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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무용가 김백봉 선생

한국 무용의 정점, 부채춤·화관무의 창시자 떠나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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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한국 모던 무용의 선구자 최승희(崔承喜)의 제자 김백봉(金白峰) 선생이 지난 4월 11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부채춤’ ‘화관무’ 등을 창시한, 한국 무용 르네상스의 정점(頂點)을 이룬 전설의 무용가를 다시는 현실에서 볼 수 없게 됐다. 그는 누가 뭐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예인(藝人) 중 한 명이었다.
 
  기자는 6년 전 경기도 고양에서 역시 무용가인 두 딸과 함께 선생을 만났었다. 그가 한 여러 이야기 중 이 말이 생각난다.
 
  “제가 처음 최승희 공연을 봤을 때 선생님의 눈동자가 소의 눈처럼 크게 느껴졌고 저만 쳐다본다고 생각했어요. 한데 공연을 같이 본 사람들 모두가 똑같이 자신을 쳐다본다고 느꼈다는 겁니다. 그때 선생님의 눈길, 무용가와 객석의 교감이랄까, 시선 처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게 된 겁니다.”
 
  고인은 15세 무렵인 1941년 6월 도쿄의 최승희무용연구소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연습은 물론 청소, 빨래, 부엌일 등 궂은 허드렛일을 하며 무용을 배웠다. 1942년 12월 도쿄 제국극장 공연에서 ‘궁녀무’를 추며 정식 데뷔했다. 작품 ‘계월향’ ‘농촌풍경’ ‘지효’ 등과 함께 그녀의 대표작인 ‘고전형식’(이후 ‘화관무’로 명칭이 바뀐다)을 처음 발표했다. 놀랍게도 1948년 소련과 동구권 여러 도시를 돌며 순회공연을 가졌고 그때 러시아에서 볼쇼이발레 공연을 보았다고 한다.
 

  김백봉의 남편 안제승(安濟承· 1922~1998년)과 최승희의 남편 안막(본명 安弼承·1910~미상)은 숙명의 대칭관계였다. 안제승의 형이 최승희의 남편 안막이다. 안막은 월북작가다.
 
  고인이 1954년 첫선을 보인 ‘부채춤’은 펴고 접는 죽선과 한지의 소박하고 운치 어린 한국 대표 무용 작품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 선보인 ‘화관무’는 2000여 명이 참여한 역사적 군무(群舞)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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