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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CEO 列傳 - M&A 시장의 절대 강자 柳京善 유진그룹 회장

금융·물류·복권 사업권으로 社勢 확장한「鐵人」경영자

정혜연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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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그룹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회사, 되도록이면 해외로 진출할 수 있고, 국내보다 해외에서 경쟁력이 큰 회사를 택합니다』

柳京善
1955년 전남 영암 출생. 중동高·연세大 중어중문학과 졸업. 서울大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유진종합개발 대표이사·유진기업 사장 역임. 現 유진그룹 회장·대한트라이애슬론경기연맹 회장.
로또 복권 2期 사업자
  ─로또 해보셨습니까(기자).
 
  『해봤죠. 친구들이랑 「로또계」를 한 적도 있는 걸요』
 
  ─「로또계」요.
 
  『몇몇이 돈을 모아서 로또 복권 여러 장을 사는 겁니다. 당첨되면 돈을 나눠 갖는 건데, 타본 적이 없이 깨졌습니다』
 
  ─「로또 대박」을 기대하셨습니까.
 
  『「로또 복권이 뭔가」 점검 차원에서 해봤죠. 대박을 기대한 건 아닙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핫이슈가 되는 것들은 꼭 한 번씩 해봅니다. 로또 복권을 샀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 당첨 번호 확인을 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웃음)』
 
  柳京善(유경선·52) 유진그룹 회장과의 인터뷰는 「로또 복권」으로 시작됐다. 36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의 오너 경영인과 마주 앉아 로또 얘기부터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오는 12월부터 로또 복권 사업을 운영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온 국민을 「로또 광풍」으로 몰아넣었던 로또 복권(정식명칭은 온라인연합복권)은 2002년 12월부터 국민은행과 코리아로터스서비스(KLS)에 의해 운영됐다. 국무조정실 산하의 복권위원회와 조달청은 올해 초부터 로또 복권의 「제 2기 사업권자」를 모집했는데, 유진그룹이 주축이 된 나눔로또 주식회사가 사업권자로 선정됐다.
 
  로또 복권의 지난해 매출은 2조5940억원. KLS는 운용 수수료(3.14%)로 약 810억원을 가져갔다. 로또 복권의 매출 규모가 크다 보니, 운영업체에는 늘 「대박 비즈니스」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까지 제 2기 로또복권 사업자 선정 수주전쟁에 뛰어들었다.
 
  지난 7월, 대기업을 제치고 유진컨소시엄(유진기업·LG CNS·농협 등)이 향후 5년 동안 로또 복권의 새로운 운영자가 됐다. 유진컨소시엄은 매출의 2%를 수수료율로 가져가겠다고 제안했다. 1期 사업자가 3%대를 챙겼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낮은 이윤이다.
 
  유진그룹은 「유진컨소시엄으로 배분되는 수수료 중에서, 유진기업의 몫은 상당부분을 공공財源(재원)으로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0월10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유진그룹 본사에서 「로또 당첨자」 柳京善 회장을 만났다. 그는 『재미없는 사람이라 인터뷰가 잘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운영 수수료율 낮춰 사업권 따내
 
신입사원 간담회가 끝난 뒤 사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모습.
  ─로또 복권 2期 사업자로 선정된 소감이 어떠세요.
 
  『처음 드는 생각이 「이제 고생문이 트였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또 사업이 주위에서 예상하듯이 대박 터지는 사업이 아니거든요. 당분간 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期 사업자는 매년 수수료로 수백억원을 가져갔는데, 그 정도면 대박 사업 아닙니까.
 
  『지난번 사업자는 풍족한 가운데 경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을 계획이거든요. 유진그룹은 제조업체여서, 늘 「쩐 단위」로 이윤을 계산하면서 영업해 왔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사업권을 딴 것은 경쟁업체보다 로또 복권 운영 수수료율을 낮게 써 냈기 때문입니다. 이전처럼 수백억원의 수익을 낼 수 없죠. 운영비를 빼고, 컨소시엄 참여업체들의 몫을 제외하면 얼마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웃음)』
 
  ─기업의 입장에서 수수료율을 높게 받아 이득을 많이 남겨야 하지 않습니까. 「일단 사업권을 따고 보자」는 생각에 수수료율을 낮게 쓰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솔직히 사업권 수주 의향서를 쓸 때, 처음에는 따낼 자신은 없었습니다. 경쟁사들도 어느 정도 이익을 기대하고 들어왔을 것 아닙니까. 우리는 「한국 시장에서 이익을 낼 것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 이득을 남기자」는 전략을 세웠어요. 이런 일을 처음 경험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어떤 매물을 살 때 약간 비싸다 싶어도, 기존의 우리 회사와 시너지 효과가 나면 성공적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따져보니까, 로또 복권 수수료율을 2%대로 싸게 책정해도 우리가 나중에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수수료율을 낮게 쓰자고 결심한 겁니다』
 
 
  유진기업 부채율은 100% 남짓
 
  ─수수료율을 경쟁자보다 월등히 낮게 써 내면, 복권위원회 등에서 사업운영 능력 등을 의심하지 않습니까.
 
  『그동안 성실하게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수수료율을 낮추더라도, 그룹에 타격을 입을 재무구조는 아니었습니다. 컨소시엄 주체인 유진기업의 부채비율이 100% 남짓하고, 우리가 올해 인수한 서울증권은 아예 부채가 없다는 점 등을 위원회에 강조했습니다.
 
  재벌그룹이 모든 사업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중급 규모의 중견그룹들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적극 알렸어요. 재벌그룹처럼 인지도가 높지는 않지만, 우리 회사의 인력이 재벌그룹, 공직에서 온 분들이 많고 꿀릴 게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재벌그룹과 경쟁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사업자로 선정된 다음에 경쟁했던 상대방으로부터 축하 화환이 오지 않아서, 「아, 내가 상대를 굉장히 골나게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중국·베트남 복권 사업에 진출할 것』
 
   「대박 사업권」을 따냈다며 마냥 흥분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터여서, 柳회장의 얘기는 뜻밖이었다. 하지만 사업가가 이윤이 남지 않는 사업에 뛰어 들 리 없는 법이다. 그가 꿈꾸는 로또 사업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로또 운영 수수료율을 대폭 낮췄고, 그나마 유진에게 떨어지는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윤을 남길 생각입니까.
 
  『세계복권총회(WLA)라는 모임이 있는데, 全세계에 흩어진 회원사가 800개 정도입니다. 그런데 복권을 운영하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모두 우리나라가 앞서 보였습니다. 우리의 복권 사업이 세계적 경쟁력이 있다고나 할까요.
 
  다른 나라의 복권 사업을 보면서, 우리가 「세계 1등」이 될 부문이 하나 더 늘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IT기술과 韓流(한류) 이미지를 합하면 새로운 수익사업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중국의 한 省(성)과 복권 사업 계약을 맺어 우리가 운영을 대행하는 식이죠. 국내에서 수수료를 조금 받더라도 외국으로 진출하면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에서 복권 사업 운영권을 따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국내의 로또 사업권을 딸 경우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진출할 생각을 하고 미리 준비해 왔습니다. 해당 지역 전문가가 우리 컨소시엄에 있죠. 나눔로또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무조건 대기업이라고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위치에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했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복권 사업을 잘 할 수 있는 곳을 참여시켰어요.
 
  유진그룹의 경우 종합상사 기능의 사업부에서 다른 나라 정부의 고위 관료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게 복권 사업을 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좋게 포장을 한다고 해도, 로또 복권은 어차피 도박 사업 아닙니까.
 
  『그렇게 보기 어렵습니다. 월급의 대부분을 로또 사는 데 쓰는 사람은 거의 없잖습니까. 재미로 하는 거죠. 로또 복권은 본인이 당첨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업입니다. 국가에서 기금을 관리하고 公益(공익) 사업에 사용을 하는 부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복권관리위원회에 로또를 무조건 「대박」이라는 이미지로 부각시키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로또 복권을 사지 않은 사람이 로또 복권 수익금으로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라에 꼭 필요한 사업이고, 이런 부분을 해외에 알리고 설득할 생각입니다』
 
  ─우선 어느 나라에 진출할 예정입니까.
 
  『중국과 베트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인도에까지 진출할 겁니다』
 
 
 
20년 만에 규모 120배 증가

 
2006년 12월12일, 도하아시안게임에서 트라이슬론경기를 참관 中인 柳회장.
  柳회장의 목소리에는 로또 복권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어쩌면 그의 이런 자신감이 오늘날 유진그룹을 財界(재계)에서 주목받는 회사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유진그룹은 39년의 역사에 비하면, 이름이 널리 알려진 회사가 아니었다. 「유진」이라는 이름이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04년, 이 회사가 자기보다 몸집이 큰 「고려시멘트」를 468억원에 인수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업계에서는 「레미콘 회사가 시멘트 회사를 인수한 예는 사상 처음」이라며 관심을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柳회장은 「고려시멘트」를 인수한 이후 본격적으로 M&A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팔 것은 팔고, 살 것은 과감하게 샀다. 2006년 초 그룹의 알짜배기 사업이었던 케이블TV 「드림씨티방송」을 4000억원에 CJ그룹에 넘긴 柳회장은 당시 M&A시장 최대의 관심사였던 대우건설 인수에 뛰어들었다.
 
  시장에서는 중소그룹에 불과한 유진이 대우건설 인수에 뛰어들자 놀라운 눈길을 보냈다. 결국 대우건설이 금호그룹의 손에 넘어가기는 했지만, 이 사건은 국내 증권가에 유진그룹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柳회장의 공격적 M&A 성향은 증권가에 알려졌다. 이후 시장에 M&A 물건이 나올 때마다, 유진그룹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거론될 정도였다.
 
 
  금융·물류사업으로 영역 확대
 
柳회장이 지난 7월17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아시아올림픽평의회」환경분과위원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유진그룹은 최근 들어 큰 변화를 맞고 있다. 그동안 건설과 건설 소재업을 주로 했던 그룹의 구도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柳회장은 2006년 7월, 서울증권을 1700억원에 인수하며 금융업에 첫 발을 내디뎠다. 2007년 1월에는 로젠택배를 300억원에 인수해 물류사업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이들 두 회사를 기반으로, 유진그룹은 「건설-금융-물류」로 커간다는 생각이다.
 
  증권가에서는 유진의 기업 인수·합병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비축해 둔 자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진그룹이 정부로부터 복권 사업 운영권까지 땄으니, 財界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의 인수·합병으로 유진그룹의 몸집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100억원에 불과했던 그룹의 매출이 급상승하고 있다. 유진그룹의 매출은 2004년 8400억원, 2005년 860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1조2000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룹 규모가 20년 만에 120배 성장하는 셈이다.
 
  ─요즘의 추세로 보자면, 회사가 매년 몇 개씩 늘어나는 셈입니다. 계열사가 늘어나는 소감이 어떻습니까.
 
  『사업을 시작한 지 25년 됐습니다. 외부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끊임없이 많은 업종을 사고 팔고 해왔습니다. 사업 가능성은 충분한데 현재 잘 돌아가지 않는 회사를 많이 봤습니다. 적당한 기회가 있어, 그런 회사를 편입시키면 의욕을 느낍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그룹의 규모가 늘어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죠. 회사 직원들은 더 이상 우리가 제과업체, 콘크리트 회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겁니다. 언제든 다른 업종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죠』
 
  ─柳회장께서 인수한 회사들은 택배회사, 증권사, 복권 사업권 등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전혀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이유가 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제과업과 레미콘 사업은 업종이 다르지만, 방식은 비슷합니다. 밀가루를 비벼서 빵을 만드는 것이, 시멘트를 비비는 것으로 달라졌을 뿐이죠. 원가 구성·수율·소비자 성향이 모두 비슷합니다. 사업의 원칙은 똑같죠.
 
  택배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미콘 사업을 하다 보면 콘크리트·시멘트 차 1500대, 덤프 트럭 500대 정도가 있습니다. 로젠택배의 차량이 소·대형 합쳐 2000대쯤 되더군요. 레미콘을 정해진 시간에 소비자한테 갖다 줘야 공사가 되는 것과 택배를 약속한 시간에 고객에게 배달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서울증권을 인수하셨죠. 금융은 어떻게 유진그룹과 비슷합니까.
 
  『기업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금융을 모를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은행과 증권사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서울증권을 인수해 공급자로 위치가 바뀌는 것뿐이죠. 결국 같은 일입니다』
 
 
 
柳회장의 M&A 원칙

 
   ─그렇게 따지자면, 세상의 모든 M&A 매물은 유진그룹과 상관 있는 것 아닙니까.
 
  『모두 상관이 있죠. 단지 우리 기업과 시너지 효과가 큰 회사를 찾는 것뿐입니다. 높은 가치가 있는 회사에 좋은 조건이라면, 충분히 딜(M&A)이 있을 수 있죠』
 
  보통의 기업인들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꺼려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가 이런 논리를 펴는 것을 보면 무척 긍정적인 성격이거나, 타고난 승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증권가에서는 이미 소문이 파다한 「M&A 승부사」. 그가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원칙은 이렇다.
 
  『물건의 값이 지나치게 비싸면 손대지 않습니다. 기존의 유진그룹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회사를 선택합니다. 기업 인수를 통해 두 회사가 모두 성장할 수 있다면 바랄 나위가 없지요. 되도록이면 해외로 진출할 수 있고, 국내보다 해외에서 경쟁력이 큰 회사를 택합니다』
 
  ─앞으로 기업을 추가로 인수할 계획입니까.
 
  『물론입니다. 우리와 연관 있는 업종에 대해서 관심이 큽니다. 회사 내에 인수할 만한 회사를 연구하는 별도의 팀이 있습니다. 동종업계든, 다른 업계든 상관없습니다.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 잘 운영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잘 키워볼 생각입니다』
 
 
  「오늘 수표는 잘 막으셨습니까?」
 
  ─유진그룹처럼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社勢(사세)를 확장한 이랜드그룹이 계열사의 노사문제로 인해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기업을 키워 온 입장에서 이랜드그룹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기업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은 어떤 경우나 지양돼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본인들의 주장을 적법한 절차에 의해 어필해야죠. 매장을 점거하고,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고, 非도덕적인 업주로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인수한 회사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인수하면서 억지로 유진의 문화에 동화시키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습니다』
 
  ─유진그룹의 M&A를 보면 계열사가 자금을 출자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과거 재벌그룹이 했던 「문어발式 확장」의 행태를 따르는 것 아닙니까.
 
  『우선 문어발이라는 것에 대해 정의를 해야겠네요. 재벌그룹이 계열사 中에서 금융회사를 이용해, 자기 가족들만 잘 먹고 잘 살 요량으로 규모를 늘리는 것이 문어발式입니다. 요즘의 적법한 M&A는 「사업의 다각화」, 「세계화」라고 표현돼야 합니다. 유진그룹의 계열사가 일부 기업인수에 지분을 출자한 것은 계열사들의 필요에 의해서였습니다. 모기업에서 강요한 일이 아니고, 그들이 먼저 이런 회사를 인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그 기준에 맞게 회사를 키워 나가고 있는 겁니다』
 
  柳京善 회장은 사업가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부친 유재필 창업주는 서울시 망원동에서 자그마한 제과 공장을 운영했다. 유진그룹의 전신인 「영양제과」다. 1970년대 초반,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에 영양제과가 생산하는 건빵은 서민들의 식사 대용이었다. 柳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부친이 공장을 운영하느라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의 얘기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매일 밤마다 부모님들이 사업 자금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늘 「내일은 수표를 어떻게 막지?」라고 습관처럼 말씀하셨죠. 어렸을 때 「수표」가 뭔지 알 턱이 있습니까. 그저 아버지를 걱정스럽게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죠. 오죽하면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께 편지를 쓰라고 했는데, 첫 문장에 「아버지, 오늘 수표는 잘 막으셨습니까?」라고 썼겠습니까(웃음)』
 
  영양제과의 건빵은 이후 군납자격을 얻어 회사의 규모가 커졌다. 柳회장의 부친은 신규사업을 통해 사업영역을 확대하고자 1979년 유진종합개발을 세워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부친이 한창 사업을 확대하려던 즈음에 20代 후반의 柳京善 회장이 회사 경영에 합류했다. 그의 승부사적 기질은 이때부터 이미 발휘됐다.
 
유진그룹은 2006년 5월13일, 연세대학교에 유진어린이집을 기증했다.
 
  후발주자로 레미콘 업계 진출
 
  柳회장은 부친을 설득해 당시 斜陽(사양) 산업으로 접어들었던 레미콘 사업에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1980년 초 中東(중동) 전쟁으로 오일쇼크가 일어나면서, 국내에서 레미콘 사업은 이미 값어치가 없는 사업이었다. 몇몇 知人(지인)들은 『망한 사업에 뭣 하러 들어가느냐』며 말렸다.
 
  『오일 쇼크로 중동에 나갔던 건설업체들이 전부 망해 버렸어요. 한양·공영토건·한신 등 내로라했던 건설업체들이 쓰러졌죠. 당시 우리의 제과업은 사정이 좋았습니다. 이익률이 높아서 어쩔 줄 모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한 사업에만 치중하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레미콘은 통 자체가 신기했어요. 그 업종에 몸담은 사람들은 레미콘 사업이 끝났다고 했지만, 제 눈에는 빈 땅이 보였습니다. 당시 高유가 때문에 힘들었지만, 어차피 빈 땅에 건물은 지어질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발전이 이 정도에 멈추겠다면 모르겠지만요. 우리나라가 망하든, 흥하든 둘 중 하나일 텐데, 저는 그 고비만 넘기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柳회장의 얘기에 따르면, 당시 전국에는 87개의 중소 레미콘 회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 중 절반 정도는 시멘트 회사가 중소기업협동조합에서 나오는 官給(관급) 물량을 받기 위해 세운 위장 레미콘 회사였단다.
 
  柳회장의 눈에 레미콘 회사들의 경영방식은 허술하게 비춰졌다. 모든 납품이 현찰로 결제되고, 영업사원들은 소비자들에게 향응을 제공받는 식이었다. 그는 후발 레미콘 사업체였던 만큼 기존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건설업체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영업하고, 영업사원들의 향응제공을 차단했다.
 
 
  발로 뛰는 영업
 
  「발로 뛰는 영업」은 그의 「스텔라」 자동차가 20만km를 기록할 때까지 계속됐다. 결국 그는 레미콘 후발 주자라는 단점을 극복하고, 건설업계에서 「유진」의 이름을 서서히 알려나가기 시작했다.
 
  ─사양 산업에서 후발업체가 살아남기까지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애로사항이 정말 많았습니다. 경영자는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살길을 찾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기업인의 필수 능력이죠. 기업이 잘 나갈 때야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어렵고, 위기에 처했을 때 조직원들과 컨센서스를 이뤄서 방법을 모색해 내는 것, 그것이 기업가의 능력이죠. 원가를 낮춰 매출을 늘리든, 시장을 새로 개척하든, 아웃소싱을 하든 代案(대안)을 내는 사람이 경영인이죠』
 
  ─레미콘 사업만 열심히 할 걸 그랬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까.
 
  『그런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죠. 가끔 「내가 다섯 살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보다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늘 마음속에 담아 두는 편입니다. 10년 후에 후회할 일은 오늘 만들지 말자고 생각하죠. 「특정 사업만 할 걸」 하면서 후회할 겨를이 없습니다.
 
  경영인에게 외롭다는 느낌은 사치입니다. 「왜 남들처럼 다정하게 가정생활을 하지 못하나」, 「왜 친구들을 자주 만날 시간이 없나」, 「왜 내겐 기막힌 취미생활이 없나」 하는 것들은 사치죠. 왠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동료직원들에게 죄를 짓는 것 처럼 느껴져서, 시작했던 몇몇 취미생활도 끊어 버렸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꼭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조직 내에서 편 가르기를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과거 아버지 세대들은 회사를 세울 때, 「형제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가까운 사람들이 풍족하게 잘 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형제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나 혼자만 칭송받고 풍족한 것이 좋은 일은 아닙니다.
 
  형제들이 각자 자기편을 만들고, 패거리 문화를 만드는 것은 止揚(지양)하고자 했습니다. 조직에서 「라인」이 생기다 보면, 서로 동화되기 어렵고 이긴 편, 진 편으로 편가르기를 하게 되니까요. 회사 경영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서 편가르기를 할 수 있는 요소는 무조건 차단한다는 원칙입니다』
 
 
  『대우건설은 정말 탐이 났는데…』
 
  ─사업을 하면서 크게 후회되는 일은 없습니까.
 
  인터뷰 내내 자신 있는 모습을 보였던 柳회장이 처음으로 어두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대우건설 인수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 아직 마음이 아픕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가 커지지 않을까 싶네요. 당시 인수전 때, 뚜껑을 열어 보니 우리가 4등을 했더군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대우건설은 정말 탐이 났는데…』
 
  ─현재 어떤 회사를 마음에 두고 있습니까. 혹시 對北(대북) 사업을 할 의향이 있습니까.
 
  『마음에 두고 있는 회사는 몇 군데 있습니다. 이름을 거론하기 어려운 것은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요. 관심 있게 지켜보는 회사가 3~4곳 있다는 점은 밝힐 수 있습니다. 對北사업은 중국에서 사업하는 것보다 북한에서의 사업이 우리에게 덜 생소하다는 점에서 관심이 있습니다.
 
  앞으로 건설 분야가 많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정치적인 리스크가 없어야겠고, 사업의 가능성 여부를 잘 따져봐야겠죠. 기업인으로서 올해 연말까지가 對北 관계에서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鐵人 3종 경기 완주기록
 
지난 5월21일, 경기도 가평에서 열린「鐵人 3종 경기」중 자전거 타기에 도전한 柳회장의 모습.
  특별한 취미가 없다지만, 柳회장에게는 다른 경영인들과는 차별화된 「경력」이 하나 있다. 「鐵人(철인) 3종 경기」 기록이다. 鐵人 3종 경기의 정식 명칭인 트라이애슬론은 수영 1.5km, 자전거 40km, 마라톤 10km를 완주하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다.
 
  柳회장이 鐵人 종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때였다고 한다. 외환위기로 인해 유진그룹의 경영이 어려워졌을때, 경영자로서의 스트레스를 떨쳐버리기 위해 택한 것이 운동이었다.
 
  2005년에 그가 세운 鐵人 3종 경기 기록은 2시간 58분.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조깅과 수영연습 등을 병행했다고 한다. 그는 2000년부터 대한트라이애슬론협회장을 맡고 있다. 일반인들이 함부로 도전하기 어려운 일에, 쉰을 눈앞에 둔 중견그룹 오너 경영인이 참여했다고 생각하니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런데 정작 그는 담담했다.
 
  『어렵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여기가 한계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저 역시 그런 생각을 가졌었는데, 鐵人 3종 경기를 통해서 제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 같아 오히려 홀가분했습니다』
 
  ─향후 유진그룹을 어떤 그룹으로 키워 갈 예정입니까.
 
  『2009년 매출 5조원을 꿈꾸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M&A가 지속될 것입니다. 금융과 건설, 물류를 집중적으로 키우지만, 다른 사업에도 관심을 가질 생각입니다. 우리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야죠. 지켜봐 주십시오』
 
  증권가 M&A의 승부사. 鐵人 3종 경기를 너끈히 해내는 오너 경영인. 하지만 그에게는 모든 것이 이제 시작인 모양이다. ●
 
  사진 :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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