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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선 출마 선언한 이건개 법무법인 주원 대표

“박근혜 전 대통령, 건강 회복하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도우라 할 듯”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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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손가락 볼 때마다 한민족 비극 생각나”
⊙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나에게 직언하라고 지시”
⊙ 육영수 여사도 종종 만나 민심에 대해 직언
⊙ “文 정부 야권 분열 위해 박근혜 대통령 사면”
2021년 10월 26일 강원도청 기자실에서 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기자회견 중인 이건개 변호사. 사진=이건개 변호사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2개월 남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간에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대한 대한민국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대선판에 뛰어든 인물이 있다.
 
  바로 이건개(80) 법무법인 주원 대표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2주기인 지난해 10월 26일 출마 선언을 했다. 이 변호사를 만난 것은 지난 6일 법무법인 주원 사무실이었다.
 

  이 변호사는 31세에 최연소 서울시경국장(경찰청장)을 역임했으며 청와대 사정비서실·청와대 청년담당비서실·법률구조공단·검찰 범죄정보제도 등을 만들었다. 또한 15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언론문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IMF 환란조사 특별위원회, 조폐공사 파업 유도 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주원 사무실에서 만난 이 변호사와 인사를 나누었다. 일반인보다 유독 짧은 이 변호사의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 시선이 갔다.
 
 
  “아버지를 위해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참아”
 
15대 국회의원 당선 직후 김종필 총재와 함께 한 이건개 변호사. 사진=이건개 변호사
  ― 손가락은 어쩌다 그렇게 된 건가요.
 
  “아, 이거요. 영광의 상처죠. 6·25전쟁 당시 북한군 구둣발에 이렇게 됐습니다.”
 
  ― 그때 얘기를 자세히 해줄 수 있나요.
 
  “전쟁이 발발하고 제 아버지인 이용문 장군은 수도방위사령관으로 임명됐어요. 김종필(金鍾泌) 전 총리가 쓴 《내가 겪은 6·25》를 보면 “연락장교였던 내가 의정부 지구에 가보니 이용문 장군이 외롭게 전선을 사수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정릉, 미아리 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했으나 북한군 전차대대의 공격을 받고 부대가 와해당했고, 한강철교 폭파 뒤 한강 도하를 여러 번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서울에 고립당했죠.”
 
  ― 그 당시 국군이 모두 서울에서 후퇴했을 때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데 아버지는 끝까지 남아 싸운 거죠. 아버지는 잔류병력을 결집해 남산에서 5일간 게릴라전으로 전투를 지휘하다 병력이 크게 손실돼 하는 수 없이 가족이 숨어 있던 북아현동 친척 집으로 야음을 틈타 피신했어요.”
 
  ― 언제까지 친척 집에 피신해 있었나요.
 
  “아버지는 9·28 서울수복까지 3개월 동안 적 치하에서 친척 집을 다섯 군데나 전전하며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북아현동 집에서 보름간 숨어 있다 거처를 장충동으로 옮겼죠. 장충동에서 한 달간 숨어 있을 때 아버지는 방과 방 사이의 마루 밑 흙을 파내 그곳에 몸을 숨겼어요.”
 
  ― 아버님은 계속 몸을 숨기고 있었나요.
 
  “그렇죠. 그때는 서울이 온통 북한군 천지였으니까요. 아버지는 온돌방 밑에 동굴을 만들어 몸을 숨겼고, 그 위에서 내가 잠을 잤어요. 하루는 북한군이 한밤중에 집에 들어와 방이며 옷장이며 깡그리 뒤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들은 내가 누워 있는 방으로 건너와 구둣발로 나의 오른손을 으스러지도록 밟았어요.”
 
  ― 그때 나이가 몇 살이었나요.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요.”
 
  ―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을 텐데요.
 
  “너무 힘들었죠. 그러나 내 밑에 있는 아버지를 자극할까 걱정돼 아프다는 소리도 못 하고 20분 정도를 참았어요. 그때 생긴 커다란 상처를 석 달간 방치하다 악화했고, 1·4후퇴 때 부산에서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의 중간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어요. 지금도 온전치 않은 손가락을 보면 그날 아버지의 목숨을 지킨 ‘영광의 상처’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나를 수도경찰 총수 임명하며 두 가지 주문”
 
이건개 변호사가 수도경찰 총수로 재직 중이던 시절 대연각 화재사건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이다. 사진=이건개 변호사
  ―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죠?
 
  “네. 박 전 대통령은 제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셨고, 두 분이 개인적으로도 무척 가까운 사이셨습니다. 검사를 하고 있던 저를 청와대로 부르신 분이 박 전 대통령이십니다.”
 
  ― 최연소 수도경찰 총수였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경찰조직에 원칙적인 업무수행의 자세를 심기 위해 어떠한 인맥에도 연계되지 않은 젊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당시 김현옥 내무부 장관이 추천한 3인의 젊은이 중 나를 수도경찰 총수에 임명했습니다. 1971년 12월 11일 나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수도경찰 총수로 발령받았습니다.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죠. 박 전 대통령은 나를 임명하면서 딱 2가지를 강조했습니다.”
 
  ― 어떤 부분을 강조하셨나요.
 
  “그때 박 전 대통령이 사람을 소중히 하고 모든 국민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무차별적으로 때려잡는 그러한 수사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 그다음은 뭔가요.
 
  “자신에게 직언하길 희망하셨어요. 박 전 대통령은 ‘나는 험한 바다에 큰 배를 이끄는 선장과 같다. 어디에 큰 파도가 있고, 어디에 암초가 있는지 잘 봐야 하는데 나이 먹은 사람들은 전부 내가 잘한다는 보고만 한다. 자네는 젊어서 인맥에 얽히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세상을 볼 수 있다. 내가 잘못했다는 보고를 자주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어요.”
 
  ― 직언했나요.
 
  “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박 전 대통령께 쓴소리, 직언을 계속했습니다.”
 
  ― 직언할 때 기분 나빠 하진 않았나요.
 
  “그때마다 언짢은 표정을 짓다가도 보고가 끝나면 항상 ‘고맙네. 계속 보고해주게’라고 하셨어요.”
 
  ― 육영수 여사께도 직언했다지요.
 
  “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퍼스트레이디로서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육영수(陸英修) 여사는 ‘청와대의 야당’으로 불릴 만큼 시정의 여론을 기회 있을 때마다 박 대통령께 일일이 알렸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바쁠 때면 육 여사께서 나를 불러 민심에 대해 듣곤 하셨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께 ‘민족적직분사명주의’ 제의
 
  ― 박 전 대통령께 학생들에 관련한 이론도 제의하셨다면서요.
 
  “네, 민족적 직분사명주의라고 집회, 시위하는 학생들을 법에 따라 처벌하기보다 정신교육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 민족적 직분사명주의라는 게 뭡니까.
 
  “주요 부분이 막스 베버의 사물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이론입니다. 더 정확히 북한의 주체사상이 우리 학생들에게까지 전파되고 있는 것을 처벌하기보다 민족적 직분사명주의로 주체사상의 허구성과 대한민국 도약에 대한 사명 의식을 역으로 심어주는 것이죠.”
 

  ― 대통령께서 뭐라고 하던가요.
 
  “대통령께서 흔쾌히 수락하시고 당시 청와대 특보실의 최규하, 박종홍 특보께 검토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 어떻게 됐나요.
 
  “다른 특보들과 여러 차례 토의했지만 한 표 차 부결됐다고 최규하 특보가 나에게 알려주었어요. 나중에 제가 하버드에 공부하러 갔을 때 청와대 모 비서관이 나에게 연락해 박 대통령께서 이 이론을 실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하셨다고 전해주더라고요.”
 
  ― 10·26이 일어나기 3개월 전에도 정국 경색 타개책을 제시했다고 하던데요.
 
  “하버드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국내 정국이 경색된 것을 보고 타개책을 대통령께 보고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뜻을 같이한 모 정보수사기관장과 함께 보고서를 만들어 대통령께 보고하려 했습니다.”
 
  ― 보고했나요.
 
  “결론은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차지철 경호실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때라 그에게 전달했지만, 그가 핑계를 대면서 대통령께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3개월이 흘렀고, 10·26사건이 발생한 거죠.”
 
 
  정승화 참모총장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 건의
 
10·26사건 합동수사본부 중간 발표 자리에 참석한 이건개 변호사(오른쪽). 사진=이건개 변호사
  ― 정승화 참모총장에 대해서 수사를 건의했다는 얘기는 뭔가요.
 
  “10·26사건이 발생하고 합동수사본부에서 박 대통령 시해 사건을 수사했습니다. 27일 새벽 1시에 김재규가 검거되고 저는 바로 서빙고 수사현장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이학봉 당시 수사과장을 만났습니다. 그가 이상한 얘기를 하더군요.”
 
  ― 어떤 얘기요.
 
  “수사관들이 수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 왜 수사를 적극적으로 못 했나요.
 
  “김재규가 사건 현장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과장되게 했기 때문에 수사관들이 중앙정보부와 육군이 합동으로 사건을 획책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으로 수사가 지연되고 있었던 거죠.”
 
  ― 어떻게 했나요.
 
  “나는 바로 보안사령관에게 전화했죠.”
 
  ― 뭐라고 했나요
 
  “현장에서 피 묻은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정승화 참모총장을 수사하는 것이 불가피하니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만약 나의 제의대로 당시 정 총장을 철저히 수사했다면 12·12사건은 없었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좋든 싫든 대선 전 국민의힘 도와주라고 메시지 낼 듯”
 
  ― 지난해 한 언론사 인터뷰를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사면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더군요.
 
  “네, 이 정부가 야권을 분열시키기 위해 한다고 했죠. 벌써 그런 사람들이 나오고 있어요. 보수층에서 윤석열 후보 안 찍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요.”
 
  ― 그게 사면 때문이라고 보나요.
 
  “물론 다 그렇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있다고 봅니다.”
 
  ― 대선 전 박 전 대통령이 메시지를 낼 거라고 하는데 어떤 내용이 나올까요.
 
  “현재 건강이 나빠서 메시지가 나올까 걱정이고, 나오게 되면 좋든 싫든 국민의힘 도와주라고 얘기하실 것 같아요.”
 
  ― 야권 단일화에 대해 강조하고 계시는데요.
 
  “안철수 대표를 서울시장 선거할 때도 만나고, 지난주에도 만났어요. 윤석열 후보의 승패는 안철수 후보에게 달렸어요. 조금씩 방법을 찾아가야죠.”
 
  ― 윤석열 후보를 어떻게 보시나요.
 
  “문재인 정권 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데 그들을 소화해야 합니다. 윤 후보 개인은 검찰 후배이기도 하지만 똑똑하고 탁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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