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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경찰을 말하다》 출간한 박상융 변호사

“현장 잘 모르는 경찰 수뇌부부터 경찰대까지 전면 개혁 필요”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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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고시 출신 경찰에 드루킹 특검보 역임… 경찰·검사·변호사 모두 경험
⊙ “수사검사 파견받기 힘들었던 드루킹 특검, 수사 직후 검사들 돌아가 공소 유지 힘들었다”
⊙ “있는 집 자제들의 무료 로스쿨 학원 역할 하는 경찰大 개혁해야”
⊙ “압수수색 받게 되면 영장을 꼼꼼히 잘 봐야… 압수수색 필요 사유·대상물 확인해야”

박상융
1965년생. 충남고, 고려대 법학과 졸업 / 사법고시 29회, 경찰 경정 특채 / 경찰청 수사국 마약지능수사과장, 지능범죄수사과장, 경기지방경찰청 경무과 총경, 논산경찰서·대전중부경찰서·양천경찰서·김포경찰서·동두천경찰서·평택경찰서 서장 역임 / 現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 저서 《경찰이 위험하다》 《범죄의 탄생》 《경찰을 말하다》
사진=조준우
  “드루킹은 어떤 사람입니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본명 김동원, 일명 ‘드루킹’의 실체 말이다. 지난 2월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박상융(朴商隆·55) 변호사를 만나는 참이었다. 그는 2018년 6월부터 2019년 9월까지 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댓글조작사건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즉 ‘드루킹 특검(特檢)’에 있었다. 특검보를 하며 드루킹을 여러 번 만났다.
 
  “나름의 소신과 확신을 갖고 있습디다. 소위 경제적 공진화를 추구하며 경제적 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어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미두수(紫微斗數)’와 《송하비결(松下秘訣)》을 이용했지요.”
 
  ‘자미두수’는 별을 이용해 앞날을 예측하는 일종의 점성술이다. 《송하비결》은 조선 말기에 쓰인 예언서다. 송하 노인이라는 이가 쓴 책으로 전해진다. 네 글자로 된 한문 형식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예언해놨다. 2003년 해석본이 출간돼 당시 꽤 화제가 됐다. 예언서가 그렇듯, 적중도에 대해선 말들이 엇갈린다.
 
 
  “김경수가 센다이총영사 제안, 이익제공 의사표시”
 
  박상융 변호사는 사법고시 29회 출신으로, 1993년 경찰에 입직(入職)했다. 사시 출신 경정 특채로 들어간 경우다. 논산경찰서를 시작으로 대전중부경찰서, 양천경찰서, 김포경찰서, 동두천경찰서, 평택경찰서에서 서장을 지냈다. 경기지방경찰청 총경을 끝으로 2013년 경찰을 떠났다. 이후 법무법인 한결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그러던 중 2018년 6월 드루킹 특검의 특검보로 지명을 받았다. 특검에서 유일한 경찰 출신 특검보였다. 경찰과 (특별)검사, 변호사까지 모두 경험해본 드문 경우다. 드루킹 얘기가 이어졌다.
 
  ― 드루킹은 자신의 목표가 ‘삼성 해체’라고까지 했지요.
 
  “주된 목표는 재벌을 해체하는 거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주주(株主)경영이라고 할까요. 이런 논리였습니다.
 
  ‘경영에 참여해 삼성을 해체해야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 같은 남북공동체 마을을 만들자. 그러기 위해선 일본 자금이 필요하다. 일본은 곧 지진으로 망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다. 이걸로 대기업 주식을 사서 경영에 참여하면 목적이 달성된다. 그런데 그러려면 정치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 그래서 정치에 관여하게 된 거군요.
 
  “강연회를 열어 정치인을 끌어들인 거예요. 노회찬 전 의원을 초빙해 강연도 열고 그러면서 정치자금도 지원했지요. 드루킹이 만든 구호가 ‘경인선’입니다. ‘경제는 사람이 먼저다’.”
 
  ― 일본 자금을 끌어들이려고 주일(駐日)대사 자리를 요구했는데 잘 안 된 거군요.
 
  “그렇습니다. ‘킹크랩’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터넷 댓글을 조작해 업무방해를 했고, 김경수 경남지사는 여기에 공범(共犯)으로 가담했다는 게 주된 기소 내용입니다. 댓글 조작을 해주는 대가로 드루킹은 김 지사에게 오사카총영사 자리를 요구한 겁니다. 처음엔 주일대사 자리를 요구했는데 안 됐지요.”
 
  ― 결국 주일대사, 총영사 자리는 못 받아냈잖아요.
 
  “주일대사가 안 되면 오사카총영사를 달라고 한 거죠. 그랬더니 거기에도 내정된 사람이 있다며 거절하고 김 지사가 제시한 게 센다이총영사입니다. 그런데 드루킹이 센다이는 원전(原電)사고 난 후쿠시마에서 가깝기도 해 싫다고 거절한 거죠. 김 지사가 센다이총영사 자리를 제시한 것에 주목한 겁니다. 왜 스스로 제시까지 했겠습니까. 이익제공 의사표시라고 본 거죠.”
 
 
  수사검사 찾기 힘들었던 드루킹 특검
 
2018년 8월 27일 드루킹 일당의 인터넷 댓글조작 사건을 수사한 허익범 특별검사가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 브리핑룸에서 60일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상융 특검보, 허익범 특검, 김대호 특검보. 사진=《조선일보》 박상훈 기자
  사실 출범 때부터 회의적(懷疑的)인 시선으로 지켜본 특검이었다. 이제 집권 초기를 지나고 있는 정권의 중추와 연관된 수사를 과연 얼마만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런 시선을 받는 쪽도 힘들었을 터다.
 
  ― 드루킹 특검 당시 어떤 애로사항이 있었습니까.
 
  “일단 수사검사 선발이 쉽지 않았습니다. 검찰에서 오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수사기록 분석이 힘들었어요. 증거자료 수집과 분석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한 기록과 자료가 너무 방대했어요. 특검이 출범한 게 2018년 6월인데, 경찰 수사는 이미 2017년에 이뤄졌어요. 오래전에 수사했던 걸 다시 하려고 하니, 관련 증거가 인멸되고 때론 언론에 너무 많이 노출되기도 한 상황이었어요. 언론에서도 진실 규명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고요.”
 
  ―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기도 했지요.
 
  “드루킹은 특검 수사를 예견하고 있었더군요. 조사받으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USB를 특검에 제출했습니다.”
 
  ― 경찰 경험이 특검 수사에 도움이 됐습니까.
 
  “경찰 생활하며 역시 현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 드루킹이 킹크랩을 운영하고 김 지사가 찾기도 한 그 현장을 봐야지 수사의 단초를 제대로 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요. 허익범 특검에게 건의했고, 검사와 수사관이 다시 현장에 가서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경찰은 초기 수사 당시 강력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해 현장 보존을 제대로 안 했거든요. 경찰이 압수수색하지 못한 여러 자료를 경공모 회원들이 후에 자기들의 창고로 옮긴 정황도 찾았습니다.”
 
  ― 드루킹 특검이 뭘 할 수 있을까, 우려 반 회의 반으로 지켜보는 시선들이 많았지요.
 
  “경찰 단계까지는 김경수 지사는 참고인이었어요. 특검에선 김경수 지사를 두 번에 걸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습니다. 김 지사가 킹크랩 운영에 관여한 증거를 포착해 킹크랩 운영 관련 ‘이익제공 의사표시’ 죄로 기소했지요. 큰 성과를 거둔 거라 생각합니다.”
 
 
  김경수 지사 구속·기소가 가장 큰 성과
 
  ― 결국 드루킹 특검의 최대 성과는 김 지사 기소와 유죄 판결이란 말씀이네요.
 
  “특검의 발족 취지는 김 지사가 관련되어 있는지 여부를 수사하는 거였습니다. 특검이 김경수 지사를 기소해 법정 구속을 하고, 1심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하지 않았나요. 선거운동 관련 이익제공 의사표시를 선거법을 적용해 기소한 점이 특히 중요합니다. 경찰과 검찰에선 선거 관련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거든요. 특검 이전까진 업무 방해 혐의만 적용되지 않았습니까.”
 
  ― 청와대는 제대로 조사 못했지요.
 
  “청와대도 조사했습니다. 백원우(白元宇)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송인배 정무비서관을 조사해 검찰에 이첩(移牒)했어요. 그 결과 송인배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형 집행유예까지 받았습니다. 백원우 전 비서관은 직권남용 혐의였지요. 왜 민정비서관이 김경수 지사의 전화를 받고 도 모(某) 변호사를 만났느냐는 겁니까. 도 변호사는 드루킹이 주(駐)오사카 총영사 후보로 추천한 인물입니다. 직권남용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이첩한 사유입니다.”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청와대를 떠나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그의 직권남용 혐의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됐다.
 
  ― 특검을 돌아보니 아쉬운 점이 있습니까.
 
  “특검의 수사와 공판이 연속성을 갖고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김 지사와 드루킹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수사기간이 끝나자마자 검찰로 돌아가버렸어요. 수사팀장 포함해 13명의 검사 중 2명만 남고 모두 돌아갔습니다. 2명 중 한 사람마저 한 달 후 검찰로 복귀했어요. 실질적으로 1명이 남아서 1심까지 참여한 겁니다.”
 
  ― 왜 돌아간 겁니까.
 
  “의무가 끝났다고 생각했겠지요. 특검보도 애초의 3명 중 수사에 참여했던 2명의 특검보가 그만뒀으니까요. 수사는 기소가 목적입니다. 수사에 참여한 검사가 참여해야 공소 유지를 할 수 있습니다. 다 가버리고 대변인이던 저만 특검에 남았어요. 특검이든 공수처든 공소 유지를 위해서는 공판이 끝날 때까지는 수사하던 검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수사한 검사가 공판에도 참여해야 해요. 그래야 책임수사가 가능합니다.”
 
 
 
많은 예산 소요되는 특검, 無用論?

 
  ‘특검 무용론(無用論)’,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해야 할 특검이 의혹만 남기고 결국 권력에 면죄부만 준다는 지적이다. 특검 제도에 대한 박 변호사의 견해가 궁금했다.
 
  ― 특검은 필요합니까.
 
  “필요합니다. 검사가 관여된 사건이라면 검사가 수사하기 힘듭니다. 특별검사가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특검의 문제가 매번 예산과 인력이 낭비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보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상설(常設)특검 역할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공수처를 검찰 출신으로만 채우면 검찰과 차이가 없겠지요.”
 
  ― 현재 설립 준비 중인 공수처의 구성안을 보면 대통령이 공수처 인사에 막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정권의 호위부대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요.
 
  “그걸 감시하는 게 국회와 언론의 역할 아닙니까. 이번에 경찰 출신으로 특검에 가보니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더군요. 역대 특검도 검사로만 채워졌어요. 검찰에 대한 불신 때문에 특검이 만들어진 것인데 거기에 검사들이 파견되면 국민의 수사 불신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공수처가 상설특검 역할을 제대로 하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 국회는 상설특검법 제정에 합의했다. 검찰개혁안의 하나였다. 그때그때 특검법을 만들지 않아도 특별검사를 임명할 수 있고, 임명 절차를 미리 법으로 정해둬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할 수 있게 한 법이었다. 국회 본회의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 있거나, 법무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발동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발동된 적이 없다.
 
  ― 지금도 법률상 상설특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국회가 활용을 안 하고 있는 건데요, 굳이 공수처를 설치할 이유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특검을 해보니 몇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특검, 특검보, 수사관 선정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듭니다. 유지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들어요. 박영수 특검은 2016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 건의 사건을 다루는 데 예산이 많이 들어요.”
 
  ― 사무실이 외부에 있다 보니 보안도 문제일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둘째는 이미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한 사건을 인계받다 보니 수사의 연속성이 깨지게 됩니다. 수사 보안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증거물을 특검 사무실에 별도로 보관해야 하잖아요. 증거 보관상에 문제점도 있고, 파견된 사람들의 신분 보장도 불안하지요. ”
 
 
  無罪추정 아니라 有罪추정
 
  박 변호사가 변호를 맡은 사건 중엔 굵직굵직한 사건이 꽤 있다.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창 재판도 그중 하나다. 구 전 청장은 2015년 시위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기 때문에 현장 상황에 총괄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박 변호사는 경찰 수사단계부터 1심까지 구 전 청장의 변호를 맡았다.
 
  ― 구 전 청장의 경우 1심 재판에선 무죄가 나왔는데 2심에서 유죄를 받았지요.
 
  “재판장에 변호사로 참여해 보니 수사와 재판 과정에 수사관과 재판관의 개인적인 철학이 많이 작용하더군요. 수사와 재판에 임하기 전에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선입견을 갖는 겁니다. 무죄추정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유죄추정인 겁니다.”
 
  ― 기관장의 형법상 책임은 어디까지인지가 쟁점이었지요.
 
  “법학을 공부하며 형법상의 책임은 민법상의 책임과 달리 행위 책임이기 때문에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그게 아닙니다. 국민 여론, 정서에 재판장이 영향을 많이 받더군요. 그래서 형벌 책임도 민사 책임과 동일하게 무한 책임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청장도 같은 경우입니다. 검찰이 청장에게 책임을 물으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습니까.”
 
  ― 검찰의 논리라면 어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기관장이 죄다 구속이 돼야겠군요.
 
  “도덕적 책임과 형벌상의 책임은 구분해야 하는 겁니다. 결론을 정해놓고 그 방향으로 법을 적용하고 증거를 맞추면 안 됩니다. 짜맞추기 수사와 재판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국가가 미리 여론몰이식으로 결론을 정해놓고 수사관과 검찰, 재판관에게 영향을 줘서 그쪽으로 결론이 나오도록 법 적용을 하는 겁니다. 이건 민주주의의 죄형법정주의, 무죄 추정원칙에 반하는 겁니다.”
 
 
 
현장 경험 적은 경찰청장

 
2011년 3월 당시 동두천경찰서장 시절 박상융 변호사는 ‘즉결심판제도’를 확대 운영했다. 사진=뉴시스
  박 변호사는 경찰을 나온 후부터 ‘경찰개혁’을 말해왔다. 자격이 있는 게, 그는 경찰 상층부의 몇 안 되는 ‘비(非)경찰대 출신’이었다. 경찰 조직을 내부인과 외부인의 시선으로 관찰했다. 경찰서장 재직 시절 경찰서에 음악을 틀고, 경찰서 직원들에게 딱딱한 훈시를 하는 대신 영화 관람을 함께 하기도 했다. 경화된 경찰 조직에 할 수 있는 한 변화를 불러오려고 노력했다.
 
  “유치장에 음악 방송을 틀기도 했어요. 경찰서장을 일곱 번 하면서 직장 훈련 때 서장 훈시를 안 했습니다. 생략해버렸어요. 서장 훈시가 제일 지루하거든요. 서장 하면서는 즉결 심판을 활성화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업무방해나 무전취식 등 비교적 경미한 사안으로 형사사건 전과자를 만들지 않으려고 고심했습니다. 형사 입건하지 않고 입건 유예와 즉결 심판을 통해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직접 나섰지요.”
 
  최근엔 책도 냈다. 《경찰을 말하다》는 수사 현장에서 일반 국민을 대하는 자세부터, 경찰 인사정책까지 경찰에 제언하는 내용이다. 수사에 관한 전문지 《수사연구》에 연재하던 글을 묶었다.
 
  ― 경찰 조직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뭡니까.
 
  “경찰 수뇌부와 현장 간의 거리가 너무 멉니다. 경찰에 20년 근무하면서 보니 현장 근무를 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지방경찰청장은 한 번도 안 해봤지요. 경찰서장은 두 번 했습니다. 기획업무만 한 겁니다.”
 
 
  “경찰大는 무료 로스쿨 학원”
 
  ― 경찰대라는 경찰 엘리트 양성기관의 존재도 한몫할 것 같습니다. 경찰대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경찰대 개혁을 넘어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요. 경찰대엔 전공학과가 딱 2개입니다. 법학과 행정학밖엔 없습니다. 참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선 과학수사를 강조하면서 정작 법과학과는 없습니다. 요즘 경제 분야 지능범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경제와 금융도 가르쳐야지요. 그러니 검찰에 무시당하는 겁니다.”
 
  ― 경찰대 출신들이 로스쿨에 진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데요.
 
  “교수 요원의 수준과 학생들의 수준이 잘 안 맞습니다. 그러니 가보면 로스쿨 진학 준비하거나 어학 공부하고 있어요. 게다가 경찰대생에게 주는 특혜가 과합니다. 학비가 무료 아닙니까. 지금 경찰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거의 가정형편이 괜찮은 집 자제들입니다. 개정안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경찰대생은 군대도 면제였어요. 무료 로스쿨 학원인 셈입니다.”
 
  ― 지난 1월엔 경찰대생이 ‘5년 뒤에 무릎 꿇게 할 것’이라며 파출소 순경을 때리는 사건도 있었지요. 바로 퇴학됐지만.
 
  “경찰대생들이 우수 인력이라고 하는데 그건 고등학교 때 국·영·수 잘했다는 거 아닙니까. 경찰 업무가 영어·수학으로 좌우되는 게 아니에요. 첫째는 성실, 둘째는 인간미입니다. 경찰대생들이 현장 업무도 해봐야 해요. 파출소에서 취객한테 멱살도 잡혀보고,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도 해보고, 교통사고 현장도 가보고, 감식 업무도 직접 해봐야 됩니다.”
 
  ― 사관학교 형태로 운영하는 경찰대학을 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지요. 한국과 중국, 대만 정도입니다. 대부분 고시나 순경 승진 제도를 통해 경찰 간부를 충원하는데요.
 
  “한국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순경 중에 고급 인력이 많아요. 요즘 대부분 4년제 출신이잖아요. 본청에 근무할 때 보면 경찰대 위주로 돌아가요. 순경 출신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항상 말했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경찰청에서 근무해야 합니다.”
 
 
  구속수사 남발되는 현실
 
박상융 변호사가 최근 출간한 《경찰을 말하다》.
  ― 경찰에 몸담다가 어떻게 보면 반대 입장인 변호사로 오셨습니다. 경찰일 때는 몰랐는데 알게 된 게 있다면.
 
  “의뢰인들은 검찰이나 법원에서 부르면 상당한 두려움을 갖습니다. 밤잠을 못 이루기도 해요. 조사를 받고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변호사가 많이 들어주고 마음을 달래줘야 합니다. ‘경청’이 필요해요. 우리나라 경찰, 검사, 변호사, 판사는 모두 잘 들어주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하는 게 이런 얘기입니다. ‘요점만 말해라’ ‘밤에 전화하지 말아라’ ‘주말에 전화하지 말아라’.”
 
  ― 사업하는 사람들은 수사 한번 받으면 사업이 망한다는 얘기도 있지요.
 
  “법정도 일요일에 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일반 국민은 생업 때문에 평일 법원에 못 나가잖아요. 특히 안타까운 건 교도소나 구치소가 야간이나 공휴일에 접견·면회가 안 된다는 겁니다. 가족들이 잠시 생업을 손놓고 면회 와야 하는 겁니다. 수사도 그렇습니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선 구속수사가 원칙이고 마치 불수속수사는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여깁니다. 방어권 보장이 안 되는 거예요. 이론과 현실이 이렇게 다릅니다. 자괴감을 많이 느꼈어요.”
 
  박 변호사는 자신의 책에서 수사받을 때 주의할 점을 썼다. 그중 한 가지를 물었다.
 
  ― 만약 압수수색을 갑자기 받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압수수색 영장을 꼼꼼히 잘 봐야 합니다. 압수수색 필요 사유와 압수수색 대상물을 확인해둬야 합니다. 둘째, 반드시 관리자 입회하에 압수하도록 해야 합니다. 무조건 다 가져가도록 하면 안 됩니다. 현장에서 분석할 것은 분석하게 하고, 수사관이 압수해서 가져간 물건이 뭔지 잘 기록해야 합니다.”
 
  ― 대기업은 전담 변호사가 있으니 상대적으로 낫겠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압수수색이 두렵겠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인신구속보다 압수수색이 더 무섭습니다. 압수수색은 기업 신용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압수 과정에서 영업 기밀도 노출될 수 있고, 물건을 압수당하면 세금을 내야 한다든지 당장 거래해야 하는데 못 해서 거래가 끊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판사는 검사가 청구한 서류만 갖고 압수수색 여부를 판단합니다. 되도록 임의제출을 통해 수사해보고 예외적으로 해야 하는데 압수수색 영장이 남발되고 있어요. 압수수색 해서 가져간 다음 증거가 없고 무혐의로 결론 날 경우, 압수수색 대상자에게 사죄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어요.”
 
 
  탐정 도입되면 범죄예방 효과
 
  ― 책에 ‘대한민국에 탐정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항이기도 해 ‘탐정법’ 통과가 안 되고 있네요. 탐정이 왜 필요한가요.
 
  “미국과 일본에선 탐정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사람을 찾거나 신용도를 조사하는 일 등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탐정이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기업이 어떤 사람을 채용하려고 할 때 이 사람의 이력서가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해 확인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거든요.”
 
  ― 사기꾼인지 아닌지 미리 확인할 수 있으면 범죄도 예방되겠네요.
 
  “거래할 때 이 사람이 사기꾼인지 탐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사기결혼도 일어나잖아요. 탐정제도가 있으면 결혼하기 전에 먼저 신분을 확인할 수 있어요. 사기당했다면 사기꾼이 은닉한 재산을 찾는 것도 가능합니다. 은닉한 재산은 경찰에 말해도 안 찾아줘요. 그런 업무까지 하기엔 인력이 부족하거든요. 이걸 민간에 맡기자는 겁니다.”
 
  ― 법조계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뭡니까.
 
  “변호사 업무 수요의 많은 부분을 탐정에게 뺏기니까요.”
 
  ― 변호사도 이미 증거 수집을 하면서 소위 ‘심부름센터’ ‘흥신소’ 도움을 받고 있잖아요.
 
  “변호사 사무실과 흥신소가 함께 영업하는 경우도 있어요.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증거 수집을 본인이 하지 않고 의뢰인에게 맡깁니다. ‘이곳에 맡겨서 증거를 수집해오라’고 흥신소를 알려주기도 하지요.”
 
  ― 흥신소 형태로 실질적으로 탐정이 활동하고 있는 거네요.
 
  “그렇지요. 법조계에선 탐정을 합법화하면 불법행위가 늘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양성화해 제도권 안에 둬야 불법 행위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제도권 안에 들어가 있지 않으니 불법 행위가 만연합니다.”
 
  ― 현실을 법이 못 따라가고 있네요.
 
  “탐정의 필요성은 사실 인정하고 있어요. 다만, 명분상으로는 감독기관 문제를 두고 경찰과 검찰의 안이 맞서고 있지요. 경찰은 경찰청이 관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탐정이 합법화되면 경찰 관련 업무가 많아질 텐데 경찰에서 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검찰은 법무부 아래 두자고 주장합니다. 경찰 아래 두면 유착된다는 이유예요.”
 
  ― 양측 의견이 일리가 있네요.
 
  “지방자치단체나 총리실 관할로 해서 양쪽에서 같이 규율하면 됩니다. 사채업도 현재 등록업무를 지자체가 맡고 있거든요. 사실 사채업은 경찰이 담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무실에 가서 들여다볼 수 있는데 경찰이 안 맡았어요.”
 
  좀 다른 얘기지만, 박 변호사는 주한(駐韓) 대만대표부의 자문 변호사를 맡고 있다. 경제적인 이득을 바라고 맡을 자리는 아니다. 왜 하필 대만대표부냐고 물었다.
 
  “대만 경찰 쪽에서 한국의 경찰행정을 배우고 싶어 했어요. 공식 외교 관계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걸 보니 돕고 싶어지더군요.”
 
  경찰서장을 여섯 번 하고, 변호사 생활을 하다 특검보까지 지낸 법조인에게서 들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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