백 성루카병원, 서울 금천구의 전진상의원, 그리고 경기 남양주시의 성바오로가정호스피스센터. 각기 다른 환경에서 ‘새 삶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호스피스에서 딸 간이 결혼식… 피아노는 동료 환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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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의 결혼식을 보는 게 소원’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동백 성루카병원에서 간이 결혼식이 열렸다. 의료진과 환우, 그들의 보호자들은 이들의 새로운 시작을 그 누구보다 축복했다. 사진=동백 성루카병원 |
― 호스피스에서 결혼식을요?
“입원해 있는 환자 한 분이 따님의 결혼식을 꼭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병원 내에서 간이 결혼식을 열었습니다. 드레스 차림의 따님과 예비 신랑이 함께 와서 조촐하지만 따뜻한 결혼식을 치렀죠. 그날만큼은 병원이 온통 축제 분위기였어요. 입원 환우중에 음악 재능이 있는 분이 피아노를 연주해 주었고요.”
―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겠군요.
“그랬을 겁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환자도 ‘정말 고맙다’고 한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참 따뜻한 시간이었지요.”
― 입원 환자들의 연령대 분포는 어떤가요?
“연세 많은 분들만 있을 거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미성년자도 종종 들어옵니다. 젊거나 어린 나이에 들어오는 환자들엔 아무래도 마음이 더 많이 쓰이죠.”
박현진 사회복지사의 안내로 임종실을 둘러보았다. 불과 1시간 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임종실은 환자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병상 공간과, 그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볼 수 있는 가족실로 나뉘어 있다. 죽음의 공간이라 무겁고 침울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히려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창밖에는 녹음이 짙게 우거진 산이 펼쳐져 있었다.
“환자들이 저 산을 내다보면서 ‘참 편안하다’고 말하곤 한답니다.”
― 이곳에 오는 환자들은 보통 얼마나 머무르나요?
“대부분 2~3주 안에 돌아가십니다. 이르게는 일주일, 심지어는 30분 만에 사망한 분도 있어요. 가족들은 이 공간에서 환자와 함께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습니다.”
“평균 3주 대기, 입소 후 평균 20일에 사망”
한 남성 말기암 환자가 부인과 함께 정극규 진료원장을 찾아왔다. 휠체어에 앉은 남편을 어두운 표정의 부인이 밀며 원장실에 들어섰다. “많이 힘드셨지요”라는 정 원장의 말에 부인은 끝내 눈물을 쏟았다.
환자는 항암 치료를 세 차례 받은 말기암 환자였다. 암 진단을 받은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이가 빨라 몸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식이장애가 있어 하루에 죽 한 그릇 정도밖에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양이 조금만 많아도 구토를 했다. 통증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부인은 “고통이 너무 심해 하루에도 여러 번 마약성 진통제 패치를 찾는다. 내가 출근한 사이 남편이 너무 자주 찾지 않도록 일부러 숨겨 놓고 간다”고 털어놨다. 남편의 배는 복수(腹水)가 차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이처럼 위중해 보이는 환자라도 바로 입원할 수는 없었다. 정 원장이 “오늘은 복수만 빼드릴 테니 일단 돌아가시라”고 하자, 부인은 “저희 가족 다 죽어요”라며 또다시 눈물을 터뜨렸다. 부부에겐 자녀가 둘 있는데,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둘 다 대학을 휴학하고 집에 있다고 했다. 온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과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기자가 “부군께서 많이 힘드실 것 같다”고 말을 걸자 아내는 “오히려 가족들이 더 힘들다. 경제적인 문제도 크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괴롭다. 가족 모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고통을 토로했다. 다시 정 원장에게 물었다.
― 환자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데, 입원이 안 되는 건가요?
“상태를 봐선 현재로선 자택에서 지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엔 그보다 더 위중한 환자들이 입소합니다.”
― 호스피스에 들어오려면 보통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우리 성루카병원은 평균적으로 3주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병상 수가 한정돼 있어서, 한 환자가 사망해야 다음 환자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겠죠?
“그렇죠. 가장 안타까운 건 입소를 기다리던 환자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질 때입니다. 기다리다 그렇게 입소 못 한 채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입원한 환자들은 보통 얼마나 머무르나요?
“평균 20일 정도입니다. 기다리는 시간보다 입원 후 머무르는 기간이 더 짧은 경우가 많습니다.”
― 의료진들에게도 죽음을 자주 접하는 것은 힘들겠지요?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의료진들을 위해 병원에서 심리상담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스피스에 입원한 분들은 대개 재산 등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모두 해결한 후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은 작게 느끼면서 편안하게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스피스는 인문학에 가까운 치료”
호스피스는 임종이 임박한 말기 환자가 마지막 시간을 보다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특수 요양 시스템이다.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연명치료)를 시행하지 않고,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 주는 완화의료(palliative care)에 집중한다. 전국에 124개소가 운영 중이다. 대부분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며, 환자들은 통상 입소 후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정극규 동백 성루카병원 진료원장(사진)은 호스피스를 “과학보다는 인문학에 가까운 치료”라고 설명했다. ― 의학이란 기본적으로 과학에 기반한 것일 텐데요. “대학병원에서 의학은 과학에 가깝지요. 그곳의 타깃은 ‘질병’입니다. 예를 들어 내과에서는 폐렴 환자가 오면 폐렴이라는 병을 치료하고, 외과에서는 충수(맹장) 꼬리를 수술해 제거합니다. 몸을 불편하게 하는 원인을 찾아 없애는 것이죠. 그런데 호스피스에 오는 환자들은 그런 ‘타깃 치료’를 다 거쳤는데도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곳에서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고통을 줄여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컨대 암세포가 계속 커지고 괴롭히니까 그로 인한 증상을 완화해 주는 식입니다. 그런데 신체적 고통이 줄어들면, 그 뒤에 숨어 있던 또 다른 고통이 드러납니다. 이게 호스피스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과제입니다.” ― 어떤 고통인가요?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가족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무료함’입니다. 고통이 줄어들면 인간은 원초적인 외로움, 무력감과 마주하게 됩니다. 내 자율성은 사라지고, 사지는 마비되고, 오줌줄을 차고 누워 있는 상황에서 느끼는 공허감이 크죠. 그래서 호스피스에서는 단순한 의료적 접근만으로는 부족하고, 감성적인 접근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말동무가 되어 주고, 곁에서 손을 잡아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의료진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등 여러 직종이 함께 ‘팀’을 이뤄 환자를 돌보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호스피스를 ‘인문학에 가까운 치료’라고 하는 겁니다.” |
호스피스에서 피아노 치는 프리마 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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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최초 프리마 돈나’ 김청자 전 교수는 현재 유방암 말기다. 하지만 그는 젊었을 때보다 고운 미소를 지으며 “예쁘게 찍어 달라”고 수줍게 요청했다. 이하 사진=고기정 기자 |
― 언제 암 진단을 받았습니까?
“2022년 10월, 한국에서요. 말라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중 유방 쪽에 멍울이 만져졌어요.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한동안 그냥 있었죠. 그런데 멍울이 점점 커져서 결국 한국에 들어와 검사를 받았고, 유방암 2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정밀검사 결과 폐암 의심 소견까지 나와서 의사들은 항암 치료를 권유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당시 아프리카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있었기에 치료를 거절했습니다. 의사들도 깜짝 놀라더군요. 일부는 강하게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 왜 항암 치료를 마다했나요?
“치료를 받더라도 그 전에 아프리카에서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을 마치고 나서 받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다시 말라위로 돌아가 조용히 제 ‘흔적’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 12월에 다시 한국에 들어왔지만 이미 항암 치료를 받지 않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을 주관하신다고 믿기에, 치료로 삶을 연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 이후 2년여 기간은 어떻게 지냈나요.
“경상남도 하동의 지리산 자락에 있는 시골집에서 홀로 지냈습니다. 거기서 약 9개월 있었는데 한국의 추위에 익숙하지 않아서 너무 추웠고, 주변에 병원도 없어 힘들더라고요. 수술을 받지 않은 상태라 종양이 커져 피부 밖으로 돌출되기 시작하니까 혼자 관리하는 게 힘겹기도 했고요. 다시 대학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가 어렵다’며 말기암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때 제가 말기암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호스피스는 삶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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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 성루카병원의 한 병실. 생일을 맞은 환우를 위해 의료진과 가족들이 생일파티를 열었다. 사진=동백 성루카병원 |
“말기암 환자가 되면 호스피스로 연결이 됩니다. 소견서에 ‘말기암 환자’라고 적혀 있어요. 호스피스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는데, 막상 와 보니 너무 평화롭고 좋은 거예요. 로비에는 피아노도 있어서, 오후마다 피아노를 치면서 같은 환우들을 위로해 주고 있습니다. 음악 선교라는 저의 소명이 호스피스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나의 소망이었는데, 여기서 그 바람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로비 한켠의 피아노 앞에 앉은 김청자 교수의 손끝에서 감미로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처음엔 거동이 불편해 보였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시작하자 아픈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정정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의 피아노는 현역 연주자들에 뒤지지 않는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피아노 소리에 이끌린 환우들이 하나둘 로비로 모여들었다. 대부분 침대에 누운 채 힘겨운 몸을 이끌고 온 이들이었지만,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고통을 잊은 듯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병동에 입원한 동생을 돌보고 있다는 한 보호자는 “음악의 순기능이 바로 이런 것”이라며 “호스피스가 이런 곳인 줄 알았다면 진작 입원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주가 끝나자, 스테이션에 앉아 있던 간호사들도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고 “앵콜!”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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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수원교구 동백 성루카병원. 사진=동백 성루카병원 |
“음악은 제 인생 그 자체거든요. 말기암 환자인 제가 이렇게 피아노까지 자유롭게 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일반 병원에서는 더는 손쓸 수 없다며 치료를 포기했지만, 호스피스는 저를 편견 없이 바라봐 줘요. 그래서인지 시한부인데도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 호스피스에 대한 오해로 망설이는 분들도 많다고 하던데요.
“정말 많은 암 환자들이 여기 와서 마지막 준비를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떠나기 전 가족들과의 관계, 재산, 사회적 정리 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잖아요. 아무 준비 없이 세상을 떠나는 건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큰 고통이에요. 저는 호스피스에 오게 된 걸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요. 마지막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축복의 시기거든요. 사람들이 제 고통을 알아주고, 저도 다른 환우들과 마음을 나누며 위로받고 있어요. 살아 있다는 것, 하루하루가 참 소중하다는 걸 이곳에서 느껴요.”
― 사회에서 이뤄 놓은 것이 많으셔서 죽음이 두렵지는 않은가요?
“전혀요. 전 화려하고 충만하게, 하고 싶은 대로 살았어요. 후회 없이 잘 살았기 때문에 떠나는 게 아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충분히 ‘굿바이’를 준비하고 있고, 지금도 그 연습을 하고 있어요. 호스피스는 제 삶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공간이죠.”
‘포니정 혁신상’ 수상한 전진상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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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서울대교구 전진상의원. |
전진상의원의 호스피스병동은 단출하지만 정겨운 공간이었다. 신관과 구관이 이어진 구조의 병동에는 총 10개의 병실이 있고, 병실마다 한 명씩의 환자만 입원해 있었다. 옥상 테라스, 외래 환자 공간, 환자 가족을 위한 휴게 공간도 마련돼 있다.
전진상의원의 중심에 배현정 원장(마리 헬렌 브라쇠르)이 있다. 벨기에의 간호사 출신인 그는 1975년 서울 시흥동의 판자촌에 터를 잡고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이후 중앙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가톨릭의과대학 성모병원에서 가정의학과 1기 전문의가 되었고, 지금껏 40만 명이 넘는 환자를 돌봐 왔다.
― 호스피스센터를 만들어 오래 활동했다고 들었습니다.
“53년 전, 어디서든 봉사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어요. 가난한 분들 중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분들에게 끝까지 도움이 되고 싶어 벨기에에 돌아가 4개월간 호스피스 전문교육을 받고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 어떤 환자들이 주로 찾나요?
“거동이 불편한 말기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 호스피스 하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스피스를 ‘죽음의 대기실’ 정도로 생각할 거예요. 처음 입원할 때 환자나 가족 모두 기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저는 항상 환자들에게 ‘같이 잘 살아 보자’고 말해요. 그러면 환자나 가족들이 깜짝 놀라죠. 이곳은 남은 시간을 ‘함께 잘 살아 보는 공간’입니다. 환자가 싫어하는 처방은 하지 않아요. 최대한 환자의 뜻을 존중하려고 노력합니다. 놀라운 것은, 입원 후 2~3일 안에 환자들 대부분이 상태가 좋아져요. ‘잘 왔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환자들이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임종을 맞이합니다.”
“환자 소망 최대한 존중… 강아지 데려온 환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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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현정 전진상의원 원장. 벨기에 출신인 그는 호스피스가 한국에서 자리 잡게 하는 데 앞장섰다. |
“그래서 저희는 환자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최대한 들어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환자가 있었는데, 일반 병원이라면 금지되었을 일이지만 저는 흔쾌히 ‘맥주 파티 하자’고 했죠. 실제로는 대부분 거의 못 마시지만, 마시고 싶다는 그 마음을 존중해주는 것만으로도 환자에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심지어는 강아지를 데리고 온 환자도 있었습니다.”
― 강아지를요?
“조그만 강아지를 키우던 환자인데 임종 전에 ‘강아지를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눈만 간신히 깜빡이던 분이었는데, 품에 안긴 강아지를 보자마자 손을 움직이며 반응하더라고요.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함께 일하던 의사 한 분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미경 선생님이요. 저와도 아주 가까운 친구였고, 암 환자를 누구보다 정성껏 돌보던 분이었죠. 그런데 본인이 암에 걸렸어요. 저보다 나이가 훨씬 젊은데 참 안타까운 일이었죠. 그래도 마지막까지 환자들을 진심으로 돌본, 참된 의사였다고 생각합니다.”
― 원장께서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어떤 모습인가요?
“자신이 처한 환경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하게 보살핌 받으며 생을 마감하는 것, 저는 그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지막을 돕기 위해 저희는 앞으로도 계속 진료를 이어 갈 예정입니다.”
“죽음도 삶의 일부… 불안·외로움 덜어 주는 게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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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상미 전진상의원 호스피스센터장. |
― 호스피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공의 2년차 때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게 됐어요. 의대에서 배운 것과 달리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걸 느꼈죠. 이후 호스피스 담당이 되면서 환자와 가족을 함께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고, 자연스럽게 종양내과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대학병원 펠로 생활을 하면서도 결국 삶의 마지막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 호스피스 분야로 옮기게 됐고요.”
―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요?
“삶에 굴곡이 많았던 여성 환자 한 분이 기억에 남네요. 처음엔 굉장히 불안하고 방어적인 분이었어요. 치료를 포기하는 곳이라면서 경계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희가 하나하나 설명하고 간병인과 팀원들이 따뜻하게 대해 주면서 환자도 차츰 마음을 열었어요. 하루 만에 사람이 달라졌고, 이후 두 달간 너무 행복하게 지냈어요. 치료는 약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사람 사이의 돌봄과 관계에서 이뤄진다는 걸 그분을 통해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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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상의원은 환자 한 명당 한 개의 병실로 운영되고 있다. 창문 밖으로 짙푸른 녹음이 보인다. |
“맞아요. 현대 의학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많은 환자들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느끼죠. 하지만 우리가 ‘당신은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고, 돌봄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걸 전하면 그 자체가 치료가 됩니다. 진통제도 중요하지만 불안과 외로움을 덜어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치료예요.”
― 가족들의 슬픔도 클 것 같습니다.
“물론 힘들죠. 하지만 가족들도 함께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암과 같은 예측 가능한 죽음은 오히려 덜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잘 돌보고, 잘 보내 줄 수 있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호스피스에서는 사별 가족 돌봄도 중시하고 있습니다.”
“죽음 앞두고 화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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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계순 성바오로가정호스피스센터장. |
생후 149일 된 딸을 떠나보낸 지 1년. 김영은 씨는 지금, 남양주 성바오로가정호스피스센터의 사별 가족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이곳은 말기 환자뿐 아니라 유가족의 마음까지 돌보는 곳이다.
성바오로센터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입원이 아닌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환자들을 의료진이 직접 방문해 돌봄을 제공한다. 채계순(蔡季淳·71) 센터장은 평생을 간호사로 일하며 호스피스 현장을 지켜 온 베테랑이다. “죽음은 삶을 마무리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그의 설명에서 호스피스의 또 다른 얼굴을 들여다봤다.
― 가정형 호스피스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저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가정형 호스피스라 의사의 처방을 받을 수는 없어요. 대신 환자 댁을 방문해 말벗이 되어 주거나 외출 때 동행하기도 하면서 외로움과 불안을 덜어 주는 일을 주로 합니다.”
―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나요?
“죽음을 앞두고 신앙적으로 화해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끊겼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하거나, 가족 간 갈등을 풀고 싶어 하기도 하죠. 저희는 그런 마음을 듣고, 필요한 경우 신부님과 연결해 드리며 중간다리 역할을 합니다. 때로는 말없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곤 해요.”
― 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힘들진 않나요?
“신앙인이니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덜해요. 오히려 더 마음이 쓰이는 건 남겨진 가족들입니다. 고인을 떠나보낸 뒤에도 계속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을 보며,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 가족들의 슬픔을 덜어 주는 프로그램도 실제 운영 중이군요.
“‘뜨락’이라는 사별 가족 프로그램이 있어요. 보통 6~10주 과정으로 운영되며, 남편·아내·자녀 등 사별 유형과 상관없이 모집합니다. 프로그램에서 서로의 상실 경험을 나누며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얻게 되죠.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모임을 이어 가는 분들도 있고요.”
―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들이 달라지는 걸 느낍니까?
“그럼요. 처음엔 말 한마디 못 하던 분이 어느 순간 웃음을 되찾고 가족과의 갈등도 조금씩 줄어드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얻고 있습니다.”
“치료 포기하는 곳 아니다… 인식·제도 개선 필요”
환자와 가족의 마지막을 지키는 호스피스. 그러나 인식과 제도적 한계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정극규 동백 성루카병원 진료원장은 “많은 환자들이 호스피스를 기다리다 입원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난다”며 현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대학병원 중심의 의료는 실적 중심이에요. 회복이 어려운 환자도 끝까지 붙잡고 치료를 시도하죠. 그러다 정말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돼서야 ‘호스피스에 가라’고 권합니다. 그때부터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만, 입원 전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가족들이 치료에 미련을 가지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요.
“호스피스를 ‘죽으러 가는 곳’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서죠. 그래서 ‘죽어도 대학병원에서 보겠다’는 분들도 있죠. 사실은 적극적인 치료가 끝난 시점에서 빠르게 호스피스로 연계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노상미 전진상의원 호스피스센터장 역시 “호스피스는 치료를 포기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요즘은 가족이 인터넷 검색으로 여러 치료법을 찾아 옵니다. 서로 의견이 엇갈리고, 환자는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죠. ‘왜 치료를 못 하게 하냐’고 하소연하는 보호자도 많습니다. 호스피스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비용 부담도 빼놓을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다. 일부 호스피스의 경우 의료보험 혜택이 제한적이거나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한 환자와 가족이 호스피스 돌봄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노상미 센터장은 “간병인 비용이 가장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병원비는 보험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지만, 간병인은 별도죠. 한 달에 350만~500만원까지 드니, 결국 가족 중 누군가가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좋은 죽음이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죽음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명을 다한 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쓸모 없음’이나 ‘짐스러움’으로 왜곡되곤 한다. 스스로 가족의 짐이라 여기고, 살아 있음조차 미안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삶이 존엄하듯, 죽음 또한 존엄해야 한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삶의 끝자락에서 인간다움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 삶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 노상미 센터장에게 들어 보았다.
― 삶의 마지막을 돌보는 의사로서, 좋은 죽음이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나요?
“죽음은 삶의 끝이지만 동시에 삶의 일부입니다. 생애 말기, 병든 시간까지도 모두 존중받아야 할 나의 삶이며, 그 시간 동안에도 충분히 케어 받고 의미 있게 살아갈 자격이 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가족에게 짐이 된다’며 괴로워하지만, 그런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며, 그런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또한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은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삶을 다시 돌아보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죽음을 터부시하지 않고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지금의 삶도 더욱 의미 있어질 수 있습니다.”⊙


호스피스는 임종이 임박한 말기 환자가 마지막 시간을 보다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특수 요양 시스템이다.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연명치료)를 시행하지 않고,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 주는 완화의료(palliative care)에 집중한다. 전국에 124개소가 운영 중이다. 대부분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며, 환자들은 통상 입소 후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