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천 명 목숨 잃은 이란, 뉴스에 더 주목해 달라”(호다 니쿠·모델 겸 유튜버)
⊙ 국내 反정부 이란인들,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땡큐 USA, 땡큐 이스라엘”
⊙ “우리는 테러리스트도 난민도 아니다”(중동 청년)
⊙ 이슬람 성원 일대, 재개발과 중동 정세로 급격히 위축
⊙ 국내 反정부 이란인들,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땡큐 USA, 땡큐 이스라엘”
⊙ “우리는 테러리스트도 난민도 아니다”(중동 청년)
⊙ 이슬람 성원 일대, 재개발과 중동 정세로 급격히 위축

- 3월 8일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미국의 이란 공격을 지지하는 재한 이란인들의 집회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기자가 이란행 방법을 묻자,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담담히 입을 뗐다.
“원래 이란은 한국에서 그리 멀지 않았어요. 왕복 항공권이 140만원 안팎이었고, 두바이·도하 경유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죠.”
그러나 최근 중동의 긴장 고조와 전쟁 여파로 모든 게 달라졌다고 했다. 이란은 물론 당장 갈 수 없고, 다른 중동 국가들의 하늘길도 언제 다시 열릴지 기약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서울중앙성원 주변은 오랜 세월 ‘중동의 거리’로 불리며 활기를 띠던 곳이다. 중동 음식점, 할랄 식당, 향신료 상점들이 즐비해 주말이면 이슬람권 유학생, 노동자,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하지만 이제 그 풍경은 한결 쓸쓸해졌다. 골목을 걸어도 사람 그림자가 드물었다. 인근 한남뉴타운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오랜 주거지들이 철거되기 시작한 탓이다. 외국인 노동자와 유학생이 머물던 원룸·다세대주택이 부서지거나 비워지며 상권까지 연쇄 위축됐다. 예전엔 새벽까지 불빛이 번쩍이던 가게들이 이제 문을 걸어 잠근 곳이 부쩍 늘었다.
이란인 운영으로 알려진 근처 식당을 찾아갔으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간판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내부는 컴컴했으며, 영업 중단 안내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요”
이태원 우사단로 서울중앙성원 일대의 풍경은 어쩐지 쓸쓸했다.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중동 출신 이주민들의 처지를 고스란히 비추는 듯한 장면이었다. 한때 다양한 언어, 냄새, 음악이 어우러져 활기찼던 골목은 이제 고요했고, 그 빈자리를 재개발 공사장의 먼지가 메우고 있었다.
한 이면도로 작은 카페 안. 창밖으로 히잡을 쓴 여성과 헐렁한 힙합 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좁은 거리에 할랄 음식점 간판과 외국어로 적힌 상점들이 이어져 있다. 카페 안에서는 아랍어, 영어, 한국어가 낮게 섞여 흐르고, 커피 머신의 금속성 소리가 그 틈을 파고든다.
카페 구석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빠르게 움직이는 20대 아랍 여성. 익숙한 손놀림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한국에 온 지 3년째인 중동 출신 유학생이다. 한국 생활이 제법 익숙해 보였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사람들이 너무 관심을 쏟는 건 조금 부담스러워요. 그냥 공부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어요. 한국이 좋아서 가능하면 계속 여기 있고 싶습니다.”
짧은 대화 속에 전쟁과 정치에서 한 발 떨어진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젊은 중동 유학생의 정서가 스며 있다. 먼 고향의 갈등보다 눈앞 일상과 미래가 더 소중하다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었다.
호다 니쿠의 ‘이란의 자유를 위해’
한국 거주 이란 출신 모델·유튜버 호다 니쿠가 유튜브에 올린 ‘이란의 자유를 위해’. 사진=유튜브“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카메라를 켰습니다.”
유튜브에서 니쿠는 페르시아어, 영어, 한국어를 섞어 운을 뗐다. “이란 사람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오랜 시위를 이어 왔지만,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터넷·전화 차단 속 변화 시도가 막히고 있다”며 “학살이 아니라면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녀는 “이란과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큰 힘”이라고 마무리했다. SNS에서도 “수천 명 목숨 잃은 이란, 뉴스에 더 주목해 달라”고 호소했다. 2018년 미스 이란 3위를 한 니쿠는 2020년 KBS1 ‘이웃집 찰스’ 출연 후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히잡 규제와 여성 억압을 피해서 왔다”고 털어놨다. 현재 모델과 유튜브 활동을 병행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스마트폰과 SNS를 통한 ‘디지털 레지스탕스’는 포탄이나 미사일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현대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개전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시민과 전 세계 디아스포라는 틱톡, 텔레그램,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또 다른 전장(戰場)으로 삼아 러시아 침공 상황을 실시간 전파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개전 직후 키이우 거리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짧은 영상을 SNS에 올리며 “We are here. We are fighting(우리는 여기 있다. 우리는 싸우고 있다)”이라고 외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영상은 몇 시간 만에 전 세계로 퍼지며 국제 여론을 흔들었다.
해외의 이란 디아스포라 청년들도 유튜브, 인스타그램, 텔레그램으로 고국 상황을 실시간 해설하고 호소한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건 이후 유럽과 북미, 한국 등에 거주하는 이란 유학생과 청년들이 SNS에서 ‘Woman, Life, Freedom(여성·생명·자유)’이라는 구호를 확산시키며 반정부 운동의 국제적 확산을 이끈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22세의 쿠르드계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테헤란에서 히잡 규정 위반을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된 뒤 구금 상태에서 사망하면서 전 세계적인 항의 시위를 촉발했다.
이들은 페르시아어 영상에 영어와 현지어 자막을 덧입혀 관심을 모았다. 한국에서도 이란 유학생·유튜버가 한국어 영상으로 내부 상황을 알리며 지지를 호소한다. 스마트폰과 SNS의 ‘디지털 디아스포라 정치’는 국경 밖 개인의 고국 개입 통로이자 국제 여론의 핵심 동력이 됐다.
국내 거주 이란인은 1000명 정도
법무부 통계상 국내 거주 이란인은 약 1000명 수준이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터키 등 출신들을 아우르는 ‘중동 출신’은 훨씬 더 많다. 서울 대학가, 이태원 식당가, 안산공단,주거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고국 전쟁이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란 출신 영화감독이자 대학 교수인 코메일 소헤일리(Komeil Soheili)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이란에서 태어나 영화 작업을 해 온 감독이자, 지금은 한국에서 일하고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사회 문제와 권력 구조를 주제로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그는 한국 사회와 역사에 관한 글과 영화 작업도 이어 오고 있다.
소헤일리는 한국에 거주하는 이란 공동체의 규모에 대해 “정확한 숫자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1000명 남짓한 수준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란인들이 여전히 마음속에 ‘귀환의 가능성’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이란인들은, 언젠가 이란이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게 된다면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의 말에는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 가고 있는 이란인들의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삶을 꾸려 가지만, 동시에 언젠가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미래를 마음속에 남겨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 한국에서의 현재와 이란이라는 고향 사이에서, 그들은 여전히 두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이번 공격은 人道的 개입”(민주화파)
3월 5일 한 재한 이란인이 주한이란대사관 앞에서 이란 정부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사관 건물에는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하메네이와 정·군 수뇌부를 애도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취재 과정에서 만난 재한 이란인들의 입장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았다. 같은 고향을 공유하지만, 정치와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세 갈래로 갈렸다. 체제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민주화파, 외국의 군사 개입을 거부하는 민족주의적 평화주의자, 그리고 소수이지만 분명 존재하는 친정부 혹은 반미 성향의 강경파다.
첫 번째는 강경한 민주화파다. 주로 젊은 유학생과 지식인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이들은 이란의 신정(神政) 체제가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지난 3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약 100명의 재한(在韓) 이란인들이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지지하며 거리로 나왔다. 재한 이란 네트워크가 주최한 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주한 미국 대사관이 있는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행진하며 이란 국기와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함께 흔들었다.
“이란 독재 끝내자!” “이란의 자유를 되찾자!”
구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참가자들은 “땡큐 USA, 땡큐 이스라엘”을 외치기도 했다. 이 단체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붕괴된 왕정의 후계자인 레자 팔레비 왕세자의 복권을 주장해 온 단체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이번 공격은 이란 국민을 향한 침략이 아니라, 수만 명을 학살한 범죄 정권에 대한 인도적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집회 현장에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도 등장했다. 쿠웨이트에서 전사(戰死)한 미군들의 사진 앞에 촛불과 조화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 인형 탈을 쓴 참가자에게 꽃을 전달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Your Hero, Our Hero(당신의 영웅, 우리의 영웅)’라는 문구와 미국·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사진이 담긴 팻말에는 “Thank You”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한국 정부의 협조도 요청했다. 집회에 참여한 잔게네 알만 씨는 “이란은 한국의 친구”라며 “자유로운 이란이 되면 한국도 원유 수입과 투자에서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 파르토비 다니엘 씨는 “한국이 협력해 준다면 이란의 평화가 더 빠르고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호소했다.
집회 전 ‘하메네이 파르 파르(Khamenei Par Par·하메네이 날아감)’ 노래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2월 28일 미 폭격으로 사망)를 조롱했다. 한 참가자는 “인질처럼 억압받던 국민을 (미국과 이스라엘이) 해방시켜 준 것에 감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과 이재명 대통령께 부탁한다. 레자 팔레비 왕세자를 이란의 대표로 인정해 달라. 이슬람 범죄 정권을 보이콧해 달라”는 내용의 한글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이란 문제는 이란인에게”(평화주의자)
두 번째 흐름은 정권 비판과 전쟁 반대를 동시에 외치는 ‘민족주의적 평화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현재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외국의 군사 개입에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3월 초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중동 남학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가져온다고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보세요. 외세의 폭격으로 만들어진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이렇게 덧붙였다.
“이란의 문제는 이란인이 해결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란 출신 영화감독 코메일 소헤일리의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이란의 현실을 “내부의 권위주의 구조와 외부의 지정학적 압박이 결합된 복합적 위기”로 설명하며 군사 개입을 통한 민주화론에 선을 그었다.
“저는 권위주의 통치도, 외국의 군사 개입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없다고 믿습니다. 역사는 민주주의가 폭탄으로 수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는 특히 국제정치의 긴장이 권력층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여러 나라에서 이란 국적자들이 단지 국적만으로 은행 계좌 개설이나 비자 발급, 행정 절차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같은 나라에서도 은행 계좌를 만들거나 행정 절차를 처리하는 일이 이란 국적자에게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전쟁과 제재, 외교 갈등의 부담이 정치 엘리트가 아니라 학생과 예술가, 가족들에게 먼저 전가(轉嫁)된다는 그의 말은 한국에서 중동 전쟁을 바라보는 이란인들의 복합적인 심정을 잘 보여 준다.
친정부·반미 강경파도
지난 3월 3일 시아바시 사파리(이란 출생 캐나다 국적)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가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 대사관 앞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트럼프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세 번째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친정부 혹은 반미 성향의 강경파다. 이들은 “서방 언론이 이란을 일방적으로 악마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란의 군사적 대응을 ‘주권 수호’로 해석한다. 다만 공동체 내부의 압력과 정치적 부담 때문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중동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해 온 중동 출신 언론인 알파고 시나씨 기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란 내부의 복잡한 권력 지형을 설명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가 유튜브나 서방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는 ‘정권 붕괴를 환호하는 영상’은 이란 사회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그는 “하메네이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종교적 권위를 지닌 ‘아야톨라 우즈마(최고 성직자)’”라며 “그의 죽음을 기뻐하는 이들도 있지만, 거리에서 몸을 내리치며 애도하는 시민들 역시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서방 언론은 망명 왕세자를 지지하는 세속 시민들의 모습을 주로 조명하지만, 이란 체제를 떠받치는 하층민과 신자들의 ‘순교 서사’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는 또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1만 명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한 분노가 최소 10만 명 이상의 시민에게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란 인구의 약 30%는 “순교할 기회가 왔다”고 믿으며 강력한 신정 체제 지지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나씨 기자는 “중립은 언론의 기본”이라며, “이란 사회에 공존하는 두 흐름을 모두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노와 저항, 그리고 신앙과 충성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다층적 갈등 구조가 오늘날 이란 사회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디아스포라 정치의 디지털화’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가장 활발하게 쏟아져 나오는 공간은 유튜브와 SNS다. 과거 해외 거주민들이 고국 정치에 관여하는 방식은 재외 투표, 해외 시위 같은 비교적 제한된 형태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실시간 해설자이자 기록자, 때로는 선전가가 되어 고국의 정치 상황을 전 세계로 전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디아스포라 정치(diaspora politics)의 디지털화’로 설명한다. 물리적으로는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살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현상이다. 해외 체류자들은 상대적으로 신변의 위협에서 벗어나 있어 더 직접적이고 강한 발언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유튜브와 SNS 플랫폼은 같은 언어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세계 각지의 공동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준다.
코메일 소헤일리 역시 한국을 일종의 ‘발언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영화 제작과 교육 활동을 이어 가는 동시에, 이란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온라인 강연과 워크숍을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앞으로 나아갈 현실적인 경로로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고, 독립적인 문화적·지적 공간을 보호하며, 전쟁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지속하는 것”을 꼽았다. 결국 변화의 동력은 공습이나 외부 군사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부의 자생적 변화와 국제사회의 일관된 인권 압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소헤일리는 특히 미국의 ‘민주화 지원’ 담론에 대해 강한 회의(懷疑)를 드러냈다. 그는 2003년 이라크 전쟁과 2011년 리비아 군사 개입, 그리고 시리아 내전의 국제화 과정을 언급하며, ‘민주화를 위한 군사 개입’이라는 명분이 실제로 남긴 것은 안정된 민주주의가 아니라 폭력과 분열, 장기적 불안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경험들 때문에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군사 개입을 통한 민주주의 촉진’이라는 주장에 깊은 회의를 갖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중동 지역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을 보여 준다. 독재와 권위주의에 대한 분명한 비판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외부의 군사 개입이 가져온 파괴적 결과 역시 똑같이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동의 정치 갈등을 이해하려면 이 두 기억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위선과 이중 기준이 공존하는 국제질서’
코메일 소헤일리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서 한국 사회를 향한 메시지도 분명히 했다. 그는 한국이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경험을 겪은 나라라는 점을 언급하며, 전쟁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태도에 종종 이중 기준이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세계는 비교적 빠르게 이를 규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폭력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지 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위선과 이중 기준이 공존하는 국제 질서”라고 표현했다. 특정 전쟁에는 강한 분노와 연대가 표출되지만, 다른 지역의 폭력과 희생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침묵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초, 재개발로 썰렁한 이태원에서 저녁을 마칠 무렵 식탁 옆 20대 중동 청년에게 물었다. 한국 사회에 꼭 전하고 싶은 단 한 문장이 있느냐고.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덤덤하지만 단호하게 입을 뗐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도, 난민도 아닙니다.”
코메일 소헤일리 감독이 기자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이와 결을 같이한다. 그는 한국에서 영화와 교육을 통해 두 사회를 잇는 정서적 가교를 놓아 왔다. 검열과 압박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이란 여성들의 삶을 다룬 신작을 준비 중이다. 비록 고국 땅에서는 상영조차 기약할 수 없는 작품이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이란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날, 그동안 억눌려 왔던 거대한 창조적 잠재력이 폭발할 것입니다. 저는 그때 탄생할 대담하고 아름다운 영화들을 믿습니다.”
중동의 포성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비극을 해석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목소리는 이제 중동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수많은 해석과 염원은 오늘도 서울의 카페와 식당, 집회 현장과 스마트폰 화면을 타고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다. 전쟁은 멀리 있지만, 그 전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이태원의 언덕 너머로 새벽이 밝아 올 때, 그들이 기다리는 ‘중동의 봄’도 조금은 더 가까워져 있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