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선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그 시점을 1945년 해방 직후라고 단언한다. “일제(日帝)하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제도도 없고 국가도 없고 뿌리도 모호한 ‘정체성(正體性)의 구멍’이 생겼고, 역사학은 바로 이 구멍을 메우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구멍을 메우는 과정에서 “조선은 스스로 국가를 지켜내지 못했고, 국제 질서의 변화 속에서 생존 전략을 찾지 못했고, 근대화의 파도 앞에서 제도적 개혁을 추진할 정치적 의지도 없었고, 경제적 기반도 없었으며, 지식인 계층도 국제무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대신 해방 후의 역사학은 새로운 정체성 구축(構築)을 위해 조선을 미화(美化)하는 쪽을 선택했다.
실학·조선학·자본주의 맹아론이라는 허상
이런 작업에 동원된 것이 조선학(朝鮮學)과 실학(實學), 그리고 소위 자본주의 맹아론(자생적 근대성)이었다. 조선학과 실학은 “식민지라는 극단적 조건에서 1930년대 조선 지식인들이 스스로의 지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어 장치, 즉 심리적 방패”였지만, 분명한 철학 체계나 일관된 이념, 그리고 현실에서의 실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었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자생적 근대성’은 “조선 후기의 사상가 몇 명이 남긴 문제의식,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상업적 활력, 제한된 기술 변화 등”으로 “그 시대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부분적이고 예외적”이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 기대에 가까운’ 이런 주장들은 해방 이후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일반 국민들은 정체성의 공백 속에서 감정적으로 위로받기를 원했다. 신생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하루빨리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국가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개발연대에는 국민들을 동원하고 경제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도 스스로 근대화를 이룩할 저력이 있었다’는 서사(敍事)가 필요했다. 좌파 성향의 체제 저항 세력 역시 개발연대의 근대화와 외세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이고 아름다운 조선’ ‘스스로 근대화할 수 있었던 조선’에 대한 기억이 필요했다.
이들의 합작으로 해방 후 80년이 지나는 동안 조선은 하나의 ‘거대한 신화(神話)’가 되어버렸다. 신화를 만들어낸 역사학자들은 ‘학문 권력’이 됐다. 그 신화에 비판적 분석의 메스를 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反)민족적’이라느니 ‘일제를 미화한다’느니 하는 비난이 돌아왔다.
‘위로의 역사학’이 만들어낸 ‘책임 회피의 구조’
이러한 ‘조선 신화’를 만들어낸 “내부 책임을 외면한 위로의 역사학”은 단순히 역사 인식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이런 ‘책임 회피의 구조’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미래 설계 능력을 떨어뜨린다. 저자는 “치유는 위로를 주지만, 책임을 희석시키기 때문에 성장을 방해한다”면서 “이 균형 상실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가 반복적으로 겪어온 정치적 실패와 사회적 불안정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한다. 무슨 문제만 벌어졌다 하면, 희생양을 찾기에 급급해하면서도 문제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제도적 정비는 게을리하는 폐습의 뿌리도 결국은 왜곡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얘기겠다.
저자는 “조선을 감싸던 포장지가 제거되면, 조선이 가진 문제들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면서 “그 문제들은 단순히 조선만의 실패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제도와 사고방식에서도 반복될 위험이 있다는 경고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하나. 저자는 ‘조선’에 연연하는 역사 인식은 ‘민족의 역사’와 ‘국가의 역사’를 혼동하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민족이 국가를 먹어치우는” 현상이 벌어진 것인데,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 좌우가 따로 없었다. 저자는 이 책의 결론부에서 이렇게 말한다. “감정 중심의 서사는 국가가 민족에 종속하는 기형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국가는 제도적 판단을 스스로 내려야 하지만, 민족 감정이 국가 위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 국가는 감정의 관리자로 전락한다. 조선 비판은 민족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국가 역시 조선을 냉정하게 분석할 권위를 잃는다. 민족 감정은 교육·정치·외교 전반으로 확산되며, 국가는 감정적 명분을 정책의 근거로 사용하는 습관을 강화한다. 이는 결국 조선이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고 감정과 명분에 갇혀 몰락했던 구조와 닮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