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길, 부산 山腹도로 : 월간조선

사람들로 북적이는 해운대와 광안대교의 화려한 불꽃쇼에 가려진 부산의 숨은 명소가 있다. 부산역 가까이에 있음에도 모르고 스쳐 지났던 길. ‘산(山)의 중턱(腹)을 지나는 도로’라는 뜻의 부산 산복도로(山腹道路)다. 6·25 전쟁 당시 수많은 피란민이 부산에 몰려오면서 형성된 특이한 형태의 도로로, 좁다란 산복도로를 따라가면 무허가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을이 있다.

부산 산복도로의 대표적인 마을로는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감천 문화마을이 있다. 이곳은 감천항을 바라보며 산자락 아래 계단식으로 형성된 마을로, 파스텔톤으로 단장한 집이 빽빽하게 차 있다. 마을 곳곳에는 지역 예술가들의 조형작품이 전시되고 사진갤러리, 아트공방 등이 조성되어 있다. 최근에 인기를 끌며 올해만도 18만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다녀갔다. 감천 문화마을과 5분 거리의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본 강점기 때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집단묘지 촌이 형성됐던 곳이다. 해방 이후에 피란민과 이주민들이 이곳 공동묘지 위에 터를 잡고 임시 주거지를 형성하면서 집을 지을 때 일본인 묘비로 주춧돌을 쌓았다고 해서 ‘비석마을’이라 이름 붙여졌다. 지금은 비바람에 닳고 닳아 흔적을 알아볼 수 없지만, 아직도 마을을 걷다 보면 곳곳에 일본인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남아 있다.

감천 문화마을 초입에 있는 물고기 벽화. 관광객들이 한 번씩 기념사진을 찍고 가는 이 마을 명소다.

이 밖에도 일본강점기 건물들이 남아 있는 초량동과 169개의 높다란 계단을 타고 오르는 이바구길,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나왔다는 안창마을이 있다. 모두 일본강점기와 6·25전쟁, 재개발 등을 피해 산으로 향했던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다.

부산시는 올해부터 이들 지역을 새로운 관광지로 가꾸기 위해 ‘산복도로 탐방로 조성’과 ‘야간경관 조성’에 힘쓰고 있다. 시 관계자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 등 각종 도시재생 사업과 주민 주도형의 마을 만들기 사업들이 마무리되는 올해 말에는 아미동이 소외된 마을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마을 비전인 ‘함께 느끼는 역사문화마을’로 성큼 다가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