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의 ‘5극 3특’ 현실화… ‘특별’이 ‘보통’이 되는 역설
⊙ 청년 떠나는 전남, 50대 이상마저 이탈하는 광주의 시너지?
⊙ 재정 지원, 특례 부여 등 파격적인 약속… “4년간 20조원” 얘기한 이재명
⊙ 일본 ‘헤이세이 대합병’이 남긴 인프라의 역습… 재정 악화와 부채의 전가
⊙ 광주·전남의 ‘반도체 거점’ 구상… 경기 남부에 1200조원 투자하는 삼전·하이닉스
⊙ 하향식 ‘물리적 결합’의 결말… ‘통합 창원시’의 오늘
⊙ 청년 떠나는 전남, 50대 이상마저 이탈하는 광주의 시너지?
⊙ 재정 지원, 특례 부여 등 파격적인 약속… “4년간 20조원” 얘기한 이재명
⊙ 일본 ‘헤이세이 대합병’이 남긴 인프라의 역습… 재정 악화와 부채의 전가
⊙ 광주·전남의 ‘반도체 거점’ 구상… 경기 남부에 1200조원 투자하는 삼전·하이닉스
⊙ 하향식 ‘물리적 결합’의 결말… ‘통합 창원시’의 오늘

- 사진=뉴시스
정치권의 속도전
김영록(좌) 전남지사와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2월 9일, 총리 공관에서 ‘지역 통합’과 관련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지역 통합을 추진하는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호언장담처럼, ‘이름 바꾸기’와 ‘행정 통합’이 정말 지역 경쟁력을 키우고 국토 균형 발전을 이룰 유효한 수단인지는 정밀하게 검증해야 할 문제다. 수십 년간 얽힌 지역 간 이해관계가 단지 ‘특별법’이나 ‘특별시’란 이름으로 해소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화려한 수사(修辭) 이면에는 논리적 모순이 숨어 있다. 모두가 ‘특별’해지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 ‘특별’은 ‘보통’과 다름없어진다. 이름표를 바꿔도 한정된 정부 예산을 둘러싼 지역 간 ‘제로섬 게임’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정가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이 거대한 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장밋빛 미래’만 강조될 뿐, 그 이면의 행정 비효율과 부작용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실상 실종 상태다.
영국 맨체스터 같은 해외 ‘메가시티’ 성공 모델은 정권의 의지에 따라 추진되고 법률로 강제된 게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점진적으로 협력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합 논의를 거쳐, 정부 권한을 대폭 넘겨받는 ‘상향식 통합’이었다. 런던과 파리의 경우에는 비대해진 수도권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통합’이었다.
속도전에 가까운 국내 ‘하향식 통합’은 주변 지역 공동화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의 헤이세이(平成) 대합병(1999년)이나 15년이 지났어도 내부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창원·마산·진해 통합(2010년)의 전철을 밟을 위험이 있다. 이럼에도 대한민국 전역이 ‘특별’이라는 수식어로 도배되는 현상이 과연 바람직할까. 현재 통합 논의가 가장 구체화된 ‘광주·전남’ 사례를 통해 지역 통합 담론의 실체와 한계를 짚어본다.
2월 3일, 당론에 따라 원내대표 한병도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62인이 발의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안’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를 폐지하고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을 갖춘 ‘통합 광역자치단체’를 수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과 지역 소멸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 법안에는 ‘전남광주특별시’에 대한 국가의 포괄적 재정 지원 의무와 지방세 세율 자율 조정권 등의 파격적인 재정 특례가 명시돼 있다. 여기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권과 투자진흥지구 지정권 등 정부의 핵심 인허가권을 자치단체에 이양하는 등 광범위한 권한 집중을 규정하고 있다.
“글로벌 미래 첨단 산업 거점!”
이와 관련, 대표 발의자인 한 원내대표는 ‘제안 사유’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설치함으로써, 인공지능(AI)·에너지·반도체 등 글로벌 미래 첨단 산업의 거점을 마련하고 농어업의 스마트 혁신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함. 이를 통해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남부권 핵심 성장축을 구축하고, 실질적인 지방분권과 강력한 재정 자립을 실현하여 국가 균형 발전과 국민의 복리 증진에 기여하려는 것임.〉
이 같은 정치권의 상황 인식은 ‘잘못된 처방’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지역 경쟁력은 행정구역의 크기가 커진다고 해서 강화되는 게 아니다. 현재 광주·전남이 직면한 위기의 주요 원인은 ‘협소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내 자생적 성장 동력의 고갈에 있다. 이는 광주·전남뿐 아니라 국내 ‘소멸 위기’ 지역 모두에 해당하는 얘기다.
특별법안에 명시된 ‘글로벌 첨단 산업 거점’은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당장 손에 잡히는 미래가 아니다. 산업 생태계 조성에 최소 15~20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사이 광주와 전남은 ‘속도전식 통합’이 불러올 내부 갈등과 초고령화라는 직격탄을 먼저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20년 뒤의 불확실한 ‘미래’보다 행정 비용 폭증, 역내 갈등 고조, 지역 소멸 가속화라는 ‘확정된 위기’를 먼저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2025년 12월 기준, 광주·전남이 통합하면 외형적 인구는 약 317만 명으로 성장하지만, 내실은 이와 다르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76만 명을 넘어서며 전체 고령화율이 25%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결국 초고령 사회 진입을 목전에 뒀거나 이미 노쇠화가 깊어진 두 지역의 통합은 ‘지역경쟁력 제고’의 첫발을 떼기도 전에 막대한 복지비 부담의 공유와 ‘쇠퇴 구조’의 결합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데이터처의 ‘국내 인구 이동 통계’에 따르면 광주는 최근 5년간 ▲2021년 2439명 ▲2022년 4215명 ▲2023년 6236명 ▲2024년 5860명 ▲2025년 8034명 등 2만6784명에 달하는 청년층(2030 세대)의 순유출이 발생했다. 50대 이상도 같은 기간 총 1만2259명이 광주를 떠났다. 통합의 중심축인 광주마저 활력을 잃고 쇠락하는 셈이다. 같은 기간, 전남은 3만2184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타 시도로 전출했다. 대신, 노후 진입을 앞둔 거대 인구집단과 현행 복지체계의 수혜층이 혼재된 ‘50대 이상’은 2만3332명 순유입됐다.
‘규모의 불경제’의 함정
고령화율이 더 높아지는 상황에서 통합이 이뤄진다면, 복지 지출 증가는 선행하고 산업 투자 성과는 후행할 수밖에 없다. 복지 기준을 하나로 맞추는 과정에서 서비스 수준은 대체로 더 높은 기준에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일시적 부담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고정 지출 증가로 이어진다. 특히 고령 인구 비중이 높은 전남의 인구 구조를 감안하면, 통합 이후 복지 예산은 경기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늘어날 여지가 크다. 인구 구조가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까운 시일 안에 고령화 속도가 둔화될 가능성도 적다.
물론 법안은 통합 이후 파격적인 재정 특례를 약속하고 있지만, 재정 지원은 기한이 있다. 이런 지원은 통합 초기의 재정 충격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역할에 가깝다. 고령화율 25%에 육박하는 통합시에서 추가로 확보된 예산은 폭증하는 노인 복지와 행정 유지비로 우선 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한이 정해진 정부 지원금이 끊기는 순간, 비대해진 통합 지자체는 재정 압박을 겪을 수 있다. 한 번 상향된 복지 기준은 다시 낮추기 어렵고, 확대된 조직 규모는 줄이는 게 쉽지 않아 시간이 흐를수록 재정 구조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광범위한 행정 구역을 단일 체계로 묶는 과정에서도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서비스 전달망을 넓히고 관리 단계를 늘리면 행정 관리비가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규모가 커지면 효율이 자동으로 개선된다는 기대와 달리, ‘규모의 불경제(기업이 생산 규모를 지나치게 확대할 때 생산 단위당 평균 비용이 증가하는 현상)’가 전남광주특별시의 발목을 잡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규모의 경제’란 환상
윤호중(가운데)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장우(좌) 대전시장, 김태흠(우) 충남도지사가 2월 6일 행정 통합 주요 현안 논의차 만났다. 사진=뉴시스‘전남광주특별시’에 찬성하는 측이 내세우는 핵심 논거 중 하나는 ‘규모의 경제(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비용이 감소하는 현상)’다. 광주와 전남을 합쳐 인구 320만 명의 거대 경제권을 형성하면 내수 시장이 확대돼 수도권과 대등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규모의 경제는 생산 규모 확대에 따른 단위당 비용 절감을 전제로 하지만, 앞서 살펴본 인구 이동 통계처럼 광주와 전남은 산업의 거점과 배후지라는 상호 보완 관계가 아니라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라는 쇠퇴 구조를 공유하는 사이다. 이런 인구 구조와 재정 여건은 통합 특별시의 재정이 출범 단계부터 국가 지원에 크게 의존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더불어민주당은 통합 법안을 통해 전남광주특별시에 각종 재정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는 ‘임시방편’ 성격이 짙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안에는 ▲행정 통합 비용 ▲교통망 연계 비용 ▲권한 이양 비용 ▲지역균형 발전 및 인구소멸 대응 비용 ▲SOC 확충 비용 등에 대한 국가의 포괄적 지원 의무가 명시돼 있다. 다만 구체적 지원 범위와 기준, 집행 방식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서 이재명 대통령은 1월 21일 “광역 통합 시 연간 최대 5조원까지, 임기 내 통합 시 최대 20조원 정도 지원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시적 재정 지원의 ‘함정’
법안 제43조는 전남광주특별시에 재정 지원을 통합 이전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규정한다. 정부 재량에 따른 보조금 지급, 투자·융자, 시책사업 우선 지정도 명시돼 있다. 법안에는 지자체 재정 핵심인 교부세는 통합 이후 10년간 보통교부세 산정 시 기준재정수요액을 최대 25%까지 가산하는 특례도 있다.
기준재정수요액은 지자체가 1년 동안 기본 행정과 복지 서비스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산출한 ‘기준액’이다. 여기에서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 지자체 자체 확보 수입인 ‘기준재정수입액’을 뺀 차액을 보통교부세로 지급한다. 기준재정수요액을 25% 가산하면 실제 필요 비용이 10조원이라도 이를 최대 12조5000억원으로 간주해 교부세를 더 준다. 다만 의무 규정이 아니므로 법안 통과 후에도 구체적 적용 여부와 수준은 행정안전부 판단에 따른다.
지방채 관련 특례도 있다. 전남광주특별시는 법정 한도를 초과해 지방채를 발행할 수 있고, 정부는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이를 우선 인수하거나 매입한다. 아울러 통합 이후 10년간은 재정위기 단체나 재정주의 단체 지정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이는 부채 급증이나 재정 악화 시에도 10년 동안 정부 재정 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걸 의미한다.
국가의 의무 지원, 교부세 가산, 지방채 특례, 재정위기 단체 지정 유예가 동시에 적용되면 재정 지출을 늘릴 유인은 커진다. 반면 사업의 타당성과 효율성을 점검하는 장치는 약해질 수 있다. 산업 클러스터 형성과 인구 유입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을 경우, 전남광주특별시는 늘어난 행정·복지·인프라 지출을 떠안은 채 재정 특례 종료 시점을 맞게 된다. 그렇게 재정 지원이 끝난 뒤에는 늘어난 지출 구조와 누적된 부채만 남을 수 있다.
‘헤이세이 대합병’의 실상
이 같은 부작용은 일본의 헤이세이 대합병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보다 앞서 저(低)출산과 지방 소멸의 위기를 겪던 일본은 1999년부터 약 10년간 대대적인 행정 구역 개편을 시행해 기초지자체 ‘시·정·촌(市·町·村)’을 3232개에서 1730개로 줄였는데, 각종 부작용이 속출했다. 대표적인 게 합병특례채(合倂特例債)에 의한 지방 재정 건전성 악화였다.
일본 정부는 ‘헤이세이 대합병’ 당시 합병을 유인하기 위해 참여 지자체에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해당 지자체가 도로, 공원, 복지 시설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합병특례채’를 발행하면, 정부는 지자체가 상환해야 할 원리금의 70%를 지방교부세로 대신 갚았다.
원리금의 상당 부분을 중앙정부가 교부세로 보전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통합 직후에는 재정 부담이 제한적으로 보였다. 실제로 다수의 합병 지자체는 이 제도를 활용해 노후 시설을 정비하고 행정 기능을 재편했다. 문제는 정부의 재정 지원이 당연히 ‘공짜’가 아니란 점이었다.
미야시타 도모히사(宮下量久) 도요(東洋)대 경제학부 교수와 나카자와 가쓰요시(中澤克佳) 주오(中央)대 경제학부 교수는 2014년 발표한 논문 〈합병 자치단체의 지방채 발행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통해 이를 실증했다. 두 교수는 해당 논문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일시적 혜택이 해당 지역의 지출 규모를 인위적으로 확대시켜 부채 증가 구조를 고착화하고, 그 비용을 합병과 무관한 타 지역 국민에게 떠넘기는 구조적 결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을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헤이세이 대합병’ 참여 지자체들은 일반 지방채 발행을 줄이는 대신 정부 지원이 수반되는 특례채를 적극 활용했다. 이 결과 일반채 발행 규모는 감소했지만, 특례채 규모가 더 커지면서 전체 지방채 잔액은 비(非)합병 지자체보다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같은 결과는 정부가 제공한 한시적 재정 인센티브가 지자체의 차입 유인을 자극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특례채 원리금의 상당 부분을 교부세로 보전하는 구조는 합병 지자체가 부채 부담의 일부를 외부화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를 낳는다. 이를 고려하면, 법안이 명시한 정부의 재정 인센티브는 지자체의 지출 확대와 부채 의존을 유도할 수 있으며, 그 부담을 합병과 무관한 지역까지 확산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지역 경제’ 누르는 ‘통합’의 무게
합병특례채 지원이 끝난 뒤 지자체 부채가 늘어난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 특례채로 건설한 인프라의 유지·관리비와 인건비가 꾸준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비용은 결국 지자체가 자체 재원으로 부담해야 한다. 그만큼 경상경비 비율이 높아지고, 재정 구조는 점점 경직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재정 지원의 성격이다. 통합 지자체에 투입되는 정부 재원은 결국 다른 지역 국민이 낸 세금 또는 미래에 갚아야 할 ‘빚’이다. 지원 종료 후에 정부에 대한 재정 의존이 심화한 지자체의 고정비가 재정을 압박해 부채가 증가할 경우 그 부담 역시 국가 재정 전체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통합의 비용이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같은 일본의 사례는 한시적 국고 지원을 유인으로 삼아 단기간에 지역 통합을 추진할 경우 어떤 결과가 뒤따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통합 직후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위해 시설 투자를 확대하고, 이를 정부 재정으로 뒷받침하는 방식은 초기에는 효과가 있는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원이 종료되면 유지·관리비와 인건비 등 고정 지출은 그대로 남는다.
단기 인센티브가 사라진 자리에 막대한 시설 유지비와 인건비만 남을 경우 지자체의 가용 재원은 빠르게 줄어든다. 이는 신규 사업 투자를 제약하고, 결국 지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인구 감소와 세입 기반 축소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역이 통합될 경우에는 더 위험하다.
이런 이유로 대규모 국비 지원이나 특례성 채무를 전제로 한 지역 통합 논의는 초기 투자 효과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통합 이후 10~20년 동안의 유지관리비, 인건비 구조, 세입 전망을 포함한 장기 재정 전망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정부의 한시적 보조금이 끝난 뒤에도 자생력이 유지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면, 통합은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재정 부담의 전가와 대물림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온갖 특례 명시했지만…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법안이 제시한 ‘AI·에너지·반도체 등 글로벌 미래 첨단산업의 거점’이라는 ‘미래’가 실현된다면 앞서 제기한 문제들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청사진’의 실현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안은 기업 유치를 위해 파격적인 세제 자율권과 가업상속공제 특례를 규정해 전남광주특별시로 이전하거나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 조세 부담을 완화하는 근거를 두고 있다. 산업 기반 확충을 위한 각종 특례도 포함했다. 광역 교통망과 도로 등 기반 시설 확충 사업에 대해 국가 재정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전략 산업 육성과 관련된 사업에는 예비타당성 조사 특례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해 행정 절차를 단축하는 장치를 뒀다. 전남광주특별시를 글로벌 물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한 시책과 국제물류특구 지정·지원 근거도 담았다.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 지역 대학과 산업계가 연계하는 특성화 대학 지정 및 학과 신설·정원 조정 등에 관한 특례를 둬 반도체·AI 등 첨단 산업 맞춤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교육·의료·문화 등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각종 지원 근거를 규정해 생활 인프라 확충을 병행하겠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주소만 옮겨 혜택을 챙기는 ‘체리 피킹’ 방지 장치도 뒀지만, 그럼에도 우려가 가시지 않는 이유는 제도와 시장의 괴리 때문이다.
우선 교통망 완공과 인재 배출에는 최소 5~10년이 걸리는 반면, 기업은 당장 활용 가능한 인프라를 원한다. 세제 혜택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상쇄하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실제로 2022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매출 1000대 기업의 89.4%는 지방 이전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2026년 중소기업중앙회 설문 조사에서는 수도권 기업 99.5%가 이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설문 참여 기업들이 꼽은 ‘지방 이전’의 핵심 걸림돌은 교통·물류 인프라 미비와 인력 확보의 어려움이다. 실제 유인책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세제 혜택보다 교통·물류 지원과 인력 수급 여건 개선을 우선순위에 뒀다. 지방 이전을 고려하더라도 충청권처럼 기존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진 지역을 선호했다.
삼성·SK 하이닉스의 이전 가능성?
경기도 용인시 소재 국가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공사 현장.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집적경제의 극대화’를 위해 이곳을 비롯한 경기 남부권에 1200조원을 투자한다. 사진=뉴시스법안에 명시된 전남광주특별시의 특화 산업을 고려하면 더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AI 산업은 고(高)숙련 인력이 경쟁력의 핵심이기에 수도권의 교육·의료·문화 인프라와 연구·투자 네트워크를 대체하기 어렵다. 반도체 산업 역시 용인·평택 등에 구축된 초대형 클러스터와 전력·용수·협력업체 생태계를 세제 특례만으로 옮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전남광주특별시가 ‘AI·에너지·반도체 등 글로벌 미래 첨단산업의 거점’이 되려면, 현실적으로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해당 지역에 이전해 앵커기업(협력업체 등의 동반 입주를 유도해 산업단지에 활력을 불어넣는 고용·투자 규모 면에서 경제적 파급력을 가진 기업)으로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주도해야 한다.
하지만 두 기업은 이미 경기 남부권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데 약 120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투자를 진행하거나 계획하고 있다. AI·반도체 산업 특성상 부지 조성부터 전력·용수 인프라 구축, 장비 반입까지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이미 착공된 사업을 철회하고 입지를 옮기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가 결정하고 전폭적인 혜택을 약속한 사업을 진행하는 도중에 이들 기업이 돌연 전남광주특별시로 향하는 일은 비현실적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와 관련해서 1월 21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해 정부가 (호남으로) 옮기겠다고 한다고 옮겨지겠는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정부 정책으로 결정한 것으로 제가 뒤집을 순 없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이 대만 TSMC 등과 초미세 공정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생산 거점 이전으로 5~10년의 세월을 허비한다면 ▲세계 시장 점유율 하락 ▲국제 경쟁력 상실을 넘어서 기업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고급 인력 다수가 수도권 근무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지방 이전은 인재 이탈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숙련된 엔지니어의 경험과 수율 관리 역량이 핵심 경쟁력인 산업이기 때문에, 단 한 명의 핵심 설계자나 공정 전문가의 이탈도 공정 전체에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온다.
기업을 수도권에 붙잡아두는 요인은 비단 인적 자원뿐만이 아니다. 화성·평택·이천·용인 등지에 밀집한 소재·부품·장비 기업 중심의 공급망, 이미 구축된 송전망과 용수관로 등 물리적 인프라의 안정성은 기업 입장에서 포기하기 어려운 산업 생태계다. 이를 뒤로한 채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같은 기업이 전남광주특별시로 가야 할 합리적 이유를 찾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세제 혜택보다 중요한 ‘수도권 네트워크’
에너지 산업의 경우엔 전남의 지리적 강점 덕분에 발전 설비 배치(태양광·풍력발전단지 등)는 가능할 수 있지만, 본사와 연구 기능까지 동반 이전할지는 불확실하다. 대규모 발전 단지 조성이라는 외형적 성장을 넘어, 기업의 심장부인 본사와 연구 기능까지 끌어오는 건 현재의 세제 인센티브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산업은 대규모 사업 자금 대출과 정부 인허가에 의존한다. 금융기관과 산업통상자원부가 밀집한 수도권에서 멀어지면 정보력과 관계망 구축 경쟁력을 잃게 될 위험이 크다. 에너지 기업의 연구소 이전도 쉽지 않다. 에너지 기술 개발은 물리적 실험 외에 인공지능, 신소재 등 첨단 분야와의 협동 연구가 필수다.
수도권의 고도화한 기반 시설과 대학 연구진과의 긴밀한 협력이 끊어지면 연구 효율은 떨어진다. 앞서 살핀 설문 조사 결과처럼 수도권 소재 기업 인력들은 지방 이전을 꺼린다. 연구원 같은 고학력 전문 인력은 수도권의 교육·의료 여건을 포기하는 대신 이직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따라서 기업 처지에서 인재 확보가 어렵고 사업 관계망 구축이 제한적인 지역으로 본사나 핵심 부서를 옮겨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합리적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혁신도시의 ‘빨대 효과’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의 전경.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전국 7개 혁신도시로 순유입된 11만 6000명 중 수도권에서 유입된 인구는 전체의 19.5%에 불과했다. 사진=뉴시스광주·전남 통합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통합’과 ‘특별화’는 지방의 소모적 경쟁을 부추길 위험이 크다. 수도권 인구 유입보다 인접 지역의 인구와 자원을 흡수하는 ‘제로섬 게임’이 전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의 제로섬 게임이란, 전체 인구가 늘지 않은 채 지역 간 재배치만 이뤄져, 한 지역이 성장하면 다른 지역이 쇠퇴하는 구조를 말한다.
국토연구원이 2018년 12월 발표한 보고서 〈혁신도시와 주변 지역의 인구이동 특성과 대응과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전국 7개 혁신도시로 순유입된 인구는 약 11만6000명이다. 이 가운데 혁신도시가 위치한 같은 시·군의 원(原)도심에 살던 주민들이 혁신도시로 이동한 인구가 약 6만9000명으로 전체의 59.3%를 차지했다. 같은 시·도 내 다른 지자체에서 유입된 인구도 약 1만5000명으로 13.3%에 달했다. 전체의 72%는 같은 권역 내부의 인구 재배치에 불과한 셈이었다. 반면 수도권에서 유입된 인구는 약 2만3000명으로 전체의 19.5%에 머물렀다.
이 통계는 혁신도시가 수도권 인구 분산이라는 본래 조성 목적과 달리 인근 지역의 인구와 자원을 흡수하는 ‘빨대 효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정 거점 도시를 향한 인구 쏠림 현상은 원도심 공동화와 주변 중소도시의 쇠퇴를 가속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전남광주특별시와 같은 거대 통합 자치단체가 출범할 경우 수도권 일극 체제 해소라는 명분보다 지역 내부의 불균형을 심화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통합 창원시’의 현주소
전국 GRDP가 70.35% 성장(2010~2022년)하는 사이 ‘통합 창원시’의 성장률은 40.53%에 머물렀다.지금까지 살핀 ‘지역 통합’의 문제점은 이미 현실에서 확인된 일이다. 우리는 정치권 주도로 급하게 추진된 대규모 행정 통합의 결과를 ‘통합 창원시’ 사례를 통해 목격했다. 2010년 7월 1일, 창원·마산·진해 세 도시가 하나로 뭉친 ‘통합 창원시’는 대한민국 지방자치 역사상 인위적인 행정구역 개편의 가장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정부가 주도한 통합의 핵심 명분은 ‘행정 효율성 제고’와 ‘거대 경제권 형성’이었다. 마산의 수출자유지역, 창원의 국가산업단지, 진해의 해군기지와 신항만을 하나의 행정 단위로 묶어 동남권의 강력한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메가시티를 구축해 광역시에 준하는 행정·재정 권한을 확보하고 도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산도 깔렸었다. 산업 분야는 다소 다르지만, 그 논리와 구상은 지금 추진되는 ‘지역 통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보면 더 그렇다. 2010년부터 2022년(최신 통계)까지 전국 지역내총생산(GRDP)이 70.35% 성장하는 사이 ‘통합 창원시’의 성장률은 40.53%에 머물렀다. 전국 평균의 58% 수준에 불과하다. 경남 경제에서 창원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38.4%에서 2022년 36.9%로 줄었다.
타 도시와의 비교는 창원 경제의 실상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2010년 당시 창원보다 경제 규모가 작았던 대전(81.26%)과 광주(77.05%)는 전국 평균을 웃도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구 규모가 비슷한 수원시(74.18%)와 인구 차이가 크지 않은 울산(52.77%) 역시 창원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이를 두고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 재편이 지연된 데다, 통합 이후 확대된 행정구역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택과 집중’ 대신 행정 비용이 증가하면서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가 분산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통합 당시 제시된 ‘행정 효율성 제고’와 ‘규모의 경제’라는 논리는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고, 오히려 성장 동력 약화라는 역설적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이런 가운데 통합 초기부터 불거진 시청사 입지 갈등은 물론 지역 간 경제적 불균형과 정서적 이질감은 여전히 실질적인 지역 통합의 걸림돌로 남아 있다. ‘화학적 융합’이라는 과제를 아직 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서 최종민 계명대 행정학과 교수는 논문 〈지방자치단체 행정구역 통합의 효과에 관한 연구〉(2025년 11월)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첫째, 창원특례시 행정구역 통합이 행정효율성의 개선으로 이어지기에는 부족하였다. 통합에 따른 행정비용지출, 지방자치단체 간의 수준, 청사운영비, 행정서비스 이중화 등 예상치 못한 문제로 인해 통합 전후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비효율성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지역 산업 경제활성화 차원에서도 행정구역 통합의 기대할 만한 효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중략) 기업 유치나 고용의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은 행정구역 통합 이후 공공 중심 성장의 한계를 보여준다.
셋째, 지역 주민의 편의성과 복지 체감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구역 통합 이후 지역 간 균형 발전을 이루지 못한 채 주민 간 갈등과 체감도가 낮은 것을 고려한다면,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사회적 통합과 편의성 개선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되돌릴 수 없는 ‘현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월 12일 전체회의를 열고, 3개 행정 통합 특별법안을 각각 가결했다. 사진=뉴시스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월 12일 전체회의를 열고, 3개 행정 통합 특별법안을 각각 가결했다. 광주·전남과 대구·경북 통합 법안은 여야 합의, 대전·충남 통합 법안은 여당이 주도해 의결했다. 향후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통합 법안들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곧 본회의에서 의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회의 가결 후 정부 이송→국무회의 의결→대통령 공포 과정을 밟으면, 각 지역은 즉시 통합준비위원회를 조직해 통합 실무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이처럼 ‘지역 통합’은 사실상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현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인 만큼 최종 공포까지 속전속결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법적 절차의 완결성이 지역의 자생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통합의 성패는 결국 정교한 설계에 달렸다. 그렇지 않을 경우 통합은 ‘동반 몰락’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정치권은 지금부터라도 속도전을 지양하고, 앞서 살핀 재정 위험과 지방의 ‘제로섬 게임’ 등의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숙의해야 한다. 또 각 지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견인할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