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타이완 점령한다고 해도 엄청난 피해… 시진핑·공산당, 정치적으로 살아남을지 의문”
⊙ “美, 미국을 멀리해 온 한국 행적 잘 알고 있어… 美中 覇權 경쟁 속에서 한국의 자세 달라질 필요 있어”
⊙ “美中 관계는 60~65점… 전쟁은 없을 것”
⊙ “美·호주 원자력 잠수함 개발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
⊙ “쿼드는 민주주의·자유시장 국가를 위한 플랫폼”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前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美, 미국을 멀리해 온 한국 행적 잘 알고 있어… 美中 覇權 경쟁 속에서 한국의 자세 달라질 필요 있어”
⊙ “美中 관계는 60~65점… 전쟁은 없을 것”
⊙ “美·호주 원자력 잠수함 개발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
⊙ “쿼드는 민주주의·자유시장 국가를 위한 플랫폼”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前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사진=John Stanmeyer
먼저 10월 초 등장한 미중(美中) 관련 뉴스를 보자. 10월 6일, 스위스에서 벌어진 미중 고위급 회담이 눈에 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 제임스 설리번과 중국 외교의 사령탑인 양제츠(楊潔篪) 중국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이 만났다. 무려 6시간이나 계속된 마라톤회담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회담 내내 주된 내용이었다. 미중 정상(頂上) 화상(畫像)회의 개최가 결정됐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미정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은 고위급 회담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10월 7일에는 프랑스 상원의원단이 타이완(臺灣)을 공식 방문했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만나 양국 간 경제·안보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프랑스는 영국과 더불어 중국의 해양 진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0월 8일에는 일본 신(新)내각의 재무성 장관 스즈키 슈이치(鈴木俊一)가 일본 정부의 대외(對外) 투자 방침을 밝혔다. 정부 자산의 해외 투자 원칙으로 ESG, 즉 ‘환경(Environmental Responsibility)·사회(Social Responsibility)·지배구조(Governance)’에 대한 관점을 중시하겠다고 말했다. 행간 속의 의미를 잘 읽어야 이해가 되는 발언이다. 서방 자유 진영의 기준인 환경·사회·지배구조와 무관한 나라에 대한 정부 투자는 없다는 의미다.
그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중국이다. 중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투자를 바짝 조이겠다는 의미다. 일본이 시작했지만, ESG 나아가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지속가능개발목표)는 중국에 대한 투자와 환경 세금의 근거로 ‘적극’ 활용될 전망이다. 신장위구르, 티베트의 인권탄압은 물론 환경훼손 기업은 서방과의 관계가 끊기는 식이 될 수밖에 없다. 스즈키 재무장관의 ESG 투자 방침은 그 같은 흐름의 출발점에 해당된다.
美中 패권 경쟁과 地政學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결전(決戰)의 무대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판세다. 워싱턴까지 가서 중국을 두둔하는 어느 나라 외교장관도 있지만,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믿는 나라라면 중국의 ‘힘자랑’ 행보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힘자랑’ 중국의 바로 옆에 붙은 나라다. 역사적으로, 나아가 심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나라가 중국이다. 20세기에 잠시 뜸했지만, 21세기부터 싫든 좋든 중국의 영향은 한국 전체에 파급된다. 중국이 인터넷 계정 하나만 막아도 관련 산업의 존폐로 이어질 정도다. 그 결과,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 대통령의 어깨를 칠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중국의 힘자랑과 일방통행 외교는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어디까지 갈지 세계가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중에 마침내 미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중 격돌, 다른 말로는 미중 패권(覇權) 경쟁이 궤도에 올라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정치학의 한 분야인 지정학(地政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리적 환경에 기초해서 정치·군사·경제적 영향을 지구 차원의 거시적(巨視的) 관점에서 연구하는 영역이 지정학이다. 경제·군사·인구·기술·문화도 있지만, 지리적 요소 나아가 지질(地質)·지형(地形)·지세(地勢)를 주요 상수(常數)로 하면서 분석하는 것이 지정학의 특징이자 정의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은 지정학 차원의 연구에 가장 어울리는 나라다. 지구 차원의 큰 그림 속에서 두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전망하고, 다른 나라들의 미래도 분석할 수 있다.
‘키신저를 잇는 지정학자’
현재 전 세계 석학(碩學) 가운데 지정학에 가장 정통한 인물은 로버트 카플란(Robert D Kaplan)이다. 한국에도 많이 소개된 인물로 《아시아의 불타는 솥(Asia’s Cauldron)》을 비롯해 10여 권 이상의 지정학 관련 저서를 남긴 인물이다. 현재 워싱턴 싱크탱크인 국제정책연구소(FPRI) 선임 소장으로 있으면서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전 세계 유수 미디어를 통해 글로벌 차원의 혜안(慧眼)을 전하고 있다. 그는 ‘키신저를 잇는 글로벌 차원의 21세기 지정학자’로 통한다.
필자는 2015년 9월 워싱턴에서 카플란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함께 천안문(天安門) 망루에 올라, 이른바 ‘항일(抗日)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을 축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행사에 참석한 OECD권 유일의 국가 정상이었다. 워싱턴 분위기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시간에 걸친 카플란과의 인터뷰 중에서 그가 예언한 두 가지 사안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지정학적 차원에서의 인도의 중요성이 곧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김정은은 핵 문제에 타협한 리비아 카다피의 최후를 본 이상,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인터뷰 이후 6년이 지난 지금 카플란을 통해 2021년 미중 패권 경쟁의 현황과 내일에 대해 알아본다. 최근 가속화되는 4자 안보협의체 쿼드(Quad)와 긴장으로 이어지는 남중국해의 지정학적 의미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인터뷰는 영상 통화 프로그램인 줌을 이용, 워싱턴 카플란의 사무실로 연결해 진행됐다.
글로벌 2.0 시대
― 20세기 냉전(冷戰)에 이어 현재 냉전 2.0인가, 아니면 냉전 2.0으로 진입하고 있는가.
“세계는 현재 글로벌 2.0 시대에 들어선 상태다. 글로벌 1.0 시대는 지구촌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었다. 중산층이 늘고 소득도 증가하고 민주주의도 향상됐다. 패권을 향한 국제적 분쟁도 없었다. 지구 곳곳에서 접했던 극단적인 가난과 기아도 사라졌다.
그러나 글로벌 2.0은 아주 어두운 시대다. 포퓰리즘에 기초한 독재자도 나타나고 글로벌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국제사회 내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패권 경쟁은 좋은 본보기다.
좁게 보자면 ‘글로벌 2.0=냉전 2.0’이라 볼 수도 있다. 상대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Hot), 약해지기를(Cold) 원한다는 의미에서 냉전(Cold War)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큰 각도에서 보면 ‘글로벌 2.0=냉전 2.0’이라 보기는 힘들다.
20세기 냉전 당시를 돌아보면, 소비에트나 중국은 글로벌 경제에 대한 발언력도 거의 없었고 관심 또한 없었다. 미국도 서방과의 교류에만 주목했을 뿐 러시아·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전무(全無)했다.
21세기 글로벌 2.0은 다르다. 중국은 이미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했고,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을 통해 유럽 경제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 더불어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지구온난화, 사이버 공격과 초고속 정밀 공격용 무기와 관련된 문제도 현실적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어떤 때보다도 불확실·불안정한 시대라는 점은 분명하다.”
“美中 경쟁, 역사상 유례없어”
― 어떤 식으로든 이미 냉전에 들어섰다는 점은 분명한가.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냉전이라 볼 수 있다. (20세기 냉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과 중국은 서로 대화를 하면서 전쟁(Hot War)을 피하려는 데 힘을 모을 것이다. 정상회담이나 주기적(週期的)인 고위급 만남을 통해 법에 근거한(Rule of the Law) 양국 간의 충돌 방지에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이 있다 해도 서로 간의 패권을 향한 갈등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 21세기 미중 간의 패권 경쟁과 비교될 만한 상황을 인류 역사 무대에서 찾아낸다면.
“비슷한 케이스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과거 러시아(소련)의 경우 1차원 경쟁 대국이었다. 핵폭탄이나 우주개발과 같은 군사적 차원의 패권 경쟁이 전부였다. 중국의 경우 전방위 3차원 경쟁 국가에 해당된다. 핵·우주·군사 분야만이 아니라, 무역·서비스·휴먼 파워에 이르는 다차원(多次元) 경쟁이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고 있다.
더욱 주목할 부분은 미국은 금융 투자를 통해 중국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20세기 냉전 당시 보지 못했던 상황이다. 러시아를 넘어서 근세(近世)나 고대(古代)로 간다 해도 현재의 미중 관계에 비교될 만한 케이스는 없다. 양국 간 경제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통신도 서로에게 오픈돼 있다는 점에서 과거 역사와 비교하기 어렵다.”
20세기 역사를 보면, 미국과 중국은 극(極)과 극의 관계로 이어져 왔다. 1941년 일본을 공적(共敵)으로 한 미군 항공기 부대 비호대(飛虎隊·Flying Tigers), 1950년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 1979년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덩샤오핑(鄧小平)의 미국 방문과 미중 수교(修交)…. 극과 극을 오간 미중 관계는 수교 42년 만에 다시 험로(險路)로 들어서고 있다.
― 미중이 전쟁 상태였던 1950년을 1, 미중 최고 우호 시기였던 1979년을 100이라 할 때, 2021년 미중 관계는 얼마의 디지털 숫자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2021년은 한가운데인 50 정도, 아니 조금 더 좋게 봐서 60이나 65 정도라 볼 수도 있겠다.”
― 상당히 긍정적인데, 60이나 65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미중 양국 모두가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파워를 확산, 강화해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목할 부분이 하나 있다. 중국이 그 같은 군사력 확산을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중국에 대해 미국이 스스로 나서서 전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
― 중국이 미국과의 전쟁을 ‘영원히’ 원치 않는다고 보는가.
“관건은 타이완이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남중국해 한복판에 위치한 나라가 타이완이다. 미국은 결코 타이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식축구 경기에서의 선수 움직임 가운데 ‘엔드 런(End Run)’이란 것이 있다. 우군 방어벽을 가운데 두고, 혼자서 외곽으로 뛰면서 상대방의 공격을 분산시키는 행위다.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현재 중국은 ‘엔드 런’ 작전을 쓰면서 미국을 교란하려 하고 있다. 사이버 공격이나 타이완 인사에 대한 협박 나아가 타이완 기업에 대한 차별이 좋은 본보기들이다.
중국이 실제로 타이완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미국이 타이완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일관하는 한, 중국이 타이완을 점령한다고 해도 엄청난 피해가 대륙에도 미칠 것이다. 그 같은 상황하에서, 정치적으로 시진핑 본인은 물론, 중국 공산당 자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역사적인 대전환이 중국에서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중국이 실제 무력(武力)행사를 타이완에 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레드 라인
2014년 2월 28일,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나는 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략이 시작됐다. 기억에도 선명하지만, 당시 서방은 러시아의 침략을 입으로만 비난할 뿐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중국 시진핑이 주석에 오른 것은 2012년 11월이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아무런 문제 없이 ‘간단히’ 손에 넣은 푸틴을 보면서 집권 16개월 차인 시진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홍콩이 사실상 중국 공산당에 완전히 넘어간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발생 7년 뒤다. 타이완은 홍콩에 이은 또 하나의 시진핑 힘자랑 모델이 될 수도 있다.
― 우크라이나나 홍콩에 관한 미국의 자세를 보면 실망 그 자체다. 어디까지 입으로만 대응할지 궁금하다. 아시아 정책과 관련해, 미국이 생각하는 최종 레드 라인(Red Line·전쟁을 통한 개입 기점)은 무엇인가.
“단 하나가 아니라 몇 가지 있다.
첫째, 북한이 일본 본토에 직접 미사일을 쏘는 경우다. 실험이 아닌, 살상(殺傷)을 전제로 한 미사일 발사를 할 경우, 미국은 미일(美日)동맹에 의해 곧바로 무력 대응에 들어갈 것이다.
둘째, 중국에 의한 타이완 도발이다. 현재 중국이 벌이는 위협 이상의 심각한 도전으로, 제트 비행기가 (타이완) 상공으로 날아가면서 공격하는 식의 비상사태다.
셋째, 항해 중인 미국 해군에 대한 중국군의 공격이다.”
― 미국이 원칙으로 정한 레드 라인에 대해, 중국도 알고 있는가.
“물론이다. 중국은 미국이 어떤 사안들을 레드 라인으로 여기는지 분명히 정확히 알고 있으며, 항상 주의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동맹에 대한 배려 없는 바이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두 가지 본보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먼저, 4월 24일 대통령 취임 3개월에 들어섰던 때다. 바이든은 터키의 전신(前身)인 오스만튀르크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제노사이드(genocide)로 규정했다. 터키가 발끈한 것은 물론이다. 터키는 나토(NATO)의 일원, 미국의 동맹국이다. 바이든이 오스만튀르크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한 것은 동맹국이라도 예외 없이 원칙대로 대하겠다는 의미다.
9월 17일은 두 번째 본보기다. 이날 호주는 미국과 함께 원자력 잠수함 개발에 나서기로 하면서, 프랑스와의 디젤 잠수함 계약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영국이 중간에 서서 미국과 호주를 연결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 프랑스는 호주 정부에 항의하고, 미국에도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전했다.
전체 그림을 보면 바이든이 프랑스를 버리고 호주 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은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 건조기술을 전수한 유일한 나라다. 이제 초특급 군사비밀이 호주에도 넘겨진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가 ‘팽(烹)’당한 것이다.
눈앞에 긴급 현안이 생길 경우에 바이든 외교는 기존 동맹국에 대한 배려가 없다. 나토 내 유일한 이슬람권 동맹국인 터키, 사실상 유럽 안보의 중심인 프랑스도 간단히 버린다.
영국은 그 같은 바이든을 지지하는 오른팔이다. 한국 신문을 보면 유럽에서 벗어난 영국의 어두운 미래에 관한 글이 대부분이다. 거꾸로 영국이 버린, 불안한 유럽의 내일에 관한 분석은 전무하다. 아프가니스탄을 버리면서 미국의 체면이 구겨졌다지만, 이는 하루 이틀 뒤면 잊힌다. 미국에 버려진 아프가니스탄의 내일은 방향조차 잡기 어려운 암흑 그 자체다.
호주, 양다리 외교 탈피
― 호주에 제공될 예정인 원자력 잠수함이 갖는 국제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특히 중국에 대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미국은 (중국 도발과 관련된) 현재의 상황을 아주 진지하게 대한다’는 메시지가 중국에 전달됐을 것으로 본다. 미국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미국 동맹국인 한국·일본·호주, 나아가 준(準)동맹국인 베트남이 걱정하는 문제를 방관하면서 무시하지 않을 것이란 것이 호주 잠수함 문제를 통해 확실히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글로벌 지정학적 차원에서 볼 때 원자력 잠수함 문제는 ‘아주 아주’ 큰 이슈다. 원래 호주는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는 양다리 외교를 지향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인 셈이다. 그러나 호주의 미국산 원자력 잠수함 개발은 그 같은 어중간한 입장을 완전히 탈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력 잠수함 개발에는 수천, 수만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수년간에 걸친 시간도 필요하다. 첨단 전투기를 파는 식의 군사교류와는 차원이 다르다. 미국과 호주 양국이 완전히 힘을 합쳐 추진하는 초대형 장기 프로젝트다.”
― 원자력 잠수함 프로젝트는 미국·호주·영국으로 이어지는 3국 간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 발족과 함께 발표됐다. 앵글로색슨동맹(Anglo Sexson Alliance)인 셈인데.
“물론이다. 오커스는 물론, 원자력 잠수함 프로젝트도 앵글로색슨동맹이기에 가능한 사안이다. 같은 문화권에 선 나라로서 협력하는 것이다. 같은 문화라는 말은 상호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 당연히 원자력 잠수함 프로젝트는 앵글로색슨 정보공유 시스템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기초한 결정이다. ‘파이브 아이즈’ 회원은 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에 국한된다. 이들 중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독자적 공격보다 동맹을 통한 방어 능력 강화에 주목한다. 캐나다는 미국이, 뉴질랜드는 호주와 함께 지킬 수 있다. 따라서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좀처럼 공격적인 외교에 나서지 않는다.”
“바이든, 호주 原潛 관련해 탁월한 리더십 발휘”
― 유럽의 나토와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미국·영국·호주 3국 간 동맹인 오커스는 당연히 나토와 연결될 것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글로벌 지정학적 차원의 안보 체제인 셈이다. 중국이 노리는 군사적 영향력을 감쇄(減殺)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 오커스는 미국이 아닌, 영국의 제안으로 창설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영국이 왜 갑자기 아시아에 관심을 갖는가.
“누가 오커스의 주창자인지는 전혀 모른다. 내가 알기로 호주는 원래부터 프랑스의 디젤 잠수함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중국이 행하는 유형·무형의 경제적·정치적 압력도 호주가 수용하기 어려웠다. 결국 호주가 먼저 미국에 잠수함 문제를 꺼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이든 정권의 대응이다. 번개처럼 재빨리 일을 끝냈다. 일반적으로 초대형 최고 군사기밀에 관련된 프로젝트는 양국 간 추진위원회나 관료들 간의 협의체를 구성한 뒤 몇 년간의 미팅과 토론을 통해 실행된다. 바이든은 호주와의 문제를 아주 신속하고도 분명하게 결정했다. 바이든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 잠수함 프로젝트에 관한 그의 리더십은 탁월하다.
당신이 말한 대로 영국이 제안해 잠수함 프로젝트와 오커스가 탄생했을 수도 있다. 영국은 유럽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미국과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고, 태평양에 이르는 영국의 이익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호주를 도왔다고도 볼 수 있다. 누가 제안을 했든, 결과적으로 모두의 이익에 합치되고, 중국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됐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美 核航母가 常駐하는 유일한 나라”
― 일본에 새로운 내각이 출범했다.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대폭 올리자는 얘기가 들린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신내각의 면면을 보면, 중국에 대한 일본의 경계심이 수직 상승한 듯하다. 일본은 미국, 미국은 일본에 무엇을 원하는가.
“미국 땅 밖에서, 미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이 상주(常駐)하는 유일한 나라가 일본이다. 유럽이나 그 어디에도 없는, 대규모 최첨단 전투기 편대를 기반으로 한 핵추진 항공모함이 일본에만 상주하고 있다. 핵추진 항공모함은 미국 동부와 서부 해안, 그리고 하와이 주변만 지키는 미국 방어용 무기다. 일본만이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이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엄청난 군사적 우위를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미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의 상주로 일본은 크게 안도하고 있다. 트럼프 정권 당시 동맹국 일본의 기분을 상하게 한 적도 있지만, 핵추진 항공모함 상주를 통해 안심하는 분위기다.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올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누가 나와도 핵추진 항공모함의 일본 상주는 변치 않을 것이다. 호주의 원자력 잠수함도 일본 안전 보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얘기를 쿼드로 넘기자. 쿼드는 아시아판 나토인가.
“그렇지 않다. 회원국을 보자. 나토는 20개가 넘는 나라로 이루어져 있다. 쿼드는 말 그대로 4개국에 그친다. 그러나 비록 적은 수지만, 아주 중요한 연합체다. ‘플랫폼(Platform)’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전제로 하는 국가를 위한 플랫폼으로서 쿼드가 적극 활용될 것이다. 애플 모바일이 그러하듯, 수많은 앱(App)이 애플 시스템을 플랫폼으로 사용하면서 인터넷 유저(User)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다. 애플이 정한 계약 조건만 지킨다면 누구나 플랫폼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서로 중시하는 원칙에 동의하는 한, 원자력 잠수함 프로젝트 같은 것도 쿼드라는 플랫폼에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韓, 日과 분쟁 빨리 해결해야만 한다”
― 현재 한국은 쿼드에서 벗어나 있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한국은 아직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가.
“내년에 한국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고 들었다. 여야(與野)의 외교·안보 정책을 보면 아주 대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누가 당선될지에 달려 있겠지만, 한국이 일본과의 문제를 풀고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원칙으로 하는 한, 쿼드 참여도 가능하다고 본다.”
― 외교·안보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대통령 후보, 나아가 차기 대통령에게 조언을 한다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점점 더 뜨겁게 달궈지고 격해질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에 걸쳐 중국 쪽에 섰다. 결과적으로 미국을 멀리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미국은 그 같은 한국의 행적(行蹟)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과거는 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미중이 지금처럼 패권경쟁을 벌인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중 관계가 점점 악화되면서 한국의 그 같은 자세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무역분쟁도 빨리 해결하고, 일본을 포함한 서방과의 자유무역에 적극 나설 것을 권한다.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지속될 경우, 결과적으로 안보 차원의 영구적인 손실이 한국에 닥칠 것이다.”
카플란은 한일 간 무역분쟁을 언급할 때 ‘has to’란 단어를 거듭 사용했다.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분쟁을 ‘빨리 해결해야만 한다(has to solve the dispute immediately)’”라는 식이다. 전체적으로 톤을 죽이며 얘기를 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한국은 일본뿐 아니라 쿼드는 물론 자유 진영 모두와 소원(疏遠)한 관계로 갈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이 일본과의 경제 분쟁을 넘어서 글로벌 차원의 안보 체제로부터 소외(疎外)된다는 얘기다. 혹자는 카플란을 일본에 경도(傾倒)된 친일파(親日派) 지정학자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핵심은 그가 친일파냐 여부가 아니다. 미중 경쟁이 격해질수록, 한국은 양자택일(兩者擇一)이라는 막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이 카플란의 분석이다.
“一帶一路는 영원히 지속될 問題兒”
― 미중 격돌의 출발점은 중국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시작된 듯하다. 바다와 육지 양면으로 이뤄지는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과연 성공할까.
“부분적으로 성공하고 부분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실크로드 계획은 글로벌 차원의 방대한 프로젝트다. 내가 볼 때 실크로드 계획은 ‘브랜드’, 즉 상품의 상표와 같은 개념을 갖고 있다. 어떤 체계적·종합적인 개념이라기보다, 중국 밖에서 벌어지는 도로·기차·항만·인터넷 등 인프라 건설에 관한 것을 총망라해서 실크로드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세계 곳곳에서 추진되는 동안 갖가지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실크로드 프로젝트 자체가 아니라, 문제가 터질 경우 ‘과연 중국이 해결할 수 있고 책임을 질 것인가’라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성공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영원히 지속될 문제아(問題兒)로 남을 것이다.”
카플란과의 인터뷰가 끝난 후 시계를 보기 위해 휴대폰을 열자 곧바로 도쿄발(發) 속보(速報) 하나가 뜬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한 반도체 투자’라는 뉴스다. 타이완 반도체 회사 TSMC와 일본 소니가 80억 달러 규모의 자동차용 반도체 개발에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불과 3년 뒤인 2024년 이전에 생산에 들어간다고 한다. 중국 디커플링(decoupling)을 전제로 한, 일본-타이완 초고속 반도체 연합전선인 셈이다. 싫든 좋든, 원하든 원치 않든, 한국이 미중 간에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순간은 이미 초읽기에 접어든 느낌이다.⊙
10월 7일에는 프랑스 상원의원단이 타이완(臺灣)을 공식 방문했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만나 양국 간 경제·안보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프랑스는 영국과 더불어 중국의 해양 진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0월 8일에는 일본 신(新)내각의 재무성 장관 스즈키 슈이치(鈴木俊一)가 일본 정부의 대외(對外) 투자 방침을 밝혔다. 정부 자산의 해외 투자 원칙으로 ESG, 즉 ‘환경(Environmental Responsibility)·사회(Social Responsibility)·지배구조(Governance)’에 대한 관점을 중시하겠다고 말했다. 행간 속의 의미를 잘 읽어야 이해가 되는 발언이다. 서방 자유 진영의 기준인 환경·사회·지배구조와 무관한 나라에 대한 정부 투자는 없다는 의미다.
그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중국이다. 중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투자를 바짝 조이겠다는 의미다. 일본이 시작했지만, ESG 나아가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지속가능개발목표)는 중국에 대한 투자와 환경 세금의 근거로 ‘적극’ 활용될 전망이다. 신장위구르, 티베트의 인권탄압은 물론 환경훼손 기업은 서방과의 관계가 끊기는 식이 될 수밖에 없다. 스즈키 재무장관의 ESG 투자 방침은 그 같은 흐름의 출발점에 해당된다.
美中 패권 경쟁과 地政學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결전(決戰)의 무대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판세다. 워싱턴까지 가서 중국을 두둔하는 어느 나라 외교장관도 있지만,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믿는 나라라면 중국의 ‘힘자랑’ 행보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힘자랑’ 중국의 바로 옆에 붙은 나라다. 역사적으로, 나아가 심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나라가 중국이다. 20세기에 잠시 뜸했지만, 21세기부터 싫든 좋든 중국의 영향은 한국 전체에 파급된다. 중국이 인터넷 계정 하나만 막아도 관련 산업의 존폐로 이어질 정도다. 그 결과,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 대통령의 어깨를 칠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중국의 힘자랑과 일방통행 외교는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어디까지 갈지 세계가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중에 마침내 미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중 격돌, 다른 말로는 미중 패권(覇權) 경쟁이 궤도에 올라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정치학의 한 분야인 지정학(地政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리적 환경에 기초해서 정치·군사·경제적 영향을 지구 차원의 거시적(巨視的) 관점에서 연구하는 영역이 지정학이다. 경제·군사·인구·기술·문화도 있지만, 지리적 요소 나아가 지질(地質)·지형(地形)·지세(地勢)를 주요 상수(常數)로 하면서 분석하는 것이 지정학의 특징이자 정의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은 지정학 차원의 연구에 가장 어울리는 나라다. 지구 차원의 큰 그림 속에서 두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전망하고, 다른 나라들의 미래도 분석할 수 있다.
‘키신저를 잇는 지정학자’
현재 전 세계 석학(碩學) 가운데 지정학에 가장 정통한 인물은 로버트 카플란(Robert D Kaplan)이다. 한국에도 많이 소개된 인물로 《아시아의 불타는 솥(Asia’s Cauldron)》을 비롯해 10여 권 이상의 지정학 관련 저서를 남긴 인물이다. 현재 워싱턴 싱크탱크인 국제정책연구소(FPRI) 선임 소장으로 있으면서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전 세계 유수 미디어를 통해 글로벌 차원의 혜안(慧眼)을 전하고 있다. 그는 ‘키신저를 잇는 글로벌 차원의 21세기 지정학자’로 통한다.
필자는 2015년 9월 워싱턴에서 카플란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함께 천안문(天安門) 망루에 올라, 이른바 ‘항일(抗日)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을 축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행사에 참석한 OECD권 유일의 국가 정상이었다. 워싱턴 분위기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시간에 걸친 카플란과의 인터뷰 중에서 그가 예언한 두 가지 사안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지정학적 차원에서의 인도의 중요성이 곧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김정은은 핵 문제에 타협한 리비아 카다피의 최후를 본 이상,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인터뷰 이후 6년이 지난 지금 카플란을 통해 2021년 미중 패권 경쟁의 현황과 내일에 대해 알아본다. 최근 가속화되는 4자 안보협의체 쿼드(Quad)와 긴장으로 이어지는 남중국해의 지정학적 의미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인터뷰는 영상 통화 프로그램인 줌을 이용, 워싱턴 카플란의 사무실로 연결해 진행됐다.
글로벌 2.0 시대
― 20세기 냉전(冷戰)에 이어 현재 냉전 2.0인가, 아니면 냉전 2.0으로 진입하고 있는가.
“세계는 현재 글로벌 2.0 시대에 들어선 상태다. 글로벌 1.0 시대는 지구촌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었다. 중산층이 늘고 소득도 증가하고 민주주의도 향상됐다. 패권을 향한 국제적 분쟁도 없었다. 지구 곳곳에서 접했던 극단적인 가난과 기아도 사라졌다.
그러나 글로벌 2.0은 아주 어두운 시대다. 포퓰리즘에 기초한 독재자도 나타나고 글로벌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국제사회 내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패권 경쟁은 좋은 본보기다.
좁게 보자면 ‘글로벌 2.0=냉전 2.0’이라 볼 수도 있다. 상대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Hot), 약해지기를(Cold) 원한다는 의미에서 냉전(Cold War)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큰 각도에서 보면 ‘글로벌 2.0=냉전 2.0’이라 보기는 힘들다.
20세기 냉전 당시를 돌아보면, 소비에트나 중국은 글로벌 경제에 대한 발언력도 거의 없었고 관심 또한 없었다. 미국도 서방과의 교류에만 주목했을 뿐 러시아·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전무(全無)했다.
21세기 글로벌 2.0은 다르다. 중국은 이미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했고,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을 통해 유럽 경제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 더불어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지구온난화, 사이버 공격과 초고속 정밀 공격용 무기와 관련된 문제도 현실적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어떤 때보다도 불확실·불안정한 시대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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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지난 7월 1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중화민족이 당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사진=AP/뉴시스 |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냉전이라 볼 수 있다. (20세기 냉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과 중국은 서로 대화를 하면서 전쟁(Hot War)을 피하려는 데 힘을 모을 것이다. 정상회담이나 주기적(週期的)인 고위급 만남을 통해 법에 근거한(Rule of the Law) 양국 간의 충돌 방지에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이 있다 해도 서로 간의 패권을 향한 갈등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 21세기 미중 간의 패권 경쟁과 비교될 만한 상황을 인류 역사 무대에서 찾아낸다면.
“비슷한 케이스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과거 러시아(소련)의 경우 1차원 경쟁 대국이었다. 핵폭탄이나 우주개발과 같은 군사적 차원의 패권 경쟁이 전부였다. 중국의 경우 전방위 3차원 경쟁 국가에 해당된다. 핵·우주·군사 분야만이 아니라, 무역·서비스·휴먼 파워에 이르는 다차원(多次元) 경쟁이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고 있다.
더욱 주목할 부분은 미국은 금융 투자를 통해 중국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20세기 냉전 당시 보지 못했던 상황이다. 러시아를 넘어서 근세(近世)나 고대(古代)로 간다 해도 현재의 미중 관계에 비교될 만한 케이스는 없다. 양국 간 경제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통신도 서로에게 오픈돼 있다는 점에서 과거 역사와 비교하기 어렵다.”
20세기 역사를 보면, 미국과 중국은 극(極)과 극의 관계로 이어져 왔다. 1941년 일본을 공적(共敵)으로 한 미군 항공기 부대 비호대(飛虎隊·Flying Tigers), 1950년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 1979년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덩샤오핑(鄧小平)의 미국 방문과 미중 수교(修交)…. 극과 극을 오간 미중 관계는 수교 42년 만에 다시 험로(險路)로 들어서고 있다.
― 미중이 전쟁 상태였던 1950년을 1, 미중 최고 우호 시기였던 1979년을 100이라 할 때, 2021년 미중 관계는 얼마의 디지털 숫자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2021년은 한가운데인 50 정도, 아니 조금 더 좋게 봐서 60이나 65 정도라 볼 수도 있겠다.”
― 상당히 긍정적인데, 60이나 65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미중 양국 모두가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파워를 확산, 강화해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목할 부분이 하나 있다. 중국이 그 같은 군사력 확산을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중국에 대해 미국이 스스로 나서서 전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
― 중국이 미국과의 전쟁을 ‘영원히’ 원치 않는다고 보는가.
“관건은 타이완이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남중국해 한복판에 위치한 나라가 타이완이다. 미국은 결코 타이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식축구 경기에서의 선수 움직임 가운데 ‘엔드 런(End Run)’이란 것이 있다. 우군 방어벽을 가운데 두고, 혼자서 외곽으로 뛰면서 상대방의 공격을 분산시키는 행위다.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현재 중국은 ‘엔드 런’ 작전을 쓰면서 미국을 교란하려 하고 있다. 사이버 공격이나 타이완 인사에 대한 협박 나아가 타이완 기업에 대한 차별이 좋은 본보기들이다.
중국이 실제로 타이완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미국이 타이완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일관하는 한, 중국이 타이완을 점령한다고 해도 엄청난 피해가 대륙에도 미칠 것이다. 그 같은 상황하에서, 정치적으로 시진핑 본인은 물론, 중국 공산당 자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역사적인 대전환이 중국에서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중국이 실제 무력(武力)행사를 타이완에 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레드 라인
2014년 2월 28일,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나는 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략이 시작됐다. 기억에도 선명하지만, 당시 서방은 러시아의 침략을 입으로만 비난할 뿐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중국 시진핑이 주석에 오른 것은 2012년 11월이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아무런 문제 없이 ‘간단히’ 손에 넣은 푸틴을 보면서 집권 16개월 차인 시진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홍콩이 사실상 중국 공산당에 완전히 넘어간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발생 7년 뒤다. 타이완은 홍콩에 이은 또 하나의 시진핑 힘자랑 모델이 될 수도 있다.
― 우크라이나나 홍콩에 관한 미국의 자세를 보면 실망 그 자체다. 어디까지 입으로만 대응할지 궁금하다. 아시아 정책과 관련해, 미국이 생각하는 최종 레드 라인(Red Line·전쟁을 통한 개입 기점)은 무엇인가.
“단 하나가 아니라 몇 가지 있다.
첫째, 북한이 일본 본토에 직접 미사일을 쏘는 경우다. 실험이 아닌, 살상(殺傷)을 전제로 한 미사일 발사를 할 경우, 미국은 미일(美日)동맹에 의해 곧바로 무력 대응에 들어갈 것이다.
둘째, 중국에 의한 타이완 도발이다. 현재 중국이 벌이는 위협 이상의 심각한 도전으로, 제트 비행기가 (타이완) 상공으로 날아가면서 공격하는 식의 비상사태다.
셋째, 항해 중인 미국 해군에 대한 중국군의 공격이다.”
― 미국이 원칙으로 정한 레드 라인에 대해, 중국도 알고 있는가.
“물론이다. 중국은 미국이 어떤 사안들을 레드 라인으로 여기는지 분명히 정확히 알고 있으며, 항상 주의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동맹에 대한 배려 없는 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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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일 호주의 해군기지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과 말콤 턴불 호주 총리(가운데). 프랑스는 호주의 디젤 잠수함 사업을 수주하려 노력했지만, 막판에 호주가 미국 원자력 잠수함을 도입하기로 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사진=AP/뉴시스 |
먼저, 4월 24일 대통령 취임 3개월에 들어섰던 때다. 바이든은 터키의 전신(前身)인 오스만튀르크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제노사이드(genocide)로 규정했다. 터키가 발끈한 것은 물론이다. 터키는 나토(NATO)의 일원, 미국의 동맹국이다. 바이든이 오스만튀르크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한 것은 동맹국이라도 예외 없이 원칙대로 대하겠다는 의미다.
9월 17일은 두 번째 본보기다. 이날 호주는 미국과 함께 원자력 잠수함 개발에 나서기로 하면서, 프랑스와의 디젤 잠수함 계약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영국이 중간에 서서 미국과 호주를 연결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 프랑스는 호주 정부에 항의하고, 미국에도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전했다.
전체 그림을 보면 바이든이 프랑스를 버리고 호주 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은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 건조기술을 전수한 유일한 나라다. 이제 초특급 군사비밀이 호주에도 넘겨진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가 ‘팽(烹)’당한 것이다.
눈앞에 긴급 현안이 생길 경우에 바이든 외교는 기존 동맹국에 대한 배려가 없다. 나토 내 유일한 이슬람권 동맹국인 터키, 사실상 유럽 안보의 중심인 프랑스도 간단히 버린다.
영국은 그 같은 바이든을 지지하는 오른팔이다. 한국 신문을 보면 유럽에서 벗어난 영국의 어두운 미래에 관한 글이 대부분이다. 거꾸로 영국이 버린, 불안한 유럽의 내일에 관한 분석은 전무하다. 아프가니스탄을 버리면서 미국의 체면이 구겨졌다지만, 이는 하루 이틀 뒤면 잊힌다. 미국에 버려진 아프가니스탄의 내일은 방향조차 잡기 어려운 암흑 그 자체다.
― 호주에 제공될 예정인 원자력 잠수함이 갖는 국제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특히 중국에 대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미국은 (중국 도발과 관련된) 현재의 상황을 아주 진지하게 대한다’는 메시지가 중국에 전달됐을 것으로 본다. 미국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미국 동맹국인 한국·일본·호주, 나아가 준(準)동맹국인 베트남이 걱정하는 문제를 방관하면서 무시하지 않을 것이란 것이 호주 잠수함 문제를 통해 확실히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글로벌 지정학적 차원에서 볼 때 원자력 잠수함 문제는 ‘아주 아주’ 큰 이슈다. 원래 호주는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는 양다리 외교를 지향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인 셈이다. 그러나 호주의 미국산 원자력 잠수함 개발은 그 같은 어중간한 입장을 완전히 탈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력 잠수함 개발에는 수천, 수만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수년간에 걸친 시간도 필요하다. 첨단 전투기를 파는 식의 군사교류와는 차원이 다르다. 미국과 호주 양국이 완전히 힘을 합쳐 추진하는 초대형 장기 프로젝트다.”
― 원자력 잠수함 프로젝트는 미국·호주·영국으로 이어지는 3국 간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 발족과 함께 발표됐다. 앵글로색슨동맹(Anglo Sexson Alliance)인 셈인데.
“물론이다. 오커스는 물론, 원자력 잠수함 프로젝트도 앵글로색슨동맹이기에 가능한 사안이다. 같은 문화권에 선 나라로서 협력하는 것이다. 같은 문화라는 말은 상호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 당연히 원자력 잠수함 프로젝트는 앵글로색슨 정보공유 시스템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기초한 결정이다. ‘파이브 아이즈’ 회원은 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에 국한된다. 이들 중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독자적 공격보다 동맹을 통한 방어 능력 강화에 주목한다. 캐나다는 미국이, 뉴질랜드는 호주와 함께 지킬 수 있다. 따라서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좀처럼 공격적인 외교에 나서지 않는다.”
“바이든, 호주 原潛 관련해 탁월한 리더십 발휘”
― 유럽의 나토와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미국·영국·호주 3국 간 동맹인 오커스는 당연히 나토와 연결될 것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글로벌 지정학적 차원의 안보 체제인 셈이다. 중국이 노리는 군사적 영향력을 감쇄(減殺)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 오커스는 미국이 아닌, 영국의 제안으로 창설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영국이 왜 갑자기 아시아에 관심을 갖는가.
“누가 오커스의 주창자인지는 전혀 모른다. 내가 알기로 호주는 원래부터 프랑스의 디젤 잠수함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중국이 행하는 유형·무형의 경제적·정치적 압력도 호주가 수용하기 어려웠다. 결국 호주가 먼저 미국에 잠수함 문제를 꺼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이든 정권의 대응이다. 번개처럼 재빨리 일을 끝냈다. 일반적으로 초대형 최고 군사기밀에 관련된 프로젝트는 양국 간 추진위원회나 관료들 간의 협의체를 구성한 뒤 몇 년간의 미팅과 토론을 통해 실행된다. 바이든은 호주와의 문제를 아주 신속하고도 분명하게 결정했다. 바이든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 잠수함 프로젝트에 관한 그의 리더십은 탁월하다.
당신이 말한 대로 영국이 제안해 잠수함 프로젝트와 오커스가 탄생했을 수도 있다. 영국은 유럽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미국과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고, 태평양에 이르는 영국의 이익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호주를 도왔다고도 볼 수 있다. 누가 제안을 했든, 결과적으로 모두의 이익에 합치되고, 중국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됐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美 核航母가 常駐하는 유일한 나라”
― 일본에 새로운 내각이 출범했다.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대폭 올리자는 얘기가 들린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신내각의 면면을 보면, 중국에 대한 일본의 경계심이 수직 상승한 듯하다. 일본은 미국, 미국은 일본에 무엇을 원하는가.
“미국 땅 밖에서, 미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이 상주(常駐)하는 유일한 나라가 일본이다. 유럽이나 그 어디에도 없는, 대규모 최첨단 전투기 편대를 기반으로 한 핵추진 항공모함이 일본에만 상주하고 있다. 핵추진 항공모함은 미국 동부와 서부 해안, 그리고 하와이 주변만 지키는 미국 방어용 무기다. 일본만이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이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엄청난 군사적 우위를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미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의 상주로 일본은 크게 안도하고 있다. 트럼프 정권 당시 동맹국 일본의 기분을 상하게 한 적도 있지만, 핵추진 항공모함 상주를 통해 안심하는 분위기다.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올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누가 나와도 핵추진 항공모함의 일본 상주는 변치 않을 것이다. 호주의 원자력 잠수함도 일본 안전 보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얘기를 쿼드로 넘기자. 쿼드는 아시아판 나토인가.
“그렇지 않다. 회원국을 보자. 나토는 20개가 넘는 나라로 이루어져 있다. 쿼드는 말 그대로 4개국에 그친다. 그러나 비록 적은 수지만, 아주 중요한 연합체다. ‘플랫폼(Platform)’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전제로 하는 국가를 위한 플랫폼으로서 쿼드가 적극 활용될 것이다. 애플 모바일이 그러하듯, 수많은 앱(App)이 애플 시스템을 플랫폼으로 사용하면서 인터넷 유저(User)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다. 애플이 정한 계약 조건만 지킨다면 누구나 플랫폼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서로 중시하는 원칙에 동의하는 한, 원자력 잠수함 프로젝트 같은 것도 쿼드라는 플랫폼에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韓, 日과 분쟁 빨리 해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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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 백악관에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스가 일본 총리, 모리슨 호주 총리, 모디 인도 총리가 참석한 쿼드정상회의가 열렸다. 사진=AP/뉴시스 |
“내년에 한국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고 들었다. 여야(與野)의 외교·안보 정책을 보면 아주 대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누가 당선될지에 달려 있겠지만, 한국이 일본과의 문제를 풀고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원칙으로 하는 한, 쿼드 참여도 가능하다고 본다.”
― 외교·안보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대통령 후보, 나아가 차기 대통령에게 조언을 한다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점점 더 뜨겁게 달궈지고 격해질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에 걸쳐 중국 쪽에 섰다. 결과적으로 미국을 멀리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미국은 그 같은 한국의 행적(行蹟)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과거는 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미중이 지금처럼 패권경쟁을 벌인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중 관계가 점점 악화되면서 한국의 그 같은 자세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무역분쟁도 빨리 해결하고, 일본을 포함한 서방과의 자유무역에 적극 나설 것을 권한다.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지속될 경우, 결과적으로 안보 차원의 영구적인 손실이 한국에 닥칠 것이다.”
카플란은 한일 간 무역분쟁을 언급할 때 ‘has to’란 단어를 거듭 사용했다.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분쟁을 ‘빨리 해결해야만 한다(has to solve the dispute immediately)’”라는 식이다. 전체적으로 톤을 죽이며 얘기를 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한국은 일본뿐 아니라 쿼드는 물론 자유 진영 모두와 소원(疏遠)한 관계로 갈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이 일본과의 경제 분쟁을 넘어서 글로벌 차원의 안보 체제로부터 소외(疎外)된다는 얘기다. 혹자는 카플란을 일본에 경도(傾倒)된 친일파(親日派) 지정학자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핵심은 그가 친일파냐 여부가 아니다. 미중 경쟁이 격해질수록, 한국은 양자택일(兩者擇一)이라는 막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이 카플란의 분석이다.
“一帶一路는 영원히 지속될 問題兒”
― 미중 격돌의 출발점은 중국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시작된 듯하다. 바다와 육지 양면으로 이뤄지는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과연 성공할까.
“부분적으로 성공하고 부분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실크로드 계획은 글로벌 차원의 방대한 프로젝트다. 내가 볼 때 실크로드 계획은 ‘브랜드’, 즉 상품의 상표와 같은 개념을 갖고 있다. 어떤 체계적·종합적인 개념이라기보다, 중국 밖에서 벌어지는 도로·기차·항만·인터넷 등 인프라 건설에 관한 것을 총망라해서 실크로드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세계 곳곳에서 추진되는 동안 갖가지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실크로드 프로젝트 자체가 아니라, 문제가 터질 경우 ‘과연 중국이 해결할 수 있고 책임을 질 것인가’라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성공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영원히 지속될 문제아(問題兒)로 남을 것이다.”
카플란과의 인터뷰가 끝난 후 시계를 보기 위해 휴대폰을 열자 곧바로 도쿄발(發) 속보(速報) 하나가 뜬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한 반도체 투자’라는 뉴스다. 타이완 반도체 회사 TSMC와 일본 소니가 80억 달러 규모의 자동차용 반도체 개발에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불과 3년 뒤인 2024년 이전에 생산에 들어간다고 한다. 중국 디커플링(decoupling)을 전제로 한, 일본-타이완 초고속 반도체 연합전선인 셈이다. 싫든 좋든, 원하든 원치 않든, 한국이 미중 간에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순간은 이미 초읽기에 접어든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