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헌법사 논고: 1787년 연방제헌의회의 쟁점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연방 제헌의회에서 미국 헌법을 만들 때 삼권분립(三權分立), 대통령제, 의회와 사법부의 구성 등에 관한 조항들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여섯 편의 논문을 모은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신우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과 성장을 비교헌법사의 관점으로 탐구하는 작업을 계속해 온 헌법학자입니다.
빽빽한 각주로 가득한 딱딱한 법학 논문집인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이 책이 오늘날 참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우리의 헌정(憲政) 현실을 성찰하는 데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저자 신우철 교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듯, 이 책의 서문에서 “목하, 입법 권력을 장악한 정치집단이 탄핵―및 직무정지―을 매개로 행정과 사법(司法)의 상위에 군림하고 있는, 우리의 위태로운 헌정 상황에서 미합중국 입헌사(立憲史)의 가르침은 절절한 현실로 다가온다”고 말했습니다.
흔히 미국 독립혁명을 프랑스 대혁명과 더불어 18세기 말의 양대(兩大)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실은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공화주의자들’이었으며, 오히려 민주주의에 의해 공화주의가 훼손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으려 애썼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책에도 그와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입법권의 전횡 경계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대중 및 대중을 등에 업은 의회의 횡포를 경계한 대목들이었습니다. 예컨대 양원제(兩院制)가 “통제되지 않은 다수(多數)의 조잡한 악법(惡法)을 막는다는 견제·균형의 원리”에서 도입된 것이라는 대목은 ‘통제되지 않은 다수의 조잡한 악법’을 거의 매일같이 목격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 현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또 미국 헌법이 “집행부(행정부)가 ‘군주제의 태아(胎兒)’로 화(化)하는 것을 막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타락한 민주주의의 입법 폭주로부터 공화주의 정부를 보호하기에 충분히 강력한 집행부를 지향”했다는 에드먼드 랜돌프의 말도 의미심장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정치적 비극은 ‘타락한 민주주의의 입법 폭주로부터 공화주의 정부를 보호하기에 충분히 강력한 집행부’를 갖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탄핵 소추와 관련된 조항도 눈길을 끕니다.
“탄핵 소추된 자의 직무를 탄핵심판의 결정(기각)시까지 정지시키자는 존 러틀리지와 구베니어 모리스의 제안이 있었으나, 의회에 의한 탄핵의 소추-심판으로 이미 입법부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 대통령에 대해 하원의 의결만으로써 그 직무까지 정지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제임스 매디슨의 반론으로 부결되었다.”
지난 10년 사이에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가 두 차례나 탄핵으로 직선(直選) 대통령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무기는 “탄핵 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는 헌법 제65조 3항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미연에 막은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참으로 슬기로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발연대(開發年代)에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독재’만 신경을 썼지, 국회가 그보다 더한 독재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상상도 못 해 온 한국인들로서는 미국 헌법 제정자들이 의회의 횡포 가능성에 대해 그토록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자 신우철 교수는 그 이유를, 독립 이전에 주(州) 단위로 헌정을 운영해 보았던 경험에서 찾습니다. 그 경험 중에는 주 총독 통치의 폐해도 있었지만 “민주주의의 과잉으로부터 기인한 해악(害惡), 인민 직선(直選)으로 구성된 주의회에 대한 불신(不信)의 경험”도 있었습니다. 신 교수는 “실제 헌정 운영 경험으로부터 입법권의 전횡 역시 통제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교훈을 체득(體得)했던 미국 제헌의회 대표들과 달리 우리 제헌국회 의원들은, 임시의정원을 통해서만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외양이나마 갖출 수 있었던(‘국민 없는 민주주의’) 국외(國外) 임시 헌정 체제의 관성적 요구로 말미암아, 의회 우위적 대통령제가 현실적으로 초래할 문제들에 대해 숙고할 여지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1987년 헌법 개정 당시에도 정치인들이나 국민 모두 어떻게 하면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통제해서 ‘대통령의 독재’를 막을 것인가에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공화정부를 파괴하고 재산권을 위협하는 ‘민주정의 과잉’”이나 파당화(派黨化)한 국회의 전횡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만든 미국 헌법
유신과 5공 정권을 거치면서 적지 않은 한국인에게 ‘대통령 직선제’는 신앙이 됐습니다. ‘직선제=민주주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5년 단임의 직선 대통령을 아홉 명이나 경험해 보았고, 그들 대부분이 불행한 종말을 맞은 것도 보았습니다. 이제는 미국 헌법 제정 과정에서 대통령 선출 방식을 논의할 때 나왔던 직선제 반대 논리도 귀 기울여 볼 만합니다. “인민 직선제는 인민의 무지(無知)로 말미암아 소수 파벌의 수중에 집행 수반 선택권을 넘기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한 엘브리지 게리의 말이나, “인민 직선에서 인민은 소수의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인사들에게 이끌리게 될 것”이라고 한 찰스 핑크니의 경고는 238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의 우리에게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미국 헌법 제정자들이 성문(成文) 헌법, 대통령제, 연방제, 권력분립 및 견제와 균형 등 신박한 ‘발명’을 했지만, 그 ‘발명’은 철저히 현실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는 미국 헌법이 이상주의자·설계주의자들의 ‘뇌피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멀리는 영국 헌정의 경험, 가까이는 식민지 정부의 운영 경험과 그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헌법이 헌법 제정자들의 출신 주(州)의 이해관계는 물론, 심지어 제정자 자신의 경제적 처지 등의 영향도 받았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저자 신우철 교수는 “주체들이 이론적이기보다는 현실적·타산적이었다는 점 때문에 헌법제정권력의 소재·행사가 뚜렷이 부각되지 않은 것이 프랑스 제헌 모델과 구별되는 미국 제헌 모델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미국 헌정의 생명력과 안정성은 바로 미국 헌법이 ‘현실의 인간’들에 의해, ‘현실’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이후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등 박식한 정치사상가들이 ‘관념과 상상’을 바탕으로 이론적으로는 정교한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헌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프랑스 헌정은 자코뱅 독재와 단두대, 나폴레옹 제정(帝政)을 비롯해 150년에 걸친 혁명과 반(反)혁명으로 얼룩졌습니다. 미국 헌정과 프랑스 헌정의 이러한 차이는, ‘먹물’들이나 집권 세력의 현실과 동떨어진 뇌피셜에 바탕을 둔 입법과 정책들이 횡행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상황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민주의 극단은 독재의 극단”
이번호를 만들고 있던 2월 11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강경파 의원들은 논란이 많았던 ‘재판소원법’과 ‘대법관 증원법’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강행 통과시켰습니다. 여당의 입법 폭주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오찬을 하루 앞두고 그런 것은 해도 너무했습니다. 신우철 교수는 《미국헌법사 논고》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민주의 극단은 독재의 극단일 수밖에 없으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폭정(暴政)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미합중국 입헌의 아버지들의 사려 깊은 통찰이야말로, 포퓰리즘에 일그러진 우리 헌정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잣대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