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이 사람

여행작가 이정식의 ‘원더풀 라이프’

“가보고 싶은 여행지 대라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암 수술과 항암치료 받으며 잇따라 여행서 펴내
⊙ “억울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따름이라 생각”
⊙ 2021년 11월 《여행작가노트》를 펴내며 언론사 CEO에서 여행작가로 전향
⊙ 여행 통해 다양한 삶 깨달아…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모르는 것이 태반”

李廷湜
1954년생. 서울대 사범대 지구과학교육과 졸업, 홍콩대 중문과정 수료 / CBS·KBS 기자, CBS 사장·노컷뉴스 회장, 뉴스1 사장·부회장, 서울문화사 사장·부회장 역임 / 서울대 언론인대상(2009) 수상
여행작가 이정식 전 CBS 사장.
  스스로 ‘여행작가’라 칭하는 이정식(李廷湜·68)은 잘나가는 전직 CEO다.
 
  CBS(기독교방송) 창립 49년 만에 처음으로 공모제를 통해 사장에 선출됐고 CBS 노컷뉴스 회장을 지냈다. 이후 뉴스1 사장과 부회장, 2020년 2월까지 서울문화사 사장, 부회장으로 재직했다. 방송과 통신사, 오프라인 잡지와 출판까지 온·오프 매체를 모두 지휘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심지어 애창 가곡집 음반을 4차례나 냈으니 예술적 재능마저 갖춘 만능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2020년 2월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암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41년 만에 은퇴를 하자마자 병원 신세를 지는 처지가 되었다. “한창 일할 때 찾아오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최근 그는 《여행작가노트》(반딧불이 刊)를 펴냈다. 책에는 암 판정을 받고 혼자 다녀온 몽골 여행기가 수록되어 있다. “일생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여행의 기록”이다.
 
 
  대장암, 간과 폐로 전이돼
 
이정식 전 사장이 최근 펴낸 《여행작가노트》.
  서울 목동에서 ‘여행작가’ 이정식을 만났다.
 
  “2020년 3월 9일 대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간암은 전이(轉移)암이었습니다. 그 순간 움찔했죠. 그때부터 암의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했어요. 그해 4월 2일 수술을 받았어요.”
 
  이후 수술과 항암치료를 병행했는데 그해 연말까지 항암주사를 12번 맞았다. 그런데 2021년 7월 다시 암이 폐로 전이됐다는 판정을 받아 항암주사를 8번 더 맞았다. 앞으로 4번을 더 맞아야 한다.
 
  그는 “암 환자가 되어 보니 수술보다 항암치료가 더 힘들더라. 입안이 헐고 어지럼증도 오고…, 그래도 구토 증세는 별로 안 왔다”며 웃었다.
 
  투병 중이던 2021년 1월 11일 어머니 유순례(劉順禮·1931~2021년) 여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저와 같은 아파트 단지 내 5~6분 거리에서 혼자 사셨습니다. 매일 일과처럼 들렀지요. 직장에 다닐 때도 퇴근길에 반드시 어머니 댁에 들렀다가 집에 왔으니까요.”
 
  어머니는 작고할 때까지 아침을 직접 지을 정도로 건강했다. “다만 소파에서 주무시다가 떨어져서 왼쪽 옆 가슴 쪽이 결리고 편찮으셨다”고 한다. “연세가 든 분들은 연골이 경화되어 통증이 오래간다는 말을 들었지만 돌아가실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운명(殞命)의 그날 아침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오한이 나서 아침을 못 하겠다. 좀 와볼래?”
 
 
  한두 달 만에 체중 15kg 빠져
 
항암치료를 받으니 머리카락이 빠져버렸다. 이정식 전 CBS 사장은 여전히 몸이 근질근질하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무렵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 품에서 해열제를 한 알 먹고 누웠다가 이날 오후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셨던 어머니. 생전에 어머니는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어머니는 언제나 상냥하고 인정 많은 따뜻한 분이셨어요. 늘 주변에 잘 베푸셨지요.
 
  중학 시절부터 등산 다니면서 어머니 걱정하시게 한 불효도 많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등산 자체를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던 때인데 더구나 저는 고교 시절 산악반에 들어가 암벽등반을 한다면서 주말이면 자일을 어깨에 메고 다녔으니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셨을까요?”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2021년 봄부터 하루 1만 보 이상 꾸준히 걸었다.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지만 상황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 CEO 시절, 건강검진을 받았을 텐데….
 
  “대장 내시경을 안 받았어요. 10년 정도 안 받았더니 그사이 암세포가 자란 겁니다. 물론 검사를 받았다면 조기에 발견했을 테지만 운명이란 알 수 없어요. 지금 당장은 운명을 피해간다고 해도 엉뚱한 사고가 나고 엉뚱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운명은 결국 신(神)의 뜻에 달린 겁니다. 억울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따름이라 생각해요.”
 
  항암치료 이후 그는 커다란 신체적 변화를 겪었다. 평소 81~82kg을 유지했는데 한두 달 만에 65kg이 되었다. 머리카락도 빠져버렸다.
 
  “체중이 빠진 후 살펴보니 엉덩이와 허벅지 살이 가장 많이 빠진 듯합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걸음걸이에 문제가 생겼어요. 걸음이 느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휘청거리기까지 했죠. 동네를 산책할 때는 지팡이를 몇 달 짚기도 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톨스토이가 찾던 삶과 죽음의 答
 
  이 대목에서 이정식 전 CBS 사장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담담한 말투, 단단한 음성이었다.
 
  “죽음은 빨리 올 수도 있고 천천히 올 수도 있는데 자기 운명에 맡기는 거지요.
 
  톨스토이도 인생에 대해 고민을 어지간히 많이 한 사람인데 50세 무렵부터는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해답을 찾으려 애썼어요. 심지어 ‘인생은 무의미하며 결국은 자살이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죠.
 
  노년이 되면 누구나 톨스토이와 같은 고민을 합니다. 저는 톨스토이를 읽으면서 그와 인생의 그 같은 궁극적인 고민거리를 나누었죠.
 
  농민들의 땀 흘리는 삶과 신앙을 보고 인생의 의의를 다시 생각하게 된 톨스토이는 자살하지 않고 82세까지 비교적 장수했습니다. 그는 부인 소피야와의 갈등으로 무작정 가출했다가 시골 간이역 역장 관사에서 죽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원치 않는 것은 자기가 누려왔던 행복한 것들…, 가족과 나눈 행복과 땀 흘려 이룬 재산, 즐거움을 준 취미와 같은 인생살이와 이별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죽음으로 놓치기 싫은 거지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죽기 어렵고, 없는 사람일수록 죽음이 편안하다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농부의 삶과 농부의 죽음이 가장 자연스럽고 좋은 것’이라고 말했죠. 스스로 농민의 삶을 따라 직접 농사를 짓고 밭갈이도 하면서 ‘이렇게 살다가 죽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톨스토이만큼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한 이도 많지 않지만, 결국 ‘이것이 삶이고, 저것은 죽음’이라 정의를 내린 현인(賢人)은 인류사에 없습니다.”
 
 
  野生 ‘마멋’의 추억
 
이정식 여행작가와 아내 고옥주 시인.
  ― 사모님이나 가족, 동료들이 많이 놀랐겠어요.
 
  “항암치료를 받으면 입맛이 없어져 잘 먹지를 못하니까요. 아내는 ‘저 사람이 뭘 만들면 잘 먹을까’ 늘 그 고민을 합니다. 정말 감사하죠. 아내는 시인입니다.”
 
  아내인 고옥주(高玉柱·63) 시인은 시집 《나무나무》 《알의 힘》 《다시 목련》 《제비꽃 정원》 등을 펴냈다. 그는 아내의 시 ‘위로’를 애송한다.
 
  사랑할 땐
  눈빛 하나 손짓 하나로도
  꽉 차오르던 마음
  왜 한 외로움은
  하나의 위로로는 턱없이 부족한 걸까
  그래서 세상엔 사람이 넘쳐나야 하지
 
  가을날 사방 흩날리는 나뭇잎
  나무가 저 많은 나뭇잎을 품었던 건
  그만큼 외로웠음일까
 
  스쳐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
  수북이 쌓인 낙엽 하나하나
  언젠가 누군가에게
  사무치는 위로였다는 것이
  나를 노랗게 어루만지는 가을날
 
  너를 알기 위해 이 세상을 살아보는 것이다.
 
  -고옥주의 시 ‘위로’ 전문

 
  이정식 전 사장은 항암치료 중에도 늘 여행을 꿈꾸었다.
 
  치료 중인 2020년 7월과 2021년 1월에 문학여행집인 《러시아 문학기행1, 도스토옙스키 두 번 죽다》와 《러시아 문학기행2,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에서 살아나다》를 펴냈다.
 
  톨스토이에 대해서도 꽤 써놓았는데, 현장 취재를 위해 코로나19가 완화되는 대로 여행에 나설 생각이란다.
 
  이와 별개로 2021년 11월 《여행작가노트》를 펴냈다.
 
  “이 책에는 몽골 알타이산맥의 포타닌 빙하지대, 톈산산맥의 대초원, 인도 북부 히말라야산맥 속에 있는 과거 은둔의 왕국이었던 라다크, 그리고 혼자 갔던 히말라야 트레킹과 시베리아 겨울 여행 등을 담았어요.
 
  지금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책 속의 지역은 대부분 60대에 다녀온 곳입니다. 여행 또한 제 인생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며 썼어요. ‘위드 코로나’ 시대, 여전히 여행을 꿈꾸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길 바라면서….”
 
  ―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어딘가요.
 
  “라다크 여행 때 관광객과 노는 야생동물 마멋(Marmot)을 보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인도와 중국 티베트 자치구 사이의 국경을 이루는 해발 4300m에 위치한 커다란 소금 호수인 판공초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라다크의 중심 도시 ‘레’로 돌아오는 산길에서였어요.
 
  타고 가던 지프가 길 옆에 잠시 섰는데, 크고 작은 마멋 서너 마리가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癌 역시 인생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것 중의 하나”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야생동물 마멋.
  마멋은 고산 평원에 사는 가장 큰 다람쥣과 동물. 털은 황갈색이며 얼굴은 귀 짧은 토끼를 닮았다. 몽골 등에서는 타르박이라고 불리는 인기 있는 사냥감. 그런데 마멋이 사람들에게 다가와 카메라를 만져보기도 하고 곧추서서 얼굴을 쳐다보기도 하며 함께 놀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사람과 야생동물이 그처럼 평화롭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습니다. 라다크는 인도에 속해 있으나 주민들은 대부분 티베트 불교도였습니다. 라다크가 불심이 깊은 땅이어서 야생동물을 함부로 죽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장면이 가능했을 겁니다. 야생동물도 상대가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사람에게도 친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라다크에 가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매우 값지고 흐뭇한 경험이었습니다.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모르는 것이 태반입니다.
 

  과거 동티베트에 갔을 때 부인 한 사람이 세 형제와 더불어 부부로 사는 일처다부(一妻多夫) 집에서 민박한 일이 있었죠. 가정은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여럿이었는데, 맏형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다른 두 형제는 작은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했어요. 그 같은 삶의 형태는 거친 환경의 산물입니다. 우리 식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여행을 통해 인정도 배우고 겸손도 배웁니다. 누구에게 닥칠지 모르지만 암 역시 인생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암을) 만났다고 억울해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생 여행에서 제 행보가 그쪽으로 갔기 때문에 만나게 된 것이니 그걸 운명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암 수술 직전 혼자 떠난 몽골 여행
 
몽골 홉스골 여행 도중 빗속에 떠오른 쌍무지개 모습이다.
  ― 암 수술을 받기 직전, 그러니까 코로나19가 확산되어 한·몽 간 비행노선이 중단되기 직전에 겨울 몽골 여행을 혼자 다녀왔군요.
 
  “원래는 사진작가, 동호인들과 함께 가기로 했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한두 사람씩 포기하더니 결국 저 혼자 남게 됐어요. 시베리아 등에도 몇 차례 혼자 여행한 경험이 있어서 그냥 가기로 마음먹었죠.”
 
  다행히 가이드도 좋다고 해서 1인 여행이 가능했다.
 
  〈눈 내린 숲의 풍경이나 너르디너른 설원으로 변한 여름의 그 푸르렀던 초원, 가느다란 굴뚝으로 연기를 내뿜고 있는 몽골의 이동식 둥근 천막집인 흰색 게르 등, 그런 것을 보지 않고 몽골을 보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근년에는 몽골에 눈이 많이 오지 않아서 겨울에도 온통 하얗게 눈이 쌓인 풍경을 보기 어려웠다고 하는데 (중략) 내가 가 있는 동안에도 눈이 자주 내렸다.〉(22쪽)
 
  이정식 전 사장의 말이다.
 
  “몽골에서의 별 사진은 전통 천막인 게르를 넣고 찍는 것이 구도상으로나 이국적인 풍경으로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게르 쪽으로 가고 있는데 눈 내린 어두운 숲 앞에서 개가 한 마리 지나갔어요. 멀지 않은 거리였죠.
 
  처음엔 개로 생각했는데 짖지도 않고 조용히 가는 것이 조금 이상했어요. 가만 보니 꼬리가 처진 게 영락없이 늑대처럼 보였죠. 순간 전신에 긴장감이 ‘쫙’ 흘렀습니다.”
 
 
  “영락없이 늑대처럼 보였죠”
 
2020년 2월 19일 몽골여행에서 촬영한 북극성과 북두칠성.
  그대로 돌아갈까? 돌아가서 가이드와 함께 다시 올까? 잠시 고민하는 와중 “늑대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드물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하늘이 맑아 별 사진 찍기에는 좋았어요. 북쪽 하늘에는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남쪽 하늘에는 오리온자리가 밝게 빛나고 있었죠.”
 
  이튿날 아침 캠프 주변에 개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개는 보이지 않았다. 현지인에게 ‘근처에 늑대가 사느냐’고 물으니 ‘숲이 있어 늑대가 산다’고 말했다.
 
  “몽골 여행 내내 눈 내리는 광대한 설원 멀리 말 떼들이 보였습니다. 말들은 모두 머리를 눈 속에 파묻고 먹이 찾기에 바빴어요.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내내 눈이 내렸어요.
 
  사실, 몽골에 온 마지막 관광객인 셈이었죠. 코로나19로 인해 지금까지 외국인 여행이 금지돼 있어요.”
 
  그는 중학 시절부터 등산을 했고 고교 시절에는 산악반에 들어가 서울 인근 인수봉, 선인봉 등에서 본격적인 암벽등반도 해서 산과는 꽤 인연이 있었다. 머릿속에 늘 도전을 꿈꿨던 히말라야를 한번은 꼭 다녀오고 싶었다.
 
  “이 걱정 저 걱정 하면 영 못 가니 저지르세요”라는 지인의 충고를 듣고 2019년 10월 22일 혼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었다. 나야풀~울레리~반단티~고레파니~푼힐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돌계단길’ 히말라야 트레킹
 
히말라야 트레킹 당시 푼힐 전망대에 선 이정식 작가. 멀리 다울라기리 1봉(8172m)의 모습이 보인다.
  “떠나기 전 나름 트레킹 연습을 했어요. 히말라야 영상을 보면 돌계단 길이 많이 보였어요. 서울 인근의 가까운 등산코스에도 잘 정비된 돌계단 길이 연속인데, 출발 전까지 한 달 사이에 관악산과 도봉산에 6차례 다녀왔어요. 횟수를 거듭할수록 산에 오르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지하철 탈 때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히말라야에 도착하니 영상에서 본 대로 돌계단 길이 쭉 이어져 있더군요. 산은 까마득하게 높고 골은 깊었어요.
 
  고레파니 로지에서 푼힐까지의 길이 생각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가 돌계단이었죠. 설봉(雪峯)들이 깨끗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어요. 마차푸차레 봉우리 쪽에 구름이 끼어 있었는데 멀리 안나푸르나 1봉(8091m), 안나푸르나 남봉(7219m) 등이 석양에 빛나고 있었죠. 이미 해가 져서 헤드랜턴을 켜고 부지런히 걸었어요.”
 
  히말라야 트레킹은 연중 이루어지지만, 좋은 시즌은 3월, 4~5월, 9~11월 사이다. 그중 최적기는 10월과 11월.
 
  “고레파니를 출발해 수월하게 반단티까지 왔는데 내려오는 중간 돌계단에서 한 번 미끄러져 넘어졌어요. 자칫 위험할 뻔한 순간이었는데 등에 멘 배낭이 쿠션 역할을 안 해줬으면 어디 크게 다쳤을지도 몰라요.”
 
  책 《여행작가노트》에는 2017년과 2019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갔던 두 차례의 겨울 바이칼호 여행기가 실려 있다. 두 여행 모두 7박 8일 일정이었다. 바이칼호수의 겨울은 얼음이 가장 두껍게 어는 2월이 절정인데 그는 두 번 다 2월에 갔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과 한국근대사
 
이정식 작가가 탄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체르니셰프스크 역에 잠시 들렀을 때 모습이다. 등 뒤로 영하 31도를 가리키는 숫자가 보인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그저 낭만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조선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어요. 1891년부터 시작된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중간 지점인 시베리아 바이칼호수 구간이 난공사 구간이어서 1905년 10월에야 완공이 가능했어요.
 
  러시아 일본 대사관의 무관인 아카시 모토지로 대령은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공되기 전에 전쟁을 치러야 승산이 있다’고 본국에 보고했고 결국 일본은 1904년 2월 선전포고도 없이 개전을 하잖아요.
 
  일본의 승리 뒤에는 영국과 미국이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와 일본의 국력은 10대 1 정도로 러시아가 압도적이었죠. 영국은 발트함대의 운항 정보를 일본에 흘렸고 미국 유대인들은 일본이 전쟁 비용을 조달하려 발행한 채권을 모두 사들였죠.”
 
  ― 만약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다면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요.
 
  “러시아가 이겼다면 러시아의 속국이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러시아혁명 후 소련의 위성국가가 됐을지도 모르죠. 러시아는 우리나라에 그들이 사용할 부동항(不凍港)을 대대적으로 건설했을 것이고 그 후 일본의 운명 또한 어찌 됐을지 알 수 없습니다.”
 
 
  여전히 여행을 꿈꾸다
 
이정식 작가는 학창 시절부터 산을 좋아했다. 왼쪽은 경복고 산악반 시절(1970년), 오른쪽은 서울대 1학년 당시 지리산을 오르는 모습이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중 어떤 광경이 기억에 남습니까.
 
  “많은 역들을 지나쳤는데 대개의 역에서는 정차시간이 2~3분에 불과하지만 15분 이상 정차하는 역도 종종 있었어요. 그때는 모두 열차 밖으로 나가 역사 주변을 둘러보거나 상인들이 만들어 온 먹거리를 사기도 했죠.
 
  노점상들의 모습은 지금이나 100여 년 전인 1914년 하얼빈을 지나 치타로 가던 22세의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가 어느 역에서 빵과 고기와 우유를 샀던 그때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았어요.
 
  이광수는 훗날 《그의 자서전》(1936)에서 ‘열댓 살 된 계집애들이 우유병을 (식지 않도록) 두 팔로 꼭 껴안고 서서 사는 사람이 있기를 기다렸다’고 회고했었죠.”
 
  이정식 전 사장은 여전히 몸이 근질근질하다. 글 쓰는 작업을 통해 항암치료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무렵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가보고 싶은 곳을 대라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다시 가고 싶은 곳을 말하라면 주저 없이 히말라야를 꼽겠습니다. 여유 있게 제대로 트레킹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다시 타고 치타, 예카테린부르크 등에서는 기차에서 내려 1박 2일 정도 머물며 역사의 현장을 봤으면 합니다. 볼가강 변의 도시들인 니즈니노브고로드, 카잔, 사마라도 궁금하고요. 톨스토이에 관한 책도 준비 중이죠. 여러 가지 여건이 잘 갖추어져 앞으로의 여행 계획이 순조롭기를 바랍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405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