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광역 단위 대형 인프라 사업인데도 기초단체장 출마자들도 GTX 공약
⊙ 공사비 폭등으로 완공 지연 예정이지만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
⊙ GTX-C 공사비 급등으로 인한 민관 갈등, 대한상사중재원으로
⊙ “여야 막론하고 GTX ‘조기 착공’ 외쳐… 이제는 누구의 공약인지조차 구분되지 않아”
⊙ 교통 혁명이면서 부동산 욕망을 자극하는 표(票)퓰리즘
⊙ 용산 주민들, GTX로 인한 교통 편의보다 상권과 부동산 변화 기대
⊙ GTX, 교통 어려운 지역에서는 저녁 있는 삶 만드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
⊙ 공사비 폭등으로 완공 지연 예정이지만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
⊙ GTX-C 공사비 급등으로 인한 민관 갈등, 대한상사중재원으로
⊙ “여야 막론하고 GTX ‘조기 착공’ 외쳐… 이제는 누구의 공약인지조차 구분되지 않아”
⊙ 교통 혁명이면서 부동산 욕망을 자극하는 표(票)퓰리즘
⊙ 용산 주민들, GTX로 인한 교통 편의보다 상권과 부동산 변화 기대
⊙ GTX, 교통 어려운 지역에서는 저녁 있는 삶 만드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

- GTX-A 철도차량. 사진=뉴시스
역 앞 도로는 거대한 환승 거점 그 자체다. 강남·사당·잠실로 향하는 빨간 광역버스들이 몇 분 간격으로 거친 숨을 내뱉으며 멈춰 섰다가, 금세 사람들을 집어삼키듯 태우고 떠난다. 길게 늘어선 줄 속에서 시민들은 익숙한 듯 스마트폰에 시선을 묻거나, 식어가는 커피 잔을 쥔 채 묵묵히 차례를 기다린다. 이들에게 서울은 또 하나의 생활권이다.
수원 시민들에게 서울은 결코 먼 도시가 아니다. 광역버스를 타면 강남까지 한 시간 남짓, 1호선을 타면 서울역까지도 한 시간 안팎이다. 오래전부터 수원은 서울로 출근하고, 서울에서 소비하며, 서울에서 약속을 잡는 수도권 생활권의 한 축이었다.
‘강남 30분’ GTX
하지만 수원은 ‘한 시간’을 깨뜨릴 새로운 속도를 기대하고 있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다. 선거철마다 유령처럼 등장했던 이 이름은 이제 시민들에게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졌다. ‘강남 30분’ GTX라는 단어는 어느새 교통 정책의 이름이 아니라, 정치 구호처럼 반복되는 약속이 됐다.
그러나 이젠 기대보다 피로가 더 크다. 언젠가는 될 것 같지만, 언제인지는 알 수 없는 철도. 이것이 지금 수원 시민들이 체감하는 GTX의 현실이다. 선거 때마다 수원에서는 “GTX 조기 착공”이 약속됐다. 하지만 아직 수원역에서는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역사(驛舍) 주변을 둘러봐도 대형 펜스나 굴착 장비 같은 공사의 흔적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대한민국 수도권은 지금 ‘속도의 마법’에 걸려 있다. GTX라는 이름 아래 경기도 외곽 도시들은 강남까지 ‘30분대 진입’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받는다. 선거철마다 후보들은 당장이라도 땅을 파기 시작할 것처럼 공약을 쏟아낸다. 그러나 화려한 조감도 뒤에 숨겨진 현실은 다르다. 급등한 공사비로 인한 사업 갈등, 대심도 터널 공사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 그리고 더 빠르게 서울로 연결될수록 오히려 심화되는 ‘서울 집중’이라는 역설이 동시에 존재한다.
수원에서 금정을 거쳐 양재와 삼성으로 이어지는 GTX-C 노선. 이 거대한 철도 프로젝트는 과연 언제 현실이 될까.
멈춰 선 ‘게임체인저’
“계획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도 멀어요.”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수원특례시의회 배지환 의원은 현재 수원역이 마주한 상황을 이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배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GTX-C 노선은 총사업비만 약 4조6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민자(民資) 사업이다. 수원시가 짊어져야 할 분담금은 약 85억원 수준으로 책정되어 있다.
정부 주도 사업의 특성상 지자체의 초기 재정 부담은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향후 공사비 증액이나 실시설계 변경 등 총사업비 변동에 따라 시의 분담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배 의원은 이 숫자조차 ‘과거의 유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폭등하면서, 수년 전 장부상에 적힌 비용으로는 현재의 공사 현장을 감당하기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결국 서류상의 예산과 치솟은 현실 물가 사이의 괴리가 국가적 숙원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GTX-C 노선은 경기 양주 덕정에서 수원까지 약 86.46km를 종단하며 수도권의 심장을 관통하는 프로젝트다. 완공 시 수원에서 서울 삼성역까지 단 3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다는 구상은 발표 당시부터 수도권의 지도를 새로 그릴 ‘게임체인저’로 찬사를 받았다. 서울 집중 현상을 완화하고 수도권 남북의 교통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쏟아졌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현장의 시계는 멈춰 서 있다.
배 의원은 사업 지연의 결정적 원인으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민관의 갈등을 꼽았다. 배 의원은 “당초 2028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달려왔지만, 급등한 비용 분담을 놓고 사업자와 정부 간의 평행선이 이어지며 사실상 실착공이 2년째 표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사안은 해결의 기미를 찾지 못한 채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 절차에 맡겨진 상태다. 배 의원은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시민들이 실제 열차에 오르는 시점은 당초 계획보다 3년 이상 늦어진 2031년쯤으로 밀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내다봤다.
정치권이 쏘아 올린 ‘30분대 시대’라는 화려한 수사가 현장의 현실에 부딪히면서, 매일 아침 서울로 향하는 수원 시민들의 기다림은 한층 더 길어질 전망이다.
‘변별력 없는 외침’ GTX 조기 착공
지난 2022년 5월,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GTX 조기 착공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수원 시민들에게 이제 GTX는 지겹다. 총선·지방선거·대선 때마다 여야 후보가 ‘조기 착공·확실 추진’을 외치며 기본 옵션처럼 반복한다. 누군가는 ‘조기 착공’을 호언장담하고, 누군가는 ‘국가 계획 반영’을 유일한 치적인 양 내세운다. 문제는 이 공약이 이제는 혁신적인 비전이라기보다, 선거에 나오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옵션’처럼 전락했다는 점이다.
배지환 의원은 이러한 정치권의 관성을 지적했다. 그는 “선거철만 되면 국회의원부터 도지사, 시장 후보까지 예외 없이 GTX 공약을 들고 나온다”며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조기 착공’을 외치다 보니, 이제는 누구의 공약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변별력 없는 외침이 됐다”고 꼬집었다. “안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공약, 그래서 역설적으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공약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럼에도 정치권이 GTX라는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철도는 단순한 교통망 확충을 넘어, 지역 개발과 부동산 기대를 한꺼번에 뒤흔드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배 의원은 “국가 계획에 반영됐다는 발표 한 줄만으로도 지역 개발 지도의 선이 바뀌고, 그 선을 따라 집값이 요동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철도 사업은 발표되는 순간부터 해당 지역 부동산 시장에 즉각적인 ‘충격’을 가한다. 계획 확정, 착공, 완공이라는 이른바 ‘상승 3단계’ 공식은 이미 지역사회에서 부정할 수 없는 상식으로 통용된다. 결국, GTX는 시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교통수단인 동시에, 표심을 자극하고 자산 가치를 부풀리는 ‘욕망의 열차’로 소비되고 있다.
수원 지역의 온라인 부동산 카페나 아파트 커뮤니티에서도 GTX는 빠지지 않는 화제다. “언제 착공하나” “역세권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개발 기대감이 집값에 반영될까”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올라온다. 정치권이 이 흐름을 모를 리 없다.
배지환 의원은 “노선이 지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말만으로도 지역 분위기가 달라진다”며 “주민들이 추진위원회를 만들기도 하고, 아파트 단지에서는 ‘우리 동네가 역세권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다”고 말했다. 실제 ‘철도망’보다 먼저 형성되는 것은 ‘기대망’이라는 설명이다.
타러 가는 데 30분…
하지만 교통의 관점에서 보면 GTX에는 빈틈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라스트 마일(last mile)’ 문제다. 서울까지 몇 분이 걸린다는 계산은 대개 열차가 출발해 도착하는 운행 시간만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실제 시민의 이동은 집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집에서 역까지 이동하고, 계단을 내려가 승강장에 도착하며 열차를 기다리고, 서울에 도착한 뒤 다시 환승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면 체감 이동 시간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배 의원은 “수원에서 삼성까지 27분이라는 말은 열차가 출발해 도착하는 시간만 계산한 것”이라며 “제 집에서 수원역까지 가는 데만 30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광역버스를 타면 강남까지 한 시간 정도면 가는데, GTX가 생긴다고 해서 실제 체감 이동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건 아니다”고 했다. ‘서울 30분’이라는 문장이 주는 상징은 강력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누가 얼마나 혜택을 보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이 대목에서 다시 수원역 앞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게 된다. 사람들은 이미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고 있다. 출근 시간대 강남행 광역버스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가득 차고, 퇴근 시간대가 되면 다시 수원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수원 시민의 상당수는 철도가 없어 서울로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서울을 오가고 있다. GTX가 모든 것을 바꿔놓을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현실의 시민들은 이미 기존 교통망 위에서 각자의 최적 경로를 계산하며 살아간다.
배 의원은 GTX 논의의 배경에 자리 잡은 구조적 문제로 서울의 버스 정책도 언급했다. 그는 “서울시는 경기도에서 올라오는 광역버스를 무제한으로 받아줄 수 없다”며 “특히 강남 일대는 교통 혼잡이 심해 버스 총량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로 향하는 수요는 계속 늘어나지만, 버스를 더 투입하는 데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원하는 건 자산가치 상승”
2024년 12월 경기 파주시 운정중앙역에서 열린 GTX-A 운정중앙-서울역 구간 개통식 모습. 사진=뉴시스GTX를 둘러싼 담론의 이면에는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해묵은 과제가 놓여 있다. 모든 노선이 서울 심장부를 향해 수렴하는 구조는 역설적으로 경기도 외곽 도시들을 서울의 거대한 ‘베드타운’으로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배지환 의원은 이를 “서울로의 흡수”라고 진단했다. 그는 “GTX는 본질적으로 경기도민이 서울에서 일하고 소비하기 편하게 만드는 구조”라며 “수원이나 파주 같은 거점 도시들이 자생력을 잃고 서울의 부속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수원역은 독립된 특례시의 중심이면서도, 동시에 서울로 향하는 거대한 탈출구다. 광장에 서면 도시 자체의 활력보다 서울을 향해 끌려가는 강력한 중력장이 먼저 느껴진다. 시민들은 수원에 잠시 머물 뿐, 일터와 소비처, 관계의 중심은 이미 서울에 저당 잡혀 있다.
이럼에도 시민들이 GTX에 열광하는 이유는 교통 편의 그 이상에 있다. 배 의원은 “수도권 거주자들이 원하는 건 결국 ‘자산 가치’의 상승”이라고 설명했다. 교통 혁명이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보다, 내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욕망이 더 직접적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GTX는 정부와 민간사업자, 지자체가 복잡한 매듭으로 얽힌 국가 단위 사업이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광역단체장부터 기초의원 후보까지 약속이라도 한 듯 “내가 해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배 의원은 “사실상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이들이 공약을 내거는 셈”이라며 “매니페스토 이행률이 100%에 수렴하는 이유는 ‘노력했다’는 말 한마디로 책임에서 비켜갈 수 있는 구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지키지 않아도 비난받지 않고, 말하는 것만으로 표를 얻는 무책임한 정치가 GTX의 본질이라는 일갈이다.
용산역은 ‘GTX’를 감당할 수 있을까?
GTX 노선도. 사진=뉴시스용산역 앞은 원래도 바쁜 곳이다. KTX를 타려는 여행객,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사이를 오가는 직장인, 아이파크몰로 향하는 쇼핑객, 버스를 갈아타려는 시민들까지 하루 종일 사람의 흐름이 끊이지 않는다. 역 앞 대로에는 차량이 촘촘히 엉켜 서 있고, 횡단보도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도로 위로 쏟아져 나온다.
이런 용산에 또 하나의 거대한 철도가 더해질 예정이다. GTX다. 누군가는 조기 착공을 약속하고, 누군가는 역 신설을 이야기하며, 또 다른 후보는 GTX가 지역 경제의 도약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역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질문은 단순하다.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운 용산 일대가 과연 더 많은 인파를 감당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거대한 국가 단위 사업을 과연 기초단체장 후보들이 자신의 공약처럼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서울의 중심 교통 허브인 용산역은 하루 수십만 명의 이동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여기에 GTX라는 새로운 대심도 철도가 추가된다면 도시의 흐름은 어떻게 바뀔까.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교차하는 이유다.
GTX는 애초부터 한 지역만의 사업이 아니라 여러 지자체를 관통하는 국가 단위 교통 계획이다. 이럼에도 선거철이 되면 각 지역 후보들은 마치 자신이 직접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인 것처럼 이 공약으로 내세운다. 용산 역시 이런 정치적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용산구청장 선거에 도전하는 김윤재 네오용산연구소 대표는 이 지점을 정면으로 짚었다. 그는 “GTX는 지역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며 “국가와 광역 단위가 움직여야 하는 대형 인프라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초자치단체가 직접 추진하겠다고 말하는 건 사실상 권한이 없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셈”이라며 “지자체는 주민 요구를 전달하고 협의 정도만 요청할 수 있지, 실제로 예산 투입에 노선을 만들고 구간을 조정하는 권한은 중앙정부와 국토교통부에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용산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노선은 GTX-B다. 김 대표는 “지금 용산을 통과하는 GTX 노선은 B”라며 “이 노선은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구간과 민간 방식으로 추진되는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 재정 구간은 이미 착공에 들어갔고, 3월 기준으로 공정률이 약 2~3% 정도 됩니다. 일단 착공이 이뤄진 것에 의미가 있어요. 큰 변수가 없다면 시간문제일 뿐 결국 완공 단계로 갈 겁니다.”
반면 용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민간 투자 구간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김 대표는 “작년 8월 기준으로 관련 서류는 제출된 상태지만 금융 조달과 사업 구조 문제 등이 남아 있어 재정 구간에 비해 추진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사업 일정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2031년 전후 개통을 목표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GTX는 용산 개발 마중물?
김윤재 대표는 “용산 주민 입장에서 보면, 용산은 원래 교통이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역과 용산역이 가까이 있고,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만큼 외부로 이동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GTX는 용산 주민을 위한 교통이라기보다 외부 사람들이 서울로 들어올 때 더 의미가 있는 철도”라며 “용산 주민들이 GTX를 간절히 기다리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용산 주민들이 GTX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김 대표는 교통 편의보다 상권과 부동산 변화를 먼저 언급했다. “용산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교통 편의보다, 교통망이 확충되면서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상권이 살아날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결국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장사가 잘될 거라는 기대가 있는 거죠.”
즉 GTX가 주민들의 일상 이동을 크게 바꾸기보다는, 외부 유입 인구를 늘려 지역 경제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더 크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용산역 뒤편 골목을 걸어보면 이런 전망이 낯설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오래된 상가와 단층 창고 건물들이 이어진 지역에는 겉보기와 달리 다양한 업종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무역업체와 소규모 사무실, 도·소매 상점들이 작은 공간을 나눠 쓰며 자리 잡고 있다.
김윤재 대표는 “용산 뒤쪽에는 아직도 오래된 창고 같은 단층 건물들이 많은데, 그 안에 작은 오퍼상이나 소규모 무역업체들이 많이 입주해 있다”며 “GTX가 생기면 경기도 쪽 기업들이 용산에 작은 사무실 하나를 얻어 거점처럼 사용하는 모습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의 흐름이 늘어나면 카드 사용액이 늘고 방문자 수가 증가한다”며 “결국 건물주들이 월세를 올리거나 기존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올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GTX가 교통 혁명이라기보다, 도시의 경제 흐름을 다시 흔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GTX가 용산에 던진 ‘과부하’ 경고
GTX의 밝은 면만 이야기하기에는 용산이 감당해야 할 부담도 적지 않다. 현재 계획상 용산 일대의 GTX 역은 사실상 신용산역과 연결되는 구조로 구상돼 있다. KTX와 기존 철도, 지하철 노선이 이미 밀집한 곳에 또 하나의 대심도 철도가 추가되는 셈이다. 겉으로 보면 환승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배치처럼 보이지만, 용산을 생활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다르다. 이곳은 이미 충분히 복잡한 곳이다. 역과 선로가 많은 만큼 인파도 많고, 곳곳에 병목 구간이 존재한다.
김윤재 대표가 가장 우려하는 지점도 바로 ‘과밀’이다. GTX는 경기도 외곽 주민들을 빠르게 서울로 실어 나르지만, 종점에 가까운 용산역·서울역·청량리역 같은 곳에서는 그 인파를 다시 도시 곳곳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그는 “GTX 이용객이 많아질수록 종점 지역에서는 그 사람들을 다시 흩어 보낼 간선도로와 교통체계가 필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교통 정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용산은 구조적으로 병목이 생기기 쉬운 공간이다. 철로가 지역을 동서로 가르고 있고, 가운데에는 용산 국가공원 부지가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차량 흐름은 여러 구간에서 우회해야 한다. 김윤재 대표는 “용산은 광역 교통망 자체는 매우 좋은 곳이지만 문제는 내부 교통”이라며 “GTX로 외부 유입이 늘어나면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내부 교통량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용산은 기존 철로 때문에 동서가 나뉘어 있고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이 이미 복잡하다”며 “GTX를 놓는다면 이후 사람들이 어디로 이동할지까지 고려해 간선 도로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문제들
김윤재 대표는 GTX가 만능 해법처럼 소비되는 현상에도 선을 그었다. 그는 “GTX를 타러 가는 접근 경로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다”며 “특히 수도권 외곽 지역에서는 역 접근성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출퇴근 시간에는 수요가 많겠지만 다른 시간대에는 수요가 크게 줄 수도 있다”며 “이 때문에 비용 대비 편익(B/C)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 인근 주민들에게는 효용이 클 수 있지만, 정작 역까지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체감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서울 도착 이후 또 한 번의 이동이 필요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서울 20분’ ‘강남 30분’ 같은 문구는 실제 생활 경험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표현일 수 있다.
또 하나의 쟁점은 공사 자체가 불러올 갈등이다. GTX는 대심도 지하를 통과하기 때문에 지상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역이 생기지 않고 선로만 지나가는 지역에서는 불안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김윤재 대표는 “역사가 생기지 않고 노선만 지나가는 지역이 문제”라며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 아래를 통과하는 구간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사유지(私有地) 소유자 입장에서는 별다른 보상 없이 이런 제약을 떠안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지하 관통 구간은 공사 중 진동이나 소음 문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재건축·재개발과도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지하에 철도가 지나가면 굴착 깊이나 구조물 설치에 일정한 제한이 생길 수 있다”며 “지하주차장이나 대형 구조물을 계획하는 데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공사가 본격화되지 않아 구체적인 피해 사례가 나타난 단계는 아니지만, 다른 지역 사례를 보면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김윤재 대표는 특히 공청회 절차의 실효성도 지적했다. “공청회를 제대로 진행하면 이해관계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기 마련인데, 현실에서는 형식적으로 지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거대한 국가 사업이 주민들의 생활 공간을 통과하는데도 정작 그 영향을 감수해야 할 주민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게 반영되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시간을 돌려주는 교통수단’
2월 말 군포역 앞 상가 골목은 평일 오후인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 들고 서둘러 역사로 향하는 직장인들, 가방을 고쳐 메고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학생들이 뒤섞여 있었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 전광판에는 서울 방면 열차 시각이 줄지어 떠 있었다. 군포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많은 시민에게 서울은 일터이자 학교이고, 일상의 상당 부분이 연결되는 공간이다.
경기 남부의 오래된 주거도시 군포는 서울의 팽창과 함께 성장한 대표적인 수도권 베드타운으로 꼽힌다. 수십 년 전 형성된 도시의 구조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주민이 서울과 인근 수도권 도시로 출퇴근하고 통학한다. 군포의 하루는 사실상 서울의 시간표와 맞물려 있다.
이런 군포에서 GTX-C 노선은 단순한 교통 공약이 아니다. 시민들에게는 매일 빼앗기는 이동 시간을 얼마나 되돌려줄 수 있느냐의 문제, 곧 생활 시간의 회복과 직결된 과제로 받아들여진다.
군포시장 선거에 도전하는 강대신 국민의힘 군포시당협 부위원장도 시민들의 이런 기대를 ‘시간의 가치’라는 말로 설명했다. 강 부위원장은 “군포는 서울과 주변 도시로 출퇴근하는 직장인과 통학하는 학생이 많은 도시”라며 “GTX가 생기면 길 위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줄고, 그만큼 시민들이 건강과 여가를 챙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군포 시민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시간’이다. 출근 시간대 군포역과 산본역 승강장에는 서울행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광역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정류장 앞에 늘어선 줄도 낯설지 않다. 서울까지의 물리적 거리는 멀지 않지만, 정체와 환승이 반복되는 출퇴근길은 여전히 길고 고되다.
이 때문에 군포 시민들 사이에서 GTX는 단순한 철도 노선을 넘어 ‘시간을 돌려주는 교통수단’이란 기대와 겹친다. 하루 왕복 통근 시간이 줄어든다면 그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휴식이나 자기계발의 여유가 될 수 있다. 군포 시민들이 GTX에 거는 기대는 결국 더 빨라진 이동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 삶의 시간에 있다.
‘교통의 섬’ 군포의 지하화 난제
하지만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고민도 함께 따라온다. 강대신 부위원장은 가장 큰 과제로 사업 재원 문제를 꼽았다. 그는 “일부 구간은 지하화 자체가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 곳도 있다”며 “이런 부분은 결국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과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철도 사업은 단순히 선로를 놓는 수준의 공사가 아니다. 특히 지하화(地下化) 사업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도시 개발과 함께 추진되는 복합 프로젝트다. 철로를 지하로 내리는 순간 그 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주변 교통망과 도시 구조를 어떻게 재편할지까지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철도 지하화는 지자체만의 힘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으로 평가된다.
군포 현장을 둘러보면 이러한 설명이 쉽게 이해된다.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철도와 도로는 이미 촘촘하게 얽혀 있다. 새로운 철도나 지하화 계획을 추진한다는 것은 단순히 선로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아니라, 도시의 동선과 공간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작업에 가깝다.
“군포·안양·의왕 통합해야”
2025년 5월 당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경기 화성시 동탄역 앞에서 ‘GTX로 연결되는 나라’ 공약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 때문에 강대신 부위원장은 GTX 논의를 단순한 교통 공약이 아니라 도시 구조를 재편하는 문제로 보고 있다. 그는 추가적인 대안으로 군포·안양·의왕 3개 도시의 행정 통합 구상도 함께 언급했다.
“군포·안양·의왕 세 도시를 통합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또 군포에는 제대로 된 종합 버스터미널이 없습니다. 고속버스, 시외버스, 공항버스를 한 곳에서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연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군포 시민들이 겪는 또 다른 불편은 장거리 교통 접근성이다. 서울로 향하는 대중교통은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지방 도시로 이동하거나 공항으로 갈 때는 안양이나 수원 같은 다른 도시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강 부위원장은 GTX와 버스터미널을 연결한 교통 허브 구축이 필요하다고 본다. 광역철도와 장거리 버스 교통을 한곳에서 환승할 수 있도록 만들면, 군포가 단순한 베드타운을 넘어 수도권 남부 교통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물론 정치권에서 GTX 공약이 선거 때마다 반복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현실성보다 표를 의식한 약속 아니냐”는 지적이다. 강대신 부위원장은 이런 시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등장하고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시민들이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관련 법 제정과 제도 정비가 이어지면서 사업 구조도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는 정치권이 GTX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게 단순한 선거 전략 때문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시민들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이를 외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만 조금 줄어도 좋겠다”
군포역 주변 상가에서 만난 주민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만 조금 줄어도 좋겠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서울까지의 물리적 거리는 멀지 않지만, 매일 반복되는 통근 시간이 삶에 피로를 쌓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강 부위원장은 GTX 문제를 단순한 교통 공약이 아니라 수도권 구조 변화의 한 단면으로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수도권 역시 저출산과 인구 감소, 고령화 같은 사회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군포 역시 이런 변화에 대응할 새로운 도시 전략과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GTX 역시 이런 맥락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GTX는 단순히 이동 시간을 줄여주는 교통수단이 아닙니다. 역을 중심으로 문화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도시 기능이 결합되는 복합 공간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강 부위원장의 말처럼 GTX는 단순한 철도 노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수도권의 생활 구조와 도시 경쟁력, 지역 경제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는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다.
군포역 승강장에 다시 서울행 열차가 들어왔다. 서둘러 차내에 몸을 싣는 사람들의 뒷모습엔 오늘의 고단함과 내일의 기대가 교차했다. 누군가에겐 생계의 현장으로, 누군가에겐 꿈을 향한 배움터로 이어지는 이 길 위에서, GTX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공학적 수치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고단한 시간을 단 1분이라도 줄여줄 수 있는가”라는, 정치권을 향해 던지는 무거운 질문이다.
수원역 앞 길게 늘어선 버스 줄, 군포역 승강장에 쌓이는 출근 인파, 용산역 앞을 가로지르는 빽빽한 사람들의 흐름은 서로 다른 풍경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장면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GTX는 정말 시민의 삶을 바꾸는 교통 정책인가, 아니면 시민들의 절실한 이동 수요와 개발 기대를 이용하려는 정치의 언어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