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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석의 山이야기

카라코룸 히말라야 히스파르 패스 트레킹 <下>

“누구든 이 길로 데리고 왔다간 원수 되겠다!”

글 : 한필석  전 《월간산》 편집장  ps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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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석장을 연상케 하는 險路, 썩은 빙하와 햇살이 스며들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크레바스, 세락이 형성된 설사면… 온몸에서 진을 짜내고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여정
⊙ 김창호, 워크맨피크 야간등반 시도… 크레바스 속에서 인근 名峯들 촬영
⊙ 송곳처럼 날카로운 정상에서 히스파르 빙하를 향해 칼날 능선을 내리뻗은 히스파르샤르
워크맨피크를 등진 채 히스파르 패스를 내려서는 일행. 히스파르 빙하 끝으로 훈자 일원의 설봉들이 바라보인다.
  카르포고로에서 빙원(氷原)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서고, 스키를 타듯 빠른 속도로 걸어간다. 엔도르핀이 돌지 않는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다. 동틀 무렵인 새벽 4시30분 출발, 1시간30분 만에 4.3km를 걷고, 고도 150m를 올렸다.
 
  어둠 속에서도 잔잔한 감흥을 일으키던 스노레이크(Snow Lake)는 햇빛이 스며들면서 우리를 흥분시켰다. 침봉(針峯)들은 하나하나 반짝인다. 보석 같다. 불꽃 같다. 빙원 또한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인다. 빙원을 둘러싼 침봉들은 하나하나 망루였다. 스노레이크를 밤새 지켜준 망루이자 초병이었다.
 
  예상대로 어마어마하다. 전날 지낸 카르포고로에서 히스파르 패스 BC(4800m)까지는 스노레이크 빙원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19세기 말 히스파르 패스 첫 탐사대는 스노레이크를 빙하가 흐르지 않는 특이한 지형으로 착각했다. 그럴 만했다. 6000m급 침봉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데다 곳곳이 꺼져 들어가 사방이 막힌 듯 보였을 것이다. 6000~7000m급 설봉들과 능선으로 둘러싸여 장관을 이룬 스노레이크는 분명 낮에는 햇살이, 밤에는 달빛과 별빛이 반짝이는 신(神)들의 거처다 싶었을 것이다.
 
  빙원은 슬금슬금 고도를 높인다. 가이드 알리는 밴타브락 북쪽의 심 패스(Sim Pass·5833m)를 가리키며 “스키를 타고 저 패스를 넘어 스노레이크로 접근하는 클라이머들을 여러 번 보았다”고 한다. 룩페라우브락(6508m)이 정면으로 보이고, 곧이어 오른쪽으로 밴타브락(Baintha Brakk·7285m)이 모습을 드러낸다. 빙하에서 우뚝 솟구친 밴타브락은 스노레이크 일원의 최고봉답게 기품 넘치고 당당한 산세를 이루고, 우준브락과 연결된 능선 사면(斜面)에는 거대한 세락을 형성하고 있다.
 
 
  파키스탄 트레킹의 매력
 
히스파르 패스를 넘어서다가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거대한 크레바스가 눈길을 끊어놓고 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감흥은 가라앉는다. 고도의 버거움과 눈밭 길의 힘겨움이 몸과 마음을 흔든다. 파키스탄 트레킹이 힘든 이유는 이런 면 때문이다. 채석장을 연상케 하는 험로(險路), 썩은 빙하와 햇살이 스며들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크레바스, 세락[serac·빙하가 갈라지면서 형성된 빙탑(氷塔)]이 형성된 설사면 등 온몸에서 진을 짜내고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여정이 파키스탄 트레킹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대자연의 강렬함에 전율하고, 거대한 히말라야의 침봉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오전 7시 반경 세락 지대에 접어드는 순간 숨이 가빠진다. 뜨거운 복사열과 햇살이 얼굴과 온몸에 스며들면서 숨조차 못 쉴 지경에 이르렀다. 포터들도 힘겨운지 패스에서 먹기로 했던 점심 계획을 바꾸어 첫 번째 둔덕에 올라서자 버너를 켜고 차이를 만든다.
 
 
  히스파르 패스에 오르다
 
히스파르 패스를 오르는 포터들과 일행. 등 뒤로 6000m급 침봉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스노레이크가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어제 도저히 안 되겠으니 하산에 동행할 포터 4명만 붙여달라던 맹헌영 선배는 이제 몸이 풀렸나 보다. 포터들에게 차이와 파라타(기름에 튀겨 만든 밀가루 빵)를 달라고 한다. 하기야 엊저녁에도 포터 텐트에서 함께 놀며 빵과 차를 마실 정도였으니 고소증은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숨이 점점 가빠온다. 다리도 점점 무거워진다. 해발 5000m를 넘어서면서 또다시 한계에 다다른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등 뒤로 펼쳐지는 풍광은 더욱 일품이다. 산봉들은 이제 구름을 뚫고 솟아 있고, 스노레이크는 구름바다가 됐다. 간간이 눈사태 폭음이 들리면서 스노레이크의 풍광에 넋을 잃은 나를 흔들어 정신 차리게 해준다.
 
  둔덕에 올라설 때마다 고갯마루려니 기대했지만 몇 차례나 속아 넘어간다. 그래도 알리의 예상대로 오전 11시15분 해발 5150m 높이의 히스파르 패스에 올라섰다. 포터들이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눈다. 연장자의 선창에 따라 크게 복창한다. 예까지 무사히 오르게 해준 신께 감사드리는 것이었다.
 
  밴타브락은 더 높아지고 덩치도 더욱 커졌다. 워크맨피크(Workman Peak·5885m)는 밑에서 보던 것과 달리 칼날 설릉(雪稜)이 정수리 양옆으로 뻗어 있고, 양쪽 사면은 설벽에 가까운 경사를 이루고 있다.
 
  패스에서 조망을 즐긴 다음 고갯마루에서 조금 내려서서 텐트를 치고 눈 녹인 물로 만든 차 한 잔씩 마시고 깜빡 잠이 들었는가 했더니 오후 6시가 넘었다. 텐트 밖으로 나와 김창호에게 주변 산군(山群)에 대해 얘기를 듣는다. 워크맨피크와 연결된 첫 번째 봉이 타후루툼 동봉(6651m), 그 왼쪽 뒤편이 칸주트사르 2봉(6831m), 그 뒤편이 유트마르샤르(7330m), 그리고 6000m급 연봉 뒤편으로 푸마리치시(7350m), 쿠냥치시 중앙봉(7852m) 등 히스파르 빙하 주변에는 아직까지 우리 산악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명봉(名峯)이 여럿 솟아 있었다.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불현듯 노을에 물드는 스노레이크가 떠올라 패스로 향했다. 정면으로 밴타브락이 다가오면서 마치 밴타브락을 향해 오르는 기분이다. 아쉽게도 패스에 닿기 전 해가 넘어가고 말았다.
 
  캠프로 돌아가는 사이 김창호가 내 눈치를 살핀다. 분명 워크맨피크 등반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게다. 언제 얘기할까 기다려지기도 했고, 아예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도 했다.
 
  “나는 아무래도 힘들겠는데, 창호 너는 어떡할래?”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예상했던 답이었다. 마음이 편치 않다.
 
  “한 기자,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 생각인데, 창호 혼자 가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아요? 무슨 일 당하면 해결 방법도 없고….”
 
  맹헌영 선배는 내게 창호가 워크맨피크 등반을 포기하게 하라고 한다. 경우의 수가 여럿 떠오르면서 머리가 복잡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나 역시 이런 경우가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반대 의사가 나오면 서운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창호한테는 세 번째 시도에서 올라선 히스파르 패스였다.
 
  “그래, 대신 위험하거나 힘들다 싶으면 도중에 내려왔으면 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창호는 등반 장비를 챙겼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50m 로프를 반으로 자르고, 확보물과 카라비너, 하강기 등을 안전벨트에 주렁주렁 매달았다.
 
  남은 감자를 몽땅 썰어 넣은 고추장찌개를 먹는 김창호의 표정에 사뭇 긴장감이 넘친다. 알리에게 뜨거운 차이 한 통을 담아 달라고 부탁하고, 밥도 다른 때보다 많이 먹는다. 밤새 굶은 상태로 등반할 생각을 하면 당연하다.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점검을 한다. 늘 그래왔듯이 달빛 아래 피켈을 만지며 각오를 다지는 것인가.
 
  잠시 텐트 주변의 눈을 밟아보더니 아직 눈이 얼어붙지 않아 힘들 것 같다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야간등반은 무리라고 붙잡을까? 다시 가슴이 갑갑해 온다. 결국 너무 힘들면 돌아오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밤 10시, 김창호는 달빛에 반짝이는 설원(雪原)을 가로지르며 시퍼렇게 날을 세운 워크맨피크로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후회
 
  텐트 바깥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창호냐?”
 
  새벽 1시, 1시30분, 2시…. 거의 30분 간격으로 한 번은 시계를 들여다보고 한 번은 창호 이름을 불러본다.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든다. 새벽 3시경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텐트 밖으로 나갔다. 워크맨피크 설사면은 낮과 달리 수직 빙벽(氷壁)처럼 보이고, 능선은 손대면 베일 정도로 날카롭게 느껴진다. 말리는 건데…. 후회막급이다.
 
  깜빡 졸다 깼다. 새벽 4시30분. 텐트 밖으로 나갔다. 봉우리들이 푸른빛을 띤다. 알리가 텐트 위쪽 설원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그 역시 김창호가 걱정되나 보다. 워크맨피크를 보았다. 어제보다 더 날카로워졌다. 창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등반 경험이 워낙 풍부하고, 파키스탄에 오기 전 네팔 히말라야의 로체(8516m) 남벽에서 7500m까지 등반했던지라 고소적응에는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된 걸까? 추락? 크레바스? 눈사태?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텐트 안으로 들어와 차를 끓인다. 눈에 띄면 쫓아 올라가 차갑게 식었을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지. 새벽 5시30분, 다시 텐트 밖으로 나왔다. 순간 알리가 환호성을 지른다. 설릉 바로 아래에서 점 하나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눈사태 지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모두 뛰어나와 “어디냐?”고 소리친다. 뭔가 힘겹게 느껴진다. 곧장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왜 옆으로 가로지르는 것일까. 길게 뻗은 설릉 오른쪽 끄트머리에 솟아 있는 정상 쪽으로 향한다. 더 가면 위험한데…. 눈사태 위험도 그렇고, 능선의 경사와 날카롭기가 혼자 내려오기에는 너무도 위태롭게 보인다.
 
 
  크레바스 속에서
 
  어느 순간 점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더니 서서히 밑으로 내려온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점이 설원으로 내려섰다가 사라진다. 따뜻한 미숫가루 한 통을 들고 설원을 가로지른다. 알리도 뒤따라온다. 그 역시 어지간히 속이 탔나 보다.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푸르스름할 때에 비해 발이 빠질 만큼 눈이 물러졌다.
 
  김창호가 다가온다.
 
  “고생했다….”
 
  너무도 길게 느낀 하룻밤이었기에 할 말이 무척 많을 줄 알았는데 그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창호도 힘들었는지 별말이 없다. 단지 새벽 2시45분 설릉에 올라섰으나 너무 날카롭고 무너질 위험이 커 등정을 포기하고 설릉 바로 아래 크레바스에 들어가 바람과 추위를 피하며 기다리다 동틀 즈음 카메라로 한 바퀴 돌렸다고 한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할까? 기대했던 K2(8611m)는 못 봤지만, 낭가파르바트(8125m), 하라모시(7409m), 말루비팅(7453m), 스판틱(7027m) 등 수많은 7000m급 고봉을 봤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하지만 무려 3시간 동안이나 크레바스 안에 있었다니 인내심이 대단하다 싶으면서 한편으론 얼마나 추웠을까 싶어 안쓰럽다. 그런데 하산길에 설사면의 눈이 밟을 때마다 밀려 내려가 옆으로 틀다가 눈사태 지역의 눈 상태가 오히려 안정적이라 판단하고 눈사태 지역을 따라 설원으로 내려섰다고 한다.
 
 
  現地化
 
히스파르 패스 아래 형성된 포카리(빙하호수). 포터들이 물을 뜨기 위해 눈을 파내고 있다.
  텐트로 내려서는 사이 포터들이 모두 다가와 김창호와 눈을 맞춘다. 모두 걱정을 많이 한 표정들이다. 이제 해가 더 떠오르면 눈이 주저앉아 하산이 불가능해진다. 급히 라면을 끓여 먹고, 짐을 싼 다음 오전 8시가 다 돼 히스파르 빙하로 내려선다. 어마어마한 설원이다. 눈밭도, 크레바스도, 세락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엄청난 위험지대에 고소증까지 오는 곳이지만, 지금만큼은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등 뒤로 어젯밤 모습을 감추었던 밴타브락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골 양옆으로 미봉(美峯), 험봉(險峯)들이 무수히 솟구쳐 오른다. 우리는 너무도 깨끗한 순백의 눈밭에 점점이 발자국을 남기면서 거대한 세락을 우회하고 크레바스를 피해가며 눈밭으로 내려선다.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엊저녁까지만 해도 포터들보다도 기운이 넘치던 김창호가 저렇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을 보니…. 그런데도 좋은 풍광이 눈 앞에 펼쳐지면 떨구었던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해발 400m쯤 내려서자 창호는 이제 표정조차 없다. 짐을 바꿔 멨는데도 힘겨워 보인다. 포카리(빙하호수) 옆에 닿자 포터들이 얼음을 툭툭 쳐 깨뜨려 물을 떠 온다. 북극해에서 탐험대가 리드(lead·開水面)로 다가가 바닷물을 뜨는 분위기다. 아무 데서나 볼일 보는 포터들이 눈에 띌 때마다 재미있어하던 맹 선배도 이제 현지화(現地化)됐나 보다. 빤히 보이는 곳인데도 엉덩이를 까고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저절로 꼼지락대는 발가락들
 
얼음과 바윗돌이 뒤엉켜 거대한 둔덕을 이룬 퇴석 지대. 히스파르 빙하.
  오전 11시경 퇴석(堆石) 언덕으로 올라섰다. 알리가 이제 크레바스는 없다며 마음 놓는 표정을 짓지만 오르막내리막이 심하고 간간이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밭이 나타나 애를 먹인다. 퇴석지대의 크레바스도 위협적이다.
 
  정오 조금 못 미쳐 알리는 흙탕물 옆에 짐을 풀어놓더니 점심을 먹자고 한다. 라면 끓이는 사이 창호는 멀리 떨어져 모로 눕는다. 앉기만 하면 졸거나 깊은 잠에 빠져드는 창호를 보니 더 이상 가기가 뭣하다.
 
  오후 1시20분, 포터들이 떠난 지 30분쯤 지나 우리도 출발한다. 30분쯤 걸었을까, 포터들이 둔덕에 모여 있다. 오늘 여기서 자자고 한다. 흙이 드러나고 맑은 물이 흐르는 데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캠프지다. 차 한 잔 끓여 마시고, 오랜만에 발을 씻는다. 발가락이 며칠 동안 햇볕을 보지 못해 답답했던지 양말을 벗자마자 저절로 꼼지락댄다. 포터들도 차 한 잔씩 마시곤 삼삼오오 풀밭에 드러눕는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훈자 일원의 산봉(山峯) 밑으로 내려앉기 직전이었다. 밴타브락은 아직도 우리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발치시 산맥의 여러 암봉(巖峯)은 수시로 눈사태 폭음을 내며 지금 이곳이 히말라야의 내원임을 깨닫게 해준다. 길고 긴 하루였다.
 
  6월 30일, 스카르두를 떠난 지 열흘째다. 출발하자마자 빙하로 내려선다. 카니바사 빙하. 밤새 크레바스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혼령들이 아침 햇살이 스며들자 모두 산 위로 오르는지 산봉의 정점이 더욱 반짝인다.
 
  샹알리 캠프로 올라선다. 등 뒤로 밴타브락이 더욱 높이 솟구치고, 워크맨피크가 더욱 넓게 품을 펼친다. 아무래도 마지막 인사를 일어서서 정중하게 하려나 보다.
 
  어마어마하다. 맞은편 설산(雪山)이 줄지어 반짝이는 것과는 달리 우리가 걷고 있는 사면은 거대한 사태 지역이다. 잠깐이라도 한눈팔다가는 밑으로 곤두박질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도 푸름이 있다. 풀밭이 있고, 다양한 색깔로 장식한 들풀들이 피고 있다. 김창호는 들꽃 촬영에 여념이 없다. 어제의 긴장감과 피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편안한 표정으로 히말라야의 들꽃들을 찍고 있다.
 
 
  거벽 푸마리치시
 
히스파르 빙하 하산 중 쉬고 있는 맹헌영씨(맨 앞). 척박한 퇴석빙하에도 예쁜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우와!”
 
  빙하 끝에 인도 히말라야의 탈라이가사르(6904m) 2개를 겹쳐놓은 듯한 알바위봉들이 곧추서 있다. 푸마리치시 남봉(약 7350m)과 주봉(7492m)이었다. 남봉 남벽 하단의 해발고도가 4500m 안팎이니 수직고 3000m 거벽인 셈이다.
 
  위압적인 푸마리치시의 위용을 감상하며 점심을 먹은 뒤 주트모 빙하를 가로지른다. 카니바사 빙하는 댈 것도 아니다. 어마어마하다. 히스파르 빙하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을 규모다. 이 역시 빙하의 원두에 거대한 산들이 솟아 있기 때문이리라. 빙하는 멀리서 보면 꼼짝하지 않고 죽어 있는 듯하다.
 
  빙하 중간쯤 들어서자 이번에는 칸주트사르 서벽(西壁)이 흰 눈을 인 채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해발 7760m에 이르는 세계 제29위의 고봉이다. 퇴석 언덕을 오르내리고, 얼음호수를 우회하고, 크레바스를 건너뛰다 보니 숨이 가쁘고, 등과 이마에 땀이 촉촉이 밴다. 포터들도 마찬가지. 처지는 이들도 보인다. 그런데도 천하장사 유습은 맹 선배 배낭을 자기 짐 위에 얹고 너무도 가볍게 걷는다. 맹 선배는 “며칠간 ‘입품’ 판 덕”이라며 즐거운 표정이다.
 
  빙하 길은 퇴석지대로 끝나지 않고 무너질 듯 위압적이고도 위태로운 흙 사면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길이 100여m 계속되고 주트모 빙하 횡단이 끝을 맺는다. 그 끝의 둔덕은 정말 기막힌 캠프장이자 조망대다. 칸주트사르가 정수리에 흰 구름을 인 채 웅장하고도 신비롭게 솟구쳐 있고, 밴타브락이 히스파르 빙하 길동무로 재등장한다.
 
 
  달빛에 빛나는 발치시 산맥
 
히스파르 빙하 상의 포터들의 무덤. 현지인들이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의식을 올리고 있다.
  이제 기나긴 허리 길이다. 간혹 험악한 사태 지역을 가로질러야 하지만 야생 사슴 블루십이 방금 배설한 동글동글한 똥도 보이고, 생명력 넘치는 파란 풀밭에 화사하게 핀 들꽃들도 보인다.
 
  둔덕을 지나 30분쯤 지났을까? 포터들이 직사각형 돌 옆으로 빙 둘러앉아 읊조린다. 죽은 포터의 무덤 앞에서 그의 넋을 위로하는 의식이다. 히스파르 패스 위로 우뚝 솟구친 밴타브락과 워크맨피크, 히스파르샤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산봉들이 여기 잠든 포터를 위로할 수 있을까?
 
  오후 1시30분, 캠프장에서 다음 날 일정과 식량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 포터들과 이견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했다. 알리와 포터들은 “오늘 조금 더 가야 내일 편하다”고 하고, 창호는 “오늘 여기서 자나 더 가서 자나 별 차이 없다”고 한다. 결국 고집 센 창호가 판정승을 거두었다. 창호가 4년 전 하룻밤 머물렀던 곳이다.
 
  무명(無名) 캠프는 한 폭의 그림이다. 풀밭이 펼쳐지고, 위쪽으로는 석간수나 다름없는 맑고 차가운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정상부는 거대한 암봉, 그 아래 바윗덩이와 풀밭이 함께 섞인 사면, 또 그 아래 널찍한 풀밭. 그 풀밭은 장대한 발치시 산맥을 마주하고 히스파르 빙하를 내려다보고 있다.
 
  오후 6시경, 해가 기울자 히스파르샤르는 제 모습을 드러냈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정상에서 히스파르 빙하를 향해 칼날 능선을 내리뻗은 히스파르샤르는 검은 벽과 하얀 눈이 광채를 발해 더욱 날카롭게 솟구친다.
 
  산그늘이 초지에 드리우자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히스파르 빙하는 저녁 햇살에 극에 달해 꿈틀거린다. 큰 돌들을 빙하수로 떨어뜨리며 울부짖는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듯하다. 그러다 해가 넘어가니 또다시 숨을 죽인다.
 
포터들이 밟으면 곧 주저앉을 듯 불안한 퇴석 절벽을 가로지르고 있다.
  7월로 달이 바뀌었지만 새벽 일찍 출발하기는 마찬가지. 어둠이 완전히 벗겨지기 전인 오전 5시30분 캠프지를 출발한다. 부드러운 테라스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이제 야크, 소, 조(수소와 야크의 잡종)와 같은 가축들이 풀 뜯는 모습도 보인다. 인간세상이 가까워졌나 보다. 하지만 이내 발치시의 암봉은 더욱 날카롭게 솟구치고, 바깥쪽으로는 훈자의 산들이 골 입구를 막았다.
 
  움푹 꺼진 분지형 풀밭으로 내려선다. 거대한 암벽으로 둘러싸인 주트마(4170m)다. 시감바리스, 레드스타, 빅스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널찍한 초지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은 해가 뜨면 흙탕물로 변한다고 한다. 여기서 히스파르 빙하를 가로질러 발치시 산맥의 계곡을 거슬러 누식라를 넘어가면 케로룽마로 내려선다.
 
  아무튼 발치시 설산들에 앞이 가로막힌 이곳은 평원에 커다란 돌들이 묘한 형상으로 서 있거나 누워 있다. 석기시대(石器時代)로 들어선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이틀째 등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밴타브락도 사라졌다.
 
  주트마 캠프지를 벗어나 황량한 퇴석 절벽 길로 들어선다. 무너질 듯 불안한 흙 사면에 포터들이 쩔쩔맨다. 그런데 유습은 너무도 가볍게 포터들의 짐을 받아 안전지대로 옮겨준다. 많이 줄기는 했으나 그래도 가볍지 않은 짐을 어깨에 얹고 포터의 손까지 잡아주며 절벽 길을 내려서기도 한다.
 
 
  푸마리치시 빙하
 
세계 제22위 고봉인 쿠냥치시 남봉(왼쪽). 오른쪽은 거벽 등반 대상지로 이름난 동봉.
  푸마리치시 빙하는 머릿속에서 상상되는 빙하가 아니었다. 오른쪽 사면에서 퇴석이 밀고 나와 빙하 말단이 거대한 절벽을 이루고 있어 그 가장자리를 따르다가 다시 사면으로 올라야 한다. 히스파르 빙하에서 가장 거칠고 힘든 구간이다. 절벽 같은 급사면 아래 흙과 바위, 얼음이 뒤섞인 둔덕을, 그것도 뜨거운 햇살 아래 넘고 또 넘노라니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진저리가 쳐진다. 정말 자연이 만든 최악의 환경이다. 잔바람마저 없었다면 퇴석지대에서 주저앉고 말았을지도 모르리라.
 
  사막 같은 뜨거움에 헉헉거리며 거대한 퇴석 절벽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숨이 콱 막힌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푸마리치시 빙하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로 거대한 쿠냥치시(7852m·제22위 고봉) 남봉이 흰 눈을 정수리에 인 채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처절하리만치 황량한 이곳에 저렇게 아름답고 웅장한 암봉과 암벽들이 솟아 있다는 게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누구든 이 길로 데리고 왔다간 원수 되겠다!”
 
  푸마리치시 빙하를 가로질렀는데도 험로가 아직 남아 있다. 발이 조금만 밀려도 100여m 아래 퇴석지대로 곤두박질치고 말 절벽 트래버스 길이다. 인내심과 뱃심을 테스트하는 듯한 절벽 길을 가로질러 테라스에 올라서자 맹 선배는 참았다는 듯이 “정말 끔찍한 길”이라고 한마디 내뱉는다.
 
히스파르 패스에 올라서자 기쁨의 환호를 외치는 포터들. 그만큼 힘든 과정이었다.
  테라스 길을 따라 30분쯤 걷자 다치간(3960m)이다. 급사면 흙길에서 진을 빼고 난 뒤여선지 초록빛이 더욱 강렬하다. 방목하는 가축이 위로 오르지 못하게 막아놓은 돌담을 넘어 다치간으로 들어섰다. 멀리서 보면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이제 정면에 마크롱치시(6608m)가 잘 가라 인사하는 듯하다. 포터들도 어서 집에 가고 싶은가 보다. “오늘 비탄말(3660m)에서 끊지 말고 히스파르 마을까지 뽑자”는 농담에 환호성을 지른다.
 
  마지막 라면 하나를 끓여 찬밥을 말아 먹는데, 임금 문제로 포터들과 작은 말썽이 생겼다. 이틀 거리를 오늘 하루에 가면 내일은 지프 기다리느라 히스파르에 머물러야 하는데, 하루 머무는 날에 대한 임금을 달라는 것이다. 줄 돈 다 주었는데 또 달라니…. 괘씸하다는 생각에 “히스파르에 닿는 순간 모두 해고”라고 엄포를 놓곤 언짢은 마음에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다치간을 떠난 지 40분쯤 되자 비탄말이 보인다. 축구장 대여섯 개도 충분히 들어설 만큼 넓은 풀밭이지만 그냥 가기를 잘했다 싶을 정도로 땡볕 아래 풀밭이다.
 
 
  척박하고도 아름다운…
 
척박한 퇴석빙하를 벗어나자 파라다이스 같은 히스파르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아이들은 시커먼 얼굴로 나타난 우리 일행이 신기했는지 한동안 쫓아다녔다.
  마지막 빙하 지류를 건너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아쉬워진다. 아직 힘이 남은 것일까. 거대한 퇴석 언덕을 넘고, 빙하호수를 빙 돈 다음 급사면 흙 사면을 올라선다. 멀리서 보면 수직처럼 느껴지는 흙 사면에 묘하게도 길이 나 있다. 퇴석지대 사람이 개미처럼 작게 보일 만큼 멀고 높은 사면 길인지라 긴장을 풀 수 없다.
 
  절벽 위 테라스에 올라서자 알리가 “이제 빙하는 다 끝났다”며 특유의 웃음을 짓는다. 히스파르 빙하와 쿠냥치시 빙하를 바라본다. 정말 넓고 험악한 빙하들이다. 그래도 흰 눈 두껍게 껴입은 발라룽사르(7200m)와 발치시 산맥의 고봉들은 준수한 얼굴을 드러낸 채 반짝이고 있다. 지구상에 이토록 척박하고도 아름다운 곳이 이곳 말고 또 어디 있을까.
 
  절벽 테라스로 올라서는 맹헌영 선배의 얼굴이 10여 일 전 인천공항에서 만났을 때에 비해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 그런데 갈 길은 멀고 멀었다. 히스파르 마을까지 5시간30분간 지속된 산길은 불볕 아래 말라붙은 황무지 사막을 걷는 듯했다. 목이 타들어가고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빙하 탁류가 거칠게 흘러내리는 히스파르 현수교를 건너서자 아이들이 다가와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급사면을 하나 더 올라서자 히스파르 마을 주민들이 몰려 다가온다. 자연이 위대하다면 인간은 참으로 강하다. 자연이 이토록 척박하게 버려둔 곳에 인간이 살고 있다니….
 
  히말라야는 결코 신들만이 머무는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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