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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이승만 재평가’의 선구자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1936~2023년)

“부당하게 매도당하고 있는 이승만 박사에게 정당한 자리매김을 해드리는 것이 나의 꿈”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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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대부분의 사람이 이승만이 옳았다고 인식하게 되고, 내가 한 일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 “이승만은 청말(淸末) 중국의 량치차오·쑨원,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후쿠자와 유기치 이상 가는 당대 최고의 언론인이자 개혁가, 독립운동가”
⊙ 10여만 장에 달하는 이승만 관련 사료 정리, 《우남 이승만 문서》 펴내
⊙ “대한민국은 이승만이라는 천재의 작품”
연세대 한국학연구원장 시절의 유영익 교수. 사진=조선DB
  휴전협정 70주년을 맞은 7월 27일 경북 칠곡 다부동 전적지에서는 이승만(李承晩)-트루먼 대통령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 대통령 동상 옆에는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이 보내온 화환이 놓여 있었고, 강승규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 참석해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代讀)했다.
 
  감개가 무량했다. ‘이삼십 년 전만 해도 거의 잊힌 존재이다시피 했고, 이승만 대통령을 다룬 변변한 전기(傳記)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민간 모금으로 아주 멋진 동상이 세워지고, 대통령이 축사를 보내오고, 나라에서 기념관을 짓겠다고 하고 있으니….’
 
  이승만 대통령을 다시 살리기 위해 애써온 분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갔다. 유영익(柳永益) 전 국사편찬위원장, 《월간조선》에 12년간 《이승만과 김구》를 연재하고 이를 7권짜리 대작으로 펴낸 손세일 전 국회의원,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김효선 건국이념보급회 사무총장, 신동설 청미디어 대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려 애써온 이분들이 없었더라면 ‘이승만 재평가’의 길은 열리지 않았으리라.
 
  행사 후 이승만·트루먼·박정희동상건립추진모임 참석자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가 “앗, 유영익 교수님이…”라고 탄식을 토해냈다. 전날인 26일 유영익 교수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저녁 1950년대사 연구에서 좋은 업적을 많이 내놓고 있는 신진 학자 이택선 박사 또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같은 소식을 전했다. 생전에 인터뷰 등을 위해 유영익 교수를 여러 번 뵈었던 기자도 큰 별이 떨어졌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독립정신》 초판본 읽고 이승만 다시 보게 돼
 
  유영익 교수는 ‘이승만 재평가’의 길을 연 선구자이자, ‘이승만 연구’의 1인자였다. 1936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유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양사를 전공, 1972년 갑오경장(甲午更張)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휴스턴대 역사학과 조교수·부교수를 지내다 귀국, 고려대·한림대 사학과 교수, 한림대 부총장,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한국학 석좌교수, 한동대 국제개발협력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유영익 교수도 많은 동시대 지식인처럼 당초에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여기에는 어린 시절 6·25 당시 목격했던 국민방위군 사건에 대한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 2008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유 교수는 이렇게 회고했다.
 
  “청주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피란을 갔습니다.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된 장정들과 함께 내려갔는데, 마을마다 부모들이 마을 어귀까지 배웅 나와 자식을 눈물로 보내는 것을 봤습니다. 부산 동래에서 피란 생활을 하는데, 인근에 있던 야전병원에서 매일 아침 5~6구씩 국민방위군 병사의 시신이 들것에 실려 나오더군요. 못 먹고 못 입은 병사들이 몽유병 환자처럼 헤매는 것도 봤습니다. ‘자기 집에서는 다 귀한 자식들인데, 저들을 저렇게 죽이는 이 정부는 도대체 어떻게 된 정부인가? 이런 정부가 세상에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1960년 4·19가 일어났을 때, 유영익 교수는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갓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던 차라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후배들을 뒤에서 응원했다고 한다.
 
  유영익 교수가 이승만 대통령을 재평가하게 된 것은 하버드대에서였다. 한국현대사를 개척하겠다고 생각한 그는 하버드대 ‘하버드·연경(燕京) 도서관’에 소장된 한국학 관련 논저들을 찾아 읽다가 이승만이 1904년 지은 《독립정신》 초판본을 발견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출간된 한국인의 저서들 가운데 《독립정신》은 단연 백미(白眉)였습니다. 이승만은 청말(淸末)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나 쑨원(孫文), 혹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나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에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그들 이상 가는 당대 최고의 언론인이자 개혁가, 독립운동가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동학운동 당시 ‘폐정개혁안 12조’ 허구성 밝혀
 
  유영익 교수는 이승만의 구한말 독립협회에서 펼친 개혁운동-일제하의 독립운동-해방 후의 건국운동-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의 활동 등을 연결하는 논문을 써보기로 결심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이를 포기하고 갑오경장 연구로 발길을 돌렸다.
 
  이후 한동안 유영익 교수의 연구는 갑오경장과 동학농민운동 등 ‘19세기 후반’에 머물렀다. 이와 관련된 유영익 교수의 주요한 업적 중 하나가 동학농민운동을 혁명 혹은 전쟁으로 규정해온 남북한 역사학계의 통설에 반기를 든 것이다. 유 교수는 1994년 5월 한국정치외교사학회-조선일보사 공동 주최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갑오농민봉기의 보수적 성격〉이라는 논문에서 “혁명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반외세-민족주의, 반봉건-평등주의라는 이론 틀에, 전쟁을 주장하는 측은 계급전쟁(class war)의 시각에 맞추어 이 봉기를 성격규정 해왔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1, 2차 자료들을 볼 때 갑오농민봉기는 근대 지향적 혁명이나 전쟁이 아니라 충군애민(忠君愛民)의 유교적(儒敎的) 사상에 바탕을 둔 보수적 무장개혁운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 나아가 2007년 2월 《한국사시민강좌》에 실린 〈동학농민운동의 기본성격〉에서는 종래 동학농민운동의 혁명성을 입증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던 ‘폐정(弊政)개혁안 12조’가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소설’인 오지영의 《동학사》에나 나오는 허구임을 밝혔다.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 설립
 
  유영익 교수가 본격적으로 이승만 연구에 뛰어들게 된 데는 1994년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 박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당시 한림대 교수로 있던 유 교수는 이인수 박사가 소장하고 있던 이승만의 영문(英文) 일기, ‘하버드 앨범’이라는 사진첩, 초서(草書)로 쓰인 한문 간찰(簡札) 등 ‘이승만 관련 자료들’을 본 순간 “한국현대사 연구에 필수적인, 국보적 가치를 지닌 자료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유영익 교수는 “이승만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달라”는 이인수 박사의 제안을 그 자리에서 받아들였다. 유 교수는 “그때까지 이승만 관련 논문은 한 편도 쓰지 않았지만, ‘역사가로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유 교수는 이인수 박사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내가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데다가 미국 대학에서 가르친 적도 있어 이승만 문서를 정리하기에 적임자라고 생각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후 유영익 교수는 본인의 말처럼 ‘이승만 자료와 함께 살았다’. 1996년 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유 교수는 1997년 현대한국학연구소를 설립한 후, 이인수 박사를 설득해 《이승만 문서》를 연세대에 기증하도록 했다. 이후 10여만 장에 달하는 이승만 관련 사료를 정리하는 일에 착수했다. 유 교수는 2001년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류석춘 교수 등 후임자들이 그 일을 이어받았다. 2011년에는 연세대 한국학연구소에서 이승만연구원이 분리됐다. 《월간조선》에서 펴낸 《비교평전-이승만과 김구》의 저자인 손세일 전 의원은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에서 펴낸 《우남 이승만 문서》가 없었다면, 《이승만과 김구》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유영익 교수 본인도 자신이 이승만 연구를 하면서 가장 크게 기여한 일로 ‘이승만 자료를 정리해서 편집한 것’을 꼽았다.
 
  유영익 교수는 “이승만 박사는 한마디로 기가 막힌 천재”라면서 “《이승만 문서》를 보면, 대한민국은 이승만이라는 천재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승만 연구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천행”
 
  유영익 교수는 생전에 “대학 졸업 후 한국사 연구에 할애한 시간의 절반을 이승만 연구에 바치면서 이따금 학문적 고독감에 쓸쓸해질 때도 있었지만, 1994년 이화장 ‘이승만 문서’의 정리 작업에 착수한 이래 이승만 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학자로서 천행(天幸)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이승만에 대한 국내외 학자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언젠가 대부분의 사람이 이승만이 옳았다고 인식하게 되고, 내가 한 일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유영익 교수는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이승만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이라고 당당하게 말했고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꿈이었다면, 부당하게 매도당하고 있는 이승만 박사에게 정당한 자리매김을 해드리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공언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생애 사상 업적의 새로운 조명》 《이승만의 삶과 꿈》 《젊은 날의 이승만-한성감옥생활(1899~1904)과 옥중잡기 연구》 등의 저서는 그 꿈의 소산이었다.
 
  이러한 꿈은 유영익 교수에게 영욕(榮辱)을 함께 안겨주었다. 이승만 연구의 1인자로 인정받으면서 그 업적을 인정받아 성곡학술문화상, 효령상, 경암학술상 등을 수상했고, 박근혜 정권 시절 제12대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이 영(榮)이라면, ‘독재자 이승만 옹호자’라는 비난이 따라다닌 것은 욕(辱)이었다. 2013년 6월 그가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한국역사연구회·한국사연구회 등 5개 학회는 공동성명서를 내고, “국사편찬위원장은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인물이 맡아야 하는데, 유 교수는 이러한 기준과 너무나 거리가 먼 인사”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유 교수가 이승만 재조명에 힘써온 것을 겨냥, “자신이 세운 동상이 국민들에 의해 무너지고 국외로 망명하는 순간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일단락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지금 일부 세력이 유영익 교수의 국사편찬위원장 임명을 그토록 헐뜯고 있는 것은 그가 바로 현대사를 ‘있는 그대로’ 연구하는 것을 저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이승만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지 말고 ‘나쁜 ×’으로 만들라고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을 뿌리째 ‘나쁜 것’으로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이승만 대통령은 선각자”
 
윤석열 대통령은 7월 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서 열린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 강승규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보내 축사를 대독하도록 했다. 사진=배진영
  ‘부당하게 매도당하고 있는 이승만 박사에게 정당한 자리매김을 해드리는 것이 나의 꿈’이라던 유영익 교수의 소망은 하나둘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유 교수가 세상을 떠난 7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 제막식을 위한 강승규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대독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야말로 역사의 원동력이라 확신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하여 이 나라가 나아갈 비전과 전략을 마련한 선각자였습니다.”
 
  유영익 교수의 아들 유승덕씨(주일 미국 대사관 상무관)는 “장남과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시고도 의연하게 신앙심으로 이겨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면서 “그동안 일생 천착해오셨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그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뜨거워져 기념관 건립도 추진되고 있는 요즈음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가시지만 후학들이 꼭 완성해놓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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